얼굴이 뜨거워진 정안은 시선을 옮겼다.“진실게임.”유동진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이상형이 뭐야?”지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것도 물음이라고 물어? 뻔한 거 아닌가?’“기회 낭비했네요.”지윤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고 유미는 기대에 차서 바라보았다.남하준은 정안을 한 번 쳐다본 뒤 덤덤하게 말했다.“백완자 같은 여자.”유미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뒤늦게 반응한 유동진은 그제야 자신이 기회를 낭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여기서 누가 남하준이 백완자를 좋아하는 걸 모를까?정안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후끈후끈해 어색하게 주스를 마셨다.유동진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아니야. 이 질문은 무효야. 네가 완자 씨 좋아하는 거 누가 몰라? 내가 다시 질문할게.”남하준은 보기 드물게 여유롭고 느슨해 보였다.“물어봐.”유동진이 막 입을 벌리려는데 유미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그녀는 다급하고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일과 사랑 중에 뭐 선택할 거야?”그녀의 물음에 남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지윤과 유동진도 멍하니 놀라서 유미를 바라보다가 안색이 안 좋은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야말로 독한 질문이었다.급해 난 지윤이 나서서 말했다.“무슨 질문이 그래요?”유미는 불쾌한 듯 지윤을 흘겨보았다.“진실게임은 뭐든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당신...”지윤이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하고 정안을 올려다보니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남하준은 심호흡을 하고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가슴이 답답했다.유동진이 급히 어색함을 달래려 했다.“질문 바꿔. 바꿔.”하지만 유미가 차갑게 말했다.“안 바꿔. 하준아. 둘 중에 골라봐. 일이야, 사랑이야?”정안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유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일이죠.”유미는 화가 나서 정안을 노려보았다.“난 하준이한테 물었어요!”정안이 단호하게 말했다.“이게 오빠 답이에요.”“그쪽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준이 뇌에 들어가 보기라도 했어요?”정안은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유미는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먹을 불끈 쥐고 꾹 참았다.“그 여자는 백완자가 될 수 없어.”남하준은 가볍게 말했다.“나에게 여자는 백완자밖에 없어.”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복잡한 심경으로 손가락을 문질렀다.지금의 그녀는 무척 감동했지만 마음이 아팠다.유미는 차갑게 웃더니 질투 섞인 어조로 조롱했다.“너 내가 아는 남하준 맞아?”남하준은 술잔을 들고 손을 뻗어 유미의 술잔과 부딪치며 그녀를 실망하게 했다는 의미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유미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 말했다.“넌 백완자를 선택했지만 백완자는 너 선택하지 않을 거야.”“그러니까...”남하준은 그 말을 인정하며 씁쓸하게 대답했다.“이 문제는 언급할 가치도 없지.”정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 일어나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 화장실 다녀올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를 떴고 남하준은 이글거리고 애틋한 눈빛으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유동진이 웃으며 말했다.“에이, 이게 뭔 벌칙이야? 하준이 고백 타임이지. 하준이 여자 마음 홀리는 능력이 점점 더 좋아지는데? 이런 거짓말도 하고.”남하준은 시선을 거두고 유동진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다.“나 어릴 때부터 꿈이 의사였어.”이 말에 현장에 있던 세 사람은 모두 멍한 눈으로 그를 놀라서 쳐다보았다.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남하준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하고 술을 한 모금씩 마시며 말을 이었다.“태준이 형 꿈은 나라를 빛내는 군인이 되는 거였어. 늘 직위가 높을수록 권력이 높고 능력이 강할수록 책임이 커진다고 했어. 그렇게 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유용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며 위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유미가 궁금해서 물었다.“두 사람 꿈 모두 위대해. 근데 넌 왜 의사가 아니라 태준 오빠가 원하는 군인이 된건데?”남하준은 눈을 늘어뜨리고 말했다.“완자는 어릴 때부터 태준 형을 좋아하고 숭배하고 우러러봤어. 태준 형이 아마 완자 우상이었을 거야.”지윤은 완전히 멍해졌다
지윤은 남하준이 너무 괴로워 계속 술로 마음을 달래는 걸 알았다.유미는 시무룩하게 식탁을 떠나 별장으로 향했고 마침 안에서 나오던 정안과 마주쳤다.유미는 그녀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얘기 좀 해요.”정안이 발걸음을 멈추고 차분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말하길 기다렸다.유미는 마음을 가다듬더니 말했다.“나 하준이 좋아해요.”정안은 비록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듣고 나니 조금 괴로웠다.“알아요.”유미가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니 그녀는 경국지색이라 할 수 없지만, 앳되고 둥근 얼굴을 하고 있어 귀엽고, 몸매도 좋은 편이고 성격도 좋고 목소리도 달콤했다.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재능도 있고 갑부의 손녀이기도 한데, 이런 여자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게다가 남하준은 어릴 때부터 그녀를 좋아했고, 십여 년간의 정은 이미 뿌리 깊고 뼈에 사무쳤다.유미는 자신이 그녀와 겨룰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물었다.“하준이 사랑해요?”정안은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몇 초 기다려도 여전히 답을 듣지 못하자 유미가 또 물었다.“앞으로 Z국에 가서 살아요?”“맞아요.”정안이 답하자 유미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내 눈에 태준 오빠는 하준이랑 비교가 안 돼요. 어느 방면으로 봐도 하준이가 한 수 위죠. 어쩌면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도 모르겠네요.”정안은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왜 갑자기 남태준을 언급하고 또 남하준과 비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쪽은 좋아하는 남자가 있고, 돌아가고 싶은 나라도 있고 자기 사업과 인생이 있으니 여기에 속하지 않고 하준에게도 속하지 않죠.”유미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그러니까 제발 하준이에게 어떤 희망도 주지 말아요.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하지 말란 말이에요.”정안이 주먹을 천천히 쥐자 눈시울이 흠뻑 젖고 가슴 끝이 살살 아팠다.유미가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확고하게 말했다.“하준이가 그쪽을 얼마나 사랑하든 그쪽이 떠나기만 하면 난 하준이가 그쪽을 잊게 할 자신 있어요. 1년이 걸리든, 1
정안과 유미는 앞뒤로 걸어서 자리로 돌아갔다.유동진은 진작 종이뭉치를 준비해놓고 다음 게임을 준비했다.“계속하죠.”정안은 남은 주스를 다 마시고 빈 잔을 내려놓았다.“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 나서 저 먼저 가볼게요. 재밌게 노세요.”지윤은 멍해져서 정안을 바라보다가 따라 일어섰다.정안이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떠나려고 돌아섰을 때 남하준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정안은 멈칫했다. 앉아서 그녀의 손을 꼭 잡은 남하준은 손을 놓기 아쉬웠다.모두의 시선이 남하준의 손에 고정되었고 그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 자제하고 침묵했지만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정안은 그의 손바닥 온기를 느끼고 가슴이 떨리고 은은한 통증이 밀려왔다.“오빠, 나 가봐야 해요. 할머니가 찾으세요.”정안은 핑계를 대고 천천히 손을 밀었지만 남자의 손바닥이 두툼하고 힘이 세서 그녀는 전혀 밀어낼 수 없었다.술을 마신 남하준의 고통은 알코올에 의해 100배 증폭되고 절제된 감정은 거센 파도처럼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허탈한 표정으로 식탁 위의 빈 잔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손가락은 조금씩 정안의 손목을 놓아주었다.그저 간단한 손 놓는 동작이었지만 남하준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숨을 쉬는 것조차 칼을 삼키는 아픔을 느꼈다.그의 손이 다 풀려 힘없이 흘러내리자 정안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인사했다.“나랑 지윤이 먼저 갈게요. 다음에 봐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바람을 맞으며 하나둘 가로등을 지나니 정안의 눈물이 후광에 비친 것처럼 맑고 투명하게 눈앞에서 뒹굴었다.정원의 식탁 앞에서 유동진은 정안의 뒷모습이 금원의 정원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남하준을 바라보니 그는 넋을 잃은 듯 산송장처럼 묵묵히 앉아 정안이 마신 빈 잔을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조명이 어둡고 노랗게 변해도 남하준의 눈동자가 붉고 촉촉한 것을 똑똑히 보아낼 수 있었다.유동진이 다
남하준은 술을 마시며 유미가 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을 들으며 저릴 정도로 아파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하준아, 유미 말이 맞는 것 같아. 유미 말 들어.”유미가 일어나 남하준이 들고 있던 술을 덥석 빼앗았다.“그만 마셔.”남하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젖은 눈을 천천히 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자신이 슬퍼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유동진이 조용히 술을 마시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 불쌍한 우리 하준이. 완자 얼굴 한번 보려고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거잖아. 사람이 많으면 완자가 덜 불편해할 것 같아서. 근데 주스 한 잔 마시고 새우 한 입 먹고 가버렸네.”유미는 남하준의 옆에 앉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하준아, 넌 더 좋은 여자 만나야 해.”“그래. 유미 말이 맞아.”한참 후 남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울먹였다.“완자한테 내가 많이 부족해.”유동진은 깜짝 놀랐고 유미는 분해서 눈물을 쏟으며 울먹였다.“그게 무슨 소리야. 그 여자가 뭐 그렇게 대단해?”“부족한 사람은 그 여자지. 안목도 없고 소중함도 모르고.”“하준아, 그 여자는 너 좋아한 적 없어. 기억을 잃은 후에 너랑 결혼하긴 했지만 그건 그저 당시 신분이 미천하고 생활이 어려워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뿐이야.”“기억을 회복하고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자기는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는 삶과 좋아하는 직업도 있고 꿈의 나라도 있고. 그 여자는 너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해.”남하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유미야, 앞으로 다시는 완자 그렇게 말하지 마.”유미는 불쾌해서 말했다.“내 말이 틀렸니?”남하준이 일어나서 비틀대자 유미가 급히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그는 유미의 손을 천천히 밀어냈다.“나 머리 아파서 먼저 방에 가서 쉴게. 너희들 계속 먹어.”“내가 부축해 줄게.”유미가 또 부축했지만 남하준이 다시 밀어내고 차갑게 말했다.“됐어.”남하준이 비틀비
“유미야!”유동진이 외쳤지만 유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떠났다.유동진은 할 수 없이 혼자 술을 마시고 바비큐를 먹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백씨 저택.정안은 작은 박스를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인기척을 들은 여은수는 얼른 젓가락을 놓고 허둥지둥 방으로 향했다.정안은 할머니가 계란후라이를 먹다가 그녀가 돌아온 걸 보고 당황한 기색으로 숨는 걸 보고 잽싸게 달려가 여은수 앞을 막았다.여은수는 당황하고 어색한 눈빛으로 침을 삼키고는 애써 도도한 척 고개를 젖히고 정안을 보았다. 그 으스대는 모습은 마치 ‘난 절대 사과 못 해. 어쩔 셈이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정안이 오만한 할머니를 바라보니 마치 잘못한 아이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인정하기 싫어하는 모습이었다.정안은 피식 웃었다.“할머니, 왜 자꾸 나 피해요?”여은수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지 않자 장안이 다시 그녀 앞으로 돌아가 손에 박스를 보이며 부드럽게 달랬다.“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어요.”여은수가 차갑게 말했다.“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손녀가 할머니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는데 왜 못 받아요?”여은수는 차갑게 웃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하게 말했다.“나한테 잘해주는 척하지마.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아니까.”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할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제가 무슨 생각하는데요?”여은수는 다시 피하더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투덜댔다.“그래. 내가 바보다. 내가 눈이 멀어서 자기 친손녀를 못 알아봤어. 그래서 무례하게 돈 가지고 너 모욕하고 욕하고 또...”여은수는 말하면 할수록 괴로웠다. 마음속의 억울함이 죄책감으로 변해 목이 메어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런 사람이야. 교양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사람 귀찮게 하지. 난 원래 이런 사람이고 변하지 않아. 네가 나 미워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어.”정안은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분명 화가 나 있으면서도 전부 죄책감 가득한 말만 하고 있었다.정
정안은 애교 부리는 투로 말했다.“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전에 가짜 손녀에게 그렇게 잘해주셔서 내가 얼마나 질투한 줄 알아요? 그때 내가 할머니 손녀라고 얼마나 말씀드리고 싶었다고요?”여은수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 없이 울고 몸이 떨렸다.“그때는 가짜 백하린을 통해 엄마 아빠 생사를 조사하려고 계속 꾹꾹 참았어요. 내가 미안해요 할머니. 잘못했어요.”정안이 말하면서 여은수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자 여은수는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정안은 어렸을 때부터 안고 애교 부리는 걸 좋아했는데 여섯 살 이후로 이렇게 붙어 있은 적이 없었다.“할머니, 나 용서해 줄 거죠?”장안은 부드럽게 여은수의 손을 흔들며 계속 애교 부렸다.“할머니. 이번 한 번만. 네?”여은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흐느끼고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사과할 사람은 이 할미야.”정안은 활짝 웃더니 한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할머니 잘못 아니에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난...”여은수가 고개를 들어 정안을 보니 두 눈은 이미 붉고 촉촉해 있었다.정안은 마음이 아파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달랬다.“나랑 같이 거실에 가서 앉아 있어요. 할머니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는데 우리 같이 먹어요. 네?”여은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긴장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할머니 화 안 났어. 평소에도 바빠서 힘들 텐데 방에 돌아가 쉬어. 난... 혼자 먹으면 돼.”정안은 할머니가 여전히 조심스럽게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눈물을 반짝이며 여은수의 손을 잡고 소파로 가서 지윤이 건넨 디저트를 열며 말했다.“싫어요. 난 할머니랑 같이 있고 싶어요.”여은수는 놀라서 정안을 바라보았고 정안은 디저트를 여은수의 입가에 갖다 댔다.“할머니. 아~”여은수는 깜짝 놀라 디저트를 보더니 곧바로 입을 벌려 먹고 다시 정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긴장해서 물었다.“설마... 너도 가짜 손녀 아니냐?”
정안이 급히 해명했다.“나랑 하준 오빠는 한 번도 사귄 적이 없는데 헤어졌다니요?”“나 때문에 너희가 이혼했잖아?”“혼인신고는 다른 신분으로 했으니 그 결혼은 무효죠.”여은수는 여전히 자책했다.“너랑 하준이는 반년 넘게 부부로 지냈잖아?”정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저 유명무실한 부부였고 부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여은수는 경악하며 정안을 바라보았다.정안은 애써 괜찮은 척 디저트를 한 입 먹더니 여은수에게도 하나 건넸다.“나랑 하준 오빠는 불가능해요.”“왜 불가능해? 하준이도 너 좋아하고 너도 하준이 좋아하잖아? 서로 마음도 맞고 집안끼리도 오래 알고 지냈으니 하늘이 맺어준 배필이 아니냐?”정안은 여은수의 손을 끌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속삭였다.“제가 앞으로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여은수가 엄숙하게 말했다.“반년이 지나도록 부부 일을 하지 못했으니 하준이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냐?”정안은 어이가 없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할머니. 함부로 넘겨짚지 마세요.”여은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노기에 차서 말했다.“그럼 마음이 변한 게 틀림없다. 내가 하준이랑 얘기를 나눠봐야겠어.”“안 돼요. 할머니. 절대 찾아가시면 안 돼요.”정안이 황급히 달랬고 여은수는 묵묵히 어떻게 두 사람의 사이를 회복시킬까 생각했다....뉴빌리지, 정통 어르신의 저택.그는 손에 든 보고서를 보고 흥분하여 손가락을 약간 떨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잘됐네. 너무 잘됐네. 드디어 정안을 찾았어!”그는 고개를 들어 남하준을 올려다보며 흥분해서 말했다.“역시 남 장군이야. 드디어 정안을 찾았다니. 그런데 왜 사진이 없나?”남하준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주 중요한 인물이라 사진을 넣으면 신분이 노출돼 화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정통 어르신은 군의 기밀을 이해했다. 어떤 것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그럼 앞으로 어떡할 건가? 정안이 우리 M국에 합류하도록 설득할 자신이 있나?”“정안은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