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좀 지나자 그 까만 딱지가 떨어졌고 하얗고 매끈했던 다리에 흉터 자국이 튀어나왔다.강지아는 의사에게 가서 재검사를 받았고 상처를 본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상처 난 주위가 그나마 심각하지 않아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심한 곳은 흉터 연고와 피부과에 가 보셔도 되는데 아마 무리일 거예요.”“의학 병원도 안 되나요?”“완전히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병원에서 나온 강지아는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았다.자신의 몸에서 그나마 가장 만족하는 곳이 길고 곧은 다리였다.그런데 이제 흉터가 있어 반바지와 치마를 평생 못 입게 되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청천벽력이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흉터를 제거하지 못해도 대표님의 다리는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예쁘니까요. 그리고 섹시하게 보이는 방법이 있어요!”강지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방법인데?”“타투이스트를 찾아가서 문신을 하는 거죠.”동하민은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제가 아는 타투이스트가 있는데 전국 문신대회 우승자예요. 이것 보세요. 저도...”동하민은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강지아에게 목을 보여 주었다.“이 독수리가 바로 그 타투이스트가 그려주신 건데 이렇게 작은 도안도 그때 제 월급의 절반이나 써서 일주일 내내 라면만 먹었어요. 한 번 보세요. 이 독수리 무늬 너무 예쁘지 않아요?”강지아는 가까이 가서 봤다. 확실히 검은 독수리가 살아 있는 것 같았고 깃털이 검고 윤이 나 보이는 걸 보니 타투이스트의 솜씨가 상당히 뛰어난 것 같았다.하지만 강지아는 문신을 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다리에 흉터가 비교적 크게 났기에 하려면 큰 패턴의 문신을 해야 했고 그러면 너무 눈에 띄어 최신애가 분명히 싫어할 것이다.문신이라는 것은 많은 기성세대의 눈에 일탈이라고 보인다.“일단 피부과에 가 보고 다시 얘기하자.”강지아가 온유한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정원에 낯익은 그림자가 하나 보였다.오늘 날씨가 매우 좋아 병원의 정원에서 많은 환
차는 골목 밖에 주차했다. 이곳은 강지아가 와본 적이 없다.옛날 동네라 대부분 나이 든 노인들이 살아 왠지 노을이 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골목이 좁아서 동하민은 혹시라도 강지아의 고급 차에 기스라도 날까 봐 감히 운전해서 들어가지 못했다.강지아는 시멘트로 얼룩진 골목 어귀에 서서 머뭇거리는 얼굴로 물었다.“타투이스트 선생님이 이 안에 있다는 말이지?”“맞아요. 바로 안에 있어요.”동하민이 차 안에서 물을 두 병 가지고 나왔다.“대표님, 겉이 허름하다고 절대 깔보면 안 돼요. 많은 연예인 스타들이나 재벌가들도 여기에 문신을 하러 와요.”동하민의 말에 강지아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이 골목은 오래돼 보였지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길가에 낙엽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도 청소부가 매일 열심히 청소함을 알 수 있었다.건물 안에서 이따금 젊은 사람이 엄마를 찾는 고함소리가 한두 번씩 들려왔다.점심시간인지라 건물 입구를 지나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이 집은 장조림을 하는 집이에요. 이 집은 양고기. 이 집은 매운 음식인가 보네요. 콜록콜록. 아 매워.”타투이스트의 작업실이 음식점이 가득한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골목 끝까지 가니 반쯤 열린 작은 철문이 보였고 마당에 들어서니 눈이 확 뜨였다.마당에 꽃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이 심은 것 같다. 꽃 종류가 너무 많아 어수선했지만 마당 전체가 활기차 보였다.안에는 팔뚝을 드러낸 런닝을 입은 남자들이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대문을 들어서는 발걸음 소리에 한 남자가 고개도 들지 않는 채 말했다.“점심시간이니 오후에 다시 오세요.”동하민이 얼른 다가가 말했다.“잘생긴 오빠, 여기에 일부러 찾아온 거니까 수혁 오빠에게 얘기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재밌네. 여기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팔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가 말을 하며 고개를 든 순간, 눈앞에 있는 강지아를 보고는 그대로 멍해졌고 참지 못하고 바로 휘파람을 불었다.“와! 예쁜이!”그리고 바
2층은 1층과 디자인이 완전히 달랐고 전부 작은 칸막이로 이루어져 있었다.이곳은 타투이스트들이 작업도 하고 쉬기도 하는 공간이다.그 수혁이 형이라는 남자는 이제 막 작업을 마친 듯 2층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응접실이라고는 하지만 텅 빈 곳에 소파와 탁자 몇 개를 아무렇게나 늘어놓았을 뿐이다.가게 밖에서부터 안까지 제멋대로인 것을 보니 사장도 본인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문신하려고?”턱에 턱수염이 조금 있는 진수혁은 키가 아주 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긴 다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진수혁의 물음에 강지아가 맞은편에 앉아 말했다.“문신하러 왔어요.”“왜 문신을 하려는 것인데?”“몸에 흉터가 생겨서요.”“한번 봐봐.”이 사람... 너무 직설적인 거 아니야?옆에 있는 그나마 조금 젊고 잘생긴 타투이스트가 강지아의 의아한 얼굴에 한마디 설명을 덧붙였다.“문신하려는 곳이 문신하기에 적합한지 보려고 그러는 거예요. 흉터 크기 등도 확인해야 하고요.”동하민이 강지아의 바짓가랑이를 걷어주자 몸을 앞으로 내밀고 흉터를 살핀 진수혁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문신할 수는 있어. 원하는 그림은 있나?”처음 문신을 접한 강지아가 어리둥절해 하는 얼굴에 옆에 있던 동하민이 한마디 했다.“수혁 오빠 말은 대표님이 원하는 문양이 있는지 묻는 거예요. 생각해 놓은 디자인이 없으면 가게에 있는 것을 고를 수도 있고 새로 디자인도 해 줄 수 있다는 말이에요.”“그럼 새로 디자인해주세요.”강지아의 말에 진수혁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그 흉터 딱지 방금 떨어졌지? 당분간은 문신하면 안 돼. 나중에 다시 와. 지금 문신을 해도 되는데 그림이 너무 커서 종아리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일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좀 작아질 것 같으니 그때 적당한 사이즈로 문신을 하면 될 것 같아.”그 말에 강지아가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알파벳 N과 H가 들어간 디자인으로 부탁드려요.”진수혁이 눈썹을 치켜뜨고 물었다.
작업실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일찍 집으로 돌아간 강지아는 정유진이 정원에서 강형원과 산책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녀석이 하루가 멀다 하고 통통하고 예쁘게 커가고 있다.“요즘 볼 때마다 엄마를 닮은 것 같아요.”“아기들이라 그래. 아직 눈썹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어. 나중에 크면 누구를 닮을지 아직 몰라.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정유진이 강지아를 보며 물었다.“집에 와서 일하려고요.”사실은 온유한을 피해 일찍 집에 온 것이다.지금 온유한을 만나면 임유희의 일로 싸울 수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를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작업실에 간 온유한은 강지아가 일찍 퇴근한 것을 확인하고 이내 본가로 쫓아갔다.“봤어?”온유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응.”“화났어?”“몰라.”진짜로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은 불편했다.그녀의 얼굴을 주무른 온유한은 강지아의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었다.“임유희는 내 환자일 뿐이야. 그리고 여자친구가 있다고 진작 얘기했고.”“하지만 임유희가 오빠를 좋아하잖아.”강지아가 고개를 들고 온유한을 쳐다보며 말하자 온유한은 어리둥절했다.“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 그런데 질투 나?”“응.”“그럼 앞으로 일 외적으로는 만나지 않을게.”온유한은 한마디 설명을 덧붙였다.“오늘은 간병인이 임유희 핸드폰을 가지러 가는 바람에 내가 휠체어를 밀게 된 거야.”“정말? 아주머니가 나가서 햇볕이 좋으니 산책하라고 한 게 아니라?”온유한은 강지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강지아가 생각보다 예민하고 직감도 꽤 정확하기 때문이다. 사실 최신애와 장희수는 온유한과 임유희에게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애썼다. 오늘 정원에서 산책하게 된 것도 그 두 사람이 단둘이 있게끔 여건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 외에 다른 날들은 온유한이 모두 피했다.“우리 엄마 말을 들을 필요 없어.”온유한이 말했다.끈질기게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이 아닌 강지아였기에 일부러 정색을 하고 난폭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엠 디자이너」에서 가장 사랑받은 디자이너는 강지아와 하미소로 제작진은 두 사람의 이름으로 희망초등학교에 기부를 했다.반면 서원준은 강지아에게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라고 추천했지만 강지아가 거절했다.“왜 안 나갈 건데? 재밌잖아. 돈 벌기도 쉽고.”“내게 돈이 부족하지는 않잖아? 그 돈은 다른 사람이 버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원준이 말했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강지아는 「아이엠 디자이너」의 공식 블로그를 리트윗했고 이것으로 컬래버레이션은 끝난 셈이다.하지만 하미소와 사적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 가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다만 하미소가 다른 촬영에 들어가는 바람에 많이 바빠졌다.“너 요즘 온유한과... 어떻게 지내?”서원준이 불쑥 물었다.“잘 지내.”“그래? 그럼 됐어.”강지아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켜자 서원준도 더 이상 귀찮게 하기 미안했다.“나중에 헤어지면 알려줘.”강지아는 이 인간을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었다. 이게 사람이 할 말인가?“꺼져!”서원준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어제 병원에 갔을 때 온유한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의 감정선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그래서 특별히 알아보러 왔는데 멋도 모르고 기뻐한 것 같다.태안 병원.최신애가 보온 통을 들고 자리를 뜨자마자 때마침 들어온 온미정은 두 명의 젊은 간호사가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온씨 집안 사모님이 임유희 씨에게 정말 잘해 주네. 매일 각종 보양식을 병원에 나르고 있잖아. 임유희 씨가 진짜로 우리 미래의 온씨 집안 사모님이 되는 건 아니겠지?”“어쩌면 진짜로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그럼 강지아 씨는?”“아휴, 난 강지아 씨가 너무 좋아. 예능에서 너무 이쁘게 나왔잖아. 기질도 좋고.”“하지만 임유희 씨도 괜찮잖아. 대학교수라 학생들도 가끔 병문안을 오고. 말하는 것도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얼굴도 예쁘고.”두 간호사는 당사자인 온유한 보다 더 고민하는 듯했다.온미정이 한 번
“들었어? 온 주임이 다음 주 휴가 때 여자친구 데리고 여행 갈 거라는 얘기?”“뭐? 근데 임유희 씨가 퇴원하려면 아직 멀었잖아?”“바보야, 임유희가 온 주임님의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거지, 진짜 여자친구는 강지아라는 뜻이지.”“하지만 다들...”“다들 허튼소리 그만해. 흉부외과에서 나온 얘기야. 온 주임님의 학생이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임유희는 간병인을 보며 말했다.“햇볕이 너무 강하니 이만 병실로 돌아가죠.”간병인은 그녀를 밀고 병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임유희 씨, 간호사들의 헛소리는 들을 필요 없어요. 온 선생님의 어머니가 임유희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말솜씨가 좋은 간병인 아주머니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간병인의 말에 임유희가 피식 웃었다.“하지만 온 선생님이 나를 안 좋아하잖아요.”“이 병원에서 몇 년을 일하면서 온씨 가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예전에 온 선생님이 강지아와 사귄다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사귀기 시작한 것도 올해의 일이에요. 온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오랫동안 인연이 있죠. 정말 평생 함께할 거였으면 진작 함께 있었겠죠? 그러니 마음 편히 쉬세요. 온씨 집안과 같은 가정에서 태어난 온 선생님 같은 사람은 결혼도 당연히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 해요.”책장을 넘기는 임유희는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강지아 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당연히 알죠. 전에 「아이엠 디자이너」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검색하면 나올 거예요.”휴대전화를 집어 든 임유희는 팬들이 이쁘게 포토샵한 강지아의 사진을 한 무더기 찾아냈다.강씨 집안 사람들은 미간이 비교적 깊지만 강지아는 강지찬처럼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의 장점이 조화롭게 매칭되어 있어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에 어른이 된 강지아는 대범한 재벌 집의 외동딸 기질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임유희의 온유하고 아늑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최신애는 온유한이 임유희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녀만의 생
온유한은 휴가를 애만 쇼가 끝난 후에 가기로 했다.강지아가 다른 일에 집중하지 않고 오롯이 놀게 하기 위해서이다. 괜히 쉴 때 일을 생각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불이 난 탈의실 두 개는 새로 장식해 화재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지난번 리허설 이후 쇼장이 조금 변동되었고 이미 준비를 마쳤다.쇼장에서 나온 강지아가 다시 경찰서에 갔을 때 강지찬은 이미 기훈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오빠, 용의자가 자백했어?”“응.”“누구인데?”“처음에는 너와 예능을 찍었던 걔.”“주민희?”“네.”옆에 있던 변호사가 말했다.“그런데 이미 외국으로 도주해서 당분간은 잡히지 않을 거예요. 오늘 강지아 씨를 부른 이유는 좀 더 조사하고 싶어서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경찰이 묻는 대로만 대답하면 돼요.”미처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한 강지아는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다.이제 연예계에서 발을 내디딜 수 없게 되었으니 그녀에게 보복하는 게 이해를 못 할 일은 아니다.경찰서에서 나온 강지찬은 차를 타기 전에 두서없이 물었다.“유한이와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야?”갑작스러운 물음에 강지아가 말했다.“일단 지금처럼 있는 거지. 왜? 오빠, 또 무슨 찌라시라도 들었어?”“아니.”강지찬이 차에 올라탔다.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지아는 자신과 온유한의 관계가 당분간 변함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급하지 않았다.동하민을 데리고 신상 겨울옷들을 사러 갔는데 쇼핑을 마치고 나오니 날이 저물었다.두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진수혁이 그녀에게 문신 도안을 보내왔다.모두 그가 직접 디자인한 도안으로 강지아가 그중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다시 디자인할 수도 있다.강지아가 고심 끝에 고른 것은 예술 감각이 끓어 넘치는 알파벳 H와 N이었다. 동하민도 이 디자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워낙 대범한 강지아인지라 바로 원하는 도안을 선택했다. 괜히 번거롭게 다른 도안을 디자인하라고 하지 않았다.식사하고 있는데
“대표님, 저, 저...”동하민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저분이 정말 온 선생님 어머니 맞나요?”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강지아의 체면 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니 말이다.살짝 웃음을 짓는 강지아의 표정은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우리 그냥 밥이나 먹자.”동하민은 내키지 않은 듯 말했다.“대표님, 설마 나 때문에 대표님의 얼굴이 깎인 거 아니에요?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기를까요?”“너와 상관없어.”강지아가 말했다.“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불만일 뿐이야.”“너무해요.”동하민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온 선생님 같은 분에게 어떻게 이런 엄마가 있을 수 있어요?”이렇게 말한 동하민은 문득 무슨 생각이 나는 듯했다.“그럼 대표님이 문신하면 더 꼬투리를 잡겠네요? 그때는 분명 또 그 핑계를 대고 뭐라고 할 거예요.”“내 일은 내가 결정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동하민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역시 우리 강씨 집안 아가씨다운 대표님! 저런 사람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어요.”애만 쇼를 앞두고 강지아가 다시 한번 타투샵을 찾았다.이번에는 문밖에 작은 나무 팻말에서 ‘상선약수'라는 단어를 발견했다.이것은 아마 진수혁의 작업실 이름인 것 같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지은 탓에 전혀 타투샵 이름 같지 않았다.강지아가 선택한 도안이 크지 않아서 2시간 내로 완성이 되었다.문신하는 도중에도 한 번도 아프다고 끙끙거리지 않았고 그저 차분하게 누워서 핸드폰을 봤다.진수혁이 사진까지 찍어 주자 그녀는 그 사진을 온유한에게 보내 예쁘냐고 물었다.곧이어 온유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지아야, 문신하러 갔어?”“응, 예쁘지 않아?”“예뻐.”예쁘다는 온유한의 말에 강지아는 입술을 달싹였다.이때 온유한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H는 나야?”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문신을 바라본 강지아는 너무 마음에 들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흉터가 발목 바깥쪽에 있었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