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찬은 사업가로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이번에도 여전히 전태연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 없군요." 정유진이 물었다.강지찬은 아주 당연한 듯이 말했다."이 주식이 며칠 동안 감옥에 가두는 것보다 더 확실하지 않아?"정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4년 전에도 그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듯이 또 다른 무력감의 물결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파르게 밀려왔다.그녀와 강지천은 결코 교차할 수 없는 두 개의 평행선이었으며, 누구도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또한 서로를 위해 바뀌는 것도 불가능했다.다행인 것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할 것조차 없었다. 다음 날 오후 온미정은 그녀와 뷰티 마사지 약속을 잡았다.정유진도 한동안 몸을 돌보지 못했는데, 마침 속도 상한 터라 온미정의 약속에 응했다.온미정은 그녀를 보자마자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하루 종일 징징대는 년처럼 굴기엔 이 얼굴이 너무 아까워. 말해봐, 지천이 그놈이 또 왜?"정유진은 강지찬이 벌인 일을 낱낱이 말했다.온미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할지말지 망설였다.정유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작은고모, 지금 저를 바보라고 하려는 거예요?"이 말을 들은 온미정도 더는 사양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 미용사더라 먼저 나가라고 했다."진심으로 물어보는 거니까 사실대로 말할게. 지찬이 한 일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 전태연이 주범이고, 현재 증거가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증거가 있다고 해도 범죄 미수죄로 형을 얼마나 받을 수 있겠어? 전씨 가문이 뒤에서 수작도 보리고 하면 전태연이 들어갈지 말지도 미지수야.”정유진은 너무 맞는 말이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실제로 이런 일들을 짐작은 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온미정은 그녀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게다가 너 아직 부모님과 연우를 데려오고 싶지 않니? 이제 사업이 잘 안되고 재료가 비싸고 인건비가 비싸고 집세와 직원 임금 외에 평범한 인테리어로 돈을 벌 수 있겠어?
온미정과 마사지를 마친 후 정유진은 기분이 상쾌해졌고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졌다.이틀 후, 해외에서 한바탕 놀고 온 지아가 돌아왔다.처음 돌아오자마자 그는 정유진을 찾으러 달려갔고, 정유진에게 막 나온 명품 브랜드 가방도 가져다주었다."그냥 너를 위해 사면 되지, 왜 내 것까지 사?”강지아는 이미지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누워서 웃으며 얘기했다. "어쨌든 저는 오빠 돈을 쓰고 있고, 오빠 돈은 언니 돈이고, 저는 짐을 나르는 것을 돕고 있을 뿐인데요."그렇게 말한 후 그는 서둘러 다시 올라와 가방에서 연고 두 통을 꺼내며 말했다."이건 흉터를 없애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거예요, 언니, 한번 써보세요.”정유진의 목은 이제 살짝 긁힌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계속 흉터 제거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흉터가 남을 확률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강지아는 항상 수다쟁이였고, 지난 몇 년 동안 다양한 쇼와 파티에 자주 등장하며 패션계에서 인기 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번에 온유한이 특별히 그녀를 찾으러 가지 않았다면 그녀가 밖에서 얼마나 오래 즐길지도 몰랐을 것이다."시누이, 며칠 뒤 한규진의 생일인데 너도 같이 갈 수 있어?” "나는 됐..."온미정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강지아는 정유진이 강지천과 마주치고 싶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 말했다.“오빠는 요즘 개처럼 바빠서 절대 안 갈 거예요.”정유진은 마음을 먹고 말했다.“좋아, 갈래.” 강지아가 다가와 말했다.“전태연도 분명 거기 있을 테니 체면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요.”한규진은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으로서, 30번째 생일을 맞아 파티의 규모도 당연히 크게 했다.최근 k그룹의 사건으로 바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항상 주목받는 그의 성격상 생일 파티는 반드시 해외로 떠나는 것으로 정해졌을 것이다.그의 생일 당일, 그는 온갖 미녀와 멋쟁이들을 모았다.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의 탑급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핫하거나 그다지 핫하지 않
전태연의 눈은 분노로 붉어졌다.정유진은 이런 파티에 와본 적이 없었고, 강지찬과 사랑을 과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을 보여주러 온 것은 분명 그녀의 얼굴에 먹칠을 하러 온 것이었다."저기, 저 사람이 강 대표의 아내라고?" 가십걸들은 전태연의 시선을 따라 보면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실물이 사진보다 더 예뻐.” “태연아, 저쪽으로 가지 말자, 창피하잖아!"전태연의 손톱이 거의 손바닥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그녀는 평소 자신을 떠받들던 여자들이 실제로 마음속으로 자신이 망신당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에 강지찬으로 한창 과시를 했었으니 말이다.아무도 그녀가 속이 검은 강지찬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믿지 않았고, 남의 결혼에 간섭한다고 뒤에서 비웃을 뿐이었다.전태연은 죽도록 싫었지만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그녀와 정유진이 대립할 경우에 지는 쪽은 반드시 그녀였다.그래서 발을 돌려 다른 쪽으로 갔다.싸움을 걸고 싶었던 두 가십걸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유진도 전태연을 보았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전태연은 나쁘긴 하지만 결국은 강지찬이라는 개자식에게 이용당한 게 아닌가?그래도 개자식은 쓸모는 있었다. 정유진은 걸어 다닐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왔다. 얼마 후, 정유진은 여러 부인과 아가씨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가문은 모두 K그룹과 협력하고 있었다.중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나왔을 때 누군가와 부딪혔다.상대방은 디저트 접시를 손에 들고 있었고, 정유진은 가슴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디저트 접시는 거의 다 그녀의 몸에 엎어졌다.“죄송해요! 죄송해요!” 소녀는 몇 번이고 사과했지만 얼굴 표정은 그다지 미안해하지 않았고 눈빛은 도발적이기까지 했다.정유진은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전태연 등 사람들이 보였다.웨이터가 서둘러 깨끗한 수건을 가져왔다. "고마워요." 정유진은 그것을 가져다가 가슴팍의 크림을 닦았다.
다른 사람들이 강씨 가문과 협력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전씨 가문은 확실히 강씨 가문과 깊은 협력이 있었다.강씨 가문이 이미 여론의 소용돌이에 깊이 빠졌지만 여전히 전씨 가문의 라이브 방송 플랫폼을 인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전태연 또한 그 두 여자가 말을 잘못한다는 것에 매우 화가 났다. 정유진을 모욕하려면 정유진만 모욕하면 될 것이지 왜 강씨 가문을 거들먹거리는 것인가?하지만 결국 그 두 사람은 그녀의 편이었고,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화를 낼 수 있었다.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정유진 씨, 저희 앞에서 연기하지 마세요. 강 대표님이랑 같이 살지 않잖아요.”가십걸들은 깜짝 놀랐다.“결혼이 가짜라고요?”“다이아몬드 반지 역시 가짜인 건 아니죠?”“너 바보야? 강 대표가 가짜 다이아 반지를 사겠어? 다이아 반지는 진짜일 텐데 혹시 누가 잠깐 착용만 해보고 다시 돌려준 건 아닌가 모르겠네. 내 말이, 혹시 강씨 집안 부인이라면 어떻게 백화점 옷을 입고 오겠어?”정유진은 살짝 웃었다. 그렇지, 그 다이아몬드 반지는 정말 잠시만 끼고 있었지.“백화점 옷이 뭐가 어때서요?”갑자기 강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시언니는 포댓자루를 입고도 맞춤 제작 옷을 입은 사람들보다 만 배는 더 멋져 보이는데요.”여성들은 고개를 돌렸지만 강지아뿐만 아니라 강지찬도 보았다.한동안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정유진도 얼어붙었다. 너무 바빠서 못 온다고 하지 않았었나?이때 한규진이 친구 몇을 데리고 왔다."무슨 일이에요? 와, 형수님도 왔어요?" 이 남자는 법정에서의 염라대왕 같은 무정한 얼굴을 바꾸고는 지금은 쾌락만을 향수하는 바람쟁이 같은 얼굴이었다.전태연과 다른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강지천은 재킷을 벗어 정유진에게 입혀주며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먼저 화장실에 가서 씻고 와. 임우연이 바로 옷을 갖다줄 거야."정유진은 어리둥절하게 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씻었다.여기는 여자 화장실이었는데, 안에 아무도 없어서 강지천
임우연은 지난번 강지찬이 정유진을 위해 만든 맞춤 제작 드레스 한 벌을 가져왔다.강지찬은 탈의실에 들어가지 않은 채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드레스를 건네주며 말했다.“밖에서 기다릴게.”정유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괜히 오해를 해서 속 좁아 보였다.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그는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강지찬을 보았다.남자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고, 담배 연기에 비친 뒷모습은 약간 쓸쓸해보였다.정유진은 아직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항상 강지찬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최근 회사에서 발생한 일이 그를 정말 지치게 한 것 같았다.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먼저 꺼내 꽁초를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린 후 뒤돌아보았다.드레스는 은빛과 회색이 감돌고 가슴과 밑단에 은색 실로 수작업으로 수놓았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정유진을 마치 여왕처럼 빛나게 만들었다.오늘은 단지 한규진의 생일이라 이 드레스는 분에 넘치는 듯했다.하지만 강 대표는 너무도 만족스러웠다..“주문한 드레스를 전부 갖다주라고 할게.”강지찬은 한 걸음 앞장서서 정유진의 손을 잡고 다시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정유진도 두 사람이 맞잡고 있는 손을 보고는 살짝 얼어붙었다.그녀는 강지찬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만 해도 몇천만 원을 넘을 것이다. 감히 그녀가 넘볼 수 있는 드레스가 아니었다.물론 그녀는 백화점에서 산 몇백만 원의 드레스가 쪽팔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가 이후에 이런 행사에 자주 참여하려면 이런 고급스러운 전투복이 없이는 안 됐다.그리고 이런 맞춤 제작 드레스의 경우, 돈을 지불하더라도 디자이너에게 맞춤 제작을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클럽 밖에서, 전태연과 다른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렇게 쫓겨나니 전태연은 체면이 없었다. 전태연은 한 번도 이런 억울한 경우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
고세연의 번호는 지난번 강씨 가문의 본가에 갔을 때 저장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때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당시 먼저 연락처를 교환한 것은 고세연이었다. 전태연은 이 여자와 교집점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고세연 맞은편에 앉았는데, 얼굴에는 여전히 어둠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전 양, 아직도 저를 기억하시나요?” 고세연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전태연의 태도는 다소 냉담했다. “무슨 일인데요. 말씀하세요.”전태연의 멸시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고세연은 은근히 그것을 싫어했다.고세연이 서울의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시절, 전태연 이 꼬맹이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그녀는 강홍식과 강제로 결혼한 후에야 이름을 날렸다. 근데 지금 전태연이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있을 줄이야.고세연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얘기했다.“전 양, 방금 규진 도련님의 생일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이시죠. 저희 지찬이 봤어요?”전태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저희 지찬이요? 당신이 뭔데요?”고세연은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저든 강씨 가문과 결혼했으니 적어도 영감이 살아있는 한, 저를 건드릴 사람은 없습니다. 전 양, 당신은요?”전태연의 안색이 확 변했다.“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저는 당신의 헛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어요.”고세연이 말했다.“전 양이 저희 지찬이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저 역시 전 양이 지찬이와 완벽한 짝이라고 생각됩니다.”전태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날 돕고 싶다는 말이에요?”고세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도 알잖아요. 영감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 저도 반드시 동맹을 찾아야 강씨 집안에서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정유진과는 약간의 트러블이 있어요.”전태연의 가슴이 설레었다.한규진의 생일 파티는 아주 늦게까지 이어졌지만, 정유진은 오래 있지 않았다.강지찬은 그녀를 지엘 별장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서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회사의 기자간담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정유진도 아름다운 배경으로서 완벽한 역할을 했다.간담회가 끝난 후 강지찬은 정유진을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정유진은 그가 간담회에서 한 말을 생각하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 모든 일의 배후가 누구인지 이미 말고 있는 거죠?”강지찬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매우 깊었고, 아무도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누구를 암시하는지 이해했다.과거에 강지현을 언급하면 항상 강지찬이 짜증을 내고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곤 해서 정유진은 그가 또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이번에 강지찬은 화를 내지 않고 매우 평온했다.“아직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강지찬이 말했다.강지찬이 이렇게 큰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는 것이다.그의 신중한 행동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강지찬은 이 문제가 끝까지 조사되더라도 강지현에 대한 조사까지는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과거에 그는 강지현을 과소평가했다.그가 강지찬의 눈 밑에서 성원이라는 큰 회사를 키워냈다는 것만 봐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기자 간담회 후, 인터넷에서 강씨 가문의 회사에 대한 악의적인 댓글이 많이 줄었고 대부분의 네티즌도 강씨 가문이 다른 사람의 모함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후에 회사가 일련의 홍보 수단을 쓰고 부동산 매출은 현저히 좋아지는 추세를 보였다.정유진은 이 일을 통해 강씨 가문의 회사가 견뎌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지난번에 한규진의 생일파티에서 많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추가했지만 다들 별 소식이 없었다.지난 이틀 동안 사람들이 하나둘씩 시간 날 때 차라도 한잔하자면서 약속을 잡고 파티에 요청하기 시작했다.이것은 회사의 위기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이 시간 동안 정유진은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한 여러 학술 교류에 참여하는 등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또 국내에서 열린 주택 디자인 공모전에 초대되어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소미는 매우 놀라워
아직 9시도 안 되었고 저녁 식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유진은 강지찬을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3일 정도 출장을 갔다 오니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강지찬에게 정말 물을 한 병 건네주었다.최근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평화로웠고, 정유진도 그와 딱딱한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만약 계속 이렇게 서로 소통을 잘 한다면 언젠가는 이 사람도 생각을 마치고 그녀와 이혼을 하지 않을까?"몇 가지 요리 주문할게요. 뭐 먹을래요?"강지찬의 시선이 그녀의 목을 훑어보았다.상처는 흉터 없이 완전히 아물었다."장종현이 이미 시켰어. 바로 배송될 거야."알고 보니 그는 물을 마시러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 저녁 식사가 도착했다.강지찬은 평소처럼 테이블의 메인 자리를 차지하고 태연하게 식사를 시작했다."다음 주에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니까, 업무에 복귀하도록.""이미 다 처리한 건가요?"강지찬은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이 두 프로젝트는 내가 이길 건이 뻔해.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아직 수사하고 있어."이는 이전의 온라인 여론에 휩싸였던 사건이 일단락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강지찬은 식사를 마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청예로의 가로등은 말썽꾸러기 아이들에 의해 또 부서져서 등불 2개만 끈질기게 반짝거리고 있었다.여기 주변은 오래된 동네인데 어제 비가 와서 움푹 팬 도로에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한빈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차에서 내려 물웅덩이에 발을 디뎌 비싼 가죽 신발이 젖었다.“젠장, 이런 쓰레기 같은 곳이 있다니!”저주를 퍼부으며 그는 다시 차 문을 닫았다.볼캡을 쓴 남자가 골목에서 뛰어나왔다. 그 남자는 키가 크지 않았고, 구부정한 자세로 한빈보다 한 뼘 정도 작은 키로 서 있었다.“너 미친 거 아니야! 용산으로 오다니!”한빈은 얼굴에 혐오감이 가득 찬 채 분노에 찬 저주를 퍼부었다.볼캡을 쓴 사람은 원숭이처럼 생겨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저는 용산 사람이고 바로 이 뒤에 살아요. 한
“집에 돌아올 줄은 알아?”벽에 걸린 시계의 시간을 본 최신애는 더욱 화를 냈다.“지금 몇 시인지 좀 봐! 하루 종일 무엇을 하기에 점점 늦게 들어오는 거야?”하지만 오늘 심하게 취한 온유한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그저 눈앞의 사람이 귀찮다고 생각했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저 입은 벌렁거릴 때마다 섬뜩하게 느껴졌다.“누구야, 비켜! 막지 마.”운전기사는 제대로 서지조차 못하는 온유한을 붙잡으며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이 많이 취했으니 할 말이 있으면 내일 하세요.”최신애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화가 났다.“얘 오늘 어디 간 거야?”“최의현 도련님의 약혼식에 참석했다가 끝나고 에이프릴로 갔습니다.”“거기서 여태껏 술을 마셨다고?”“네...”최신애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얼른 방으로 데려가 눕혀... 아줌마, 내일 유한이에게 해장국을 끓여줘...”온유한을 방에 눕힌 뒤 최신애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갔다.일찍 잠이 든 온혁진을 본 최신애는 화가 치밀어 손바닥으로 때려 그를 깨웠다.“아들이 이 꼴인데 잠이 와요?”온혁진은 싫증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누가 이렇게 만들었는데?”“무슨 뜻이에요?”그 말에 화가 난 최신애는 모든 불만을 온혁진에게 쏟아냈다.“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당신, 아버지로서 유한이를 위해 한 게 뭔데요?”온혁진은 더 이상 잘 수 없어 침대에서 일어났다.“아들 일, 관여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언젠가는 온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텐데 평생 의사로 살 수는 없잖아. 왜 그렇게 유한이를 핍박하는 거야? 죄만 안 짓고 사고만 안 치면 상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당신도 신경 쓰지 마. 예전의 우리 아들이 아니라고.”하지만 최신애는 다른 일을 생각했다.“강씨 가문에서 투자를 회수한 후 임씨 가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유희가 3년째 유한이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우리 아들도 이제 서른 다섯이에요. 유희 집안에 정식으로 결혼에 대해 얘기해야 하지
최의현의 약혼녀도 서울에서 유명한 재벌 집 딸로 이 결혼은 가문에서 맺어 준 것이었다.여자는 단아한 외모의 전형적인 재벌 집 숙녀로 최의현의 전 여자친구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최의현 같은 남자가 평소에 아무리 날라리라고 해도 배우자는 절대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온유한이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최의현은 그가 안 오는 줄 알았다.“한참을 기다렸잖아. 네 자리는 지찬이 옆인데 괜찮지?”최의현은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응.”강지찬과 한규진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발견한 온유한은 본인 자리가 두 사람의 중간임을 알았다.정말 최의현다운 섬세한 배치였다.그 테이블로 다가간 온유한은 예전처럼 한 명씩 인사했다.“지찬아, 규진아, 은우야...”강지찬만 빼고 그의 인사를 다 받아줬고 온유한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한규진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요즘 뭐 해?”“별일 없이 바쁘기만 하지 뭐.”온유한은 말을 아꼈다.몇 년간 수술대에 서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병원은 다니고 있었다. 온혁진의 나이가 많아 온유한이 병원과 공장 양쪽 모두 돌봐야 했다.강지찬이 투자를 회수한 후 공장 건설이 하마터면 무산될 뻔했다.그러다가 최신애의 예상처럼 임씨 가문에서 투자를 한 덕분에 간신히 버텼다.다만 투자라는 것은 원래 접대도 많은 법, 온씨 부자는 매일 같이 각 투자자들을 접대했다.한규진이 온유한의 옆에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아가 곧 온대.”깜짝 놀란 온유한이 손을 심하게 떨었다. 그 바람에 술잔에 든 술이 쏟아질 뻔했다.몇 초 후, 그는 간신히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그래?”“서원준과의 관계를 명확히 발표한다는데 약혼하러 오는 것인지 모르겠어.”온유한은 계속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지아도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 시집갈 때가 되었지. 서원준 씨, 사람 괜찮은 것 같아.”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기에 옆에서 그 말을 들은 강지찬은 온유한을 흘겨봤다.약혼식이 끝난 후 온유한
“온 선생님, 제발요. 주임님이 의사를 데려오기 전에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구원 의사를 찾으러 온 젊은 간호사는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온유한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간 뒤, 전성호의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따라와.”전성호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응급실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오늘 대형 교통사고 때문에 응급실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모두들 바삐 돌아쳤다.온유한을 발견한 응급실 주임은 마치 구세주를 발견한 듯 눈을 반짝였다.“온 선생님, 잘 왔어요. 흉부를 수술해야 할 환자가 생겼는데 온 선생에게 맡길게요.”늙은 주임 의사가 피 묻은 장갑을 벗자 조수가 급히 새 장갑으로 갈아끼워줬다. 그러고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온유한은 전성호를 데리고 수술실로 향했다. 안에는 보조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온 선생님, 수술대에 설 수 있겠어요?”전성호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온유한이 3년 동안 메스를 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네가 같이해.”“네?”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두 사람은 손을 씻고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무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준비를 마칠 때까지 전성호는 온유한이 수술대에 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환자는 이미 마취한 상태로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며 모두가 온유한만 바라보고 있었다.온유한은 전성호를 보고 턱을 한 번 치켜들며 말했다.“이 수술은 네가 해.”“뭐라고요?!”전성호는 어안이 벙벙했다.“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주임님의 조수로만 해봤습니다.”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지금이 기회야. 환자의 상태를 봤는데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안 할 거야?”“저...”전성호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외과 의사라면 언젠가는 큰 수술을 집도할 수 있어야 했다.온유한이 3년 동안 퇴폐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가장 우수한 학생인 전성호는 진작 수술대에 섰을 것이다.“내가 옆에서 도와줄게.”온유한의 말에 전성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지만 이내 머리를
3년 후.밖에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새벽 한 시가 되기 전, 오늘은 그나마 이른 편이다.문이 열리더니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그림자가 보였다.하인이 얼른 가서 그의 손에 있는 차 키 등을 받은 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도련님, 사모님이 아직 안 주무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오늘 저녁, 온유한은 평소보다 덜 취했기에 아직 멀쩡한 상태였다.“어머, 온 여사가 나를 기다린다고?”비틀비틀 걸어간 온유한은 실크 가운을 입고 거실에 앉아 그를 노려보는 최신애를 발견했다.“온 여사님, 오늘 또 나를 혼낼 건가요?”‘온 여사'라는 말에 최신애는 화가 났다. 온유한이 강지아와 헤어지고 난 뒤로는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또 술 마신 거야? 온유한, 넌 서울에서 가장 젊고 유능한 흉부외과 의사였어. 기억나?”“의사?”온유한이 허탈하게 웃었다.“메스를 든 지가 언제인데요? 3년 전 일이에요.”몇 발짝 앞으로 다가간 최신애는 온유한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기억하고 있네?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게 공부해 놓고 여자 때문에 너 자신을 다 망치다니. 우리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이게 다 온 여사 덕분이잖아요?”온유한이 최신애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지아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요? 이제 다시 수술 못 하는데 그래도 지아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최신애는 가슴이 아팠다.“너 정말! 나에게 복수하려고 일부러 너 스스로를 망친 거야? 미쳤어?”“아니요! 미치지 않았어요!”온유한은 희미하게 떨리는 그의 왼쪽 손을 최신애에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아주 멀쩡해요. 그 어느 때보다 멀쩡하다고요. 아들이 이런 모습이어도 잘난 척할 건가요?”‘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최신애가 온유한의 뺨을 후려갈겼다.“개자식, 나 약 올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온유한은 아무 말 없이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갔다.3년이 지났다.그 사이 강지아는 여러 번 돌아왔지만 온유한을 만나주지 않았다.처음에는 미친
강지아는 상처가 다 낫기도 전에 급하게 떠났다.작업실의 문은 닫지 않았지만 국내 업무는 모두 직원들에게 맡겼다. 그녀는 온라인으로 중요한 결정만 했다.“혼자 떠났고 서원준은 가지 않았어. 지찬이와 형수 외에는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넌 못 들었지?”최의현에 말에 온유한이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못 들었어.”전화를 끊은 온유한은 한참 동안 멍해 있었다.며칠 전 강지아에게 계속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전화 연결이 안 되었고 메시지도 발송이 안 되었다.강지아가 그를 차단했던 것이다.한참 생각하던 온유한은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를 본 의사와 간호사는 깜짝 놀랐다.“온 선생님, 다리 괜찮아요? 저렇게 뛰면...”“무슨 일이지? 온 선생님 표정이 너무 무서워.”정유진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할 때 하인이 들어와 온유한이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다.이내 모직 코트 안에 흰 가운을 입은 온유한이 정유진 앞에 나타났다.“형수님, 지아를 만나게 해주세요.”정유진이 한숨을 내쉬었다.“이미 간 걸 알면서 왜 여기까지 온 거예요...”온유한은 아픈 다리 때문에 땀범벅이 되었다.“진짜로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정유진은 온유한의 다리를 힐끗 본 후 말했다.“하지만 확실히 갔어요. 일단 저녁 먹고 병원에 다시 가세요.”온유한은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계속 물었다.“왜 떠나는데요?”정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디 간 거예요?”정유진이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온유한이 혼자서 중얼거렸다.“나를 못 믿겠다고 했던 말이 사실이었네요. 서울로 돌아가면 바로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는데 안 믿었어요.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진짜로 나랑 헤어지자는 것일까요?”정유진은 넋이 나간 온유한을 보고는 정명학에게 눈짓을 했다.정명학은 앞으로 걸어 나와 온유한을 잡아당겨 식탁에 앉혔다.“지아가 바람 쐬러 나갔다고 생각하고 일단 밥부터 먹어. 밥을 먹고 나서 병원에 가서 다리부터 다시 검사
서원준이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 강지아는 2층 창문에 서 있었다.그 모습을 본 서원준은 일부러 한마디 했다.“그만 봐, 서울로 올라갔으니.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봐. 효자 노릇 하러 갔어.”창가에 가만히 서 있던 강지아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서원준, 밖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싶어.”서원준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한편, 온유한이 서울로 돌아왔을 때 최신애는 이미 태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혈압 때문에 쓰러지면서 건물에서 떨어져 발목을 삐끗했고 골반 뼈가 부러졌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임유희가 그녀의 병실에 함께 있었다. 온유한은 병실에 들어오기도 전에 두 사람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온유한이 코트를 손에 든 채 무표정한 얼굴로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유한 오빠, 왔어요?”임유희가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고 최신애도 마음이 뿌듯했다.시간을 계산해보니 그녀가 다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온유한이 달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이 말인즉슨 친정엄마에게 일이 생기면 강지아도 제쳐두고 달려온다는 것이다.“거기 서서 뭐 해, 다리가 아직 안 나았잖아. 무리하지 말고 와서 앉아. 밥은 먹었니?”최신애의 말에도 온유한은 꼼짝달싹하지 않았다.웃고 떠드는 최신애를 보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장 주임에게 상태가 어떤지 물어볼게요.”말을 마친 온유한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병실을 나가자 최신애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유희야, 봤니? 내가 미워서 저래.”최신애는 임유희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내가 너희들을 맺어주려고 온씨 가문 사람들의 미움을 샀어. 나중에 우리 온씨 가문에 들어오면 이 시어머니께 효도해야 한다.”그 말에 임유희의 볼이 빨개졌다.“어머니. 유한 오빠가 어떻게 어머니를 미워할 수 있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오빠도 돌아왔으니 제가 더 노력할게요.”“역시 똑똑한 유희, 너무 마음에 들어.”최신애는 흡족해했다.최신애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온유한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온 선생님이 또 오신 것 같아요.”동하민이 강지아가 듣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정유진에게 말했다.“오지 말라고 전해, 지아는 만나지 않을 거야.”“네.”문에 기대어 서 있는 온유한은 며칠 만에 살이 쏙 빠진 모습이었다.“온 선생님, 대표님이 온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동하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유한은 그녀를 밀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마당의 나무 아래에서 앉아 쉬고 있는 강지아를 덥석 껴안았다.순식간에 몸이 굳어진 강지아는 코끝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를 맡고는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지아야, 나도 이쪽에 집을 하나 샀어. 너만 괜찮으면 내가 여기에 와서 너와 같이 살게. 어때?”“이거 놔!”온유한은 강지아가 몸부림칠수록 더 꽉 껴안았다.깜짝 놀란 동하민은 얼른 다가와 온유한을 잡아당겼다.“온 선생님, 대표님 상처가 아직 다 안 나았어요. 자극하지 마세요!”온유한은 동하민의 말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네가 일부러 기억 잃은 척한다는 거 알아. 지아야, 나 진짜로 임유희와 아무 일도 없었어.”강지아는 몸부림을 멈추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뭐? 이제 와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빠 어머니에게 그렇게 많은 수모를 당했는데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오빠와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우리 어머니는 어머니이고 나는 나야!”온유한이 다급히 소리쳤다.“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나에게 벌을 주지 말아줘.”“그건 오빠 엄마야!”강지아의 말에 온유한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강지아를 품에서 놓아주었다.“그래서 우리 엄마 때문에 지금 나 쳐다보기도 싫은 거야?”강지아가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말했다.“온유한, 이러면 우리 서로만 괴로워. 그만하자.”“하...”온유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네 마음속에 나와 함께 있는 게 괴로운 거였구나.”강지아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죠?”이때 멀리서 온유한을 발견한 서원준은 그와 싸우기 위해
온유한을 바라보는 강지아의 눈빛은 아주 낯설었다. 마치 눈앞의 남자를 정말 모르는 듯했다.다른 사람들도 강지아가 정말로 기억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몰라 서로만 쳐다보았다.“지아야, 이러지 마.”온유한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강지아가 온유한에게서 손을 빼더니 정유진을 향해 말했다.서원준은 온유한의 멱살을 움켜쥐더니 밖으로 끌고 나갔다.“봤어요? 지아는 그쪽을 기억하지 못해요.”온유한은 의사를 찾으러 갔다.“기억 상실이라고요?”베테랑 의사가 안경을 위로 밀며 말했다.“기억 상실일 리가 없을 텐데...”MRI 사진을 들고 온유한과 한참을 얘기한 베테랑 의사가 한마디 했다.“이상하네요. 진짜로 기억을 잃었다고요?”온유한은 바로 알아챘다.기억 상실이 아니라 그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강지아가 깨어나자 강지찬은 서울로 올라갔고 정유진과 그녀의 엄마 아빠가 이곳에 남아 강지아의 병간호를 했다.온미정과 백무영은 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여행을 갈 예정이었지만 강지아의 사고로 일정을 취소했다.온미정도 신혼여행 갈 기분이 아니었기에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와서 이삿짐을 정리했다.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사이다. 모든 물건을 차에 실어 온혁진의 집에 있던 그녀의 물건을 모두 정리했다.“새언니가 잘못했다고 해서 굳이 집을 나갈 필요는 없잖아?”온혁진의 표정은 보기 안 좋았다. 서울로 올라온 후, 강지찬은 투자를 빠른 속도로 회수하기 시작했다.정유진과 친한 온미정이었는데 이젠 온미정이 이사를 갔으니 강씨 가문과 사이좋게 지낼 사람마저 없어졌다.온미정은 최신애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나에게 새언니 따위는 없어요. 나는 나를 바보 취급하는 사람을 제일 증오해요. 그런데 최신애는 나를 바보 취급했을 뿐만 아니라 내 감정을 이용했어요. 이런 정신 나간 미치광이를 더 이상 내 새언니로 인정할 수 없어요.”물건을 차에 다 실은 뒤 온미정이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유한이 좀 더 지켜봐 주세요. 나보다 백배는 더 힘들 거예요. 그
꿈은 정말 깨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강지아와 같이 웃으며 놀았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깨어난 온유한은 호텔에 누워있는 자신이 현실로 돌아왔음을 느끼고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유한 오빠, 깼어요?”침대 옆에 엎드려 밤새도록 그를 지켰던 임유희도 깼다.온유한은 그녀의 목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배고프죠? 아침 식사를 가져오라고 할게요.”“꺼져.”임유희는 아무 말 없이 뜨거운 물 한 잔 따라 놓고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호텔 직원이 아침 식사와 해장국을 가져다주었다.온유한도 먹지 않은 채 또 한참을 누워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거울을 보니 눈두덩이가 움푹 패였고 수염이 길게 나 있어 아주 초라해 보였다.온유한은 수염을 깎고 머리를 정리한 후 옷을 갈아입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강지아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상태였다.늦은 시간, 병원에는 정유진과 온미정 그리고 화령이 강지아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화령은 일 때문에 최금성과 같이 온미정의 결혼식에 오지 못했다. 그런데 강지아에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세 여자는 온유한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유한도 주위 사람을 못 본 듯 곧장 강지아의 침대 옆으로 가더니 강지아의 손을 잡았다.보다 못한 온미정이 나가서 죽 한 그릇을 사 왔다.“와서 일단 밥부터 먹어.”온미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온유한은 강지아만 뚫어지게 바라봤다.그 모습에 온미정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이런 꼴로 곁에 있으면 지아가 마음을 돌리겠어? 지아는커녕 나도 널 용서 못 해.”온미정은 화가 났지만 혹시라도 강지찬이 올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대신 온유한의 팔을 잡고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어. 굶어 죽고 싶은 거야?!”온유한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굶어 죽으면 용서해 줄까요?”온미정은 이 자식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바로 이때 병실에 들어온 강지찬과 서원준이 강지아의 손을 잡고 있는 온유한을 발견했다. 서원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