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수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피융! 피융! 피융!거의 찰나의 순간, 김예훈은 모든 총알을 피해 오른손으로 용천수의 뺨을 때렸다.쨕!용천수는 눈앞이 어두워질 정도로 고통을 느끼며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한 방에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이런 제기랄!”입가에서 피가 흐르는 용천수는 뒤로 물러나면서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피융! 피융! 피융!수십 발 후에 드디어 빈 탄환의 소리가 들려왔다.이때 김예훈은 이미 무표정으로 용천수 앞에 도착해 있었다.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류서우가 이때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도련님! 조심하세요!”용천수는 김예훈이 계속 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주머니에서 다른 총을 꺼냈다.하지만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김예훈이 발로 차버렸다.피융!총알은 방향을 잃고 그만 용천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눈깜짝할 사이에 용천수의 왼쪽 귀도 반쪽이 날아갔다.“악!”잠시 멍해 있던 용천수는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식은땀을 흘렸다. 얼굴마저 일그러져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자기 총으로 거의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그는 한순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래도 용씨 가문 도련님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기 다행이지, 아니면 지금쯤 이미 겁에 질려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이 모습은 주위 남녀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남자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잘못 본 줄 알았고, 여자들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이들은 김예훈처럼 주제 파악할 줄 모르는 사람이 괴롭히는 당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다.그런데 오히려 용천수가 크게 다쳐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충격이 얼마나 큰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들은 오직 용천수 같은 도련님만이 김예훈 같은 찌질이를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찌질이가 반격하는 모습은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이순간 이들은 김예훈이 극도로 미웠다.“총 재밌어? 용문당 사람으로서 검을 연습하
“도련님을 건들지 마!”“함부로 했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야”!얼마 남지 않은 집법부대 제자들이 한 번에 달려왔다. 이들은 용천수가 죽으면 자신의 운명도 끔찍해질 것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용천수를 보호하던 그 세 명도 힘겹게 일어나려 했다.문 앞에 버려진 류서우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모든 집법부대 정예 제자들은 전부 추문성에게 당해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밖에서는 이미 용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가운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딱봐도 추하린의 사람들이 온 것이다.이 모습에 류서우는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만약 김현민의 사람들이 왔다면 어느정도 희망이 있었겠지만 진주·밀양 용전 사람들이 왔다는 것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김예훈이 용천수의 목덜미를 짓밟고 이마에 총을 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화가 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김예훈! 무슨 자격으로 도련님을 해치는 건데. 도련님은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님의 아들인 것도 모자라 대한민국 10대 명문가인 용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도련님을 건드리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아?”여자들은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아까 그 어르신도 일어나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말했다.“김예훈, 지금 네가 뭘 하는지나 알아? 외적과 내통한 죄도 있는데 도련님을 해친 것으로 죄가 더 엄해질 거야. 이제는 용문당 당주님이 오셔도 널 구하지 못해. 넌 이제 죽었어. 내일 집법부대 당주님께서 진주·밀양에 오는 건 알아?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죽을 준비나 하고 있어.”용천수의 부하들은 김예훈의 실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집법부대 당주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진주·밀양을 관리할 집법부대 당주는 안동 김씨 가문과도 아주 아까운 관계였다.진주·밀양 사람들은 그를 발 벗고 맞이할 것이다.용천수를 건드리는 것은 집법부대는 물론 안동 김씨 가문과도 맞서는 것이다.그야말로 죽고 싶어서 환장한 짓이었다.이때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류서우도 한껏 기세등등한 말투로 말했다.“김예훈, 계속 고집부리지 마. 아니면 반드시 후회할 거니까.”아까 어르신은 핸드폰을 꺼내 영상통화 화면을 보여주었다.화면 속 엄숙한 얼굴은 바로 전설 속의 용문당 집법부대의 당주인 용태웅이었다.용태웅은 진주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듯 김예훈을 엄숙하게 쳐다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김예훈, 난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이자 용씨 가문 제13대 수장이야. 내 신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네가 전에 일본의 불만을 사고 남양인과 결탁한 일을 이미 누가 나한테 신고했어. 진주에 내 아들을 보낸 것도 네가 계속 잘못된 길로 갈까 봐 막으려는 거였어. 그래서 지금 명령하는데 내 아들을 풀어주고 내 아들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 아니면 진주에 가자마자 내가 너를 직접 죽일 거야. 네가 죽더라도 너와 관련된 모든 사람마저 모조리 없앨 거라고.”용태웅은 나이를 믿고 꼰대처럼 말했다.“내가 한 말, 지금 바로 실행해. 내 아들을 놔주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용태웅 당주님이시라고요?”김예훈은 배시시 웃으며 화면을 쳐다보았다.“사람을 풀어주는 건 문제 될 거 없어요. 언제든지 풀어줄 수 있는데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용문당 제자가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고 성희롱까지 하면 용문당 규칙에 따라 어떤 벌을 받아야 하죠?”“이게 네가 간섭할 일이야? 네가 누군데. 집법부대 당주라도 되는 줄 알았어? 장관회의 인정도 받지 못한 그저 부산 회장인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를 의심해.”용태웅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나는 그저 네가 일본인과 동문을 해치고 남양파와 결탁한 죄밖에 몰라. 지금 사람을 풀어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어야 할 거야.”김예훈은 여전히 의미심장하게 용태웅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당주님께서 대답하기 싫으시다면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게요.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 성희롱이 어떤 벌을 받아야하는지 알고 있는 분이 있다고 생각해요.”“용문당 규칙에 따르면 이 죄를 범했을 때 가벼운 경우에는
총성이 울리면서 용천수의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이때 주위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주위 사람들은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용천수가 이렇게 쉽게 김예훈의 손에 처리당할 줄 몰랐다.용천수가 처리되고, 이어 추문성의 손짓하나에 진주·밀양 용전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현장을 진압했다. 그리고 몇몇 장병급 인물들도 잡아 천옥으로 호송했다.김예훈은 처음부터 용태웅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없었다.용문당 집법부대에서 자꾸만 먼저 김예훈을 도발했고, 김예훈도 집법부대 제자들을 그렇게나 많이 죽였는데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장관회와 용문당 당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김예훈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저 집법부대가 이렇게 법을 무시하고 하고싶은대로 해서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강씨 가문에서는 강준과 강서연을 데려갔고, 진주·밀양 용문당 회장의 권력을 김예훈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그래도 애제자들을 데려갔다.이 사람들은 강씨 가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보였다.추씨 가문, 허씨 가문과 동씨 가문은 원래부터 진주·밀양의 가족 세력으로 알아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아무리 내일 용태웅이 진주에 군림한다고 해도 용문당 내부의 일이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칠 리가 없었다.김예훈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전문 인원이 용문당 도관을 다시 깨끗이 청소한 후에야 뒷마당에 있는 정원에 가서 앉았다.그는 차를 마시면서 멀리 있는 빅토리아 항구 야경을 유심히 쳐다보았다.내일 용태웅이 온다고 하니 진주·밀양에 먹구름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유독 김예훈만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는 유유자적 차를 마시며 간만의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도련님, 내일 용태웅 당주님이 찾아올 건데 전혀 두렵지도 않으세요?”바로 이때, 뒤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다.이어 우아한 그림자가 나타나 김예훈 곁으로 다가와 빅토리아 항구의 야경을 감상했다.김예훈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추하린인 것을
김예훈은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기만 했다.“이런 쓰레기들은 오는 대로 다 죽여버릴 거예요.”추하린은 표정이 변하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려면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드리고 싶었어요. 내륙으로 돌아가면 용태웅 당주님께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겠지만 일본 야마구치파 검신, 그리고 일본 무신인 미야다 신노스케는 그러지 못할 거예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오늘 집법부대를 평정하고 용천수를 죽였는데 이대로 도망치라고요? 그러면 제 체면이 뭐가 돼요.”추하린은 고개를 흔들었다.“도련님께서는 평범한 분이 아니시기에 생사 앞에서 체면 같은 건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확신이 없으시면 떠났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걱정된다면 얼마든지 진주·밀양 용전을 포기하고 함께 떠날 수 있고요.”추하린은 모든 용기를 다 해서 이 말을 꺼냈다.그녀의 차가운 얼굴은 은은하게 빨개지기 시작했다.분명 얼음장처럼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이웃집 누나처럼 수줍음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김예훈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제가 내일 패배해서 죽을까 봐 걱정인 거예요? 그래서 저를 떠나게 하려고 저한테 몸을 바치겠다는 거예요?”“도련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작은 마누라를 해드릴 수 있어요.”그녀의 눈빛은 부드럽기만 했다.하지만 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됐어요. 이런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아요. 제가 집법부대에 도전장을 내밀고 일본 야마구치파를 건드렸을 때부터 이날이 올 줄 알았어요. 정말 저를 도와주고 싶다면 미야다 신노스케와 용태웅의 계획을 철저히 조사해 주세요. 여기서 가만히 있긴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게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김예훈은 원래 이런 것들을 알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추하린에게 이런 거라도 시키지 않으면 부하들 걱정에 더 긴장하고 두려워할 것이 뻔했다.김예훈의 말을 듣고 추하린은 그제야 고개를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라는 사람이 일본인과 은밀히 거래하면서 저에게 내통죄를 뒤집어씌우다니.”김예훈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 점만으로도 반드시 죽어야 할 목숨이에요. 그 사람이 안 죽으면 용문당에 얼마나 많은 남자가 이런 파렴치한 사람한테서 피해를 볼지 몰라요. 미야다 신노스케라는 사람은 일본 무신이자 야마구치파 검신이면 저를 괴롭히는 것도 정상이에요. 제가 먼저 야마구치파의 좋은 일을 망쳤으니까요. 원래 시간 나면 일본에 가서 야마구치파 패쪽을 부수려고 했는데 제 발로 찾아온다고 하니 힘을 아낄 수 있겠네요. 가끔은 이 일본인들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거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어요. 아무튼 저를 찾아오는 사람은 한 명도 빠져나갈 수 없을 거예요.”김예훈의 담담한 말에 추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아, 맞다. 다른 소식도 있어요. 대한민국 몇몇 무술 성지에서도 내일의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오륜 사찰을 선두로 많은 젊은 층들이 관전하러 올 거예요. 앞장서는 사람은 오륜 사찰의 선재 스님이라고 도련님도 아실 거예요. 그 외에도 일본 6대 파벌도 대표를 보낸다고 해요. 전해진 바에 따르면 야마자키파 아마미네 다이토가 직접 사람을 이끌고 올 거래요. 이 사람은 야마자키파 아마미네 토시로의 아들이거든요. 아버지한테서 80%의 실력을 물려받았다고 하는데 단순히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 소위 심판 역할을 하려고 할 거예요. 미야다 신노스케와의 대결을 지켜보려고 하는 거죠.”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언제부터 제 일에 무술 성지에서 심판 역할을 했다고 그러세요? 시비 걸러 오는 것이 아니고요? 그리고 야마자키파 아마미테 토시로는 맨날 저를 죽이겠다고 하더니 자기가 직접 안 오고 아들을 보낸대요? 뭐 하려는 건지.”추하린은 고개를 흔들었다.“도련님, 이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당주님이 초대해서 그런 걸 거예요. 집법부대 당주이자 용씨 가문 제13대 수장이잖아요. 용문당이나 용씨 가문에서 모두 엄청난
김예훈이 오늘 저녁 미리 남양회관에 온 것은 양상철의 체내에 있는 극야한독을 완전히 해결해 주기 위해서였다.이것을 해결해 주면 히든카드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었다.비록 김예훈은 용태웅이 두렵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단단히 준비했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면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었다.이순간 그는 쓸데없는 말을 건너뛰고 담담하게 말했다.“저를 안으로 안내해 주시죠.”양유선도 아무 말 없이 김예훈을 데리고 그때 그 남양풍의 마당으로 향했다.양유선은 문을 열고 부드럽게 말했다.“할아버지, 김예훈 도련님께서 오셨어요.”김예훈은 양상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방안에는 독기가 가득했지만 예전처럼 극야한독은 없었다.이 밖에도 주변에는 마치 잠자고 있던 사자가 깨어나려는 것처럼 전투의 기운이 감돌았다.김예훈은 속으로 의아하기만 했다.그는 남양무신인 양상철이 조금만 회복했는데도 무신의 풍채를 다시 갖출 줄 몰랐다.이 점에서 봤을 때 그를 살려줄 수만 있다면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도련님, 오셨어요? 어서 와요.”양상철은 상태가 나빴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많이 회복한 상태였다.이제는 혼자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김예훈이 오자 그는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김예훈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르신은 정말 제 예상 밖이네요. 최소한 6박 7일은 지나야 지금 이 상태로 회복할 줄 알았는데 고작 3일밖에 걸리지 않았네요.”양상철은 중독되기 전에 실력이 어마어마해서 무신 중에서도 최상위인 것이 틀림없었다.아니면 이렇게 빨리 회복될 수가 없었다.비록 자신이 독으로 독을 물리치라고 했지만 이제와서 보니 특효약이었다.그런데 양상철이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내고 심지어 그 과정을 가속했다는 것은 김예훈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보아하니 오늘 헛걸음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몰랐다.“다 도련님 덕분이죠. 만약 도련님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오래 버티지도 못했을 거예요.”양상철이 솔직하게 말했다.김예
“용태웅 이 사람들은 그냥 광대일 뿐이에요. 사람을 데리고 온다는 데 저도 체면이 있지, 제 편을 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하게 말했다.멈칫하는 양유선과는 달리 양상철은 박장대소를 지었다.“도련님 성격이 점점 더 마음에 드는데요? 사내라면 바로 이래야죠. 할 건 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고. 숨기고 감추는 비겁한 자식보다는 낫죠. 도련님께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저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게요. 오늘 잠 도련님이 제 몸 안의 독소를 말끔히 제거해 준다면 그러면 그 순간부터 도련님 일은 제 일이나 마찬가지예요.”기다리던 말을 들은 김예훈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양유선에게 미리 준비해둔 독극물을 끓여서 가마솥에 넣으라고 했다.가마솥 밑에 있는 장작이 활활 타오르면서 검은 거품이 하나씩 올라오며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 구역질이 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는 양상철의 몸을 꼼꼼히 확인한 후 양유선에게 수술용 기구를 몇 세트 가져오라고 했다.밤 12시가 되었을 때,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김예훈은 직접 양상철을 일으켜 그를 가마솥에 놓고는 명령했다.“앞으로 두 시간이 제일 중요해요. 유선 씨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서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방해받는 순간 모든 것이 수포가 될 거예요.”김예훈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제어불능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독이 역류할 가능성이 있었다.그렇게 되면 독소를 제거하기는커녕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김예훈의 심각한 얼굴을 보자 양유선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할게요.”양유선은 열몇 명의 신뢰할 수 있는 부하들을 불러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마당을 지키게 했다.그녀 역시 방 문을 지키고 서서 긴장한 얼굴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은 수술칼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서두르지 않고 양상철의 몸이 독액에 잠기도
퍽.김예훈이 손가락을 튕기자 육민준이 손에서 놓쳤던 검이 다시 날아와 그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스쳤다.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유라시아 전쟁 시기 천문재에서 사람을 지원한 점을 봐서 죽이지는 않을게. 그런데 두 번 다시 봐주는 일은 없을거야.”육민준은 식은땀이 삐질 나고 말았다.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평온한 김예훈을 보며 육민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병신. 병신같은 자식.”그제야 반응한 선재 스님은 날아간 육민준을 보며 싫증난 표정을 지었다.‘능력도 없으면서 괜히 나서서 망신시켜.’선재 스님은 김예훈을 힘껏 짓밟아 주기 전까지는 체면을 되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구민욱 도련님께서 직접 나서야겠어요.”선재 스님은 사람 무리 중에 유일하게 태연해 보이는 한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이 청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면서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제가 나설 수는 있지만 오늘 이후로 저희 구씨 가문은 오륜 사찰에 지은 빚이 사라지는 거예요. 제가 이 광대 같은 자식한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줄게요.”구민욱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나서려고 할때, 도관 입구에 토요타 센추리 몇 대가 멈춰 섰다.운전하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은 전부 용문당 집법부대 제자들이었다.가운데 차량의 뒷문을 열자 백발에 기모노를 입은 일본 노인이 차에서 내렸다.노인은 네모난 얼굴형이었고, 입고있는 기모노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허리춤에 긴 검과 단검을 차고 있었지만 영락없는 평범한 노인으로 보였다.그의 뒤에는 차가운 표정의 중년 남성이 서 있었고, 딱봐도 심상치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용태웅은 멀리서부터 그들을 발견하고 멈칫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선재 스님, 조금만 진정하세요. 미야다 신노스케와 아마미네 다이토가 왔네요. 저희 지금 나설 필요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검신이 왔는데 이따 김예훈은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를 거예요.”미야다 신노스케는 일본 야마구치파 검신이었다
육민준이 검을 꺼내는 순간,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그는 마치 영웅이라도 된 듯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육 도련님, 너무 멋있어요. 얼른 저 찌질이 같은 자식을 죽여버려요!”“선재 스님의 뺨을 때리다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육 도련님이 검을 빼내면 얼마나 무서운데.”무술 성지 출신들이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따라서 자신감이 폭발한 육민준은 눈깜짝할 사이 김예훈 앞에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샤삭.검에서 빛이 반짝이면서 검술의 기본기가 드러났다.용문당 집법부대 제자들은 검을 보는 순간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용태웅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김예훈, 육 도련님 공격도 예상하지 못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건드린 거야?”“전에 그렇게 거만할 수 있었던 것도 진정한 고수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거겠죠.”선재 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무술의 성지 천문재는 대한민국 서남 지역 일대의 강자인데 얼마나 많은 명문가에서 천문재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알아? 서남 지역에서 천문재의 지위는 우리 오륜 사찰이 경기도 지역에서의 지위와 비슷하기도 해. 그리고 육민준 도련님은 육씨 가문의 상속자인 거고. 검술을 18년이나 수련해서 검으로 바위도 쪼갤 수 있는 분이야. 김예훈, 네가 엄마 배 속에서부터 무술을 수련했다 해도 육 도련님의 상대가 될 수 없어.”용태웅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건 너무 가벼운 벌칙 아닐까요? 미야다 신노스케도 괜히 헛걸음하는 거잖아요.”한 무리의 사람은 일대 검신의 실력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쨕!바로 이때, 육민준이 검을 앞으로 뻗자 차를 마시고 있던 김예훈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의 뺨을 때렸다.아까까지만 해도 잘생겨 보이던 육민준의 얼굴은 그대로 일그러지고 말았다.퍽!수십 미터 밖으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힌 그는 힘없이 스르륵 바닥에 떨어졌다.“실력이 겨우 이것밖에 안 돼?”김예훈이 무관심한 표정으로 말했다.“나올 사람 또 없어? 다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분명 말씀드렸는데 잘 못 들으셨다면 다시 한번 말할게요. 이 관은 당주님이 미야다 신노스케라는 사랑이랑 사용하세요. 당주님 같은 매국노는 일본 주인과 함께 누울 수 있는 것이 가문의 자랑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너!”김예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선재 스님을 쳐다보았다.“성녀님이 직접 와도 내 앞에서는 아무런 체면도 없는데 네까짓 게 뭐라고. 김현민 시중이나 잘 들어. 여긴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니까 썩 꺼져.”“이 자식이!”백옥처럼 순전 무결하다고 소문난 선재 스님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김현민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 맞지만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김예훈, 내 명예를 훼손한 것도 모자라 김현민 도련님의 이미지마저 망치려고? 죽고 싶어? 전화 한 통이면 네가 바짝 엎드려야 하는 거 몰라?”“그렇게 대단해?”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했다.“그럼 전화해 봐. 과연 나를 바짝 엎드리게 할수 있는지 보게.”“너...”선재 스님은 부들부들 떨면서 핸드폰을 꺼내 성녀의 번호를 누르려 했지만 이깟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꾸중을 들을까 두려웠다.“왜. 못하겠어?”김예훈은 덤덤하기만 했다.“겁이 나서 못 할 거면 꺼져. 넌 내 앞에서 거들먹거릴 자격도 없어.”“너!”선재 스님은 여전히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바로 이때, 도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타나 담담하게 말했다.“선재 스님, 그렇게 화내실 필요가 뭐가 있어요. 기껏해야 저희 무술의 성지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하층 인물인 것 같은데. 저 육민준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자기 주제를 모르는 놈이에요. 손을 대봤자 제 손만 더러워지니까요. 그런데 선재 스님을 위해서라면 제가 기꺼이 본때를 보여드리죠.”이 모습에 육민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육민준 도련님, 이런 하층 인물은 반드시 혼내줘야 정신을 차려요.”“감히 우리 무술의 성지를 무시하다니. 죽고 싶어?”“육민준 도련님, 절대 봐주지 마세요. 저
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선재 스님을 쳐다보았다.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그녀가 이번에 나타난 것은 김현민이 시킨 짓인 것을 알수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각 무술 성지의 대표인 것 같았다.이들은 단순히 관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심판 역할까지 하려고 했다.그래서 김예훈도 별로 좋지 않은 태도로 담담하게 말했다.“선재 스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당주님이 관을 가져와서 저희 온 가족은 물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마저 관에 처넣겠다고 하는데 제가 왜 사과해야 하는데요? 아예 머리까지 박으라고 하시죠?”“그거랑 그거랑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네가 일본인을 건드려서 검신이 복수하러 오는 거 아니야. 당주님은 네가 같은 대한민국 사람인 걸 봐서 특별히 좋은 목재로 관까지 만들어줬는데 감사한 줄도 모르고 뭐하는 짓이야. 대한민국은 너같이 무례한 사람이 많아서 수준 낮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선재 스님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그때 타케이 나오토의 온 가족을 죽일 때는 오늘이 다가올 줄 몰랐어? 네가 뭔데. 경기도 김 세자? 용문당 회장? 웃기지 마. 그깟 실력으로 일본인을 건드리다니. 야마구치파 검신이 온다고 했으니 넌 이제 죽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미야다 신노스케가 정말 제 상대가 될 거로 생각하세요?”“뭐라고?”선재 스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김예훈,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미야다 신노스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해? 말도 안 돼. 내가 말해주는데, 미야다 신노스케의 공격을 한 번만이라도 피할 수 있으면 내가 무릎을 꿇을게. 자신감 있는 건 좋은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자신을 해칠 수도 있어.”선재 스님은 한껏 가소로운 표정으로 전에 김예훈 때문에 겪었던 수치심을 거리낌 없이 되갚아 주고 있었다.“마지막으로 기회를 죽게.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큰코다칠 거야.”선재 스님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번에 오륜 사찰을 대표해서 관전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김예훈은 물론 진주·
용태웅의 손짓에 뒤에 있던 집법부대 제자들이 차량 뒷좌석에서 관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김예훈, 잘 봐. 이건 내가 너를 위해 직접 제작한 관이야.”용태웅은 한껏 음산한 말투로 말했다.“네가 죽으면 내가 직접 관에 넣어서 경기도와 부산을 다녀올 거야. 너의 아내를 포함한 온 가족도 죽여서 안에 넣으려고. 너의 조상님 무덤까지 파내서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함께 파묻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다음 생에 다시 환생할 수 있게 풍수 좋은 곳에 묻어줄 테니까. 하하하하. 네가 감히 나 용태웅의 아들을 죽여?”이 순간 용태웅은 이미 감정조절이 안 되어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용태웅이 이 정도로 화내는 것을 처음 본 집법부대 제자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김예훈은 차를 한 잔 따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오늘 돌아가실 필요가 없겠네요. 오늘 이 관에 매국노인 당주님과 일본 검신이라는 사람을 같이 묻으면 되겠네요. 이런 대우에 만족하실 거라고 믿어요.”김예훈은 찻잔을 들어 천천히 향을 음미했다.“이런 제기랄! 감히 우리 당주님께 무슨 말버릇이야. 누가 너한테 이런 용기를 준거냐고.”바로 이때, 벤츠 G클래스 몇 대가 도관 앞에 멈추더니 한 무리의 남녀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심상찮은 포스를 풍겼다.이들은 다른 재벌 2세와는 다르게 뒤를 따르는 보디가드가 없었고, 세상을 많이 경험해 본 것처럼 허리춤에 보석이 박힌 총과 검을 지니고 있었다.가장 앞장서있는 여자는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 가느다란 허리라인이 돋보였다.이 사람은 바로 경기도 무술의 성지인 오륜 사찰의 선재 스님이었다.이번에는 선재 스님이 오륜 사찰을 대표해서 온 것이다.그녀는 돌계단 위로 올라가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말했다.“김예훈, 전에 허씨 가문에서 네가 귀신 놀이를 할 때도, 오륜 사찰 경매회에서 제멋대로 행동할 때도 우리 성녀님께서 대인배라 가만히 있었는데 어떻게 용문당 집법부대 용태웅 당주님께 무례를 범할 수 있어. 위아래도 없이. 명령하는데 지금 당장 무릎
“당주님,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김예훈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주위 온도가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 으스스해지기 시작했다.“이런 제기랄! 당주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감히 당주님 앞에서 거들먹거려? 죽고 싶어?”“전체 용문당에서 우리 당주님이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인 거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야.”“당주님께 누명을 뒤집어씌우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한 무리의 용문당 집법부대 정예 부하들은 격노하며 김예훈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집법부대가 생기고부터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항상 그들이었는데 오늘 김예훈이 되려 용태웅에게 뒤집어씌울 줄 몰랐다.부하들은 이대로 참을 수가 없었다.“김예훈, 대단한데? 조금 실력을 갖춘 것도 모자라 말솜씨도 장난 아닌데?”용태웅은 혈압이 솟아오르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진정해 보려고 했다.“그런데 그래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거야. 네가 일본 야마구치파의 귀인을 잔인하게 살해해서 검신 미야다 신노스케가 이미 진주에 도착했어. 너를 산산조각 내버릴 거라고.”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직접 찾아와서 제가 힘을 아낄 수 있을것 같네요. 직접 일본까지 가서 죽이기에는 시간과 돈이 아까웠는데 어떻게 보면 당주님이 좋은 일을 하신 거나 다름없네요.”“너!”용태웅은 김예훈의 거만한 말투에 천불이 났다.이때 용태웅이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어디 계속해 봐. 곧 일본 무신, 야마구치파 검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 오늘 너는 반드시 죽을 운명이야. 그래도 죽지 않으면 내가 직접 용문당 집법부대를 대표해서 너를 산산조각 내버릴 거야.”용태웅은 눈에 실핏줄이 가득했다. 화면을 통해 직접 아들이 김예훈에게 총 맞아 죽는 모습을 목격했기에 마음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손쓰지 않은 이유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용태웅은 김예훈이 미야다 신노스케의 손에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만약 김예훈이 미야다 신노스케마저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괴물이라고 해도 지쳤을
다음 날 오후 두 시. 김예훈은 진주 용문당 도관에 나타났다.아마도 모든 사람이 오늘 용태웅이 진주에 오는 이유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전체 용문당 도관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청소 아줌마조차 보이지 않았다.김예훈은 혼자서 도관 뒷산에 있는 정자에 앉아 평온한 표정으로 차를 마셨다.곧 맞이할 것은 폭풍우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광대인 것처럼 말이다.김예훈 외로 현장에는 추문성과 류서우도 있었다.이대로 죽으면 안 되는 류서우는 어젯밤 제때 치료를 받아 지금은 휠체어에 힘없이 앉아있었다.이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김예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다.“김예훈, 소용없어. 오늘 당주님께서 오시면 너는 끝장이야. 게다가 일본 야마구치파 검신인 미야다 신노스케도 같이 올 거라고. 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진정한 무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러게 누가 자꾸 야마구치파를 건드리라고 했어. 너같이 오만방자한 사람의 결말은 딱봐도 뻔한 거지. 하하하!”류서우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그녀는 어제 김예훈 손에 끔찍하게 죽은 용천수를 떠올리며 머릿속에 이미 자신의 운명이 그려졌다.김예훈이 죽든 말든 류서우는 반드시 용천수를 따라가야 했다.그래서 지금 류서우는 자기 죽음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김예훈이 사지가 찢겨 가루가 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김예훈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덤덤하게 말했다.“류서우, 기대할 만할 거야. 과연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깟 일본의 검신을 숭배해. 정말 정신이 아니네.”추문성이 류서우의 뺨을 때리는 바람에 그녀는 이가 몇 대 날아갔다.추문성은 김예훈의 평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류서우가 개처럼 짖는 것을 두고볼수 없었다.차 한 주전자를 다 마신 김예훈은 이윽고 저 멀리 용문당 도관 입구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차 문이 열리고,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 용태웅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나타났다.한 무리의 사람은 아주 빠른 속도로 용문당 도관 뒷산에
“김 도련님의 신분을 봤을 때 이 양패쪽이 마음에 안 들 수도,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자그마한 제 성의를 받아주시기를 바랄게요. 아니면 편히 잠을 잘 수 없을것 같아서 그래요.”양상철은 진지한 표정으로 정중히 양패쪽을 김예훈의 손에 쥐어주었다.아까의 대화를 듣고, 또 양패쪽을 본 신유림 일행은 모두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이들은 양상철이 양패쪽을 내어줄 정도로 이 사기꾼 같은 놈을 신뢰할 줄 몰랐다.이 양패쪽만 있으면 이제 김예훈이 동남 해역에서 마음대로 행동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김예훈도 양상철이 이 정도로 체면을 세워줄 줄 몰랐는지 멈칫하고 말았다.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어르신,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받을 수 없어요.”김예훈은 이 패쪽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신으로 불리는 양상철은 전체 동남 해역에서 적수가 없는 존재로 알려졌다.남양국으로 돌아가는 순간 아마도 전체 동남 해역에서 남양국을 우러러볼 것이다.그때되면 이 패쪽이 대표하는 의미는 지금과 천차만별이었다.김예훈은 이 패쪽을 가지고 있어도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이 물건을 양유선에게 주는 것은 김예훈에게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었다.김예훈의 말에 양유선은 멈칫하더니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진주와 밀양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김현민은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 패쪽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이 패쪽을 거절한다고? 정말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네.’김예훈은 정중히 패쪽을 돌려주며 웃으며 말했다.“정말 괜찮아요. 어르신께서 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면 기회가 될 때 술이나 사주세요.”“술은 술이고 선물은 선물이죠.”양상철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계속 거절했다가 이 노인네가 화가 나서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뭐, 이걸 원하지 않는다면 제 손녀딸을 드릴게요. 제 손녀사위가 되어준다면 이걸 안 받아도 괜찮아요. 어때요? 제 손녀사위가 되어준
“하하하. 극야한독을 제거해 주셨는데 다른 건 어려운 일도 아니죠. 진주 10대 명의가 제 친구인데 몸조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침대에서 거의 10년을 보낸 양상철은 전성기 시절로 돌아와 기쁘지 않을수 없었다.“할아버지, 김 도련님께서 아까 할아버지를 구하다가 신유림 총에 맞아 죽을 뻔했어요.”양유선은 힘겹게 일어나 기쁜 마음으로 양상철을 부축하면서 고자질했다.신유림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변명하고 싶었지만 차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숨이 간당간당한 양상철을 상대로 아무 말이나 막 해도 이제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 그를 미치지 않고서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김 도련님,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양상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젊어서 잘나갈 때는 친구들도 많았었는데 몰락하니까 어떤 사람들인지 알겠더라고요. 이번에 김 도련님의 도움을 받았는데 누가 뭐래도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보려고요.”양상철은 양유선에게 손짓하면서 말했다.“내 물건 가져와 봐.”김예훈이 웃으면서 말했다.“저도 아무런 사심도 없이 구해드린 건 아니니까 감사해할 필요 없어요.”양상철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솔직하시네요. 이거라도 드리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내려갈 것 같아서 그래요.”양유선은 기쁜 마음에 안방에 가서 낡은 상자를 꺼내 양상철 앞에 가져왔다.이어 양유선은 김예훈을 향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김 도련님, 저희 할아버지를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이건 저를, 그리고 전체 양씨 가문을 구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제부터 저 양유선은 김 도련님의 사람이에요. 누군가 김 도련님을 해치려고 한다면 제 시체부터 밟고 가야 할 거예요.”김예훈은 시종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양 수장님, 그저 지나가다가 우연히 도움을 드렸을 뿐이에요. 앞으로 진주·밀양에서 만날 일도 많을 텐데 돈 벌 기회가 있으면 같이 벌고, 무슨 일이 생겨도 다같이 감당하면 될 거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