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오정범이 손에 쥐고 있는 당도에서 불빛이 반사되자 맞은편에 검을 쥐고 있던 용문제자들은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전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엄연히 대결이었기 때문에 승부를 가린다는 것은 생사를 가리는 것과도 같았다.연속으로 다섯 판이나 패배하고 이제 겨우 마지막 비장의 카드만 남게 되었지만 우충식은 전혀 낭패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오정범을 호시탐탐 노리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샤삭!이때 2미터 가까이 되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통로를 벗어나 링 안으로 뛰어들었다.“다음 순서는 오정범 씨와 송성민 씨의 대결입니다!”송성민이라는 이름이 들려오자, 현장은 들끓기 시작했다.우충식의 제1장군이자 부산 용문당의 제1 맹장인 그는 부산 용문당 내부에서 명성이 높았다.산속에서 수련을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것이다.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송성민은 하나의 도끼를 든 채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한 마리의 곰과도 같이 근육질 몸매에 커다란 키를 지닌 그는 특유의 위압감을 뿜어냈다.워낙 흉악스러운 사람이라 소문에 의하면 엄동설한에 맨손으로 승냥이 떼마저 때려눕혔다고 했다.부산 용문당에서 진윤하만 없었더라면 그가 제1인자로 남았을지도 몰랐다.아무리 진윤하라고 해도 송성민을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이 순간, 송성민의 포악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우충식 일행은 그가 무조건 손쉽게 승리할 거라고 믿고 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김예훈 역시 이 장면을 보더니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대한민국 서북쪽에 있는 마오국 사람들은 전투 민족이라 태생이 이런 포스를 풍겼다.유라시아 전쟁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드물었기 때문에 그가 도대체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많이 궁금했다.송성민은 그저 정자세로 두 손에 도끼를 들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 포스가 어마어마했다.“칵! 퉤!”오정범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냈다.건들거리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하기
“죽어!”이때 갑자기 송성민의 포효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자, 현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사회자는 눈앞이 어두워지는 느낌과 함께 피를 토해내면서 그 자리에 쓰러질 뻔했다.김옥자 일행마저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그중에는 바지에 오줌을 지린 사람도 있었다.진윤하와 최산하는 송성민이 강한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 몰랐는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와 반면, 우충식은 그저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송성민이 기승을 부릴수록 나한테 능력 있는 부하가 많다는 것을 설명하겠지? 그러면 회장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 역시 나일 것이고.’기가 꺾인 오정범은 당황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이때 송성민은 이 기세를 몰아 바닥에 도끼를 끌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심상찮은 포스를 보니 오정범을 죽여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촤라락!오정범은 별다른 선택 없이 허리춤에서 당도를 꺼낼 뿐이었다.칼부림이 빨라 보이긴 해도 웅장하고도 힘이 넘쳐나는 송성민을 마주하자니 별로 승산은 없어 보였다.사람들은 이미 오정범이 패할 거라고 예상했고, 심지어 우충식의 열혈 팬들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기도 했다.“좋아!”샤샤샥!당도에서 반사되는 눈 부신 불빛과 함께 오정범의 당도는 송성민의 미간을 겨냥하게 되었다.송성민은 멈칫하긴 했어도 별로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빠직!진윤하 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오정범 수중에 있던 당도가 두 동강 나고 말았다.‘오정범이 패했다고?’현장은 고요함도 잠시, 뒤이어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오정범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용문자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5연승으로 용문제자들의 기를 꺾어놓긴 했어도 결국 송성민에게 패할 줄 몰랐던 것이다.곳곳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함께 오정범 편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치게 되었다.송성민의 전력은 용문제자 젊은 층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이었다.오정범은 한숨을 내쉬더니 당도를 주워 링에서 뛰어내렸다.송성민은
“김예훈, 5연승 한 오정범마저도 송성민한테 한 방에 무너진 거 못 봤어?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안 보여? 충식 씨가 용문당 회장이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인데 뭐 어쩌려고? 말리려고? 네까짓 게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김옥자 일행은 김예훈을 가소롭게 쳐다보면서 비웃기만 했다.‘어디서 튀어나온 놈이길래 송성민 실력을 보고도 링 위에 올라서려고 그래?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정말 웃겨!’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사모님, 저와 내기 한판 하실래요?”“응?”김옥자가 멈칫했다.“제가 뺨 한 대로 송성민 씨를 날려 보내지 못한다면 오늘 이곳을 기어서 나갈게요. 반대로 제가 해낼 수 있다면 사모님이 이곳을 기어서 나가는 거예요. 어때요?”김예훈은 마치 자기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너...”김옥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김 도련님, 당신이 능력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 정도 능력으로는 잘난 척할 자격이 없을 텐데요? 현아가 당신 같은 남자를 왜 좋아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그깟 능력을 믿고 이 정도로 잘난 척하다니.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자신이 대단한 줄 아세요? 뺨 한 대로 송성민 씨를 날려 보내겠다고요? 송성민 씨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기만 해도 무릎 꿇고 할아버지라고 불러드릴게요. 저를 살려주신 점을 봐서라도 이렇게 간곡히 비는데, 창피한 짓은 그만하고 제발 현실을 자각해 주세요!”김옥자는 비웃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주제 하나 파악하지 못하는 놈이 아침에 나를 어떻게 살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네. 운이 좋았던 건가?’김예훈은 김옥자의 말을 무시하고 그저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현아야, 내가 송성민 씨를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응. 충분해.”우현아는 김예훈을 무한신뢰했다.김예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뒤돌아 링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바로 이때, 우충식도 그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말았다.한 구석에서 여진수가 다가오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우충식의 시선은 다시 한번 김예훈에게 향하게 되면서 잠깐 소름이 끼쳤다.“저 자식을 쫓아내라고 했잖아! 왜 링 위에 올려보내는 건데! 무슨 자격으로!”우충식은 절대로 누군가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비록 김예훈이 싫었지만, 그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나마 외부인은 참여할 자격이 없는 용문당 내부 경기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강한 오정범이라고 해도 무대에 오르기 전 용문제자의 신분부터 따야 했다.“이봐, 이 자식은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우리 부산 용문당 대결에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 같아?”“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지금 링 위에 오른다는 건 송성민, 그리고 우 회장님한테 도전장을 내민다는 건데 말이야.”“큰일이네. 오늘 누군가는 죽어 나가겠네.”정체 모를 김예훈의 결말이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었다.다른 한쪽 무대 위, 진윤하와 최산하는 김예훈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예의를 갖췄다.무대 아래에 있던 오정범마저도 허리 숙여 인사했다.아쉽게도 사람들의 눈빛은 김예훈에게 꽂혀있어 이들의 행동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수많은 사람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와중에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링 위로 올라갔다.그는 무슨 말을 하기도 귀찮은지 그저 송성민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일 뿐이었다.“날 이기면 우충식이 회장이 되는 거야.”“너!”송성민은 멈칫하더니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우충식을 바라보았다. 우충식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언의 신호를 보내자, 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도끼를 쳐들었다.온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전체 무도관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방금 욕설을 퍼붓던 사람들 역시 숨죽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송성민 같은 고수가 직접 나설 기회는 흔치 않았다.‘이번에도 한방에 승부가 갈라지겠지?’
찰진 소리와 함께 곰 같은 송성민이 저 멀리 날아가 무대아래로 떨어졌다.현장 분위기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입이 떡 벌어진 채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뺨 한 대로 무신 송성민을 날려 보냈다고?’이 순간, 사람들은 전부 멍때리는 표정이었다.우충식 역시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그의 옆에 앉아있던 청현 도장은 전에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화끈해졌다. 김옥자 일행은 온몸이 굳어져 버렸고, 심지어 그중 누군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하겠는지 자기 뺨을 꼬집기도 했다.‘정말 뺨 한 대로 송성민을 날려버렸네.’이때 사회자마저 이 광경을 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짝! 짝! 짝!잠시 후, 우현아가 먼저 흥분한 모습으로 방방 뛰면서 손뼉을 쳤다.김예훈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나비효과처럼 뒤이어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용문제자들마저도 감탄하면서 김예훈의 어마어마한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링 위, 김예훈의 손짓하나에 현장 분위기가 다시 차분해졌을 때,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우충식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죄송한데 우 부회장님 꿈은 이대로 깨질 것 같네요.”우충식은 부들부들 떨더니 김예훈을 가리키면서 소리 질렀다.“김예훈, 너는 용문제자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대결에 참여해! 우리 부산 용문단 대결에서 난동을 부렸다가 이대로 무사할 것 같아? 이봐! 다 같이 죽여버려!”우충식은 신속히 누군가에게 문자 몇 통을 보내고서야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비록 김예훈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몰랐지만, 그가 용문제자가 아닌 이상 어떻게든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자격?”김예훈이 차가운 표정으로 진윤하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곳에 있는지 말씀드려.”그러자 진윤하, 최산하, 오정범, 공진해, 도적구자 등이 무릎을 꿇으면서 예의를 갖
쥐 죽은 듯 고요한 분위기도 잠시, 슬슬 의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글쎄 예전부터 김예훈이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했어.”“김예훈, 김 회장님?”“설마 저 사람이 최종호 회장님의 죽음과 연관된 김예훈이라고?”“세상에! 최산하는 최종호 회장님 아드님 아니야? 진윤하도 최 회장님 제자였잖아?”“어떻게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한편이 된 거지?”“회장이 아니라면 저 사람들이 저렇게 공손하게 대할 이유가 없잖아?”“내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용문당 어르신께서 진작에 부산 용문당 회장을 지정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저분은 아니겠지?”“그러면 아까 있었던 대결들은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였네?”“아니,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 최소한 송성민 같은 사람도 김예훈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잖아...”각종 의논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수많은 우충식 일맥의 용문제자들은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진윤하와 최산하가 링 정중앙에 서 있는 김예훈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해도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회장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진윤하와 최산하가 따르고 있으니 회장이 아니라고 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김옥자는 온몸이 굳어버린 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김예훈과 있었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자, 그동안 김예훈이 시종일관 심사하는 듯한 눈빛으로 우충식을 지켜보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아무리 강한 우충식이라고 해도 그의 앞에선 그저 우스갯거리 정도였다.하나같이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옥자의 일행은 평소에 다른 능력은 없어도 누가 대단한 사람인지, 누가 바보인지 구분하는 능력은 대단했다.하지만 그 판단력마저도 김예훈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바로 이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송성민이 힘겹게 일어서면서 김예훈을 향해 삿대질했다.“네가 바로 김예훈이야? 최종호 회장님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내 동생 송성
김예훈이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송성훈 씨의 죽음은 도대체 누가 한 짓인지 그 현장에 있던 용문제자들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용문당 어르신께서 나한테 부산 용문당 회장 자리를 맡겨준 이상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진윤하와 최산하는 이미 사건의 경과를 알고 내 설명을 믿어주었기 때문에 내 밑으로 들어온 거고. 이제는 우 부회장님 일맥만 남았네. 내가 회장 자리에 오른 이상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해. 내가 오늘 이곳에 나타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링 위로 올라와. 나를 이길 수만 있다면 회장 자리를 물려줄게.”김예훈은 확신에 찬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사람들은 김예훈이 정말 용문당 어르신이 지정한 부산 회장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는지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사실이라면 누가 말릴 수 있겠어? 우충식이라고 해도 반대할 자격이 없겠는데? 그리고 저 담담한 말투에 살기가 가득 찬 거 봐.’김예훈과 눈이 마주친 우충식의 열혈 팬들은 마음 한구석 어딘가 찔린 모양인지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심지어 누군가는 출입구가 언제 닫혔는지도 몰랐다. ‘오늘 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이곳이 파바다로 될 것이야...’우충식은 차가운 표정으로 무대 위에서 서서히 일어서더니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어르신께서 너한테 회장 자리를 맡겨주셨다면 최소한 회장 패쪽은 가지고 있겠지? 어디 있는데? 지금 내놓으면 바로 인정해 줄게!”우충식 곁에 있던 한 열혈 팬은 멈칫하더니 따라서 큰소리쳤다.“맞아. 회장 패쪽을 내놓아야 회장이 될 수 있는 거야! 내놓지 못하면 네가 한 말은 전부 거짓일 거고! 이방인 주제에 감히 우리 용문당 회장을 사칭해? 어디서 죽으려고!”주위가 들썩거리기 시작하자, 우충식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기세를 몰아 김예훈을 짓밟을 수만 있다면 김예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소수는 다수에 대적하기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
김예훈의 비웃음 가득한 말투에 우충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분명 이 회장 패쪽이 그의 비장 카드였는데 김예훈이 이 동영상을 재생시키는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회장 자리는 역시 대결로 뺏어와야 했다.김예훈은 우충식의 어두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우 부회장님, 그동안 저희 만난 횟수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우 부회장님께서 회장직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하셨는지 다 압니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죠.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제가 기회를 드릴 테니 모든 비장의 카드를 내놓아 보시죠. 저를 놀라게 할 수만 있다면 이 회장 자리를 넘겨드리겠습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충식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우충식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냉랭하게 말했다.“그래요. 김 회장님께서 아량을 베푸셨으니, 저도 기꺼이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후회하실 겁니다! 제가 쥐고 있는 힘은 감당이 안 될 테니까요!”우충식은 말을 끝내자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맞다. 진윤하 씨.”김예훈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말했다.“우 부회장님께서 전화를 거시기 전에 먼저 첫 번째 선물을 드리자고.”진윤하가 살짝 고개를 쳐들고 손짓하자, 용문제자들이 선물 박스 하나를 들고 우충식 앞에 나타났다.우충식은 자기도 모르게 선물 박스를 열었다가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공준호!’선물 박스 안에는 진윤하를 상대하기로 했던 공준호의 머리가 담겨 있었다.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우충식은 휘청거리더니 다시 힘겹게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진윤하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우 부회장님, 오늘 무도관에 오시기 전에 야마자키파 공준호 씨한테 저의 앞길을 막아달라고 부탁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상대의 실력이 너무 약한 바람에 제가 죽여버렸지, 뭐예요. 우 부회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 용문당은 일본 사람과 상대하지
김예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마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기꺼이 부탁하니 안 들어주면 예의가 아니겠지?”말을 마친 후 그는 휴대폰에서 몇 년 동안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세 번 울린 후 상대방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고 충격과 의아함이 가득 찬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랑하는 예훈 씨, 드디어 나한테 전화했네요!”“제 프러포즈를 받아주시려는 건가요? ”“빅토리카.”김예훈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전화한 건 당신이 처리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예요.”“당신네 영국 제국 황실에 마리아라고, 무슨 49번째 황위 계승자라고 하는데 사람이 너무 별로네요.”“이 사람의 존재가 당신과 나의 우정 그리고 한국과 영국 제국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처리 좀 부탁할게요.”말을 마친 김예훈은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마리아, 당신은 이제 영국 제국 황실에서 제명되었어.”“빅토리카? 영국 제국 장공주?”마리아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영국 제국의 장공주 빅토리카는 서양 최고의 미녀일 뿐만 아니라 문학과 무술도 뛰어난 분이란 걸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야!”“그분 이름을 언급한다고 해서 내가 겁먹을 줄 알아?”“그분이 맨날 티비에 나와서 심지어 흑아프리카에서도 그분의 명성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역시 너 같은 관종은 주목을 끌려고 진짜 별짓 다 하네. 네가 무슨 세계 연방의 사무총장이라도 되는 줄 알아?”장무준도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김예훈, 수작 그만 부려.”“황실에서 제명됐다고? 진짜 너같이 상류층의 규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다.”“티비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진짜 전화 한 통으로 황실 제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야?”“잘 들어. 황실 제명은 상원의 승인뿐만 아니라 교황의 승인도 필요해!”“모든 절차를 밟는데 적어도
“장씨 가문?”“한국의 장씨 가문? 아니면 영국 제국의 장씨 가문?”김예훈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장무준, 상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고 한국 사람들은 진작에 일어섰어. 너같이 은혜를 모르고 조상을 잊은 것들이 아직도 서양 놈을 조상으로 삼고 떠받들어 모시는 거야.”“날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디 한번 해봐!”“안타깝지만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넌 나한테 안돼.”“너같이 외국의 것만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외국인들한테 아첨하는 사람은 평생 날 못 이겨.”말을 마친 김예훈은 동하임의 팔을 잡고 돌아서 떠날 준비를 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역시 이 남자는 달랐다.외국의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아첨하는 뻔뻔스러운 장무준과 비하면 김예훈이야말로 진정한 남자였다.“이봐, 무슨 말을 그렇게 해?”“네가 뭔데 내 남친한테 그런 말을 해?”“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서구 문명을 비꼬는 거야?”이때 줄곧 경멸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던 마리아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분노한 장무준의 팔을 잡고 김예훈을 가리키며 말했다.“거기 한국 사람, 좋은 말 할 때 무릎 꿇고 당장 사과해!”“여기에 3일 동안 무릎 꿇고 있어!”“아니면 영국 제국 황실을 통해 즉시 진주를 제재하는 성명을 발표할 거야!”“내 말 한마디면 네가 한 짓 때문에 진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거야!”“또한 내 말 한마디면 진주 기관에서 너한테 중벌을 내릴 거야!”“영국 제국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 나 마리아의 능력도 의심하지 말고!”“난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고 내뱉은 맡은 무조건 실천해!”마리아는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녀 옆에 서 있던 영국 제국의 남녀들도 모두 비웃는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들이 보기에 김예훈은 멍청한 한국 사람으로 보였고 마리아를 건드린 게 주제넘은 행동으로 보였다.이 한국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영국 제국 황실과 비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