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이때 갑자기 송성민의 포효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자, 현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사회자는 눈앞이 어두워지는 느낌과 함께 피를 토해내면서 그 자리에 쓰러질 뻔했다.김옥자 일행마저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그중에는 바지에 오줌을 지린 사람도 있었다.진윤하와 최산하는 송성민이 강한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 몰랐는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와 반면, 우충식은 그저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송성민이 기승을 부릴수록 나한테 능력 있는 부하가 많다는 것을 설명하겠지? 그러면 회장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 역시 나일 것이고.’기가 꺾인 오정범은 당황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이때 송성민은 이 기세를 몰아 바닥에 도끼를 끌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심상찮은 포스를 보니 오정범을 죽여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촤라락!오정범은 별다른 선택 없이 허리춤에서 당도를 꺼낼 뿐이었다.칼부림이 빨라 보이긴 해도 웅장하고도 힘이 넘쳐나는 송성민을 마주하자니 별로 승산은 없어 보였다.사람들은 이미 오정범이 패할 거라고 예상했고, 심지어 우충식의 열혈 팬들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기도 했다.“좋아!”샤샤샥!당도에서 반사되는 눈 부신 불빛과 함께 오정범의 당도는 송성민의 미간을 겨냥하게 되었다.송성민은 멈칫하긴 했어도 별로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빠직!진윤하 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오정범 수중에 있던 당도가 두 동강 나고 말았다.‘오정범이 패했다고?’현장은 고요함도 잠시, 뒤이어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오정범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용문자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5연승으로 용문제자들의 기를 꺾어놓긴 했어도 결국 송성민에게 패할 줄 몰랐던 것이다.곳곳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함께 오정범 편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치게 되었다.송성민의 전력은 용문제자 젊은 층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이었다.오정범은 한숨을 내쉬더니 당도를 주워 링에서 뛰어내렸다.송성민은
“김예훈, 5연승 한 오정범마저도 송성민한테 한 방에 무너진 거 못 봤어?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안 보여? 충식 씨가 용문당 회장이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인데 뭐 어쩌려고? 말리려고? 네까짓 게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김옥자 일행은 김예훈을 가소롭게 쳐다보면서 비웃기만 했다.‘어디서 튀어나온 놈이길래 송성민 실력을 보고도 링 위에 올라서려고 그래?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정말 웃겨!’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사모님, 저와 내기 한판 하실래요?”“응?”김옥자가 멈칫했다.“제가 뺨 한 대로 송성민 씨를 날려 보내지 못한다면 오늘 이곳을 기어서 나갈게요. 반대로 제가 해낼 수 있다면 사모님이 이곳을 기어서 나가는 거예요. 어때요?”김예훈은 마치 자기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너...”김옥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김 도련님, 당신이 능력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 정도 능력으로는 잘난 척할 자격이 없을 텐데요? 현아가 당신 같은 남자를 왜 좋아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그깟 능력을 믿고 이 정도로 잘난 척하다니.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자신이 대단한 줄 아세요? 뺨 한 대로 송성민 씨를 날려 보내겠다고요? 송성민 씨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기만 해도 무릎 꿇고 할아버지라고 불러드릴게요. 저를 살려주신 점을 봐서라도 이렇게 간곡히 비는데, 창피한 짓은 그만하고 제발 현실을 자각해 주세요!”김옥자는 비웃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주제 하나 파악하지 못하는 놈이 아침에 나를 어떻게 살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네. 운이 좋았던 건가?’김예훈은 김옥자의 말을 무시하고 그저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현아야, 내가 송성민 씨를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응. 충분해.”우현아는 김예훈을 무한신뢰했다.김예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뒤돌아 링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바로 이때, 우충식도 그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말았다.한 구석에서 여진수가 다가오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우충식의 시선은 다시 한번 김예훈에게 향하게 되면서 잠깐 소름이 끼쳤다.“저 자식을 쫓아내라고 했잖아! 왜 링 위에 올려보내는 건데! 무슨 자격으로!”우충식은 절대로 누군가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비록 김예훈이 싫었지만, 그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나마 외부인은 참여할 자격이 없는 용문당 내부 경기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강한 오정범이라고 해도 무대에 오르기 전 용문제자의 신분부터 따야 했다.“이봐, 이 자식은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우리 부산 용문당 대결에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 같아?”“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지금 링 위에 오른다는 건 송성민, 그리고 우 회장님한테 도전장을 내민다는 건데 말이야.”“큰일이네. 오늘 누군가는 죽어 나가겠네.”정체 모를 김예훈의 결말이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었다.다른 한쪽 무대 위, 진윤하와 최산하는 김예훈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예의를 갖췄다.무대 아래에 있던 오정범마저도 허리 숙여 인사했다.아쉽게도 사람들의 눈빛은 김예훈에게 꽂혀있어 이들의 행동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수많은 사람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와중에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링 위로 올라갔다.그는 무슨 말을 하기도 귀찮은지 그저 송성민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일 뿐이었다.“날 이기면 우충식이 회장이 되는 거야.”“너!”송성민은 멈칫하더니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우충식을 바라보았다. 우충식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언의 신호를 보내자, 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도끼를 쳐들었다.온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전체 무도관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방금 욕설을 퍼붓던 사람들 역시 숨죽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송성민 같은 고수가 직접 나설 기회는 흔치 않았다.‘이번에도 한방에 승부가 갈라지겠지?’
찰진 소리와 함께 곰 같은 송성민이 저 멀리 날아가 무대아래로 떨어졌다.현장 분위기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입이 떡 벌어진 채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뺨 한 대로 무신 송성민을 날려 보냈다고?’이 순간, 사람들은 전부 멍때리는 표정이었다.우충식 역시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그의 옆에 앉아있던 청현 도장은 전에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화끈해졌다. 김옥자 일행은 온몸이 굳어져 버렸고, 심지어 그중 누군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하겠는지 자기 뺨을 꼬집기도 했다.‘정말 뺨 한 대로 송성민을 날려버렸네.’이때 사회자마저 이 광경을 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짝! 짝! 짝!잠시 후, 우현아가 먼저 흥분한 모습으로 방방 뛰면서 손뼉을 쳤다.김예훈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나비효과처럼 뒤이어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용문제자들마저도 감탄하면서 김예훈의 어마어마한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링 위, 김예훈의 손짓하나에 현장 분위기가 다시 차분해졌을 때,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우충식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죄송한데 우 부회장님 꿈은 이대로 깨질 것 같네요.”우충식은 부들부들 떨더니 김예훈을 가리키면서 소리 질렀다.“김예훈, 너는 용문제자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대결에 참여해! 우리 부산 용문단 대결에서 난동을 부렸다가 이대로 무사할 것 같아? 이봐! 다 같이 죽여버려!”우충식은 신속히 누군가에게 문자 몇 통을 보내고서야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비록 김예훈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몰랐지만, 그가 용문제자가 아닌 이상 어떻게든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자격?”김예훈이 차가운 표정으로 진윤하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곳에 있는지 말씀드려.”그러자 진윤하, 최산하, 오정범, 공진해, 도적구자 등이 무릎을 꿇으면서 예의를 갖
쥐 죽은 듯 고요한 분위기도 잠시, 슬슬 의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글쎄 예전부터 김예훈이라는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했어.”“김예훈, 김 회장님?”“설마 저 사람이 최종호 회장님의 죽음과 연관된 김예훈이라고?”“세상에! 최산하는 최종호 회장님 아드님 아니야? 진윤하도 최 회장님 제자였잖아?”“어떻게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한편이 된 거지?”“회장이 아니라면 저 사람들이 저렇게 공손하게 대할 이유가 없잖아?”“내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용문당 어르신께서 진작에 부산 용문당 회장을 지정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저분은 아니겠지?”“그러면 아까 있었던 대결들은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였네?”“아니,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 최소한 송성민 같은 사람도 김예훈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잖아...”각종 의논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수많은 우충식 일맥의 용문제자들은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진윤하와 최산하가 링 정중앙에 서 있는 김예훈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해도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회장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진윤하와 최산하가 따르고 있으니 회장이 아니라고 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김옥자는 온몸이 굳어버린 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김예훈과 있었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자, 그동안 김예훈이 시종일관 심사하는 듯한 눈빛으로 우충식을 지켜보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아무리 강한 우충식이라고 해도 그의 앞에선 그저 우스갯거리 정도였다.하나같이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옥자의 일행은 평소에 다른 능력은 없어도 누가 대단한 사람인지, 누가 바보인지 구분하는 능력은 대단했다.하지만 그 판단력마저도 김예훈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바로 이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송성민이 힘겹게 일어서면서 김예훈을 향해 삿대질했다.“네가 바로 김예훈이야? 최종호 회장님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내 동생 송성
김예훈이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송성훈 씨의 죽음은 도대체 누가 한 짓인지 그 현장에 있던 용문제자들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용문당 어르신께서 나한테 부산 용문당 회장 자리를 맡겨준 이상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진윤하와 최산하는 이미 사건의 경과를 알고 내 설명을 믿어주었기 때문에 내 밑으로 들어온 거고. 이제는 우 부회장님 일맥만 남았네. 내가 회장 자리에 오른 이상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해. 내가 오늘 이곳에 나타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링 위로 올라와. 나를 이길 수만 있다면 회장 자리를 물려줄게.”김예훈은 확신에 찬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사람들은 김예훈이 정말 용문당 어르신이 지정한 부산 회장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는지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사실이라면 누가 말릴 수 있겠어? 우충식이라고 해도 반대할 자격이 없겠는데? 그리고 저 담담한 말투에 살기가 가득 찬 거 봐.’김예훈과 눈이 마주친 우충식의 열혈 팬들은 마음 한구석 어딘가 찔린 모양인지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심지어 누군가는 출입구가 언제 닫혔는지도 몰랐다. ‘오늘 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이곳이 파바다로 될 것이야...’우충식은 차가운 표정으로 무대 위에서 서서히 일어서더니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어르신께서 너한테 회장 자리를 맡겨주셨다면 최소한 회장 패쪽은 가지고 있겠지? 어디 있는데? 지금 내놓으면 바로 인정해 줄게!”우충식 곁에 있던 한 열혈 팬은 멈칫하더니 따라서 큰소리쳤다.“맞아. 회장 패쪽을 내놓아야 회장이 될 수 있는 거야! 내놓지 못하면 네가 한 말은 전부 거짓일 거고! 이방인 주제에 감히 우리 용문당 회장을 사칭해? 어디서 죽으려고!”주위가 들썩거리기 시작하자, 우충식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기세를 몰아 김예훈을 짓밟을 수만 있다면 김예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소수는 다수에 대적하기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
김예훈의 비웃음 가득한 말투에 우충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분명 이 회장 패쪽이 그의 비장 카드였는데 김예훈이 이 동영상을 재생시키는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회장 자리는 역시 대결로 뺏어와야 했다.김예훈은 우충식의 어두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우 부회장님, 그동안 저희 만난 횟수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우 부회장님께서 회장직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하셨는지 다 압니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죠.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제가 기회를 드릴 테니 모든 비장의 카드를 내놓아 보시죠. 저를 놀라게 할 수만 있다면 이 회장 자리를 넘겨드리겠습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충식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우충식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냉랭하게 말했다.“그래요. 김 회장님께서 아량을 베푸셨으니, 저도 기꺼이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후회하실 겁니다! 제가 쥐고 있는 힘은 감당이 안 될 테니까요!”우충식은 말을 끝내자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맞다. 진윤하 씨.”김예훈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말했다.“우 부회장님께서 전화를 거시기 전에 먼저 첫 번째 선물을 드리자고.”진윤하가 살짝 고개를 쳐들고 손짓하자, 용문제자들이 선물 박스 하나를 들고 우충식 앞에 나타났다.우충식은 자기도 모르게 선물 박스를 열었다가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공준호!’선물 박스 안에는 진윤하를 상대하기로 했던 공준호의 머리가 담겨 있었다.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우충식은 휘청거리더니 다시 힘겹게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진윤하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우 부회장님, 오늘 무도관에 오시기 전에 야마자키파 공준호 씨한테 저의 앞길을 막아달라고 부탁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상대의 실력이 너무 약한 바람에 제가 죽여버렸지, 뭐예요. 우 부회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 용문당은 일본 사람과 상대하지
최산하는 말을 끝내자마자 직접 선물 박스를 들고 배시시 한 표정으로 우충식 앞에 나타났다.선물 박스가 앞에 놓인 순간, 우충식은 강렬한 불안감에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천천히 선물 박스를 열었다.두둥!소름이 끼친 우충식은 휘청거리더니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한 채 아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머리!선물 박스 안에는 부산 6대 세자 중의 한 명인 견청룡의 머리가 들어있었다.우충식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했다.최산하의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우충식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그는 최산하에게 직접 견청룡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그 유일한 사람은 김예훈일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이 완전무결하게 이곳에 나타난 것도 이상했고, 견 세자님께서 글쎄 이상하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더니. 이미 죽은 거였어.’바로 이때, 김예훈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하자 우충식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에는 견청룡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우충식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전화 받을 용기도 없었다.이때 옆에 있던 최산하가 웃으면서 대신 통화 버튼을 눌렀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김예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우 부회장님, 이것이 바로 부회장님의 비장 카드였나요? 그렇다면 죄송하게도 패배하셨네요.”우충식은 창백한 얼굴로 결국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이 순간, 그렇게 당당하던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결국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견청룡마저도 죽어버렸으니 이제 더 이상 김예훈과 싸울 비장의 카드가 없었다.김예훈은 핸드폰을 바닥에 버리고 태연하게 우충식을 바라보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최종호 회장님이 죽은 뒤로, 대신 복수할 마음은 있었어? 아니! 너는 그저 이때다 싶어 어떻게 하면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겠지! 가장 강력한 회장 후보인 진윤하를 복수를 빌미로 성남에 보냈겠지만 결국 나한테 패배하고 말았지! 최종호를 죽이고 진윤하마저 보내버렸으니,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