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의 비웃음 가득한 말투에 우충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분명 이 회장 패쪽이 그의 비장 카드였는데 김예훈이 이 동영상을 재생시키는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회장 자리는 역시 대결로 뺏어와야 했다.김예훈은 우충식의 어두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우 부회장님, 그동안 저희 만난 횟수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우 부회장님께서 회장직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하셨는지 다 압니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죠.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제가 기회를 드릴 테니 모든 비장의 카드를 내놓아 보시죠. 저를 놀라게 할 수만 있다면 이 회장 자리를 넘겨드리겠습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충식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우충식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냉랭하게 말했다.“그래요. 김 회장님께서 아량을 베푸셨으니, 저도 기꺼이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후회하실 겁니다! 제가 쥐고 있는 힘은 감당이 안 될 테니까요!”우충식은 말을 끝내자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맞다. 진윤하 씨.”김예훈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말했다.“우 부회장님께서 전화를 거시기 전에 먼저 첫 번째 선물을 드리자고.”진윤하가 살짝 고개를 쳐들고 손짓하자, 용문제자들이 선물 박스 하나를 들고 우충식 앞에 나타났다.우충식은 자기도 모르게 선물 박스를 열었다가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공준호!’선물 박스 안에는 진윤하를 상대하기로 했던 공준호의 머리가 담겨 있었다.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우충식은 휘청거리더니 다시 힘겹게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진윤하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우 부회장님, 오늘 무도관에 오시기 전에 야마자키파 공준호 씨한테 저의 앞길을 막아달라고 부탁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상대의 실력이 너무 약한 바람에 제가 죽여버렸지, 뭐예요. 우 부회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 용문당은 일본 사람과 상대하지
최산하는 말을 끝내자마자 직접 선물 박스를 들고 배시시 한 표정으로 우충식 앞에 나타났다.선물 박스가 앞에 놓인 순간, 우충식은 강렬한 불안감에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천천히 선물 박스를 열었다.두둥!소름이 끼친 우충식은 휘청거리더니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한 채 아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머리!선물 박스 안에는 부산 6대 세자 중의 한 명인 견청룡의 머리가 들어있었다.우충식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했다.최산하의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우충식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그는 최산하에게 직접 견청룡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그 유일한 사람은 김예훈일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이 완전무결하게 이곳에 나타난 것도 이상했고, 견 세자님께서 글쎄 이상하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더니. 이미 죽은 거였어.’바로 이때, 김예훈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하자 우충식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에는 견청룡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우충식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전화 받을 용기도 없었다.이때 옆에 있던 최산하가 웃으면서 대신 통화 버튼을 눌렀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김예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우 부회장님, 이것이 바로 부회장님의 비장 카드였나요? 그렇다면 죄송하게도 패배하셨네요.”우충식은 창백한 얼굴로 결국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이 순간, 그렇게 당당하던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결국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견청룡마저도 죽어버렸으니 이제 더 이상 김예훈과 싸울 비장의 카드가 없었다.김예훈은 핸드폰을 바닥에 버리고 태연하게 우충식을 바라보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최종호 회장님이 죽은 뒤로, 대신 복수할 마음은 있었어? 아니! 너는 그저 이때다 싶어 어떻게 하면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겠지! 가장 강력한 회장 후보인 진윤하를 복수를 빌미로 성남에 보냈겠지만 결국 나한테 패배하고 말았지! 최종호를 죽이고 진윤하마저 보내버렸으니,
두 사람의 신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우충식은 김예훈 앞에서 공격은커녕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이 순간 창백한 얼굴의 우충식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얼굴에 악독스러움은 사라지고 초췌함만 남아있었다.뒤이어 그는 중얼거리면서 옥처럼 매끄러운 회장 패쪽을 두 손으로 건넸다.“우충식... 회장님을 뵙습니다!”스윽!김예훈이 손을 흔들자 회장 패쪽은 쏜살같이 그의 수중으로 돌아갔다.그가 패쪽을 위로 들고 사방을 둘러보자 진윤하, 최산하 등이 흥분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을 뵙습니다!”우현아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김옥자는 몸을 휘청거리면서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회장? 김예훈 이 자식 이대로 회장이 되는 거야?’부산 용문당 회장은 부산에서 6대 세자들보다도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김옥자 일행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이제 막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 기분은 마치 주식이 폭락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바닥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그야말로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용문 무도관 대기실.차가운 표정으로 팔걸이의자에 기대고 있는 김예훈과 담담한 표정으로 옆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는 우현아와 달리 맞은편에 있는 우충식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말씀해 보세요. 저희 약속에 의하면 현아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인정하십니까? 우 부회장님?”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대기실 밖.진윤하와 최산하는 우충식 일맥을 처리하고 있었다.김예훈이 설명을 요구하자 우충식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한참 후 한숨을 내쉬었다.“회장님과 현아가 원하시는 설명을 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에요?”우충식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우충식은 냉혈 인간이긴 하지만 회장 자리에 오르려고 와이프를 죽일 정도는 아닙니다...”“그러세요?”김예훈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우충식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저
이것저것 뒤처리를 마무리한 김예훈은 바로 이곳을 떠났다.부산 용문당은 진윤하와 최산하만으로도 완벽히 해결할 수 있었다.우씨 가문에서도 우충식이 철저히 무너져 내렸으니 우현아가 실세를 차지할 수 있었다.김예훈은 우현아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부녀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하고 직접 운전해서 포레스트 별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정민아에게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그동안 비록 정민아와 연락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경기도 정씨 가문의 모든 자원을 대통합시키고 곧 부산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부산 견씨 가문에서는 견청룡의 죽음으로 인해 정민아가 복귀하자마자 실세를 장악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아무리 김예훈이라고 해도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정민아 성격대로라면 쉽게 포기할 사람도 아니었다.뒤이어 김예훈은 또 하은혜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동안은 부산 용문당과 우현아의 일을 해결하느라 하은혜에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하은혜도 그동안 연락하지 않은 것을 보니 심씨 가문에서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하지만 하은혜의 일도 곧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김예훈은 이제는 부산에서 힘이 강해졌기 때문에 하은혜의 일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하은혜에게 문자를 여러 통 보냈지만 답장이 없는 것을 보고 이미 잠든 줄 알고 굳이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다음날, 점심때서야 일어난 김예훈은 곧장 하은혜를 찾으러 로제리타 호텔로 향했다.하지만 로열 스위트룸에 도착했을 때, 호텔 직원은 하은혜가 반 시간 전에 나갔다고 전했다.바로 그녀에게 전화했을 때, 통화 연결음 뒤에 그녀의 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김 대표님, 죄송해요. 오늘 아침 효임 씨가 저를 찾아와서 꼭 SNS 영상을 같이 찍자고 해서 근교로 나왔어요. 거절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거예요. 잠시 후 효임 씨 비서분께서 김 대표님을
김예훈은 한참 보더니 별풍선 여러 개를 후원했다.이때 조효임이 바로 발견하고 웃으면서 말했다.“건물주님께서 쏘신 별풍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건물주님은 제 1호 팬입니다. 자주 오시진 않아도 오실 때마다 선물을 크게 쏴주곤 하죠. 건물주님 사랑해요!”조효임은 아직 어색한 하은혜를 끌어당기면서 건물주님과 인사시켰다.김예훈은 또 한 번 별풍선 여러 개를 후원했다.조효임이 흥분하면서 소리 지르는 와중에 김예훈은 아예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그러고는 로제리타 호텔 앞에서 조용히 조효임의 비서라는 사람이 자기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바로 이때, 외교 차량 번호판을 단 토요타 센추리 몇 대가 VIP 통로에 세워졌다.김예훈은 이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토요타 센추리는 일반인은 전혀 모르는 일본 황실 전용 차량인데. 돈 주고도 못 사는 이런 차량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일본에서 지위가 엄청 높은 사람일 거야.’얼마 후, 김예훈은 입생로랑 정장을 입은 멋진 남자가 중간 차량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그의 옆에는 몇몇 젊은 남녀들이 함께하고 있었다.이들은 하나같이 외모가 훌륭했고 일본인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다.오히려 제일 앞에 정장을 입은 사람이 한국인으로 보였다.김예훈이 그들의 신분을 맞추고 있을 때,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밀려와 사진 플래시를 터뜨렸다.“방호철 씨, 이번에 부산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서울에서는 비즈니스 업계, 금융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고 있는데 어떤 목적으로 부산에 온 것입니까?”“방 도련님, 말씀 좀 해주세요. 그래야 저희가 따라서 돈 벌 것이 아닙니까!”“방 도련님께서는 아직 여자 친구가 없으신데 혹시 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기자들은 방호철한테서 무엇이든 캐내려고 질문을 아끼지 않았다.방호철은 차가운 표정으로 몇몇 물음에 대충 대답하고는 보디가드의 호송하에 로제리타 호텔로 들어갔다.‘방 도련님? 방호철?’김예훈은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서울 4대 도련님이자
BMW Z4 모델은 그나마 가장 저렴한 오픈카였다.진정한 돈 많은 사람들한테는 장난감과도 같은 차종이었지만 일반사람들한테는 허세를 부려도 될 정도였다.이때, BMW Z4의 뚜껑이 열리고, 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놀라울 정도로 이쁜 것은 아니었지만 정갈한 메이크업으로 분위기가 넘쳐났다.이때, 그녀는 핸드폰 화면과 김예훈을 번갈아 대조하더니 물었다.“그쪽이 바로 하은혜 씨 친구분이세요?”“네, 맞습니다.”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효임이 비서분 맞으시죠?”비서가 냉랭하게 말했다.“너무하시네요. 도로에서 저를 기다리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굳이 호텔 앞까지 데리러와야겠어요? 이렇게 잠깐 들어와도 주차비 6,000원이나 내야 하는 거 몰라요? 빨리 타세요! 은혜 씨도 참. 왜 차도 없는 사람을 데리러 오라고 해서.”이 순간, 비서는 불쾌하기만 했다.하은혜가 픽업을 부탁했을 때 상대가 무슨 세자님이나 도련님인 줄 알고 일부러 BMW 차량을 렌트하고 또 반 시간이나 들여 메이크업을 했던 것이다.정작 실물을 만나보니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외모는 그나마 봐줄 만한데 옷차림이 영... 전부 싸구려 옷들이네.’비서는 그동안 조효임을 따라다니면서 신분 높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평범하디 평범해 보이는 김예훈을 별로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다.이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김예훈을 보디가드처럼 대했다.김예훈은 그런 그녀의 태도를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람보르기니 차량이 고장 나서 아직 수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 요 며칠은 우현아의 페라리488을 사용했었다.하지만 우현아도 JK 그룹을 수습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굳이 뺏어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저 나중에 시간 날 때 차량을 몇 대 더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비서는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토요타 센추리 차량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차에 시동을 걸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이거 무슨 차인 줄 아세요? 토요타 센추리라는 돈 있어도 사지 못하는 모델이에요. 토요타
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을 한 채 우쭐거리는 비서한테 굳이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굳이 청현도장이 있는 절에서 밥 먹는다고?’김에훈은 흥미진진한 미소를 지었다.‘청현 도장이라는 사람이 참 재밌네. 분명 속세를 벗어나서 수련 중이라고 들었는데 사업을 늘여놨네? 어제 뺨 맞은 얼굴에 부기가 가라앉았는지 몰라.’비서는 김예훈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청현 도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지레 겁먹은 줄 알았다.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한 채 핸들을 돌려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몇 시간 뒤, 차량은 부산 금정산 아래에 도착했다.부산을 대표하는 금정산은 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성을 지니고 있으며 해발고가 높진 않아도 경치가 좋았다.소문에 의하면 전국 10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부산 견씨 가문이 바로 이 금정산 뒷산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앞산은 관광객과 등산객들로 붐볐고, 이곳에 나타나는 차들은 대부분 지프차였지 이런 스포츠카는 드물었다.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비서는 그런 시선을 즐기려고 일부러 오픈카 뚜껑을 열었다.김예훈은 쪽팔려 죽을 것만 같았다.BMW Z4 모델은 그렇게 맥라렌 정도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차량은 곧 핫플레이스인 청현 사찰에 도착했고, 한적한 이곳에는 온통 전통적인 건축물이 즐비하였다.BMW Z4 차량은 청현 도장의 주차장에 주차되었고, 비서는 김예훈을 이끌고 절 방으로 향했다.문이 열리자, 몇몇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중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하은혜의 미모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이외에도 그녀의 옆에는 지방시 정장 슈트를 입고 있는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그녀는 바로 조효임이었다.지금의 조효임은 예전과 달랐다. 정갈한 메이크업에 명품 옷을 입고 있었고, 심지어 일반인이 연봉으로도 사지 못할 정도의 액세서리, 스카프도 하고 있었다.이 밖에도 나름으로 내로라하는 인플루언서들도 있었지만 하은혜, 조효임의 미모와 비교해 봤을 때 그저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선명한 성형
“은혜 씨, 사실 저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부끄럽게도 저희 아빠가 성남에서 데려온 가난한 친척이랍니다. 얼마 전에 제가 오산 그룹 사업부 사원으로 꽂아드렸는데 글쎄 무슨 운으로 계약을 하나 성사시켰는지 연차를 냈더라고요. 뭐 하러 갔나 했더니 은혜 씨 보디가드를 하고 있었어요? 분명 은혜 씨가 속은 걸 거예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저는 정말 잘 알고 있어요! 저 사람이 은혜 씨를 보호해 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몇몇 강남미인들은 조효임의 말을 들은 순간 김예훈에 대해 흥미를 잃고 말았다.하은혜의 친구가 온다길래 무슨 세자님이나 도련님인 줄 알고 기대했지만 겨우 보디가드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보디가드인 것도 모자라 효임 씨 아버님이 시골에서 데려온 가난한 친척이라고?’이 순간, 강남미인들은 마치 공기 속에서 시골의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아 한 손으로는 코를 틀어막고 한 손으로는 싫증 난 표정으로 부채질했다.김예훈은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조효임이 자신한테 이곳에 왜 왔는지 질책하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이 이토록 보잘것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하은혜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면서 질문했다.“효임 씨, 정말 효임 씨 가난한 친척 맞아요? 분명 제 안전을 책임져 줄 대단하신 분인데.”“은혜 씨를 보호해 줄 대단한 분이라고요?’조효임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은혜 씨, 도대체 어떤 회사를 통해 소개받은 거예요? 얼른 그 회사 신고해요. 아무나 데려와도 이 사람보다는 천배 만배 낫겠어요! 저는 이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분명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자기 주제도 모르고 이력서를 넣은 걸거예요. 무슨 회사인지는 몰라도 똑같이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은혜 씨를 보호하겠어요? 지금은 괜찮다지만 길 가다 깡패가 시비 걸어도 해결하지 못할 사람이에요. 은혜 씨, 그냥 몇만 원 쥐여주고 돌려보내요! 그래도 계속 변우진 씨한테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