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 일그러진 견청룡의 모습을 본 김예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난 견세자가 죽는 거 두렵지 않다는 말 믿고 있어. 협박해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도 알고 지금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견청룡은 이 말에 눈썹을 움찔하더니 표정마저 어두워졌다.김예훈의 말대로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부산 6대 세자 중의 한 명으로서 아직 비장의 카드가 많이 남아있었다.잘만하면 김예훈과 정면승부를 겨뤘을 때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지만, 오늘은 우현아가 목적이라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대부분의 부하는 부산 용문당 쪽에 있었고, 그들이 오늘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우충식을 도와 회장 자리를 따내는 것이었다.김옥자의 작전이 실패하고, 김예훈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남으로써 방패막이 뚫린 견청룡은 한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대로 김예훈을 상대로 패배하게 된다면 땅 치고 후회할지도 몰랐다.“패배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거 알아. 지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김예훈은 손을 뻗어 견청룡 수중에 있는 총을 빼앗아 탄창에서 다섯 알의 총알을 빼내고는 마지막 한 알만 남긴 채 다시 탄창을 결합했다.견청룡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김예훈, 지금 뭐 하는 거야?”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난 너 같은 사람 많이 만나봤어. 졌다고 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그저 운이 안 좋아 나한테 졌다고 생각하겠지. 준비만 잘되었다면 죽어야 할 사람이 나였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니까 지금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는 거야. 목숨 걸고 아주 간단한 게임을 한번 해보자고. 돌아가면서 한 방씩 쏘는 거야. 누구의 운이 좋은지 한번 보자고. 내가 이기면 일본인의 비밀을 나한테 알려줘야 할 것이고, 네가 이기면 네가 잃은 모든 것들 전부 다시 가져가도 좋아. 어때, 해볼 만해?”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손에 쥐고 있는 총을 흔들었다.견청룡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한참 쳐다보고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에 무슨 말을 남겨
“견세자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거 인정해.”김예훈은 총을 들어 피식 웃더니 아무렇지 않게 자기 태양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여전한 헛방에 견청룡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김예훈은 총에 입김을 훅 불어 넣더니 웃으면서 말했다.“나의 운도 괜찮은 듯해.”김예훈이 총을 건넸을 때, 견청룡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다시 총을 들었을 때는 손마저 부들부들 떨렸다.이 총을 발명한 사람은 이런 게임에 쓰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런 게임은 한 사람의 자신감, 배포와 성격에 대한 크나큰 테스트였다.용기가 큰 사람만이 아무렇지 않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점을 봤을 때, 견청룡은 이미 김예훈한테 진 거나 다름없었다.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두 번이나 방아쇠를 당겼지만, 견청룡은 똑같이 해낼 수가 없었다.용기가 부족한 모습이 김예훈과의 가장 큰 차이였을지도 몰랐다.견청룡은 죽기가 두렵지 않다고 했지만 정작 생사의 갈림길에 서니 두려울 따름이었다.그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용기를 내보았으나, 마지막 순간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이때 김예훈이 비웃으면서 말했다.“견세자, 만약 두렵다면 무릎 꿇고 나한테 용서를 빌어. 그러면 살려줄지 말지 고민해 볼게.”철컥!김예훈의 말에 견청룡은 마음속 분노의 불씨가 활활 타올라 결국 방아쇠를 끝까지 당기게 되었다.견청룡의 이마에서는 눈에 띄게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살았다!’결국 제2라운드까지 버텨낸 견청룡은 흥분하면서 이 모든 것이 운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했다.그야말로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김예훈이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자기 태양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철컥!헛방이라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이로써 마지막 한 방은 결국 죽음의 한방이라는 것을 의미했다.견청룡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승리의 희망이 짓밟혔는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김예훈은 다시 총을 그의 앞에 내놓더니 말했다.“마지막 한 방은 쏴도
철컥!마지막 한 방 역시 헛방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김예훈의 모습에 견청룡은 오른손과 안면근육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너! 지금 나 갖고 논 거야? 제기랄! 그것도 모르고 내가 당한 거야?”견청룡은 탄창에 총알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펄쩍 날뛰기 시작했다.처음부터 김예훈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결국 자신의 무능함과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견청룡의 멱살을 잡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견세자, 정말 아쉽네. 난 네가 네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든,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든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정말 실망이네. 너 같은 사람은 게임 룰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똑똑히 알았어. 오늘 널 죽여버리지 않으면 내일 피비린내 나며 복수하러 오겠지. 그러니까 견세자, 이만 죽어야겠어. 오늘부터 이 세상에는 부산 5대 세자만 존재하는 거야.”빠직!김예훈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오른손에 힘을 실었다.견청룡은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하더니 입에서 피를 뿜어내면서 머리가 핸들에 떨어지고 말았다.삐!자동차 경적은 마치 그의 장례식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조수석에 있는 견청룡의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조용히 뒤돌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람을 보내 우씨 가문을 정리하도록 해. 그리고 나 픽업하러 좀 와야겠어.”...김예훈은 견청룡을 정리하고 약속대로 포레스트 별장으로 돌아가 우현아와 점심을 함께했다.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아예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오전에 있었던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체력이 많이 소모된 모양이었다.오늘 저녁에 한방에 부산 용문당을 접수하려면 휴식이 필요했다.그동안 김예훈이 용문당에 손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뒤에서는 견청룡과 일본인이 받쳐주고 있고, 우충식의 실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윤하와 최산하 두 사람만 믿고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지금은 견청룡이 죽고, 우충식의 배후 세력이 그저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 일본 사람일 거라고 여겼기
마지막 관문을 들어가자, 넓고 빈 공간에 커다란 링만이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주위에는 의자들이 둘러싸여 있어 마치 소형 체육관처럼 보였다.대략 천명 가까이 되는 쌍방 인수에 현장은 떠들썩했고 원래 대립적 구도였던 터라 이곳은 마치 금방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과도 같았다.링 위에 남겨진 피 흔적을 보니 이미 여러 차례 대결을 주고받았던 모양이다.지금 이 순간도, 링 위에서 두 사람이 대결을 진행하고 있었다.한 명은 당도를, 한 명은 장검을, 서로 부딪혔을 때 불꽃이 피어올랐다.김예훈은 우두커니 지켜보다 링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오정범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경기도 조직 보스인 그는 껄렁거리는 평소 모습처럼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대결을 이어갔다.당도 부대의 핵심기술을 습득한 그의 실력은 아무런 기교 없이 빠르기만 했다.상대방도 고수였지만 오정범을 상대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승리를 다투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그리고 링의 양옆에는 우뚝 솟은 무대가 있었다.한쪽 무대에는 초라한 모습으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진윤하와 최산하가 앉아있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정범을 출전시킨 모양이었다.그리고 무대 반대편에는 우충식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윤하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다쳐서 직접 출전할 수가 없었다.링 위에서 종횡무진하고 다니는 오정범이 아무리 실력이 강해 보이긴 해도 우충식은 그가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우충식은 상대 팀 중에서 진윤하의 실력이 가장 대단하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은 그저 고만고만하다고 생각했다.현장에 있던 여제자들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오정범을 쳐다보고 있었다.김예훈은 딱 봐도 오정범이 손쉽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우충식의 오른팔인 송성민이 왔나 몰라. 왔다면 오정범이 상대가 안 될 텐데.’오정범은 당도 부대에 1년밖에 있지 못하고 전역했기 때문에 그저 기본실력밖에 되지 않았다.당도 부대에서 다른 사람이 출전했다면 승
김예훈은 이 상황을 이미 짐작하고 부하더러 우씨 가문을 깔끔히 정리하라고 했다.이 순간, 견청룡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김옥자 역시 김예훈을 발견하고 긴 다리를 뻗어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김 도련님 아니야. 오늘 아침 우리 우씨 가문에 가서 행패를 부리다 견세자님한테 잡혔다고 들었는데 용케도 살아있네. 축하해.”김옥자는 김예훈의 태도를 보려고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눈빛을 주고받다 결국 그가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원래대로라면 견청룡이 김예훈을 죽였을 만도 한데 그가 아무렇지 않게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김예훈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김옥자를 쳐다보았다.오늘 아침에는 워낙 성급히 병원을 떠나는 바람에 아직 본때를 보여주지 못했다.하지만 그녀가 이 정도로 빨리 회복되어 다시 날뛰기 시작할 줄은 몰랐다.김예훈이 손으로 핸드폰 모양을 보여주자, 김옥자는 표정이 확 바뀌더니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김옥자의 경계와 우현아의 의문을 마주하면서도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고, 그저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지켜볼 뿐이었다.“오정범이 이미 몇 명을 해결한 거야?”“네 명.”우현아가 자연스레 대답했다.“아빠 쪽에서 연이어 용문제자 네 명을 출전시켰는데도 전부 오정범의 상대가 아니었어. 진윤하는 뭐 때문에 다쳤는진 몰라도 오늘 출전이 불가능할 것 같아. 최산하도 별로 쓸모없는 것 같고. 어디서 오정범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는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봤을 때 우리 아빠가 어떻게든 오정범을 죽여버리려고 할 거야. 오늘 밤은...”우현아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지고 말았다.우충식이 부산 용문당 화장 자리에 오르는 것은 결코 그녀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지금도 우씨 가문 사람들이 주식을 내놓으라고 안달인데, 우충식이 회장 자리에 오른다면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몰랐다.김예훈은 우현아의 손을 툭툭 치더니 웃
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김옥자 일행을 쳐다보더니 말했다.“다들 쓸데없는 말 끝나셨나요? 그렇다면 길 좀 비켜주실래요?”우현아는 김예훈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몰랐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오히려 김옥자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그의 옆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김예훈, 이곳은 네가 관여할 곳이 아니야. 그만하지? 내 비밀을 알고 있는 게 뭐 그리 대단해서? 이거로 충식 씨한테 겁주려고? 회장 자리에 오르는 걸 방해하려고? 꿈 깨!”김옥자는 우충식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회장직을 기필코 따낼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우충식은 오늘 어떻게든 회장 자리에 오르려 할 것이고 방해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 뻔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우충식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조강지처마저 죽인 그는 이 순간 대결에 정신이 팔려 다른 일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잠시 후, 김예훈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내가 회장 자리에 앉지 못한다면 절대 못 앉는 거야. 그 자리는 내 것이거든.”김예훈의 말에 우현아는 멈칫하더니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김옥자 역시 멈칫하긴 했지만 잠시 후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도련님께서 대단하시다는 건 알겠는데, 용문장 회장 자리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무리 실력이 강하다고 해도 용문당 어르신을 제패할 수 있겠어요? 그럴 능력도 안 되면서 이방인 주제에 회장 자리에 오르려고요? 순진하긴!”김옥자는 김예훈한테 철저히 실망하고 말았다.전에는 신비롭고도 젊은 나이에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그저 운이 좋았던 녀석이라고 생각되었다.‘실력이 좀 된다고 잘난 척하긴?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김옥자 일행들 역시 가소롭다는 듯이 김예훈을 쳐다보았다.‘회장 자리가 자기 것이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제 몇 시라고 벌써 헛된 꿈이나 꾸고 있어? 망상에 젖어 잘난 척하는 사람은 딱 질색이야.’‘능력이 좀 된다고 해서 정말
링 위.오정범이 손에 쥐고 있는 당도에서 불빛이 반사되자 맞은편에 검을 쥐고 있던 용문제자들은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전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엄연히 대결이었기 때문에 승부를 가린다는 것은 생사를 가리는 것과도 같았다.연속으로 다섯 판이나 패배하고 이제 겨우 마지막 비장의 카드만 남게 되었지만 우충식은 전혀 낭패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오정범을 호시탐탐 노리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샤삭!이때 2미터 가까이 되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통로를 벗어나 링 안으로 뛰어들었다.“다음 순서는 오정범 씨와 송성민 씨의 대결입니다!”송성민이라는 이름이 들려오자, 현장은 들끓기 시작했다.우충식의 제1장군이자 부산 용문당의 제1 맹장인 그는 부산 용문당 내부에서 명성이 높았다.산속에서 수련을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것이다.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송성민은 하나의 도끼를 든 채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한 마리의 곰과도 같이 근육질 몸매에 커다란 키를 지닌 그는 특유의 위압감을 뿜어냈다.워낙 흉악스러운 사람이라 소문에 의하면 엄동설한에 맨손으로 승냥이 떼마저 때려눕혔다고 했다.부산 용문당에서 진윤하만 없었더라면 그가 제1인자로 남았을지도 몰랐다.아무리 진윤하라고 해도 송성민을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이 순간, 송성민의 포악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우충식 일행은 그가 무조건 손쉽게 승리할 거라고 믿고 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김예훈 역시 이 장면을 보더니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대한민국 서북쪽에 있는 마오국 사람들은 전투 민족이라 태생이 이런 포스를 풍겼다.유라시아 전쟁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드물었기 때문에 그가 도대체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많이 궁금했다.송성민은 그저 정자세로 두 손에 도끼를 들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 포스가 어마어마했다.“칵! 퉤!”오정범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냈다.건들거리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하기
“죽어!”이때 갑자기 송성민의 포효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자, 현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사회자는 눈앞이 어두워지는 느낌과 함께 피를 토해내면서 그 자리에 쓰러질 뻔했다.김옥자 일행마저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그중에는 바지에 오줌을 지린 사람도 있었다.진윤하와 최산하는 송성민이 강한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 몰랐는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와 반면, 우충식은 그저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송성민이 기승을 부릴수록 나한테 능력 있는 부하가 많다는 것을 설명하겠지? 그러면 회장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 역시 나일 것이고.’기가 꺾인 오정범은 당황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이때 송성민은 이 기세를 몰아 바닥에 도끼를 끌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심상찮은 포스를 보니 오정범을 죽여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촤라락!오정범은 별다른 선택 없이 허리춤에서 당도를 꺼낼 뿐이었다.칼부림이 빨라 보이긴 해도 웅장하고도 힘이 넘쳐나는 송성민을 마주하자니 별로 승산은 없어 보였다.사람들은 이미 오정범이 패할 거라고 예상했고, 심지어 우충식의 열혈 팬들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기도 했다.“좋아!”샤샤샥!당도에서 반사되는 눈 부신 불빛과 함께 오정범의 당도는 송성민의 미간을 겨냥하게 되었다.송성민은 멈칫하긴 했어도 별로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빠직!진윤하 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오정범 수중에 있던 당도가 두 동강 나고 말았다.‘오정범이 패했다고?’현장은 고요함도 잠시, 뒤이어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오정범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용문자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5연승으로 용문제자들의 기를 꺾어놓긴 했어도 결국 송성민에게 패할 줄 몰랐던 것이다.곳곳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함께 오정범 편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치게 되었다.송성민의 전력은 용문제자 젊은 층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이었다.오정범은 한숨을 내쉬더니 당도를 주워 링에서 뛰어내렸다.송성민은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