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변함에 따라 우충식과 견청룡이 더욱 미쳐 날뛰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김예훈은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을 철저히 해결하기 전까지 우현아는 위험할 것이 뻔했다.하지만 해결해야 할 일도 있고, 진윤하도 자신의 임무가 있었기에 우현아를 보호할 만한 사람이 한 명쯤은 필요했다.서진욱은 실력이 보통이었지만 일반인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지는 못해도 살려달라고 빌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서진욱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말했다.“김 도련님, 여기 남아있겠다고 약속드릴 수는 있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말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진윤하에게 가르쳐준 거, 저에게도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서진욱은 기대가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김예훈이 양진우의 뺨 때리던 스피드가 너무 빨랐어. 정말 살벌한 무술 세계에선 스피드가 생명이라는 말이 맞았어.’서진욱은 진심으로 배우고 싶었다.김예훈은 살짝 멈칫하더니 고개를 쳐들면서 말했다.“그래. 남아서 현아를 보호해 주겠다고 하면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할게. 나는 가르쳐줄 시간이 없으니까 진윤하한테 가르쳐달라고 해. 이미 배운 사람이니까.”“네!”서진욱은 김예훈한테 직접 가르쳐달라고 강요할 수가 없었다.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한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김예훈은 우현아를 다독여 주고는 지하실로 내려갔다.헬스장으로 사용했던 지하실이 어느 때부턴가 심문실로 변해버렸다.진윤하는 심문에 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나절이 지나도 아무것도 캐내지 못했다.이미 폐인이 된 양진우는 악독스러운 표정으로 김예훈이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현실자각이 되었는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아직도 말하지 않으려고 그래?”김예훈이 흥미진진해하면서 물었다.진윤하는 기지개를 켜더니 말했다.“김 도련님, 제가 무능했습니다.”“괜찮아. 내가 직접 하면 되니까. 문이나 닫아줘.”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앉았다.진윤하는 조심스럽게 김예훈에게 물을 따라주고는 부하를 데리고 이곳을 떠났다.전체 지하실에는 김예훈과 양진
김예훈의 질문에 양진우는 표정이 확 변했고 잠시 후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했다.“김예훈, 너 도대체 누구야? 왜 용문당과 견 세자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너랑 관련된 일이야?”사실 양진우는 김예훈이 제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견청룡을 질투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봤을 때 용문당을 겨냥한, 목적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심지어 견청룡과 우충식이 아직 김예훈을 모르고 있을 때부터 김예훈은 이미 그들을 눈여겨보았던 것이다.“내가 누군지 알 필요 없어. 알아서 좋을 것도 없을 거니까.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만 알려주면 돼. 아, 맞다. 그리고 나 사실 일본 야마자키 파에도 관심이 있는데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면 말해줘도 되고. 그러면 내가 너를 살려줄지 어떻게 알아.”야마자키 파를 듣자마자 양진우는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하지만 그도 똑똑한 사람이라 김예훈을 아래위로 훑더니 말했다.“이제야 알겠네! 네가 바로 임강호 부부대신 일을 해결해 준 놈이었네! 네가 정민이를 죽였지? 백낙당에 가서 전국영 일행을 건드린 것도 일부러 그랬지?”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양진우는 결정적 질문이 떠올랐다.김예훈은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다시 질문했다.“그러면 임강호 부부의 일도 야마자키 파랑 어느 정도 연관 있는 거였네? 그리고 견청룡도 야마자키 파랑 엮여있는 거고. 내 말 맞지?”양진우는 표정이 확 바뀌긴 했지만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김예훈,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똑똑히 알려주는데, 야마자키 파도 그렇고 견 세자님도 그렇고 네가 건드릴 만한 존재가 아니야! 네가 무슨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지 알 자격도 없어! 내가 말해주는데, 그냥 모르고 있는 것이 좋을 거야! 아니면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될 거니까!”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양진우, 아직도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나 본데. 너는 지금 갇혀있는 거야. 누가 갇혔는데 너처
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서서히 입을 열었다.“너는 견청룡 1호 킬러잖아. 그런데 너는 걔한테 충성을 다하지 않았어. 네가 충성을 다한 것은 그의 돈일 뿐이야. 너 같은 사람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있을 거라고.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이 기밀이긴 해도 너의 신분으로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들이야.”“김예훈, 그렇지만은 않아.”양진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내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있긴 하지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야. 정말 중요한 부분은 견 세자님이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지.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김예훈은 피식 웃을 뿐이다.“그래? 그러면 쓸데없는 말 말고,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 네가 죽으면 너의 와이프, 그리고 딸은 어떻게 할 건데? 나한테 말하지 않아도 해외에 너의 가족들이 몇백 년을 써도 남을 자금이 있다는 거 알아. 비록 지금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김예훈은 핸드폰으로 양진우에게 캡처 사진을 보여주었다.양진우는 해외에 개설한 익숙한 은행 계좌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은행 계좌를 알아낸 상황에서 동결시키는 것은 김예훈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하지만 양진우는 그래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고 했다.“곧 죽을 마당에 은행 계좌가 동결된 게 뭐 어때서? 어차피 쓰지도 못할 거.”“그래? 그러면 가족들은?”김예훈은 또 캡처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백인의 여인과 여자아이가 유럽풍 별장에서 뛰노는 모습이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영세중립국이 안전하긴 하겠지만, 집에서 죽어버리면 현지 경찰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걸? 내 말 맞아?”양진우는 멈칫하더니 분노했다.“김예훈, 이 악마 같은 자식! 너는 진짜 악마야! 우리 바닥에서는 가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너는 어쩜 그럴 수 있어?”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가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견청룡 지시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닐 때는 언제고? 걱정하지 마.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니
김예훈이 양진우를 해결하고 있을 때, 부산 사랑 병원에서는 우충식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환자실 밖에 서 있었다.그의 옆에는 부산에서 이름있는 의사, 외과 전문의, 내과 전문의들로 가득했다.어렵게 한자리에 모였어도, 하나같이 표정이 어둡기만 했다.우충식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더욱 불안해졌다.“박 교수, 해결 방안이 있어요? 이미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이대로라면 우리 와이프 견디지 못할 거예요.”우충식은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김옥자는 몇 시간 동안 병세가 호전되어 살짝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이 모두 거대한 대가를 치른 결과였다.아무리 호전되었다고 해도 아주 잠시적이라 절망적이기만 했다.“우 회장님, 저에게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사모님 병의 근원을 찾지 못했습니다.”이때 50 몇 살 되어 보이는 의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그래서 함부로 수술을 진행하지 못하는 거고요. 수술을 진행한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치료일 뿐입니다. 이대로 갔다간 10시간 후에 사모님께서... 철저히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되면 사고까지 멈춰 수액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 회장님, 남은 시간 동안 사모님이랑 잘 얘기해 보십시오. 가끔은 안락사가 평생 식물인간이 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면 서로 고생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박 교수는 한숨을 내뱉을 뿐이다.의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환자를 돌본다고, 박 교수 역시 김옥자를 살려내고 싶었다.하지만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수술을 진행했다가 김옥자가 죽게 된다면 모든 책임을 떠안을지도 몰랐다.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책임져야 할지도 몰랐다.박 교수의 말에 식은땀만 흘리고 있던 다른 의사들도 하나같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처음 보는 증세에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우충식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서서히 말했다.“여기 계신 분들 모두 부산 의학계에서 이름날린 분들이신데. 정말 병의 근원
전남산의 이름을 들은 우충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남산 어르신께서 함부로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박 교수, 자신 있어요?”“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제가 부탁하면 꼭 오실 것입니다.”박 교수는 표정이 어두웠다.“그런데...”“그런데 뭐요?”우충식은 따라서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비서한테 연락했더니 지금 대수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수술하는 과정에 아무도 방해해서는 안 되고요. 그러니까 전남산 어르신을 모셔 올 자신은 있지만 수술이 끝난 후에야 비행기를 타고 오실 수 있으니 아마도, 24시간 뒤에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모님께서는 24시간이나 버텨내지 못하실 거고요.”박 교수는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오라고 명령했을 거지만 상대는 명수 전남산이라 서울 세자라고 해도 함부로 명령하지 못하는 존재였다.더군다나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말이다.강제로 수술을 중단시켰다간 그 후과는 아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우충식의 표정은 극도로 어두웠다.부산에서는 어느 정도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박 교수가 강제로 전남산을 모셔 오지 못하는 것처럼 우충식도 불가능했다.이 순간 우충식은 억지로 화를 억누르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박 교수, 그래도 이 일은 박 교수한테 맡길게요. 전남산 어르신도 모셔 오고, 우리 와이프 병세도 늦춰주세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얼마든지 투약해도 좋아요.”우충식은 말하다 목이 메어왔다.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김옥자가 정말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면 금릉 권씨 가문과는 연이 끊길 수도 있었다.곧 회장 자리에 오를 우충식에게는 막대한 손해라 이것 때문에 회장직 자리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부부 사이가 좋아서라기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떻게든 김옥자를 살려내고 싶었다.박 교수는 우충식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더니 보조에게 보충제를 투약하라고 지시했다.보충제 용량이 그전보다
사람들이 수술실을 떠나서야 우충식은 김옥자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박 교수가 이미 전남산 어르신을 모셨어. 그쪽 수술이 끝나면 바로 오실 거야. 그러니까 꼭 버텨내야 해!”김옥자는 창백한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아까 한 말들 다 들었어요. 만약 전남산 어르신께서 2박3일 동안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면요? 수술 후에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더 지켜봐야 한다면요? 오셨는데 제가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면요? 여보, 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어요. 저를 좀 살려주세요!”우충식은 멈칫하고 말았다. 김옥자가 한 말들이 불가능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발생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는 김옥자를 다독이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어르신께서는 꼭 제때 나타나실 거야.”김옥자는 피식 웃고 말았다.“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요? 이미 아는 사람들을 통해 어르신께 연락해 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다 똑같았어요. 환자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대기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대기 줄은 5년 뒤까지 꽉 찼고요. 저희 5년 동안 기다릴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제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해도 어르신께서 저를 무조건 살려낼 수 있대요? 실수라도 한다면 저는 어떡해요? 그냥 죽기보다도 못하게 식물인간이 되어버릴까요?”이런 생각에 김옥자는 두렵기만 했다.예전에는 우현아 엄마가 이런 결말을 맞게 되어 비웃기만 했는데 정작 자신이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던 것이다.모두 인과응보라고 말할 수 있었다!“전남산 어르신께서 해낼 수 없다면 다른 전문의를 찾아봐야지!”우충식은 한마디 한마디 어렵게 내뱉었다.“이 세상에서 능력 있는 의사를 찾아내지 못하겠어?”김옥자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전남산 어르신께서 실수라도 한다면 저를 더 이상 살려낼 방도가 없을 거예요.”김옥자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화색이 돌았다.“김예훈! 김예훈을 찾으면 돼요! 다른 사람들은 제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몰랐는데 김예훈은 단번에 알아챘어요! 그러니까 해결
새벽 12시. 야식 시간이 돌아왔다.평소였다면 이 시간에 부산 타임 가든에서 영업을 마감했겠지만 김예훈이 찾았을 때는 불이 밝은 상태였다. 바로 우충식이 통으로 빌린 것이다.그는 로비 정중앙에 앉아 열심히 레어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마치 고기향을 느끼듯이 천천히 씹고 있었다.그의 옆에는 불진을 들고 있는 한 도사가 도덕경을 읽고 있었다.앞에 놓여있는 핸드폰이 가끔 켜지지 않았다면 신선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우충식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끌어내 자리에 앉더니 스파게티 하나를 주문했다.스파게티가 올라오고, 포크로 먹으면서 말했다.“이 야심한 밤에 왜 보자고 하셨어요?”우충식은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열정적이었다.김예훈이 스파게티를 주문한 것을 보고 직원더러 이미 준비한 요리를 올리라고 했다.그는 모든 음식이 올라서야 웃으면서 말했다.“김 도련님께서 아직 식사하지 않으셨다면 이 요리들도 입맛에 맞는지 한번 맛보세요. 별로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원하시는 거 모두 셰프님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니까요.”아무리 열정적이라고 해도 옆에 앉아있는 도사의 신분을 먼저 소개할 생각이 없었다.포크를 잡고 있던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다른 건 필요 없고 스파게티면 충분해요. 남의 신세를 지면 함부로 말도 못 한다잖아요.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한테 신세 지는 거거든요.”김예훈은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하면서 5만 원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이 모습에 우충식은 동공이 흔들리고 말았다.옆에서 도덕경을 읽고 있던 도사는 고개 들어 김예훈을 쳐다보더니 싫증 난 표정을 지었다.눈앞에 있는 예의 바르지 않는 김예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우충식 역시 김예훈을 잠깐 쳐다보더니 짜증이 났다.‘부산 6대 세자도 다 만나보았는데. 성수현 세자님은 고집불통이고, 심옥연 세자님은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견청룡은 야심이 가득하지... 세자님마다 자기 성격이 있긴 해도 김예훈처럼 다가가기
김예훈의 가시 돋친 말에 우충식은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김예훈 이 자식, 정말 혀를 찌르는 질문을 하네!’여진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비록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도사 역시 김예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보잘것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은 우충식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먼저 말했다.“부 회장님, 쓸데없는 말 그만하시고, 야심한 밤에 저를 불러낸 건 단지 밥 먹자고 부른 건 아니겠죠? 할 말 있으면 빨리하시고, 없으면 그냥 갈게요. 부 회장님 따님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거든요.”김예훈은 우충식이 자신을 부른 목적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자극했다. 우충식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었다.우충식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김예훈의 마지막 한마디를 무시한 채 말했다.“김 도련님께서 그렇게 직설적이라면 저도 그냥 말할게요. 예전에 저희 와이프를 만났을 때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면서요. 올해 다시 발작하면 철저히 식물인간으로 될 거라고도 하셨고.”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요. 증상이 아주 또렷했죠. 부산 전문의들 말고 전남산 어르신을 모셔 와도 살려내지 못할 거예요.”우충식은 움찔하고 말았다.“김옥자 씨는 무슨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도를 닦다가 사도에 빠지게 된 거예요.”우충식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러면 이 증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그럼요. 심지어 아주 간단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죠.”김예훈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제가 직접 나서면 반 시간 내로 해결해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평생 다시 발작하지 않게 해드릴 수도 있고요.”김예훈은 담담하긴 했어도 자신감이 넘쳤다.도사는 참지 못하고 고개 들어 김예훈을 무시하듯이 쳐다보았다.“그래요? 그렇게나 자신 있으세요?”우충식은 오른손을 움찔하고 말았다.“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데요?”“전통 무술은 전통 무술로 해결해야죠.”김예훈이 아무렇지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