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은 오른손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더니 고개 돌려 담담하게 말했다.“그러니까, 상현 어르신께서는 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저에게 설명도 안 해주실 건가요?”상현이 웃으면서 말했다.“젊은이,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지... 그러니까 설명을 못 해줄 것 같은데? 화가 나면 직접 나를 후회하게 만들던가. 그러면 내가 설명해 줄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아?”상현은 보잘것없다는 표정을 했다. 경찰마저 굽신거리게 하는 김예훈이 어느 정도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자기 머리 꼭대기 위에 앉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브라보! 정말 대단하시군요!”김예훈은 살짝 고개를 쳐들더니 말했다.“부산에 온 뒤로 이렇게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는 사람은 없었는데 말이죠. 내일 되면 용서해달라고 애원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 재미없을 것 같거든요. 갑시다!”말을 끝낸 김예훈은 테이블을 발로 차 뒤집어엎더니 상현이 건넨 시가를 짓밟고는 정소현을 안고 이곳을 떠났다.임승협은 체포한 사람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데리고 갔다.“젊은이, 체면을 챙겨줄 때 덥석 받을 것이지. 능력이 좀 된다고 해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지 않으면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니까!”상현은 다리를 꼬고 김예훈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더니 옆에 있던 진우현한테 말했다.“부산 경찰서에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 우리 혜성 세트장을 뛰어 들어왔는데 이대로 넘어갈 순 없지!”김예훈이 나댄다고 생각한 상현은 임승협 일행과 함께 모조리 짓밟아 죽이겠다고 다짐했다.“네!”진우현은 체면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는지 흥분된 표정으로 부산 경찰서에 전화했다.하지만 잠시 후 다시 어두워진 표정으로 전화를 끊더니 예의 갖춰 말했다.“상현 어르신,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경찰서에서는 정상적인 충동이라 프로세스상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합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진우현은 머뭇거리기만 했다.“그리고 뭐?”상현은 미간
상현은 소한미의 충고를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소한미도 어느 정도 능력이 되긴 했지만, 상현과 같은 연예계 대부가 봤을 때 그저 노리개일 뿐이었다.노리개가 두려워하는 사람을 상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그리고 경찰이 왜 뛰어 들어왔는지는 곧 원인을 알게 되었다.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임강호가 최근에 무슨 일인지 병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완쾌되어 부산에서 세력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던 것이다.임승협 역시 강서 임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이 기세를 타고 두려운 사람이 없었다.‘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김예훈이라는 사람은 믿을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거지.’임강호가 다시 살아나자, 경찰서 내부에는 임승협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상현은 표정이 다시 평온해지면서 시가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더니 명령했다.“첫째, 그놈 주소를 알아내서 백승우한테 알려줘. 그놈이 스크린을 잘라 이유빈을 죽여서 정소현을 여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다고! 둘째, 전체 연예계에서 정소현을 매장해 버려! 저년을 띄워주려고 하는 자는 나 상현이랑 등을 돌리게 되는 거라고! 셋째, 전체 부산 사람한테 전해. 김예훈 배후 세력이 누군지는 몰라도 내일 당장 내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아니면 죽여버리겠다고 전해!”그는 연이은 명령을 마치고서야 씩씩거리면서 입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피도 안 마른 놈이 경찰이랑 좀 친하다고 나랑 걸고 들어? 기껏 봐줬더니 안 되겠어! 그럴 바에 코를 납죽 하게 만들어 줄 거야!”상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자 진우현 등은 손뼉 치면서 환호했다.“알겠습니다. 꼭 잘 해결하겠습니다!”...이와 동시에 김예훈은 임승협더러 여배우들을 데려다주라고 했고, 최산하를 불러 그녀들을 보호하도록 했다.그리고 자신은 정소현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김예훈은 병실을 나서더니 전화 몇 통을 걸었다.상현과 같이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기로 했다.통화를 마친 그는 포레스트
“상현 어르신, 큰일입니다. 부산의 안전 관리계통에서 오늘 아침, 우리 혜성 세트장을 봉쇄했습니다.”“우리 세트장의 안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검사해야 한다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톡톡 플랫폼에서 우리가 띄운 인플루언서들을 데려갔습니다!”“인도 청별 그룹이 우리와의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스캔들 때문에 활동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우리와 합작 중인 경기도의 은행에서는 저희 자금을 동결시켜 놓았습니다. 말로는 혜성 엔터테인먼트가 채무가 많다고, 최근에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전화가 하나씩 들어오자 상현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다 그의 부하가 걸어온 전화인데 부하들은 이미 그 소식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헤매고 있었다.그중 소식 하나만으로도 엔터테인먼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고급 세단에 앉은 상현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시가에 불을 붙인 손도 덜덜 떨었다.혜성 엔터테인먼트를 맡아온 몇 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설마, 이 모든 것이 그 김예훈 때문인가?하지만 김예훈이 무슨 능력으로?상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김예훈 같은 놈이 이런 일을 주도할 수 없을 텐데...하지만 김예훈을 제외하고 상현에게 앙심을 품을 사람은 없었다.상현의 차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이윽고 더 많은 나쁜 소식들이 들려왔다.예를 들면 엔터테인먼트 안의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잡혀갔다거나.심지어 진주 쪽에서도 사대 가문이 상현과 합작을 중단하겠다고 연락이 왔다.이런 소식이 들려올수록, 혜성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은 점점 떨어졌다.“하, 김예훈, 이 자식. 실력이 좀 있는 놈인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거든.”상현의 눈에 한기가 서렸다. 이윽고 그는 차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향해서 갔다. 부산 버뮤다 거리. 거품기처럼 생긴 빌딩 앞에서 상현의 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상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에서 내려 빌딩 안으로 걸어 들어가 안내
성 세자는 상현에게 앉으라고 얘기한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지 바로 말해요. 내 성격 알잖아요? 난 돌려 말하는 건 딱 질색이라.”상현은 길게 숨을 들이켜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성 세자님, 오늘 제가 온 건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입니다. 제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혜성 엔터테인먼트가 큰 화를 입었습니다. 자칫하면 파산할 수도 있습니다...”“화를 입었다고요?”성수현이 되물었다.“내가 이번에 와서 싸워서 진다면 화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멀쩡히 살아 돌아온 마당에, 누가 감히 상현 씨를 건드린다는 거죠?”“강서 임씨 가문과 사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방심했습니다. 맞서기 전에 그놈의 뒷조사를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상현의 눈가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아까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했으니 그놈의 자료가 곧 올 겁니다.”성수현이 담담하게 얘기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10대 명문가의 사람이 아니고, 명문가의 어르신들이 아닌 이상,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뿐입니다. 혼자서 자수성가한 것은 대단하지만 우리처럼 몇 대에 걸쳐 가문을 지킨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니까요.”그렇게 말하면서 성수현은 옥으로 된 패쪽을 꺼내 테이블 위에 던지면서 담담하게 얘기했다.“이걸 가져가서 알려줘요. 나 성수현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그러니 당장 튀어와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라고 해요. 그러면 더 따지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배후들도 다 죽을 겁니다.”옥으로 된 패쪽에는 연하게 ‘성’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상현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예전에 옥으로 된 제비가 백성의 집에 날아들었다는 전설이 있다.성씨 가문은 금릉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 중의 하나인데 이미 10대를 넘겨 전해져왔다.그리고 성수현은 성씨 가문 부산 쪽의 세자다.부산 쪽의 세자일 뿐이지만 그는 부산 6대 세자에 들기도 한다. 성수현의 신분과 지위
김예훈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하이힐의 소리가 들려왔다.이윽고 성형한 티가 많이 나는 얼굴이 김예훈의 눈앞에 나타났다.큰 키의 여자는 온몸에 짝퉁을 입고 있었는데 같이 온 파트너와 함께 걸어오며 김예훈을 손가락질했다.“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누가 초대한 거야? 이곳은 백씨 부동산의 연회장이라는 걸 몰라? 개나 소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초대장이 없으면 이대로 꺼져!”여자는 김예훈을 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그녀는 김예훈이 밖에서 굴러먹다 들어온 촌놈이라고 생각했다.“1분 줄게. 꺼지지 않으면 사람을 불러서 네 손과 발을 부러뜨리고 던져버릴 거야.”백씨 부동산의 핵심 인물인 그녀는 산전수전 많이 겪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김예훈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나댈 수 있는 것이었다.대답하지 않은 김예훈은 사진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리고 마지막 장을 그 여자에게 보여주며 얘기했다.“이 사람이 너지? 백승우의 비서, 하가현?”“하, 내 사진까지 있어? 날 알아?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네?!”하가현은 차가운 표정을 드러내며 얘기했다.“초대장 대신 내 사진을 써서 우리의 이 고급진 연회장에 들어오려고 한 거야? 제발 거울이라도 좀 봐. 그 꼴로는 아무리 비싼 정장을 입어도 거지 같으니까. 기품이라는 것은 네가 영원히 흉내 내지 못하는 거야!”백승우의 비서인 하가현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번 연회의 귀빈은 다 하가현이 직접 초대한 것이기에 하가현은 김예훈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았다.하가현 뒤에 서 있던 여직원들이 비웃으면서 김예훈을 깔보았다.부동산에 오랜 시간 종사하면서, 그녀들은 자기가 부동산 회사 대표인 것처럼 행동했다.일반인인 그녀들은 평범하게 입은 일반인인 김예훈을 비웃고 있었다.김예훈은 핸드폰을 거두지 않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어젯밤 혜성 세트장에서 정소현한테 손을 댔지?”“정소현? 아, 그 사모님을 다치게 만든 년?”하가현은 비웃으면서 말을 이었다.“그년의 남
말을 마친 하가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호원들이 걸어왔다.“하 비서님, 무슨 일이죠?”하가현이 몸을 돌려 차갑게 얘기했다.“아무것도 모르는 이 촌놈을 밖으로 던져버려. 눈에 거슬리니까!”말을 마친 하가현이 떠나려고 했다.그녀 뒤에 서 있던 여직원들은 김예훈을 동정하듯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감히 백씨 부동산의 구역에 와서 복수하겠다고 떠들다니. 죽여달라고 찾아온 것과 다를 바 없었다.경호원들은 단봉을 들고 걸어와 김예훈을 쫓아내려고 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얘기했다.“하가현, 초대장을 보여달라고 했지? 여러 장 있는데, 볼래?”하가현이 김예훈을 향해 돌아서며 차갑게 얘기했다.“너한테 초대장이 있다고? 네가 초대장을 보여주면 내가 네 앞에서 무릎을 꿇겠어!”“그럼 꿇어.”김예훈이 앞으로 나서며 얘기했다.짝.그 소리와 함께 김예훈의 손이 하가현의 뺨을 때렸다. 하가현은 바로 날아가 버렸다. 성형한 얼굴 위로 붉은 손자국이 났다.짝. 짝. 짝.김예훈은 쉬지 않고 뺨을 때렸다. 그러자 얼마 후, 여직원들과 경호원들이 다 붉어진 뺨을 부여잡고 입가에는 피를 흘리며 날아가 버렸다.강압적인 김예훈 앞에서 그들은 피할 수도, 반격할 수도 없었다.“감히, 감히 나를 때려!?”하가현이 얼굴을 부여잡고 화를 냈다.“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김예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내 초대장이 부족한 모양이네. 몇 장 더 줄게.”말을 마친 김예훈이 앞으로 나와 또 뺨을 열몇대 때렸다.짝. 짝. 짝.하가현은 뺨을 맞고 그 자리에서 붕 날았다. 성형한 얼굴이 피떡이 되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경호원! 경호원은 어디 있어!”백씨 가문의 경호원이 달려왔지만 김예훈에게서 뺨을 맞고 하나같이 날아가더니 대리석 벽에 부딪혀 쓰러져 버렸다.바닥에 쓰러진 그들은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일어나지 못했다.이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이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올 줄은 생
쿵.김예훈이 발로 차자 황금색의 대문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버려 거대한 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연회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무대 위에서 얘기하던 사회자는 목이 턱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백승우는 부산에서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산이 몇백억 있으니 부동산 쪽에서는 꽤 유명했다.그런 백승우가 초대한 사람들은 얼마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겠는가.그들은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리라 생각하지 못해서 놀란 표정으로 두려움에 떨었다.“뭐 하는 놈이야!”사람들은 백승우의 비서가 입구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백씨 가문의 경호원이 열댓 명 달려왔다. 가장 앞장선 사람은 기세 높게 단봉과 전기충격기를 꺼내 들었다.“누구야! 누가 감히 소란을 피우는 거야!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중앙에 앉은 백승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전혀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시체를 보듯 차갑게 김예훈을 노려볼 뿐이었다.백승우는 김예훈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김예훈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죽일 것이다! 이런 장소에서는 백승우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었다. 경호원들을 시켜 김예훈을 죽이라고 하면 되니까.김예훈은 담담하게 뒷짐을 쥔 채 산책을 하듯 앞으로 걸어 나갔다.그의 앞에는 살기를 뿜는 보디가드들이었지만 김예훈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이었다.그 자신감은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아니었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보다 비웃음 가득한 표정이 드러났다.김예훈의 입은 옷은 다 합쳐도 20만이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감히 백승우를 건드리다니? 뇌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원래 미친 건지.백승우가 부산에서 손에 꼽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기관에도, 조직에도 연줄이 많았다.말 한마디만으로 김예훈 따위는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하지만 김예훈의 담담한 표정에 사람들은 살짝 놀랐다.“백승우, 10초 준다. 내 앞에
김예훈이 손쉽게 백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쓰러 눕힌 것을 보자 사람들은 왜 김예훈이 이렇게 당당한지 알 것 같았다.싸움 실력이 꽤 있는 놈이었다.백승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지금 이 바닥에는 무기가 더 강하니까.그뿐만이 아니라 권력, 지위, 돈, 힘. 이 모든 것들이 싸움 실력보다 더욱 대단했다.실력이 강한 상대를 해치우는 방법은 많다. 굳이 같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백승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보내 경호원 팀장에게 총을 들고 오라고 했다.김예훈은 차갑게 얘기했다. “백승우,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나와?!”이때 제복을 입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상류층의 기품이 가득한 그가 김예훈을 쳐다보며 얘기했다.“이봐, 여기가 부산 센터인 건 아는 거야? 이 연회장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부산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이 모든 행동의 후과는 생각해 봤고?”그 노인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위에 군림해 있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태도가 나올 수 없었다.일반인은 그 노인 앞에서 벌벌 떨면서 입을 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더 없다.김예훈은 그저 무표정으로 무대에 걸어 올라가 사회자의 마이크를 잡아 들고 얘기했다.“제가 뭐 하러 온 거냐고 물었죠? 간단합니다. 저는 복수를 하러 왔습니다. 오늘 일은 저와 백승우의 사적인 일입니다. 어젯밤 혜성 세트장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 스크린이 떨어져 백승우의 아내, 이유빈을 다치게 했습니다. 제 처제인 정소현도 마침 그 자리에 있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죠. 하지만 백 사장은 진범을 찾지 않고 제작진에게 묻지도 않고 제 처제한테 밤 시중을 들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제 처제가 거절하자 바로 그 자리에서 처제를 때렸죠. 제 처제는 슬픔에 빠져서 하마터면 차에 치여 죽을 뻔했습니다.”담담한 표정의 김예훈은 차가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며 얘기했다.“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제 처제의 복수를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