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린 시청자들이 댓글 창에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부산 도련님’을 허세만 부리다가 돈을 잃은 바보로 보고 있었다.그런 바보가 다른 사람더러 자기를 형님이라고 부르게 하다니. 컴퓨터 앞에 있는 ‘부산 도련님’은 온몸이 벌벌 떨렸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아까 후원한 스포츠카도 대출금으로 산 것인데, 더 많은 돈을 가져올 수 있을 리 없었다.20억을 더 쓴다면, 그는 앞으로 배를 긂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완전한 그의 패배다.우지환은 속이 답답했지만 체면을 지키기 위해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여캠 하나 때문에 20억을 쓰다니,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그 말에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뻔뻔한 사람은 자주 봤지만 이 정도로 낯짝이 두꺼운 사람은 처음이다.본인도 4억을 썼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묻는다니.「20억은 나한테 있어서 하루 이자의 십분의 일 정도라서. 별것 아니야.」김예훈은 담담하게 얘기했다.김예훈은 평소에 크게 돈 쓸 일이 없었다. 그가 돈을 쓴다고 해도 그의 재정 상태로 봤을 때, 20억은 정말 그의 이자 정도였다.「이만 꺼져. 20억도 없는 놈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를 자격도 없어. 창피한 줄 알아!」김예훈은 바로 우지환을 라이브 방송에서 강제 퇴장시켰다.「건물주, 대단해!」「건물주, 정말 상남자다!」「건물주 오빠, 내 라이브 방송도 와줄 거지?」댓글창에는 많은 사람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댓글은 ‘건물주’에 관한 것이었다.라이브 방송이 끝나고 김예훈이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조효임이 방에서 뛰어나와 흥분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아빠, 엄마, 저 대박 났어요! 아까 라이브 방송할 때, 누가 저한테 20억을 후원했어요! 30분밖에 안 했는데, 세금이랑 수속비 같은 걸 떼고 나면 6억은 훨씬 넘을 거예요. 돈은 둘째치고, 호구 하나 잡았으니 곧 뜰 거예요! 저도 유명해질 거라니까요! 그리고 아까 후원자랑 결혼할 거예요!”조효임은 신나서 콩콩
김예훈은 여전히 담담했다. 조인국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이미연! 당신 뭐 하자는 거야! 빌붙지 말라니! 예훈이와 효임이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어! 내가 키운 거나 다름없는 아이니까 예훈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 예훈이가 우리 집의 사위가 되어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거야! 남자한테는 돈을 얼마나 버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 너희 둘 다 똑같아!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잖아! 예훈이는 그저 시작할 발판이 없어서 그래. 발판만 있다면 바로 몇억을 벌 거야! 내가 오늘 밤 예훈이를 부른 건, 고위층 임원 자리를 준비해 두었으니 언제든지 우리 회사에 와서 출근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야.”조인국은 정말 김예훈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는 조인국을 보며, 김예훈은 굳어버렸다.“뭐요? 그 고위층 임원 자리를 김예훈 같은 쓰레기한테 준다고요?”김예훈이 입을 열기 전에 이미연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김예훈이 무슨 자격과 실력으로 그 자리에 앉아요? 고위층 임원? 연봉이 몇억 될 거라고요? 당신 돌대가리예요? 전에 얘기했을 때는 회사에 지인을 들이지 않겠다면서요! 내 사촌 동생이 그렇게 애원했는데 들여보내 주지 않았으면서, 김예훈은 들어가자마자 고위층 임원이라고요? 인국 씨, 당신 죽고 싶어요? 난 당신을 죽여서라도 반대할 거예요!”김예훈이 입사해서 몇억의 연봉을 받으며, 자기 집에 빌붙고, 조효임에게 매달리다가 결국 집안 재산까지 손을 대려고 한다면 큰일이다!이미연은 살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김예훈을 노려보았다.조인국은 굳은 표정으로 얘기했다.“내가 그렇게 정했어. 이 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이미연은 조인국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결정권? 데릴사위가 무슨 결정권이 있어요? 퉤!”욕설은 조인국을 향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데릴사위인 김예훈을 욕하면서 김예훈은 조씨 가문에 발을 들일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본 김예훈은 화를
오산 그룹이라는 이름을 듣자 조인국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오산 그룹은 큰 기업이었다. 그곳에서 일한다면 조인국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을 것이다.이미연도 한숨을 돌렸다. 김예훈이 조효임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거머리처럼 조인국의 회사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것보다는 나았다.그래서 이미연도 반대하지 않았다.조효임은 어쩔 수 없었다. 김예훈은 오산 그룹에 소개해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효임은 김예훈 같은 촌놈이 실수를 해서 조효임의 체면을 깎을까 봐 걱정이었다.그러나 김예훈의 일로 부모님이 싸우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조효임은 빨리 김예훈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하지만 아빠, 먼저 얘기하는 건데요, 오산 그룹에 들어가자마자 몇억의 연봉을 받을 수는 없어요. 오산 그룹에서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오산 그룹에 입사하는 건 도와줄 수 있지만 그 후의 일은 본인의 능력에 달렸어요. 능력만 있다면 몇억은 무슨, 몇십억도 문제없어요.”조효임은 진지한 얼굴로 부모님께 얘기한 후, 몸을 돌려 오만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면서 얘기했다.“며칠 후에 나랑 같이 오산 그룹에 가. 1년 안에 연봉 10억을 찍을 수 있다면 나랑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말을 마친 조효임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난 정말 천재야!’이렇게 하면 부모님의 갈등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김예훈이 그들에게 빌붙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김예훈과 결혼시키려는 조인국을 완곡하게 거절할 수 있다.연봉 10억을 찍으면 기회를 주겠다고 얘기했으니 김예훈이 그만한 연봉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김예훈을 탓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만약 김예훈이 연봉 10억을 찍을 수 있다면 그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회를 줘도 괜찮을 것이다.조인국은 조효임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 있다가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효임아, 확신 있는 거냐? 예훈이를 오산 그룹에 입사시키는 것 말이다. 게다가 10
생각해 보니 조효임의 말이 맞았다.우지환 같은 사람도 연봉이 4억 정도다.그러니 김예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억 단위의 연봉을 받을 리가 없었다.정말 꿈에서만 있을 일이다.그러니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조인국과 싸울 필요 없다.그 생각에 이미연은 김예훈을 쳐다보며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김예훈,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효임이 말대로 해! 얼른 효임이한테 감사하다고 해야지! 오산 그룹은 부산에서 꽤 유명한 기업이야. 주주들은 모두 부산 용문당의 고위직이라고. 그곳에서 일하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야. 족보에 적어서 두고두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 오산 그룹에 가서 네 주제를 잘 알고 행동해. 널 소개해 준 효임이한테 피해 가는 일이 없게 말이야! 네가 억 단위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 인국 씨가 집을 선물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으마! 그리고 10억의 연봉을 받는다면 두 사람의 교제를 생각해 볼게. 그전에는 꿈도 꾸지 마. 알겠어?!”이미연은 오산 그룹을 이용해 김예훈이 조씨 가문에 빌붙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조인국도 눈치챘지만 이미연과 더 싸울 수가 없어 그냥 한숨을 쉬고 얘기했다.“그래, 예훈아. 나쁘지 않은 기회인 것 같다. 네가 잘되면 내가 또 이끌어줄게.”멈칫한 김예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면서 얘기했다.“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효임이까지. 다들 너무 고마워요. 그럼 가서 한 번 시도해 볼게요.”김예훈은 원래 오산 그룹에 큰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조인국이 이렇게 믿어주고 지지해 주니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면 그들은 또 싸울 것이다. 게다가 오산 그룹은 원래 김예훈의 것이다. 부산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들어가서 내부의 문제를 알아보고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하은혜가 곁에 없으니,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했다.그 생각에 김예훈은 또 하은혜가 떠올랐다.김예훈이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조효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이 자식은 정말 빌붙으려고 온 게 확실하다. 그
김예훈은 순간 할 말을 잃어 그대로 굳었다.조인국은 매우 난감했다. 물건이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그건 김예훈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다니...조금 어색해진 조인국이 얘기했다.“됐어,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밥부터 먹어.”이때 김예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바로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의 임시아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김예훈 씨, 큰일 났어요! 얼른 와줘요! 그렇지 않으면 전...”말이 채 끝나기 전에 통화가 끊겼다. 김예훈이 다시 전화를 걸자 돌아오는 것은 통화 연결음뿐이었다.임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임씨 가문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임시아가 걱정되었다. 조금 머뭇거린 김예훈이 바로 얘기했다.“아저씨, 저 급한 일이 생겨서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먼저 드세요. 나중에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말을 마친 김예훈은 조인국의 만류에도 바로 떠나버렸다.“흥. 그저 버섯으로 전골을 만들고 보이차로 차예단을 만들었을 뿐인데 태도가 왜 저따위야!”예의 없는 김예훈의 모습에 이미연은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저 쓰레기가 우리한테 빌붙으려고 해서 밥까지 먹여주고 직장까지 찾아줬는데, 고작 말 몇 마디 했다고 우리 앞에서 싫은 티를 내? 역시 가난한 사람이 예의도 없다고. 딱 김예훈을 보고 하는 말이었네.”조효임도 한숨을 내쉬었다. 조효임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은 수두룩했다. 김예훈은 그중에서 가장 급이 낮았다. 이런 남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평생을 노예처럼 살다가 죽을 것이다.그래도 아까의 ‘건물주’가 백배는 나았다. 닉네임처럼 돈이 많으니까 말이다!조인국도 난감해졌다. 하지만 그는 김예훈을 위해 변명을 늘어놓았다.“급한 일이 생겼다잖아! 아까 전화 온 거 못 봤어?”“급한 일이요? 성남을 벗어난 촌놈이 부산에서 무슨 급한 일이 있겠어요? 뭐, 무료 나눔하는 음식이라도 배분받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아니면 다른 급한 일이 뭐가 있어요?!”이미연이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
조인국은 장인어른이 왜 묻는지 몰랐지만 일단 대답했다.“조카가 준 겁니다.”“조카? 그래... 이 조카가 너한테 잘 해주는 모양이구나!”이미연의 아버지는 조금 남은 찻잎을 입에 넣고 씹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이건 강원도 쪽에서 나는 최고급 보이차야. 국경 지대 쪽에 남은 차나무가 세 그루뿐이라 1년에 생산량이 100개도 안되는 제품이야. 예전에 경매에서 본 적이 있는데 경매가가 1억 정도였나. 하여튼, 너에게 이 보이차를 선물한 조카는 정말 마음이 깊은 아이일 것이 분명해.”조인국 일가는 놀라서 굳어버렸다.“네? 최고급 보이차요? 경매가가 1억이나 된다고요?!”이미연의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얘기했다.“그럼 내가 잘못 보기라도 했을까 봐? 인국아, 이 보이차 절반을 나한테 넘기렴. 찻잎은 어디 있니? 구경 좀 하자.”조인국은 저도 모르게 테이블 위의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이미연의 아버지는 그 시선을 따라 냄비를 보더니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차예단? 1억 짜리 찻잎으로 차예단을 만들어?!”이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했다.“아버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하세요. 이건 가난뱅이 친구 아들이 사 온 거예요. 어떻게 1억짜리 보이차겠어요?”이미연의 아버지는 이미연을 무시하고 바로 버려진 찻물을 마셔보더니 가슴께를 붙잡고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화를 냈다.“이 썩을 놈들아. 내 말이 맞아! 이건 1억짜리 보이차야! 1억 짜리 차예단이라니...”“그럴 리가요?! 그럴 수 없어요!”이미연은 자기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1억 짜리 찻잎으로 차예단을 만들다니. 게다가 한 입도 먹지 못하고 모두 조인국의 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이미연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어? 이건 하수오의 비린내 같은데?”가슴 아파서 쓰러지기 직전이던 이미연의 아버지는 다른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국을 보더니 바로 화가 나서 길길이 뛰었다.“이건 500년 된 하수오야!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감히
쓰러지는 이미연을 본 조효임은 멍해 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김예훈 그 자식이 무슨 대표의 데릴사위라고 하지 않았어요? 전처 집에서 훔친 물건을 들고 온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모두 다 진짜예요!”그 생각에 조효임도 쓰러져 버렸다.한순간에 조씨 가문은 난장판이 되었다....그 시각, 김예훈은 이미 택시를 타고 임씨 가문 저택으로 왔다. 이미 노을이 지고 난 후여서 하늘은 매우 어두웠다. 임씨 가문 저택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바닷바람 앞에 있는 오래된 별장은 말로만 듣던 귀신의 집 같았다.“살기...”김예훈은 임씨 가문 저택에 들어가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훈 씨, 오셨군요!”김예훈이 벨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치 않은 모습의 임시아가 그를 맞이했다.두 사람은 빠르게 뒷마당으로 향했다.“아까 왜 갑자기 전화를 끊은 거예요.”김예훈이 물었다.“양어머니가 부쉈어요. 아까는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임시아가 겨우 웃으며 얘기했다.뒷마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많은 보디가드가 보였다. 다들 군복을 갖춰 입고 진압 방패를 들고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김예훈이 걸으면서 물었다.“예훈 씨, 예훈 씨가 떠난 후 박수무당이 두 시간 동안 뒷마당에서 굿을 했어요. 양어머니를 위한 구마 의식을 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구마 의식을 하던 와중에 양어머니가 갑자기 깨어나서 박수무당을 바로 날려버렸어요. 보디가드 열몇 명이 달려들어서 제압해 보려고 했지만 다들 중상을 입고 쓰러졌어요. 다행인 건 아까 예훈 씨가 육성운의 팔다리를 부숴놔서 육성운이 거실에서 양아버지한테 빌고 있거든요. 양아버지가 현장에 안 계셔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임시아의 표정은 어두웠다.그녀는 김예훈이 육성운의 팔다리를 부순 것은 임씨 가문과 척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은 육성운의 팔다리를 부숴주어서 고마울 지경이었다.김예훈은 육성운이
뒷마당 바닥에는 스무여 명이 누워있었는데 다들 뼈가 부러져있는 상태인 데다가 숨이 제대로 붙어 있는 사람이 몇 없었다.정말 전쟁터 못지않게 잔인한 모습이었다.임강호는 열몇 명의 보디가드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창백한 얼굴로 얘기했다.“살상 무기는 사용하지 말라. 내 아내를 다치게 할 수는 없어!”그는 자기 아내가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임시아가 빠르게 다가와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양아버지, 김예훈 씨가 왔습니다.”“예훈 군!”그 말을 들은 임강호가 빠르게 걸어와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미안하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 일은 정말 예훈 군이 얘기한 대로였어. 지금은 수습하기 어려워졌지만 부디 예훈 군이 기분을 풀고 내 아내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이 일만 해결하면 예훈 군이 무슨 요구를 하든지 내가 다 허락하겠네. 내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해도 괜찮아!”임강호는 후회했다. 점심에, 김예훈이 아내의 상황을 정확하게 얘기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말하던 임강호는 털썩 꿇어앉았다.“예훈 군, 제발 도와주시게!”부산의 일인자가 지금은 김예훈 앞에서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만약 김예훈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임강호의 선택지는 단 두 개였다.총으로 아내를 죽이던가, 더 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잠깐의 고요함을 되찾던가.어느 선택지나 임강호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아까의 박수무당은 사기꾼이 분명했으니 믿을 수 없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김예훈 뿐이다.“어르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김예훈은 임강호를 부축해 일어나며 얘기했다.“제가 도와주지 않을 거였다면 이곳까지 오지 않았겠죠. 게다가 이 일의 배후는 제가 부산에서 찾으려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이 일을 해결하겠습니다.”“찾으려던 사람? 그게 누구인가?”임강호가 물었다.김예훈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어르신은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김예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마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기꺼이 부탁하니 안 들어주면 예의가 아니겠지?”말을 마친 후 그는 휴대폰에서 몇 년 동안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세 번 울린 후 상대방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고 충격과 의아함이 가득 찬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랑하는 예훈 씨, 드디어 나한테 전화했네요!”“제 프러포즈를 받아주시려는 건가요? ”“빅토리카.”김예훈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전화한 건 당신이 처리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예요.”“당신네 영국 제국 황실에 마리아라고, 무슨 49번째 황위 계승자라고 하는데 사람이 너무 별로네요.”“이 사람의 존재가 당신과 나의 우정 그리고 한국과 영국 제국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처리 좀 부탁할게요.”말을 마친 김예훈은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마리아, 당신은 이제 영국 제국 황실에서 제명되었어.”“빅토리카? 영국 제국 장공주?”마리아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영국 제국의 장공주 빅토리카는 서양 최고의 미녀일 뿐만 아니라 문학과 무술도 뛰어난 분이란 걸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야!”“그분 이름을 언급한다고 해서 내가 겁먹을 줄 알아?”“그분이 맨날 티비에 나와서 심지어 흑아프리카에서도 그분의 명성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역시 너 같은 관종은 주목을 끌려고 진짜 별짓 다 하네. 네가 무슨 세계 연방의 사무총장이라도 되는 줄 알아?”장무준도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김예훈, 수작 그만 부려.”“황실에서 제명됐다고? 진짜 너같이 상류층의 규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다.”“티비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진짜 전화 한 통으로 황실 제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야?”“잘 들어. 황실 제명은 상원의 승인뿐만 아니라 교황의 승인도 필요해!”“모든 절차를 밟는데 적어도
“장씨 가문?”“한국의 장씨 가문? 아니면 영국 제국의 장씨 가문?”김예훈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장무준, 상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고 한국 사람들은 진작에 일어섰어. 너같이 은혜를 모르고 조상을 잊은 것들이 아직도 서양 놈을 조상으로 삼고 떠받들어 모시는 거야.”“날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디 한번 해봐!”“안타깝지만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넌 나한테 안돼.”“너같이 외국의 것만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외국인들한테 아첨하는 사람은 평생 날 못 이겨.”말을 마친 김예훈은 동하임의 팔을 잡고 돌아서 떠날 준비를 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역시 이 남자는 달랐다.외국의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아첨하는 뻔뻔스러운 장무준과 비하면 김예훈이야말로 진정한 남자였다.“이봐, 무슨 말을 그렇게 해?”“네가 뭔데 내 남친한테 그런 말을 해?”“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서구 문명을 비꼬는 거야?”이때 줄곧 경멸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던 마리아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분노한 장무준의 팔을 잡고 김예훈을 가리키며 말했다.“거기 한국 사람, 좋은 말 할 때 무릎 꿇고 당장 사과해!”“여기에 3일 동안 무릎 꿇고 있어!”“아니면 영국 제국 황실을 통해 즉시 진주를 제재하는 성명을 발표할 거야!”“내 말 한마디면 네가 한 짓 때문에 진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거야!”“또한 내 말 한마디면 진주 기관에서 너한테 중벌을 내릴 거야!”“영국 제국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 나 마리아의 능력도 의심하지 말고!”“난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고 내뱉은 맡은 무조건 실천해!”마리아는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녀 옆에 서 있던 영국 제국의 남녀들도 모두 비웃는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들이 보기에 김예훈은 멍청한 한국 사람으로 보였고 마리아를 건드린 게 주제넘은 행동으로 보였다.이 한국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영국 제국 황실과 비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