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바닥에는 스무여 명이 누워있었는데 다들 뼈가 부러져있는 상태인 데다가 숨이 제대로 붙어 있는 사람이 몇 없었다.정말 전쟁터 못지않게 잔인한 모습이었다.임강호는 열몇 명의 보디가드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창백한 얼굴로 얘기했다.“살상 무기는 사용하지 말라. 내 아내를 다치게 할 수는 없어!”그는 자기 아내가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임시아가 빠르게 다가와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양아버지, 김예훈 씨가 왔습니다.”“예훈 군!”그 말을 들은 임강호가 빠르게 걸어와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미안하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 일은 정말 예훈 군이 얘기한 대로였어. 지금은 수습하기 어려워졌지만 부디 예훈 군이 기분을 풀고 내 아내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이 일만 해결하면 예훈 군이 무슨 요구를 하든지 내가 다 허락하겠네. 내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해도 괜찮아!”임강호는 후회했다. 점심에, 김예훈이 아내의 상황을 정확하게 얘기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말하던 임강호는 털썩 꿇어앉았다.“예훈 군, 제발 도와주시게!”부산의 일인자가 지금은 김예훈 앞에서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만약 김예훈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임강호의 선택지는 단 두 개였다.총으로 아내를 죽이던가, 더 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잠깐의 고요함을 되찾던가.어느 선택지나 임강호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아까의 박수무당은 사기꾼이 분명했으니 믿을 수 없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김예훈 뿐이다.“어르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김예훈은 임강호를 부축해 일어나며 얘기했다.“제가 도와주지 않을 거였다면 이곳까지 오지 않았겠죠. 게다가 이 일의 배후는 제가 부산에서 찾으려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이 일을 해결하겠습니다.”“찾으려던 사람? 그게 누구인가?”임강호가 물었다.김예훈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어르신은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김예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임강호의 아내를 관찰하고 있을 때, 임강호의 아내가 갑자기 놀란 야수처럼 주먹을 휘둘러 앞에 보디가드들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움직여 한 보디가드 앞으로 가더니 주먹 한 방에 그를 쓰러뜨렸다.“으악!”비명과 함께 날아간 보디가드는 피를 토하더니 바로 쓰러졌다. 갈비뼈가 몇 개나 부러진 건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퍽.퍽.퍽.이어서 보디가드들이 또 날아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다들 겨우 숨을 쉴 정도였다.“이 요괴야! 나는 이미 너를 보아냈다. 얼른 썩 사모님의 몸에서 꺼지지 못할까! 이만 저승길에 올라라!”박수무당이 복숭아나무로 만든 목검을 들고나왔다. 목검 위에는 노란 종이가 불타고 있었다.목검을 휘두르자 임강호의 아내는 잠깐 멈칫거렸다.임씨 가문 저택의 여자들은 한편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박수무당의 실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흥분하여 환호했다.“정말 대단해요!”“무당님과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드라마에서 볼 때보다 더욱 멋있어요!”“얼른 저 요괴를 죽여주세요!”환호를 들으며 임강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박수무당을 믿어보기로 했다.하지만 멈칫하던 것도 잠시, 임강호의 아내가 손을 휘둘러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듯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이 요괴 놈아!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저리 썩 꺼지거라!”박수무당이 외치면서 목검을 던졌다.뚝.임강호의 아내가 손을 펴서 목검을 잡더니 바로 부숴버렸다.그리고 물러서기는커녕 앞으로 나서서 박수무당의 가슴으로 주먹을 뻗었다.쿨럭.피를 토한 박수무당은 높게 날았다. 그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 임강호의 아내는 그의 왼손을 잡고 힘껏 바닥으로 꽂아버렸다.쿵.거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움푹 파였다. 쓰러진 박수무당은 연거푸 피를 토했다.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었다.“안돼... 이 요괴는 너무 강해서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박수무당은 할 수 있는 짓을 다 했지만 통하
말을 마치지 못한 육성운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말을 하던 입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임강호와 일행들도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기세등등하던 임강호의 아내가 김예훈의 등장에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바로 등을 돌려 도망갔다.그 모습에 육성운은 어안이 벙벙했다.임시아도, 임강호도, 모든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서 굳어버렸다!임강호와 임시아는 김예훈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그저 그녀의 앞에 등장했을 뿐인데 기세등등하던 임강호의 아내가 겁을 먹고 도망가다니.“이제 와서 도망가는 건 너무 늦은 것 같은데?”김예훈이 담담하게 얘기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분명 빠르지 않은 속도였지만 한걸음마다 보폭이 매우 컸다.놀란 임강호 아내는 더욱 스피드를 높였다.한순간, 두 사람은 뒷마당에 오게 되었다.“김예훈을 저렇게 무서워 하다니... 요괴도 김예훈을 무서워하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저 촌놈일 뿐인데 그럴 리가 없지...”놀란 육성운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까는 신처럼 행동하던 누나가 지금은 주인 잃은 개처럼 도망가다니.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임강호와 임시아는 서로를 마주 보며 의아한 시선을 주고받았다.아까 당당하게 나서던 박수무당도 놀란 표정이었다.오후에 김예훈을 봤을 때, 박수무당은 김예훈이 훼방을 놓으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자기의 상처를 보고 또 김예훈의 상태를 보니 박수무당은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계속 도망가는 임강호 아내는 무슨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김예훈은 몇 미터 따라가더니 더는 쫓지 않았다. 번뜩이는 안광의 김예훈은 손에 쥔 과도를 뒤쪽으로 던져버렸다.슥.그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줄이 잘렸다. 빠르게 달리던 임강호 아내는 줄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다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당할 수도 있으니까!”김예훈이 손을 저어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 모습에 김예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전쟁터에서 만나봤기에 김예훈은 일본인의 성격이 극단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패배하느니 차라리 자결을 선택하는, 절대로 투항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나카노 가문에서 온 음양사는 패배할 것 같아서 그전에 자결한 것이었다. 이것은 김예훈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눈을 가늘게 뜨고 시체를 보던 김예훈은 임강호의 아내를 안고 걸어 나와 임강호에게 얘기했다.“사모님은 아까 저 사람의 주술에 당한 겁니다. 지금은 주술의 근원을 없앴으니 한약을 드시면서 몸조리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사모님께 얘기하지 마세요. 견딜 수 없을 겁니다.”“알겠네!”임강호는 기뻐하며 아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 후 의사를 불러오게 했다.김예훈이 큰 문제를 해결했으니 남은 작은 문제들은 그가 해결하면 된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김예훈의 실력을 의심하지 못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시체가 여전히 뒷마당에 있었다.그것만 봐도 임강호의 아내가 귀신에 씐 것이 아니라, 주술에 당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주술을 건 목적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이건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였다.임강호가 불러온 의사들이 임강호 아내를 진찰하고 한약을 지어 마시게 한 후에야 임강호는 김예훈과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예훈 군. 의사가 말하기를, 내 아내는 이미 몸 상태가 호전되었고 정신 상태도 안정되었다고 하네. 앞으로는 휴식만 잘 취하면 된다고 하네. 고마워. 예훈 군은 오늘 밤 나에게 큰 도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내 아내까지 구해준 거야! 우리 일가는 예훈 군에게 정말 감사하네!”말을 마친 임강호는 측근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바로 바닥에 엎드려 김예훈에게 절을 했다. “어르신, 괜찮습니다. 그냥 제 할 일을 한 건데요.”김예훈이 임강호를 부축해서 일어났다.“만약 저를 빨리 믿으셨다면 오늘 밤,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그건 내가 미안하네. 나의 잘못이네!”임강호는 바로 자기
박수무당이 끌려가기 전, 김예훈이 갑자기 담담하게 얘기했다.“어르신, 이 박수무당의 실력은 그럭저럭하나 그래도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닙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살려주시죠. 아내 분을 생각하셔서라도 살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그래, 예훈 군의 말대로 하지!”임강호는 김예훈이 왜 박수무당을 구해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사기꾼의 생사에는 원래도 관심이 없었다.“병원에 데려가 치료해. 그리고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못하게 해!”“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김예훈 님!”죽기 직전에 겨우 목숨을 건진 박수무당은 온몸을 벌벌 떨며 김예훈을 향해 머리를 박았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내뱉은 말 몇 마디에 박수무당의 목숨이 오갔다.“김예훈 님, 감사합니다! 오늘 일은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보디가드를 따라갔다. 임강호의 눈엣가시이니 이곳에 더는 있지 못할 것이다. 박수무당이 사라지자 임강호는 육성운을 쳐다보았다.육성운의 눈꺼풀은 파르르 떨렸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하며 고개 숙이고 말했다.“김예훈 씨, 미안합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봐서... 부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오후에 있은 일도 모두 제 탓입니다. 사람을 시켜 예훈 씨를 패려고 했으니 이런 꼴이 된 것은 인과응보입니다...”임강호가 담담하게 얘기했다.“내 방식을 알지?”육성운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리고 뒤에 서 있는 측근들을 보다가 얘기했다.“너, 이리 와.”그 측근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힘껏 육성운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퍽. 퍽. 퍽.뺨을 열몇 대 맞은 육성운의 얼굴은 퉁퉁 부었고 군데군데 멍이 들었다. 육성운은 이를 악물고 얘기했다.“김예훈 씨, 용서해 주세요.”김예훈은 손을 뻗어 육성운의 얼굴을 툭툭 치더니 담담하게 얘기했다.“나한테 당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 어르신의 얼굴을 봐서라도 살려는 줄게. 하지만 또 나한테 시비를 걸면 그때는 참지 않을 거야.”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 육성운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보아하니 어르신은 나카노 가문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 같군요.”김예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얘기했다.숨을 깊이 들이쉰 임강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카노 가문은 일본 황실의 5대 가문 중 하나지. 다시 말해 전설 속의 5대 충신 가문 중 하나지. 이 가문의 사람들은 일반인들 앞에 나타나는 일이 드물지. 난세에만 나서는 사람들이야. 게다가 5대 충신 가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바로 나카노 가문이지. 왜냐면 나카노 가문에는 일본에서 가장 강한 음양사, 나카노 스즈가 있었거든. 그런데 나카노 가문과 강서 임씨 가문은 한 번도 왕래한 적이 없는데, 왜 내 부인에게 손을 쓴 거지?”김예훈이 담담하게 얘기했다.“어르신, 며칠 전 제가 제거해 준 음양술을 잊지 마세요. 나카노 가문은 사모님뿐만이 아니라 어르신에게도 여러 번 손을 썼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득이 없으면 나서지 않습니다.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아요.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전에 일본인들의 원한을 산 적이 있습니까?”임강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이나 있다가 얘기했다.“내가 알기로는 최근에 일본인과 마찰은커녕, 일본인을 만나본 적도 없어. 하지만 몇 년 전 내가 이 부동산을 살 때, 그 전 주인이 일본인이었어. 하지만 양쪽은 모두 대리인을 세워 일을 처리했어. 그러니 양쪽은 만날 기회도 없었고 마찰이 생길 기회는 더 없었어. 예훈 군이 잘못 생각한 것 아닐까?”임강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는 귀신이나 도술 같은 것을 믿지 않았지만 눈으로 직접 주술과 음양술을 보게 되니 임강호는 이런 것들이 진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기관의 사람이다. 도술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본인이 왜 이런 수단으로 임강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 임강호는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자리에서 일어난 김예훈은 눈은 가늘게 뜨고 정원을 쳐다보았다. 해가 진 정원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김예훈은 가볍게 웃더니 얘기했다.“만약 이 일이 어르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이 정원과 관계있는 것 같군요
임강호는 밤에 사람을 시켜 시체를 처리했다.그리고 이튿날 아침, 현장 공사팀을 시켜 굴삭기와 굴착기 몇 대를 가져왔다.아침을 먹은 김예훈은 임강호와 임시아를 따라 술 창고에 도착했다.술 창고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 같았다. 안에는 여러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다. 아침이었지만 음산한 기운은 지울 수가 없었다.김예훈은 설계도를 보며 고민하다가 벽의 한 방향을 가리키며 얘기했다.“여기를 뚫어요.”임강호는 살짝 의아했지만 김예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반 미터 정도 되는 벽이 뚫렸다. 그러자 안에서 검은 철문이 나왔다. 딱 봐도 현대에 만들어진 문이었다.그 장면에도 김예훈은 여전히 담담했다. 하지만 임강호는 놀라서 굳어버렸다. 지하실에 이런 숨겨진 구조가 있다니.“예훈 군, 이건...”김예훈이 웃으며 담담하게 얘기했다.“제 생각이 맞다면 이건 원동 전쟁 때 일본이 만든 생화학 실험실입니다. 민간에 떠도는 소문이 진짜였어요. 하지만 그때 일본이 패배하면서 이곳을 빠르게 떠나야 했으니 처리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기에 일본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르신 손에 들어왔으니 일본인들은 어르신이 이 비밀을 알게 되었을까 봐 먼저 죽이려고 한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이곳이 일본에게 매우 중요한 곳인 것 같네요. 심지어는 나카노 가문이 이 일을 주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김예훈은 담담하게 얘기했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 년 역사의 철문이 쿵 소리와 함께 열렸다.그러자 끝을 알 수 없이 검은 동굴이 나타났다.어두운 표정의 임강호가 외쳤다.“탐조등!”그러자 몇십 개의 탐조등이 일제히 동굴을 비추었다.사람들의 눈앞에는 나무로 된 제단이 나타났다.제단에는 붉은 실이 여러 번 둘려 있었는데 제단과 붉은 실은 다 습기로 인해 썩고 있었다.그리고 제단의 위쪽에는 괴이한 부호가 있었다.부호들은 보기에 간단하지만 한 번만 봐도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이건... 나카노 가문의 휘장?”임강호는 견
“김예훈 군, 이게 대체 무슨...”임강호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이 검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런데대체 뭐가 이상한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김예훈은 눈살을 찌푸린 채 한참을 바라본 후 천천히 말했다.“저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것은 아마도 나카노 가문의 실전된 요도 무라마사 검일 것입니다.”“하지만 이 유명한 검은 오래전에 실전되었으니 다시 나타날 수가 없을 텐데...”“그러고 보니 당시 나카노 가문이 이곳에서 실험한 목적이 전쟁 중의 혈기와 살기를 이용해 요도 무라마사를 다시 주조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런데 실패한 것 같아요. 아니면 이 검을 진작 가져갔겠지요. 아직도 여기에 남아 있을 리 없거든요. 그리고 최근 임씨 가문 저택을 겨냥하는 것들은 모두 이 검을 노리고 왔을 가능성이 커요.”임강호를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있었다. 거의 신화와 전설 같은 이런 일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임강호는 정신을 번쩍 차리더니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자네, 이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이 물건이 일본 사람들의 손안에 들어가면 하늘은 어떤 재앙을 일으킬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것을 파괴하는 겁니다. “김예훈은 얘기를 하면서 임시아가 준 옛 당도를 천천히 뽑아 들었다.“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번쩍이더니 검이 쪼개지면서 요도 무라마사와 같은 일본의 긴 검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나무로 된 칼날에는 비린내가 나는 빨간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김예훈은 횃불을 꺼내서 바로 던져버렸다. 순간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이어서 일본의 성산인 후지산의 꼭대기에 있는 신각에서 나무 패쪽이 갑자기 부서졌다.신각에 앉아 있던 음양사는 갑자기 눈을 뜨더니 흑백의 눈동자 속에서 핏기가 돌았다.그의 눈, 코, 입, 귀에서는 갑자기 시커먼 핏물이 흘러나왔다. 소환하여 심문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임가의 일을 해결하자, 김예훈은 임시아에게 자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