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은 덤덤하게 대답했다.“당신이 한 말이 다 맞는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진윤하는 뒷짐을 지고 김예훈을 깔보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과 쓸데없는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저희 사부님 무덤 앞에서 두 손을 부러뜨리고 일주일 동안 무릎을 꿇은 채 사죄한 후에 다시 얘기하죠! 그게 아니라면 뒷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살기 어린 기운이 진윤하를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실전에서 쌓아 온 내공으로 인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 보였다.그녀의 곁에 있던 동료들도 마치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듯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그 말은 당신들이 더 이상 조사를 해보지 않겠다는 얘기네요?”“조사!? 확인된 사실이 눈앞에 있는데 무슨 조사가 더 필요하죠!?”진윤하는 쌀쌀맞게 대꾸했다.“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나더러 두 손을 부러뜨리고 최종호의 무덤을 지키라고? 당신들이 그럴 자격이나 있어?”김예훈의 표정이 차가워졌다.굳어진 표정으로 그에게 한발 다가가 선 진윤하의 분위기는 살기로 가득했다. “이 봐, 김예훈, 내가 충고하는데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내가 꾹 참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두 손을 부러뜨리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당장이라도 당신 목을 따 사부님께 제물로 갖다 바칠 수도 있어요! 행여나 용문당 당주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할 생각도 말아요! 비록 당신이 당주님과 어떤 관계인지, 그 전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오기 전 이미 용문당에서 자진 탈퇴하고 온 거니까! 아무리 당주님이 이 자리에 계신다 해도 이젠 우리를 간섭할 권리는 없다고요. 아시겠어요?”진윤하가 보기에는 아마도 누군가 김예훈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용문당 당주와 인연을 맺었는지는 몰라도 그로 인해 그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력으로만 따졌을 때 김예훈 같은 사람이 한 트럭이 와도 진윤하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진윤하가 김예훈을 지금까지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은
진윤하는 양정국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큭’ 하고 웃으며 말했다. “성남기관의 양정국 총장님이시죠? 내 앞에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경기도 기관의 총장이라면 모를까! 단언컨대, 오늘 그 누구든 김예훈을 살릴 수 없어. 김예훈, 오늘이 네 제삿날이야!”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윤하는 빨간 증서를 꺼내 양정국의 얼굴에 내던졌다. 양정국은 팽개쳐진 증서를 힐끗 보고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살인 증서!?”“알아보니 다행이군. 비록 내가 용문당에서 탈퇴했지만, 이 증서는 아직 유효하기에 나에게는 살인이 허락되는 특권이 있다고! 아무리 양정국이라도 감히 내 앞을 막아선다면 다 죽여버릴 수가 있어.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나서겠어!?”진윤하는 양정국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살인 증서가 그녀에게는 최고의 뒷배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김예훈에게 손목을 부러뜨리라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때문에 김예훈을 처리하려면 그녀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진윤하 씨, 도가 지나치네요!”양정국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졌지만, 그는 옆에 있는 김예훈의 신분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여기는 부산이 아니라 성남이에요. 당신이 함부로 나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양정국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하정민과 원경훈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양정국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어!”“짝!”진윤하는 양정국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또다시 내 앞을 막아선다면 당신도 죽여버릴 거야!”양정국은 몹시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김예훈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양 총장님, 상대는 나를 향해 왔으니 내가 직접 처리하죠.”그러고는 김예훈은 곧바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진윤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김예훈을 향해 말했다.“왜? 양정국이 당신을 지켜주지 못할 것 같으니 이제 와서 직접 빌기라도 하시게? 이미 늦었다고! 내가 살인 증서를 꺼냈을 때부터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당
현장에는 정적이 흘렀다!탑급 레벨의 진윤하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김예훈의 실력 앞에서는 탑급 레벨의 사람도 별수 없었다. 짝!진윤하는 벌게진 얼굴을 하고는 무너져 내리는 벽들 사이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먼지로 뒤덮였다.“김예훈, 치사하게 기습 공격이라니!”그녀의 후배들은 순간 흠칫했다. 그러고는 이내 정의로운 사람처럼 김예훈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비겁하게 기습 공격이라니!”“그래? 그럼 다시 덤벼.”김예훈은 담담하게 오른손을 들고는 손가락으로 진윤하를 가리키며 도발했다그는 진윤하의 체면 따위를 고려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다양한 기색을 내비치던 진윤하는 뒤에 있는 헤머 차에 손을 뻗어 1미터 남짓한 장검 한 자루를 인츰 꺼내 들었다.“창궐검! 윤하 선배가 창궐검을 손에 들다니!”“창궐검이 나오면 살아남을 자가 없다는 거지!”“윤하 선배가 검을 잡으면 천하무적이라고!”“김예훈, 당신은 이제 끝났어. 윤하 선배가 검을 꺼내게 하다니, 죽어서 시체조차 남지 않을 거야!”부산 용문당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감격했다. 남자들은 마치 롤모델을 보는듯한 표정을 지었고 여자들은 김예훈을 조롱하듯 하찮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눈에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진윤하는 창궐검을 몸 앞에 둘렀다. 만약 그녀의 오른쪽 얼굴에 찍힌 자국만 아니었다면 틀림없는 고수처럼 보였을 것이다.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예훈, 아까는 내가 방심했어, 그러나 오늘 당신한테 우리 부산 용문당의 본때를 제대로 보여주겠어!”“내 창궐검을 받아라!”쓱!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땅에서 미끄러지는 듯 검술을 뽐냈다.짝!김예훈이 발을 내딛자, 순식간에 진윤하 코 앞까지 와 있었다. 그러고는 또다시 손을 번쩍 쳐들고 그녀의 뺨을 갈겼다. 짝!진윤하의 몸은 다시 한번 멀찍이 날아가 떨어졌다. 창궐검은 무슨, 부산 용문당의 본때를 보여준다더니 역시 김예훈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진
수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는 와중에도 김예훈은 뺨을 계속해서 한대 또 한 대 갈겼고 선처를 베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윤하는 나름 절세미인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어찌나 심하게 맞았던지 얼굴이 부을 대로 부어 있었다. 그녀의 후배들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곁에 있던 양정국과 여운기조차 놀라움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분명 김예훈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기세등등하면서 살인 증서까지 꺼내 보이던 진윤하가 김예훈 앞에서는 마치 한 장의 종잇장에 불과하다니!?짝!마지막 뺨 한 대에 진윤하는 멀찍이 떨어져 나갔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는 잠시 발버둥을 치더니 피를 토해내며, 있는 힘껏 일어서려 애썼다. 김예훈은 그녀의 앞에 다가가 정확히 그녀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안돼!”그 순간, 진윤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피하고 싶었으나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퍽!김예훈의 발은 정확히 단전을 걷어찼고 그녀는 곧바로 쓰러지고 말았다.저만치 날아가 버린 진윤하의 얼굴에는 절망과 공포로 가득했다.쓰러진 그 순간에도 진윤하는 억지로 일어나보려 발버둥 쳤지만 역시나 피를 토하며 경련을 일으켰다.“어떡해!?”이 모습을 지켜보는 후배 제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진윤하가 이대로 패배할 것이가?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김예훈이 그저 뺨을 때렸을 뿐인데 진윤하가 막아내지 못하다니?결국 이렇게 패하고 마는 것인가?그들은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 장면들을 이번 생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것 같았다.이런 존재는 도대체 얼마나 두려운 것일까? 그러나 순간 그들도 깨달았다.용문당 당주가 최종호의 뒷배라고 한들 그가 절대로 김예훈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부산 용문당 지사의 실력이 이것밖에 안 돼? 이런 실력으로 감히 살인이 허락되는 특권을 가졌다고? 어이가 없네!”김예훈의 안색이 더욱 싸늘해지더니 진윤하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대머리를 한 청년이 상당히 언짢아하며 말했다.“우리는 용문당의 제자들이야! 감히...”짝!김예훈의 휘두른 손에 뺨을 맞은 그는 몸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용문당 제자가 대단해? 내가 용문당 제자를 때렸는데? 아무리 용인주가 와도 내 앞에서는 고분고분할 텐데, 네가 뭐라고? 때려봐! 지금 기회를 주잖아!”차가웠던 김예훈의 눈빛이 더없이 날카로워졌다.이 순간만큼은 김예훈의 눈길 한 번으로 부산 용문당 제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수 있었다.“여 서장님, 저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니, 서장님이라도 도와주셔야겠어요.”“그럼 진윤하는...”김예훈은 한심한 눈빛으로 진윤하를 힐끗 쳐다보았다.“보내주세요. 제가 죽이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손대지 않겠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예훈은 대머리 청년을 발로 걷어차고는 자리를 떴다.30분 후, 한 무리의 부산 용문당의 제자들이 두 팔을 감싸 쥔 채로 절뚝거리며 몰려왔다.들어올 때의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다르게 돌아갈 때는 비싼 값을 치르고 대리기사님이라도 불러야 할 판이었다. 모두 두 팔이 부러진 상태라 병원으로 데려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나온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양정국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예훈 씨, 큰일이에요. 예훈 씨가 살인 증서를 찢어버렸다는 사실이 소문이 났어요. 아마도 누군가 이 사실을 핑계 삼아 당신을 처리하려나 봅니다.”“저를 처리해요? 상대가 제 신분을 알고 있나요?”“아마 제가 김세자 라는 신분을 알고 있을 겁니다.”양정국은 대답했다.“소식의 출처는요?”“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구설수가 난무하는 이 상황에서 상대하는 거로 보아 계획적인 것 같네요. 믿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해요. 예훈 씨, 특히 조심하셔야겠어요.”김예훈은 누군가가 기관의 힘을 이용해서 압박해 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지만 정민아를 포함한 가족들을 해칠까 봐 유독 마음에 걸렸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김예훈은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게
“용연옥?”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렸다.한국에는 몇몇 특수한 기관단체가 있었다.용의 부대는 안전을 보장했다. 한국에서 어두운 세력의 기본적인 질서를 보장하는 곳이다.용문당은 대체로 조직을 유지했다. 한마디로 한국의 어두운 세력을 이끌면서 그 질서를 보장했다.반대로 용연옥은 형벌을 감행하는 단체지만 보통 경찰서와는 다르게 나라의 안전을 보장함과 동시에 강력한 사건들만 취급했다.간단하게 말해서 경찰서에서 감히 조사할 수 없는 사건을 그들이 도맡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감히 잡지 못하는 사람을 그들은 잡아낼 수 있었고 경찰서에서 감히 죽이지 못하는 사람도 그들은 죽일 수 있었다!살인이 허락되는 특권이라면 용문당보다는 용연옥이 한 수 위였다.이때 백기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김예훈, 당신의 표정을 보아하니 용연옥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나 본데, 당신은 부산 용문당의 회장 최종호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어. 엄청난 사건이라고! 사태가 엄중하고 사건이 복잡한 관계로 지금 당신을 서울로 압송해 조사 좀 해야겠어. 조사가 끝나고 범죄사실이 밝혀지면 그때는 집행 부문에 이송될 거야. 김예훈, 순순히 잡혀줄래, 아니며 내가 잡으러 갈까?”백기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비웃는 듯한 김예훈을 쳐다 있었다.김예훈 때문에 백요한은 큰코다칠 뻔했지만, 백기영은 동생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 이번 일은 곽영현이 주도한 것이다.2조 원짜리 계약서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백기영은 김청미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이 남자가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김예훈은 가만히 백기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용연옥의 행동대장? 위풍 있어서 멋있어 보이는데, 날 잡아가는 거야 괜찮지만 체포영장은 있고?”백기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용연옥은 체포영장 따위는 없어, 필요하지도 않고.”김예훈이 웃으며 되물었다.“그렇다면 막무가내로 나를 체포하겠다고?”“아니, 이건 허락된 특권이야.”백기영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CY그룹의 다른 임원들이 이 상황에 개입하려는 그때, 용연옥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싸늘한 기색으로 총기를 꺼내 임원들의 머리에 총구를 댔다.김예훈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손을 저어 보이며 임원에게 나서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소한미를 비롯한 상대들은 저마다 경멸에 찬 눈빛으로 비웃었다. 김예훈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그의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백기영의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 아무런 반항조차 할 수 없어 보였다.아무리 힘이 세고 강하다고 한들 지금 상황에서는 김예훈이 아닌 누구라도 반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백기영의 말 한마디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조사받을 수도 있었다.“김예훈, 다시 물어볼게. 순순히 나랑 갈래, 아니면 내가 직접 잡으러 갈까?”백기영은 웃음을 참으며 김예훈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네 명의 용연옥 사람들이 저마다 총기를 꺼내어 김예훈의 머리에 총을 들이댔고 나머지 몇 명은 먼 곳에 서서 당장이라도 총을 쏠 기세였다. 싸움을 잘하면 어떻고 실력이 뛰어나면 또 어떠한가?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하은혜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다른 사람더러 여러 차례 손보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김예훈은 눈빛으로 하은혜를 제지했다.모든 상황이 백기영의 손에 통제된 마당에 조금이라도 억지 부린다면 CY그룹에서 사상자가 더 늘어날 뿐이었다.김예훈은 머리에 들이댄 총구를 무시한 채 한발 앞서며 말했다. “난 지금까지 용연옥은 공공 기관이라 사적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상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군.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인 부패를 초래하는데 말이야. 용문당이든 용연옥이든 설립의 초심은 다들 깨끗하고 순수했어. 안타깝게도 당신 이 세대에서는 이미 미쳐서 날뛰는 수단으로밖에 사용되지 않았지. 용연옥이 이런 상태라면 한번은 물갈이 필요하겠어!”“이 봐, 김예훈,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아무리 집행 부문의 장관 이와도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다고, 당신이 뭔데 이래
이대정은 뒷짐을 지고 들어와 습관적으로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였고 한 모금 쭉 들이켜고는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기영 님, 다들 여기서 뭐 하십니까?”마침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해 팽팽해진 분위를 목격한 이대정이다.사실 오늘 이대정은 회사 임원들과 CY그룹을 압박하려고 온 것이었는데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이대정을 알아본 소한미는 선뜻 앞장서서 윙크하며 말했다. “이 대표님, 김예훈이 영현 도련님의 미움을 사서 기영 님이 직접 데려가 조사하려던 참이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백기영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소한미가 고의로 한 얘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얘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다.특히 이대정은 외부인인 데다가 교활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이대정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니 번거로움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잠깐 생각에 잠긴 백기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은 부산 용문당 회장 최종호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를 데려다가 조사를 해야 합니다.”말이 마친 백기영은 이대정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여기는 지금 용연옥이 공무집행 중이라 대표님 안전을 위해 잠깐 자리를 피해 주세요.”이대정은 순간 알아차렸다.청별 그룹과 번번이 분쟁을 일으키는 김세자가 이번에는 진짜로 큰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다.진주의 영현 도련님은 김예훈을 죽도록 미워했다.물론 대전의 백씨 가문의 도련님이며 용연옥의 행동대장이기도 한 백기영도 선처를 베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때, 이대정은 웃는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마침 잘됐네요. 저도 이번에 청별 그룹을 대표해서 김예훈에게 들어야 할 말들이 많아요. 얼마 전 우리 한국 청별 그룹의 부사장인 안재석이 성남에서 죽었어요. 저희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김예훈이 죽였다고 의심하고 있어요. 오늘 용연옥에서 김예훈을 데려간다고 하니 제가 청별 그룹을 대표해서 최종호 사건과 안재석 사건을 동시에 부탁드려볼까 합니다.”말이 끝나고 이대정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사실 오늘 이대정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