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전효에게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려던 찰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하빈의 번호였고 지아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아가씨, 지금 어디세요?”하빈의 목소리는 조금 불안했다.지아가 아이를 데리고 섬에 가기 전에 하빈의 월급을 정산했는데, 어떻게 이 시점에 연락이 올 수 있을까?“왜요?”“강욱 형님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요. 얼른 와주세요.”지아는 아직 술집에서 도윤이 나타난 이유를 파악하기 전에 강욱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걱정이었다.“무슨 일이에요?”“강욱 형님이 요 며칠 아픈 데다 오늘은 술까지 많이 마셔서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보냈는데, 자꾸 아가씨 보고 싶다고 중얼거려요. 아가씨 어디 계세요? 와주실 수 있어요?”지아는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안다고 해도 아무한테나 말할 수도 없었다.“지금은 안 돼요. 강욱 씨 상태는 어때요?”“급성 중증 알코올 중독으로 상부 위장에 출혈이 생겨서 지금 대량의 피를 토하고 있어요. 응급실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아직 안 나왔어요. 아가씨 얼굴 보기도 전에 잘못될까 봐 걱정돼서요.”지아는 강욱이 왜 이 정도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신 건지 알 수 없었다.“아가씨, 사실 강욱 형님은 항상 아가씨를 좋아했어요. 아가씨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 사랑을 가슴에 묻어두었는데, 아가씨를 만나지 못하면 평생 한으로 남을 거예요.”지아는 마음속으로 갈등했다. 누가 방금 만난 사람들을 보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아는 지금 목숨이 위태로웠다.“하빈 씨, 지금은 못 가요. 미안해요.”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미 자신도 위험에 처해 있는데 아이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전효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쳐다보았다.“누구 전화야?”“친구, 나쁜 사람도 아니고 우리한테 위협이 되는 사람도 아니에요.”“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믿고 너만 믿어. 지금 우린 안전하지 않아. 그래서 이번에 위험을 무릅쓰고 너에게 접근한 거야.”지
하빈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도윤도 당연히 들었다. 지아는 자연스럽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하빈에게조차 자신이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짧은 시간 안에 서쪽 교외로 갔다는 건 누군가 데려간 게 분명하고,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건 그 사람이 위협적이지 않고 심지어 암살자를 죽이는 데 도움을 줬다는 뜻이지.”진봉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사람들 상처를 보면 1대 3으로 한 방에 다 죽었는데, 그렇게 사격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사모님이 어떻게 아는 거죠?”“총을 잘 쏘고, 사람을 말끔하게 죽이고, 지아에게 위험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야.”도윤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배에서 만났던 사람이 떠올랐다.“전효!”지아는 전효를 만나기 위해 A시로 돌아왔고, 온 지 며칠이 지나서야 전효를 만나기 위해 남긴 비밀 암호가 통한 게 틀림없었다.“사모님이 전효를 따라가면 위험하지는 않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할까요, 사모님을 다시 데리러 가야 하나요? 남자랑 여자가 있으면...”“지금 저쪽으로 가면 내 정체가 드러날 거야.”도윤은 겨우 강욱의 신분을 이용해 지아에게 접근하고 지아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강욱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지아는 분노할 것이다.1년여 동안 천천히 쌓아 올린 신뢰의 요새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 같았다.“먼저 사람을 보내서 지아를 은밀히 보호하고 모습은 드러내지 마. 소망이는 아직 섬에 있으니 언제든 아이를 찾으러 갈 거야.”“알겠습니다.”“전효는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는 말고.”“네, 대표님, 바로 움직이겠습니다.”도윤은 진환을 바라보았다.“죽은 사람들의 신원을 제대로 알아내.”지아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은 이미 새어나갔다. ‘배에 있을 때 얼굴을 드러낸 것일까?’오늘 전효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지아의 목숨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도윤은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오두막은 간단한 시설로 되어 있었다. 나무 침대에 매트리스를 깔
밤은 금세 지나갔고 방은 추웠으며 이불만으로는 지아를 따뜻하게 해줄 수 없었다.지아는 잠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를 안고 있으니 마음이 놓여 금세 잠이 들었다.해경은 작은 히터처럼 팔에 달라붙어 지아에게 끊임없이 온기를 공급했다.지아는 초원에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자유롭게 뛰어노는 꿈을 꿨다.도윤은 길 끝에 서서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지아야...”지아가 눈을 번쩍 떠보니 밖은 이미 동이 트였고 전효는 방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커튼이 없는 창문으로 바깥이 훤히 보였고, 밤새 내린 눈은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하얗게 덮여 있었다.지아는 조용히 해경의 곁을 떠나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그녀를 맞이했다.설경은 많이 봐왔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다.너무 아름답다!하얀색이 온 세상을 감싸며 모든 더러움을 씻어내고 새하얀 눈만 남았다.쌓인 눈 속에는 작은 동물이 남긴 발자국이 있었고, 작은 다람쥐 두 마리가 나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지아가 발견하자마자 바로 뛰어내렸다.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했다.주변을 살피고 돌아온 전효는 문에 기대어 있는 지아를 보았다.지아는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아 1센치 되는 짧은 머리카락이 그대로 드러났다.어젯밤에는 몰랐던 전효는 지금 이 순간에야 눈치챘다.“네 머리...”지아가 웃었다.“전에는 항암치료 때문에 빠졌지만 이제 새로 자랄 테니 상관없어요. 어차피 천천히 자랄 거예요.”지아는 아이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미리 가발을 썼다.“이제 좀 괜찮아 보이죠?”지아의 밝은 미소에 전효는 동정심이 들었다.‘떨어져 지내는 동안 무슨 일을 겪었을까.’전효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방에 건빵이 있어. 급하게 도망치느라 먹을 걸 준비할 시간이 없었네. 일단 그걸로 허기를 달래.”건빵과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 지아는 포만감을 느꼈다.“어젯밤 당신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난 벌써 시체가 되었을 텐데, 그러면 이런 과자를 먹기나 했겠어요
전효가 덤덤하게 말했다.“앞을 봐, 뭐가 보여?”지아는 앞을 향해 몇 걸음 걸어 절벽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숲을 에둘러 멀리 산이 겹겹이 이어져 있고 눈 덮인 산이 웅장하게 보였다.“자유요.”“그래, 이 협곡을 넘어 앞쪽으로 가면 자유가 기다리고 있어.”하지만 도윤에게 여러 번 말렸던 지아는 이제 용기가 나지 않았다.지아는 두려웠다. 또 잡혀서 끝없는 어둠의 심연 속으로 들어갈까 봐 두려웠다.“마음 정리가 안 된 거야?”지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난... 두려워서요.”“뭐가 두려운데?”“실패해서 전효 씨까지 난처하게 만들까 봐 두렵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두려워요. 지금도 눈만 감으면 미연이의 죽음이 생각나요.”전효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두려워할 거 없어. 넌 가장 힘든 시기를 이겨냈잖아. 사람은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돼. 예전과 같은 삶을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싫어요. 변하고 싶어요. 강해지고 싶어요. 미연이의 복수를 하고 싶어요.”지아는 손을 뻗어 눈송이를 잡았고, 눈송이는 금방 녹아서 손바닥에 물이 고였다.눈송이들은 자신들이 떨어져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름에서 수백만 개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단 한 개의 눈송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전효 씨, 나 좀 데려가 줘요.”“알았어. 하지만 며칠만 시간을 줘.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그리고 소망이도 데려와야 해요.”“나한테 맡겨. 민이에게 데려오라고 하면 돼. 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사흘 후에 출발할 테니까.”“알았어요.”전효는 무기를 꺼냈다.“어떻게 사용하는지 기억나?”“기억해요.”“네 스스로를 지키는 데 써. 오두막 뒤 소나무 숲에 내가 파놓은 토굴이 있으니 위험하면 아이를 데리고 그 안에 숨어. 미리 엄호할 곳도 만들어 놓았으니 쉽게 발각되지 않을 거야.”지아는 전효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 오두막 안에 머물렀다.이곳은 추웠지만 경치가 유난히 좋았다.활발한 남자아이였던 해경이는 일어나자마
도윤은 팔짱을 낀 채 미간에 우울한 기색을 드러낸 채 서 있었다.“소망이만 데려가고 싶은 게 아니라 지아도 있어. 지아도 오랫동안 나를 떠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지금이 딱 좋은 시기일 거야.”“그럼 어떻게 할까요? 지금 막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 능력으로 정말 사모님을 데려가면 저희는 제대로 조사할 수도 없습니다.”전효는 원래 음지에서 살던 사람이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방법이 많았다.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던 도윤은 갈등하고 있었다.자신이 지아에게 너무 큰 트라우마를 주었고 그럴 치유하는 데는 평생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억지로 다시 데려오면 그녀의 마음속 그림자가 더 짙어지고 가뜩이나 안 좋은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악화될 뿐이었다.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기엔 지금이 도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지아를 직접 볼 수 없다는 것, 그녀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매 순간 그의 가슴을 할퀴었다.“돌아오게 해야지. 하지만 우리가 개입할 수는 없어.”“사모님은 지금 갈 생각이 확고한데 돌아오지 않으시면 저희 쪽에서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지아가 가장 아끼는 게 뭐야?”진환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작은 아가씨와 작은 도련님이요. 지금 아가씨에게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어요. 그렇다고 일부러 아가씨를 납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 일이 드러나면 사모님은 분명히 화를 내실 겁니다.”도윤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다른 사람이 있어, 김민아.”“맞아요. 사모님에게는 가족이 없고 강미연이 죽은 뒤에는 가장 친한 친구인 김민아만 남았죠. 사모님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에요!”“요즘 김민아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만 봐도 그 여자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지.”하지만 진환은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그런데 김민아 씨가 협조하지 않고 사모님 편에 설까 봐 걱정이에요.”“협조하지 않아도 방법도 있어.”지아만 아니면 누구라도 해칠 수 있다는 불길한 빛이 도윤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김민
민아는 의아한 얼굴로 도윤을 쳐다보았다.“도대체 무슨 꿍꿍이에요?”도윤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지아가 날 떠나고 싶어 해.”“당신 같은 악마를 보면 나였어도 도망쳤을 거예요.”“내가 과거에 나쁜 짓을 많이 한 건 부정하지 않지만, 지금은 지아를 지키고 싶을 뿐이지 소유하려는 게 아니야. 지아는 밖에 아주 강한 적이 있어.”“얼마나 강한데요?”도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지금까지 정체를 알 수 없었고, 세 번이나 암살자를 매수해 지아를 공격했어. 2년 전 지아가 조산하던 날 밤에는 수백 명의 암살자를 보냈고, 그 비 오는 날 밤에 지아는 죽을 뻔했다.”이 모든 일들을 지아는 단 한 마디로 가볍게 스치듯 말했기에 민아는 그 과정을 알지 못했다.도윤으로부터 지아와 연락이 끊긴 2년 동안 지아가 수많은 위험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지아가 죽은 척했을 때 이미 알아차렸지만 무척 갈등했어.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때 깨달았지. 지아를 데려오는 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내 힘이 닿는 선에서 지아를 보호했고, 묵묵히 지켜봤어. 김민아, 정말 다시는 지아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도윤의 얼굴에는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이기적인 마음에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지아에겐 아직 완치되지 않은 병도 있고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데 위험에 처하면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겠어?”민아는 이토록 비굴한 도윤을 본 적이 없었다.4년 전 도윤과 만났을 때는 매번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였다.“당신은 지아의 가장 친한 친구고 당연히 지아의 안전부터 걱정하겠지. 내가 지아를 해칠 생각이었으면 지금 당장 데려오면 되는데, 왜 이렇게 애걸복걸하며 당신에게 부탁하겠어?”도윤은 진심이 최고의 필살기라고 생각했고, 협박 대신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인 방법을 썼다.민아는 눈을 내리깔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당신과 지아의 우정이 참 부러워. 지아는 당신을 돕기 위해 며칠 동안 아
전효가 없는 동안 지아와 해경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경은 소망보다 언어 발달이 훨씬 빨라 한두 문장 정도는 서술할 수 있었다.화목한 시간을 보내면서 지아는 아이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앞으로의 날들을 기대하기 시작했다.이때 민아의 전화가 걸려 왔고 지아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민아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아야, 나 살려줘.”“민아야, 무슨 일이야?”지아는 단번에 조바심이 들었다.“말하자면 복잡해. 만나서 얘기하자.”“근데...”민아가 다급하게 물었다.“왜, 혹시 만날 수 없어? 나 지금 몸이 힘들어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민아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들은 지아는 민아의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민아는 이곳에 가족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고, 유산한 지 얼마 안 돼서 몸도 많이 허약할 것이다.지아는 민아가 자신을 돌봐주던 옛날을 떠올리며 고민 끝에 재빨리 대답했다.“어디야? 내가 너한테 갈게.”민아는 아마 세찬의 집에서 도망쳤는지 지아에게 다른 주소를 보냈고, 지아는 밖에 세워진 자동차를 보았다. 조금 낡긴 해도 운전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전효에게 편지와 연락처를 남기고 지아는 해경과 함께 출발했다.자신도 고통을 겪어봤으니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이를 돕고 싶었다.화장을 하지 않은 민아를 다시 보니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전보다 훨씬 더 수척해져 있었다.“지아야, 드디어 왔구나.”지아는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민아를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얼굴을 쓰다듬었다.“울지 마, 나 여기 있어.”민아는 지아를 먼저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꾹 참았던 지난번과 다르게 감정이 폭발한 것 같았다.지아를 껴안고 한 시간 동안 세찬을 욕하던 민아는 지아가 입을 막지 않았다면 세찬이 침대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시간까지 뱉어냈을 것이다.옆에서 의아해하는 해경을 바라보며 민아는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미안 미안, 실수할 뻔.”“그 폭탄 같은 성격은 여전하구나. 이제 좀 나아졌어?”지아는
이제 막 멈추었던 민아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지아야... 나 진짜 힘드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안아줘.”지아가 부드럽게 등을 두드렸다.“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오늘은 내 안전을 위해 그 사람 대신 나보고 오라고 한 거지?”“멍청아, 다 알았으면서 왜 돌아왔어?”몸을 뗀 지아는 민아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많은 것을 경험한 만큼 생각은 민아보다 훨씬 성숙해져 언니처럼 민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나도 널 구하고 싶었으니까. 널 구할 유일한 기회였으니까.”도윤에게서 며칠 전 지아가 한 일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아가 자기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신까지 걱정할 줄은 몰랐다.“전에는 연락이 안 되던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세찬을 언급하자 민아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다 내 잘못이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다른 사람의 장난감이 되어 버렸어.”지아는 한숨을 쉬었다.“너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의 신분이나 미래만큼 중요하지 않은 거야. 그 정도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집안의 아내를 원하지, 사랑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그래, 처음엔 그 사람도 분명 결혼은 집안의 강요로 하겠지만 앞으로도 나랑 이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내 자리만 빼고 뭐든 줄 수 있다고 했어. 하지만 내가 아무리 돈을 좋아한다고 해도 결혼한 사람 내연녀가 될 수는 없잖아?”“그럼 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민아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난 그 사람 결혼 망칠 생각 없었고 진작 사직서도 제출했어. 그동안 일한 거랑 옛날에 영업 사원이었을 때 벌어둔 돈도 있고, 그 사람이 워낙 통이 큰 데다가 내가 돈을 막 쓰는 성격도 아니라서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이면 남은 생은 충분히 먹고 놀 수 있어. 싱글맘이 될 준비까지 했는데 그 사람 결혼 상대 여자가 수작을 부려서 아이를 잃게 됐어.”민아는 목이 메었다.“아기를 잃고 출혈로 죽을 뻔했어. 의사 선생님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