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밀크티를 마시고, 쇼핑하고, 영화를 보며 다시 만난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영화가 끝나자 아이는 하품을 했고 하빈이 아우디를 몰고 지아를 데리러 왔다.“아가씨,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지아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차는 어디서 구했어요?”“빌렸어요. 이렇게 좋은 차가 엄청 싸게 나왔더라고요. 소망 아가씨 잠들겠네요. 대중교통 타고 가기엔 불편할 테니 얼른 타요. 밖에 바람도 불고 눈도 오잖아요.”지아는 민아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탔는데, 소망이는 이미 지아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하빈이 여러 가방을 트렁크에 넣으면서 열성적으로 물었다.“이분은 어디 가세요?”“전...”민아가 머뭇거리자 지아가 물었다.“너 아직도 제이드 가든에 있어?”“응.”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살던 곳.”“알았어, 차에 타.”밖의 눈보라는 점점 더 거세지고 길에는 행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지아는 민아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여러 번 발견하고 물었지만 괜찮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민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지아는 민아와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지내온 사이라 민아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호탕한 성격의 민아가 말수가 적어지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멍을 때리자 지아는 대충 남자와 관련된 일이라고 짐작했다.좋은 남자가 아니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거나.과거 민아는 주진구와 만날 때만 해도 온 세상에 연애한다고 알리고 싶어 할 정도였다.민아가 대화를 원하지 않으니 지아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민아를 먼저 데려다주자 그녀가 애써 웃는 척하며 말했다.“여기서 내릴게. 애도 자는데 이만 가 봐.”“며칠 뒤면 크리스마스인데 같이 놀러 갈래?”민아의 얼굴에 또 한 번 상실감이 스쳐 지나갔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내가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알았어. 그럼 내 새 번호 저장해두고 시간 나면 연락해 줘.”“그래, 잘 가.”지아는 차 문을 닫고 백미러를 통해 길가에 서서
지아는 돌아오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과거 학생 시절의 자신과 민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그때 미래의 운명을 알았다면 좀 더 자유롭게 웃을 수 있었을까?차가 집에 도착하고 하빈은 일부러 아기를 먼저 데리고 나갔다.지아는 금방 돌아가지 않고 가로등 밑에 서서 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거기 있는 거 알아요.”가로등 뒤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도윤은 멀리서 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요.”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고, 지아는 도윤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그날 밤엔 고마웠어요.”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도윤이 제때 돈을 빌려 값을 치르지 않았다면 지아는 악마들의 손에 넘어가 목숨이 끝날 뻔했다.“제가 아가씨를 지키지 못했습니다.”도윤의 어깨와 머리에 하얀 눈이 두툼하게 쌓인 걸 보아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지아는 천천히 도윤을 향해 걸어왔고, 도윤은 조금 불안했다.지아가 자신의 정체를 알았는지 확신이 없었던 도윤은 지아가 알면 어떻게 할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에 곧 길은 두꺼운 얼음과 눈으로 덮였다.지아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도윤의 심장은 눈 소리와 함께 거칠게 뛰고 있었다.지아는 도윤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이건...’“내일 은행에 가기로 했어요.”“아가씨, 뭐 하시려고요?”“계좌 번호 줘요. 그동안 일했던 돈 정산해 줄게요.”도윤은 짙은 눈썹을 내렸다.“그럼 아가씨께서는 이제 제가 필요 없는 겁니까?”“계좌의 돈이 움직이면 그 사람이 분명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 저도 도망갈 수 없을 거고, 그 사람이 당신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강욱 씨, 멀리 가요, 최대한 멀리.”도윤은 그제야 자신이 지아에게 악마의 그림자처럼 드리운 채 따라다니며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사람은 아직 아프리카에 있잖아요. 게다가 오랫동안 죽은 척했으니 들키기 쉽지
지아는 방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이미 잠든 뒤여서 뜨거운 수건으로 아이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떠나면서 때마침 내려다본 가로등 아래 강욱이 서 있었다.‘왜 바보처럼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곳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걸까?’예로부터 그리움과 얻지 못하는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했다.지아는 힐끗 바라보고 커튼을 닫았다. 아무것도 줄 수 없기에 애초에 상대방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로 했다.하빈은 천천히 도윤에게 다가가 말했다.“보스, 사모님께서는 이미 주무시고 계세요, 이만 돌아가세요.”“조금만 더 있을게.”도윤은 눈 속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눈보라에 온몸을 맡긴 뒤 담배를 다 태우고 떠났다.다음 날 아침 일찍 지아는 하빈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접 은행에 가서 큰돈을 이체했다.지아는 어쩌면 은행에서 걸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은행 직원들도 매우 예의 있게 다과도 미리 준비해 두었으며, 은행장이 직접 안내를 해주었다.은행장은 마지막까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면서 지아를 문 앞까지 데려다주며 지아가 가져갈 쌀 포대와 기름을 몇 개 더 건네주었다.지아가 문을 나섰지만 문밖은 텅 비어 있었다.‘괜한 생각이었나? 도윤이 아무도 보내지 않았다고? 아니면 이미 내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인 걸까?’눈보라를 맞으며 서 있던 지아는 조금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도윤에게 억압당할 때는 역겨웠지만, 정말 자신을 포기하자 지아는 마음 한구석에서 상실감을 느꼈다.이제 지아는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지아는 모교를 찾아갔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어린 얼굴을 바라보던 지아는 마치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그때 한 소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지아 누나!”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지아는 저 멀리서 교복을 입은 소년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처음에 자신과 키가 비슷했던 소년은 몇 년 사이 부쩍 성장해 지아보다 키가 반 뽐 정도 더 컸다.평소에도 예의 바른 민이는 지난 며칠간 학업에
단순한 십 대 소년은 지난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지아는 다정하게 말했다.“다른 나라에 출장 갔어. 예전에는 자주 왔었어?”“처음 1, 2년은 그랬어요. 직접 제 숙제도 도와주고 그림도 봐주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바빠서 그런지 작년에 본 게 거의 마지막이었고, 살도 많이 빠졌더라고요.”지훈은 머리를 긁적였다.“지아 누나, 아저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처음에는 하늘 아래 가장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연락하고 나니 말수가 적어서 그렇지 마음도 섬세하고 책임감도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지아는 도윤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온 이유를 말했다.“전효 씨가 연락한 적 있어?”“형님 매일 보이지 않아요. 제가 처음 학교 다닐 때 몇 번 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어요.”“연락은 됐어?”지훈은 고개를 저었다.“예전 연락처만 있는데, 그 번호는 오래전에 지웠어요. 지난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젠 만나러 오지도 않아요.”지아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고 이지훈은 걱정이 되었다.“지아 누나, 무슨 일 있어요?”“전효를 찾아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그렇다면 섬으로 돌아가서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 몇 년 동안 아저씨는 우리 섬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었어요. 해항선도 열고, 섬에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었고, 어부들도 질서를 지키며 낚시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큰 변화가 생겼죠. 저랑 같이 가 보면 알 수 있어요.”“학교 안 가도 괜찮아?”지아는 멀리서 교과서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전 이미 학교 붙어서 수업에 가든 안 가든 상관없어요. 가요, 내가 데려다줄게요.”예전에는 말수가 적고 덩치만 컸던 이지훈이 요즘은 성격도 훨씬 좋아졌고, 더 이상 우울하지 않고 햇살 가득 밝은 사람으로 변했다.지아는 아이와 함께 섬에 갔을 때 섬의 풍경에 정말 놀랐다.과거 이 섬은 교통이 불편할 뿐 아니라 전기조차 자급자족할 수 없었고, 산과 바다에 의지하는 원시적인 생활 습관이
언뜻 보기에도 도윤이 쓴 글씨가 너무 익숙했고, 거대한 벚나무에 적어도 수천 개 비단이 흩날리고 있었다.“지아 누나, 이건 아저씨가 쓴 거예요. 누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지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난 만수 아저씨 보러 갈게.”만수는 전보다 조금 더 젊어 보였고, 생활이 편해지니 사람들도 좋아진 것이 분명했다.지아가 왔다는 것을 안 만수는 열정적으로 맞이하며 곧장 닭장에서 닭 한 마리를 들고나왔다.“지아 왔구나, 오랜만이네. 마른 것 좀 봐라. 내가 닭 한 마리 잡아서 몸보신해 줄게.”거절할 수 없었던 지아는 주방으로 가서 만수를 도와줄 준비를 했다.집안의 부엌이 모두 현대식으로 되어 있고, 고기를 먹을 여유조차 없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아저씨, 전효 씨 온 적 있어요?”만수는 쌀을 도정하면서 말했다.“그 녀석 본지 오래됐는데 그래도 가끔씩 안부 전화 해줘.”지아의 눈이 반짝였다.“얼마나 자주요?”“글쎄, 두세 달에 한 번?”“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였어요?”“중양절, 분명히 기억나.”지아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올해 중양이 정확히 10월 23일이니까 최근에 연락을 했겠군요? 아저씨, 아주 중요한 부탁할 게 있어요.”“그런 말 하지 마. 네 덕분에 우리 섬이 잘 되어가고 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게.”지아는 만수에게 몇 마디를 건네며 소망이와 함께 섬에서 지냈다.일단 이곳은 안전했고, 굳이 지아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도윤 외에도 아직 지아의 죽음을 노리는 적이 있었다.섬의 시설은 이미 완벽했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지훈은 매일 소망과 함께 섬 곳곳을 누볐고 소망이도 섬을 무척 좋아했다.지아는 밀물과 썰물, 해가 지고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도윤이 곧 자신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마치 그림자처럼 마음에 드리워진 그 악마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전
민아의 얼굴은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간병인이 저녁 식사를 들고 와서 당부했다.“아가씨, 유산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몸 잘 추슬러야 해요. 많이 먹어요. 아직 젊으니까 곧 회복할 수 있어요. 다시 임신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가져가세요.”“아가씨, 저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 전 그저 일하는 사람일 뿐이잖아요.”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민아는 곧바로 쟁반에서 음식을 모두 들어 올리며 바닥에 쏟았다.“꺼지라고.”간병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잔해 조각들을 수거했다.민아는 밖에 날리는 눈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지아의 상황을 이해했다.다만 의아했던 건 지아가 귀국했다는 걸 세찬이 이미 아는데 그걸 도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도윤이 지아가 죽지 않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지아를 혼자 내버려둘 수 있겠나.‘아니면 이제 정말 정신 차렸나?’하지만 민아는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더 큰 속셈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지아는 전화를 끊고 두 눈에 걱정스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민아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세찬과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행복한 사랑에 빠진 것 같지는 않았는데.’휴대폰에 민아로부터 또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일부러 밝은 척 웃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화면에는 한 마디밖에 없었다.[이도윤 조심해.]지아는 조금 놀라서 서둘러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민아 쪽은 이미 전원이 꺼져 있었다.‘무슨 뜻일까? 민아가 뭔가 알고 있나?’ 지아는 안절부절못했다. ‘민아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갑자기 휴대폰을 꺼버린 거지?’병원.민아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훔쳐 간 눈앞의 남자를 화난 표정으로 쳐다봤다. 훤칠한 키에 잘생기고 우아한 외모의 남자는 하는 짓마다 가관이었다.“강세찬, 내 폰 내놔!”세찬은 휴대폰을 꺼버리고 누군가 맞을까 봐 걱정하지도 않는지 바로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김 비서, 내가 남의 일에 너무
지아는 이 메시지를 받은 후 마음이 불안했다.민아는 세찬과 같이 있으니 도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아마도 민아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경고한 것 같았다.‘세찬은 민아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지아는 돌아가고 싶지만 전효의 행방을 놓칠까 봐 두려웠다.밤낮으로 민아와 연락되지 않자 지아는 초조해졌고, 민아를 그대로 놔둘 수 없었다.만수에게 거듭 당부한 뒤, 소망을 섬에 남겨두고 혼자 배를 타고 몰래 A시로 돌아왔다.도윤은 이미 지아가 섬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상태였다.도윤은 섬에서 지아의 모든 행동을 다 지켜보고 있었지만 지아가 섬에서 지내면서 전효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고 몰래 돌아간 이유를 알 수 없었다.A시는 아주 추웠고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지아는 택시를 타고 민아의 아파트로 향했다.민아가 영업사원이 된 후 매입한 집은 방 2개, 거실 1개로 크지 않지만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고, 지아가 자주 드나들어 경비원들도 다 알아보았기에 출입을 막지 않았다.지아는 먼저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자 잔뜩 긴장하며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갔다.방은 어두웠고 공기 중에 오랫동안 사람이 없었던 흔적이 가득했다.불을 켜자 현관에 여성용 샌들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미 겨울인데 왜 아직도 샌들이 있을까?답은 딱 하나였다.여름에 민아는 이 집을 떠난 이후로 이곳에 살지 않았다.지아는 다시 경비원을 찾아 물었다.“민아 씨요? 여기 자주 오지 않았어요. 연애하는지 처음 한두 달은 보이다가 나중에는 돌아오는 텀이 점점 길어지더라고요. 집을 내놓지 않겠냐고도 물어봤어요. 여기 위치도 좋고, 집값도 올라서 팔면 큰돈 벌 수 있거든요.”“혹시 남자 친구를 본 적 있어요?”지아는 계속 물었다.“남자를 몇 번 본 적은 있는데 남자 친구인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보름 전에 민아 씨가 물건 가지러 왔을 때 배가 살짝 나온 걸 봐서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지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지아 역시 아이를 두 번이나 잃은 아픔을 경험한 엄마이기 때문에 민아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된 지아는 더욱 가슴이 아프고 걱정이 되었다.민아의 성격상 세찬과 정상적인 관계였다면 아이를 잃었어도 지아에게 말했을 것이다.세찬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건 좋은 진전이 없다는 의미였다.서로 마음이 같지 않은 관계의 결말은 어떨까?지아는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민아를 찾고 싶었다.티위 팰리스는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었다.마친 그곳에 지아에게 주려던 도윤의 집도 있었지만 지아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그런 곳은 집주인이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집주인인 지아를 본 부동산 관리인은 매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지아는 대충 핑계를 대고 세찬의 집 번지수를 알아냈다.공교롭게도 지아의 집은 1층이고 세찬의 집은 꼭대기 층이라 같은 건물이었다.지아는 이곳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세찬과 마주친 적도 없었다.이제 세찬의 주소를 알아도 지아는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함부로 집에 들어설 수 없었다.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부자이거나 재력가, 아니면 연예계 톱스타들이었고, 입주율은 60퍼센트에 불과했다.이 시간대에는 불이 켜진 방이 많지 않았다.건물은 총 7층에 매 층마다 집이 한 채였다. 맨 꼭대기에 있는 거실과 침실에 불이 켜져 있어 세찬의 집이 입주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아는 저 멀리서 눈을 쓸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현금 20만 원을 꺼냈다.“아줌마, 부탁이 있어요.”돈에 이끌린 청소부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지아는 계단에 숨어 아줌마가 초인종을 누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문이 열렸다.잠옷 차림의 세찬은 전에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다.“선생님, 방금 한 집주인께서 아이가 길을 잃었다며 신고를 했는데, 아이가 너무 작아서 동을 잘못 들어갔는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키가 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