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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4화

이영은 침묵이 흐른 뒤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내 약속은 변하지 않아.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설영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녀의 뜻을 알았던 이영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제야 이영은 근태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이영 씨, 일도 그만뒀는데 아직도 그렇게 바쁩니까?”

“안 바빠요. 그냥 친구랑 얘기 좀 했어요. 대표님께서 직접 안내해 주시고, 일하시는데 방해되지 않으시겠어요?”

“평소에 바쁜 걸로 충분해요. 저도 쉴 때가 있어야죠. 오래간만에 이렇게 나왔는데 오히려 이런 기회를 준 강이영 씨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네요.”

이영은 미소만 지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근태가 말했다.

“저는 오히려 강이영 씨와 이 대표님과의 관계가 더 궁금합니다.”

“그게 중요한가요?”

근태는 검지에 끼고 있는 보석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이 대표님은 하씨 가문 땅을 위해 이곳에 오시는데 강이영 씨가 여전히 이 대표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 강이영 씨의 체면을 생각해서...”

이영이 정중하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

“괜한 생각 마세요, 하 대표님. 이 대표님이 제 전 상사였던 건 맞지만 전 이미 회사를 떠났고, 회사 일은 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공과 사가 확실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면 평범한 친구조차 할 수 없는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죠. 하 대표님 생각대로 하세요. 저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C시에 온 건 동생 때문인데 대표님하고 같은 호텔에 묵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렇게 안 봤는데 강이영 씨 꽤 매정하네요.”

“매정한 건 아니고, 원래 어른들 세상에선 이익만 따지니까요.”

이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덤덤했기 때문에 근태는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차가 천천히 멈추자 근태가 먼저 내려 이영의 휠체어를 꺼냈다.

근철은 보영이 올 줄 알고 아침 일찍부터 와서 들뜬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영 누나, 보영아, 또 만났네요.”

“근철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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