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는 상대방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내가 바보야, 그런 것까지 통역하게?”경호원은 속이 쓰렸다.‘이런 미친…’지아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민아야, 어디 있어?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민아는 지아가 어떻게 부활했는지 몰랐지만, 지아가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살아가는 게 더 이상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적어도 지아가 걱정하게 할 수는 없었다.“아니야, 새 보디가드랑 얘기 중이야. 지아 넌 아직 모르지, 나 초콜릿 복근 있는 경호원 8명씩 데리고 다닐 정도로 잘 나간다?”“목소리 들으니까 안심이 되네. 네가 잘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했어.”“잘 지내. 내가 왜 잘 못 지내겠어. 지금은 큰 별장에 살면서 리무진도 타면서 부자의 삶을 살아.”민아가 웃으며 말했지만 지아는 예민하게 감지했다.“우는 거야?”민아는 눈송이가 흩날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가에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네가 죽지 않은 것에 너무 기뻐서 그러지. 기쁨의 눈물도 못 흘려?”경호원들은 그 틈을 타서 민아를 끌어올렸고, 민아의 몸이 눈 속에 파묻혔다.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엄청나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지아야, 보고 싶어.”지아는 민아의 속사정을 모르고 정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럼 늘 가던 곳에서 보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어.”“그래.”“언제 도착해?”“30분, 아니 한 시간. 나도 이제 흙수저가 아니니까 단장 좀 해야겠어.”“알았어, 그럼 한 시간 후에 보자.”민아는 전화를 끊고 경호원이 말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지금 내 상태 어때?”경호원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예쁜 귀신 같습니다”“그 입 다물어.”그렇게 말한 뒤 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도망쳤고 경호원이 뒤쫓았다.“김 비서님, 이제 안 뛰어내리세요?” “내 친구가 날 찾는 게 안 보여? 강세찬한테 나간다고 전해. 또 못 나가게 하면 바로 배를 갈라서 보여줄 거라고.”경호원은 입꼬리를 올렸다.‘보스는 어쩌
이영은 침묵이 흐른 뒤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내 약속은 변하지 않아.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설영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녀의 뜻을 알았던 이영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제야 이영은 근태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강이영 씨, 일도 그만뒀는데 아직도 그렇게 바쁩니까?”“안 바빠요. 그냥 친구랑 얘기 좀 했어요. 대표님께서 직접 안내해 주시고, 일하시는데 방해되지 않으시겠어요?”“평소에 바쁜 걸로 충분해요. 저도 쉴 때가 있어야죠. 오래간만에 이렇게 나왔는데 오히려 이런 기회를 준 강이영 씨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네요.”이영은 미소만 지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근태가 말했다.“저는 오히려 강이영 씨와 이 대표님과의 관계가 더 궁금합니다.”“그게 중요한가요?”근태는 검지에 끼고 있는 보석 반지를 만지작거렸다.“이 대표님은 하씨 가문 땅을 위해 이곳에 오시는데 강이영 씨가 여전히 이 대표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 강이영 씨의 체면을 생각해서...”이영이 정중하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괜한 생각 마세요, 하 대표님. 이 대표님이 제 전 상사였던 건 맞지만 전 이미 회사를 떠났고, 회사 일은 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공과 사가 확실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면 평범한 친구조차 할 수 없는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죠. 하 대표님 생각대로 하세요. 저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C시에 온 건 동생 때문인데 대표님하고 같은 호텔에 묵게 될 줄은 몰랐어요.”“그렇게 안 봤는데 강이영 씨 꽤 매정하네요.”“매정한 건 아니고, 원래 어른들 세상에선 이익만 따지니까요.”이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덤덤했기 때문에 근태는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차가 천천히 멈추자 근태가 먼저 내려 이영의 휠체어를 꺼냈다.근철은 보영이 올 줄 알고 아침 일찍부터 와서 들뜬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이영 누나, 보영아, 또 만났네요.”“근철 도련님.”
다시 만난 지아는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표정으로 농담까지 건넸다.민아는 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지아가 드디어 힘든 감정을 이겨냈구나, 정말 다행이야.”“그래, 옛날에는 사는 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고 하루하루가 고문 같았는데 아이를 만난 후로 눈앞의 검은 안개가 걷힌 것처럼 삶이 가치 있다고 느껴져.”민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소망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좋네.”“너도 이젠 나이가 있는데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사람 만난 적 없어?”지아는 아기를 너무 좋아하는 민아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꺼낼 때마다 민아는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을 돌렸다.“난 여전히 매력적이라 나 좋다는 사람 저기 해외까지 줄을 섰지만, 어디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있어야지.”지아는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날 보러 와준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나?”“우리가 어떤 사이야,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만날 시간은 남겨둬야지.”“스읍, 쓸데없는 소리. 그 입은 아직도 필터가 없네. 나쁜 일은 꼭 말한 대로 된다는 걸 몰라?”“못 본 사이에 왜 잔소리가 더 늘었어? 너 예전에 미신 같은 거 안 믿었잖아.”지아는 따뜻한 밀크티를 들고 두 모금 마셨다.“그땐 어려서 내가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 될 줄 알았지. 근데 현실에서 한번 또 한 번 겪어보니 알겠더라. 나는 고작 바닷속 물방울 하나에 지나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걸.”“우리 아직 칠십도 안 됐는데 왜 장기나 두는 노인네 같지?”민아는 턱을 괸 채 진지하게 고민했다.“아마 이게 성장의 대가겠지.”“솔직하게 말해봐. 앞으로 어떡할 거야?”지아는 무기력했다.“일단 건우 선배한테 돈부터 갚아야지.”“하지만 그러면 이도윤이 네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잖아.”그 말을 꺼내는 순간 민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아니, 그는 이미 알고 있다.’얼마 전 지아가 전화를 걸었을 때 주위에 많은 경호원들이 있었
이전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밀크티를 마시고, 쇼핑하고, 영화를 보며 다시 만난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영화가 끝나자 아이는 하품을 했고 하빈이 아우디를 몰고 지아를 데리러 왔다.“아가씨,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지아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차는 어디서 구했어요?”“빌렸어요. 이렇게 좋은 차가 엄청 싸게 나왔더라고요. 소망 아가씨 잠들겠네요. 대중교통 타고 가기엔 불편할 테니 얼른 타요. 밖에 바람도 불고 눈도 오잖아요.”지아는 민아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탔는데, 소망이는 이미 지아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하빈이 여러 가방을 트렁크에 넣으면서 열성적으로 물었다.“이분은 어디 가세요?”“전...”민아가 머뭇거리자 지아가 물었다.“너 아직도 제이드 가든에 있어?”“응.”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살던 곳.”“알았어, 차에 타.”밖의 눈보라는 점점 더 거세지고 길에는 행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지아는 민아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여러 번 발견하고 물었지만 괜찮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민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지아는 민아와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지내온 사이라 민아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호탕한 성격의 민아가 말수가 적어지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멍을 때리자 지아는 대충 남자와 관련된 일이라고 짐작했다.좋은 남자가 아니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거나.과거 민아는 주진구와 만날 때만 해도 온 세상에 연애한다고 알리고 싶어 할 정도였다.민아가 대화를 원하지 않으니 지아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민아를 먼저 데려다주자 그녀가 애써 웃는 척하며 말했다.“여기서 내릴게. 애도 자는데 이만 가 봐.”“며칠 뒤면 크리스마스인데 같이 놀러 갈래?”민아의 얼굴에 또 한 번 상실감이 스쳐 지나갔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내가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알았어. 그럼 내 새 번호 저장해두고 시간 나면 연락해 줘.”“그래, 잘 가.”지아는 차 문을 닫고 백미러를 통해 길가에 서서
지아는 돌아오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과거 학생 시절의 자신과 민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그때 미래의 운명을 알았다면 좀 더 자유롭게 웃을 수 있었을까?차가 집에 도착하고 하빈은 일부러 아기를 먼저 데리고 나갔다.지아는 금방 돌아가지 않고 가로등 밑에 서서 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거기 있는 거 알아요.”가로등 뒤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도윤은 멀리서 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요.”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고, 지아는 도윤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그날 밤엔 고마웠어요.”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도윤이 제때 돈을 빌려 값을 치르지 않았다면 지아는 악마들의 손에 넘어가 목숨이 끝날 뻔했다.“제가 아가씨를 지키지 못했습니다.”도윤의 어깨와 머리에 하얀 눈이 두툼하게 쌓인 걸 보아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지아는 천천히 도윤을 향해 걸어왔고, 도윤은 조금 불안했다.지아가 자신의 정체를 알았는지 확신이 없었던 도윤은 지아가 알면 어떻게 할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에 곧 길은 두꺼운 얼음과 눈으로 덮였다.지아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도윤의 심장은 눈 소리와 함께 거칠게 뛰고 있었다.지아는 도윤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이건...’“내일 은행에 가기로 했어요.”“아가씨, 뭐 하시려고요?”“계좌 번호 줘요. 그동안 일했던 돈 정산해 줄게요.”도윤은 짙은 눈썹을 내렸다.“그럼 아가씨께서는 이제 제가 필요 없는 겁니까?”“계좌의 돈이 움직이면 그 사람이 분명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 저도 도망갈 수 없을 거고, 그 사람이 당신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강욱 씨, 멀리 가요, 최대한 멀리.”도윤은 그제야 자신이 지아에게 악마의 그림자처럼 드리운 채 따라다니며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사람은 아직 아프리카에 있잖아요. 게다가 오랫동안 죽은 척했으니 들키기 쉽지
지아는 방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이미 잠든 뒤여서 뜨거운 수건으로 아이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떠나면서 때마침 내려다본 가로등 아래 강욱이 서 있었다.‘왜 바보처럼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곳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걸까?’예로부터 그리움과 얻지 못하는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했다.지아는 힐끗 바라보고 커튼을 닫았다. 아무것도 줄 수 없기에 애초에 상대방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로 했다.하빈은 천천히 도윤에게 다가가 말했다.“보스, 사모님께서는 이미 주무시고 계세요, 이만 돌아가세요.”“조금만 더 있을게.”도윤은 눈 속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눈보라에 온몸을 맡긴 뒤 담배를 다 태우고 떠났다.다음 날 아침 일찍 지아는 하빈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접 은행에 가서 큰돈을 이체했다.지아는 어쩌면 은행에서 걸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은행 직원들도 매우 예의 있게 다과도 미리 준비해 두었으며, 은행장이 직접 안내를 해주었다.은행장은 마지막까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면서 지아를 문 앞까지 데려다주며 지아가 가져갈 쌀 포대와 기름을 몇 개 더 건네주었다.지아가 문을 나섰지만 문밖은 텅 비어 있었다.‘괜한 생각이었나? 도윤이 아무도 보내지 않았다고? 아니면 이미 내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인 걸까?’눈보라를 맞으며 서 있던 지아는 조금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도윤에게 억압당할 때는 역겨웠지만, 정말 자신을 포기하자 지아는 마음 한구석에서 상실감을 느꼈다.이제 지아는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지아는 모교를 찾아갔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어린 얼굴을 바라보던 지아는 마치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그때 한 소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지아 누나!”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지아는 저 멀리서 교복을 입은 소년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처음에 자신과 키가 비슷했던 소년은 몇 년 사이 부쩍 성장해 지아보다 키가 반 뽐 정도 더 컸다.평소에도 예의 바른 민이는 지난 며칠간 학업에
단순한 십 대 소년은 지난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지아는 다정하게 말했다.“다른 나라에 출장 갔어. 예전에는 자주 왔었어?”“처음 1, 2년은 그랬어요. 직접 제 숙제도 도와주고 그림도 봐주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바빠서 그런지 작년에 본 게 거의 마지막이었고, 살도 많이 빠졌더라고요.”지훈은 머리를 긁적였다.“지아 누나, 아저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처음에는 하늘 아래 가장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연락하고 나니 말수가 적어서 그렇지 마음도 섬세하고 책임감도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지아는 도윤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온 이유를 말했다.“전효 씨가 연락한 적 있어?”“형님 매일 보이지 않아요. 제가 처음 학교 다닐 때 몇 번 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어요.”“연락은 됐어?”지훈은 고개를 저었다.“예전 연락처만 있는데, 그 번호는 오래전에 지웠어요. 지난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젠 만나러 오지도 않아요.”지아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고 이지훈은 걱정이 되었다.“지아 누나, 무슨 일 있어요?”“전효를 찾아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그렇다면 섬으로 돌아가서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 몇 년 동안 아저씨는 우리 섬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었어요. 해항선도 열고, 섬에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었고, 어부들도 질서를 지키며 낚시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큰 변화가 생겼죠. 저랑 같이 가 보면 알 수 있어요.”“학교 안 가도 괜찮아?”지아는 멀리서 교과서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전 이미 학교 붙어서 수업에 가든 안 가든 상관없어요. 가요, 내가 데려다줄게요.”예전에는 말수가 적고 덩치만 컸던 이지훈이 요즘은 성격도 훨씬 좋아졌고, 더 이상 우울하지 않고 햇살 가득 밝은 사람으로 변했다.지아는 아이와 함께 섬에 갔을 때 섬의 풍경에 정말 놀랐다.과거 이 섬은 교통이 불편할 뿐 아니라 전기조차 자급자족할 수 없었고, 산과 바다에 의지하는 원시적인 생활 습관이
언뜻 보기에도 도윤이 쓴 글씨가 너무 익숙했고, 거대한 벚나무에 적어도 수천 개 비단이 흩날리고 있었다.“지아 누나, 이건 아저씨가 쓴 거예요. 누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지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난 만수 아저씨 보러 갈게.”만수는 전보다 조금 더 젊어 보였고, 생활이 편해지니 사람들도 좋아진 것이 분명했다.지아가 왔다는 것을 안 만수는 열정적으로 맞이하며 곧장 닭장에서 닭 한 마리를 들고나왔다.“지아 왔구나, 오랜만이네. 마른 것 좀 봐라. 내가 닭 한 마리 잡아서 몸보신해 줄게.”거절할 수 없었던 지아는 주방으로 가서 만수를 도와줄 준비를 했다.집안의 부엌이 모두 현대식으로 되어 있고, 고기를 먹을 여유조차 없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아저씨, 전효 씨 온 적 있어요?”만수는 쌀을 도정하면서 말했다.“그 녀석 본지 오래됐는데 그래도 가끔씩 안부 전화 해줘.”지아의 눈이 반짝였다.“얼마나 자주요?”“글쎄, 두세 달에 한 번?”“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였어요?”“중양절, 분명히 기억나.”지아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올해 중양이 정확히 10월 23일이니까 최근에 연락을 했겠군요? 아저씨, 아주 중요한 부탁할 게 있어요.”“그런 말 하지 마. 네 덕분에 우리 섬이 잘 되어가고 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게.”지아는 만수에게 몇 마디를 건네며 소망이와 함께 섬에서 지냈다.일단 이곳은 안전했고, 굳이 지아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도윤 외에도 아직 지아의 죽음을 노리는 적이 있었다.섬의 시설은 이미 완벽했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지훈은 매일 소망과 함께 섬 곳곳을 누볐고 소망이도 섬을 무척 좋아했다.지아는 밀물과 썰물, 해가 지고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도윤이 곧 자신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마치 그림자처럼 마음에 드리워진 그 악마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