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하는 지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과거 항암 치료로 이미 의지력을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참지 못했을 것이다.도윤은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지아의 모습을 보며 약물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알겠어요. 등 돌리고 안 볼게요.”도윤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니 바다는 불빛 한 점 없이 흐릿했고, 하늘에서는 점점 가까워지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오늘 밤 진짜 파티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10분쯤 지나자 갑자기 뒤에서 여자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도윤이 서둘러 돌아보니 지아는 붉게 물든 얼굴로 머리와 몸은 물론이고 눈가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치명적이었다.“아가씨, 이게 대체... 괜찮아요?”지아는 어설프게 욕조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손발에 힘이 없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막 일어났다가 그대로 다시 쓰러졌다.“조심해요!”도윤은 황급히 손을 뻗어 지아를 잡았고, 지아는 도윤의 몸을 함께 잡아당기며 함께 욕조에 빠졌다.다행히 도윤이가 욕조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지아의 뒤통수를 감쌌다.두 사람의 몸은 모두 물에 흠뻑 젖어 서로 밀착되어 있었다.지아는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본능에 의지해 도윤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천천히 몸을 밀착시켰다.“나 너무 힘들어요.”도윤은 지아를 꼭 껴안는 것 말고는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알아요.”도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윤도 당시 몇 번이나 자제력을 잃을 뻔했고, 두 번의 약물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지아가 단지 육체적인 냉각만으로 열을 식힐 수 있을까?도윤이 할 수 있는 건 지아를 안아주며 잠시나마 편히 있게 하는 것뿐이었다.지아의 볼은 도윤의 차가운 가면에 눌려 있었고, 몸은 자꾸만 불편한 듯 비비적거렸다.“임강욱 씨, 나 못 버티겠어요. 어떡해요...”지아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힘들어 미칠 것 같아요. 정말 미치겠어요.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워요.”도윤의 거친 손끝이 지아
도윤은 조용히 지아를 안은 채 조금도 밀어붙이지 않았다.“아가씨, 일이 이렇게 됐으니 다른 얘기는 나중에 해요. 지금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입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게 싫은 건 알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도윤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오늘 밤 일은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오늘 밤이 지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예전과 같아요. 제가 싫으면 차라리... 하빈이나 다른 사람을 불러도 되고...”지아는 손을 뻗어 도윤의 입을 가린 채 다소 질책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차라리 당신이었으면 좋겠어요.”적어도 그들은 서로를 알고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아는 정말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입으로는 싫다고 말했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듯 도윤에게 바짝 붙었다.지아는 더 이상 남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팔로 감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도윤과 침대에서 사랑에 빠졌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미치도록 원했다.도윤은 물속에서 치마의 한 부분을 낚아채고 이빨로 레이스의 가벼운 부분을 뜯어냈다.지아는 조금 불안했다.“뭐, 뭐 하는 거예요?”도윤은 레이스로 지아의 눈을 가렸다.“아가씨, 날 누구로 상상하든 상관없어요.”여전히 내키지 않았던 지아가 더듬거리며 말했다.“임강욱 씨, 하지 마요. 나, 나 아직 버틸 수 있어요...”욕조의 찬물을 빼고 도윤은 미지근한 물을 다시 넣은 뒤 불을 껐다.밖에서 희미한 빛만 쏟아져 들어와 눈부시지도 않았고 분위기도 딱 좋았다.지아는 당황하며 손으로 도윤의 가슴팍을 밀었다.“저,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도윤은 몸을 숙여 지아의 귀에 속삭였다.“아가씨 몸은 이미 오래전에 준비됐어요.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것뿐이죠. 두려워하지 마요. 난 아가씨 마음 바라지 않아요.”악마처럼 낮게 속삭이며 도윤은 지아가 닫힌 마음의 문을 열도록 조금씩 밀어붙였다.도윤의 손이 지
“깨물지 마요, 마음 아파.”지아의 머릿속에는 도윤과 함께 있을 때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도윤을 만났을 때 아직 그런 일들에 익숙하지 않았다.소리를 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지아는 매번 입술을 깨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어느 날 남자가 등 뒤에서 자신의 턱을 잡으며 귓가에 이런 말을 했었다.그날은 광란의 밤이었다.지금 지아는 은빛 레이스로 눈을 가리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깨닫지 못했다.남자가 턱을 들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백조 같은 목선을 드러냈다.흐트러진 드레스가 어깨에서 흘러내려 새하얀 팔과 섹시한 쇄골이 드러났고, 미세한 스팽글이 어두운 밤에 반짝였다.하늘하늘한 치마가 막 피어나려는 꽃처럼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도윤은 천천히 몸을 숙여 밤낮으로 생각했던 그 입술에 키스했다.지아의 첫 반응은 당연히 거절이었다. 이번에는 도윤이 맨정신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도윤의 가슴에 손을 대고 밀어내는데 셔츠를 사이에 두고 뜨거운 체온이 느껴져 지아의 손바닥도 뜨겁게 달아올랐다.왜, 남자의 키스가 도윤과 비슷하게 느껴졌을까?다른 남자와 키스를 해 본 적이 없는 지아는 누구와 하든 똑같은 느낌이기에 이런 착각이 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머릿속은 점차 혼란스러워졌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본능만이 지아를 이끌었다.이 순간에도 지아의 머릿속은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을 생각하고 외치고 있었다.욕실의 나른한 분위기와 달리 이 배는 개업 이래 첫 번째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경매가 끝나고 조이는 화를 내며 방으로 돌아와 먼저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모두 부쉈다.“누님, 왜 그렇게 화를 내요? 68억이 생겼으니 기뻐해야죠! 이렇게 큰 거래를 성사했으니 보스도 분명 큰 상을 주실 겁니다!”조이는 찻잔을 집어 들고 남자의 발에 내리쳤다.“닥쳐, 알아보라는 건 왜 못 알아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60억을 그냥 가져와?”“누님, 제가 알아낸 임강욱 씨 정보는
문을 걷어찬 사람은 다름 아닌 하빈이였다.지금 하빈은 더 이상 지아와 소망 앞에서 보이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 아니었다.얼굴에 쓴 가면마저도 귀신 토템으로 바꾸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용맹하게 서 있는 근엄한 모습이었다.“빙고, 정답. 너희를 위한 거야.”조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네가 뭔데 여기가 어딘지 알아? 어떻게 감히 배 위에서 무모하게 행동할 수 있어?”말하는 동시에 조이는 이미 경보기를 눌렀고, 그 소리를 듣고 모든 부하들이 무기를 장착하고 달려 나왔다.조이는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배에서 무모하게 행동한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잘게 썰어서 물고기 밥이 될 거야.”이 순간 헬기에 탄 사람들이 로프 사다리를 따라 갑판 위 모든 곳에 체계적으로 내려갔고, 모두 방탄조끼와 방폭 헬멧을 쓰고 무기를 손에 든 채 무거운 군화를 신고 갑판에 발을 디뎠다.조이의 전사들은 대부분 손에 피를 묻힌 적 있는 무법자들이었고, 목숨을 위협하는 격투 스타일로 일반인들을 쉽게 상대할 수 있었지만 정규적인 용병단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었다.배 안에서 온갖 총소리와 비명, 싸움이 난무했다.조이는 여전히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고, 하빈은 이미 오래전에 모든 문을 막은 터라 창문에도 사람들이 빼곡했다.“조이 씨, 가시죠.”하빈이 문 앞에 섰다.“뭐 하려는 거야, 여기가 누구의 영역인지 알아?”하빈은 비웃었다.“상관없어. 처리해.”모두들 양의 무리를 덮친 늑대들처럼 게임을 시작했다.성매매를 하던 사람들의 방문이 그대로 발에 걷어차여 열렸다.“모두 손들어, 성매매 현장 적발이다! 손으로 머리 뒤로 보내고 구석으로 가.”남녀는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바다 위라 경찰이 올 리도 없었다.다시 보니 사람들은 경찰 제복이 아니라 용병 위장복을 입고 있었다.“당신들 누구야?”배가 나온 한 남자가 물었다.“누가 여기로 오라고 했어?”대꾸하는 사람 하나 없이 사진만 찍었다.
수천 마일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남자는 자연스럽게 이 모든 일을 목격했다.헬기가 나타났다는 왕 매니저의 조심스러운 전화에 드디어 도윤을 잡았다고 기뻐하던 남자는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소란을 피우면 피울수록 좋죠.”왕 매니저는 보스가 술에 취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배 하나로 도윤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획기적인 건 없었다.그런데 다가오는 사람들이 사설 용병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남자의 얼굴은 곧바고 바뀌었다.도윤은 자신의 부하들을 움직이지 않았다!이러면 배에 탄 사람이 도윤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빨리, 얼른 멈춰.”“너무 늦었어요, 보스, 저들은... 아악!!!”전화가 끊어졌다.남자는 다급히 카메라 화면을 켰지만 1번부터 끝까지 카메라가 전부 파손당했다.모든 카메라 위치가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며칠 전 도윤이 배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남자는 자신이 도윤을 골탕먹이는 동시에 자기도 이미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번엔 제대로 한방 먹었다!’마지막 한 대는 진봉이 고장 냈는데, 진봉은 발을 올리기 전에 카메라에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며 남자를 조롱했다.그러더니 카메라를 발로 차서 순식간에 깨뜨리고 화면이 검게 변했다.배 안에서 악마의 파티가 시작되었고,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당했다! 이도윤, 이 망할 자식이 감히 날 놀려?’남자는 화가 나서 모래 원반 위에 있는 일곱 개의 별 탑을 손으로 쓸어내렸다.이 순간 타워를 쌓아 올린 수만 개의 파편이 무너지고 떨어지고 와인이 바닥에 흩어졌다.마치 남자의 실패를 비웃는 것 같았다.그와 도윤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싸워왔고, 그중 이번에 가장 처참하게 진 라운드였다.과거 도윤은 직접 배에 올라서도 아무런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오늘 지아의 사건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덕분에 도윤은 손쉽게 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고 남자는 입이 있어도 억울함을 호소할 수가 없었다.처음부터 끝
온화한 햇살이 조용히 바다 위로 쏟아져 내려 반짝였다.밤새 소란스러웠던 큰 배는 마침내 나뭇잎이 바다 위에 잔잔히 떠 있는 것처럼 고요해졌다.어젯밤은 손님들에게 끔찍한 밤이었으며, 배의 모든 기반 시설이 엄청나게 파괴되었다.현금인출기는 바로 뜯겨 나갔고, 카지노와 마찬가지로 모든 현금을 가져갔다.가져가지 못한 것은 부서지거나 파괴되었다.부유한 상인들은 모두 발가벗고 있었고 도박꾼들은 탈탈 털려서 눈이 충혈된 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감히 몸을 뒤척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이런 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고 돈은 그다음이었다.조이는 진환에게 끌려 높은 곳에 매달렸고, 아래에서 혼란스러운 현장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안 돼, 그만둬!”자신의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이런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오랫동안 배에서 깡패 노릇에 익숙해져 있던 조이는 보스가 없으면 자신이 하늘인 줄 알고 제멋대로 행동했다.자기가 건드린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것도 모른 채.보스의 수년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자 조이는 무릎을 꿇고 진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제발 그만하세요. 내가 잘못했어요, 진짜 잘못했어요. 차라리 날 죽여요. 토막 내서 물고기 밥으로 던져도 되니까 배는 망치지 마세요!”지금쯤 조이는 자신이 건드린 사람이 자신의 배후에 있는 세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거물이라는 걸 깨달았다.이건 자연계의 법칙이다. 강자는 규칙을 세우고 생사를 결정한다.진환은 가볍게 웃었다.“네가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을 놔줬어? 우리가 사적으로 합의하려고 했을 때 기회를 줬었나?”“난...”조이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가면 아래 진환의 얼굴은 비웃고 있었다.“아니지. 네 머릿속엔 오직 복수밖에 없었고, 무고한 사람과 아이들도 살려주지 않았어, 알지?”진환은 한숨을 쉬었다.“우리 보스가 그래도 여자라고 그 정도에서 끝냈으면 적당히 물러났어야지. 근데 넌 주제도 모르고 굳이 또 건드렸어. 그 모녀가 보스
용병들은 이곳을 약탈한 후 멋지게 떠났다.새벽이 다가오자 아직 자고 있던 지아도 잠결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옮겨졌다.도윤은 씻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불어와 오랫동안 가슴에 머물렀던 우울함을 털어버렸다.그들이 있는 층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엉망이었다.90%가 가고 남아있는 10% 사람들은 전부 그들 일행이었다.수백 명의 깡패들이 단단히 묶인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진환에게 풀려난 조이는 황급히 비틀거리며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레스토랑, 댄스 플로어, 각종 명품 브랜드 가게, 유흥 장소가 엉망진창이었다.조이는 잔해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없어, 다 없어.”조이는 비틀거리며 바로 갔다.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이곳에서 칵테일 몇 잔 마시면서 신처럼 다른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지켜보았다.값비싼 술들은 약탈당했고, 아무 가치도 없는 와인들은 바닥에 박살 났다.조이는 한 걸음 다가가 바닥에 반쯤 무릎을 꿇고 와인 반병을 집어 들었다.파편으로 가득 찬 병을 들고 조금 마셨고, 마지막 한 방울의 액체를 다 마시자 절망의 빛이 눈앞에 번쩍였다.깨진 파편을 들어 대동맥을 향해 세게 찔렀다.배를 이렇게 만들어서 보스에게 큰 피해를 줬으니 어디로 도망쳐도 보스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조이는 자신이 자초한 짓이라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죽음으로 죄를 갚는 것만이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탕!그런데 바로 그 순간 총알이 조이가 손에 쥐어진 유리 파편에 부딪혔다.조이는 팔이 저릿한 감각이 느껴지며 순식간에 파편이 깨져서 사방으로 튕겼다.조이가 멍하니 뒤를 돌아보자,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도윤이 무기를 내려놓고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정갈한 정장을 입은 그는 파편들 사이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당신 대체 누구야!”조이는 이를 갈았다!이 남자는 지금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자신을 유혹해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게 했다.도윤은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지아는 얼마나 잠을 잤는지도 모른 채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났고, 눈을 뜨기도 전에 온몸 곳곳에서 아픔이 느껴졌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딘가 휑한 느낌에 이불을 걷어 올리자 자신이 이미 부드럽고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이불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남자는 놀랍게도 지아의 몸을 깨끗이 씻겨주고 약까지 발라서 부기로 인한 통증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지아는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이제부터 임강욱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나...’주변에는 더 이상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는 자신의 방도 아니었다.그리고 배에 있을 때처럼 흔들리는 느낌도 없었다.육지다!어떻게 뭍에 오를 때까지 잠을 잘 수가 있지?지아는 낯선 주변을 둘러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아이는 어디 있지?지아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약하고 지친 자신의 몸을 간과한 탓에 바로 쓰러졌다.다행히 바닥에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어 다치지 않았다.방에서 소리가 들리자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엄마!”아이는 방 안에서 뛰어나왔고 지아는 무사한 아이를 보고 안도했다.“소망아.”지아는 아이를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지아는 정신이 흐릿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지아는 침대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일어서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아이를 이끌고 문밖으로 나갔다.지아는 문이 열리자 깜짝 놀랐다.하늘에서 눈송이가 날리고 있었고, 익숙한 광경, 익숙한 냄새, 익숙한 온도가 느껴졌다.어느새 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서서히 흘러내렸고, 마음속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엄마?”아이는 지아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몰라서 긴장한 듯 손을 잡고 흔들었다.지아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A시에 왔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깨어나 보니 여기 도착할 줄이야.기억상실부터 기억을 되찾기까지 올해 있었던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