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에서 방탕하게 놀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하씨 가문의 힘도 있다 보니 그와 경쟁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도윤은 하씨 가문과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일이 커지면 하씨 가문의 노인은 그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둘만 계속해서 입찰하는 가운데 금액이 8억까지 올라갔다.하건휘도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자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도대체 어떤 멍청한 자식이 나랑 해보자는 거야?”“도련님, 저희가 확인했지만 상대방 정체가 비밀리에 감춰져 있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도련님이 가격을 부를 때마다 곧바로 따라붙는 걸 보아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은데, 나중을 위해 이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하건휘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나도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저 여자가 8억의 가치가 있는지 두고 보자고. 억울해 펄쩍 뛰진 않을까 걱정이네.”결국 최고가 8억에 낙찰되었고, 모두들 대체 어떤 놈이 키스 한 번에 8억을 썼는지 궁금했다.한편으로는 그만큼의 돈을 꺼낼 수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는 가운데 남자는 손으로 수표 한 장을 휙 던졌다.조이는 무표정한 도윤을 흘겨보며 역시나 자기가 생각한 대로 8억은커녕 1억도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렇다면 오늘 자기 여자가 돈 있는 사람에게 능욕당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쯤 그날 밤 자신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궁금했다.‘그때 그렇게 모질게 굴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진 않을 텐데.’전부 그의 잘못이다!지아는 멍한 상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무대에 올라온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나른한 몸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움직이면서 몸에 두른 은색 체인에서도 선명한 울림소리가 났다.“안 돼, 오지 마!”남자는 열쇠를 가지고 천천히 잠긴 자물쇠를 열었다.철창은 남자의 키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약간만 허리를 굽히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관중들의 기대 속에 그 남자는 지아에게 다가와 지아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원래도 갸름했던 지아의 얼굴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자 이목구비가 더욱 섬세하고 뚜렷해졌고, 특히 메이크업이 더해져 마치 3D 모델링을 한 듯한 얼굴이 완성됐다.특히 잘록한 허리는 날씬해 보였지만 가슴은 작지 않았고, 긴 다리와 새하얀 피부가 돋보였다.정교한 분장 덕분에 마치 가상 세계의 인물이 현실에 나타난 것 같았다.평소 지아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도윤도 지아를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지아의 눈동자에는 은색 렌즈가 장착되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노출된 피부는 미세한 스팽글과 함께 아련하게 반짝였고 도윤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예를 들어, 해안에 좌초된 인어, 인간 세계에 떨어진 요정, 실수로 지구에 들어간 엘프, 너무 아름다워서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값을 올렸을 텐데.”하건휘가 화를 내자 옆에 있던 사람이 서둘러 말했다.“도련님, 저 여자 예쁘긴 한데 처녀도 아니고 저렇게 큰딸 안 보이십니까? 키스가 뭡니까, 손에 넣으면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는데.”하건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그래, 데리고 가면 퍼퓸 가든에 보내. 집에 있는 영감탱이 알게 하지 말고.”“그건 당연하죠.”“그런데 저 얼굴 낯익지 않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저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봤다면 도련님이 잊어버렸을까요?”“하긴.”지아가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낸 지 몇 년이 지났고, 그때는 몸무게가 10킬로 이상 불어난 데다 젖살이 아직 남아있었을 때였다.얼굴도 많이 갸름해지고 분위기도 달라진 데다 특수 분장까지 해서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하건휘는 그 여자가 도윤이 공식적으로 발표했던 아내라는 사실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모두가 키스를 기다리는 동안 남자는 가면을 벗기고 뒤로 물러섰다.모두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조이는 임강욱의 사람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그런데 정말 임강욱의 사람이었다면 왜 임강욱이 직접 올라오지 않았을까?“선생님, 왜 이 특별
조이의 선동 아래 모두가 새로운 입찰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2억이었던 가격은 순식간에 두 배가 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8억이 되어 마치 비행기를 타듯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지아의 상태가 대형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보였는데, 그 얼굴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완벽했다.고화질 카메라 속 지아는 이마에 땀을 흘리고 눈이 방황하는 것을 보아 약효가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남자들은 과감하게 미녀를 위해 수억을 버리기도 했다.하건휘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무자비한 짐승들 때문에 입찰가는 14억까지 올라갔다.사업가들은 자신이 데리고 놀다 지키면 다른 사람들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이런 미인은 높은 상품 가치가 있기에 본전을 회수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다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그 결과 가격은 치솟고 치솟아 18억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도련님, 상황이 안 좋습니다. 이 사람들 미친 걸까요?”“그래? 내가 볼 땐 제정신인 것 같은데. 놀다 지치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이득을 취할 생각이겠지.”“하지만 이대로 계속 가격이 올라가면 우리도 난감해지는데요? 한 번에 거액을 움직였다가 큰 도련님께서 아시면...”“형이 알면 뭐? 기껏해야 몇 마디 혼내겠지. 여자 하나 데리고 노는데 뭐 대단한 일이라고.”말하며 하건휘는 팻말을 들었다.“20억.”진짜 싸움이 시작됐다.하빈이 작게 말했다.“보스, 허건휘 쪽에서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어요.”“따라가.”도윤은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다.“얼마를 제시하든 따라.”재력만으로 하씨 가문은 이씨 가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물며 상대는 고작 하씨 가문 둘째 아들일 뿐이었다.하건휘도 자신이 가격을 올린 후 상대방이 입찰한다는 것을 눈치챘다.한 번에 1억씩 계속 쌓이고 쌓여, 뒤따라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렇게 두 가문은 다시 맞붙었다.하건휘는 30억까지 오르자 다소 버거웠다.“젠장, 미친놈이잖아. 고작 여자 하나에 나랑 죽자고 달려들어?”“도련님, 이
조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더 부르실 분 있나요?”하건휘는 카드를 올리고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제지를 받았다.“도련님, 잘 생각해 보세요! 저희는 60억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여기 엄청난 상대가 숨어 있으니 포기하는 게 좋겠어요. 고작 여자 하나잖아요.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알았어.”하건휘는 마음속으로는 조금 꺼려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남자의 힘은 재력에서 온다.도윤은 여전히 다리를 꼬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아우라를 풍기는 원래의 자세를 유지했다.조이는 도윤의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고 싶었지만 자신이 농담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60억, 60억, 60억... 거래 성립입니다!”조이는 마지못해 결과를 발표했다.남자는 정말로 60억이라는 거액을 꺼냈다!도윤은 일어나서 조이를 광대를 보는 듯이 바라보았다.“이제 사람 데려가도 되나?”진봉 일행이 30분 후면 도착할 테니 이젠 조이가 더 수작을 부려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조이가 물러서면 규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조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비록 이곳에서 보기 좋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긴 했다.신뢰를 깨고 나면 앞으로 누가 다시 거래를 하러 오겠나?게다가 조이는 한낱 부하일 뿐인데, 또다시 큰일을 벌여서 보스가 알면 분명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도윤을 상대하고 싶어도 지금은 절대 안 된다.조이는 가식적인 미소를 띤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물론이죠.”도윤은 일어나 긴 다리로 무대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 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열쇠.”조이는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열쇠를 내밀어야 했다.이 남자가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이야!60억을 동네 개 이름처럼 외쳤다.도윤은 먼저 소망이의 케이지를 열어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했다.소망이 도윤의 품에 뛰어들었다.“삼촌.”“착하지, 삼촌 왔으니 겁내지 마.”다행히도 여자는 어린아이에게 손을 댈 만큼 미친 사람이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지아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지아가 원한 것은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얼굴을 가리는 것뿐이었다.긴 드레스 치마가 상처 입은 인어처럼 아래로 떨어졌다.도윤은 지아를 안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고 하빈이 아기를 데리고 뒤를 바짝 따라갔다.“빨리 의사 좀 불러.”“네.”도윤은 화가 났다. 지아를 원했지만 이런 상황은 원하지 않았다.그 망할 조이가 지아에게 어떤 약을 주사했는지, 그것이 지아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의사가 지아를 진찰하는 동안 도윤은 지아를 피해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어두운 바다 위에는 헬리콥터가 떠 있었고, 헬리콥터를 본 하빈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보스, 사설 용병단을 움직인 겁니까?”하빈은 도윤이 신분을 이용해 정부 군대를 데려올 줄 알았는데 도윤이 사설 용병을 부를 줄은 몰랐다.이러면 뭔가 잘못되더라도 윗선에서 추궁할 수 없다.하빈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아니, 우리 사람들은 다...”도윤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 건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윗선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도윤은 아주 먼 섬에 자신의 군사 기지를 세웠다.헬리콥터로도 5시간 안에 오지 못하는데 어디서 이렇게 빨리 온 걸까?“급한 상황이라 남한테 빌렸어.”빌렸다고?이런 힘을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지?하빈조차도 거대한 폭풍을 머금고 있는 도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보스, 계획이 정확히 뭐예요?”도윤은 입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냈다.“몇 년 전에 우리 내에서 누군가가 다크 나이트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의심했는데, 그때 내가 직접 명령을 받고 조사했어.”“알아냈습니까?”“아니, 상대방이 진작 눈치채고 깔끔하게 철수했지만, 그 덕분에 범위를 좁힐 수 있었어.”하빈은 얼어붙었다.“그럼 이번엔...”“지아를 데려가는 것 외에도 내 의심을 계속 확인하기 위해서 탄 거야. 얼마 전에는 배후에 보스가 누구인지 이미 확인했어.”하빈은 도윤이 이렇듯 화가 나는
돌풍 같은 바닷바람이 불자 하빈의 등에는 소름이 잔뜩 돋았다.도윤이 준 미션을 수행하는 것만 알았지 그 뒤에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줄은 몰랐던 하빈이다. 도윤은 대체 어떤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걸까?가족 간의 불화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뻔히 보이는 싸움과 계산이 가득했다.“보스, 이제 어떡하죠?”하빈이 물었다.도윤의 눈빛은 깊었고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진환에게 예의 차릴 필요 없다고 전해. 이 배를 내 집처럼 생각하고 부술 건 부숴버리고, 68억이 그렇게 쉬운 돈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라고.”도윤은 무심하게 담배를 바다에 튕기며 가면을 쓴 채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내 돈을 가져갔으면 이자와 함께 뱉어내야지.”하빈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대단하다!’그동안 도윤은 이미 상대방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움직일 때 우위를 점해야 했다.상대방이 아무리 빨리 지원군을 찾는다 해도 6시간 이상 걸릴 거고 그때쯤이면 아군은 이미 도망친 지 오래였을 것이다.도윤이 이렇게 해도 눈에 보이는 증거는 없었다.밤이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도윤은 또박또박 말했다.“오늘 밤, 실컷 즐기라고 해!”도윤이 방에 들어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좀 어때요?”“좋지 않습니다. 이 아가씨 몸은 이미 약해져 있어서 진정제를 함부로 먹일 수는 없어요.”도윤은 자신도 그 고생을 하며 버텼는데 몸이 약한 지아는 오죽할까 싶었다.“더 좋은 방법은 없나요?”의사는 별다른 표정 없이 도윤을 노려보며 말했다.“그쪽 남자잖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가 알려드려야 합니까? 요즘 젊은이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다들 어디 하나 모자란지 저도 어떻게 할 수 없네요.”의사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고, 도윤은 땀에 젖은 지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아가씨, 저...”지아는 고개를 저었다.“하지 마세요.”아무리 정신이 조금밖에 안 남아있다고 해도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지아는 도윤의 소매를 꽉
그 말을 하는 지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과거 항암 치료로 이미 의지력을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참지 못했을 것이다.도윤은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지아의 모습을 보며 약물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알겠어요. 등 돌리고 안 볼게요.”도윤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니 바다는 불빛 한 점 없이 흐릿했고, 하늘에서는 점점 가까워지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오늘 밤 진짜 파티가 시작되려던 참이었다.10분쯤 지나자 갑자기 뒤에서 여자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도윤이 서둘러 돌아보니 지아는 붉게 물든 얼굴로 머리와 몸은 물론이고 눈가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치명적이었다.“아가씨, 이게 대체... 괜찮아요?”지아는 어설프게 욕조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손발에 힘이 없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막 일어났다가 그대로 다시 쓰러졌다.“조심해요!”도윤은 황급히 손을 뻗어 지아를 잡았고, 지아는 도윤의 몸을 함께 잡아당기며 함께 욕조에 빠졌다.다행히 도윤이가 욕조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지아의 뒤통수를 감쌌다.두 사람의 몸은 모두 물에 흠뻑 젖어 서로 밀착되어 있었다.지아는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본능에 의지해 도윤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천천히 몸을 밀착시켰다.“나 너무 힘들어요.”도윤은 지아를 꼭 껴안는 것 말고는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알아요.”도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윤도 당시 몇 번이나 자제력을 잃을 뻔했고, 두 번의 약물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지아가 단지 육체적인 냉각만으로 열을 식힐 수 있을까?도윤이 할 수 있는 건 지아를 안아주며 잠시나마 편히 있게 하는 것뿐이었다.지아의 볼은 도윤의 차가운 가면에 눌려 있었고, 몸은 자꾸만 불편한 듯 비비적거렸다.“임강욱 씨, 나 못 버티겠어요. 어떡해요...”지아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힘들어 미칠 것 같아요. 정말 미치겠어요.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워요.”도윤의 거친 손끝이 지아
도윤은 조용히 지아를 안은 채 조금도 밀어붙이지 않았다.“아가씨, 일이 이렇게 됐으니 다른 얘기는 나중에 해요. 지금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입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게 싫은 건 알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도윤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오늘 밤 일은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오늘 밤이 지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예전과 같아요. 제가 싫으면 차라리... 하빈이나 다른 사람을 불러도 되고...”지아는 손을 뻗어 도윤의 입을 가린 채 다소 질책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차라리 당신이었으면 좋겠어요.”적어도 그들은 서로를 알고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아는 정말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입으로는 싫다고 말했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듯 도윤에게 바짝 붙었다.지아는 더 이상 남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팔로 감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도윤과 침대에서 사랑에 빠졌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미치도록 원했다.도윤은 물속에서 치마의 한 부분을 낚아채고 이빨로 레이스의 가벼운 부분을 뜯어냈다.지아는 조금 불안했다.“뭐, 뭐 하는 거예요?”도윤은 레이스로 지아의 눈을 가렸다.“아가씨, 날 누구로 상상하든 상관없어요.”여전히 내키지 않았던 지아가 더듬거리며 말했다.“임강욱 씨, 하지 마요. 나, 나 아직 버틸 수 있어요...”욕조의 찬물을 빼고 도윤은 미지근한 물을 다시 넣은 뒤 불을 껐다.밖에서 희미한 빛만 쏟아져 들어와 눈부시지도 않았고 분위기도 딱 좋았다.지아는 당황하며 손으로 도윤의 가슴팍을 밀었다.“저,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도윤은 몸을 숙여 지아의 귀에 속삭였다.“아가씨 몸은 이미 오래전에 준비됐어요.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것뿐이죠. 두려워하지 마요. 난 아가씨 마음 바라지 않아요.”악마처럼 낮게 속삭이며 도윤은 지아가 닫힌 마음의 문을 열도록 조금씩 밀어붙였다.도윤의 손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