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이 군함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지아는 고열에 정신이 혼미한 채 온몸이 뜨거우면서도 춥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군의관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관님, 소지아 씨에게 이미 약을 먹였지만, 현재 특별한 상황이라 열이 내리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다행히 군함에는 의료 장비가 가득했고, 도윤은 지아의 곁을 지키며 열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아직 날이 밝지 않아 밖은 여전히 회색빛이 감돌았고, 바다의 포효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도윤은 옷을 덮고 지아 옆에 누워 안쓰러운 눈빛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그동안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도윤은 항상 다른 사람인 척해야 했고, 지아를 똑바로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않아서 그녀의 의심을 여러 번 샀다.다행히도 도윤은 굳건한 멘탈로 잘 숨길 수 있었다.도윤은 손을 뻗어 조용히 잠든 지아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피부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체온은 펄펄 끓고 있었다.솜털처럼 삐쭉 솟은 그녀의 머리를 바라보며 이도윤은 더욱 자책했다.그는 나지막이 속삭였다.“지아야...”지아는 무슨 꿈을 꾸는지 이마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어눌한 말을 내뱉었다.도윤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여기 있으니까.”지아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자신은 김민아와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났던 그 해로 돌아갔다.그때 두 사람은 젊고 활기차고 기운이 넘쳤으며, 세계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다짐했다.그날 밤, 바다는 풍랑과 폭풍우가 몰아쳤고, 호화 유람선은 난파되어 바다에 빠져버렸다.지아는 공포에 질려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바로 그때 하늘에서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내려와 자신의 귓가에 속삭였다.“겁내지 마, 나 여기 있어.”남자의 팔은 강하고 힘차게 자신의 허리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지아는 당황한 나머지 남자의 목을 껴안고 그와 함께 떠올랐다.분명 낯선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강한 안정감을 주었다.당시만 해도 순박하고 착했던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가벼운 소리는 도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황급히 지아에게서 떨어진 도윤.‘뭐 하는 거야, 지아가 자고 있는데 그런 짓을 하다니!’지금 지아가 깨어났다면 아무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도윤은 잘생긴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띤 채 재빨리 문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야?” 진봉은 눈을 비볐다.‘착각인가? 왜 그의 얼굴이 빨개진 것 같을까?’“그... 의사가 해열제를 가져다드리라고 해서요. 사모님께 먹이세요.”“그래.”도윤은 조용히 건네받았다.“그 사람 찾았어?”“밤에는 바닷바람이 많이 불어서 드론을 조종할 수 없어요. 아직 행방을 찾지 못했지만, 어린 도련님과 함께라면 멀리 갈 수 없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알았어. 무슨 소식 있으면 알려줘.”“알겠습니다.도윤은 문을 다시 닫고 지아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지아는 여전히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마에 손을 얹어도 열이 내릴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도윤은 손에 든 해열제를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열제를 먹여야 할까?’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도윤은 약을 으깨서 지아의 입에 조심스럽게 넣어주었다.지아는 처음엔 낯선 이물감에 거부감을 드러내다가 점차 약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마침내 약을 삼킨 것을 확인한 도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아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이제 도윤과 지아의 관계는 아는 사이일 뿐 서로 만나고 싶지는 않은 사이였다.다른 방으로 걸어가면서 도윤은 포대기를 두른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지윤의 얼굴에 익숙했던 도윤은 똑같은 그 얼굴을 여자아이가 하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손가락으로 작고 말랑한 소망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도윤은 혹여 힘으로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다.지아는 깃털처럼 아주 작았다.서서히 작은 속눈썹이 가볍게 떨려오며 도윤이 미처 떠나기도 전에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의아함이 가득한 소망의 눈빛에 도윤이의 마음은 감정에 격렬하게 휘둘리고 있었다.“아가, 그동안 많이 고생 했지?”‘고생?’고생이 뭔지 몰랐던 소망이는 아빠, 오빠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만 알았다.“참, 배 안 고파?”도윤은 서둘러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가져다주었다.역시나 어린아이였던지라 두 눈이 단번에 반짝거렸다.소망은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찬 식탁을 바라보며 막 밝아지던 눈빛이 다시 어두워졌다.“오빠.”도윤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이미 사람을 보내서 오빠를 데려올 테니 곧 오빠랑 만날 수 있을 거야. 얼른 먹어. 오빠가 오면 또 줄게.”소망이는 분명 배가 고팠지만 그렇다고 허겁지겁 먹지 않는 걸 보아 태생적으로 귀티가 났다.외모는 자신과 닮았지만 행동은 엄마의 우아함을 물려받은 듯했다.도윤은 소망을 바라볼수록 마음이 들떴고, 당분간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살아있고 옆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음식을 한참 먹던 소망은 남자가 먹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자 살갑게 도윤 앞에 과자를 내밀었다.“삼촌도 먹어요.”그 간단한 행동에도 도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다시 한번 도윤이 아이를 품에 안았다.“착하기도 하지.”소망은 삼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싫지는 않았다.도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삼촌 잘생겼다.’이윽고 도윤은 차분하게 생선 가시를 발라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이야기를 들려주며 곧 오빠가 올 거라고 안심시켰다.사탕까지 가져다주는 삼촌을 소망이는 무척 좋아했다.하늘이 밝아지고 바다는 다시 잔잔해졌다.폭우가 그치고 드디어 하늘이 맑아졌다.지아는 열이 내렸다가 오르기를 반복하며 며칠 동안 앓았다.마침내 배가 정박해 한 섬에 멈췄다.더 이상 배가 흔들리지 않자 지아는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눈을 뜨자마자 창밖으로 눈 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지아는 손을 뻗어 눈을 가렸다.지
지아는 불안한 얼굴로 급히 손을 뻗어 도윤의 소매를 붙잡았다. “뭐라고요? 누가 어디로 데려갔어요?”“지아 씨, 일단 진정하세요. 천천히 말씀드릴게요.”도윤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꺼내 보여주었다.“여기, 이 남자가 데려갔는데 영상 보면 해경이가 원해서 데려간 것 같아요. 아는 남자인 것 같은데.”도윤의 말에 겨우 진정한 지아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배경이 흐릿했지만, 아이가 원해서 간 게 맞았고 데려간 사람은 전효였다.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전효라는 것을 알고 지아는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어쨌든 당시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전효는 자신이 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소망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으면 두 아이를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분명 누군가가 아이를 구하러 내려간 것을 보고 몰래 배에 올라탔을 텐데, 끔찍한 결말을 피하고자 소망을 뒤로하고 해경을 데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아이를 찾았지만 곧바로 이별의 아픔을 마주한 지아의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그럼... 그...”도윤은 덧붙였다.“여자애 이름은 소망입니다.”“소망이.”지아는 부드럽게 중얼거렸다.처음엔 많은 이름을 생각하다가 아기를 조산한 탓에 결국 이름을 짓지 못했다.전효가 소망과 해경이라는 좋은 이름을 지어준 줄은 미처 몰랐다.“아이 어디 있어요?”“옆 방에요. 데려다줄게요.”지아는 허약한 몸을 잊은 채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다행히 도윤이 재빨리 잡아줬고, 지아는 그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도윤의 품에 안겼다.머리가 어지러웠던 지아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없었다.“지아 씨,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요. 제가 안아서 데려다줄게요.”지아는 딸을 빨리 보고 싶었기에 거절하지 않았다.“알았어요. 그럼 부탁드릴게요.”몇 달 만에 의식 있는 상태에서 남자와 가장 가깝게 맞닿은 순간이었고, 지아의 눈에 그는 여전히 정직하고 장난기 섞인 임강욱이었다.낯선 남자의 품에 안
소망은 지아를 한 번도 본 적 없어도 타고난 혈연은 끊을 수 없었다.전효가 지아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사진 속 지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은 채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뼈만 앙상하고 수척했던 지금과는 달랐지만 소망은 그래도 바로 엄마를 알아봤다.지아도 도윤과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망을 꼭 껴안았다.재회의 기쁨에 눈물이 났고, 아이를 안으니 지아는 아이를 낳던 날 겪었던 고통이 떠올랐다.평생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가 이렇게 커서 말랑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나.소망은 의아했다. 며칠 전만 해도 잘생긴 삼촌이 자신을 껴안고 울었는데, 이젠 엄마도 그렇게 운다.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소망은 지아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며 호호 불었다.“울지 마요.”전에 아플 때마다 전효가 이렇게 불어주면 아이는 울음을 그치곤 했었다.지아는 손을 들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손을 뻗어 아이의 얼굴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섬세한 눈망울이 도윤과 쏙 닮았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웠다.“이름이 소망이 맞지?”어린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소망이에요.”전효는 오빠가 타오르는 태양처럼 밝고 찬란하고, 동생은 하얀 달처럼 고결하고 순수하기를 바랐다.지아는 멈췄던 눈물을 다시 흘리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을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눈매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그래, 아주 예쁜 이름이네.”소망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예쁘다면서 우는 걸까?’소망이는 작은 손을 내밀어 지아의 솜털 같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지아는 황급히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엄마가 아파서 머리가 다 빠졌어. 나중에 다시 자랄 거야.”지아는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다.“앞으로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알았지?”소망이 덧붙였다.“오빠.”“그래, 엄마가 오빠를 찾으면 우리 가족 다시 만나게 될 거야.”이 말을 들은 소망이는 웃다가 그날 도윤이 오빠를 찾아주겠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삼촌.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지아는 아이를 더욱 꽉 잡았다.힘들게 되찾은 아이들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호해야 했다.지아는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이제 그녀가 할 일은 자신의 몸을 잘 돌보고 몰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었다.범인이 잡히지 않는 한 숨어야 했고,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두 아이까지 위험에 처할 것이다.‘하지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숨어야 하는 걸까?’그녀는 결백한데 왜 아이들은 평생 빛을 보지 못한 채 길거리 쥐새끼처럼 숨어 다녀야 하나.모든 사건의 원흉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내고, 가족들을 죽이고, 아이들과 헤어지게 하며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강미연의 죽음이 결코 잊히지 않았다.지아는 그 사람을 찾아내서 예전에 당한 고통을 천 배로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도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제가 선을 넘었네요.”지아가 서늘한 기색을 거두었다.“그쪽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에요.”지아는 어떤 설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이 지내지 않을수록 헤어질 때 덜 슬플 테니까.하지만 가족의 연은 끊을 수 없었다.지아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엄마랑 밥 먹을까?”“좋아요.”아이는 흔쾌히 답했다.지아가 손을 내밀자 소망이는 순순히 지아의 손바닥에 손을 얹었다.그 순간 지아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차마 힘도 주지 못하고 작고 말랑한 소망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며칠 밤낮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딸을 찾았다.지아가 너무 천천히 걷자 도윤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지아 씨, 제가 도와드리는 게 낫겠어요. 그러다 넘어져요.”지아는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거절하지 않았다.“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별말씀을요.”도윤은 지아의 팔을 잡고 움직일 수 있도록 지지대 역할을 했다.그 순간 지아의 정신은 온통 아이에게 쏠려 있었고, 도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지아가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도윤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비록 서로를
지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 유일하게 걱정되는 건 해경이었다.전효가 그곳에 있긴 했지만, 그렇게 서둘러 탈출했고 당시 비도 많이 왔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하지만 마음속으로 걱정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미 일이 꼬여 버렸으니 A시로 돌아간 후에도 한동안 전효와 연락이 닿을 수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았다.“알았어요, 그럼 당분간 여기 있을게요.”아이는 이미 자신의 곁에 있고, 전효는 분명 연락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지금은 우선 몸을 돌봐야 할 때였다.고생을 많이 했던 소망이는 조금도 편식하지 않았고, 그 나이대 또래보다 조금의 심술이나 투정도 없었다.지아는 매일 아이와 함께 있어 행복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원래 얌전한 아이는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고생을 하지 않고서 아이가 이렇게 철이 들 수 있을까?원래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만이 이토록 얌전하고 어른스러웠다.지아는 전효를 원망하진 않았다. 전효 덕분에 아이를 구할 수 있었고, 덩치 큰 남자가 아이 둘을 키운 것만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지아는 그에게 매우 고마워했다.지아는 단지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진 아이에게 일어난 일에 가슴이 아팠을 뿐이다.앞으로는 매일 아이를 더 열심히 돌보려고 노력할 생각이었다.“엄마.”멍하니 있는 지아의 눈앞에서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그제야 추억을 회상하다 정신을 차린 지아가 말했다.“응, 엄마 여기 있어.”지아는 손을 뻗어 소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끌어당겨 애정 어린 미소를 지었다.“배고파?”소망이는 괜히 지아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배고픈지 아닌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지아의 표정을 먼저 살폈다.“소망아, 먹고 싶으면 걱정하지 말고 먹어.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춥거나, 덥거나 엄마한테 말만 하면 돼. 이제부터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엄마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소망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큰 눈을 깜빡였다.“엄마 말은 언제든 울고 떼를 써도
지아는 어렴풋이 떠올렸다. 어렸을 적 일찍 엄마가 곁을 떠나고 그녀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늘 다정했던 아빠는 일상생활에서나 심적으로 자신에게 후한 사랑을 베풀어 밝고 착하게 키웠다.하지만 아빠가 해줄 수 없는 일도 많았다. 학교에서 학부모 운동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 하는 행사가 가득했다.어려서부터 지아는 다른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다니고, 엄마가 해준 요리를 먹고,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는 것을 보며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엄마가 있는 아이를 남몰래 부러워했다.그래서 미래에 자녀가 생기면 자신은 한부모가정이 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갖고 잘 키워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지아는 도윤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두 사람도 처음엔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남편이 믿을 만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결국 지아는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아이에게 완전한 가족을 선물하지 못했다.“엄마!”소망은 지아를 보고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소망아, 아침 먹어.”도윤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햇빛아래 지아는 긴 생머리는 아니지만 매번 그를 문밖까지 데려다주던 그 모습과 똑같이 온화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도윤은 오랫동안 그 미소를 그리워했다.“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어려운 건 못하고 간단하게 만들었어, 나중에 몸 다 나으면 맛있는 밥 해줄게.”소망은 미소를 지으며 지아를 바라봤다.“고마워요 엄마.”편식하지 않았던 아이는 엄마가 만든 음식이라면 더더욱 무엇이든 행복했다.지아는 특별히 도윤에게 따로 음식을 내밀었다.“이건 그쪽 거예요. 애 돌보느라 힘들잖아요.”자신의 것까지 준비해 줄 줄 몰랐던 도윤은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머리를 긁적였다.“안 힘들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고마워요, 지아 씨.”지아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오랜만에 먹는 도윤은 한 입 한 입 조심스럽게 음미하며 맛있게 먹었다.도윤은 두 사람이 막 결혼했을 때, 매일 일찍 일어나 그날 입을 옷을 준비해 주고 부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