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막 잠에 든 순간 어쩐 일인지 놀라서 깨어났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다도 크게 출렁거리지 않았고 소리도 없는데 왜 잠에서 깼을까?늦은 시간, 지아가 방문을 열자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모습을 얼핏 보았다.함께 지내온 시간 동안 강욱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는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복도의 불빛이 너무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고 몸은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눈에 보이는 것은 손끝의 선홍빛 반짝임과 가느다란 손가락뿐이었다.남자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정반대로 검은 안개에 가려진 차가운 달처럼 신비롭고 위험한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지아를 본 순간 남자는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내자 붉은빛이 어두운 밤 포물선을 그리며 바닷속으로 떨어졌다.“아가씨, 왜 그래요? 잠이 안 와요?”강욱이 서둘러 다가왔다.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잘못 본 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 무해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왜 아직 방으로 안 돌아갔어요?”지아는 다소 의아했다. 왜 이 시간에 아직도 저기 나와 있는 걸까. 설마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묵묵히 자신을 지키고 있었던 걸까.“혹시 몰라서요. 어차피 전 잠도 없고 방에 돌아가도 못 자요. 왜 나왔어요?”“바람 좀 쐬러 나왔어요.”지아는 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이 편치 않았다.“걱정 마세요, 선장님께 연락했으니 곧 돌아올 거예요.”강욱은 지아의 표정을 살폈다. 할 말을 망설이는 듯한 모습인데 혹시 조금 전 총소리에 겁먹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가씨, 무서우시면 제가 방에 들어가서 같이 있어 드릴게요. 제가 있으면 조금 더 마음이 놓이지 않겠어요?”“그래요.”지아는 그의 제안에 동의하고 그를 방으로 들여보냈다.침대에 누웠고, 그녀와 3미터 정도 떨어진 바닥에 앉아있는 강욱 덕분에 마음이 놓였다.이때 어느샌가 술을 마셔 얼굴이 빨개진 선장이 조그만 아이 둘을
남자아이의 얼굴에는 몇 군데 긁힌 상처가 있었고 곳곳에 흔적이 가득한 열 손가락은 핏자국이 남루해 보는 사람까지 마음이 아팠다.약을 문지르는 동안 이 아이는 눈에서 눈물이 고였지만 울음을 참으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맹국영은 한참 동안 그 남자아이를 바라보면서 왠지 모르게 어딘가 낯익은, 누군가를 닮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아이들을 씻긴 후 맹국영이 몇 번 더 물었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여자아이는 닭이 밥을 쪼아 먹듯 먹고 마시다가 몇 분 만에 잠이 들었고, 남자아이는 졸렸지만 정신을 다잡고 맹국영을 노려보았다.“무서워할 필요 없어, 난 너희를 해치지 않아. 이름이 뭐야? 혹시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거야?”여자아이는 계속해서 말이 없었고, 자신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았다.맹국영은 어이가 없었다.“이렇게 경계하는 아이는 처음 보네. 그래, 더 묻지 않을 테니 피곤하면 쉬어. 우린 여기 하루 더 있을 거니까 내일 엄마 아빠 찾아줄게.”그는 두 아이에게 침대를 내주고 자신은 소파 반대편에 누웠다.남자아이는 자정까지 버티다가 잠이 들었다.아침이 밝고 맹국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의 부모를 찾아 돌아다녔다.그가 떠나자마자 어두운 그림자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아이는 경계심을 가지고 눈을 번쩍 떴고, 찾아온 사람을 보자 두 눈을 반짝였다.“아빠.”“쉿.”남자가 움직였다.아이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지만 옷에 묻은 피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피.”아무것도 모를 어린 나이임에도 그 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았다.“괜찮아.”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사람의 피야. 밖은 바람이 세니까 여기 숨자.”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부터 남자는 남자아이와 여동생을 데리고 숨어 다녔다.그들이 어느 곳을 가든 며칠 평온한 나날을 보내기 바쁘게 그놈들이 쫓아왔다.원래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그 고양이도 눈앞에서 죽었다.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는 그들을 거두어 줄
부엌이 이 층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생물을 운반하는 배도 아닌데 어떻게 이유 없이 피 냄새가 날 수 있겠나.어젯밤 총격전을 떠올리며 강욱은 조금이라도 지아가 다칠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주위를 살폈다.지아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한 강욱은 감시카메라를 확인하면 모든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재빨리 감시실로 갔다.감시 카메라를 지켜보는 장원철이 꿀잠에 빠져 있는 사이 강욱은 손쉽게 30분 전의 영상을 훑어볼 수 있었다.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감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전혀 추적할 수 없었다.누군가 카메라에 손을 댔다.보아하니 배에 쥐새끼가 침투한 것 같았다.상대방이 지아를 노리고 온 게 아니어도 강욱은 그냥 놔둘 수 없었다.최대한 빨리 쥐새끼를 찾아야 한다.선장 맹국영은 하루 종일 수색에 나섰지만 섬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어떤 평범한 부모가 늦은 밤에 다친 두 아이를 절벽 끝에 내버려둘 수 있겠나.아이에게 부모에 대해 아무리 물어봐도 아무런 언급이 없자 맹국영은 일부러 아이를 버렸을 거라고 짐작했다.“우리 오늘 떠나는데 같이 갈래?”맹국영은 참을성 있게 두 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아이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배에 있었고, 이 배로 남들의 눈을 피해 떠나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더 이상 거부감이 없었다.여자아이는 소심하게 오빠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불렀다.“오빠.”“말할 줄 아는구나. 이름이 뭐니?”그제야 소년이 입을 열었다.“해경이요.”“소망이요.”맹국영은 눈을 반짝였다.“해경이와 소망이라, 이름 예쁘다. 엄마 아빠는 어디 있니?”“죽었어요.”해경은 차분하게 말했다.맹국영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면 이 두 아이가 이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다른 친척들은 있니?”“없어요.”아이들이 어려서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두 아이는 모두 맹국영을 따라나서기로 했다.“알았어, 일단 돌아가자.”이 섬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
악마의 바다로 들어가려는 순간, 강욱은 이 떠돌이 잡것을 제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이쯤 되면 상대방은 다용도실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강욱이 미리 알아본 결과, 이곳엔 도구만 가득하고 몇 달 동안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문이 열리자 불쾌한 냄새가 그를 덮쳤다.퀴퀴한 냄새와 함께 피 냄새도 섞여 있었다.곧 날이 어두워질 무렵이었고, 오늘은 비까지 와서 바다 전체가 어둡고 음침했다. 맨 밑층에 있는 이 방엔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선체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제외하면 방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강욱은 앞쪽으로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인간의 직감으로 상대가 지금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마치 독사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서 물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하늘은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거세게 불어왔으며, 문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지아 역시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어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창밖을 내다보니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며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심술궂은 악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지나가는 사람과 배를 삼키려는 듯 전보다 더 잔인해진 악마의 바다에 들어섰다.파도가 배의 선체에 부딪히면서 배는 심하게 흔들렸다.때때로 파도가 몇 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무서웠다.태양 빛이 없는 어두운 바다는 더욱 섬뜩해 보였다.역시나 악마의 해역이었다.지아는 불안한 마음으로 창가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비가 오면 바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앞으로 수십 시간 동안 이런 큰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또 한 번 큰 파도가 치고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지아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방 안을 몇 번이나 돌아다니며 나가서 강욱을 찾고 싶었다.적어도 강욱이 곁에 있으면 마음이 좀 더 편할 것 같았다. 함께 지내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막 문을 열고 복도에 나오기도 전에 돌풍
이 가면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전효였고, 전효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의 키 큰 남자를 바라보았다.어딘지 모르게 이도윤과 닮았지만 이도윤의 몸은 이 남자보다 더 건장했다. 시선이 강욱에게 향하자 그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밋밋한 얼굴이었다.날 죽이러 온 사람이 아닌가?“날 알아?”맞다, 이 목소리.강욱은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옷깃을 잡아당기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네가 왜 여기 있어?”전효는 이 남자의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만약 자신을 쫓는 무리였다면 지금쯤 이미 머리를 가격해 죽여버렸겠지,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했을까?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조금 전 강욱은 하필 발로 그의 상처를 가격했고,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그의 옷을 물들였다.강욱이 더 묻기도 전에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선원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해적이다! 해적이 왔다!”강욱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진짜 나타난 건가?이 쓰레기 같은 놈들.곧바로 밖은 빠르게 달리는 선원들의 소리로 가득 찼다. 일반 화물선이지만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 선내에 물대포와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다.오래전 바다가 혼잡할 때 모두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생존의 방법을 찾았지만, 평화로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오늘 또다시 해적과 마주친 것이다.강욱은 곧바로 전효를 묶어 옆으로 던지며 말했다.“얌전히 있어.”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떠났다. 전효의 목적이 무엇이든 지아를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았고, 적어도 해적들보다 덜 위협적이었다.전효는 머릿속엔 두 아이들로 가득했다. 젠장, 왜 하필 이 시점에 해적이 나타나서는.방에서 두 아이와 즐겁게 놀던 맹국영은 두 아이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천재네! 우리 해경이 천재야.”맹국영은 단지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장기를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해경이 그렇게 빨리 익히고 배울 줄은 몰랐다. 겨우 며칠이나 됐다고 세 살도 안 된 어
맹국영은 더 설명할 시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소망은 걱정스럽게 해경을 바라보았지만 해경은 소망을 쳐다보지 않고 아저씨가 보드 위에 내려놓은 마지막 조각만 쳐다보았다.양옆에 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뭘 해도 끝은 죽음이었다.“오빠...”해경은 전효로부터 해적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성도 없이 사람의 가죽을 쓴 사악한 괴물이었다.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기들은 바다의 패왕이라 불렸다.광물 원료를 운반하는 이 화물선은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다.국영 할아버지에게 큰일이 생긴 것 같았다.하지만 위험하다는 걸 알아도 막을 능력은 없었다.두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둘러 전효를 찾아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전효가 자기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뿐이었다.이제 겨우 두 살이 조금 넘은 아이들이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아이들은 살아가는 이유를 몰랐다. 개미처럼 사는 게 버거워도 그저 꿋꿋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적어도 아직 어머니의 무덤에 가서 제사도 한 번 지내지 못했다.“가자.”해경은 소망의 손을 잡고 떠나기 전, 식탁보로 먹다 남은 케이크와 과자를 싸서 매듭지어 자신의 목에 걸었다.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도망 다니는 것에 도가 텄다.소망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해경이 뭘 하려는지 알았다.“하지만 할아버지...”해경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빠를 찾자.”전효는 이 배에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두 아이가 문을 열자 선원들이 모이는 모습을 보았다.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보였다.망원경도 없고 불빛도 어두워 두 아이는 표지판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전효를 찾아다녔다.하지만 해적들은 두 아이가 멀리 가기도 전에 아무런 경고도 없이 배의 선체를 향해 강제로 총격을 가했다.쿠르릉-귀
지아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보통 이 시간이면 강욱이 과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오늘은 어디 갔을까?어스름한 빛 속에서 그녀는 빗방울이 대각선으로 날아가 유리에 부딪히는 것을 보았다.비가 내리고 있다.지아는 이런 날씨가 너무 싫어서 잠을 청할 생각도 없는 듯 침대에 기대어 헤드폰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설마 해적이 온 걸까?’지아가 서둘러 헤드폰을 벗자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지아는 문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라 조심스러웠고, 감히 함부로 뛰어다니지 못한 채 조용히 강욱의 소식을 기다렸다.하지만 강욱은 생각보다 빨리 들어오지 않았고, 지아는 긴장감을 참지 못하고 재빨리 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지아는 불이 달린 배가 아닌 앳된 목소리에 이끌렸다.“사람 살려!”아주 작은 아이의 목소리였다.‘대체 어디서 온 아일까?’지아는 모성 본능에 어느 집 아이인지, 함정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앞을 향해 돌진했다.모퉁이를 돌아보니 한 소년이 작은 손을 죽기 살기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였고, 시선을 돌리자 난간 바로 너머에 어린 소녀가 매달려 있었다.맙소사!지아는 자신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이 순간 해경은 이미 온몸의 힘을 다 써버린 상태라 소망을 잡아당길 수 없었고, 손바닥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는 소망의 작은 손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오빠!”“안 돼, 하지 마!”소망이 내려가려는 순간, 공중에 나타난 큰 손이 소망의 작은 손을 잡아 떨어지려는 몸을 때마침 멈춰 세웠다.해경은 어안이 벙벙한 채 자신의 옆에 나타난 잠옷 차림의 여자를 바라보았다.몸의 절반이 난간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특히 소망을 잡아당기는 손은 피부와 뼈만 남은 마른 체구였다.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잡았다.어린 소녀는 고개를 떨군 채 온몸이
소망이 바다에 빠지는 모습을 본 지아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이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려 했는데, 신은 왜 이렇게 나에게 잔인한 걸까?’바로 그때 옆에 있던 해경이 울부짖었다.“소망아!”시선을 돌린 지아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이성을 잃었다.한가지 생각이 지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미처 사실 확인하기도 전에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바로 참지 못하고 난간을 뛰어넘었다.머릿속엔 3년 전 임신했을 때 봤던 4D 영상이 가득했다. 얌전한 쌍둥이였다.이도윤과 닮은 여자아이는 밝고 활발하고 잘 웃었고, 자신의 얼굴과 닮은 남자아이는 얌전한 성격이었다.이 두 아이가 설마 자신의 아들딸일까?지아는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한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이별의 슬픔에 휩싸였다.모든 걸 뒤로 하고 해경을 향해 달려갔다.‘아가야, 그거 알아? 엄마는 오랫동안 너를 그리워했단다.’‘제발 무사해다오.’첨벙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는 시끄러운 배 위에서 마치 작은 돌멩이를 물속에 던진 것처럼 파문을 일으키지 못했다.강욱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가장 먼저 지아의 방으로 달려갔다.방 안은 거센 바람으로 가득 찼고 사람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지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표정이 확 굳어진 강욱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모퉁이에서 겁에 질린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소리를 따라가 보니 바닥에 앉아있는 작은 소년의 목에 뭔지 모를 물건이 매달려 있었다.“무슨 일이야?”해경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말했다.“동생, 아줌마, 바다에!”강욱은 알 듯 말 듯한 그 말에 다시 한번 되물었다.“혹시 이 정도 키에 아주 마르고 하얀 아주머니 봤어? 머리가 없어.”해경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켰다.“떨어졌어요, 떨어졌어요! 동생이 빠졌어요.”“동생이 물에 빠졌는데 아줌마가 동생 따라 뛰어들었다고?”“맞아요.”강욱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지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