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채원의 곁에 있는 이 몇 년 동안, 주은청은 그녀의 이런 불쌍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백채원은 계속 울음을 터뜨렸다.“난 이미 부모님을 잃었고, 평생 다시 일어설 수도 없어. 이제 나한테 이 두 아이밖에 없는데, 만약 네가 도윤 씨에게 말한다면 난 더 이상 내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백채원은 힘겹게 주은청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애걸복걸했고, 주은청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말을 마치자, 주은청은 지윤을 안고 떠났다. 계란으로 지윤 얼굴의 붓기를 가라앉혀 줄 때, 그녀는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에 자기 아들의 뺨을 이렇게 세게 때리는 엄마가 또 어딨을까?’“아파요?”지윤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은 더욱 애틋해 보였다. 주은청은 한숨을 쉬었다.‘작은 도련님도 참 불쌍하지.’지아가 입원하자, 이씨 가문도 뒤죽박죽으로 되었다. 도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정진은 대추나무 아래에 앉아 무엇을 중얼거리고 있었다.“할아버지 또 발병하신 건가요?”“그래요, 노부인이 돌아가신 후로 어르신의 정신도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셨죠. 한동안 괜찮으셨는데, 작은 사모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또 어찌 알았겠어요.”대추나무에 열매가 아직 맺히지 않았지만 이정진은 계속 나무 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할아버지, 뭘 보고 계세요?”“대추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지.”도윤은 영문을 몰랐다.“오 집사, 우리 할아버지 대추 좋아하셨어요?”“정신이 맑으실 때, 대추를 드신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지만, 발병하실 때 항상 이 나무 아래 앉으셨어요. 말하자면 이 대추나무들도 2년 전 어르신께서 심으라고 하신 건데, 어르신은 이 나무 아래에서 멍 때리기 가장 좋아하시거든요.”“우리 할머니는요?”“노부인은 가끔 대추차를 드셨지만 대추를 엄청 좋아하시는 편은 아니었어요.”도윤은 천천히 이정진을 향해 걸어갔는데, 어르신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대추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환희에게 줘야지.”‘
도윤은 한참이나 물어봤지만 이정진에게서 유용한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 여러 곳에서 알아본 데에 의하면, 환희는 외국에서 A국으로 피난을 온 사람이었고, 그동안 줄곧 가짜 신분과 이름을 사용했는데 후에 전쟁이 터지면서 자취를 감췄던 것이다.도윤은 힘이 빠졌다. 현재 주원에 관한 아무 소식도 없었기에 이렇게 질질 끌다간 지아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 며칠 전혀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윤이 지하실에 도착하자, 이유민은 거의 죽어가기 직전이었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보아하니 진봉은 그의 입에서 뭐라도 알아내기 위해 인정사정도 봐주지 않은 것 같았다.“대표님, 이유민은 이미 자백했는데, 겨우살이와 알게 된 지도 2~3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지만 겨우살이는 이유민을 몇 번 도와준 적이 있었고, 모두 회사 주식을 수매하는 것과 관계가 있었습니다.”“어쩐지 이유민에게 그렇게 많은 주식이 있었더라니, 누군가 비밀리로 도와주었던 거야. 전에 수백억의 돈을 들여 지아의 목숨을 원한 이상, 재력이 상당한 사람이겠군.”진봉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 선생님의 산업만으로 이유민은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만약 아가씨가 겨우살이라면, 사모님을 미워하는 심정을 알겠지만 또 왜 돈을 써서 이유민을 도왔을까요? 이유민을 싫어하는 게 더 마땅하지 않은가요?”“이예린은 겨우살이가 아니야.”도윤은 바로 부정했다.“이예린은 청소 아주머니로 위장하여 내 곁에 오랫동안 잠복했지만 결코 나를 해칠 뜻이 없었어. 만약 이예린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나에게 약을 먹이거나 회사의 정보를 라이벌에게 몰래 팔았겠지. 내 곁에 머무는 동안, 이예린은 회사를 무너뜨릴 방법이 수천 가지나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큰돈을 들여 이유민을 도우려 하겠어?”“하긴요, 그렇다면 지금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모님을 죽이려는 사람은 여자였고, 뒷모습만 보면 아가씨와 무척 비슷했
지아는 병원에서 일주일 더 머물다 퇴원을 했다. 일주일간의 회복을 거쳐 그녀는 이미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지만, 적혈구와 백혈구의 수치는 여전히 매우 낮아, 지아는 매일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은 여전히 허약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병원을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아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다시 이씨 집안으로 돌아오자, 이 집사는 휠체어를 밀며 말했다.“작은 사모님, 도련님께서 특별히 1층에 있는 방을 하나 비웠는데, 나가면 바로 정원을 볼 수 있어요. 이제 안심하고 치료받는데만 신경 쓰세요. 그럼 꼭 나아질 거예요.”“그래요.”도윤은 지아를 자극할까 봐 최근 며칠간 그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지아는 도윤이 새벽까지 기다리다 자신이 잠든 후에야 몰래 들어와서 그녀를 지키고 또 그녀가 깨어나면 몰래 다시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아는 도윤이 이렇게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분명히 자신의 처자식이 있는데, 왜 또 날 붙잡고 있는 거지?’그러나 도윤이 보이지 않으니 지아도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입원하는 동안, 이 집사는 지아를 아주 세심하게 돌보았지만, 방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그저 샤워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지아는 빗을 들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머리카락이 촘촘하게 떨어지더니 빗에는 아예 한 무더기 머리카락이 감겼다.세면대와 빗에 엉킨 머리카락을 보고 지아는 깜짝 놀랐다.요 며칠 그녀는 약물치료 때문에 괴로워서 그 많은 부작용을 거의 잊을 뻔했다. 그중 가장 심한 것이 바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었다.두 번의 치료만 받으면 머리카락이 전부 빠질 것이다.그러나 꾸미길 좋아하지 않는 여자가 또 어딨겠는가? 지아는 거울 속의 초췌하고 여윈 자신을 바라보았다.‘곧 죽지 않아도 대머리가 되겠지.’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휴지를 뽑아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치웠다.물을 틀자,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떨어졌고, 지아는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천천히 벽을 짚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집사는 지아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보고 위로했다.“요 며칠 작은 사모님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잖아요. 이제 모처럼 입맛이 생겼다고 사모님께서 직접 요리에 나서셨어요.”지아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휠체어를 타지 않고 혼자 거실로 천천히 이동했다.심예지는 앞치마를 두른 채 말했다.“빨리 앉아. 음식도 다 돼가고 있어.”식탁 위의 정교한 도자기 꽃병에는 오늘 금방 딴 꽃이 꽂혀 있었는데, 잎사귀에서 봄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이때, 지아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큰 눈이 흩날리는 화면이 스쳤다. 그녀는 따뜻한 실내에 꽃을 꽂고 있었고, 배는 볼록 튀어나왔으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문이 열리자, 도윤이 들어왔고, 그는 성난 목소리로 지아에게 왜 임신한 백채원을 찾아가 소란을 피웠냐고 야단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지아도 임산부란 것을 잊은 것 같았다.그렇게 분위기가 점차 싸늘해지더니, 도윤은 손을 들어 지아의 꽃병을 깨뜨렸고, 꽃은 온 바닥에 흩어졌다. “아...”지아는 머리를 안았고, 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가끔 지난날의 기억들을 조금씩 떠올릴 수 있었다.“왜 그래, 지아야? 머리 아파?” 심예지는 얼른 지아를 관심했다.“저...”지아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머릿속에는 일련의 화면이 나타났다. 그녀는 혼자 텅 빈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꽃병 속의 꽃은 바뀌고 또 바뀌었지만 결국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지아야, 왜 그래! 말해 봐! 내가 의사 불러올까?”지아는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꽃병을 가리켰다.“이거 좀 치워주세요.”“그래, 알았어, 지금 바로 치울게.”지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회복되었다. 음식이 올라오자, 심예지는 열정적으로 소개했다.“내 이 음식 만드는 솜씨도 다 그 남자를 위해서 배운 건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 난 나 자신의 부모님에게 음식을 해드린 적이 없거든.”지아는 과거의 일부 기억들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수술실에서 사람을
양요한은 지아의 일 때문에 온종일 바쁘게 돌아쳤고, 오늘 마침내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이때 조수가 병 하나를 들고 오더니 입을 열었다.“양 선생님, 이것은 큰 사모님이 보내온 것인데, 어떤 고양이 사료인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고양이 사료?” 양요한은 그 병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작은 병에 고양이 사료를 담을 리가 없잖아? 고양이가 어떻게 이것밖에 먹지 않겠어?’“고양이의 간식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큰 사모님께서 판단하실 수 없다며 보내왔습니다.”“그래, 여기에 놔둬. 내가 나중에 검사할게.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네.” 양요한은 급히 떠나 많이 초췌해진 도윤을 찾아갔다.“대표님, 최신 소식에 따르면 주원의 팀은 줄곧 항암연구를 해왔다고 합니다. 그전에 주원은 이미 신형 항암제를 만들었고, 이 2년 동안 총 100명의 암 환자가 복용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1차 실험밖에 하지 못해 견본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그 100명 환자들의 상태는?”“그동안 1-3기의 환자들은 상황이 모두 안정되었고, 암 수치가 정상에 도달했습니다.”도윤은 마음이 조여졌다.“그럼 말기는?”“말기의 생존율은 현재 50% 인데, 절반은 아직 살아있고 나머지 절반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암을 치료하더라도 5년 동안 관찰을 해야 하죠. 그들 중 약을 가장 먼저 복용한 환자는 관찰 기간이 3년도 채 안 되었기에 결과가 아직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데, 중말기 전에 이 약을 복용하면 효과가 매우 좋지만 말기라면...”도윤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양요한은 재빨리 한마디 덧붙였다.“대표님,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현재 말기 환자가 3년 심지어 5년을 살 확률은 아주 적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 어떤 약도 50% 넘는 말기 환자를 3년 동안 살게 할 순 없습니다. 이것은 주원이 개발한 약이 아주 강력하다는 것을 설명하죠. 이 약만 찾으면 사모님은 더 오래 살 수 있을 겁니
지아는 가끔 떠올린 기억만으로도 이미 도윤을 증오했으니, 만약 과거의 모든 것을 떠올린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도윤을 뼈에 사무칠 정도로 미워할 것이다.그러나 심예지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아의 병이 갑자기 악화된 것은 약물과 관계가 있었기에 만약 이 약의 효과를 막을 수 있다면 지아의 암세포가 계속 확산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비록 도윤은 원하지 않았지만 지아의 몸을 위해 그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좋아요, 의사 찾아 자세히 상의할 테니 지아는 어머니께 맡길게요.”도윤은 그때 M-1를 연구한 의료진을 찾아갔고, 상의한 결과, 심예지가 생각한 것과 같았다.이때, 양요한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대표님, 사실 전에 저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기억을 잃게 하는 약은 인체의 면역력과 많은 장벽을 파괴할 수 있는 데다 또 장기간 인체에 작용했기에, 일반인에게 있어 부작용이 크지 않지만 암세포를 만나면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와 다름없죠. 이 약은 지금 순리적으로 암세포의 부하가 되어 사모님의 몸을 공격하고 있으니 억제만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철저히 M-1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효과를 제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각종 약효에 항암제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될 것입니다.”“하지만 대표님, 전에 주신 문헌과 자료에 따라 저희는 이런 약물을 잠시 억제하는 약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해독제는 여전히 독충으로부터 얻어야 합니다.”화원에서 지아는 햇볕을 쬐고 있었고, 하루는 나른하게 그녀의 곁에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도윤은 손을 뒤로 한 채 2층 테라스에 서서 지아를 부드럽게 주시하고 있었다.아주 아름답고 조화로운 장면이었지만, 지아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안으며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졌다. 이 집사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상황을 살펴보았다.“작은 사모님, 왜 그러세요?”지아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아파요, 너무 아파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아는 토하기 시작했고, 도윤은 더 이상
지아는 이날 또 병원에 호송되어 검사를 받았다. 양요한은 암세포 보고서와 각종 검사 보고서의 수치를 보았다.건우는 보면 볼수록 미간을 찌푸렸다.“2년 전, 지아가 약물치료를 받았을 때 효과가 아주 좋았는데, 이번에 어떻게 효과가 거의 없을 수가 있죠? 게다가 암세포가 이미 주변의 다른 부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니. 지금 지아는 더 이상 약물치료를 받을 수 없어요. 받아도 단지 신체의 부담을 가중시켜 지아의 죽음을 가속화시킬 뿐이니까요.”건우는 지금 지아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다름없었고, 도윤은 셔츠를 움켜쥐었다.“그럼...”건우는 고개를 저었다.“이유를 모르겠지만 지아의 암세포는 점점 더 빨리 퍼지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지아도 기껏해야 한 달밖에 살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만약 상황이 좋지 않다면 아마 두 주일도...”도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한 달에서 두 주일, 심지어 더 줄어들 수도 있었다.건우는 도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당신은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지아가 이렇게 된 것은 전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니 이 남은 시간 동안 지아의 곁에 잘 있어줘요.”지아는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 음식을 먹지 못했고, 영양액으로 체력을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윤은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키며 눈시울이 새빨개졌다.‘지아는 이미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왜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일까? 왜 지아를 오늘 이 지경까지 몰아붙였을까?’설령 도윤이 지금 아무리 슬프고 후회한다 하더라도 이미 결말을 바꿀 수 없었다.“지아야...”침대 위의 여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 기복을 제외하면 그 모습은 마치 죽은 것과 같았다. 도윤은 볼 때마다 놀라서 기절을 할 뻔했다.‘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됐을까?’생각하다 도윤은 자신의 얼굴에 뺨을 세게 내리쳤다.“내가 죽을 놈이지!”지아는 소리를 듣고 천천히 눈을 떴다. 전에 깨어났을 때, 지아는 존귀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보았지만
심예지와 진수련은 사실 사촌 사이였고, 두 자매는 한 남자에게 매달리는 것까지 똑 닮았다.“더 이상 그 보잘것없는 돌을 보물로 삼지 않은 거 보니까 언니도 마침내 눈병을 고쳤구나?” 진수련은 손에 부채를 들고 가볍게 부채질을 하며 오만가지 매력을 내뿜었다.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단도직입적으로 상대방의 정곡을 찌르기 시작했다.심예지도 질세라 입을 열었다.“어디 너보다 하겠어? 이미 이혼한 지가 언젠데, 그 많은 시간을 들이다니. 결국 백정일의 사랑을 받지 못했잖아?”“비록 사랑을 얻지 못했지만, 적어도 난 복수를 했어. 그들의 가정 모두 망쳤거든. 난 언니처럼 마음이 약하지 않아. 자신의 남편을 남에게 양보하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줘서 회사를 차리게 하다니. 하느님도 언니 보면 눈물을 흘릴걸.”진수련의 출신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사생아라고 집안의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오직 심씨 가문의 큰 아가씨인 심예지만이 그녀와 놀아주었기에,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다투다가 화해하곤 했다.오늘 심예지는 전처럼 계속 진수련과 다투지 않았고, 스스로 앉아서 자신에게 차 한 잔을 따랐다.“너와 난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데, 굳이 서로 비웃을 필요가 있겠어.”심예지는 한숨을 내쉬었다.“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난 언니 마음속에 이남수 그 개자식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에게 딸 하나 있다는 거 아직 기억하나 보네?”“전에 난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어 그 두 아이를 다치게 하고, 그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헤어지게 했어. 그동안 예린이 보살펴줘서 정말 고마워.”진수련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나른하게 말했다.“언니, 이 세상에 더 이상 이예린이란 사람은 없어. 지금은 해당화밖에 없다고.”“그 아이 만나고 싶어.”“솔직히 말하지만, 해당화는 아마 언니를 만나고 싶지 않을 거야. 어렸을 때 그 아이에게 한 그 일들은 이미 해당화의 트라우마가 되었거든. 지금까지도 그 아이는 밤중에 놀라서 깨어났고. 언니의 존재는 그 아
이예린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노련한 태도로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새로운 곳에 와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요. 좀 걸으려고요.” “네 오빠도 여기 있잖니. 그 아이가 네가 나가는 걸 보면 분명히...” 이예린은 곧장 심예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오빠가 제 손발이 이미 회복된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빠가 정말 저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미 3년 전에 끝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누군가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마음 여린 사람이라고요.” 당시 도윤은 예린을 죽이지 않고, 단지 손과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다. 그것만으로 지아를 위해 복수를 한 셈이었다.더구나 지아는 죽지 않았기에, 도윤은 더 이상 예린을 해치지 않았다.“너는 전혀 우리를 닮지 않은 모양이구나.”예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사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은 그들 가문에 흐르는 피와 같았다.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윤도 그러했으며, 예린도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후가 예린을 구해준 순간부터, 예린은 자신의 목숨이 영원히 시후의 것임을 알았다. “그래, 주변에서만 걸어 다니렴. 괜한 문제는 일으키지 말고.” “알겠어요.”예린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뒤돌아 심예지를 바라보았다.“엄마.”심예지는 온몸이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니?” 심예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예린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지만, 예린은 늘 과묵했으며,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예린은 태도마저 차갑고 무관심했기에, 심예지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저 여생 동안 속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심예지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예린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심예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차올랐고, 다시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뭐... 뭐라고?”“엄마.”이번에는 예린
전화를 받은 이예린은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말씀만 해주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어요.]이 대답은 시후가 예상한 대로였다. 과거에도, 그리고 얼마 전에 재회했을 때도, 예린은 시후를 볼 때마다 두려워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평소의 당당한 이예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후는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유형의 여성을 접해왔다. 그래서 예린이 단순히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 외에도, 깊은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예린이 이씨 가문의 아가씨라 할지라도, 시후 앞에서는 늘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였으니 말이다. 예린은 시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늘 자격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시후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제가 선생님의 아버지를 구출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할 수 있겠어?”시후는 예린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예린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어려울 순 있겠지만, 반드시 해낼게요.]예린은 나이가 어리지만 결단력이 있었다. 예린의 대답에 시후는 한결 안도했다.“뭐든 얘기해줘. 최선을 다해서 널 도울게.”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저 혼자로도 충분하니까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적에게 이상한 낌새만 줄 뿐이에요.]시후는 곧 이예린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보게 되었다. 예린은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계획, 냉혹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만약 예린이 적이었다면, 정말로 두려운 상대가 되었을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양지운이 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사람들을 철수시켜.” “그 여자의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오랜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인데요.” 시후는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때로는 은혜 하나만으로도 평생 기억되는 법이지
이 말을 할 때 조경선의 얼굴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입가에는 미친 듯한 웃음이 번졌다.“꼭 살아남아서, 그 모든 걸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조경선은 다시 소임호에게 영양제를 주사했다. 소임호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는데, 조경선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남은 힘을 모두 소진한 것 같았다. 소임호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병약한 모습을 보자, 조경선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조경선은 수년간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계획해 왔다.조경선이 상상했던 장면은 소임호가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애원하며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임호를 붙잡고 나서도, 소씨 가문이 이렇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임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조경선의 분노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날린 주먹이 솜사탕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조경선의 가슴속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했지만, 조경선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조경선은 뼛속 깊이 소임호를 증오하면서도, 소임호가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소임호는 조경선이 평생 이루지 못한 소원이자,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소임호를 미워할수록 사랑도 더 깊어졌기에, 조경선은 소임호를 죽이기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굴복하며 돌아오기를 원했다.해가 저물 무렵.조경선은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별장 안팎에 놓인 꽃들과 각종 장식은 사실 특정한 용도로 설계된 것이었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기계음이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조경선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침대 옆 협탁에서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고,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그렸다. “감히 여길 들어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지?”조경선이 손을 한 번 흔들자,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실시간 CCTV 화면이 투사되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