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차가운 강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와 칼처럼 추위는 뼛속 깊이 스며들었고 소지아는 일어나 계속 쫓아갔다.

그러나 형편없이 망가진 소지아의 몸은 얼마 뛰지 못하고 심하게 넘어졌다. 차 문이 다시 열리자, 반질반질한 구두 한 켤레가 나타났다.

소지아는 남자의 빳빳한 바짓가랑이를 따라 천천히 위로 바라보며 이도윤의 차가운 두 눈을 마주했다.

“이...”

소지아는 허약하게 입을 열었다.

뼈마디가 분명한 두 손이 그녀 위에 떨어졌고, 순간 소지아는 그녀를 반하게 했던 하얀 셔츠의 소년을 본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두 손을 맞잡은 순간, 이도윤은 차갑게 손을 빼서 소지아에게 희망을 주었다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며 소지아의 몸이 재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지아가 넘어지는 순간 마침 바닥의 깨진 유리 파편에 눌려 눈부신 피가 손바닥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잠시 놀랐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지아는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전에는 소지아의 손가락에 작은 상처만 나도 한밤중에 병원으로 데려간 이도윤이었다.

의사는 또 웃으며 말했다.

“일찍 오셨으니 다행이지 좀만 더 늦었으면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남을 뻔했네요.”

기억 속의 사람은 앞에 있는 남자와 겹쳐졌고, 눈매는 여전히 과거와 같지만 달라진 것은 애정 어린 관심이 싸늘함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도윤은 차갑고 매정하게 말했다.

“소지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널 잘 알지. 마라톤 달리면서 공중제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걸음 달렸다고 넘어져?”

소지아를 바라보는 이도윤의 눈빛은 마치 차가운 비수를 그녀의 몸에 꽂은 것처럼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

소지아는 다소 창백한 입술을 깨물며 해석했다.

“아니야, 널 속인 것 없어. 요새 좀 아파서 몸이 좀 약해진 거지...”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키 큰 남자가 허리를 굽히고 몸을 숙여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거친 손가락은 소지아의 바싹 마른 입술을 어루만졌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군. 넌 너의 그 위선적인 아버지와 똑같아. 돈을 위해 이런 비열한 연기를 마다치 않다니.”

이도윤의 말은 이 찬바람보다 더 아팠고, 예리한 칼날로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소지아는 이도윤의 손을 호되게 뿌리쳤다.

“우리 아버지는 정직한 사람이셔. 나는 아버지가 절대 양심을 저버린 일을 하지 않았다고 믿어!”

“허.”

이도윤은 냉소하면서 그녀와 이 화제를 논쟁하고 싶지 않은 듯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 그는 마음대로 숫자를 쓰고는 두 손가락에 수표를 끼워 소지아의 앞에 놓았다.

“갖고 싶어?”

10억, 그것은 아주 상당한 액수로서 적어도 오랫동안 소계훈의 입원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마음으로 주는 게 아니었기에 소지아는 받지 않았다.

“조건.”

이도윤은 그녀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직접 소계훈을 개만도 못한 짐승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이 돈은 바로 네 거야.”

소지아는 이 말을 듣고 안색이 크게 변하며 바로 손을 들어 이도윤을 때리려 했다. 이도윤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고, 소지아는 발버둥 치다가 다친 손이 그의 셔츠에 닿아 핏자국을 남겼다.

이도윤은 힘을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왜? 싫어? 그럼 병원에서 죽게 내버려둬. 그를 어디에 묻을지 이미 다 생각해뒀어.”

“이도윤, 너 왜 이렇게 변했어?”

소지아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평생 지켜주겠다며, 눈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해주겠다던 남자는 마치 그녀가 꾼 꿈과 같았고, 지금 자신의 눈물은 그를 기쁘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 누르스름한 가로등 빛이 그의 얼굴에 번졌지만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단지 귀찮다는 표정만 있었다.

“말하기 싫어?”

그는 소지아를 놓아주고 천천히 수표를 찢었다.

소지아는 달려들어 막으려 했지만 이도윤에게 밀려났다. 이도윤은 마치 감정이 없는 신처럼 눈을 드리우며 담담하게 말했다.

“난 너에게 기회를 줬어.”

찢어진

종잇조각은 마치 소지아의 희망처럼 산산조각이 났고, 마지막에는 온 하늘에 흩날리는 나비가 되어 곁에 떨어졌다.

“아니, 안 돼!”

소지아는 허둥지둥 그 종잇조각들을 주우려고 했고 눈물은 바닥에 뚝뚝 흘렸다.

모든 것을 잃은 아이처럼 무기력하고 또 당황했다.

이도윤이 몸을 돌려 차에 오르려고 할 때, 귓가에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서 보니 사람이 땅에 쓰러져 있었다.

기사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사모님 쓰러진 것 같은데, 병원에 모셔다 드릴까요?”

이도윤은 차갑게 그를 힐끗 보았다.

“너 지금 저 여자에게 관심 있는 거야?”

기사는 이도윤의 곁을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전에는 분명히 사모님을 매우 좋아하셨는데, 지난번에 시체를 확인하고 돌아온 후부터 성격이 크게 변했단 말이야.’

남의 집안일이라 딱히 더 묻지 못하고 조용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가 점점 멀어지자, 이도윤은 백미러를 통해 시종 일어나지 않은 그 여자를 보며 더욱 경멸했다.

‘못 본 사이에, 연기가 늘었네.’

비록 소지아는 금이야 옥이야 하며 응석받이로 자랐지만, 혹시 자신의 딸이 다른 사람에게 놀림을 받을까 봐 소계훈은 어릴 때부터 딸에게 각종 스포츠를 배우게 했다.

‘태권도 검은 띠에 킥복싱까지 배웠으니, 이렇게 운동으로 단련된 여자가 쉽게 기절할 리 있겠어?’

이도윤의 눈에 쓰러진 소지아의 행동은 단지 소지아가 돈을 위해 하는 연기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 후, 이도윤은 냉담하게 시선을 거두고 더 이상 소지아를 보지 않았다.

이도윤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임건우는 재빨리 소지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지아가 다시 깨어났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로 자신이 얼마 전에 떠난 진료실이었다. 손등에는 링거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고, 차가운 액체가 푸른 혈관을 따라 조금씩 스며들었고 왼손의 상처도 누군가에 의해 잘 치료되어 있었다.

벽의 사슴뿔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가리켰고,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임건우의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

“미안, 전에 네가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널 미행했어.”

소지아가 일어나려고 하자 임건우는 재빨리 그녀에게 베개를 하나 더 받쳐주며 또 마실 물을 주었다. 소지아는 그제야 좀 편해지며 입을 열었다.

“선배 다 봤어요?”

“미안, 네 사생활을 엿볼 생각은 없었어.”

임건우는 마치 백지장처럼 깨끗하여 한눈에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었는데 이도윤과는 달랐다.

“괜찮아요, 난 그의 아내지, 불륜은 아니니까요.”

임건우은 충격을 금치 못했고, 소지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사람들은 백채원이야말로 곧 그와 결혼한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선배가 나를 믿지 않더라도...”

임건우는 다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

“아니, 난 믿어. 너의 그 결혼 반지 알고 있거든. SL이 3년 전에 출시한 한정판인데, 전 세계에 이것 하나밖에 없어. 잡지는 그것이 SL 그룹 대표가 직접 자신의 부인을 위해 설계한 것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지. 나는 SL 배후의 대표가 바로 이도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전에 이미 이도윤과 소지아의 관계를 짐작한 적이 있었지만, 이도윤과 백채원의 스캔들을 보고 또 이 2년 동안 이도윤이 병원에 나타난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소지아는 전에 반지를 낀 손가락을 만졌는데, 지금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반지를 끼었던 자리는 주변보다 좀 더 하얘서 마치 소지아의 그 가련한 결혼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내가 그의 아내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아요. 내일 아침 9시에 이혼할 테니까요.”

“그 사람 네가 아픈 거 알고 있니?”

“그 사람은 알 자격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