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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김나비
변진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도윤을 바라보았다. 이도윤이 결혼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 우리는 외국에서 생활한 지 오래돼서, 국내 뉴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우리 딸이 자네와 무슨 관계지?”

이도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지나간 일이에요. 지금 이혼 수속 밟고 있어요.”

소지아는 자신의 진심이 결국 그가 과거일 뿐이란 말로 얼버무릴 줄은 몰랐다.

‘화를 내야 할까?’

당연히 화가 났다.

더 큰 감정은 한심하다는 느낌이었다. 정말 눈이 멀어 이런 짐승 같은 인간을 남편으로 삼았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소지아는 다이아몬드 반지 상자를 꺼내 이도윤의 이마에 세게 던졌다.

“너 같은 쓰레기는 이제 꺼져. 내가 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이 바로 당신과 결혼한 일이야. 내일 9시에 우리 이혼해. 가정법원에 나타나지 않으면 겁쟁이야!”

상자가 그의 이마에 부딪혀 빨갛게 멍이 들었다. 땅에 떨어졌고 반지는 발밑으로 떨어졌다. 이번에 소지아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반지를 밟고 문을 내팽개치고 떠났다.

최근 2년 동안 소지아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이 일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녀는 멀리까지 뛰지 못하고 길가에서 기절했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빗방울은 마치 이 세상이 그녀에 대해 드러내는 적의와 같았다.

그냥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음모가 가득한 세상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따뜻한 불빛은 어둠을 몰아냈고, 방 안의 보일러는 봄처럼 따뜻했다.

“깼어?”

소지아는 눈을 뜨자마자 임건우의 부드러운 눈을 보았다.

“선배, 날 구한 거예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네가 길가에 쓰러져 있길래 데려왔어. 그리고 몸이 흠뻑 젖은 것을 보고 하인에게 옷 갈아 입히라고 했고.”

남자의 눈빛은 맑고 깨끗하며 조금의 음흉함도 없었다.

“고마워요, 선배.”

“죽을 끓이고 있으니 물 먼저 마셔.”

소지아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니에요, 선배, 이렇게 늦었으니 선배 방해하지 않을게요.”

몸이 허약한 소지아는 발끝이 땅에 닿자마자, 몸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임건우는 재빨리 임지아를 일으켜 세웠다. 남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로운 섬유 유연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자신의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제품이라, 예전에 이도윤에게서도 이 냄새가 났다.

이도윤을 생각하니 소지아는 또 가슴이 아팠다.

“너 지금 너무 약해져 있어. 좀 더 살고 싶으면 그렇게 들볶지 마.”

임건우는 부드럽게 충고했다.

“네 아빠를 위해서라고 생각해.”

소지아의 그 빛이 없는 눈동자는 그제야 약간의 희망을 가질 이유를 찾았다.

“그럼 선배한테 부탁할게요.”

그리고 그녀는 주방에서 바쁘게 드나드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임건우와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고, 기껏해야 그녀가 대학교 1학년 때 그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우수학생으로 선정되어 상을 받게끔 추천도 해주었다.

그때 그는 이미 유명한 병원에서 인턴을 하던 중이라 학교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후에 병원에서 만나자 소지아와의 연락이 늘었다.

이런 인연이 있다고 해서 줄곧 임건우를 귀찮게 할 수는 없었다.

밥을 먹고 위약을 좀 더 먹었더니, 비로소 위의 통증이 줄었다.

임건우는 재차 약물치료에 대해 언급했다.

“최신 의학은 아주 발달하고 있고, 너 지금 기껏해야 2기나 3기 정도야. 일부 암환자들은 말기여도 살기도 해. 너 자신을 꼭 믿어라. 약물치료는 현재 아주 유용한 치료수단이기도 하고.”

소지아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의대 출신이라 약물치료의 좋은 점과 부작용 정도는 잘 알아요.”

임건우는 계속 설득했다.

“약물치료 받으면, 수술로 완치될 확률이 높아. 부작용은 좀 크지만 견딜 자신이 있다면...”

소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시울이 빨개졌다. 온몸의 힘을 다해서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억제했고, 입을 오물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임건우는 위로를 하려다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녀의 빨개진 눈을 보자 마음이 좀 답답했다.

한참 후에 다시 물었다.

“지아야, 이 세상에 네가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거야?”

소지아는 멍하니 있다 천천히 대답했다.

“우리 아빠밖에 없어요.”

“그럼 아버님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하지.”

소지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선배. 몸이 많이 좋아진 거 같으니 이만 갈게요.”

임건우는 그녀가 줄곧 빼지 않았던 결혼반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뭔가 물어보려다가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디 가니? 데려다 줄게.”

“아니에요, 이미 차를 불렀으니 곧 도착할 거예요.”

소지아가 바로 거절하자 임건우는 더 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슬픔에 찬 소지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행여나 잘못된 선택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몰래 소지아의 차를 뒤따랐다.

차는 강가까지 달렸고, 소지아는 혼자 강물을 보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이때 비가 그쳤고 기온도 매우 떨어져서 추워졌다. 임건우는 원래 소지아에게 다가가서 직접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검은색 고급 자동차 한 대가 임건우의 옆에 섰다.

차문이 열리자, 재력 순위에서 줄곧 1위를 차지했던 한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 나타났다.

임건우는 놀랐다, 설마 소지아의 남편이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인가!

바람이 소지아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가뜩이나 초췌한 그녀에게 애잔함을 더했다. 이도윤은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소지아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려 했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무슨 일이야?”

소지아는 이도윤의 모습을 똑똑히 알아보려는 듯 그를 차갑게 주시했다.

“소씨 집안 파산이 너와 관련이 있는 거 아니야?”

“맞아.”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묻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아이는 네 아들이야?”

소지아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며 혹시 자신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도윤은 부인할 생각이 없었고, 여전히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응.”

소지아는 앞으로 나아가서 그의 뺨을 내리쳤다.

“이도윤, 너 정말 파렴치하군!”

남자는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눈물 자국을 어루만졌다.

“아프지?”

“나쁜 놈, 너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우리 집안이 너한테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이도윤의 긴 속눈썹 아래의 동공은 차갑고 매정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싸늘함을 내뿜고 있었다.

“소지아, 답을 알고 싶다면 돌아가서 네 아버지라는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가서 직접 물어봐.”

소지아는 울먹이며 물었다.

“이도윤, 너 도대체 나를 사랑한 적이 있긴 해?”

그 검은 눈동자 속에는 소지아에 대한 정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도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너는 처음부터 내 도구였어.”

소지아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그의 손등에 떨어졌고, 찬바람이 불자 갑자기 추워졌다.

“너 나 미워하지, 그렇지?”

“응, 이것은 소씨 집안 당신들이 나에게 빚진 거야. 소지아, 누가 너더러 소계훈의 딸로 태어나랬어? 나는 네가 매일 고통스럽게 살아서 내 여동생을 위해 속죄하기를 원해!”

“네 여동생은 진작에 잃어버렸잖아? 우리 집안과 또 무슨 상관인데?”

이도윤은 마치 심판을 내릴 신처럼 소지아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소지아, 네가 모든 사람의 총애를 누릴 때, 내 여동생은 비인간적인 고통을 받고 있었어. 너 천천히 생각해봐. 나는 너에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네가 영원히 두려움에 휩싸여 비참하게 살게 만들 거고 내 여동생이 겪었던 고통을 전부 맛보도록 할 거야!”

이도윤은 냉담하게 발을 들어 차에 올랐고, 떠나기 전에 말 한마디 남겼다.

“내일 아침 9시, 가정법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소지아는 재빨리 쫓아와 끊임없이 차문을 두드렸다.

“똑똑히 말해봐, 네 여동생이 어떻게 됐다는 말이야?”

차는 가속페달을 밟고 재빨리 떠났고, 소지아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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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실연당한 두 여자가 한데 모이자, 김민아는 바로 멋진 헤어디자이너를 찾았다. 남자 디자이너는 소지아를 보더니 눈이 반짝거리며 즉시 현재 가장 핫한 헤어스타일을 추천했다.소지아는 바로 거절했다.“짧게 잘라줘요. 짧을수록 좋으니까.”“아가씨, 지금은 쿨한 스타일이 유행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머리가 너무 짧으면 아가씨 스타일링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어깨 정도까지만 자릅시다. 그럼 나이도 어려 보일 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잘 어울리죠.”“됐어요.”“아가씨는 머리카락 색깔도 짙고 오래 기른 거 같은데, 다 잘라내면 너무 아쉽잖아요.” 남자는 안타깝게 고개를 저었다.소지아는 거울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잘 쉬지 못해서 안색이 나빴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가꾸지 못한 검은 머리는 마음대로 흐트러져 안타까워 보였다.이도윤은 소지아의 긴 머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소지아는 몇 년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디자이너가 아까워하는 것을 보고 소지아는 한쪽의 가위를 들고 살짝 웃었다.“그럼 내가 할게요.”손에 가위를 들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검은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흩어져 마치 그 풋풋하고 아름다운 청춘이 떠나는 것 같았다.“자, 나머지는 전문가께 맡길게요.” 소지아는 디자이너에게 가위를 돌려주고 스타일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핑크빛으로 물들인 김민아가 나와서 소지아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보고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바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나 마침내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란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지아야, 너 정말 너무 멋있다!”소지아의 짧은 머리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김민아는 재빨리 소지아를 끌고 백화점에 가서 그녀에게 시크한 스타일의 옷을 몇 벌 사주었다. 두 사람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어둠이 내리자 김민아는 소지아를 끌고 쇼윈도 밖에서 셀카를 찍어 SNS에 공유했다.그리고 멘트를 달았다.[환생.]소지아는 김민아와 함께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3화

    이도윤의 차가운 눈빛이 진환을 쏘아보자 진환은 바삐 해석했다.“대표님, 사모님은 지금 김민아 씨와 함께 있습니다.”김민아는 소지아의 절친으로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도 아주 정상적이었다. 그때 소지아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이도윤은 진환에게 그녀의 SNS 계정을 추가하게 했다.진환은 설명하면서 휴대전화를 뒤적였다. 먼저 김민아의 첫 게시물을 찾았는데, 김민아는 낭만적인 핑크색 곱슬머리를 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도윤은 김민아의 곁에 있는 소지아를 한눈에 보았다.평소 스타일과는 천양지차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는 귀까지 오는 짧은 머리가 되었고, 그 수척한 작은 얼굴과 함께 지난날 웃으면 작은 태양처럼 화사했던 소녀스러움도 많이 퇴색되어 우울한 느낌이 더 강했다.사진 속 소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넓은 셔츠를 입어 정교한 쇄골을 드러내며 금욕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했다.사진과 함께 올라온 멘트는 ‘환생’이었다.이도윤은 휴대폰을 든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요 1년 내내 소지아는 자신에게 매달렸고, 이제 손을 놓기로 선택했다. 분명히 자신이 원한 대로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슴이 아픈 것일까?아니, 자신의 여동생이 땅속에서 자고 있는데 소지아는 무슨 근거로 ‘환생’을 언급했을까?자신은 결코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단지 달갑지 않을 뿐이다.‘고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지금 도망쳐서는 안되지.’이도윤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에 잠겨있을 때 진환이 또 한마디 덧붙였다.“김민아 씨가 사모님을 클럽으로 데려갔습니다.”그는 다음 사진을 보았다. 어두컴컴한 환경에서 소지아는 약간 나른하게 부드러운 소파에 기대어 있었고, 생김새가 깨끗한 하얀 셔츠를 입은 소년이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포도를 먹였다.이 순간, 이도윤은 진환의 휴대전화를 거의 부술 뻔했다.“다크호스 클럽으로 가.”차 안에서 싸늘한 냉기가 맴돌았다. 이도윤은 머릿속에 그 하얀 셔츠 소년을 떠올렸다.소지아는 이도윤이 흰 셔츠를 입을 때마다 늘 한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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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4화

    지아를 바라보는 장민호의 창백한 얼굴에 갈망이 스쳤다.“지아 씨, 나랑 함께했던 지난 2년 동안, 단 한 순간이라도 저를 좋아한 적 있었나요?” 차갑게 장민호를 응시하는 지아의 눈빛에는 얼음처럼 냉랭한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아니요, 늘 당신의 죽음만을 바랐어요.” 장민호가 쓸쓸히 웃었다. “그랬군요.” 모든 일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법이었다. 탕!놀란 새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붉은 선혈이 땅에 흩뿌려졌다. 장민호는 무덤의 차가운 사진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미연아, 너한테 빚진 건 전부 갚았어...” 지아는 눈앞에서 연이어 죽어간 사람들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이 조여오는 고통을 느꼈고, 천천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미연아, 우리의 복수가 이렇게 끝이 나네. 이젠 너도 편히 쉬어.” 지아는 이날을 너무도 오래 기다려왔지만, 복수를 끝낸 후에는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하기만 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금, 따뜻한 봄바람 속에서 해경의 뒤를 쫓는 무무의 발목에서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해경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외쳤다.“어서 잡아봐!” 멀리서 꽃으로 화환을 엮던 소망이 지윤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허리 좀 숙여봐.” 지윤은 순순히 허리를 숙였고, 소망은 지윤에게 화환을 씌워주었다.“와, 정말 잘 어울린다!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 지아는 어린 시절의 도윤을 보듯 따스한 눈길로 지윤을 바라보았다. “자기야.”바로 그때, 지아의 귓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가 고개를 돌리자, 한쪽 무릎을 꿇은 도윤의 모습이 보였다.도윤이 한 손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든 채 말했다.“나랑 다시 결혼해 줄래?” 아이들이 옆에서 환호하며 소리쳤다.“결혼해요! 결혼해요!” 지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도윤 씨...”도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지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지아야, 다시는 너한테 상처 주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소망이 꽃으로 만든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3화

    사랑에 미친 장민호는 이 모든 것이 지아가 2년에 걸쳐 설계한 함정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지아가 도윤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순간에야 자신의 정체가 이미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끝났구나...’비록 소씨 가문 사람들이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심세호와 조경선, 그리고 소시월이 힘을 합쳐 저지른 일들로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으니, 소씨 가문 사람들이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닌 셈이었다. 심지어 소시영 또한 그들의 희생자가 되었고, 젊은 나이에 영면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아가 시영의 무덤 앞에서 향을 올리며 말했다.“언니, 다음 생엔 꼭 행복하게 살자. 이번 생에는 내가 가족들을 잘 돌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바로 그때,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 한 장이 지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마치 시영이 지아의 말에 응답하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소영수는 소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강렬한 기세로 돌아왔고, 환희 역시 마침내 안식의 땅에 묻혔다. 환희의 장례식은 비밀리에 치러졌지만, 부남진은 몰래 그곳을 찾았다. 부남진과 소영수는 무덤 앞에서 서로를 마주했는데, 생전 환희에게 가장 중요했던 두 남자가 환희가 죽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한 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추는 가운데, 눈가가 붉어진 부남진은 가지에서 가장 어린 복숭아꽃 한 송이를 꺾어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그 순간, 지아의 눈에 노인이 아닌 아침 햇살 속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낸 젊고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 비쳤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조경숙의 눈도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지아는 장민호와 소시월을 데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산속은 한창 따듯한 봄이었다. 산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강미연의 무덤 앞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소시월은 숨이 가쁜 상태로 강미연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장민호는 무덤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런 날이 올 줄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2화

    “오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지아는 루이스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기에, 지아가 이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시후뿐이었다. “지아야, 가까이 오지 마. 여긴 너무 위험해!”시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지자,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실험은 곧 성공할 거야. 저 아이는 환희의 후손이라, 몸속에 환희와 같은 피가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 순간, 지아의 얼굴빛이 달려졌다.‘스승님이 나한테 유독 신경 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 예전의 지아는 그것이 자기 몸과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루이스는 처음부터 지아의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이었다. 루이스가 말한 ‘생체 개조 계획’도 사실은 환희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저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할머니를 부활시키려고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다니!’ ‘하마터면 개조 계획이라는 거짓말에 깜빡 속을 뻔했어!’ 백발이 성성한 소영수가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루이스, 그만둬! 환희는 이미 죽은 지 오래야. 환희의 혼도 이미 윤회에 들었을 텐데 부활이라니, 그건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야!” “네가 그동안 저질러온 실험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지 알아? 아,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네 과거 실험 데이터를 살펴봤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실패했더군. 그런데도 네가 저 아이를 건드리지 못한 이유는...”소영수가 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아이가 환희의 핏줄이고, 환희와 닮은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었어. 혹시라도 실험에 실패할까 봐 저 아이를 건들 수 없었던 거야, 그렇지?” 지아는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고, 환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느꼈다.‘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목숨을 잃었을 거야.’ 루이스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내 최고의 실험 대상이야. 어서 스승인 나를 도와주렴.” 시후와 도윤이 동시에 지아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1화

    섬에 도착한 지아는 섬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섬 곳곳에 있던 로봇들은 사라진 듯했는데, 원래라면 섬에 내리자마자 로봇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섬 가장자리에 밀집한 수많은 군함이 눈에 띄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외국 민간 무장 단체와 용병들이 사용하는 군함 같았다. ‘대규모 인원이 섬에 상륙한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지?’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가 지아를 인체 개조 대상으로 삼으려 했음에도 지아는 루이스가 살아남길 바랐는데, 루이스처럼 뛰어난 과학자가 유명을 달리한다면 큰 손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자기야, 진정해. 이 섬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윤은 지아를 재빨리 진정시켰다. 이렇게 많은 군함이라면 분명 강력한 무기를 많이 실었을 테지만, 섬의 꽃과 나무, 건물들은 여전히 온전했다. “아니야, 이 섬에는 원래 사람이 많지 않았어. 대부분 로봇이었단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오빠는 어디 있는 거지?” 지아는 며칠 전 시후가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 여기에 왔던 것을 떠올린 후,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섬 안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잠시 후, 지아는 겨우 작동하고 있는 한 로봇을 마주했는데, 로봇에서는 전기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 몸체에서는 쇠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이스 스승님은 어디 있어?” 지아가 다급히 물었지만, 이미 언어 기능을 상실한 로봇은 전자 화면에 두 글자를 표시할 뿐이었다. [뒷산.]‘뒷산이라니!’뒷산은 루이스가 지아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다. ‘거기엔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지아는 미친 듯이 뒷산으로 달려갔다.그곳에는 수많은 로봇과 인간들이 쓰러져 있었고, 원래 뒷산 입구를 막고 있던 기계 문도 강제로 파괴된 상태였다.‘큰일이네. 루이스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의 로봇도 많은 수를 자랑했는데, 상대는 그보다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0화

    그날, 부남진과 소임호는 단둘이 오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소씨 가문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단지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하지만 민연주는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갑자기 이렇게 많은 자손이 생기다니, 만약 저 사람들이 모두 부씨 가문 사람이 된다면, 내 아들과 딸에게 돌아갈 재산이 줄어들진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법이다. 정말 이런 상황에 닥친다면, 그 누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소임호와 부남진이 이야기한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은 바로... 소씨 가문 사람들이 소임호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임호는 부씨 성으로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즉, 소임호의 어머니가 소영수와 결혼한 이상, 소임호를 비롯한 그 자손의 생에는 소씨 가문 사람들에 속했기에, 부씨 가문과는 친척 관계로 왕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부남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영수가 자기 자손들을 잘 대해준 것을 생각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소임호의 자손들에게 잠시 부씨 가문에 머무르며 상처를 치료해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지아는 돌아온 이튿날 아이들을 데리고 묘지로 갔는데, 도윤과 함께 환희와 소계훈을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묘지는 산속에 있었고, 산에는 복숭아나무와 배나무가 활짝 꽃을 피워 푸른 신록이 빛나고 있었다. 소계훈의 묘 앞에는 이끼가 조금 늘어나 있었는데, 지아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오랫동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아빠, 드디어 제 가족을 찾았고, 배후의 손도 밝혀냈어요.” “유일하게 아쉬운 건... 그 여자를 데리고 와 아빠의 묘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도록 하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저는 이제 성장했고, 다른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도윤은 지아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계훈의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를 놓았다. “기대를 저버려서 정말 죄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9화

    지아 일행은 다시 소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시후가 관리 중인 소씨 가문은 이미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시하의 다리도 많이 회복되어 이제는 더 시아 장애를 가장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시언의 건강은 단기간에 완전히 회복될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띄게 좋아졌고, 소임호 역시 지아가 떠나기 전보단 훨씬 건강해 보였다. 소시월이라는 사람 때문에 소씨 가문은 거의 전멸할 뻔했지만, 지금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아가 돌아오자 소임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지아야, 시후한테 네 몸에 독벌레가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다 나았으니까요. 그런데... 소시월은 아마 바닷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요.” 소임호가 지아를 단단히 껴안으며 말했다.“괜찮다, 괜찮아. 난 그저 너희들만 무사하면 그만이야.” 짧디짧은 시간에도 몇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소임호의 모습을 보며 지아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엄마 쪽 소식은 없는 거예요?”“시후가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는데, 아직 추적 중이란다. 참, 부씨 가문에서 우리가 한 번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최근 부남진은 신분상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소씨 가문 사람들이 본국으로 가야만 했다. 마침 지아도 다른 아이들이 그립던 터였다.“좋아요. 아이들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그렇게 가족들은 전용기를 타고 본국으로 향했다. 본국은 이미 초봄의 시기로 접어들어, 추운 겨울을 지난 후 생기가 넘치는 대지를 뽐내고 있었다. 나뭇가지엔 새싹이 돋았고, 벚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었고, 무무는 연한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지아의 곁을 따랐다. 도윤도 모처럼 정장을 입지 않고 모녀와 함께 커플룩을 맞춘 듯한 연한 초록색 줄무늬 셔츠와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윤은 차 문을 열고 무무를 안아 내렸다. 세 사람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눈길을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8화

    배신혁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심규철은 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고, 머릿속엔 온통 한대경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이 가득했다. ‘낡은 민간 보호시설에서 삼류, 사류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란 걸로도 모자라, 그 무엇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잃는 것도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이영화가 세상을 떠난 이후, 심규철은 심장후에 대해 그다지 마음을 쏟지 않았지만 물질적인 부분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친아들을 찾은 지금, 심규철은 가슴 한편이 아려져 왔다. ‘그 결혼이 아들의 유일한 소망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어.’ 한편, 지아는 바닷가에 서서 멀리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시월은 이미 바다 밑에 잠겼을 테지만, 지아의 마음은 조금도 평온하지 않았다. ‘죄의 근원이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야? 우리 소씨 가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고, 엄마는 아직 행방불명 상태인데.’ 지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아직 젊은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한대경이 물었다. 지아의 옆에 털썩 앉은 한대경은 바닥의 모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한대경은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앉아봐. 별건 아니고, 그냥 얘기나 좀 하자고.” 지아는 한대경을 한 번 흘긋 보고,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난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아니, 조선시대도 아니고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거야, 뭐야?”한대경은 지아가 자신을 뱀 보듯 피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듯 말했지만,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한대경,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순 있어도 그 이상은 불가능해.” 그 순간, 갑자기 다가온 한대경이 짙은 남성미로 지아를 압도했다. “소지아, 진짜 날 피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나한테 희망을 주지도 말았어야지!” “정말 미안해, 한대경.” 지아는 그 임무에 한대경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터였다. “시도도 해볼 수 없다는 거야? 단 한 번이라도?”한대경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7화

    심규철은 약간 지친 듯했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거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은 것 같군.’ ‘이 세상에 30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들이 만나자마자 가족 걱정은커녕 결혼하겠다고 소리치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리고 평범한 여자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상대는 이미 이혼한 데다 아이를 넷이나 데리고 있는 여자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가장 골치 아픈 건, 소지아의 전남편이 내 여동생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이야.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잖아?’ ‘손바닥도 손등도 모두 살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심규철은 매우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한대경은 심규철의 곤란한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나는 끊었단다.”심규철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한대경은 혼자 담배를 피우며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모습은 공사장의 현장 소장과 같았는데, 도무지 한 나라의 군주다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심규철은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대체 그동안 어떻게 자란 거지?’ “되는지 안 되는지 확답이나 주시죠.”한대경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하자, 심규철은 아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쉽지 않을 거라면 어쩔 셈이지? 그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야. 물론 두 집안의 사정을 따지는 건 아니란다.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면, 거지가 상대라 해도 바로 혼약을 허락해 줬을 거야. 하지만 상대는 소씨 가문 사람이라고.” “넌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소씨 가문에 문제가 좀 생겼어. 그 집안은 이미 진정한 소씨 가문과 관계가 끊긴 상태인 데다,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단 말이지... 이 결혼은 정말 쉽지 않을 거야.”한대경이 담배꽁초를 던지며 말했다.“그럼 안된다는 겁니까? 아버지라는 호칭을 쓴 게 아까울 지경이군요.” 한대경은 기분이 상한 듯 몸을 돌려 떠났고, 심규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야, 왜 저렇게 쉽게 포기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6화

    시름시름 앓던 심규철은 지금까지 자신이 낳은 친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외지에 버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아들이 수많은 겪었음에도 거대한 나무처럼 성장했다는 사실에 아주 놀랐는데, 거대한 나무는 맞지만, 어쩐지 그 나무는 조금 삐딱하게 자란 것 같았다. 부자지간임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은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진실이 드러났다면,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동적이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대경은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심씨 가문의 큰아들이라는 신분과 소씨 가문의 여섯째와의 혼약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이는 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복잡하니, 천천히 논의해 보자꾸나...”“제가 친아들이라면서요?”한대경은 성격이 급하고 불같았으며,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누군가의 설득 따윈 듣지 않았다. 한대경은 이미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관계를 철저히 파악했기에, 혼약의 존재를 알아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하마터면 혼약이라는 걸 전혀 몰랐을 뻔했잖아?’“그럼, 당연하지. 이미 친자 확인 결과도 나왔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금 소씨 가문 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지금은...”“어쨌든 저랑 결혼할 사람은 소씨 가문의 여섯째인 거죠?” “그래.”“그 혼약은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어른들이 정한 거고요?” “그래.”“그럼 됐으니, 어서 결혼부터 준비해 주세요.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심규철은 아들이 아주 성급하다는 것을 느꼈다.‘기다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잖아? 만약 이 상황이 올림픽이었다면 쟤는 분명히 부정 출발로 탈락했을 정도야.’ “결혼 같은 중대한 일보다는 네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하지 않니? 그토록 오래 떨어져 지냈는데, 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냐는 말이야.” 한대경은 냉담하게 말했다.“전혀요, 아버지는 이미 반쯤 땅에 묻혀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에 대해 제가 뭘 궁금해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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