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표정이 싸늘했다. 그는 지아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지만, 그 자유 역시 그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했다.그리고 도윤은 지금 섬에 있는 위험을 통제할 수 없었다.무릇 그 어떤 예상 밖의 일이라도 생기면, 그는 남은 인생 동안 후회할 것이다.“예, 대표님. 제가 바로 사모님을 아웃시키겠습니다.”몇 분 후, 전표식은 당황한 모습으로 달려왔다.“큰일 났습니다, 대표님. 사모님의 위치가 사라졌습니다.”도윤은 손 끝에 든 담배를 버리고 맹렬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지금 뭐라고?”“얼마 전에 특별히 확인했는데, 그땐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금 문제는 추적기의 신호가 없어진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진 것입니다. 그 추적기의 재질은 아주 단단해서 일반적인 외력으로는 파괴하기 어려운데, 사모님이 스스로 신호를 차단한 것으로 보입니다.”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아는 일부러 그런 게 분명했다.‘지아는 내가 이번 라운드에 명령을 내려 자신을 탈락시킬 것이라고 예상을 한 거야. 이미 블랙X에 들어가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먼저 손을 썼어.’‘내가 지아를 얕잡아 봤군.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 단순한 소녀가 아닌데.’이 섬은 아주 큰 데다, 참가자들은 몇 달 동안 여기에 있어야 했기에, 지아가 정말 신호를 차단했다면 일은 아주 번거로워질 것이다.“신호가 사라진 곳부터 찾아, 빨리.”다음 순간, 전표식은 울먹이며 대답했다.“마지막으로 추적기가 보낸 위치는…… 바다 상공이었습니다.”진환은 감탄했다.“사모님 지금 자신에게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으셨군.”도윤은 두 손으로 팔걸이를 바싹 잡더니 손등에 핏줄이 드러났다.“그들과 연락해. 지금 정체를 폭로해도 괜찮으니까 반드시 재빨리 지아를 찾아야 해. 그리고 사람 좀 더 파견해서 찾아. 찾았으면 제일 먼저 나에게 보고하고.”“네, 대표님.”도윤은 지아와 누런이 그 사람들의 원한을 잘 알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 누런이는 심지어 일부러 지아를 향해 날아갔다.설사 그의 사람이 따라갔더라도,
지아는 감탄할 겨를도 없이 손을 뻗어 남자를 어깨너머로 쓰러뜨린 다음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뒤에서 누런이의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야, 너 몸이 너무 허약한 거 아니야? 어떻게 여자 하나도 못 잡는 거야?”“젠장,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건 일등이야.”“빨리 쫓아가지 않고 뭣들 하는 거야.”몇 사람들은 즉시 지아를 쫓아갔고, 장발남은 바닥에 엎드려 헤드셋을 연결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찾았어요.”그는 유유히 땅에서 일어났고, 몇 사람들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지아는 비록 아주 빨리 달렸지만 여긴 정글이라 길이 아주 평탄하지 못했으며 가끔 뱀들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했다.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지아는 더워서 땀투성이가 되었다.뒤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짝 따라오고 있었고 마치 고양이가 쥐 잡는 놀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계속 도망쳐 봐, 오늘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지아의 체력이 바닥난 것을 보자, 그중 한 사람은 즉시 지아에게 달려들었다.그가 자신이 지아를 잡은 줄 알았을 때, 가슴은 딱딱한 무언가에 닿았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펑 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새빨간 피가 여기저기 튀자, 지아는 또다시 강미연이 죽은 그날 밤을 떠올렸다.하지만 그 남자는 당장 숨을 거두었다.모두들 지아의 손에 이런 무기가 있을 줄은 상상지도 못했다.“아!” 누런이는 분노에 소리쳤다.“너 도대체 누구지? 어떻게 총을 가지고 있는 거야?”이것은 반칙일 뿐만 아니라 지아의 신분을 쉽게 폭로할 수 있었기에 지아도 이때 총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이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그녀는 총을 들어 누런이를 겨누었다.“꺼져.”이것은 지아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었기에, 비록 이 사람들이 온갖 죄를 저지른 사형수라 하더라도, 지아는 여전히 마음이 착잡했다.그리고 심장은 두근두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이렇게 하면 그들이 놀라서 도망칠 줄 알았는데, 방금 그 사람의 죽음은
이도윤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와 마찬가지로 말수가 적고 웃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나 장발남은 예외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듬직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온몸에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대답이 없자, 담배를 피우던 누런이는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는 채 그를 비웃었다.“설마 그 여편네가 물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여긴 물의 흐름이 너무 빨라서 빠지면 죽는 것과 다름없어.”장발남은 누런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말했다.“이번에 제가 포위를 뚫고 나갈 테니 안심하세요. 그리고 사모님께서 하고 싶은 일, 제가 대신 완성해 드릴게요.”누런이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누군가 물 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그는 ‘귀신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피부가 하얗고 몸에 흠집 하나 없는 여자가 물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지아의 모든 위장은 물속에서 깨끗이 씻겼고, 그녀는 심지어 예전보다 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얬다.축축한 검은 머리가 볼에 붙자, 지아는 인어공주처럼 아름다웠고, 현장에 있던 모든 남자들은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상에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다니!’사실 장발남은 진작에 지아의 위장을 알아차렸는데, 그녀의 흉터는 처음에 눈가에 있었지만, 후에 옆으로 살짝 옮겨졌다.그는 도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여자가 너무 못생기진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지아는 아직 자신이 앞에 있는 이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을 안겨다 주었는지 모른다.심지어 장발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너…….”지아가 말을 하려고 하자, 장발남은 손가락을 입술 위에 놓으며 쉿 하라고 했다.지아는 그제야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장발남은 그녀의 팔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린 다음 그녀를 풀밭으로 던졌다.“죄송해요, 저는 성격이 거칠어서 힘 조절을 잘 못했네요.”지아는 그와 이런 일로 다투고 싶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며 애원했다.“나
그러나 사람들의 희비는 서로 통하지 않았다. 저쪽은 ‘드라마’를 보며 떠들고 있었지만, 이쪽의 지아는 오히려 등골이 오싹했다.“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도윤, 나 놓아줘. 나 정말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그러나 도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아는 비록 그를 속였지만, 지금 보면 도윤이 그녀보다 훨씬 강했다.지아는 곧 강제로 그의 품에 안겼다.“이 세상에 너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이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야. 만약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그 어떤 결정도 응원해 줘야 하는 거 아니니?”“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 지아야, 난 내 방식으로 널 위해 복수해 줄 테니까 넌 순순히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서 사모님 행세하면 돼.”지아는 두 눈으로 도윤을 노려보았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다신 너와 재혼하지 않을 거라고. 우린 이미 돌아갈 수 없어.”“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지.”이때 진환과 진봉이 나타났고, 지아는 즉시 진환의 손에 든 주사를 발견하였다.지아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거둬들일 수 있겠어? 전에 발생한 일들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냐고? 그런 사실들이 우리 앞에 놓인 이상, 네가 다시 나에게 애원해도 난 승낙하지 않을 거야.”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지아야, 난 확실히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없어. 하지만 만약 네가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이 모든 일을 없던 걸로 할 수 있지 않을까?”“잊어버려? 사람이 어떻게 쉽게 그런 기억을 잊을…….”“지아야, 넌 사람의 집념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진수련은 일생 동안 정일 아저씨를 너무나도 사랑했고, 설령 자취를 감춘 지금, 여전히 정일 아저씨를 잊을 수 없었어. 십여 년 전부터, 진수련은 아무런 자극도 없는, 주사만 하면 기억을 잊게 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성공하면 그 약을 정일 아저씨에게 쓰려고 했어. 이렇게 하면
지아는 힘차게 발버둥 치려 했지만 이 남자는 그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절대적인 힘에 억압당하고 움직일 수 없자, 지아는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그녀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곧 블랙X에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곧 도윤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싫어! 난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아.”“이도윤, 더 이상 날 강요하지 마.”“해독제는? 너한테 해독제 있는 거 맞지?”지아는 도윤의 옷깃을 잡아당겼지만, 남자는 오히려 섬뜩하게 웃었다.“지아야, 난 후회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이 세상엔 해독제는 없어.”지아는 털썩하고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오직 지아만이 이 길을 걸어오느라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아무리 아파도 끝까지 버텼다.지난날의 아픈 기억들은 지아의 버팀목으로 되었고, 덕분에 그녀는 간신히 오늘까지 버틴 것이었다.지아는 강해졌고, 더 이상 나약하지도, 두려움에 떨지도 또 무서워하지도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몸에 감긴 사슬을 벗었지만, 도윤은 지금 뜻밖에도 그녀를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했다.지아는 그를 세게 때리려 했지만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감쌌고 고통 때문에 땅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도윤은 놀라서 화가 났다.“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진환이 설명했다.“아마도 사모님의 체질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약물을 복용한 후의 반응이 다른 데다, 사모님과 달리, 시약에 동의한 사람들은 대부분 진심으로 과거를 잊어버리길 원했기에 사모님처럼 반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사모님이 머리가 아픈 것도 단지 거부 반응에 나타난 부작용이니 안심하세요. 몇 분 후면 이상이 사라질 겁니다.”도윤은 몸을 웅크리며 지아를 꼭 껴안고, 한 번 또 한 번 그녀를 어루만졌다.지아는 그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도윤
“지아야, 꼭 행복해야 해.”“제, 제가 말했잖아요, 반드시…… 아, 아가씨를 지켜낼 것이라고. 아가씨, 꼭 행복하시고 건강하셔야 해요.”“지아야, 이 아빠가 너와 아이를 보호할 거야.”“우리 딸 정말 예쁘네. 아쉽게도 엄마가 너무 늦게 돌아왔구나.”“지아야, 정말 대단해, 이번에 또 전교 1등을 따냈다니.”“지아 씨, 난 지아 씨를 좋아해요. 우리 사귈지 않을래요?”“아가씨 또 만두 사러 왔구나? 아줌마가 늘 시키던 걸로 주문해 줄게.”“만약 내 손자가 널 괴롭힌다면 난 죽었어도 무덤에서 기어 나와 그를 혼내줄 거야.”“지아 학생, 지금 성적이 너무 우수하니까 외국에 가서 연수하는 건 어때? 넌 정말 내가 본 학생들 중 재능이 가장 타고난 아이거든.”“야, 너 이름이 뭐니? 나중에 또 보자.”전에 알게 된 그 사람들은 마치 작별을 하는 것처럼 지아의 눈앞에 나타났고, 지아는 손을 내밀며 그들을 붙잡으려 했다.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그들은 물거품으로 되었다.도윤은 불안함과 당황함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여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지아는 지금 손을 내밀며 사방을 향해 흔들고 있었지만, 결국 풀이 죽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도윤은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기억은 지아가 열 몇 살 되던 해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운동장에서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았고,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눈빛이 부드러웠다.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제 나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지아는 머릿속이 텅 비었고, 다음 순간,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그녀는 매섭게 땅에 쓰러졌다.혼수상태에 빠지기 전, 지아는 마지막으로 세 글자를 들었다.“지아야.”도윤은 그녀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록 중간에 이런저런 해프닝이 있었지만, 다행히 모든 것은 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주위의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지?’순간, 누런이는 더 이상 과자를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의 서늘한 눈빛이 자신에게
거대한 낙지창에서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화려한 유럽식 큰 침대에 떨어졌다.침대에 누운 여자는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정교하여 백설 공주처럼 아름다웠다.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런지 여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방금 깨어났기 때문에 여자는 머리가 어지러웠고 심지어 은근히 통증을 느꼈다.마치 무언가가 머릿속의 모든 것을 뽑아낸 것처럼, 머리가 텅 비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텅 비었다.‘난 누구? 여긴 어디?’귓가에 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오자, 소지아는 호기심으로 욕실을 바라보았다.‘누가 씻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구일까?’그녀는 이불을 젖히며 일어났고, 맨발로 부드러운 털 카펫을 밟았다.바깥은 날씨가 추웠지만, 방안은 따뜻한 난방 덕분에 마치 3, 4월의 봄날과 같았다.지아는 주위를 한 번 훑어보았다.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노란색을 위주로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드러냈는데,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침대에 베이지색으로 된 구름 모양의 소파가 있었다.벽에는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고, 사진 속의 여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남자의 품에 안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있는 남자는 몸매가 훤칠했고 얼굴 또한 말이 안 될 정도로 잘생겼다.지아는 화장대 앞으로 걸어왔는데, 자신이 사진 속의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내가 바로 이 여자였어? 게다가 결혼까지 했다니?’지아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욕실 문이 열렸고, 사진 속에서 본 남자는 목욕 수건을 두른 채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사진에서 볼 때, 남자는 이미 충분히 멋있었지만, 사진은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드러내지 못했다.그가 나오자, 방안은 수증기로 가득했고, 분명히 애써 카리스마와 싸늘함을 감추었지만, 지아는 여전히 남자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수건 사이로 보이는 가슴에는 긴 흉터가 있었는데, 남자의 그 존귀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지아야, 드디어 깨어났군.”지아는 도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손으로 벽에 있는 웨딩 사진을 가리켰다.“우리 두
도윤은 손에 약간 힘을 주더니 지아를 품속으로 안았다.방금 샤워를 마쳤기에, 남자의 몸은 촉촉했고, 공기 중에 심지어 샴푸 냄새가 있었다.지아의 여린 손바닥은 도윤의 가슴에 닿았고, 남자의 뜨거운 체온에 그녀는 좀 뜨겁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도윤의 입술은 부드럽게 그녀의 귓가에서 속삭이고 있었다.“너 허벅지 안쪽에 점이 하나 있어.”상큼한 박하 향기를 머금은 기운이 지아의 피부에 떨어지자, 그녀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그녀가 쑥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도윤은 두 사람이 금방 사귀던 그때를 떠올렸고, 눈빛조차 부드러워졌다.그는 손을 내밀어 지아의 코를 어루만졌다.“장난 그만하고 먼저 밥 먹으러 가자. 밥 먹고 나면 네가 알고 싶은 거 모두 알려줄게.”말이 끝나자, 도윤은 지아의 손을 잡고 안방에서 나왔고, 복도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가득 걸려 있었다. 모든 사진 속의 지아는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모습은 해맑고 활발해서 마치 태양처럼 눈이 부셨다.그중 한 장의 사진에서, 지아는 장미가 가득한 화원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고, 도윤은 뒤에서 그녀를 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채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의 드리워진 속눈썹조차 눈 밑의 부드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또 다른 사진에서는 지아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어 위에 있는 남자를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지만 입가에 오히려 담담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지아가 멀리서 나비를 잡자, 남자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부드럽게 그녀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사진들은 평범한 일상을 드러냈고, 조금도 가식적이지 않았으며 매 장마다 지아는 장난을 쳤고, 도윤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집 전체의 디자인 역시 매우 아늑했고, 지아는 나오자마자 익숙함을 느꼈다. 그녀는 확실히 이곳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그렇게 지아는 무심코 한 방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전에 자주 이곳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