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손에 약간 힘을 주더니 지아를 품속으로 안았다.방금 샤워를 마쳤기에, 남자의 몸은 촉촉했고, 공기 중에 심지어 샴푸 냄새가 있었다.지아의 여린 손바닥은 도윤의 가슴에 닿았고, 남자의 뜨거운 체온에 그녀는 좀 뜨겁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도윤의 입술은 부드럽게 그녀의 귓가에서 속삭이고 있었다.“너 허벅지 안쪽에 점이 하나 있어.”상큼한 박하 향기를 머금은 기운이 지아의 피부에 떨어지자, 그녀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그녀가 쑥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도윤은 두 사람이 금방 사귀던 그때를 떠올렸고, 눈빛조차 부드러워졌다.그는 손을 내밀어 지아의 코를 어루만졌다.“장난 그만하고 먼저 밥 먹으러 가자. 밥 먹고 나면 네가 알고 싶은 거 모두 알려줄게.”말이 끝나자, 도윤은 지아의 손을 잡고 안방에서 나왔고, 복도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가득 걸려 있었다. 모든 사진 속의 지아는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모습은 해맑고 활발해서 마치 태양처럼 눈이 부셨다.그중 한 장의 사진에서, 지아는 장미가 가득한 화원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고, 도윤은 뒤에서 그녀를 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채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의 드리워진 속눈썹조차 눈 밑의 부드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또 다른 사진에서는 지아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어 위에 있는 남자를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지만 입가에 오히려 담담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지아가 멀리서 나비를 잡자, 남자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부드럽게 그녀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사진들은 평범한 일상을 드러냈고, 조금도 가식적이지 않았으며 매 장마다 지아는 장난을 쳤고, 도윤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집 전체의 디자인 역시 매우 아늑했고, 지아는 나오자마자 익숙함을 느꼈다. 그녀는 확실히 이곳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그렇게 지아는 무심코 한 방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전에 자주 이곳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 지아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었다.손잡이에 놓은 손은 멈칫했지만, 이때 부드러운 큰 손이 지아의 손을 잡더니 다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두려워할 필요 없어, 내가 여기 있으니까.”문이 열리자, 안에는 봉인된 괴물도, 끔찍한 화면도 없었다.그것은 아기자기한 방이었는데, 안의 가구들은 모두 옮겨지고 오직 텅 빈 방과 카펫만 남았다.벽에는 심지어 미처 철거하지 못한 아기 장난감이 있었다.지아는 이곳이 아기방이란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마음이 무거워졌고 코가 찡했다.넓고 텅 빈 방을 지나, 지아는 전에 아기 침대를 놓았던 그곳에 멈춰 섰다.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굽혀 앉았는데, 분명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곳에 멈춘 것은 완전히 본능이었다.“여기에 뭐가 있었어?”도윤도 지아의 행동에 놀랐고, 그녀의 곁에 앉으며 대답했다.“아기 침대.”지아는 비워진 방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러니까,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던 거야?”“응.”지아는 입술을 떨며 물었다.“그럼…… 아이는?”“조산으로 요절했어.”이미 일어난 일이었지만, 지아는 아이가 없어졌단 것을 들은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았다.“잃었다니? 왜? 내가 그 아이를 엄청 아꼈다며?”도윤은 지아의 그 절박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아파서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지아야, 넌 원래 몸이 좋지 않은 데다 그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서 조산을 한 거야.”“교통사고?” 지아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서 난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거구나?”“물론 그 원인도 있지만, 넌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줄곧 우울증에 시달렸거든. 게다가 마침 네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그런 여러 가지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게 된 거야.”큰 타격은 끊어지지 않았고, 지아는 가슴이 답답해졌다.“내 엄마 아빠도 죽었다고?”“응, 어머님은 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어 오랫동안 치료를 받다 결국 이 세상을
도윤은 계속 두 사람의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알고 사랑한 것에 대해 말했고, 지아는 비록 기억하지 못했지만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과거의 난 널 많이 사랑했겠지?”도윤은 부드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맞아, 뭐라도 생각난 거야?”지아는 고개를 흔들었다.“네가 말한 난 그렇게 우수했지만 가정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잖아. 만약 널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있었겠어?”이 말에 도윤의 안색이 복잡해졌고, 지아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멀리서 흩날리는 눈을 보며 가볍게 중얼거렸다.“그러게, 만약 날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면, 넌 또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포기했을까? 지아야, 앞으로 난 널 잘 아껴줄 거야.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해.”말하면서 도윤은 지아를 세게 안았고,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어 그저 도윤을 힘껏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아는 오히려 자신의 오른손에 힘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손목에는 흉터가 있었다.“내 손…….”도윤은 얼른 지아를 놓아주었다.“전에 상처를 입었는데, 지금은 이미 좋아졌어.”지아는 손목을 움직여 봤는데, 민첩하지 못한 것 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이상함을 느낄 뿐이었다.“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손목을 다쳤을까? 어떻게 다쳤는데? 대체 누가 나한테 이런 짓을?”“아주 나쁜 사람이 그랬어. 그는 이미 벌을 받고 있으니 그만 생각해.”지아는 눈을 깜빡였고, 도윤이 많은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비록 도윤은 그녀에게 아주 잘해주었지만, 지아도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줄곧 도윤을 경계하고 있었다.“넌 의학에 관심이 있어서, 내가 특별히 너에게 외국으로 연수할 기회를 마련했는데.”“하지만 방금 내가 널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았어? 지금 넌 왜 또 내가 학업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거지?”도윤의 눈빛은 의미심장했고, 미안함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왜냐하면 난 이 몇 년 동안 네가 생각만큼
도윤은 재빨리 밖으로 나갔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음.”“대표님, 사모님은 깨어나셨습니까? 상태는요?” 양요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지아는 그날 약물 주사를 맞은 후, 사흘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으니, 이제 마땅히 깨어나야 했다.도윤이 지아의 상태를 대충 말했고, 양요한은 한숨을 돌렸다.“그럼 됐습니다, 저는 그냥…….”양요한은 요 며칠 줄곧 긴장을 하고 있었다. 1년 전에 지아가 고열이 났을 때, 그녀의 백혈구와 적혈구는 말이 안 될 정도로 낮았다. 그리고 수치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지아가 약물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지만, 후에 지아의 검사 보고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양요한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약은 아주 특별했는데, 임산부, 노인, 아이와 같은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 외에 종양 환자 역시 복용 금지였다. 그래서 양요한은 수시로 1년 전 지아의 종이처럼 창백한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뭐가?”“그냥 사모님이 그동안 몸이 별로 좋지 않은 거 같아서 약을 배척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괜찮으시면 됐습니다.”생각하다 양요한은 한마디 덧붙였다.“그동안 사모님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시고, 어떤 이상이라도 있으면 얼른 저에게 연락하세요.”“그래.”지아는 발신자의 이름을 놓치지 않았다. 양요한.‘남자인 것 같은데, 왜 날 피해서 전화를 받는 거지?’‘그러나 이 별장의 부지면적과 인테리어를 보면 가격이 만만치 않았으니, 이도윤은 돈이 꽤 많은 사람인 것 같아.’‘이 남자는 회사의 고위층일 수 있으니 중요한 고객에게 연락하는 것도 정상이겠지?’이때의 지아는 아직도 도윤의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비록 마음속에 의문이 있었지만, 시간이 많았으니 그녀는 천천히 답을 찾을 것이다.지아는 별다른 생각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별장을 참관하기 시작했다. 이 집의 인테리어에서부터 모든 장식품까지,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설거지를 마치고 손에 오이 하나를 들고 씹으면서 말했다.“당연하
밤이 깊어지자, 아주머니는 일찍 돌아갔고 별장에는 지아와 도윤 두 사람만 남았다.“안 졸려?”지아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하나도 안 졸려. 그냥 드라마 좀 보고 싶어서 그래.”사실 지아는 어색함을 느낄 뿐이었다. 비록 두 사람은 이미 결혼한 부부였지만, 지금 그녀에게 있어 도윤은 여전히 낯선 사람이었기에, 그와 친밀한 접촉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색했다.도윤은 그녀가 긴장해하는 것을 보고 하나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좋아, 그럼 같이 있어줄게.”지아는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도윤은 옆에서 공무를 처리하며 노트북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다.가끔 지아는 도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금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 위의 불빛은 노란 빛을 드리우며 그의 차가운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었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검은색 실크 잠옷은 질감이 아주 좋았고, 심지어 불빛 아래에서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그가 낀 안경까지 밝게 비추었다. 그는 길쭉한 중지로 가볍게 안경을 위로 밀었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목소리는 낮고 듣기 좋았다.“왜 그래?”남자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지만. 지아는 왠지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목이 탔다.“아, 아무것도 아니야.”하지만 도윤은 이미 노트북을 내려놓았다.“목이 마른 거야? 아니면 배고픈 건가? 저녁에 별로 먹지 않은 거 같은데, 야식해 줄까?”지아는 큰 눈을 깜박거리며 도윤을 바라보았다.“정말 요리할 줄 아는 거야?”전에 아주머니는 말을 아주 과장하게 했기에 그녀는 아주머니가 일부러 자신에게 도윤을 어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도윤은 이미 소매를 걷어붙였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다음, 도윤은 긴 다리를 내디디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주방에서는 곧 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지아는 남자가 기껏해야 자신에게 파스타를 만들어 줄줄 알았지만,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마치 미슐랭 셰프와도 같았다.번쩍이는 불빛 속에
지아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닭발 맛있어 보인다. 먼저 먹어볼게.”그녀가 집기도 전에, 도윤은 재빨리 뼈가 없는 닭발 하나를 그녀에게 먹여주었다.“맛있어?”먹자마자 달콤새콤한 향이 입안에서 퍼졌다.익숙한 맛이 혀끝에서 위로 전해졌고, 오랫동안 먹지 못한 맛에 지아는 매워서 혀를 내밀며 레몬물을 마셨다.“그렇게 매워?” 도윤이 얼른 물었다.“조금 매운데 맛있어.” 지아는 매워서 귀까지 빨개졌지만 여전히 먹으려고 했다.도윤은 옆에서 닭발의 뼈를 발라주고 있었지만, 지아가 먹는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천천히 먹어.”“너무 맛있어. 이 요리 솜씨로 가게 하나 차려도 될걸.”지아는 물을 마시면서 도윤을 칭찬했다.도윤은 웃으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아무나 자신이 만든 매운 닭발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지아는 오랫동안 먹지 않아서 그런지 아무리 매워도 꾸준히 물을 마시면서 먹었다.그녀는 혼자 뼈를 바르는 속도가 너무 느렸지만 도윤은 아주 빨랐다.남자가 건네주지 않아도 지아는 이미 머리를 내밀었고, 입을 벌려 도윤의 손에 있던 닭발을 성공적으로 흡입했다.순간, 도윤은 멍해졌다.방금 지아는 너무 빨리 먹어서 입이 그의 피부에 닿았다. 비록 일회용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그 촉감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마치 깃털이 그의 마음을 살살 간지럽히고 있는 것 같았다.“두근두근.”그의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지아는 자신이 마른 장작에 불을 지핀 것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지아를 바라보는 도윤의 눈빛은 마치 지아가 접시에 있는 닭발을 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달콤하고 매콤해서 그는 그녀를 한입에 삼키고 싶었다.그러나 그는 지아가 여전히 자신을 알아가고 있는 단계에 처했을 뿐, 자신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숨을 깊이 쉬더니 그는 충동을 애써 참았다.‘충동하면 안 돼, 지아가 놀랄 수도 있어.’지아가 그를 보기도 전에, 도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과일 좀 썰어 줄게.”지아
지금의 지아는 도윤과 이혼하기 전과 많이 비슷했다. 그때의 그녀는 순진하고 해맑았으며 매일 희망을 품고 살아갔다.아무리 자질구레한 일 때문에 골치가 아파도, 지아의 웃는 얼굴을 보면 도윤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그가 무심코 한 고백에 지아는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를 보고 있으니 그녀도 참을 수 없었다.지아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체리가 참 크고 다네.”“좋아하면 됐어.”도윤은 아주 바쁜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었지만, 그는 별로 먹지 않았고, 지아에게 뼈를 발라준 다음 또다시 노트북을 가져와 업무를 처리했다.지아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참, 아직 네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데, 평소에 하는 일이 뭐야?”“매니지먼트.” 도윤은 간단하게 대답했다.“어쩐지 이렇게 바쁘더라니.”그녀는 도윤이 업무를 빌어 주의력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지아는 그렇게 귀여웠으니 그는 자신이 욕망을 참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지아는 혼자서 닭발 한 접시를 다 먹은 다음 또 많은 과일을 먹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도윤이 엄숙한 표정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체리를 그의 입에 가져다주었다. “이…… 이거 좀 먹을래?”예전의 지아도 자주 도윤에게 먹을 것을 먹였기에, 도윤은 보지도 않고 체리를 먹었다.혀는 무심코 지아의 손가락을 스쳤고, 그녀는 쑥스러워서 작은 얼굴을 붉히더니 어쩔 바를 몰랐다.“나 너무 많이 먹은 거 같아. 올라가서 소화 좀 할게.”마침 지아도 배가 불러서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얼른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러나 그녀는 뒤에 있는 한 쌍의 눈이 안경을 통해 불타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사실 오늘 하루의 체험은 꽤 좋았다. 도윤의 상냥함과 친절함은 모든 기억을 잃은 그녀의 불안감을 잘 달래주었다.그는 그녀를 공주처럼 아끼고 사랑했다.개봉하지 않은 샴푸조차 지아가 좋아하는 냄새였고, 그녀는 거품을 만들며 공기 속에는 달콤
이 댓글을 보자, 지아는 정신을 차렸다.오늘 지아가 깨어난 후,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와 도윤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도윤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이 모든 것은 마치 완벽하게 포장된 선물과 같았고, 겉으로는 아무런 흠도 없어 무척 정교했다.‘아이를 잃은 건 뜻밖의 사고라 쳐도, 내 손은 또 누구 때문에 다쳤을까?’지아는 샤워할 때 자신의 몸에 많은 상처와 흉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었지만, 가지에 긁힌 찰과상이나 넘어져서 생긴 상처 같았다.그녀의 손바닥도 온통 굳은살이었다. 그녀의 몸매는 아주 아름답지만, 야위거나 연약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근육까지 있었다. 상처는 최근에 생긴 것이었고, 헬스장에서 오랫동안 운동한 결과였다.이것은 도윤이 말한 자신이 가정주부란 이미지에 부합되지 않았다.가장 중요한 것은 지아의 핸드폰에는 단 몇 개의 연락처만 저장되어 있었는데, 도윤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호원들의 전화였다. 게다가 핸드폰도 새것이라 어쩌면 번호까지 새로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지아가 기억을 잃은 것처럼, 그녀의 과거는 마치 깨끗이 지워진 것 같았고, 조금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지아는 즉시 경계하기 시작했다.“늦은 시간에 뭘 보고 있어?”이때 한 손이 그녀의 등을 두드렸고, 지아는 놀라서 재빨리 화면을 잠근 후 휴대전화를 베개 밑으로 숨겼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소설 보고 있었어. 왜, 널 방해한 거야?”남자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고, 지아는 그의 뜨거운 가슴을 느꼈지만, 등에는 오히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이런 느낌은 마치 공포소설의 결말에서, 살인자가 뜻밖에도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과 같았다.지아는 긴장해서 숨까지 죽였다.그러나 도윤은 그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몸에 힘주는 것을 느끼자, 그는 지아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아니야. 불 끄고 핸드폰 보면 눈에 안 좋으니까 이제 그만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