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이예린은 분명 임시로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었고, 밖에는 틀림없이 누군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지아는 매우 조급해했지만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임신했기에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 더욱 안전했다.‘이도윤이 총에 맞은 것일까?’이렇게 생각하던 중, 펑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어둠을 뚫고 지아의 볼을 스치더니 그녀 뒤에 있는 옷장에 박혔다.죽음과 어깨를 스친 지아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더니 몸은 벼락에 맞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바로 이때, 지아는 멀지 않은 산비탈에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저격총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는 사격 거리의 제한을 받았고, 지아는 총을 쏜 그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었고, 키는 훤칠했으며, 가면 아래의 눈은 지아와 눈을 마주쳤다.지아는 즉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전효 씨?”남자는 말을 하지 않고 지아를 바라보더니 돌아서서 숲속으로 사라졌다.‘틀림없어, 이 사람이 바로 사라진 지 오래된 전효 씨야.’그들은 섬에서 한동안 같이 지냈기에, 지아는 사람을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전효 씨라면 총알이 빗나갈 리가 없을 텐데, 방금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어!’전효는 이런 방식으로 지아에게 앞이 위험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지아는 몇 걸음 물러서더니 서둘러 이 방을 떠났다.뒤에 있는 진환을 보자 지아는 재빨리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지아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이마에 땀까지 난 것을 보고 진환은 서둘러 하던 일을 멈추었다.“사모님, 왜 그러세요?”“누군가,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해.”그녀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만약 온 사람이 전효가 아니었다면, 지아는 지금쯤 이미 시체로 됐을지도 모른다.다행히 이번에 상대방의 목적은 이예린을 데리고 떠나는 것이어서, 지아도 여기에 올 줄은 전혀 몰랐다.전효의 그 총알은 지아에게 그녀는 이미 찍혔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조율의 일은 확실히 수상해. 처음부터 내가 죽기를 원했던
‘그럼 전효 씨가 용병인 건가?’‘그가 섬에 숨긴 무기는 또 뭐지?’진환은 서둘러 지아가 총에 맞을 뻔한 일을 보고했고, 도윤은 재빨리 지아에게 다가갔다.“어디 다친 곳은 없어?”지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들이 처음에 날 쏜 다음, 난 즉시 숨었어. 그들의 목적은 아마 이예린을 호송하는 것이라서 더는 날 공격하지 않았고.”“이곳은 이미 안전하지 않아. 진 비서, 즉시 지아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그 사람들이 만약 리조트에 폭탄이라도 설치했다면, 폭발한 순간, 그들은 도망갈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사모님, 어서 가시죠.”지아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나…….”“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아. 나중에 시간 내서 너와 얘기할게. 지아야, 이 사람들은 간단하지 않아, 난 이것밖에 말해줄 수 없어. 만약 그들이 정말 널 겨냥하고 있다면, 일은 아주 복잡해질 거야.”도윤은 매우 엄숙했다.“하지만 안심해, 지금 넌 여전히 안전하니까. 그들의 현재 목표는 예린을 데리고 떠나는 거야. 요 며칠 난 너에게 다른 안전한 곳을 찾아줄 테니까, 진 비서, 얼른 지아 데리고 떠나.”지아는 떠나려 했지만, 도윤이 손을 줄곧 뒤로 숨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녀의 눈빛은 카펫에 떨어졌는데, 새빨간 핏자국을 발견하였다.“다쳤어?”도윤은 시선을 회피했다.“별일 없어.”지아는 즉시 도윤의 손을 잡아당겼는데, 그의 손바닥에 날카로운 칼에 베인 흔적이 있는 것을 보았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진환은 얼른 소리쳤다.“의사 불러오겠습니다!”“됐어, 이곳은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니 먼저 떠나.”도윤이 재촉했다.지아는 그의 손바닥의 상처를 바라보았는데, 머릿속은 문득 자신이 피를 흘리던 그날을 떠올렸고, 감정없이 대답했다.“어.”‘이도윤이 다친 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나와 그 남자는 이미 끝났어.’지아는 결연히 떠났고, 심지어 뒤돌아보지도 않았다.옆에 있던 두 형제는 참지 못하고 탄식을 했다. 이렇게 긴 상처는 말할
안전을 위해서 지아는 헬리콥터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소계훈이 그녀를 맞이했는데, 지아가 도윤과 화해했는지에 대해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도윤이랑 얘기해 보니까 어때?”소계훈의 관심을 갖는 모습에, 지아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많이 괜찮아졌어요, 아빠. 이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하루 종일 같이 있었잖아요.”“그럼 됐어. 난 네가 도윤과의 사이가 틀어질까 봐 걱정이야. 지금 뱃속의 아이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 너와 텔레파시가 통할 거야. 가정이 화목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법이지.”소계훈은 웃으며 지아를 데리고 그의 최신 작품을 보러 갔는데, 그것은 나무로 만든 아름다운 침대였다.“봐봐, 이 침대를 내가 며칠이나 만들었는데, 마침내 성공했어.”작은 침대의 네 모서리에는 귀여운 동물이 조각되어 있었고, 잘 닦여서 아이들이 물어도 다칠 리가 없었다.침대 위에는 방울까지 걸려 있어 무척 정교했고, 육아용품점에서 파는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아빠, 손재주가 정말 좋으신 거 같아요.”소계훈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비록 외할아버지인 내가 지금 아무런 지위도 없고, 아이들에게 물질적인 것을 가져다줄 순 없지만, 정신적인 수요에 대해 대대적으로 만족해 줄 순 있지. 넌 쌍둥이를 임신했으니까, 나도 아기 침대를 특별히 크게 만들었어.”“너무 좋아요. 그럼 난 먼저 아이들 대신해서 외할아버지한테 고맙다고 인사할게요, 그런데 아빠,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외할아버지를 언급하자, 때 지아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떠올렸다. 그때 변진희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소계훈조차 자신의 아이가 바뀐 것을 발견하지 못했단 말인가?소계훈은 작은 상자에서 여러 개의 나무 장난감을 꺼냈다.“이 땡땡이를 좀 봐, 특별히 두 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두 아이가 침대에 누워 함께 놀 수 있어. 솔직히 말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나는 삶에 대한 희망이 조금도 없었어. 너만 아니었어도 난 버티지 못하
백채원은 지금 확실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흥분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였다.바로 얼마 전, 그녀의 부하가 도윤의 차를 미행했는데, 그가 한 별장에 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이씨 가문의 산업이 아니었고, 밖에는 많은 경호원들이 있었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이곳에 사는 사람이 지아란 것을 알 수 있었다.‘결혼 전날 밤, 도윤이 뜻밖에도 전처의 집에 찾아갔다니!’‘대체 나더러 어떻게 참으란 거지!’‘소지아, 네가 이렇게 나온 이상,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날 밤, 백채원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도윤은 달랐다. 그는 떠나지 않았는데, 설사 지아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더라도 도윤은 기어코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하룻밤을 지새웠다.달빛은 도윤의 온몸에 쏟아졌고, 옅은 빛을 빌어 지아는 그의 붕대를 감은 손을 보았지만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지아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깊이 잠들었다.도윤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지아의 곁에 누워 지난날 그녀와 함께 한 모든 것을 회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 어긋났을까? 두 사람은 지금 결국 다른 길에 들어섰다.두 사람의 관계가 아무리 위태로워도, 도윤은 거미줄처럼 가는 연결선을 끊고 싶지 않았다.얼마 자지 못했지만, 날이 밝아왔고, 도윤은 꿈속에 빠진 지아를 보면서 부드럽게 그녀의 미간에 키스를 하고서야 떠났다.해가 동쪽에서 뜨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만물은 부드러운 햇빛을 받으며 점차 밤의 피로를 가셨다.이때, 별장 앞에 나타난 한 사람은 작은 정원의 평온함을 깨뜨렸다.“잘못 찾아왔어요, 이곳은 성이 소씨인 사람이 없다고요!” 경호원의 엄숙한 목소리가 울렸다.도윤은 전에 그 어떤 낯선 사람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특별히 분부한 적이 있었다. 비록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단정하게 차려입었지만, 확시라도 지아에게 무슨 일 생긴다면 그들은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양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에는 여전히 상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난 소지아 아가씨의 친구인
소계훈은 당황함을 감추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방금 다듬은 꽃가지를 쓰레기통에 버렸을 뿐이야.”말하면서 그는 찢겨진 청첩장을 덮어버리기 위해 책상 위의 꽃가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어르신, 이런 일들은 저희에게 맡기시면 돼요.”“괜찮다, 많이 움직여야 빨리 회복하지, 참, 지아는 깨어났나?”“아직이요, 아가씨는 요즘 잠이 많으셔서 가끔 11시까지 주무시곤 해요.”소계훈은 생각에 잠겼다.“좀 더 자는 것도 나쁘진 않지. 참, 나 갑자기 생각났는데, 오늘이 내 오랜 친구의 생일이거든? 그러니 핸드폰 좀 빌려주면 안 될까? 그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은데.”미연은 단순하고 착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고 바로 소계훈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여기요, 어르신.”소계훈은 번호를 누른 다음, 한쪽으로 걸어갔는데, 미연은 자신이 들으면 안 될 거 같아 역시 한쪽으로 물러섰고, 수시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도윤은 소계훈으로 하여금 최근 바깥의 그 어떤 기사도 알게 해선 안된다고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그냥 친구한테 전화하는 거니까 괜찮겠지.’그러나 소계훈의 안색은 점점 더 보기 흉해졌다. 2분 후, 소계훈은 몸을 돌려 핸드폰을 미연에게 돌려주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아침 먹으마.”“네, 어르신.”그러나 소계훈은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강인한 발걸음으로 차고로 갔다.매일 이 시간에 기사는 시장에 가서 장을 봤는데, 기사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소계훈은 뒷좌석으로 숨어들었다.소계훈은 마침내 지아와 도윤이 왜 그로 하여금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가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런 기사를 볼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어쩐지 불쌍한 내 딸이 우울해져서 예전처럼 웃지 않더라니.’그들 사이에는 작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도윤이 변심했던 것이다.소계훈은 가슴속의 분노를 억지로 참았고, 그는 지금 오로지 딱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그는 이대로 참지 않을 것이고, 지아를 대신해서 도윤에게 똑똑히 물어볼 것이다!
소계훈은 문득 몇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비록 도윤이라는 사위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그가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 소계훈은 바로 화를 냈다.그는 귀한 딸이라곤 지아밖에 없었으니 또 어떻게 아무에게 쉽게 맡길 수 있겠는가?그러나 지아는 끊임없이 소계훈을 설득했고, 도윤은 그녀가 본 남자들 중 가장 좋은 남자라며 절대로 그녀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아는 또 결혼식 따윈 상관없으니 두 사람이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자신이 평생 얻을 수 없는 진정한 사랑, 그리고 지아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희망에 소계훈은 마침내 동의했다.그는 자신이 마음 약해져서 내린 결정이, 자신의 딸에게 아무런 명분도 가져다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소지아가 바로 이도윤의 아내라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없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말 우습군, 지금 이도윤은 이 여자와 결혼할 일을 전 세상에 알리고 있다니.’그리고 소계훈은 지아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지아는 그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결국 무엇을 얻었지?’‘자신의 오른손까지 부러뜨렸어.’휴양이란 핑계로 도윤은 사실 소계훈과 지아를 평생 감금하고 싶었다.소계훈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안색이 매우 보기 흉했다.“회장님, 이것은 이미 결정난 일이니, 그냥 돌아가시죠.” 비서는 진심으로 충고했다.하지만 소계훈은 이미 차에서 내렸다.“주 비서, 자네가 나를 이렇게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네. 이제 돌아가 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단지 이도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거든.”주 비서는 이 상황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그는 이미 새로운 직장을 찾았는데, 시간을 보니 이미 많이 늦었고, 그는 지금 반드시 떠나야 했다.비서는 지아의 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꺼진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고 한숨을 쉬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소계훈은 사람들이 오가는 홀에 서서 오직 낯설다고만 느꼈다.2년 넘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소계훈은 그
미연은 그전의 일을 그대로 보고했다.“지금 보면, 어르신은 일부러 침착한 척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오기 전에 어르신은 심지어 무언가를 찢고 있었는데.”미연은 더러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통을 바닥에 쏟았는데, 빨간 청첩장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이게 뭐야?”미연은 얼른 청첩장을 다시 맞추었다.“큰일이에요. 어르신께서 청첩장을 보셨어요. 참, 방금 또 제 휴대전화를 빌리셨는데, 그 후에 바로 방으로 돌아가셨고요. 어르신 설마 이미 결혼식장에 가신 건 아니겠죠?”지아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언제 적 일이야?”“30분 전에요.”“큰일이야, 차 대기하라고 해, 내가 곧 갈 테니까. 우리 아빠 꼭 막아야 해!”소계훈은 이미 2년 넘게 바깥의 사람들을 접촉하지 않았는데,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현재의 상태에서 변진희의 죽음, 그리고 도윤의 배신 등 일을 알게 된다면, 소계훈은 틀림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지아는 재빨리 도윤에게 연락했는데, 결혼식 때문에 너무 바쁜지, 그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그녀는 또 서둘러 진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역시 아무도 받지 않는 상태였다.지아는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백채원 이 여자 정신 나간 거 아니야? 이도윤과 곧 결혼할 거면서 대체 왜 이런 징그러운 일을 꾸미려는 거지?’미연은 줄곧 자책했다.“죄송해요, 아가씨.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꼼꼼하게 상황을 살펴서 이 일을 일찍 발견했다면 어르신도 나가지 않았을 텐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는 정말 백 번 죽어도 할 말이 없어요.”“이건 너와 아무 상관이 없어.”자신과 도윤 사이의 일은 소계훈조차 몰랐으니 미연은 또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미연은 두 손으로 지아의 손을 꼭 잡았는데, 그녀의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가득 찼다.“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지금 아가씨는 아직 임신 중이시잖아요. 너무 흥분하시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잊지 마세요.”“응, 긴장하지 않을게.”지아
소계훈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지만 도윤을 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백정일과 변진희도 아직 참석하지 않았다.그가 아는 바에 의하면, 백정일에게는 딸이 하나밖에 없었다.‘그 사람은 자신의 외동딸이 결혼을 하는데 왜 아직도 오지 않은 거지?’오히려 백씨 집안의 어르신은 무청 늙어 보였고 얼굴에는 기쁨이 조금도 없었다.몇 바퀴를 돌자 소계훈은 좀 힘이 들었다. 그는 잠시 쉴 곳을 찾으려고 했지만, 옆의 레저 구역에서 전해오는 한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채원 언니, 소지아가 정말 올까요?”소지아란 세 글자는 소계훈의 주의를 끌었고, 그는 그 방향을 따라 바라보았는데, 웨딩드레스를 입고 휠체어에 앉은 백채원을 발견했다. 그녀는 문 앞에 걸어둔 거대한 사진 속의 여자와 똑같았다.‘이 아이가 바로 도윤과 결혼하려는 사람인가?’소계훈을 놀라게 한 것은 백채원이 뜻밖에도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전에 머릿속에 내연녀 등 좋지 않은 말들이 많이 떠올랐지만, 백채원이 장애인인 것을 보고 그는 마음속의 분노가 좀 줄어들었다. ‘어쩌면 이 일이 내가 생각한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어. 이 속에 무슨 오해라도 있는 건가?’소계훈은 자신보다 어린 여자아이를 귀찮게 할 리가 없었기에, 그는 여전히 도윤이 나타난 후 똑똑히 물어보려 했다.백채원의 안색은 너무나도 안 좋았는데, 지아를 언급하자, 그녀는 더욱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소지아가 오든 안 오든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어. 앞으로 내가 바로 명실상부한 이씨 가문의 사모님이니까.”“그래요, 소지아는 이미 아무것도 아니죠.” 여금청은 이제 많이 똑똑해졌는데, 백채원 앞에서 더 이상 지아를 심하게 의논하지 못했다.백채원은 부모님이 죽은 후 성격이 크게 변했고. 그녀는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으며 얼굴이 일그러졌다.“그 천한 년, 이혼하고도 도윤 씨를 꼬시다니. 난 절대로 그 여자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채원 언니, 어쨌든 지금 대표님과 결혼할 사람은 언니지 소지아가 아니잖아요. 그럼 언니는 이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