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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김나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3-09-15 14:47:51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산 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

목에 두른 숄만 해도 수백만 원을 호가했고, 점원은 백채원을 알아보고 얼른 맞이했다.

“사모님, 오늘은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으셨네요?”

“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착용해 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

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승리에 도취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백채원을 무척 아낀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공식적인 법적 아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지아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왜 하필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

백채원이 부드럽게 물었다.

“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손해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소지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뻗어 반지를 도로 빼앗아왔다.

“안 팔래요.”

“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이 반지 정말 맘에 드는데, 그래도 아는 사이니까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

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아주 간절하게.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

옆에 있던 점원이 나서서 얼른 충고했다.

“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아가씨 반지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높은 가격을 제시하실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저희 쪽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

사모님이란 호칭은 소지아의 귀에 무척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이도윤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백채원이 감히 이도윤의 아내가 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하게 했었는데.

겨우 1년만에, 사람들은 모두 백채원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소지아는 더욱 자신과 이도윤의 결혼이 그들이 꾸민 자작극이라고 느꼈다.

백채원은 소지아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소지아 씨, 얼마 원하죠?”

백채원의 득의양양한 얼굴은 정말 메스꺼웠고 소지아는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

“안 팔아요.”

백채원은 소지아의 반지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했다.

“아가씨는 지금 이미 궁지에 몰렸잖아요. 그런데도 아직 자존심 세우는 거 아니겠죠? 내가 소지아 씨라면 시원하게 손을 놓았을 텐데, 설마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정말 보기 싫다고 누군가 말해주지 않던가요?”

“백채원 씨의 말은 정말 가소롭네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다니, 이렇게 남의 것을 빼앗기를 좋아하면 아예 은행에 가서 돈을 빼앗지 그래요?”

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반지는 상자에서 날아가 공중에 멈추다 “땡그랑” 하고 땅에 떨어졌다.

소지아는 재빨리 쫓아갔고, 반지는 곧장 문 앞에 서 있는 고급 구두 앞으로 굴러갔다.

허리를 굽혀 주웠는데, 머리 위에 물방울 한 방울이 그녀의 목에 떨어져 가슴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냉담하고 매정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도윤은 들고 있는 검은 우산을 아직 접지 않았고, 빗방울은 우산 표면을 따라 그녀의 머리 위로 뚝뚝 떨어졌다.

고급스러운 블랙 울 코트는 이도윤의 몸매를 돋보이게 했다.

소지아는 물끄러미 이도윤을 바라보면서 처음 그를 본 순간을 떠올렸다. 20살의 이도윤은 흰 셔츠를 입고 햇빛이 비치는 운동장에 서 있었는데, 마치 14살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히 서 있을 것 같았다.

소지아는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털이 보송보송한 해서 마른 몸이 더욱 수척해 보이게 했다. 턱은 무척 뾰족해져서 3개월 전보다 살이 좀 빠져 보였다.

이도윤은 존귀하고 도도했지만, 소지아는 오히려 비천해 보였다.

반지를 주우려던 소지아의 동작이 그대로 멈춰 섰다.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이도윤은 발을 들어 반지를 밟으며 무표정하게 소지아의 앞을 지나갔다.

소지아는 여전히 반쯤 쪼그리고 앉아 꽁꽁 얼어버린 동상처럼 멈춰버렸다. 이 반지는 소지아의 취향에 맞춰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서 과장되지 않지만 독특한 모양을 가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반지였다.

이도윤이 반지를 끼워준 이후로, 소지아는 씻을 때 벗는 것 외에 그 어떤 장소에서도 반지를 뺀 적이 없었다.

만약 이번에 정말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면, 소지아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지아가 보물처럼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조금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였다.

이도윤이 밟은 것은 단순한 반지가 아닌, 소지아가 보물처럼 여기던 모든 지난 날들이었다.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 설명했다.

“도윤아, 왔어? 마침 내가 주얼리를 고르고 있었는데, 소지아 씨가 반지를 팔고 있더라고.”

이도윤의 냉담한 안색은 아무런 표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차가운 눈동자는 소지아의 분노를 억누르는 작은 얼굴로 향했다.

“이 반지를 팔려고?”

소지아는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고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

“응, 이 대표님은 반지 사려고?”

이도윤의 입가에 조롱이 떠올랐다.

“전에 이 반지가 너에게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 거 기억하는데. 보아하니 네 진심은 여기까지군. 마음이 없는 것은 나에게 있어 쓰레기지.”

소지아는 금방 대답하려고 했지만 위를 찌르는 화끈거리는 통증이 신경을 건드렸다. 종양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처음의 경미한 통증에서부터 지금은 가슴을 파고드는 것과 같은 통증에 이르렀다.

무척 잘 어울려 보이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밝은 백열등 아래에서 마치 하늘이 내린 선남선녀인 것 같았다.

갑자기 변명할 힘이 없어졌다. 변심한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도 그녀는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소지아는 통증을 참으며 반지를 주웠고, 천천히 카운터 쪽으로 돌아와 상자와 서류를 가져왔다.

이도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설사 아파서 기절할 것 같아도 여전히 꼿꼿한 자세와 발걸음을 유지했다.

이도윤의 곁을 지날 때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이 대표님과 마찬가지로 나도 반지를 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는데, 지금은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돌일 뿐이지.”

이도윤은 소지아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지아의 고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안색은 종잇장처럼 창백하여 마치 심한 통증을 애써 참는 것 같았다.

큰 손이 갑자기 소지아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왜 그래?”

소지아는 이도윤의 손을 뿌리쳤다.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야.”

소지아는 이도윤을 다시 돌아보지도 않고 등을 곧게 펴고 걸으며 이도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이도윤은 떠나는 소지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분명히 내가 직접 버린 여자인데, 왜 가슴이 이렇게 아프지?’

소지아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허둥지둥 가방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모든 항암 치료와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진통제와 일반 위장약만 샀다. 그 약들의 효과는 먹지 않는 것보다는 약간 나은 수준이었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방법 밖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소지아는 아버지를 위해 시도라도 해봐야 했다.”

소지아는 먼저 집에 돌아가 초라한 자신을 다시 정리하고서야 택시를 타고 반결 별장에 갔다.

1년 전, 귀국하여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었다. 십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소지아는 그 화려한 별장을 보고 생각했다.

‘잘 지내나 보네.’

방문한 목적을 설명하자, 집사는 소지아를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는 기억 속의 모습과 변함없이 아름답고 단정한 부인이 앉아 있었다.

“지아야.”

여자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지아는 도무지 엄마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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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3-09-15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0화

    소지아는 묘지에서 한참 수다를 떨다 떠났다. 더는 슬퍼할 시간이 없었고 이제부터는 방금 찍은 사진을 계속 추적할 시간이었다.아빠가 접촉할 수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회사에 있었고, 회사 직원들부터 조사하려고 할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아빠가 전에 지원했던 시골의 아이인 오정인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약간 다급하게 들렸다.“아가씨, 방금 귀국하자마자 선생님께서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괜찮으신가요?”“관심 가져줘서 고마워요. 아빠는 아직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세요.”“아이고, 소 선생님처럼 좋은 분에게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요? 그때 선생님께서 저희를 후원해 주시고 시골에서 데리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아마 지금 같은 삶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소지아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소계훈은 몇 년 전부터 빈곤한 시골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도록 지원했는데, 이예린이 만약 깊은 산속으로 유괴되었다면, 이런 이유로 아버지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정인 오빠, 혹시 우리 아빠가 지원하는 그 학생들 알아요?”“나는 줄곧 소 선생님을 대신하여 아이들과 연락해왔기 때문에, 대부분 알아요. 다만 최근 몇 년간 나도 출국해서 연락이 끊겼고요. 아가씨가 만약 어떤 도움이 필요하시면 돈이든 힘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도울 겁니다.”소지아는 한 가닥의 희망을 잡고 즉시 물었다.“나에게 사진 한 장이 있는데, 정인 오빠가 나를 도와 우리 아빠가 지원했던 사람이 맞는지 좀 봐줄래요?”“그래요.”오정인은 소지아가 사진을 보낸 지 30분 만에 그녀에게 자료를 보내왔다.사진 속의 여자아이는 눈빛이 밝고 깨끗해서 확실히 묘비의 여자애와 많이 비슷했다. 특히 한 쌍의 눈은 아주 이도윤을 닮았다.이 여자애의 이름은 조율이었고 척박한 큰 시골 출신이었다. 소계훈은 12년 전부터 조율을 후원하기 시작했고, 어릴 때부터 대학까지 성적이 우수해서 고등학교 때 국내외 최고의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조율은 국내에 남아 공

    Last Updated : 2023-09-15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1화

    그녀의 병세가 계속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건우는 약물치료를 모레부터 하기로 했다.약물치료의 부작용은 매우 많았다. 약물치료 끝나기 2주 전, 몸은 극도로 허약하고 탈모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소지아는 반드시 미리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위해 계획을 잘 세워두어야 했다.소계훈은 잠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다행히 병원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비용을 조금 더 낸 후 집으로 돌아갔다.자신과 이도윤이 살던 신혼집에서 떠나려 했는데, 약물치료 후 몸이 버티지 못할까 봐 미리 이삿짐센터를 불렀다.그 외에 온 사람은 소지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김민아였다. 정장 차림에 가방을 메고 하이힐을 신은 채 손에는 군고구마 두 개를 들고 다급히 달려왔다.김민아는 소지아를 멀리서 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지아야, 너 마침내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야! 이 언니가 오늘 금방 지난달 커미션 받았는데, 저녁에 우리 다크호스 클럽에 가서 재밌게 놀아보자. 세 발 달린 고양이는 찾기 힘들어도 두 다리 가진 남자는 널려 있잖아.”김민아는 이번 주에 남자친구를 만나느라 외국에 다녀와서 소지아의 병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다만 소지아가 마침내 단념하고 이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소지아는 웃으며 말했다.“그건 안 돼. 네 남자친구가 만약 네가 클럽에 가는 것을 알면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나 찾아와서 따질 것 같아.”“말도 마, 난 더 이상 북반구의 진정한 사랑을 믿지 않아. 원래 그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했는데, 세상에, 무슨 일 생긴 줄 알아? 그는 내가 다리 부러지도록 집 팔아서 번 커미션을 가지고 그곳에서 다른 여자랑 알콩달콩 하고 있었어.”김민아는 욕설을 퍼부었고, 더 이상 눈물을 숨길 수 없었다. 7년간의 사랑은 결국 이렇게 끝났다.소지아는 몇 마디 위로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그 엉망진창인 혼인을 생각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너 가서 난동 안 부렸어?”김민아는 소지아를 끌고 정

    Last Updated :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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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52화

    뒤돌아보지 않아도, 지아는 자신을 향한 차가운 한 줄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도 오래 기다렸답니다.”지아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키가 조금 작은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비록 그 사람은 철저히 변장한 상태였으나, 지아는 단번에 그 사람의 눈을 알아보았다.“강세라!”지아가 자신의 이름을 바로 부르는 것을 보고, 상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당신이 어떻게...” 지아를 위해 준비한 함정이 결국 자신을 묶는 족쇄가 되었음을 느낀 강세라는 자신의 목적을 되새기며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했다. 탕!총성이 울리자 강세라의 손목에 총알이 박혔고, 강세라가 들고 있던 총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골목 입구에는 훈련받은 사람들이 가득 서 있었고, 강세라는 손목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저 X을 죽여!!” 모든 상황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강세라의 부하들이 행동하기도 전에, 골목 입구 2층에서 몇 명이 뛰어내려 잽싸게 강세라의 부하들을 제압해 버렸으니 말이다. 혼란을 틈타 지아를 향해 총을 쏘려던 한 사람은 뒤에서 덮친 누군가의 일격으로 즉시 쓰러지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강세라가 데려온 여섯 명은 모두 능숙한 사람들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강세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총을 쏜 사람을 바라보았다. 골목 입구에 서 있는 그는 키가 컸으나, 역광으로 인해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차가운 시선은 강세라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남자는 느릿느릿 걸어왔고, 말 한마디 없이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를 본 지아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여긴 왜 왔어?” 도윤이 지아 옆에 서더니 자연스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도윤은 먼 길을 고생하며 달려왔고,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해 목소리가 다소 쉰 듯했다. “더 늦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다정한 두 사람을 본 강세라는 욕설을 퍼부었다.“이 더러운 X아! 감시 시하 씨를 두고 다른 남자와 놀아나?! 난 이미 네 속셈을 알고 있었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51화

    지아는 자연스레 시하의 목을 끌어안으며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둘째 도련님은 꼭 나아질 거예요. 오빠의 몸까지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요.” 시하는 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깊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내 곁에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을 거야.” 지아는 얌전히 시하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고, 두 사람은 연인처럼 낮게 속삭였다. 지아는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자,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가봐야겠어요. 맞다,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죠? 뭐 좀 사 올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사람만 무사하면 다 잘될 거예요.” “그런 일은 경호원이 하면 돼.” “어차피 병원에선 제가 도울 일이 별로 없잖아요. 오빠의 입맛은 제가 더 잘 아니까 제가 다녀올게요.” 이 말을 끝으로 지아는 시하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지아는 병원을 떠나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나서는 기척을 느꼈다. 한편, 눈빛이 변한 시하가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어. 따라가서 소 선생님을 보호해!” 병원에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아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경호원들은 지아를 따라나섰다. 지아는 고의로 시간을 끌며 강세라라는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 며칠 강세라는 질투심에 미쳐가고 있었을 것이었다. 간신히 기회를 찾아 행동에 나섰는데 강세라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지아는 근처 야시장으로 향했다.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지고 막 건너려던 순간, 멈춰 서 있던 차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지아를 향해 돌진했다.불빛도 경적도 없는, 뒤에서 덮치는 호랑이와 같은 기습 공격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할 때는 이미 차가 지아에게 근접한 상태였다. 다행히 지아는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차가 다가오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인도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어떤 사람은 가까스로 달아났고, 어떤 사람은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50화

    시언은 지아가 왜 시월의 반응을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월이를 두고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월이를 제 품에 안은 거죠. 이게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겁니까?” 지아는 차마 시언에게 냉혹한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아직은 증거를 모아야 해’ ‘이 사람들은 소시월을 너무도 아끼는 사람들이라, 늘 눈에 장밋빛 필터를 쓰고 있어.’ “아니요, 도련님은 정말 훌륭한 오빠였습니다. 저는 단지 당시 상황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그러니 조금만 진정해 보세요. 제가 시하 오빠의 다리를 고쳤듯이, 도련님의 손을 고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정말입니까?”“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시하의 다리가 이미 치료되었는데,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거죠?” 지아가 시언의 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소씨 가문을 무너뜨리려는 검은 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 말인즉슨...”지아는 그제야 모든 계획을 시언에게 말했다.“죄송해요, 시언 도련님.”“그동안 도련님도 제 의심의 대상 중 한 명이였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았던 거예요. 이런 곤경을 겪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시언은 잠시 멍하니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모든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다.그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했다. 디자인에 몰두하던 사람이 오늘 병상에 누워서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계획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큰형이 계속 많은 경호원을 대동하라고 했던 거군요. 저는 그저 형의 과민 반응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형은... 제가 정말로 사고를 당할까 봐 두려웠던 거였어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소 선생님, 그 사람은 대체 누굴까요?”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오늘 일로 약간의 실마리를 잡았어요.”“도련님, 제가 이 비밀을 말하는 이유는 도련님께서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소씨 가문은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도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49화

    지아도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한 적이 있었다. 그 칠흑같이 어둡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진흙탕 속에서, 하염없이 길을 헤매며 온몸에서 피를 흘렸으니 말이다. 지아는 수도 없이 더 이상 미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에게도 미래가 없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지아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견뎌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아는 화장실로 가서 깨끗한 수건을 적셨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천장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진 시언이 보였다.그는 그야말로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심지어 손으로 눈물을 막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형, 울지 마. 다 잘 될 거야, 진짜 다 잘 될 거야...”“다 내 잘못이야. 내가 오빠가 작품을 완성할 수 없게 만든 거야. 이번 쇼도 나 때문에 취소될 거야... 엉엉...” 오직 지아만이 아무 말 없이 뜨거운 수건을 그의 눈 위에 덮어주었다. 이 순간, 시언은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고, 그저 자신의 무력함을 가리고 싶을 것이었다. 흘러내린 눈물이 수건을 적셨지만, 그의 무력함과 방황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시언이 목젖을 움직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감사합니다, 정말.” 지아가 겨우 입을 열었다.“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시월 아가씨도 오늘 교통사고를 겪었으니, 많이 놀라셨을 거예요. 여기엔 제가 있을 테니, 여러분은 잠시 쉬세요.” “그럼 너는...” 지아가 말했다.“저는 의사잖아요. 여러분 보다 시언 도련님을 더 잘 돌볼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시언 도련님은 지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실 거예요. 잠시 시간을 갖는 게 좋은 방법일지도 몰라요.” 시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그럼 부탁 좀 할게.” 지아는 문을 닫던 찰나, 침대에서 들려오는 흐느낌을 들었다.“선생님도 가세요. 저는... 혼자 있고 싶어요.” “도련님,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는...” “예전에 시하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저도 저런 식으로 위로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48화

    지아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일이 생기면 긴장하던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빈틈없이 정리했고, 집에 시후가 있는 동안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시언의 수술이 막 끝났고, 그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지아가 도착했을 때, 시하는 시언의 곁을 지키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더 이상 팔을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다시는 디자인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팔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시언이 형은 분명히 무너지고 말 거야.’ “미안해, 오빠, 다 나 때문이야. 만약 오빠가 날 구하려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야...” 시하의 곁에는 시월이 서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작은 상처 두 곳에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으며, 그저 슬픈 표정으로 시하의 옆에 서 있었다.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너라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우리 가문에는 더 이상 불행이 있어서는 안 돼.” “소희야, 왔어?” 지아가 엄숙한 얼굴로 다가갔다.“시언 도련님은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어요?” “의사 선생님이 곧 깨어날 거라고 했어.”시하가 한숨을 쉬었다. 지아는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얼마 후에 있을 시언의 쇼를 떠올렸다.‘팔을 다쳐버렸으니,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어버렸구나.’얼마 지나지 않아 시언을 깨어났는데, 여전히 교통사고의 순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월아, 월아!!!”시월은 눈물을 흘리며 침대 옆으로 달려갔다.“오빠,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무사한 시월을 보고 나서야 시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월아,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시언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예전처럼 시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극도로 힘을 주고, 이마에 고통으로 찬 땀이 맺혔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시언이 이불 아래 자기 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내 팔... 내 팔이 왜 이래?” “오빠, 미안해 다 내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47화

    지아는 시하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먼 길을 달려온 시후였다. 가족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서둘러 돌아온 것이었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조경숙은 시후가 집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장 일어나려 했다.“우리 큰아들이 왔구나!” “사모님, 천천히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시고요.”지아가 서둘러 조경숙을 부축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찰나, 시후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니, 저예요.” “어서 들어오렴.”시후가 문을 열고 들어와 지아와 눈을 맞추며 가볍게 인사했다.“도련님.” “손님이 계셨네요.”“그래, 아주 좋은 사람이야. 시하가 데려온 친구인데, 나랑도 정말 잘 맞더구나.” 조경숙이 시하의 얼굴을 천천히 더듬었다.“우리 아들, 많이 여위었구나.” 시후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조경숙의 손길이 마치 시각 장애인처럼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시후는 조경숙의 눈을 유심히 살폈는데, 흐릿한 그녀의 눈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어머니, 눈이 왜 그래요?”“별일 아니란다. 잘 안 보이긴 하지만 말이야. 너는 좀 어때? 몸은 괜찮아졌니?” 시후는 조경숙이 외부에서 요양하다가 시력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저는 괜찮아요. 오랜만에 어머니를 뵙고 싶었던 건데,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쉬세요.” “그래, 네가 돌아오니 엄마 마음도 한결 놓이는구나.”“사모님, 저도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시후야, 그분은 우리 집의 귀한 손님이니 잘 모셔야 해. 절대 소홀히 대해선 안 돼, 알겠지?” “알겠습니다.”“이쪽으로 오시죠, 선생님.” 지아는 시후와 함께 방을 나서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지금 상황은 어때요?” “시언이는 더 이상 팔을 쓸 수 없게 되었어.” “그럼 시월 아가씨는요?”“교통사고 당시, 시언이가 월이를 감싸 안아 모든 충격과 유리를 대신 맞았더라고. 시월이는 약간의 찰과상 정도만 입었고, 다른 문제는 없어. 하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46화

    “사모님, 시언 도련님의 쇼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시월 아가씨와 시하 오빠가 도와주러 가게 됐어요.”지아가 말했다.조경숙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시언이 쇼에 문제가 생기다니요? 그리고 시월이가 도와주러 가는 건 그렇다 쳐도, 시하는 거기에 왜 간 거죠?” “사실 시언 도련님께서 시하 오빠에게 고급 맞춤 정장을 만들어 주셨거든요. 휠체어의 힘을 빌려서라도 쇼 런웨이에 서보라고 하셨는데, 세상 모든 이에게 몸이 불편하더라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물론 시하 오빠에게 용기를 주려는 목적이 컸겠지만요.” “그래도 시언이가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우리는 모두 그 아이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그 아이의 쇼장에 가길 원했어요. 비록 지금은 가문이 이렇게 산산조각 났지만요...” “다 잘될 거예요.”지아가 조경숙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요?” 임현숙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시언 도련님은 지금 병원에 있는 데다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조차 알 수 없는데...’“사모님, 당분간 그분들을 기다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시언 도련님은 작품에 아주 까다로우시잖아요. 이번에도 시하 오빠와 언제까지 수정할지 모르는 일이고요.” 지아가 부드럽게 말했다.“그것도 그러네요. 그나저나, 우리 집 사람들을 잘 아시는 모양이네요?”조경숙이 중요한 점을 포착했다. 자료를 여러 번이고 검토한 지아가 어찌 이런 정보조차 모를 수 있겠는가. 지아가 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네, 저는 며칠 동안 시하 오빠와 함께 있었잖아요. 모두 오빠가 이야기해 준 내용이에요.” 옆에 있던 임현숙이 헛기침을 했다.“소 선생님, 아직 시하 도련님과 확실한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데,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닌가요? 아직 소씨 가문의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임 집사, 손님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사모님, 저는 단지 소 선생님께서 자신의 신분을 똑바로 알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벌써 소씨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45화

    한참을 돌아다닌 후, 지아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상황은 좀 어때요?”시하의 목소리에는 다소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별로 좋지 않아. 내가 도착했을 때 둘째 형이 팔을 심하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어. 월이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는데, 아직도 의식이 없고.]지아가 미간을 찌푸렸다.“하필 팔이라니, 디자이너가 팔을 못 쓰게 된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시하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가 예전에 다친 곳은 발이지 않은가. [운전자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는데, 예전과 마찬가지로 가해 운전자가 마약을 한 상태였대. 돈도 없고, 결혼도 못한 마약 중독자였던 거지. 약물을 과다 복용한 채로 도로를 질주한 모양인데, 체포된 후에 경찰서에서 목숨을 거뒀어. 이제 증거가 없어서 막다른 길에 놓인 셈인데... 어쩌지?]지아는 시하의 억눌린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오빠, 조급해하지 마세요. 아니면 제가 가서 한번 볼까요? 어쩌면 시언 도련님의 팔을 되살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참, 네 의술이라면 문제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머니는...”시하는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여긴 안전할 거예요. 경호원들과 무무를 남겨둘 거거든요.” 시하는 지아가 왜 무무를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냥 세 살짜리 아이라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비록 시하도 원치 않았지만, 상황이 불투명한 데다가, 어둠 속에 있는 상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닌 꼴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둘째 형의 팔이 그 지경이라면, 더 나은 방법이 없겠어.’ 지아가 전화를 끊고 무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무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지아의 옷깃을 꽉 잡았는데, 아무래도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했다. “엄마는 반드시 조심할 거야.”“아가, 너는 원봉 아저씨와 함께 있어. 그분이 널 지켜주실 거야. 엄마는 금방 다녀올게.” 지아는 떠나기 전에 또 원봉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게다가 조경숙에게 작별 인사를 할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44화

    조경숙이 명담의 손등을 두드렸다.“명담아, 네가 나를 걱정해 주는 건 잘 알지만, 지난 6개월간 그렇게 많은 의사들이 왔다 갔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어. 내 눈은 아마...” “큰어머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꼭 좋아지실 거예요.”“우선 앉아서 물 한잔하세요.” 조경숙이 물잔을 받아서 들었다.“명담아, 이렇게 자주 와줘서 늘 고맙게 생각해. 네가 없었으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구나.” “큰어머니, 큰어머니를 돌볼 수 있다는 건 제 복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부끄럽습니다.”지아는 조용히 옆에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명담에게는 의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조경숙을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가식적이지 않았다. ‘만약 저게 연극이라면, 정말 대단한 수준인 거야.’ 조경숙은 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옆에 있던 지아와 무무의 윤곽을 보았다. 그녀가 지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소 선생님, 이리 와보시겠어요?” “사모님.”지아가 얌전히 조경숙의 곁에 섰다. “사양하지 말고 앉으세요. 부디 여기가 소 선생님의 집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전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정말 즐거웠거든요.”“참, 시하는 어디 갔나요?” 지아는 조경숙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핑계를 찾았다.“시하 오빠는 객실에서 쉬고 있어요. 제가 사모님 곁에 있어 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저랑 여기저기 좀 걸을까요? 시하는 저녁 먹을 때쯤 깨우면 되니까요.” 조경숙의 얼굴에는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가득했지만, 그녀의 지나치게 젊어 보이는 얼굴은 지아가 다소 어색함을 느끼게 했다. 심지어 조경숙이 말을 걸 때마다, 나이가 많지 않은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지아는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조경숙의 얼굴에는 인위적인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일부 부잣집 사모님들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얼굴에 갖은 노력을 들이지만, 그런 얼굴은 지속성이 훌륭하지 않아서 단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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