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소씨 가문이 율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상상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씨 집안의 재력에 경탄했다.‘수천 억을 들고 도망을 갔다고?’“그럼 당신들과 연락한 적은 없나요?”“응, 그녀는 떠나기 전에 모든 가족을 차단했어. 그래서 우리는 그녀와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고.”“그럼 돈은요? 그녀는 돈을 써야하지 않겠어요? 이를 통해 그녀의 위치를 판단할 수 없나요?”소시후는 고개를 저었다.“그게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두 달 전, 율이는 소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떠날 때 온 가족이 그녀가 남긴 난장판을 수습하고 있었어. 우리는 율이를 너무 핍박하여 그녀가 더욱 미친 일을 할까 봐 먼저 그녀를 내버려뒀어. 바깥의 무서움을 알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하지만 그녀가 떠나자마자 일부러 종적을 감추고 신속하게 돈세탁을 해 그녀의 계좌에 있는 수천억의 자산을 이전할 줄은 몰랐어. 우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율이는 이미 A시에 도착했고, 계좌는 텅 비어 있어 소비 기록으로 그녀를 찾을 수 없었던 거야.”지아는 들을수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이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도망치는 것 같지가 않고 마치 누군가 일찍 계획한 것처럼 느껴지네요. 짧은 시간에 돈세탁을 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전문적인 팀이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행방을 숨길 수 있었다니. 나는 율이 아가씨가 다른 사람에게 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우리도 이런 추측을 하고 특별히 그 남자의 가족을 찾아갔는데, 그의 국적과 신분이 전부 가짜란 것을 발견했어.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몰라. 가족은 이미 한달 내내 율이를 찾고 있었고, 나도 특별히 A시로 날아온 거야. 왜냐하면 그녀는 전에 이 나라가 너무 좋아서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거든. 그러나 내가 여기에 온지 일주일이나 넘었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소시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우리 가족은 모두 안달이 났어. 가능한 한 빨리 율이를 찾아야 하는데, 얘도 참…….”
소시후는 사방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사실대로 말하였다.“사실 맨처음에 독충은 천웅이란 의학조직이었어. 천하 사람들의 영웅이란 것을 의미하거든. 이 조직을 건립하는 초심은 과학연구를 위해, 인류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어. 각국 최고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했는데, 바로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병증을 공략하기 위해서야. 예를 들면 암, 에이즈, 백혈병, 광견병 및 각종 바이러스로 인한 병증들. 그러나 후에 조직 내부에서 점차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했지.”“어떡해요?”“어떤 실험은 아주 잔혹했거든. 실험은 보통 임상적인 시험이 필요한데, 그것은 한두 명의 사람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은 고가로 자원자를 모집했고 또 그들더러 자발적으로 생사 협의서에 사인하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어. 그렇게 실험체가 부족하면 일부 특수한 경로를 빌어야 하지.”여기까지 말하자, 소시후는 지아를 한 번 보았다.“양심을 어기고 불법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상품으로 판매하여 이윤을 얻는 조직이 많다는 거, 알고 있어? 이런 경로를 통해 구매한 사람들은 강한 생존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 거야.”“일부 사람들은 생존욕이 있는 사람에게 실험을 하는 것은 양심이 없고, 살인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어. 다른 일부 사람들은 좋은 결과만 있다면 이 사람들의 희생은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가치가 있다고 믿었거든.”“이로 인해 양쪽에서 격렬한 다툼이 벌어진 후, 일부 극단적인 학자들은 천웅에서 나와 그 후 다시 독충이라는 조직을 세웠지. 천웅과 독충은 마치 해와 달 같았고, 행동 방식도 확연히 달랐지. 심지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변하면서, 사람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한 거야.”지아는 속으로 감탄했다.“이런 일이 있었군요.”“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독충은 비록 많은 국가의 정부 요인들과 이익 관계를 형성했지만, 이 나라에서는 줄곧 엄격히 단속하며 금지하고 있
본가로 돌아온 도윤은 줄곧 근심으로 가득 찼지만, 지아를 본 순간, 눈빛은 부드러워졌다.“돌아왔어?”지아는 전의 일로 따질 겨를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도윤을 향해 걸어갔다.“백채원은 어떻게 됐어?”“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독충의 사람이 한 거야?”“아직은 확신할 수 없어. 난 그녀와 만나서 아주머니에 관한 일을 묻고 싶었는데, 보기도 전에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그러나 그녀는 죽지 않았을 거야.”지아가 물었다.“왜?”“만약 상대방의 목적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면, 현장에 있던 그녀는 이미 마지막 숨만 남은 상태였고, 그들은 어떻게든 그녀를 죽일 수 있었지. 상대방이 이렇게 큰 힘을 들여 백채원을 데리고 간 것은 분명히 그녀의 목숨을 원하는 게 아니야.”지아도 미간을 찌푸렸다.“근데 왜 백채원을 데려간 거지?”‘만약 나 때문에 엄마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백채원은 또 무엇 때문일까?’도윤은 피곤한 미간을 비볐다.“적어도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지. 아주머니가 갑자기 발병한 것은 백채원과 관계가 있고, 상대방은 그녀가 날 만나 무엇을 폭로할까 봐 이런 방법을 생각해낸 거야.”지아는 소파의 등받이를 세게 두드렸다.“도대체 누구지! 이렇게 하면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처음에 지아는 주모자가 이예린이라 확신했지만, 지금 이런 일들이 발생하니 그녀는 상대방의 의도를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설마 상대방의 목적은 이도윤과 나의 가족들을 모두 소멸시키려는 건가?’도윤은 표정이 엄숙했다.“아직은 판단할 수 없어.”“아저씨는 이 일을 알고 있는 거야?”“이미 숨길 수 없는 일이야. 그것은 백씨 집안의 차였으니, 중대한 교통사고로 경찰은 이미 그들에게 통지했어. 아마 어르신과 아저씨도 모두 알고 있을 거야.”말하는 사이, 도윤의 전화가 울렸는데 바로 어르신이었다.지아는 도윤과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어르신의 화가 난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도윤은 전화를 끊었다.그는 손을 뻗어 지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난 그녀들의
생김새가 다를 뿐 아니라, 채나는 성격도 지윤과 정반대였다.어린 소녀의 눈에는 지아에 대한 적의가 가득했다. 아이는 비록 어리지만 모두 다 알고 있었다.주은청은 즉시 설명했다.“죄송해요, 아가씨. 채나는 성격이 소심해서 낯선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지아는 이미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비록 백채원에 대한 원한을 한 아이에게 화풀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채나가 자신을 이렇게 싫어하는 것을 보니, 지아도 더는 그 아이를 달래고 싶지 않았다.사람들의 관계는 무척 이상했다. 지윤도 분명히 백채원의 아이였지만, 지아는 첫눈에 친근함을 느꼈다.“괜찮아, 아이일 뿐이니까. 근데 넌.”지아는 주은청의 다리를 바라보았다.“다리는 괜찮은 거야?”유람선에 있을 때 전효는 그녀를 향해 총을 쏘았다.주은청은 살짝 웃었다.“아가씨의 관심, 정말 고마워요. 그때 급소를 다치지 않았고, 이미 몇 달 동안 휴양했어요. 비록 부상당한 신경은 아직 천천히 회복해야 하지만, 지금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에는 영향이 없어요.”보아하니 전효는 그래도 봐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다리도 망가졌을 것이다.“괜찮으면 됐어.”지아는 지윤을 내려놓았다. 지윤은 전보다 키가 많이 커서 품에 안으니 꽤 묵직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그렇게 침을 흘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지아는 손을 뻗어 그의 작은 코를 가볍게 잡았다.“으이그, 침 좀 그만 흘려.”지윤은 입을 벌리고 웃으며 하얀 이빨을 드러냈고, 왼쪽 볼에는 옅은 보조개가 나타났다.전에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지만, 지아는 이번에 분명히 보았다. 그녀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도윤과 백채원은 모두 보조개가 없는데, 이 아이는 어떻게 보조개가 있는 거지?’이때 지아의 머릿속은 갑자기 소시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웃으면 왼쪽 볼에 보조개가 하나 있었다.지아는 고개를 저었다.‘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아마도 격세 유전이겠지.’“엄마, 같이 공 놀아요.”
이번엔 지아가 깜짝 놀랐다.‘이 아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지윤은 심지어 걸음도 떼지 못했지만 이미 그녀의 옷을 잡고 엄마라고 불렀다.“그는 정말 다른 사람을 엄마라 부른 적이 없어?”“그럼요, 저는 도련님과 함께 먹고 함께 지냈으니, 그는 혼잣말을 하는 것 외에,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게다가 비록 어리지만 성격은 대표님과 똑같아서, 걸음을 뗀 이후로, 사람에게 안기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도련님이 뜻밖에도 아가씨와 이렇게 다정하게 지내면서 심지어 아가씨를 엄마라고 부르다니.”이 말에 지아는 좀 뻘쭘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 핑계나 댈 수밖에 없었다.“지난번 섬에 있을 때, 내가 줄곧 그를 데리고 있었기에 나와 친해졌나봐.”“아마도 그렇겠죠, 근데 그날 아가씨 정말 용감했어요. 그 악당들이 총을 들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쫓아가다니. 아가씨가 아니었으면 도련님은 돌아올 수 없었을 거예요.”지아는 어색하게 웃었고, 눈을 드리우며 지윤을 바라보았다.지아가 주은청과 이야기를 나눌 때, 지윤은 영리하게 그녀의 품에 안겨 그녀의 옷에 있는 장식품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입가에 초롱초롱한 침이 걸려 있어 무척 천진난만해 보였다.주은청은 채나에게 기저귀를 잽싸게 갈아준 다음 또 분유를 타주었다. 채나는 소파에 얌전하게 앉아 우유를 마셨지만 한 쌍의 눈은 줄곧 지아를 주시했다.이것은 지아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백채원과 닮은 작은 얼굴과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백채원이 그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주은청은 지윤 앞에 가서 말했다.“도련님은 이미 기저귀를 뗐기에 제가 데리고 화장실에 갈게요.”지윤은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바로 지아의 품에 기대어 전보다 많이 똑똑하게 입을 열었다.“엄마가 안아줘.”“그냥 내가 할게.” 지아는 지윤을 안고 화장실로 갔다.전에 지아가 갑자기 지윤을 버려서 그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지윤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지아가
백씨 집안.백정일은 본래 충격을 받은 데다 이번에 딸까지 사고가 나서 전보다 많이 초췌해 보였다.이도윤이라도 이런 백정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아저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채원이는 틀림없이 살아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녀들도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일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백정일은 한숨을 내쉬었다.“살아 있어도, 크게 다쳤겠지…….”어르신은 탁자를 세게 두드렸다.“도대체 누가 이렇게 겁도 없이 감히 내 손녀에게 손을 대는 게야!”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르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바로 백채원이란 손녀였다. 그가 애지중지하던 손녀를 건드렸으니, 어르신도 화가 났다!“현재의 증거는 모두 독충을 가리키고 있어요.”어르신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독충일 리가 없다고!”도윤은 어르신이 너무 흥분하고 있다고 느끼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검은 눈동자에는 의심이 스쳐지나갔다.“왜 독충일 수 없는 거죠?”어르신은 즉시 감정을 가라앉혔다.“너희들은 줄곧 독충을 엄하게 타격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감히 나타나서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내 손녀는 그들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그들은 이렇게 할 필요가 어딨겠는가?”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최근 몇 년 동안 독충은 일을 점점 더 크게 벌이고 있죠. 의료조직이라고 하기보다는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게 더 마땅할 것 같네요. 난 해킹된 현장 감시 카메라를 복구했는데, 현장에 나타난 남자는 독충의 일원이었어요.”어르신이 계속 반박하려는 것을 보고 도윤은 직접 증거를 내놓았다.“바로 이 남자가 채원이를 데려갔어요.”“이 사람은 온몸을 꽁꽁 감쌌는데, 넌 어떻게 그가 바로 독충의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거지?”도윤이 화면을 확대하자, 남자의 손목에는 독수리 문신이 절반 드러났다.“이 사람의 본명은 오정인, 독충 조직의 멤버 중 하나예요. 그 가장 뚜렷한 특징은 바로 이 문신인데, 그도 납치 사건에 참여했거든요.”백정일은 찻잔을 바
백정일은 다시 독충에게 연락했는데, 백채원이 사고가 난 후, 상대방이 소통을 거절할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그들은 백정일에게 제때에 약속 장소에 나오라고 했다.독충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제각기 약소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대책을 상의하고 난 다음, 도윤은 돌아가서 계획을 세우려 했다. 떠날 때 그는 어르신이 멍을 때리며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았다.백씨 집안을 떠나자, 도윤은 바로 분부하였다.“어르신이 최근에 무엇을 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알아봐.”진환은 바로 눈치를 챘다.“대표님, 어르신을 의심하시는 겁니까?”“만약 독충을 숨긴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들의 종적을 찾았을 거야. A시에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아. 그리고 오늘 어르신의 표정이 매우 이상해.”진환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만약 어르신이라면, 그런 사람과 연락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요?”“왜 약을 파는 사기꾼들의 목표가 항상 노인들인지 알아?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아니. 사기꾼이 번번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노인들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무슨 약점이죠?”“죽음을 두려워하는 거지. 강한 사람일수록 죽음을 더욱 두려워하거든. 독충과 각국의 고급 정부 요인 간의 접촉은 약물로부터 시작됐어. 그들이 내놓는 약은 시중의 약보다 훨씬 좋으니까.”“그래서, 어르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어르신은 몇 년 전부터 다리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 상태가 전보다 많이 좋아졌어. 그는 몰래 독충과 무슨 거래를 했을 수도 있으니, 백채원의 교통사고가 독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충격을 받은 거야.”도윤은 비웃었다.“그는 마음속으로 독충을 파트너로 여겼을 거야. 심지어 독충은 그에게 의탁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나 최근 몇년간 독충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거야.”진환은 한순간 침묵하다 결국 감탄했다.“어르신도 결국
지아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그녀는 수건을 내려놓으며 냉담하게 말했다.“당신이 씻겨줘. 난 옷 갈아입으러 갈게.”말을 마친 다음, 지아는 도윤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떠났다.그녀는 한 아이에게 손을 댈 수는 없었지만, 도윤이 아이를 사랑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이런 모습에 지아는 그 아이가 살아있다면 오늘 날의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사실 다를 것도 없었다. 그 아이를 이 세상에 데리고 오는 것은 그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과 다름없었다.‘결국 지금의 난 나 자신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으니까.’도윤은 재빨리 따라왔고, 지아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지아가 가볍게 소리치자 도윤은 바로 몸을 돌렸다.두 사람은 분명히 가장 친밀한 일까지 했지만, 지금은 이미 낯선 사람으로 변한 것에 습관이 되었다.몸의 본능까지 도윤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고, 어느새 그들은 서로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지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도윤은 다시 걸어 들어왔다.“아이는? 그렇게 어린 아이를 욕조에 남겨둔 거야?”“안심해, 도우미에게 맡겼으니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어.”“그래.”지아는 티셔츠를 입었는데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또 외투를 밖에 걸쳐 자신을 꽁꽁 싸맸는데 조금의 피부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도윤은 그녀의 이런 행동에 대해 다소 불만을 품었지만 시간 때문에 내색하지 않고 즉시 본론을 얘기했다.“오늘 밤 난 아저씨와 함께 독충을 만나러 갈 거야.”“나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니까 나에게 행방을 알릴 필요가 없어.”지아는 관심이 없다며 한쪽에 앉아 책 한 권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지아야, 꼭 이래야겠어?”지아는 책을 덮고 눈을 들어 반문했다.“이도윤,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지? 널 관심하라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네 전처? 아니면 네 원수?”도윤은 주먹으로 쥐었다.“우리 정말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