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윤은 또박또박 말했다.“어릴 적의 우정? 넌 왜 여태껏 나에게 그와 어떤 우정이 있는지 말하지 않았니.”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일어났다.지아는 마음속으로 억울해했다.“넌 백채원과 죽마고우잖아, 근데 왜 난 다른 사람과 친해지면 안 돼는 건데?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래. 단지 어렸을 때 같이 논 친구일 뿐, 넌 마음이 더럽지만, 왜 다른 사람들까지 그렇게 더럽다고 생각하는 건데?”“허.”도윤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난 더럽고 그는 깨끗하다고?”그 비웃음에 지아는 불편했다. 하지만 말을 여기까지 한 이상, 지아는 목을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설마 내가 잘못 말했단 말이야? 넌 유부남인데 바람을 피웠고, 아이까지 생겼잖아. 네가 안 더러우면 이 세상에 더러운 게 없을 거야.”도윤은 화가 나서 숨이 거칠어졌다.“소지아, 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한 거야? 그는 또 무엇을 했는지?”“그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지아는 주원과 전화가 통하지 않는 것을 생각했고, 또 어젯밤 도윤 쪽에서 일이 생긴 것을 떠올렸다. ‘설마 주원도 연루됐나?’도윤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배에서 넌 날 핍박하며 그를 놓아주라고 했지. 그래, 난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를 풀어주었어. 그러나 그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바로 나에게 총을 쏘았지.”지아는 눈빛이 흔들렸고, 도윤은 계속해서 말했다.“내가 어떻게 살아 있냐고? 만약 내가 방탄복을 입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미 시체로 됐을 거야.”“물론 그는 총으로 내 심장을 겨냥하지 않았다면, 머리를 맞혔겠지. 그럼 난 죽지 않아도 식물인간이 되었을 거야.”지아의 머릿속에는 주원의 부드러운 얼굴이 떠올랐다.“어떻게 이런 일이…….”“네가 생각한 그 깨끗한 소년이,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널 찾지 못했을 때, 유독 그가 먼저 네 종적을 발견했을까? 그가 어떻게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냐고?”“난…….”“참, 그가 등
소지아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을 늦게 뽑는 사람은 당장 쓰러질 수 있었으니 어떤 사람이 비수로 싸울 수 있겠는가?그러나 주원은 돌아온 후, 현장의 상황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심지어 한 마디로 얼버무렸다.이 CCTV 영상을 보고, 또 소년의 그 깨끗하고 흠잡을 데 없는 얼굴을 생각하니 지아의 등에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믿는 사람이 이렇게 악랄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치지 않은 이상, 그 상처는 또 뭐지?”이도윤은 뜨거운 손가락으로 지아의 턱을 매만졌다.“지아야, 넌 정말 그가 이렇게 한 원인을 모르겠어? 그는 네 앞에서 줄곧 단순하고 부드럽고 자상한 소년인 모습인 척했지? 그가 만약 네 일로 상처를 입었다면, 넌 죄책감과 자책감을 느끼지 않을까?”지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부인할 수 없었고 도윤은 계속 말했다.“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지 않지만 생각이 엄청 깊지. 그날 만약 내가 특수한 권력을 동원하여 너를 막지 않았다면, 지금 넌 이미 그에게 끌려 출국했을 것이고, 난 널 찾을 수조차 없었을 거야.”지아가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고 도윤은 또 다른 시각의 cctv를 보여주었다.“그날 밤의 CCTV, 난 수십 번이나 봤는데, 이 사람은 아마 주원일 거야.”비록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잘 모르는 사람을 식별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지아는 도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몸매가 마른 남자를 보았는데, 그의 곁의 사람들에 비해 그는 확실히 좀 연약해 보였다.그것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고, 그는 연달아 몇 발의 총을 쏘았다.지아는 전효를 따라 한동안 총술을 배웠기에, 주원의 총술이 얼마나 좋은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특히 그가 한 간호사를 조준하며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총을 쐈을 때, 지아는 이미 그를 위해 변명하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틀림없이 아무런 감정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사실 주원은 진작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때 소계훈을 방문하겠다고 제기할 때, 그는 모든 자료를 본 다음 현장에서 소계훈에게 검사를 했었다.그 당시 주원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그것은 소지아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이도윤은 지아의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얼른 앞으로 거서 그녀를 껴안았다.“지아야, 아니야. 난 너를 보호하고 싶어. 네가 다시는 다치지 않도록 할 거야.”지아는 눈물어린 눈을 들어 도윤을 바라보았다.“그런데…… 나를 가장 다치게 한 사람은 바로 너잖아. 이 말을 할 때, 넌 우습지도 않니?”“주원은 나를 속였을지도 모르지만, 당신도 좋은 사람은 아니야.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라고.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나를 보호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지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이런 일을 알려줘서 고마워.”“지아야, 그러지 마. 비록 독충의 소굴은 이미 사라졌지만, 주모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도망갔어. 지금 나가면 엄청 위험하다고.”지아는 오히려 도윤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으려 물었다.“이도윤, 네 여동생이 죽지 않았다면, 만약 그녀가 나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한다면, 너는 누구 편에 설 거야?”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이예린이 지아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한 것은 이미 사실이었기에 도윤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그런 일 없을 거야.”도윤은 이예린이 주모자란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녀를 찾아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물어볼 것이다.왜 멀쩡한 아가씨가 오늘 이 모양이 되었을까? 심지어 국제기구까지 가입했다니.지아는 도윤을 비웃었다.“이도윤, 우리 내기할래? 만약 이날이 정말 온다면, 너는 틀림없이 네 여동생을 선택할 거야.”“아니, 지아야, 날 믿어, 이 세상에 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어.”지아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그녀는 더 이상 도윤과 이 화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지아가 기어코 떠나려 하자 도윤은 재차 입을 열었다.“이렇게 가려고
“이유는 아주 간단해, 시약이야.”이도윤은 마음이 좀 초조하여 바로 담배를 피우려 하다가 소지아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동작을 멈추고 어색하게 코를 만지며 난감한 표정으로 계속 입을 열었다.“WHO를 포함한 모든 국가는 일부 전문 연구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이러한 연구와 실험은 보통 인류의 도덕에 어긋나니까. 이 사회에서 배척당할 때, 일부 극단적인 학자들이 모이게 된 거지.”“그곳은 그들의 천국이야. 그들은 마음대로 자신의 연구를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 그들이 사는 목적은 바로 자신의 성과를 성공시키는 거야.”지아가 물었다.“설령 이런 성과가 인류 사회에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그들은 상관없는 거야?”“맞아, 아무도 시약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사람들에게 투입하여 인간을 천연의 시험 대상으로 삼았어. 그리고 그들은 미친 듯이 높은 곳에 서서 데이터를 기록한 후 계속 개량했지. 인간은 그들에게 있어 쥐나 개미 그리고 차가운 키보드를 두드려 적은 데이터와 다름없지.”도윤은 입술을 오므렸다.“그들은 확실히 많은 약물을 연구하였고 또 일부 기여를 했어, 나도 인정해.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미친놈들로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일반인들의 목숨을 갖고 장난을 쳤지.”지아는 보면 볼수록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마침내 무엇 때문에 주원이 쉽게 용병을 찾아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지아야, 그는 진심으로 네 아버지를 구하려는 게 아니야. 그에게 있어, 네 아버지의 존재는 단지 너를 좌우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어젯밤 우리의 기습을 거쳐 이 쓰레기들은 아마 소굴을 바꾸어 숨었을 거야. 그래서 당분간 다시 나와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지. 그리고 주원은 더욱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고.”도윤은 손을 지아의 어깨에 얹고 차분하게 말렸다.“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나만이 맹목적으로 너에게 잘해주는 사람이야. 그러니 네 아버
소지아는 잠시 이도윤의 곁에 남아 있기로 했다. 그는 그녀를 보호할 수 있었고 또 이예린이 그녀를 뼈에 사무치게 증오했기에, 만약 지아가 떠난다면 이예린은 오히려 잠잠해질 수 있었고, 지아는 도윤을 이용하여 이예린을 끌어내려 했다.지아는 도윤에게 주원이 레오란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일이 아직 다 밝히지 않은 이상, 지아는 자신을 보호할 카드가 필요했다.적어도 레오에게 있으면 소계훈은 안전했고, 심지어 수술까지 해줘야 했기에 지아는 이때 레오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하루 종일 잤으니 막상 밤이 되자 지아는 잠이 조금도 오지 않았다.주원의 전화는 여전히 통하지 않았고, 지아는 그의 신분을 모르는 척하면서 그에게 여러 개의 문자를 보냈다.그 외에 전효도 아직 연락이 없었다.밤 2시에 지아는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도윤의 서재 불이 켜진 것을 보았고, 그 남자도 잠이 오지 않았다.예전 같으면 지아는 도윤이 굶을까 봐 야식을 챙겨줬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물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마치 도윤과는 모르는 사이인 것 같았다.다음날 아침, 지아는 경호원의 호송을 받으며 병원으로 갔다.지아는 변진희에게 자주 보러 올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물론 그것 외에 지아도 다른 사심이 있었다.백정일은 별로 쉬지 않은 모양이었고, 얼굴은 점점 초췌해졌다. 지아는 작은 소리로 불렀다.“아저씨.”한창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백정일은 그제야 눈을 들어 지아를 쳐다보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왔어? 네가 진희와 말을 좀 하면 그녀도 기분이 좋아질 거야.”“그래요, 아저씨, 산후조리원의 일은 알아냈어요?”백정일은 한숨을 쉬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아야,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어. 그 당시의 산후조리원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존재하지 않다뇨? 사장님이 그만 뒀더라도 기록을 조사하면 알아낼 수 있는 거 아닌가요?”백정일은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간단했으면 좋겠어. 20년 전에는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병력까지 손으로 썼지.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백채원이었다. 그녀는 분노 가득한 채 소지아를 향해 달려들었고, 손을 들며 바로 지아의 얼굴을 때리려 했다.“미친 년, 또 너야? 너 아주 거머리처럼 달라붙는구나.”백정일은 손을 뻗어 백채원을 막았고, 자신의 딸에 대해 이미 엄청난 실망을 느꼈다.백씨 집안의 딸로서 그녀는 훌륭하지 않을 수도, 영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렇게 악독하진 말아야 했다.변진희는 전에 백채원의 앞에서 죽을 뻔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환자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게다가 지금은 또 다짜고짜 지아를 때리려 했다. 백정일은 자신의 딸이 왜 지금의 이런 흉악한 모습으로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백채원, 그만하지 못해? 내가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지?”이 말에 백채원은 더욱 화가 났다.“지난번에는 그 천한 엄마에, 오늘은 또 이 천한 딸이라니. 잊지 마요, 내가 아빠 친딸이라고요!”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백정일은 다시 백채원의 얼굴에 뺨을 내리쳤다.백채원은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늘 그녀는 말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이 몇 년 동안 진희는 자신의 딸을 떠나버리고 매일 세심하게 너를 돌보았는데, 넌 그 은혜에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너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말끝마다 천한 년이라 욕을 하는데, 너 아직 교양이 살아잇나?”“내가 교양이 없다고요? 그럼 소지아가 다른 사람의 가정을 망치는 게 교양이 있는 짓이라고 생각하나요?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두 사람은 천성적으로 남의 남편이나 엿보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런 게 교양이 있는 짓이라면, 난 교양 없이 사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백정일의 가뜩이나 좋지 않은 안색은 백채원 때문에 화가 나서 더욱 보기 흉해졌다. 그는 기복이 심한 가슴을 잡았다.지아는 이상함을 느끼며 백채원과 다투지 않고 재빨리 앞으로 가서 백정일을 부축했다.“아저씨, 화내지 마세요. 일단 좀 앉아서 쉬어요.”
백채원은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다. 요 며칠 그녀도 나름 반성을 했고, 자신이 그런 짓을 하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변진희를 죽일 뻔했다니.그래서 백채원은 특별히 과일 바구니를 사왔고, 변진희에게 사과하려고 했다. 그러나 오자마자 백정일이 한 그런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백채원은 사과를 하긴커녕, 도리어 백정일과 사이가 틀어졌다.그녀는 억울해서 손등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이도윤은 이미 전의 인내심이 없어졌고, 백채원은 이미 전림의 모든 가치를 소모했다. 도윤은 지금 그녀를 바라보는 것조차 혐오를 느끼곤 했다.그는 입으로는 백채원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좀처럼 그녀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백채원은 많은 일들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도윤은 그녀를 사랑할 리가 없었다.그녀의 아버지조차도 더 이상 그녀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오직 실망 그뿐이었다.‘전에는 손만 까딱하면 가질 수 없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을까?’백채원은 집으로 돌아가 할아버지 앞에서 울며불며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 우리 아빠 또 소지아 그 년 때문에 날 때렸어요. 심지어 소지아를 자신의 딸로 삼고 싶다고 했단 말이에요.”어르신은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렸다.“뭐야? 그 모녀에게 속아서 자신의 친딸까지 버리다니! 정말 한심하군.”백채원은 더욱 억울해졌다.“아빠뿐만 아니라 도윤 씨도 날 피하고 있어요. 모두 소지아 그 년 때문이에요! 할아버지, 나 좀 도와주세요. 그녀가 살아있기만 하면, 도윤은 날 쳐다보지도 않을 거예요.”어르신은 백채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빛은 무척 자상했다.“울지 마라. 이 할아버지가 있잖아.”지아를 언급하지 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 천한 년은 운도 참 좋지. 뜻밖에도 또 살아남았다니.”지난번 떠들썩한 납치 사건에 모두들 지아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무사했다.백채원은 흐느끼며 더욱 심하게 울었다.“할아버지, 좀 도와주세요. 이러다
이 말을 듣자 백채원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고 어르신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무엇이 두려운 게야? 젊었을 때, 난 전쟁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몰라. 네 아버지가 백씨 집안을 위해 아이를 낳으란 내 말을 듣지 않고 또 지나치게 그 여자에게 빠졌으니, 나한테 또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그러니까, 그 여자가 백혈병에 걸린 게 우연이 아니란 말씀이세요?” 백채원은 충격을 느끼며 어르신을 쳐다보았다.어르신의 눈에는 흩어질 수 없는 살의가 가득했고, 입꼬리는 차갑게 올라갔다.“그야 당연하지. 그 당시 네 어머니가 뜻밖에 세상을 떠난 후, 난 네 아버지에게 우리 백씨 집안과 알맞은 여자를 소개해 주려 했어. 그러나 그가 뜻밖에도 변진희와 결혼할 줄이야. 유산 후 더 이상 임신할 방법이 없자 나는 그에게 얼른 몸이 좋은 여자를 찾아 아이를 낳으라고 했지. 그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없었어.”백채원은 자기도 모르게 의자의 팔걸이를 꽉 잡았다. 그때 변진희가 유산한 이유는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백채원은 어릴 때부터 변진희를 싫어했고, 그녀가 엄마를 향한 아빠의 사랑을 전부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아이를 낳는다면 자신은 아빠조차 잃을 것이다.백채원은 원래 변진희가 이번 생에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은근히 기뻐하고 있었는데, 이 일이 할아버지로 하여금 그녀에 대한 살의를 가지게 할 줄은 어찌 알았겠는가.백채원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어르신은 태도가 부드러워졌다.“채원아, 이건 할아버지가 너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만약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으면 지위가 흔들릴 거야. 이 할아버지가 모질다고 탓하지 마. 나도 다 너와 우리 집안을 위해서 그러는 거야.”“알겠어요, 할아버지.”“알면 됐다. 넌 할아버지와 같은 편에 서야지, 절대 네 아버지에게 말하면 안 돼. 안심해라. 오늘은 변진희가 죽을 것이고, 내일이면 바로 소지아의 차례가 될 테야. 네가 먼저 골수가 일치하다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