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는 문가에 기대어 얼굴이 창백해졌고, 심지어 불안해서 몸이 떨리고 있었다.그리고 머릿속에는 재차 이도윤이 지윤을 안고 섬에 올라갔을 때 발생한 일을 떠올렸다. 그는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등장했고, 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가지고 자신을 협박했다.그날 지아는 비천하게 애원하며 평생 떠나지 않는 대가로 섬 사람들을 지켜냈다.하지만 그녀는 그 약속을 어겼다.지아의 머릿속에는 도윤의 음침한 얼굴이 스치더니 그는 입을 벌리며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넌 도망갈 수 없다고 했잖아!’주원은 문가에 서서 얼굴이 창백하고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흩날리는 지아를 보고 얼른 다가왔다.“누나,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위가 또 아프기 시작한 거예요?”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데, 해풍을 이렇게 맞자 그녀는 온몸이 추워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주원아, 나 후회했어.”그녀가 곧 울 것 같은 모습에 주원도 마음이 아팠다.“누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는 지금 자유와 한 걸음밖에 안 떨어져 있다고요. 조금만 더 버텨요. 우리는 곧 승리를 맞이할 거예요.”지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니야. 그 사람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날 다시 데려다 줘. 난 그에게 평생 A시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 만약 내가 그에게 잡히면, 그는 틀림없이 너에게 화풀이를 할 거야.”“누나, 말했잖아요 이건 그냥 일상 임무를 수행하는 거라고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아저씨나 좀 생각해 봐요. 곧 아저씨와 재회할 수 있을 거예요.”주원은 차분하게 말했다.“난 이미 사람 시켜 그 섬을 잘 청소하게 했어요. 그곳은 매우 아름다운데, 벚꽃나무가 엄청 많아요. 꽃과 나뭇잎이 한데 뒤엉켜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고요.”“그리고 길가에는 또 야자수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코코넛을 따면 바로 빨대를 꽂아 마실 수 있어요. 나도 마셔봤는데, 엄청 신선하고 달아요.”“그곳의 바닷물은 특히 깨끗해서 바다에서 이리저리 헤엄치는 바닷물고기를 한눈에 볼 수 있어요. 누나 잠
소지아는 안심하지 못해서 임시로 화장을 하며 얼굴을 검게 칠했는데, 얼굴에는 심지어 작은 점들이 있었다.아는 사람이 지금 앞에 서 있어도 지아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천천히 이불을 내리며 검은 얼굴을 드러냈다.“무슨 일 있나요? 제가 멀미가 좀 나서, 죄송해요.”“저희는 지금 마약 밀매의 조직 두목을 잡고 있으니 간단한 조사에 협조해 주셨으면 좋겠네요.”여경은 공책을 꺼내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다.“이름은 무엇이죠? 직업은요?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배에는 모두 몇 명이 있나요?”지아는 그래도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답을 했다.“이제 아무 문제 없네요, 고마워요.”막 떠나려고 할 때 여경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더니 주머니에서 알약 한 알을 꺼냈다.“마침 나한테 멀미약이 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아요.”“고마워요.” 지아가 손을 내밀자 여경의 눈빛은 바로 그 흠잡을 데 없이 하얗고 연약한 그녀의 손에 떨어졌다.지아는 속으로 당황했다. ‘큰일이야, 손의 색깔은 내 얼굴과 엄청 다른데.’다행히 여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공책을 가방에 넣고 일어나 작별인사를 했다.“그럼 푹 쉬어요.”여경이 떠나자, 지아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세상에, 방금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 줄 알았네.’두 사람이 떠나자, 화장을 한 주원과 지아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이제 별일 없을 거예요. 근데 좀 더 기다려야 우리를 통과시킬 거예요.”“음.”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온 하늘은 먹빛에 물든 것 같았다.큰비도 그칠 기미 없이 유리창에 툭툭 떨어져 투명한 흔적을 남겼다.지아는 목욕을 하고 하얀 산호 벨벳 잠옷 치마를 입고 침대에 누웠다.하루는 편안하게 그녀의 품에 안겨 두 눈을 감고 코를 골고 있었다.지아는 드디어 마음 놓고 책을 보았지만, 배가 아직 통과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새까만 바다에는 구슬 같은 빛이 어렴풋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지아는 하품을 했고, 졸음이 밀려와
이도윤으로부터 전해오는 그 공포와 압박감에 소지아는 참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그리고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난 끝났어!’주원은 오히려 태연했다. 그는 그녀의 옆에 서서 우산을 받쳐주며 지아를 위해 비바람을 막았고, 목소리도 매우 온화했다.“누나, 밖은 추우니까 그냥 들어가서 기다려요.”어차피 그들은 지금 이미 독 안에 든 쥐로 되었기 때문에 지아는 무엇을 해도 그 결말을 바꿀 수 없었다.지아는 뱃머리의 그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배는 드디어 닿았다.배가 아직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지만, 도윤은 이미 가장 빨리 그들의 작은 배에 올라왔다.지아는 마치 얼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고, 반응을 하지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그녀는 그저 남자가 큰비에서 걸어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바다는 그의 뒤에서 포효하고 있었다.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지아는 그저 영혼을 빼앗긴 것처럼 느꼈다.그녀는 도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고, 또 그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과 주원을 괴롭힐지 몰랐다.도윤이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친 순간, 지아의 영혼은 비로소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다.그리고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왜 이렇게 입고 나왔어?”곧이어 그녀는 익숙한 품으로 끌려갔고, 지아는 인형처럼 감히 발버둥 치지 못했다.도윤은 두 팔로 지아를 품에 꽉 안았고, 고개를 돌려 조금씩 지아의 귓가로 다가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지아야, 내가 엄청 찾았잖아.”악마와 같은 속삭임에 지아는 목이 탔다.도윤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다.“근데 넌 나에게 평생 A시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긴 사람에게 내가 어떤 벌을 내리면 좋을까?”지아의 몸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느꼈는지, 도윤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만졌다.그는 실외에 오랫동안 머물러서 손끝이 차가웠다.지아는 가볍게 떨었다.도윤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안심해, 바보야.
진봉에 비해 진환은 훨씬 냉정했다.그는 어두운 얼굴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사모님은 자신의 신분을 잘 생각해야죠. 대표님은 사모님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주무시지 않았는데, 사모님은 지금 오히려 다른 남자를 위해 사정하고 있다니. 대표님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이 있나요?”소지아는 또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그러나 그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 아이는 내 이웃이야. 내가 그에게 날 데리고 떠나라고 애원했고. 이건 다 내 잘못이니까 너희들은 그를 건드리지 마.”주원은 지아의 초조한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누나, 그만해요. 소용없어요. 난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주원은 지아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위험을 무릅썼다.한 걸음 차이로 이길 뻔했지만, 결국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에 서 있지 않았다.주원은 상업계에서 위세를 떨치는 이도윤이 마음대로 해양경찰대까지 동원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도윤의 눈빛은 주원의 얼굴에 떨어졌고 목소리는 극히 냉담했다.“너 아주 똑똑하군.”“이 대표님보다 못하죠. 하느님마저 당신의 편에 서 있었으니, 거의 성공했어도 난 결국 실패한 패자일 뿐이죠.”주원은 당당하게 거기에 서 있었는데, 말할 수 없는 오만함과 자신감을 내뿜고 있었다.도윤은 이 소년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용감하고 생각이 있으며, 이 나이에 맞지 않는 야심까지 있었다.“야심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녀는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도윤은 간단하게 평가했다.“자고로 이긴 자가 왕이란 말이 있지.”“알아요.”해양경찰대의 선박도 점차 사라져 이내 잔잔한 바다에 배 두 척만 남았다.갑판 위의 불빛은 밝지 않아 도윤의 몸에 떨어져도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싸늘한 기운은 흩어지지 않았다.그는 지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리 와.”지아는 매우 다급했다. 그녀는 도윤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주원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이때 진봉이 가볍게 기침을 했다.“사모님,
말하는 사이, 진봉은 이미 잽싸게 주원을 묶어서 배의 가장자리로 간 다음 바로 던져버리려 했다.그들에게 있어 이런 일은 마치 라면을 삶는 것처럼 쉬웠고, 얼굴에는 심지어 복수의 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소지아는 놀라서 이도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바삐 밖으로 달려갔다.“사모님, 밖에 비가 많이 오고 있으니 먼저 들어가세요. 만약 비에 맞아 아프시기라도 한다면 괴로운 사람은 결국 사모님과 대표님이죠.”진환은 차가운 얼굴로 말렸다.“대표님은 수많은 방법을 써서 가까스로 사모님을 찾았어요. 만약 한 걸음이라도 늦었다면 그는 이미 사모님을 데려갔을 거예요. 이것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죠.”지아는 대답하지 않고 재빨리 울타리로 올라갔다.진환은 상황이 심상치 않는 것을 발견하고 재빨리 부하에게 막으라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아는 죽을 각오를 하고 아주 빨리 올라갔다.도윤도 이때 쫓아 나와 음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소지아, 당장 내려와!”“누나,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요!”지아는 배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고, 뒤의 바다는 사나운 괴물처럼 끊임없이 포효하고 있었다. 마치 다음 순간 그녀를 뱃속으로 삼킬 것만 같았다.그녀의 얼굴은 슬픈 기색이 역력했는데, 온통 물자국으로 가득 차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지아는 도윤을 보며 목청을 높여 말했다.“넌 신이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거지? 그래, 난 A시에 남겠다고 너와 약속했었고 지금은 그 약속을 어겼어. 약속을 어긴 사람은 나인데, 탓하려면 나를 탓할 것이지 왜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냐고?”도윤은 지아가 바다에 뛰어들려 하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뛰어내릴 수 있었다!이 2년 동안, 지아는 연이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고, 엄중한 정신질병이 있었다. 그녀의 멘탈은 이미 붕괴되었기에 도윤은 지금 지아를 자극하지 못했다.“난 그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았어. 할 말 있으면 일단 내려와서 하자.”
소지아의 말이 맞았다. 이도윤은 확실히 그렇게 했다.도윤은 지아를 잃은 고통을 참을 만큼 참았기에 지아가 자신의 곁에 남아 언제 어디서나 그녀를 볼 수 있도록 했다.“지아야, 나도 널 놓아주고 네가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놔두고 싶었지만, 결국 이렇게 됐어.”도윤의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고, 그는 또박또박 말했다.“나도 자제했었어.”그러나 그의 자제는 소용이 없었다. 지아가 어둠에서 벗어나긴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 멀리 밀어냈다.지아가 행방불명인 그 며칠 동안 도윤은 마치 산송장처럼 지냈다.도윤은 내심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지아는 그를 미워하겠지만, 그녀를 볼 수 없고 그녀를 만질 수 없으며 매일 영혼을 빼앗긴 것처럼 괴로워하는 것보다 낫다고.지아는 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우리 어쩌다 오늘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지아와 도윤의 관계는 마치 한데 엉켜 풀리지 않는 쇠사슬과 같았다. 무슨 일이 발생하든,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그들은 갈수록 단단히 감길 뿐만 아니라 풀 방법조차 없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마지막 결말은 쇠사슬에 점차 세게 묶여 죽는 것이었다.“이도윤, 난 이러고 싶지 않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난 우리가 서로에게 떳떳했으면 좋겠어. 그러나 지금, 우리의 일은 이미 소문이 쫙 퍼졌어…….”“인터넷에서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넌 상관할 필요가 없어. 지아야, 너는 단지 이것만 알고 있으면 돼.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은 여태껏 변한 적이 없어.”지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도윤을 보았다.“그거 알아? 만약 내가 반년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매우 기뻤을 거야. 그러나 도윤아, 지금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은 단지 부담일 뿐이야.”“그래.” 도윤은 두 손을 뻗었다.“일단 내려와. 네가 원하는 것에 대해 우리 천천히 이야기하자. 나 네 말 들을게. 그가 다치는 거 보고 싶지 않다고 했지? 진봉, 그를 풀어줘.”진봉은 또 어찌 감히 도윤의 명령을 어길 수 있겠는가. 그는 즉시 주원의 밧줄을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속에서 소지아는 바다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도윤과 주원은 동시에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분명히 처음 합작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놀라운 호흡을 맞추며 단숨에 지아를 위로 끌어올렸다.도윤은 지아를 품에 안으며 차디찬 그녀의 몸을 꼭 껴안았다.“지아야, 미안해.”지아는 대답하지 않았고, 도윤은 일어서서 그녀의 몸을 안고 선실로 돌아갔다.주원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주원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그는 방금 전 지아가 갑판 위에서 목소리를 낮춰 한 말을 떠올렸다.“주원아, 이따가 내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너를 구할 거야. 그리고 너는 가능한 한 빨리 A시를 떠나. 짧은 시간 내에 돌아오지 말고.”“누나,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요. 난 괜찮아요. 이미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나 때문에 자신을 다치게 하지 마요.”지아는 어쩔 수 없이 웃었지만 눈빛은 확고하기 그지없었다.“안심해, 난 잘 살아서 진실을 밝혀낼 거야. 죽지 않을 거라고.”지아는 싸늘하게 말했다.“만약 연기한 티가 너무 난다면, 우리 모두 끝장이야.”주원은 이제야 지아가 왜 이런 연기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를 가지고 도윤을 협박하고 있었다.지아는 이런 방식으로 주원과 그녀에게 살 길을 찾아준 것이다.만약 이전처럼 도윤에게 잡혀간다면, 지아를 기다리는 것은 암울한 구금 생활뿐이었다.그래서 지아는 어쩔 수 없이 자살하려는 연기를 했던 것이다.이것은 유일하게 도윤을 협박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그 결과는 주원이 짧은 시간 내로 지아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도윤은 그동안 지아의 연이은 타격에 놀랐고,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지아가 떠나는 것이다.가까스로 지아를 구했으니, 적어도 당분간 도윤은 감히 그녀를 감금하지 못할 것이다.도윤은 지아를 침대에 눕힌 뒤 드라이기로 부드럽게 그녀의 젖은 머리를 말렸고 또 뜨거운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에 묻은
갑작스러운 키스에 소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도윤의 스킨십에 반감을 느꼈지만, 그녀가 밀어내기도 전에 도윤이 스스로 입술을 뗐다.그는 지나치게 그녀를 차지하지 않았다.“음, 좀 맵긴 하네.” 도윤은 손으로 지아의 머리를 어루만졌고, 평소처럼 부드러웠다.다행히도 지아의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지아는 도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주원을 어떻게 처리할 거야?”방금 지아가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지금의 도윤은 또 어찌 감히 심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그를 놓아줄 거야, 안심해, 나는 그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지아는 도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기세를 몰아 고개를 숙여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전에 A시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난 내가 납치될 줄은 몰랐어. 내가 납치당했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도윤은 재빨리 팔로 지아의 허리를 감쌌고,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알아.”“그녀는 정말 나를 죽으려고 했어. 만약 내가 미리 칼을 숨기지 않았다면, 이미 그녀의 손에서 죽었을 거야.”지아는 도윤의 옷을 잡아당겼다.“당신이 내가 제공한 정보에 근거하여 이미 일부 문제를 찾아냈을 거라고 믿어. 우리 아빠가 정말 네 여동생을 죽였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이 일에는 분명히 또 다른 세력이 있어. 그 사람은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죽이려 하고 있고. 이 2년 동안 그녀는 많은 일들을 추진했어.”도윤은 지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슴 아파했다.“응, 알아. 그 사람은 심지어 내 곁에 사람을 배치했어. 네가 바다에 빠진 후, 그녀는 모든 사람을 철수했고.”도윤은 지아에게 자신이 찾아낸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위로했다.“지아야, 난 진실을 밝혀낼 거야. 네 아버지는 며칠 전에 다른 사람에게 끌려갔는데, 주원이 한 짓인가?”지아는 아빠가 주원 쪽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주원만이 자신을 해칠 이유가 없었다.이 일은 아직 명확하지 않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