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는 집에 돌아간 후, 추적기를 확인해 보았는데, 쓰레기장에 들어간 그 추적기가 이미 사라진 외에 기타 몇 개는 이전과 별로 차이가 없으며 큰 변화가 없었다.전효의 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는 상태였고 소지아는 한숨을 쉬었다.분명히 진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앞에는 자꾸만 안개가 끼어 있었고, 흩어지지도, 잘 보이지도 않았다.다행히 프로젝트 이쪽은 매우 순조로웠다. 소지아의 기획안은 상대방 회사의 선별을 통과했고, 만나는 시간을 정했다.소지아는 특별히 정장을 입었는데 손바닥은 은은하게 뜨거운 땀이 배어 나왔다.그리고 문을 열자, 그녀는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YH 그룹의 소지아입니다.”흰색 양복을 입은 잘생긴 소년은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지아 누나, 우리 또 만났네요.”소지아는 어리둥절해졌다. “주원아.”그리고 소지아는 그제야 반응했다.“네가 바로 우일 그룹의 주 대표야?”“맞아요, 아버지의 사업을 계승 받은 셈이죠.” 주원은 어쩔 수 없단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난 의사가 되고 싶은데.”전에 소지아의 팀은 우일 그룹의 사람을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까다로웠고, AB 두 팀도 모두 이 프로젝트를 접촉한 적이 있었지만 기어코 따내지 못했다.유독 C팀만 밑져야 본전이라 계속 우일 그룹을 매달렸다.주원을 본 순간 소지아는 입을 열어 물었다.“주 대표, 이번에 합작에 동의한 원인은 기획안 때문이야, 아니면…… 나 때문이야?”주원은 친절하게 소지아를 위해 의자를 당겼고, 또 종업원에게 음식을 올리라고 했다. 그의 입가에 줄곧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둘 다요.”주원은 소지아 맞은편에 앉아 설명했다.“처음에는 이 기획안이 눈에 띄었기 때문인데, 나중에 누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당시 누나가 나의 목숨을 구해준 것을 봐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이 기획안을 통과시키려 했죠.”“이제 고양이 무섭지 않겠지?” 소지아는 모처럼 웃었다.“네, 하루와 잘 지내고 있
강진을 언급하자 박금란은 바로 눈을 부라렸다.“여자를 아주 밝히는 놈이야.”“그래?”“응,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나가던 파리가 암컷이라도 그 남자는 제자리에 서서 눈여겨볼 거야.”소지아는 더욱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런 사람이 주모자의 부하일까?’“지아야, 이 자식이 너 건드린 거야?” 박금란은 소지아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아니야, 그냥 물어본 거야.”박금란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이번에 지아 너 덕분에 우리는 또 하나의 계약을 체결했고, 판매 임무를 원만히 완수했으니 조금 있으면 그가 올 거야.”말하는 사이, 박금란은 모퉁이에 나타난 양복을 입은 사람을 가리켰다.“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오는 법이지.”소지아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보았는데, 강진은 약 35세 좌우이고 몸매는 뚱뚱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으며 한 쌍의 눈은 마치 쥐처럼 빛을 반짝였다.눈빛이 마주치자, 강진은 소지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았다.“아, 네가 바로 그 신입이지? 오자마자 큰 건 하나 해냈으니 정말 대단하군.” 강진은 손을 뻗어 소지아의 어깨를 두드리려 했다.그의 동작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자신의 어깨에 닿기 전에 소지아는 내색하지 않고 자리를 옮기며 냉담하지만 예의 있게 인사를 했다.“과찬이세요.”소지아는 강진과 눈을 마주치며 그의 눈빛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강진의 눈빛은 조금도 소지아를 피하지 않았고, 그 의도 역시 매우 뚜렷했다.“전도가 참 양양하구나!”강진은 또 몇 마디 하고서야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심지어 퇴근할 때 소지아와 밥을 먹으려 했다.그가 떠나자마자 박금란은 바로 입을 열었다.“내가 말했지, 아주 변태라니깐, 그와 좀 떨어져 있어야 해.”“음.”소지아는 강진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의심했다. 만약 이은리의 채팅기록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이 너무 예민했다고 느꼈을 것이다.‘이 사람, 위장을 아주 잘하는군.’“금란아, 나 좀 도와줘.”박금란은 소지아가 입을 여는 것을 듣자마
병원.소계훈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병상에 누워 매일 영양액과 각종 설비에 의지하며 버티고 있었다.몸은 아주 빠른 속도로 메말라졌고, 특히 사지가 점점 위축되었다.마치 생기를 잃은 꽃처럼 토지의 마지막 영양분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소지아는 이미 며칠째 오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소계훈의 볼은 이미 움푹 들어가기 시작했고 소지아의 눈물은 그의 마른 손등에 떨어졌다.“아빠…….”소지아는 언젠가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소계훈은 깨어나 자신을 볼 것이고, 단 한 번이라도, 그녀에게 한 마디라도 할 것이다.“누나, 슬퍼하지 마.”주원은 소지아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고, 소지아는 고개를 숙였는데, 지금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소지아가 얼굴을 가리고 몰래 눈물을 훔칠 때, 고개를 들자 주원이 청진기를 들고 소계훈의 심박수를 듣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뭐하는 거야?”주원은 자연스럽게 청진기를 떼고 소지아를 보며 웃었다.“나도 의대생이기 때문에 아저씨의 상황을 좀 살펴보고 싶어서요.”“그럼 부탁할게.”“에이, 부탁은 무슨.”주원은 소계훈에게 간단한 검사를 했는데, 그 동작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소지아는 그가 의대생일 뿐이란 것을 의심했다.“누나, 아저씨 최신 검사 보고서 좀 보여줘요.”“응.”소지아는 모든 보고서를 전부 주원에게 가져다 주었는데 주원은 자세히 보았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고, 잠시 후에야 주원은 고개를 들어 소지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세월의 흔적을 드러냈는데, 평소의 눈빛과는 달랐다.“누나, 아저씨의 병은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레오라면 수술 성공 확률이 높아요.”소지아는 한숨을 쉬었다.“맞아, 하지만 우리는 많은 방법을 써도 그를 찾지 못했거든.”“누나, 안심해요, 나도 외국의 인맥을 동원해서 누나를 도와 그를 찾을게요.”소지아는 침대 옆에서 뜨거운 수건으로 소계훈의 몸을 닦았다.“우리 아빠가 그날까지 기다릴 수
주원은 소지아를 아파트로 데려다 주었다. 그의 몸에는 소년의 순진함과 성인 남자의 매너가 있었다.직접 소지아에게 차 문을 열어준 다음, 주원은 가방에서 방금 산 목도리를 소지아의 목에 감았다.“아니야, 나 안 추워.”“이건 새로 산 거예요. 따뜻하게 입고 다녀요.”주원이 설명했다.“그래, 가는 길에 조심해, 고마워.”주원은 여전히 빙그레 웃고 있었다.“오늘 저녁에 산 간식은 그 밥 한 끼가 아니에요. 누나 아직 나에게 큰 턱 하나 사야 해요.”“너도 참.” 소지아는 손을 뻗어 주원의 머리를 비볐다. “여전히 어렸을 때와 똑같아.”그때 소지아는 주원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아이는 줄곧 기억하고 있었고, 일정한 시간마다 그녀에게 물었다.“그럼 다음에 또 만나자.”“음.”차가 멀리 떠나는 것을 보고 소지아는 그제야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주원의 말이 맞아, 난 이렇게 슬퍼할 필요가 없어.’소지아는 자신이 들고 있는 각종 간식들을 보았다. 이렇게 오래 지났어도 주원이 그녀의 입맛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어릴 때부터 소지아는 주원과 알게 되었고, 후에 그는 외국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으며 두 사람은 늘 sns로 얘기를 나누었다.‘언제부터 낯설어졌을까?’아마도 몇 년 전 소지아가 이도윤과 사귄 후였을 것이다. 그녀의 시간은 모두 이도윤에게 주었고, 주원과의 연락은 점차 끊어졌다.주원에 대한 소지아의 인상은 여전히 어릴 때 고양이가 두려워 자신의 집 매화나무에 오르는 그 남자아이에 머물러 있었다.그 어린 얼굴을 생각하자 소지아는 미소를 지었다.인생의 어두운 밤도 나쁘지 않았다. 어두울수록 달과 별은 더욱 밝아졌다.아마 소지아도 시간을 내서 위의 상태를 다시 잘 검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점차 살아갈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문을 열고 소지아는 불을 켰다.그리고 고개를 들자 미소는 얼굴에 굳어졌다.소파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고, 그는 두 다리를 살짝 벌린 채 두 손을 팔걸이에 마음대로 올려놓
소지아는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엄청 아이러니했다.그녀는 이도윤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버렸다.“이 대표,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어. 네가 말하는 그 사모님의 자리조차도. 나는 손을 놓을 수 있었으니, 더는 미련이 없었어.”이도윤의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서 소지아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렸고, 지극히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는 항상 네가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 제자리에 서서 2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다 정말 지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나아가다 보니, 봄바람이든, 여름의 매미든, 가을의 잎사귀든, 겨울의 눈이든, 세상 만물이 너보다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소지아는 가볍게 손을 들었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가 한때 사랑했던 이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이도윤, 나는 너를 철저히 잊지 않았어, 인정해.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난 너를 내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을 거야. 너는 여전히 나의 감정에 영향을 줄 것이고, 나의 신경을 건드리겠지. 그러나…… 나는 정말 더 이상 너를 생각할 정력이 없어.”마지막으로 소지아의 손끝은 이도윤의 입술에 떨어졌다.“이도윤, 그동안 치근덕거리면서 피곤하지도 않아? 난 지쳤어. 더 이상 너와 백채원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해 불쾌해하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우리는 각자 편안하게 지낼 수 없을까?”이도윤의 눈동자는 소지아의 얼굴을 똑똑히 비추었다. 분명히 이렇게 익숙하지만 또 낯설어 그로 하여금 종래로 본적이 없다고 느끼게 했다.이도윤은 이를 악물며 간신히 차가운 소리를 냈다.“소지아, 넌 그렇게도 나와 선을 긋고 싶은 거야?”소지아는 평온하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이 순간 그녀는 두려워하지도 위장하지도 않았다.“응, 레오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나도 널 찾아가지 않았을 거야. 비록 나는 백채원을 좋아하지 않지만, 더 이상 그녀가 되고 싶지 않아. 네가 결혼하려 할 때, 너와 끊임없이 얽히는 거 말이야
임건우는 소지아에게 근황을 이야기했다. 소지아는 줄곧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데, 당초에 자신 때문에, 임건우는 이도윤에 의해 외국으로 보내졌다.임건우의 목소리는 지난날과 다름없이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는 외국에서 연수하면서 이미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했다.최근에는 성격이 좋은 여자친구까지 사귀었고, 몇 년 뒤 귀국하면 원장 자리까지 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연수의 기회도 나쁘지 않았다.임건우는 소지아를 대신해서 내일 위 검사를 안배했다.“지아야,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다시 열심히 사려 하는 네 모습을 보니, 나도 정말 기쁘구나.”“선배, 난 열심히 살아갈 거예요. 하루든 한 달이든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거고요.”전화기 쪽에서 간드러진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선배, 나 방금 또 망친 거 같아요…….”소지아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빨리 가봐요, 선배.”이날 밤, 소지아는 모처럼 긴장을 풀고 목욕을 했다.심지어 그녀는 자신에게 와인을 반 잔 따랐는데, 테라스에 서서 바닷바람을 들으며 술잔을 들기도 했다.소지아는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소지아, 꼭 살아있어야 해!”다음날 아침, 소지아는 휴가를 내고 간단한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김민아를 불러 모교로 돌아갔다.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학교 주변은 많이 변했고, 상가와 건물이 좀 더 많아졌다.아침 바람은 여자아이들의 머리카락과 막 싹을 틔운 푸른 잎을 흐트러뜨렸고, 새들은 재잘거리며 날개를 펴고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다.포장마차에서 군고구마를 굽는 난로는 바깥으로 가벼운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공기 속에는 갓 구운 만두 냄새가 가득했다.햇빛이 소지아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자, 모든 것은 딱 좋았고, 그녀도 이 고통으로 뒤덮인 인간 세상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김민아는 소지아의 귓가에 대고 쉴 새 없이 과거의 재미있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끔 전 남친에 대해 이야기하면, 김민아는 여전히 실의에 빠졌다.소지아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민아
C팀에 들어서자, 모두의 열정적인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이 화면을 보고 소지아는 아주 웃기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자신에게 더 이상 빽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의 웃음은 여전히 이렇게 밝을까?이은리조차도 소지아가 단독으로 프로젝트를 하는 일에 한을 품지 않았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연신 응원했다.“잘 해봐!”박금란은 서둘러 소지아를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 자신이 조사한 결과를 보고했다.“지아야, 그 강진이란 사람, 어젯밤에 또 그들 부서의 여자와 밥을 먹으러 갔는데, 쯧쯧, 얼마나 더럽게 구는지.”“그리고?”“마침 내가 그 여자와 관계가 좋거든. 그녀는 나를 대신해서 몇 마디 떠보았는데, 강진은 네가 예쁘고 몸매도 좋고 피부도 하얗다고 계속 말하며 조만간 너를…… 에헴.”뒤의 말은 박금란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런 것 외에 강진은 너에게 아무런 원한도 없었고, 전에 너와 아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소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그 사진은…….”“내 친구가 물어봤는데, 그는 사진을 본 적이 있어. 하지만 단지 그 오 사장도 너와 잘 수 있으니 자신도 조만간 너와 잘 것이라 말했을 뿐, 전혀 그에게서 전해진 줄 모르는 모양이더라.”이은리와 강진의 채팅 기록을 생각하니, 사진 말고는 다른 것이 없었다.“지아야, 내가 강진에 대해 아는 바에 의하면, 그의 업무 능력은 비록 괜찮지만, 업무를 제외하면 머릿속에는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밖에 없어. 그는 너와 원한이 없으니 이렇게 할 필요도 없고.”“만약 그가 아니라면, 사진은 왜 또 그가 보낸 것일까?”“그 남자는 여자를 너무 밝혀서, 그럭저럭 예쁜 사람이라면 바로 잘 수 있거든. 어느 여자가 강진의 핸드폰을 이용해, 그의 손을 빌려 팀장님에게 보냈을 수도 있지.”소지아는 눈이 밝아졌다.“네 말이 맞아.”그 주모자는 틀림없이 자폭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스스로 조사하려 한다 하더라도 주의력을 강진에게 돌릴 것이다.‘정말 음흉하군.’이렇게 되면 소지아는 어떤 사
소지아는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변진희가 정말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지아도 그녀가 대중들 앞에서 손을 쓸 줄은 몰랐다.이 뺨은 소지아를 멍하게 만들었다.그녀의 인상 속의 변진희는 성질이 좀 차가웠고, 자신을 대할 때 무척 싸늘했다.그러나 그래도 변진희는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으니 어떻게 대중들 앞에서 막무가내로 자신을 때릴 수 있었을까?소지아는 얻어맞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숨을 크게 쉬고서야 마음속의 화를 억눌렀다.“백 부인, 설명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소지아, 네가 오늘처럼 이런 뻔뻔스러운 꼴이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난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 정말 나를 너무 실망시켰구나!”요 며칠간 즐거웠던 소지아의 심정은 변진희의 이 뺨에 의해 바람처럼 사라졌다.주위의 동료들이 궁금해하는 눈빛 속에서, 소지아는 너무나도 창피했다.“무슨 일 있으면 나가서 이야기해요.”변진희는 소지아의 손을 뿌리쳤다.“왜? 내가 네가 한 그 일들 폭로할까 봐 두려워? 나는 정말 네 아버지가 요 몇 년 동안 널 어떻게 가르쳤는지 모르겠어. 뜻밖에도 널 이렇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키웠다니! 남은 이미 너와 선을 그었는데, 넌 왜 아직도 뻔뻔스럽게 회사로 쫓아왔지?”소지아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백채원은 스스로 이도윤의 결정을 개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변진희에게 고자질했던 것이다.변진희는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구겼고, 소지아로 하여금 스스로 떠나게 하고 싶었다.이런 수단은 그다지 대단하진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소지아는 변진희의 얼굴에 시선을 돌리고 다소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당신은 내 엄마잖아요.”그녀는 자신의 친엄마이면서도 백채원을 두둔하는 변진희가 이해되지 않았다.변진희는 백채원이 소지아의 가정을 파괴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백채원을 책망하지 않고 뜻밖에도 백채원의 부추김을 받아 회사로 달려와 소동을 일으켰다.변진희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얼굴에 노기가 가득했다.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
시하는 시언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다.“나도 잘못이 있어. 그동안 책임은커녕 모두에게 짐이 되었으니까.” “그만 좀 하세요!”지아가 탁자를 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금은 서로에게 사과할 때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럴수록 심세호를 기쁘게 할 뿐이라고요. 아직 비행기 사고로 대표님의 사망을 확정할 수는 없어요.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요.” 지아는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내가 소씨 가문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여러분은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해요. 만약 대표님께서 정말 돌아가셨다면, 여러분이 아들로서 소씨 가문을 지켜내야 한다고요. 가족을 슬프게 하고, 원수를 기쁘게 만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모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아내는 일이에요. 사모님은 최대한 빨리 눈을 치료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해질 거예요!” “게다가 소 대표님은 해외 사업을 접고 귀국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필요해요. 나라에는 왕이 하루도 없어선 안 되는 법이잖아요. 이런 상태라면, 소씨 가문은 곧 무너지고 말 거라고요!” 이어서 지아는 시언에게 조언했다.“건강을 반드시 회복하셔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아지셔야 가족 모두가 안정을 찾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지아는 몇 마디로 어지러운 상황을 안정시켰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았고, 나이도 그들보다 어렸지만, 그녀의 말에는 이상할 정도의 신뢰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절대 무너지면 안 돼요. 소 선생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아가 시후를 부축해 앉혔는데, 사실 지아가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바로 소시후였다. 시후는 지아 다음으로 성공한 실험체였지만, 신장병은 여전히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고, 예전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었다. 시후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지아는 그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지아는 이런 걱정을 안고 시후를 부드럽게
지금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식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그 말이 전해지자 모두의 눈가가 떨리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장 집사님, 장 집사님은 집안의 어른이시잖아요. 어쩜 그렇게 경솔할 수 있으세요?” 지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아는 처음 소씨 가문에 왔을 때 자신을 맞이하던 장덕수의 침착함과 신중함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당황하며 문턱에서 넘어질 정도로 급하게 들어왔다는 갓은, 사건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장 집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월이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장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께서 탑승하신 개인 비행기가... 비행 중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비행기가... 폭발했다고요!” “뭐, 뭐라고요?!”시월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월아!”시후는 곧장 시월을 안아 들었는데, 이는 혼란스러운 소씨 가문이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지아는 빠르게 다가가 시월의 상태를 살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는 단지 충격으로 실시하신 것뿐이에요. 잠시 쉬면 곧 깨어나실 거예요.” “누가 월이 좀 방으로 옮겨주세요! 휴식이 필요합니다!” “예, 도련님!”고용인이 시월을 방으로 데려가자, 거실에 남은 사람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참혹해졌다. 시후는 아직 치료받지 않아 병약한 얼굴로 서 있었고, 시언은 수술을 막 끝낸 상태에서 시하와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시월은 너무 놀라 혼절하기까지.“형, 아버지는...”가장 강인하던 시언의 눈시울조차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장남인 시후였다.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욱 강한 척해야만 했다. “괜찮을 거야. 단지 비행기 사고일 뿐이야. 기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휠체어를 세게 내리쳤는데, 그의 눈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분명 심세호가 한 짓이야! 사랑이 증오로 변한
다행히 지금은 60년 전처럼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어서, 원하기만 하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조경숙은 조씨 가문 출신으로, 이름 높은 명문가 자제였다.집안에는 여섯 명의 오빠가 있었고, 조경숙은 유일한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즉, 집안의 보석 같은 존재로, 아름다운 외모와 온화한 성품을 겸비한 인물이 된 것이었다.조경숙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집안에서 혼인을 청했고, 심지어 해외의 명문가들도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조경숙의 수많은 구혼자 중에서도 한 사람만이 유독 특별했다.그 시절 조경숙을 쫓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호들이었기에, 단순히 재산만으로는 그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하지만 그중 한 명은 천재 발명가로 불리며, 동시에 뛰어난 의술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랑은 그야말로 뜨겁고 격렬했으며, 조경숙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조경숙이 소임호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음에도, 그는 결코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임호가 무슨 방법을 썼는지, 그 천재 발명가는 갑작스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의학 미치광이의 소개서를 읽은 지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지아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천하의 악당 같은 의학 천재는 루이스가 길러낸 첫 번째 제자였는데, 이미 사제 관계가 파탄 나긴 했으나, 지아는 그를 ‘선배’라고 불러야 했다. ‘이미 파문되었다던 그 사람이 사모님과 그렇게 깊은 연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부에서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구나.’그의 나이를 추정하면 이미 50세가 되었을 것이었다.얼굴은 가면으로 감출 수 있겠지만, 몸은 속일 수 없지 않겠는가?그 사람의 피부는 마치 20대나 30대처럼 매끄럽고 탱탱해, 지아는 그가 소명담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지 못했다. 루이스 역시 젊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