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에 배신혁은 탁 트였다.“그러네요, 일이 좀 있다고 해도 C 국에 온 일이 뭐가 있나요? 분명히 사모님을 지지하고자 온 것일 텐데, 만약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 굳이 저렇게까지 총동원할 리가 있을까요? 뭐가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 같아요.”“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모님이 영지라는 증거가 없고 분명히 감정 확인 검사에 협조해 주지도 않을 거예요.”배신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던 한대경의 검은 눈동자가 점점 깊어졌다.“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정말로 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지아가 한대경의 반지를 훔친 것은 사실이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대경의 감정을 속인 것 외에 큰 손해는 없다.반지는 이미 폭발했으니 새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지아는 한대경의 두통을 고쳐줬고 계산해 보면 얻은 게 더 많은 한대경이다.그리고 부씨 가문이 지아를 보호하고 있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그럼 보스의 뜻은?”“만약 저 사람이 소수연이라면...”한대경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아.”소수연의 가면 아래엔 뜻밖에도 꽃 같은 얼굴에 훌륭한 의술까지 갖추고 있다.결혼한 것 빼고는 지아는 정말 완벽한 여자가 아닐 수가 없다.“자료상으로는 도윤과 이혼하고 재혼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지?”“네, 올해까지도 A 국 상장이 사람을 보내 소지아 씨의 행방을 알아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 보이는 것을 보면 보스가 소지아 씨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사이가 좋은 데 왜 이혼을 했겠어? 네가 여자라면 자기를 배신한 남자를 다시 용서하고 받아드릴 수 있겠어?”과거에 지아에게 줬었던 상처만 놓고 보면 지아는 그러한 성격으로 절대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보스, 설마...”한대경은 손을 뒤로 한 채 서 있고, 얼굴에는 다소 심오한 표정을 지었다, “부장경이 똑똑히 설명하라고 했었지?”배신혁과 배이혁은
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아랑 같이 있어 줄래요. 지아에게 물론 잘못이 있지만 함께 책임질 거라고요.”부장경은 차갑게 도윤을 힐끗 쳐다보며 되물었다.“함께?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책임지고 난리야?”한마디에 도윤으로 하여금 정체를 되찾았고 부장경은 도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이혼한 사이 아니야? 잊었어?”도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도윤은 이미 이혼한 일에 대해 여러 번 후회했지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그 종이가 없으면 지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이다.지아는 마지못해 스스로 서재로 들어갔다.부남진은 글씨 연습을 하면서 지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왔어?”부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아는 위압감을 느껴 등골이 오싹해졌다.이것이 바로 윗사람의 위엄에서 오는 것인가?지아는 주저 없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죄송해요, 할아버지.”지아와 같은 착한 아이는 잘못을 인정한 경험이 없지만 어쨌든 먼저 사과하면 틀림없을 것이다.부남진이 큰 붓을 휘두르며 마지막 붓을 완성했다.이윽고 붓을 세필 독에 던져지 나서야 천천히 지아를 향해 걸어왔다.뒷짐을 지고 지아의 앞에 멈춰 서서 눈을 내리깔고 겁에 질린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부남진의 목소리는 더없이 엄숙했다.“잘못했어? 뭘?”“할아버지한테 거짓말하고 속인 거요. 위험한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멍청하지는 않네, 얼른 일어나.”어렵게 찾은 손녀에게 벌을 줄 수는 없었다.안쓰러운 마음에 부남진은 지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지아도 그의 손바닥에 손을 얹었다.부남진의 매서운 눈동자도 점차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얘야,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죄송해요. 할아버지.”“왜 위험한 일을 네가 하려고 하는 거야?”오늘 지아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모든 걸 들은 부남진이 대답했다.“할아버지가 잘못했어. 일찍 찾아가지 못해서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게 해서 미안해.”지아
독이 잔뜩 든 부남진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지아는 입술을 오므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아마 한대경은 제가 그를 속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거 같아요.”“알면 뭐 해? 그 반지가 이미 폭발했다고 했잖아. 임무도 실패했고 머리도 낳게 해 줬는데, 뭐 또 어쩌려고?”한대경 손에 증거가 없으니 지아로 밝혀지더라도 지아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지아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한대경을 속은 것에 그가 복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그때가 되면 A 국에 불리한 일을 저지르면 지아는 역사에 남는 죄인이 될 것이다.“혹시 폐를 끼칠까 봐 두려워요.”“네가 마성에 있을 때 소피아 왕비를 구했다고 도윤이한테 들었어. 네가 무심코 한 행동이 여러 나라를 구해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왕비요? 그 임산부가 왕비라고요?”지아는 이제야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됐다.‘어쩐지 임산부인데 악세서리가 그렇게 많더라니...’지아는 가족들이 도망갈 때 그녀를 버렸는데 왜 악세서리를 남겨뒀는지 생각했었다.‘그래서 도윤이가 직접 찾으러 온 것이네.’“정확히 말하면 대황 자비이다. 대황자가 사랑하는 여자인데, 대황자가 계승하던 날 갑자기 황자비가 납치되어 계승식이 중단되었어.”지아는 이 기간 동안 휴대폰으로 외부와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몰랐다.“그렇군요, 그럼 소피아 왕비와 아이는 괜찮아요?”“걱정하지 마, 네가 차분하게 잘한 덕분에 아이도 산모도 무사하단다.”“그럼 다행이네요.”지아는 자신이 금융을 포기하고 의학을 선택한 거에 대해 이렇게 다행이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라카에서 잘 못 먹었을 텐데, 반찬 많이 하라고 했으니 오늘 저녁은 많이 먹어.”“네, 고마워요 할아버지.”지아는 그의 어깨를 문지르며 애교를 부렸다.“할아버지가 있어서 참 좋아요.”“너의 신분은 이미 공개했어.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 손녀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을 알아. 앞으로 나가면 경호원을 데리고 다녀. 그놈이 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만약 다
찬바람을 맞으면서 부남진은 손을 뒤로 한 채 서 있었다.부남진의 몸은 지아의 보살핌 하에 빠르게 회복되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이전에 염색한 검은 머리카락의 뿌리에 흰 머리카락이 나타났지만 그의 정정하고 분노하지 않아도 생기는 카리스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은사님.” 도윤은 숨을 거두었다. 그가 지아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더욱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도윤아, 너 원래부터 내가 눈여겨봤었던 놈이다. 다만 넌 지아를 아프게 한 것으로 내 눈 밖에 나게 되었단다. 전에는 지아 뒤에 가족이 없었지만 앞으로 지아 뒤에는 우리가 있을 것이다.”부남진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있는 한 다시는 그 누구도 지아를 다치지 못하게 할 것이다.”도윤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와 지아의 과거는 누가 보아도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비록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너무 많았지만 그녀에게 준 상처도 확실했다.그는 설명할 수 없었다.그가 내뱉는 말들은 모두가 변명처럼 들리기 때문이었다.“은사님, 다시는 지아에게 나쁜 짓도 아픈 짓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부남진은 그를 잠시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갔다.“말로는 믿을 수 없단다.”말을 마치고 그는 지아를 끌고 돌아섰다.도윤은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때까지 두 손을 꼭 잡고 등은 곧게 펴고 서 있었다.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지아는 멈추지 않았다.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그 상처를 마무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으니 말이다.“지아야, 아무도 너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없단다. 만약 재결합을 생각이 없다면 할아버지가 있으니 그 누구도 널 강요하지 못할 것이다.”“고마워요, 할아버지.”지아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씻었다.머리 속에 도윤의 황량한 뒷모습이 떠올랐지만, 예전의 자신이 그의 뒤를 쫓아다닐 때도 그러했으니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다.도윤을 상대로 복수를 할 마음이 없지만 과거의 일을 완전히 풀지 못했다.결혼은 그녀를 속박하는 감옥이고 그 족쇄가 없으
부장경도 요즘 바빠서 집안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지아보다 더 잘 알고 있다.“네가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버지 성격을 모르고 있어. 걔가 돌아올까 말까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돌아오게 하는지 아닌지에 달려있어.”“할아버지께서 정말 쫓아내실 거예요?”지아는 꽤 놀랐다.“할아버지의 친딸인데 기껏해야 겁주기 위해서겠죠?”“처음에 아버지는 겁을 주려고 하셨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줄 알았는데, 더욱 잘못되고 더 큰 실수를 범할 줄은 몰랐던 거지. 아버지는 분명히 그렇게 하용와 선을 그으라고 하셨는데 듣지 않고 오히려 아이가 생겼어, 아버지께서 뭘 더 할 수 있어?”부장경은 이마를 부여잡고 덧붙였다. “너무 많은 사랑을 과분하게 받고 자란 동생이야. 하용의 일처리방식은 원래부터 안 좋았어. 위로 오르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아. 부씨 가문과 엮기게 되면 앞으로 하씨 가문과 함께 번영하고 함께 손해 보게 돼.”지아도 그 검은 배가 하용의 친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만약 그가 정말 부씨 가문의 사위가 되었다면, 이 불은 틀림없이 부씨 집안에 옮겨 붙었을 것이다.어쩐지 부남진가 이 딸을 버릴지언정 하씨 집안과 엮이지 않으려 한다니.“그럼 요즘 어때요?”“어머니와 이 집사가 번갈아 가며 말렸지만 소용없어. 그 계집애는 오로지 하용에게 시집가려고만 해.”“이 집사?”지아는 그가 이 사람을 중점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이명란이 바로 이 집사다. 우리 어머니 친정집 도우미이고 반평생 어머니를 모셨어, 어릴 적에도 걔한테 젖을 먹였어, 특히 옛날에 시골에 맡겨뒀을 때도 돌보아 주셨어, 걔한테는 도우미일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다름없거든.”“그렇군요.”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충고해 주세요. 하용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이익과 득실을 따질 줄만 아는 사람에겐 이익이 무엇보다 커요.”“누가 아니래, 그런데 그 계집애가 고집이 너무 세서 지금은 어떤 충고도 듣지 않아. 이러다간 아버지께서 정말 이름을 제거해버릴 거야.”어찌 됐든 자신
지아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묻었다. “도윤아, 나 너 사랑해. 하지만 과거의 일을 풀 수가 없어. 그날들이 너무 아파서 너무 무서워서 잊히지 않아.”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 버림받은 그때 그 순간을 지아는 기억할 용기조차 없다.“그만 좀 몰아붙여.”도윤은 크게 한숨을 쉬고 눈동자는 어두워졌다.원래 그도 이렇게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는데, 한대경이 나타나 그에게 큰 위협감을 주었다.이번에는 지아를 무사히 귀국시켰지만, 그녀의 정체는 이미 드러났다.만약 그녀가 정말 영지가 아니라면, 부장경이 직접 데리러 올 필요가 없었다.한대경도 분명 이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그의 성격으로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지아는 재혼을 거부했고 지금 그가 그녀를 안고 있다고 해도 전혀 안정감이 없었다.도윤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강요하지 않겠어.”밤이 깊어지고, 지나는 도윤 품에 안겨 잠을 자지 않았다.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 지 오래되었으니 며칠 동안 분명 누군가 그녀에게 연락할 것이다.백씨 가문에서는 최근에 수술 언제 할 거냐고 연락이 왔고, 장민호는 자신이 갑자기 연락 두절된 것에 걱정되어 많은 메시지를 보냈다.이것 말고도 윤화연이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 분명히 아이 일 때문이었을 거다.자신도 어머니로서 윤화연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한다.하지만 밤이 깊어졌기에 윤화연에게 연락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하시죠.얌전하게 도윤의 가슴에 엎드려 “아직도 안 자?”“잠이 안 와.”도윤의 그윽한 눈빛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가 날아갈까 봐, 또 도망갈까 봐.”지아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날지도 도망가지도 않아, 어서 자, 곧 연말이 되면 당신은 틀림없이 매우 바쁠 테니까.”“아무리 바빠도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해.”지아는 그의 얇은 입술에 쪽했다. “바쁜 시간이 지나가고 나랑 함께 아이를 데리러 갈까? 아이들도 곧 방학해.”도윤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만나게 해 줄거야?”요 몇
지아는 한숨을 쉬었다.여자는 결국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차를 몰고 교외의 별장으로 갔다.지아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갈림길에 숨어 하용의 차가 떠난 후에야 조용히 별장으로 들어갔다.“화연 씨, 문 앞에 있어요.”문이 열리자 윤화연은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보다 더 말랐다.지아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우리 들어가서 얘기해요.”“그래요.”윤화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지아를 끌고 들어갔고, 아주머니는 의심이 가득 차 그녀를 쳐다보았고, 지아는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긴장하지 마세요, 단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왔어요. 따뜻한 물 한 잔과 따뜻한 수건을 가져오세요.”아주머니는 원래 가장 먼저 하용에게 알려야 했지만, 이 여자는 왠지 사람을 납득시키는 능력이 있다.그녀는 순순히 물수건을 가져다주었다.지아는 수건으로 윤화연의 얼굴을 닦아줬다.특히 눈에 더 오래 머물렀고 따뜻한 물을 윤화연에게 건네주었다.“물 좀 드세요.”“네.”윤화연은 물을 다 마신 후 지아에게 하소연하려 했는데 지아는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급하지 마세요. 들을 시간이 많으니 우선 눈부터 감으세요.”윤화연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지만 얌전히 눈을 감았다.네 손가락은 관자놀이에 얹고서 지아는 부드럽게 그녀를 안마해 주었다.그녀의 손놀림은 매우 좋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진정하시고 충동적일 때 절대 결정하지 마세요. 머리가 똑똑해야 실수를 안 해요.”관자놀이에 이어 정수리까지 마치 마력이 있는 듯한 그녀의 손길이 윤화연으로 하여금 서서히 경계를 늦추고 팽팽해진 몸도 조금씩 풀어주었다.어느새 그녀의 기분은 가라앉았고, 심지어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아주머니는 윤화연이 요즘 잘 못 먹고 잘 못 자는 것을 알고, 스스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신기할 정도로 지아가 오자마자 윤화연이 순순히 말을 듣기 시작했다.지아가 입 모양을 만들자, 아주
미셸의 배는 윤화연처럼 여전히 평평했고,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최근에 잠이 부쩍 많아졌고, 식사량도 크게 늘었다. 미셸은 원래 살이 잘 찌는 체질이었다. 예전에는 꾸준히 운동해서 몸매를 관리할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의 방종으로 인해 10킬로 이상 살이 쪘고, 얼굴도 한층 둥글어졌다.그래도 다행히 미셸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좀 더 탄탄해 보였다. 원래도 미모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는데, 살이 찌고 나서는 미모가 더욱더 별로이게 되었다. 하용은 외모를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미셸의 둥글어진 얼굴을 보면 속이 불편해졌다.“며칠 동안 나한테 한 번도 안 와줬잖아.”미셸은 마치 본드처럼 하용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하용은 미셸이 다가오는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꾹 참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 지금 온 거잖아. 요즘 일이 많아서 바빴어. 너는 얌전히 집에서 기다려. 이 일만 끝나면 바로 병원에 같이 가서 산부인과 검진 받을 거야.”미셸은 작은 배를 살짝 감싸며 말했다. “내 배 많이 커졌지? 우리 아들 엄청 건강할 거야.”그러나 이 시기의 태아는 불과 1.5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해 배가 나올 리 없었고, 이는 사실 전부 살이었다. 하용은 그 배를 보자마자 입맛이 떨어졌다. 예전에도 미셸이 날씬했던 시절조차, 하용은 불을 끄고 미셸을 윤화연이라고 상상해야만 겨우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미셸은 하용의 손을 끌어 자기 배를 만지려 했다. 임신 이후로 하용은 한 번도 미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항상 태아 발달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된다며 거절했다.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아무런 접촉조차 없었고, 미셸은 점점 불안해졌다.하용은 미셸의 손을 재빨리 빼내며 말했다. “미셸이야, 얌전하게 있어. 나 출근해야 해. 퇴근하고 나서 보러 올게.”미셸은 화가 난 듯이 아침을 먹고 가라고 졸랐다. 또한 하용은 그녀의 고집을 잘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아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