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부씨 가문으로 돌아왔고 비록 부장경이 그녀를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각하의 자리는 수많은 사람이 노리는 자리였고 이미 두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으니 부씨 가문은 더욱 지아를 쉽게 놓아주지 않으려 할 게 분명했다. 지아는 차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고 눈 내리는 날씨, 따뜻한 차와 향초까지 더해져 점점 긴장되었던 마음이 진정되고 있었다. 차실에는 특별한 기밀 문건이 없었고 있는 것들은전부 아주 오래된 좋은 찻잎들뿐이었다. 전에 부남진은 지아가 차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이 차실의 차를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 이야기한 적 있었다.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차들은 거의 다 좋은 차들이었고 대부분 아주 귀한 제품들이었다. 평소 부남진이 있을 때 지아는 뭔가 껄끄러워 혼자 잘 오지 못했지만 지금 그가 없는 틈을 타 구경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음, 좋은 차네? 어, 저것도 귀한 차고 말이야.’ 이 차실 안에 있는 찻잎들만 다 팔아도 별장 몇 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때 지아는 향초가 거의 다 타고 있음을 발견했고 다른 향초를 찾아보려 했다. 그녀는 부남진이 어떤 향초들을 소장하고 있는 지도 무척이나 궁금했다.지아가 향초들이 구비되어 있는 한 서랍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일부 족자들도 함께 있었고 실수로 그 중 하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족자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지아는 고의가 아니었지만 부남진의 사적인 물건을 찾아낸 것이다. 그녀가 얼른 그 족자를 다시 서랍 안에 넣으려는 찰나 그 족자가 완전히 펼쳐지고 말았다. 족자 위의 그림은 흑백이었고 한 여인이었다. ‘설마 각하의 첫사랑인 건가?’ 지아는 몸을 웅크리고 얼른 그 그림을 다시 제자리에 넣으려 했지만 갑자기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그림의 여인은 한 대추 나무 밑에 서 있었는데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은 분명 지아가 전에 봤던 한 사진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은 오래 되어 이미 누렇게 변해 있었고 종이도 절대 지금 생산하
지아는 급히 부남진의 입에 대추 설기를 한 입 먹였고 하마터면 이에 부남진은 목이 멜 뻔했다. “맛있나요?” “그래, 맛있네.”지금 부남진이 하려던 말은 대추 설기가 아니라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전에 제 대추 설기의 맛이 익숙하다고 하셨는데 전에 다른 데에서 이 설기를 드신 적 있는 건가요?” 그러자 부남진이 대답했다. “지금의 디저트들은 젊은 사람의 입맛에 맞추느라 대부분 너무 달기 마련이지만 우리 때는 달랐어. 네가 만든 이 대추 설기는 아주 오래 전의 맛이야.” “이건 한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레시피예요. 그분께서는 전에 한 대추 나무 밑에서 사셨는데 매년 가을이 되어 대추가 익으면 그 대추들로 대추 설기를 만든다고 하셨지요.” “우리의 그때는 조건이 아주 열악했기에 아이들도 특별히 간식이라 할 게 없었어. 집집마다 모두 나무에 열매가 달리길 바랬고 그걸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기도 아까워 다 내다 팔곤 했지.” “참, 할아버지, 해시에 가본 적 있으셔요?” “당연히 가봤지.” “이런, 잘못 물어봤네요. 제가 말한 건 50여 년 전의 해시 말이예요. 그곳에는 종화로가 있는데 기억나요?” “해시의 종화로라?” 부남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별로 인상이 없어. 50여 전에는 내란이 끊기지 않던 시기이고 도시의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으니 말이야.” 이에 초롱초롱하던 지아의 두 눈은 어두워지고 말았다. 설마 그녀가 넘겨 짚은 걸까? ‘각하가 조화로에 간 적 없다고?’ ‘아까 그 그림의 사람은 분명 환희였는데 말이야.’ “얘야, 너 오늘 뭔가 이상하구나.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물어봐도 돼. 넌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한 생명의 은인인데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전부 알려 줄게.” 이에 지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고 만일 환희가 부진남의 적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크게 문제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혹시 부남진이 정말 그녀를 알고 있다면 한없이 좋은 일이고 말이다. “할
미셸은 어리둥절했다. “엄마, 이게 무슨 뜻인데? 이 사진이 어쨌다고 그러는 거야?” 민연주는 당시의 cctv 화면과 연회 현장의 다른 화면들도 전부 꺼내 보이며 말했다.“이것 좀 봐. 총알이 어디를 스친 것 같아?” “당연히 그 여자 얼굴이지.” “오늘 여러 각도의 고화질 cctv 화면들을 전부 찾아봤는데 확실히 당시 총알은 그 여자의 얼굴을 스쳤어. 아무리 가벼운 상처라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일 텐데 방금 본 그 여자의 얼굴에 흔적이 있었어?” 미셸은 그제야 민연주의 뜻을 이해했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주의 깊게 보진 않았지만 그 여자 얼굴에 상처 같은 건 정말 없었던 것 같아.” “이 사진도 좀 봐. 이 여자는 왜 자신의 얼굴을 가린 걸까?” “아, 알겠어! 문제가 그녀의 얼굴에 있었던 거야.” “맞아. 생각해봐, 어떤 방법으로 그녀 얼굴의 상처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할 수 있는지 말이야.” 미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세상에는 절대 상처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약 같은 건 없어. 혹시 다른 무언가로 그 총알을 막지 않았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얼굴에? 아, 알겠어! 바로 가면을 쓴 거야.” “그래, 맞아. 요즘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니 그런 가면은 촬영 현장의 소품으로만 쓰는 게 아닐 테니 말이야.” “전에 그런 수공 기술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 있는데 실리콘으로 얇은 피부를 만든다고 해. 게다가 세계의 정상급 킬러들이 그 방법으로 자신의 진짜 신분을 많이 속인다고 하더라고.” “엄마, 놀래지 마. 설마 그 여자가 킬러인 건 아니겠지?” “알 수 없어. 하지만 그녀의 신분이 수상한 건 사실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 설마 아빠한테 해코지하진 않겠지?” “잘 모르겠어. 만일 네 아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두 번이나 구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다른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럼 우리는 반드시 그 여자의 진짜 얼굴을 까발려야 하는 거네?” 민연주는 한 바퀴 빙 돌면서 말했다.“잘 생각해야 돼.
부남진이 암살 시도를 당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묻혔고 외부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아무도 알 지 못했다. 또 한번 암살 시도를 당한 부남진은 당분간은 다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집에서 모든 일들을 처리했다. 이때 미셸이 주동적으로 부남진을 찾아왔다. “아빠가 두 번이나 연속으로 암살 시도를 당하니 제가 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딸, 아빠는 괜찮아.” 좀처럼 보기 힘든 미셸의 철 든 모습에 부남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가 널 탓하려는 게 아니라 이 몇 년간 우리가 널 너무 철부지로 키운 것 같구나. 너도 이제 나이가 어리지 않으니 네 오빠를 많이 따라 배우면 좋겠어.” “오빠의 그 무뚝뚝한 성격을 따라 배우란 말씀이에요?” 이에 부남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설아야, 내 말은 차분하고 성숙한 그런 점을 따라 배우란 말이다. 네 성격은 남에게 이용당하기 쉬우니 말이야.” 더 솔직히 말하면 부남진의 말은 미셸이 너무 생각 없이 행동한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나쁘긴 하지만 본인이 뛰어난 능력은 가지고 있진 않았다.그런데 만약 남에게 이용을 당한다면 말이 달라졌다. 당시 부남진은 눈앞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미셸과 하용에게 3개월이란 말도 안 되는 계약 기간을 주었다.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미셸은 반드시 자신의 본심을 지키고 하용에게 수작에 홀려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미셸은 이런 부남진의 당부를 조금도 귀에 새겨듣지 않았다. “아빠, 알겠어요. 참, 아빠가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건 다 바네사 씨 덕분인데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연회를 여는 건 어때요?” “너 바네사를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 그 여자가 아빠를 구한 건 사실이니 감사할 건 확실히 감사를 해야죠. 바네사 씨는 도윤 오빠가 데려온 사람이니 도윤 오빠도 함께 말이죠.” “그래, 네가 어쩌다 그런 속 깊은 생각을 다 하는구나. 앞으로 네가 바네사와 잘 지낼 수 있다면 내가 마음을 많이 놓을
미셸은 지아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말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저희 제대로 한 번 알아보자고요.” 지아도 미셸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했고 이 모습을 본 부남진이 표정이 어두워진 채 물었다. “설아,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부남진은 민연주가 꾸민 일인 줄 알고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민연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여보, 이번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나도 쟤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른다고.” 민연주는 확실히 결백했고 며칠간 줄곧 지아를 확실히 무너뜨릴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면 섣불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미셸의 기세를 본 민연주는 그녀가 분명 하용에게 지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오늘의 이 연회 역시 하용의 아이디어임을 눈치 챘다. 지금 미셸과 하용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지아의 진짜 모습을 까발리려는 것이었다. 상황이 생각했던 대로 흘러간다면 단연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지아가 진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 중에 부남진에게 해가 되는 행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미 부남진은 민연주와 미셸이 지난번 꾸민 일로 크게 실망한 상태인데 만약 지금 또 다시 일이 실패한다면 두 사람은 완전히 부남진의 눈에 나게 될 게 뻔했다. 민연주는 급히 미셸을 붙잡고 말했다. “설아, 지금 뭐하는 거야? 얼른 이리 와서 식사부터 해. 우리 딸이 너무 활기 차서 여러분들께 못 보 꼴 보이네요.” “부인, 천만에요. 좀 활기 차야 보기도 좋죠.” 하씨 가문 사람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리고 이미 사람들 앞에 선 미셸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뱀을 조종할 줄 아는 지아의 딸처럼 지아 또한 여우 같은 교활한 여자라는 걸 도윤에게 보여주려 했다. 당시 마을에서 꾸역꾸역 참았던 지아에 대한 그 분을 오늘 반드시 풀려던 것이었다. “여러분, 잠시 조용해 주세요. 전
너무 담담한 지아의 모습에 미셸은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마치 그녀가 자신을 전부터 알고 있은 듯한 느낌도 받았다. 미셸은 곧바로 머릿속으로 자기 주위의 모든 여자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절대 지금 눈 앞에 가면을 쓰고 있을 만한 그런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고 단지 지아가 자신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라고 여겼다. 절대 지아에게 다시 속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다. 한쪽에서 민연주와 부남진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두 사람 모두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아는 물에 젖은 가면의 끝부분을 쥐고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가 장기간 가면을 쓰고 있었던 탓인지 피부는 티 없이 뽀얬고 턱은 날렵했으며 입술에는 아무런 화장기가 없지만 자연스러운 핑크색을 띄고 있었다. 콧대는 아주 오똑했는데 그것은 많은 연예인들조차 갖고 싶어 하는 그런 코였고 심지어 이마도 광택이 넘쳐났으며 큰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이 얼굴이 미셸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그녀는 3년 전 처음 지아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지아의 옷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머리는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가냘픈 몸으로 복도에 서있었는데 그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모습을 본 미셸은 여자로서 세상에 이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있다는 것에 질투가 났다. 단지 지아가 미간을 조금 찌푸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말이다. 당시 미셸은 도윤이 왜 지아를 위해 모든 것을 내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려 하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은 다 지아의 여우 같은 얼굴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분노와 질투에 눈이 멀었던 미셸이 사람들 앞에서 지아의 뺨을 후려쳤던 것이다. 당시의 지아는 반격할 힘도 없이 그저 미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미셸은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 지위의 격차를 알려주려 했다. 오래 전의 그 한 번이 바로 미셸이 유일하게 지아를 이겼던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부남진의 상태가 이상하다 느꼈고 민연주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민연주는 부남진과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가 이렇게 정신줄을 놓은 모습은 본 적 없었다. ‘저 여자가 대체 뭐길래?’ 민연주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부남진이 지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했다. 도윤도 당연히 부남진의 눈빛을 발견했고 곧바로 지아를 감싸 안았다. 이미 물에 흠뻑 젖은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초라했지만 도윤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듯 싸늘했다. “은사님, 사모님, 보다시피 바네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제 전처인 소지아입니다.” “지아는 낯을 많이 가리는 지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때문에 당시에도 겨우 설득하여 은사님의 수술을 부탁한 거고요.” “그런데 저희의 선한 마음이 이렇게까지 의심을 사고 수상하게 여겨질 줄 몰랐네요. 설아 아가씨가 수도 없이 지아를 괴롭히고 못 살게 굴어도 은사님 몸의 회복을 위해 저희는 참았어요.” “하지만 설아 아가씨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 지아를 모욕하려 드니 저도 더 이상은 지아가 끝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은사님의 몸은 이미 많이 회복되었으니 이제 다른 의사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아가 조금 밖에 젖지 않은 것에 비해 도윤은 온몸이 다 젖어버렸는데 냉랭하게 말을 끝낸 뒤 그녀의 손을 잡고 현장을 벗어났다. 그 누구도 상황이 이렇게 번질 거라고 생각지 못했고 부장경이 다가가 말했다. “밖은 날이 추우니 먼저 옷부터 갈아입고 가. 안 그럼 감기 걸려. 나머지는 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그러자 도윤이 욱하여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윤은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강제로 지아를 데리고 현장을 벗어났다. 밖에 나오자마자 찬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왔고 조금밖에 젖지 않은 지아는 추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도윤은 추
미셸도 제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는데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된 걸까? 도윤은 이번 일로 미셸을 더욱 미워하게 됐을 것이다. 부남진은 현장에서 미셸을 대놓고 꾸짖지는 않았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 자신을 쳐다보던 싸늘한 눈빛에 미셸은 심장이 철렁했다. 미셸 기억 속의 부남진은 매일 아주 바쁜 아버지였는데 일 년에 한 두 번 얼굴 보기도 바쁠 정도였다. 비록 부남진은 미셸과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좋은 물건이 있을 때면 항상 첫번째로 그녀에게 보내주곤 했고 이에 미셸도 아버지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미셸의 유년시절은 매우 행복했고 부남진의 지위가 높아진 뒤 그녀는 더욱 공주님 같은 존재였는데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그녀를 떠받들어 주곤 했다. 그런데 미셸은 오늘 또 사고를 쳤고 아버지인 부남진은 이미 그녀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연주는 곧장 부남진을 따라가며 그를 위로했다. “여보, 주방에 아직 남은 음식들이 있을 텐데 내가 사람 시켜 가져오라고 할까? 몸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잘 챙겨 먹어야지.” 부남진은 손에 염주를 들고 그 염주알을 하나씩 넘기고 있었는데 표면은 이미 아주 매끌매끌하게 변해 있었다.매번 분노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부남진은 바로 이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곤 했다. 이때 부남진의 상태는 당장 폭발할 것 같은 화산이었고 마지막 조금 남은 인내심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배 안 고프니 당신도 저리 가.” 부남진은 가족에게 분노를 쏟아낼 까봐 억지로 참으며 혼자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런데 하필 민연주가 눈치도 없이 부남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도윤 그 애도 참! 전처가 병을 봐주는 게 무슨 부끄러울 일이라고 숨겨서 이 사단을 만드는지, 안 그래?” “설아도 혹시 누군가 신분을 속이고 당신을 해치려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겠어? 결과가 어찌 됐든 시작은 좋은 마음이었으니 말이야.” 순간 부남진은 더 이상 억누르던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미셸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