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를 보이는 듯 말했다. “바네사 씨는 젊고 재능도 있는데 결혼하셨나요?”지아가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현명한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죠.”백채원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윤은 자신을 보러 온 게 아니었나, 그런데 왜 낯선 여자가 결혼했는지 묻는 걸까.하지만 도윤이 오랫동안 자신을 무시하다가 겨우 찾아온 것이기에 그에게 밉보일 수 없었던 터라 그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도윤 씨...”도윤은 그제야 자신이 백채원을 빌미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백채원에게 시선을 돌렸다.몇 년이 지난 후 백채원은 많이 핼쑥해져 병들어 창백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안타까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전림을 생각해서라도 동정심이 생겼을 텐데, 그동안 지아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동정심은 조금도 없이 냉정하게 물었다.“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어떻게 지냈냐고? 암울한 그녀의 삶은 하루가 일 년 같았다.하지만 백채원은 눈물을 흘리며 또박또박 말했다.“나, 난 괜찮아요.”“대표님 걱정 마세요. 동생은 제가 잘 돌보고 있으니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백호가 입을 열며 도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백씨 가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윤은 뻔히 알고 있었고, 기억 속 어렸을 때 깡마르고 병약했던 모습이었던 백호가 이젠 어엿한 가주의 모습으로 성장할 줄은 몰랐다.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기에 도윤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어르신은 기뻐하셨다.“도윤이가 오랜만에 와서 부엌에 음식 준비하라고 해 뒀다.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술 한잔하자.”도윤은 난감한 상황에서 지아를 돌아보았다.“바네사 씨는 의술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백채원의 다리도 고칠 수 있나요?”지아는 분명 좋은 사람이 되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 자신만의 계획이 있었다.“고칠 수 있어요.” 지아가 덤덤하게 말하자 도윤은 또 칭찬을 퍼부었고 그가 아부하기 전에 지아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오늘부터 바로 침놓아도 돼요.”
백채원은 뜨거움에 욕설을 퍼부었지만 스스로 다리를 고칠 능력은 없었기에 불쌍한 처지를 한탄하며 울면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왜 이런 고생을.’백중권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얘야, 조금만 참아. 다시 일어서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할아버지, 너무 뜨거워요. 정말 너무 뜨거워요. 피부에 물집이 잡힐 것 같아요. 안 할래요, 너무 뜨거워요. 어디서 온 돌팔이 의사야, 난 당신한테 원한이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도윤 씨, 나 좀 살려줘요.”도윤과 지아가 밖에서 다과를 먹으며 눈을 감상하는 동안 안방에서는 백채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백씨 가문도 소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눈이 오면 경치가 아름다운 고풍스러운 별장이었다.백씨 가문 사람들은 백채원을 말리기 위해 집 안에 있었고 밖에는 지아와 도윤 둘뿐이었다.도윤은 지아에게 정신이 팔려 백채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그는 포도 껍질을 벗겨 지아의 입에 건넸다.“포도 먹고 기분 풀어.”이미 까진 포도고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지아는 거절하지 않았다.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사람들이 나올 테니까.지아가 입을 벌려 한입 베어 물자 도윤의 손끝이 혀끝을 부드럽게 쓸었다. 거친 손끝을 스치는 촉촉한 부드러움에 두 사람 모두 가슴이 떨렸다.‘이런 개자식, 여기가 어디라고.’지아는 불쾌한 기분이 들어 화를 내며 그를 노려보았다.도윤은 방금 지아가 머금었던 곳을 야릇하게 핥았다.“포도가 꽤 다네.”그 행동에 마치 그 옛날 나라를 망하게 했던 요물 후궁이 떠올랐지만 양복을 입은 도윤의 금욕적인 표정이 더 도발적이었다.무의식적으로 포도를 한입 베어 물자 과즙이 입가에 살짝 흘러내렸고, 도윤은 한 손으로 소파를 지탱한 채 다른 한 손으로 지아의 턱을 들어 올려 키스를 했다.지아의 눈이 커졌다.‘이 개자식이 지금 뭐 하는 거지?’자신은 복수하러 왔는데 도윤은 몰래 사랑을 나누러 온 건가?하여튼 뼛속까지 음흉한 남자다.남자의 혀가 부드럽게 감겨오며 두 사
도윤이 말한 검사가 단순한 검사가 아니었기에 지아는 속으로 변태라며 욕을 퍼부으면서 겉으로 태연하게 말했다.“시간 다 됐으니까 이제 백채원 씨 다리 치료하러 가야겠네요.”도망치듯 떠나는 지아의 뒷모습에 도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아야,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디로 도망가려고?’막 물에서 건져 올린 백채원의 발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물집도 적지 않게 잡혀 있어 백채원은 이미 고통에 울고 있었다.“채원아, 조금만 참아, 곧 끝날 거야.” 그래도 백채원을 좋아했던 백호는 우는 그녀를 다독이며 말했지만 백채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도윤을 바라보았다.“도윤 씨, 나 너무 아파요.”백호는 얼굴에 따귀라도 맞은 듯 눈빛이 점점 사악해졌다.하느님처럼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지아는 재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소계훈과 변진희의 딸로 두 사람의 좋은 점만 물려받은 백채원의 외모는 나쁘지 않았다.특히 소계훈을 닮은 쌍꺼풀 있는 눈매와 변진희를 닮은 입술과 이목구비가 인상적이었다.거만한 성격만 아니었다면 저 얼굴만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전림만 봐도 죽을 때까지 백채원을 챙기지 않았나.저 얼굴은 뭇 남성들 마음의 사랑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다.사랑하는 사람에겐 백채원의 고통이 안타까움과 연민이겠지만 도윤에겐 속 검은 짐승일 뿐이었다.백채원은 전림의 모든 은혜를 저버릴 만큼 도윤과 지아를 오늘날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지아를 그리워한 만큼 도윤은 백채원을 증오했고, 전림만 아니었다면 진작 백채원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그런 그녀의 눈물에 도윤이 조금이라도 동요할 리가 없었다.도윤은 차갑게 대답했다.“아프면 의사를 부르지 나는 왜 찾아? 내가 진통제도 아니고.”백채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온기를 가진 사람의 입에서 그토록 차가운 말이 나올 수 있을까.지아가 구급상자를 열었다.“백채원 씨, 다 울었어요? 다 울었으면 침놓을게요.”백채원은 충격에 휩싸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악
“가지 마요, 치료받을게요. 그쪽 말대로 할게요.”백채원은 유미를 바라보았다.“네가 약 발라.”유미는 두 다리 가득 번쩍이는 작은 물집들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저, 전 못해요. 도련님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백중권은 이유도 모른 채 이렇게 말했다.“그래, 세심하고 담대한 백호가 해.”백중권의 눈에 백호는 자상한 오빠였다. 백채원이 친동생은 아니었지만 친동생보다 더 잘 챙겼다.백호는 가문을 이어받은 이후 출신이 다른 백채원을 하대하지 않고 오히려 더 살뜰히 챙겼기에 백중권은 마음이 놓였다.백채원은 입술을 깨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걸 알고 있던 지아만이 흥미롭게 두 사람을 지켜보며 앞으로 이어지는 나날들이 따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만지기만 해도 아픈 물집을 지아가 터뜨리기까지 하고 약을 바르라고 하자 아무리 백호라도 내키지 않았다.“조금만 참아.”단호한 백호의 손길에 백채원은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겨우 물집을 다 터뜨리고 옅은 푸른색 연고를 바르는데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고춧가루까지 한층 더 뿌린 것 같았다.“아악!”백채원은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온몸이 고통으로 떨리고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이번에는 통증으로 곧바로 기절해 버려 욕을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지아가 천천히 대답했다.“제가 직접 만든 연고인데, 자극이 심하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일반 약에 비해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어서 30분 이내에 다리의 변화를 볼 수 있지만... 대신 백채원 씨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올 거예요.”백호가 서둘러 물었다.“혹시 건강에 위협이 되지는 않나요?”지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세상에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는 없죠.”그렇게 말하며 백씨 가문 사람들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침 주머니를 꺼내 백채원에게 침을 놓기 시작했다.백채원을 위해 지아는 일반 침보다 몇 배나 굵은 침을 선택했다.“선생
“당신 대체 누구야? 할아버지, 저 이 사람한테 치료받기 싫어요.”백채원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 여인에게서 자신에 대한 증오와 지아의 잔상을 보았다.지아는 그때 떠난 이후 소식이 끊겼고 누군가는 그녀가 오래전에 죽었다고 말했다.지아가 지금 어디에 있든 절대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지아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전 단지 백채원 씨와 이 대표님 말씀을 듣고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뭘 그렇게 긴장하세요, 백채원 씨? 설마 떳떳하지 못한 짓이라도 했나요?”부모를 모두 죽인 백채원은 죽어서도 억겁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채원아,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다른 의사 스케줄이 꽉 찼어. 우리도 오랫동안 연락해서 모셔온 분이니까 괜한 생각 말고 아파도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며 조금만 참아.”“참으라고, 그럼 얼마나 더 참아야 해?”“3개월 정도 조리하면서 경과가 좋으면 시간을 더 줄일 수도 있어요. 조리가 끝나면 수술할 거예요.”“3개월이나!”백일 가까이 매일 이런 고문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백채원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마침내 모든 침이 다리에 꽂히고 침을 놓을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백채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온몸은 땀을 뻘뻘 흘렸다.“30분만 있어요.”백채원은 백호에게 짓밟히는 게 지옥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고통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날이 어두워지자 지아는 침을 뽑으며 당부했다.“앞으로는 내가 오기 전에 미리 발을 담그고 약을 발라요. 전 침만 놓을 테니까, 알았죠?”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식사하고 가시죠.”“네, 이번만이에요. 앞으로는 제 식사 준비할 필요 없어요.”지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모습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인상을 주었다.“알겠습니다.”백호는 4억짜리 수표를 건넸다.“이건 진료비입니다. 제 동생이 일어설 수 있다면 그때 더 두둑이 챙겨드리겠습니다.”지아도 마다하지 않았다.“그러세요.”저녁 식사 자리에서 백채원은 일어날 기운이
줄곧 존재감이 없던 백호는 우연히도 이곳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고, 지아의 시선은 백호의 얼굴로 향했다.“내가 A시 사람인지 아닌지 백호 씨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요.”처음부터 지아가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인상을 준 것도 성가신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괜히 사람들과 엮이기 싫어서 성격 나쁜 이미지를 주려는 것이었다.하지만 자신이 부탁하는 입장도 아닌데 그 사람들 생각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백호가 머쓱하게 웃었다.“그렇죠, 다만 아직 3개월 정도 남았으니까 바네사 씨에 대해 좀 더 알아가다 보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백호 씨가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진료하러 온 거지 친구 사귀러 온 게 아닙니다.”상대의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백씨 가문은 나름 재벌가 가문인데 의사인 그녀가 뭐라고?‘누구한테나 다 저러네.’지아가 백호에게 대꾸를 하자 백채원은 기분이 좋았다.백중권 말고 정상인 사람이 없는 식사 자리는 무척 어색했다.지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겠다고 했고 백중권은 도윤의 손을 잡으며 남아서 같이 술 한잔하자고 했다.도윤은 지아가 떠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 중요한 일이 있다며 거절했다.그는 서둘러 달려 나가 지아가 차에 타기 전에 가까스로 붙잡고 그녀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아 진봉에게 던졌다.그리고는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아를 자신의 차로 끌고 들어갔다.“도윤 씨, 그만 좀... 읍...”도윤은 거침없이 지아의 입술을 머금었고 앞에서는 진환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도윤이 이렇게 대범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점점 더 멍청한 왕처럼 변해가고 있었다.“지아야, 장민호랑 좋은 시간 보냈어?”도윤이 지아의 입술을 깨물었다.두 사람이 친밀한 접촉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아가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게 화가 났다.지아는 세찬이 알게 된 이상 도윤에게 숨길 수 없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가 정민호가 장민호라는 걸 그렇게 빨리 짐작할 줄은 몰랐다.“
지아는 도윤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가장 친하던 형제는 자신 때문에 죽고 백채원을 보살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그런데 채원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아는 자신한테 이런 일이 생겼다면 도윤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채원은 조금씩 도윤의 인내심을 갉아먹었고 이제 도윤조차 채원을 방치했다.이 이름이 들리자, 도윤은 냉소를 터뜨렸다.“그 이름이 네 입에서 나오니 정말 역겨워. 내가 은혜를 갚을 상대는 전림이지, 네가 아니야. 그러니 백채원, 난 너한테 해줄 만큼 해줬다고 생각해.”도윤은 채원의 눈을 주시하며 천천히 말했다.“지아를 크루즈에서 밀던 순간, 넌 죽어 마땅했어!”그리고 차창을 올린 도윤은 빠르게 액셀을 밟고 떠났다.채원은 온 힘을 다해 달렸으나 결국 눈밭에 넘어지고 말았다. 손을 뻗어 도윤을 잡고 싶었지만 닿지 않았다.“도윤아, 제발 날 떠나지 말아줘. 내가 잘못했으니까 정말 잘못했으니까 제발 날 떠나지 마.”백호가 천천히 채원의 뒤로 걸어와 단숨에 그녀를 안아 들었고 귓가에 대고 말했다.“그러니 얌전하게 있으면 좋았잖아.”“이거 놔! 백호,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백호는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나보고 떠나라고? 넌 꼭 이도윤이 아니면 안 되겠어? 그런데 네까짓 게 소지아의 눈곱만큼이라도 되는 줄 알아? 너 같은 사람이 한 트럭이라고 해도 이도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야.”정확하게 아픈 곳이 찔린 채원은 소리를 치며 현실 부정을 했다.도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제 겨우 딱 한 발짝 남겨두었다!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걸음이 잘못되었으므로 결과는 걷잡을 수 없이 뒤틀렸다.차 안의 도윤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지아를 품에 안은 채 냉기만 뿜을 뿐이었다.차 안이 너무 조용하자 지아는 손가락을 들어 도윤의 허리를 찔렀다.“말 좀 해봐.”“지아야.”도윤은 지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크루즈에서 떨어지던 날, 사실 나도 그 사람을 죽일 만큼 원망했
차는 집이 아닌 호텔을 향했다.엘리베이터에 오른 소지아가 물었다.“여긴 왜 온 거야?”도윤이 지아의 코끝을 긁으며 말했다.“그동안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너무 짧았어. 우린 부부였지만 보통의 커플보다도 못한 사이였지. 그러니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나하나 해보고 싶어.”밝은 조명이 도윤을 비추고 부드러운 시선은 지아를 향했다.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도윤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이어 도윤이 허리를 숙이고 지아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100층이 넘는 건물에서 하면 더 짜릿할 것 같지 않아?”“...”‘이런.’도윤은 뻔뻔하게 지아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띵-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지아는 거의 떠밀리듯 엘리베이터에서 나갔다.방문이 열리고 지아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스위트 룸은 보이는 모든 곳이 장미로 장식되었고 카펫에도 장미꽃이 깔려있었으며 장미 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지금...”도윤은 지아를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메이크업 지워. 키스하는 게 바람피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지아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지아는 메이크업을 지우고 샤워도 했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드레스로 갈아입었다.도윤이 참 꼼꼼하다고 생각하며 지아는드레스를 입었고, 머리를 예쁘게 땋아 올렸다. 그리고 화장대에 있는 하얀색 베일을 발견했다.‘또 무슨 서프라이즈를 하려는 거야.’문을 열자, 방안의 모든 조명이 꺼졌고 장미꽃 위의 예쁜 별빛이 방안을 채웠다.지아는 어느 구석에서 사람이 뛰쳐나와 컨페티를 터뜨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다.하지만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도윤은 꽃으로 만든 하트 위로 장미꽃 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지아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양팔에 팔짱을 끼고 말했다.“아니, 지금 촌스럽게 프러포즈 같은 걸 하려는 거야?”그 말이 끝나고 도윤은 바로 무릎 한쪽을 꿇고 말했다.“지아야, 우린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고 프러포즈도 하지 못했잖아. 이건 그냥 형식적인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