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후진했다.차창이 내려가자, 유남준은 손에 들고 있던 노트북을 끄고 박민정을 보았다.오늘 그녀는 아이보리 색의 등이 드러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하얀 피부를 더 돋보였다.유남준의 눈동자엔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녀와 조하랑이 탄 차가 유씨 본가에 도착했을 때 경호원이 이미 알려주었기 때문이다.“오랜만이야.”그는 웃는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대답했다.“그러게요. 오랜만이에요.”“타.”유남준은 더 말하지 않았고 박민정도 사양하지 않고 그의 곁에 앉았다.“날 찾아온 거야?”다른 사람들은 이 길을 전혀 몰랐다. 오직 그의 기사만이 차를 몰고 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여기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요.”박민정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했다.유남준은 이 말을 듣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기사에게 말했다.“먼저 내 방으로 가요.”유남준이 말한 건 그가 본가에서 살고 있는 방이었다.“네.”박민정은 아직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유남준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기억을 찾고 싶다면 먼저 우리 신혼 방부터 가봐야 해.”두 사람의 신혼 방은 원래 두원 별장에 있었다. 하지만 결혼한 날엔 본가 쪽에서 보냈다.유남준의 방은 전처럼 단일한 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방에 들어간 후, 그는 박민정 앞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먼저 슈트 재킷을 벗었고 그다음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박민정은 놀라 멍해 있었다.그녀의 몸은 조금 경직되었다.유남준이 왜 이러는지 잘 몰라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그는 여유 있게 박민정을 보았는데 그녀의 얼굴이 이미 빨개진 것을 발견했다.유남준은 일부러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왜 날 보지 못해?”“기억 찾고 싶다며.”남자의 뜨거운 시선은 그녀를 위로부터 아래까지 훑었다.박민정은 얼굴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원래 그녀는 유남준을 꼬시려고 했는데 지금은 왜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그의 목소리는 허스키했다.그 자신만 알고 있었다. 계속 눌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이다.하지만 박민정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없었다. 그녀가 도대체 뭘 하려는 지 알아야 했으니까.박민정은 멈칫하더니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었다.“싫어요?”유남준은 이제야 그녀에게 목적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갑자기 말을 돌렸다.“뭘 오해한 거 아니야? 난 방금 네가 기억을 되찾도록 도왔을 뿐이야.”“오늘은 이만하자. 연회에 참석해야 해.”박민정의 안색은 별로 졸지 않았다.적어서 육, 칠 분 입을 맞추었는데 다 그녀를 갖고 논 거였다니.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손을 그의 몸에서 뗐다.유남준은 먼저 옷을 갈아입은 후 그녀와 함께 연회장에 갔다....연회엔 김인우와 그의 할아버지인 김훈도 함께 참석했다.김훈은 다른 가장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이 기회를 빌어 김인우에게 좋은 아내를 골라주고 싶었다.김인우는 할아버지를 이기지 못해 연회에 참석했다. 그는 먼저 어르신에게 생신 축하 인사를 올린 후 김훈의 명령하에 강제적으로 스무 명의 여자들을 만나봐야 했다.“오늘 말을 안 들으면 집에서 나가! 난 너 같이 못난 손자 없다.”김훈은 손자를 꾸짖었다.“나이가 몇인데 아내도 찾지 못하다니, 정말 우리 집안에 먹칠을 하는구나!”김인우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그는 여자가 부족했던 적이 없었으니까.“알겠어요.”할아버지 말을 거역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심장병이 발작할까 봐 두려웠다.의사는 절대 화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 화가 심장에 해로우니까.김훈은 또 요란하게 차려입은 이지원을 보며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잊지 않고 손자에게 경고했다.“잘 기억해 둬. 이 이지원만은 안 돼!”김훈은 사람을 보는 눈이 대단했다.몇 년 전에 이지원이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는 것을 조사해 냈었다. 그리고 지금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가 아주 많은 여우였다.“걱정하지 마세요.”김인우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 박민정이라는 것을 안 후부터 이지원에게 조
이지원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다리를 안고 있는 아이를 보았는데 눈동자엔 귀찮은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티를 내지 않고 허리를 굽혀 웃으며 말했다.“응, 나야.”“꼬마야, 너 왜 혼자 여기 있어? 부모님은?”그녀는 눈앞의 아이를 자세히 보았다. 아이의 오관은 입체적이었고 큰 눈은 사람을 홀릴 정도였다.딱 보아도 아이의 부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박예찬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지원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줌마가 제 아빠를 뺏었다면서요? 저한테 아빠를 돌려주실 수 있어요?”이지원의 몸은 순간 경직되었다.주위의 재벌 집 사모님들은 이 소리를 듣고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눈동자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들은 남자를 통해 지위를 올리려는 연예인을 가장 싫어했다.“정말 파렴치하네!”“유 대표님을 가졌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어떻게 다른 남자를 꼬셔?”“이러니까 유 대표님이 이 여자랑 결혼하지 않았지. 그냥 갖고 놀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이지원은 멘탈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간신히 화를 참고 웅크리고 앉아 박예찬을 바라보며 말했다.“꼬마야, 잘못 기억한 거 아니야?”“난 널 모르고 네 아빠도 몰라.”이렇게 말한 후, 그녀는 다시 박예찬에게 다가가 두 손을 아이의 어깨에 놓고 낮은 목소리로 협박했다.“나쁜 놈, 계속 헛소리했다간 물고기 먹이로 바다에 던져버릴 거야!”이지원은 박예찬이 그저 평범한 아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연기가 그렇게 좋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일 초 후, 아이는 그녀의 손을 힘껏 치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아줌마,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물고기 먹이로 절 바다에 던지지 말아 주세요...”이지원은 정말 아이의 입을 막고 싶었다.“아니에요...저 아이가 거짓말하고 있어요...”그녀는 급하게 해명했다.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다. 어쩔 수 없이 여자를 만나야 했던 김인우도 이곳을 보았다.그는 첫눈에 아이를 알아보았다.
“네.”우선 이 나쁜 놈을 기진맥진하게 만들 것이다.어쨌든 지금 어르신의 생일 파티가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김인우는 지금 시간이 많았다....한편 유남준과 박민정은 선후로 연회장에 도착했다.박민정은 유씨 집안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싫어 유남준이 들어간 후에야 들어갔다.유남준은 그녀의 속셈을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까 해프닝을 겪고 이지원은 어렵게 연회장에 있는 기자를 매수했다.유남준이 온 걸 보자 그녀는 얼른 상태를 조절하고 다가갔다.“오빠, 연회도 이미 시작했고 다들 어르신께 축하 인사를 드리는데 왜 이제야 왔어요? 나 오빠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유남준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한 일을 보고하는 버릇이 없었다.그래서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다음엔 기다리지 마.”이지원은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뒤에 들어오는 박민정을 본 후 뭔가 깨달았다.이지원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유남준이 오자마자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을 앗아갔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유씨 집안의 젊은 대표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고영란은 아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유남준은 우선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하얀 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있으나 눈만은 밝은 어르신에게 생신 축하한다는 인사를 올렸다.이지원도 이 기회를 빌어 상류 사회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싶었다.“할아버지, 저도 오늘 선물을 갖고 왔어요.”어르신은 비록 이지원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고영란처럼 손자가 하루빨리 결혼하기를 바랐다.게다가 며칠 전 이지원이 쓴 노래는 그녀가 얼굴만 반지르르한 게 아님을 증명했다.그래서 그는 이지원이 주는 선물을 묵묵히 받았다.그녀는 빛깔이 엄청 좋은 연옥을 선물했다.이런 물건은 재벌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 받았으니 이지원이 이미 유씨 집안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설명했다.박민정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서 그들의 의논 소리를 들었다.“정말 오리가 백조로 되었네.”
그녀에게는 아들의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했다.“아버지, 진정하세요. 제가 바로 쫓아낼게요.”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이지원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향한 날 선 눈빛에 이상함을 감지했다.고영란은 씩씩거리며 오더니 핸드폰을 그녀의 앞에 내던지며 말했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라!”이지원은 핸드폰을 한 눈 보고는 단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그녀가 막 입을 열고 해명하려 할 때, 고영란이 말을 가로챘다.“여기서 더 창피당하고 싶지 않으면 네 발로 나가라.”유씨 집안에서 연예인 한 명 내쫓는 건 파리 내쫓는 것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이지원은 자기가 이런 꼴로 쫓겨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가정부의 차에서도 한참을 믿기 힘든 듯 멍하니 있었다.그러다 불현듯 박민정이 했던 말이 떠오르며 깨달았다.이 모든 건 그녀가 벌인 짓이란걸!...한편, 조하랑도 이지원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그 뉴스는 애초에 그녀와 박민정이 함께 계획한 일이었다.그리고 일부러 이 타이밍에 공개한 것이다.이지원이 쫓겨나고 나서 그녀는 박민정에게 문자를 보냈다.[저 불여시한테 제대로 골탕 한 번 먹였네. 그러게 누가 나대래.]조하랑은 이지원의 불쌍한 모양새를 보려고 몸을 일으켰다.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보인 건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었다.“박예찬?”그가 왜 여기 있는 건지 어리둥절하던 그때,보디가드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한 손으로 그를 들쳐업고 김씨 가문의 도련님인 김인우에게로 데려갔다.박예찬은 그 짧은 두 다리로 아등바등했지만 그들의 긴 다리를 이겨내진 못했다.게다가 도망치다가 힘을 다 써버린 탓에 결국 꼼짝도 못 하고 잡혀버렸던 것이다.그는 자기가 아직 어린아이인 것이 너무 싫었다.“이 양아치 같은 놈, 겨우 잡았네.”김인우는 여유롭게 그를 보며 말했다.박예찬은 여전히 그에게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아저씨, 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전 아저씨 몰라요.”그러자 김인우가 기가 찬 듯 웃었다.
내가 내 아들 패겠다는데 뭐가 문제지?김인우는 이 여자가 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내가 먼저 내 아이임을 인정하게 만들려고.“나한테 접근하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네요? 전에 있었던 일도 다 당신이 시킨 거지?”조하랑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건 박예찬도 마찬가지였다.그는 두 모자를 바라보며 서늘하게 말했다.“무슨 심산인지는 몰라도 아이는 내가 책임집니다. 하지만 여자는 아니에요.”조하랑은 어이가 없었다. 박민정이 그녀에게 김인우는 쓰레기라고 말해주긴 했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정말 굉장한 쓰레기인 것 같다.조하랑은 치미는 화를 더 참지 못하고 손을 올려 김인우의 곱상한 얼굴에 뺨을 후려쳤다.김인우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책임 같은 소리 하네. 개나 소한테 시집가는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는 안 가!”김인우는 원래 조용한 곳에서 박예찬을 천천히 훈계할 생각이었는데 조하랑이라는 변수가 생길 줄은 몰랐다.설상가상으로 소란스러운 상황에 빠르게 구경꾼들이 몰렸다.2층에서 자기 집안 큰손자를 유심히 지켜보던 김인우의 할아버지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랐다.“저 아가씨는 뉘 집 자식인가?”옆에 있던 비서가 빠르게 대답했다.“조씨 집안 큰딸입니다. 이름은 조하랑이고요.”“내 미래 손자며느리로 저 아이가 딱 좋겠군.”감히 김씨 가문의 큰손자를 때린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한편, 박민정도 그 셋을 발견했다.그녀는 박예찬이 왜 이곳에 있는지, 그것도 김인우와 어쩌다 시비가 붙은 건지 도통 이해가 안 갔다.박민정이 유남준이 있는 방향으로 슬쩍 시선을 옮겨보니 그도 이미 이쪽 상황을 눈치챈 듯했다.박민정은 다급히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어 김인우와 엮이지 말고 예찬이부터 데려가라 일렀다.한 시간 후,개인 별장 밖에는 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방 안에는 박민정과 조하랑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박예찬이 서있었다.“예찬아, 네가 왜 유 씨네 저택에 와있는 거니?”박민정이 차
조하랑은 그녀가 찾은 자료를 박민정에게 보여줬다.자료엔 이지원이 해외에서 어떻게 남자를 이용해 가수가 되었는지에 관한 모든 과정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이렇게 더러운 여자인 줄은 몰랐네.”“난 알았어.”박민정이 말했다.“그럼 왜 유남준 씨한테 말 안한거야?”조하랑은 어리둥절했다.그녀는 원래 박민정에게 이 사실을 알려 유남준이 알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그럼 두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박민정도 그녀의 마음을 알고 씁쓸하게 말했다.“남준 씨도 사람 하나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야.”조하랑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그럼 대체 왜 이지원 그 여자를 좋아한 거래? 꾀를 쓰는 데에 반하기라도 한 거래? 난 어떤 남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박민정도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녀도 유남준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를 선택한 것처럼 유남준도 이지원이 좋은 여자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한 걸지도.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그 사람이 좋든 나쁘든, 착하든 말든 그 무엇도 상관없게 만드는 것.그러니 팜므파탈이 그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박민정은 조하랑을 다독이며 말했다.“괜찮아. 어차피 나 이제 그 사람 사랑하지도 않아.”“응.”고개를 끄덕이는 조하랑.이튿날 아침 아홉 시,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린 누군가.“톱스타 이지원 씨가 유씨 집안 축하연에서 추태를 부렸다는 소식입니다. 이지원은 아이를 괴롭히고 표절했다는 이유로 시댁 눈밖에 밀려나 집에 발을 들인지 십 분 만에 쫓겨났다고 합니다.”인터넷은 아침부터 발칵 뒤집혔다.한편, 주상 엔터테인먼트는 이지원의 지시로 빠르게 실시간 검색어를 지우기가 바빴다..하지만 그녀의 세력이 김인우만큼 크지 않다 보니 실시간 검색어는 내려갈 기미가 안 보였다.어쩔 수 어뵤이 이지원은 유남준의 비서 서다희에게 도움을 청했다.이건 그녀뿐만 아
멀리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에 몰두한 모습의 그녀가 보였다.유남준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갑작스러운 소리에 박민정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유남준의 얼음장 같은 얼굴을 보았다.오늘 아침에 이지원에 대한 뉴스가 보도 된 데다 예전에 그녀를 위해 나서던 유남준의 모습이 떠오르자 박민정은 본능적으로 그가 왜 찾아온 건지 알 것 같았다.이번에도 이지원을 위해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온거라 생각한한 박민정은 몸을 일으킨 후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경계 태세에 돌입한 그녀를 보면서도 유남준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아이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지금 당장 나랑 집에 돌아가!”지금 그는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척하는 것 따위 신경 쓸 마음이 없었다.박민정은 황당했다.집?집에 가자고?그녀는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유남준의 얼굴을 한 눈 보았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유남준은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더 말하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그의 걸음이 너무 빠른 탓에 박민정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끌려갔다.그녀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차가 주차된 곳까지 끌려갔다. 유남준은 운전석에 앉아서도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박민정은 이런 그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절 데리고 어딜 가는 거예요?”유남준은 차 시동을 걸고 얇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말했다.“두원!”박민정은 그제야 그가 집에 가자고 했던 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그녀는 기억을 잃은 연기도 잊지 않았다.“두원이 어딘데요?”“대표님. 잊으셨나 본데, 저희는 이미 이혼했어요.”그 말에 유남준은 브레이크를 확 밟으며 붉어진 눈시울을 하고서 박민정을 바라보았다.“우리가 이혼한 건 어디서 봤어?”멈칫하는 박민정.둘은 이미 이혼서류를 낸 상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와 이혼숙려기간 때문에 이혼이 정식으로 성립된 상태는 아니었다.하지만 4,5년을 죽은 사람으로 살았는데 둘 사이 결혼생활은
방 안에서는 이미 유성혁이 상의를 벗은 채 박민정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그때, 최현아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여보!”“뭐야?” 유성혁은 갑작스러운 방해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유남준이 돌아왔어요.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까 얼른 옷부터 입어요!” 최현아가 다급하게 외쳤다.유성혁은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어떡하지? 어떡하지? 유남준이 내가 박민정과 함께 있는 걸 알게 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에요. 얼른 옷 다 입고 숨어요. 여기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최현아가 단호하게 말하자 유성혁은 허겁지겁 옷을 걸쳐 입으며 당부했다.“꼭 나랑 관련 없는 일처럼 해줘. 아직 아무것도 못 했다고!”“알았어.” 최현아는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를 방에서 밀어내고 나서야 최현아는 박민정 쪽으로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동서.” 그녀는 살며시 불렀다.박민정은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최현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유남준이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기를.그녀는 박민정의 몸을 가볍게 감싸 이불을 덮어준 후,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잠시 후, 약효가 다소 풀렸는지 박민정은 흐릿한 눈빛으로 천천히 눈을 떴는데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웠다.그때였다.쿵!문이 거칠게 열리며 유남준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민정이는 어디 있어요?”최현아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앞을 막아섰다.“남준 씨! 갑자기 웬일이에요? 마침 남준 씨한테 전화하려던 참이었어요.”유남준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민정이는요?”“아마 술을 잘 못 마셔서 그런가 봐요. 지금 쉬고 있어요. 원래 남준 씨 방으로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최현아가 태연한 척 대답했다.분명 박민정은 오늘 칵테일을 한 모금 정도 마셨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냥 음료나
박민정은 홀로 홀 대각에 앉아 있다가 어딘가 불편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이 감각... 낯설지 않았다.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녀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최현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동서, 벌써 가려고?”“네.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가볼게요.”최현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내가 바래다줄까? 어차피 나도 딱히 할 일 없는데.”“아니에요, 괜찮아요.”박민정이 정중히 거절하자 최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물었다.“그런데 남준 씨는? 어디 갔어?”“일이 있어서 나갔어요.”그 말을 듣자 최현아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그래? 그럼 다행이네. 내가 데려다줄게, 길을 잃으면 곤란하잖아.”“괜찮아요. 길은 기억하고 있어요.”설령 잊는다 해도 하인들에게 물으면 될 일이었다.박민정은 가볍게 웃으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걸음을 옮길수록 몸이 이상했는데 발이 휘청이고 머리가 묘하게 어지러웠다.최현아는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고도 모르는 척 다가왔다. 이대로 그녀를 그냥 보낼 리 없었으니까.“괜히 사양하지 마.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최현아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가 따라오든 말든 지금은 어서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하지만 점점 시야가 흐릿해졌다.혹시 몸에 다시 문제가 생긴 걸까? 머릿속이 어지럽고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마지막 남은 의식으로 박민정은 힘겹게 입을 뗐다.“...구급... 구급차를 불러줘요...”그러나 그녀가 완전히 쓰러지기 직전, 최현아가 그녀를 붙잡았는데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구급차? 정말 순진하기도 하지.”최현아는 비웃듯 말하며 박민정을 외딴 곳으로 끌고 갔다. 곧 어둠 속에서 몇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최현아가 지시한 대로 움직였다.박민정은 서쪽에 있는 빈집으로 실려 갔다.최현아는 남자들을 향해 싸늘하게 경고했다.“오늘 일
박민정이 고개를 들자 날카로운 기색이 어린 최현아의 시선과 마주쳤다.“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저쪽에서 사촌 언니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같이 갈래?”최현아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요, 전 혼자가 좋아서요.”박민정은 조용히 거절했다.최현아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걸었지만 그 눈빛은 싸늘했다.“그래? 알겠어.”박민정은 그녀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최현아는 곁에 앉았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자 최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사실 나도 시끄러운 분위기는 별로야. 어차피 동서도 혼자고, 나도 혼잔데, 같이 있어도 괜찮잖아?”이렇게 나오니 박민정은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여기는 유씨 가문 안이었기에 자신이 뭐라고 그녀를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박민정은 시선을 돌려 멀리 있는 유씨 가문의 젊은 친척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 어울려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이, 최현아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슬쩍 박민정의 잔을 힐끔거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교활한 빛이 스쳤고 이내 일부러 놀란 척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동서, 이것 좀 봐.”그녀가 화면을 내밀자 박민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화면에는 에릭에 대한 연예 뉴스가 떠 있었다.박민정이 그 기사를 읽는 사이, 최현아는 잽싸게 손을 뻗어 박민정의 잔을 건드렸다. 긴장한 듯한 그녀의 손길이 빠르게 움직였다.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에릭 씨, 동서네 회사 직원 맞지? 설마 남자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가십 뉴스잖아요. 아마 거짓일걸요.”박민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에릭이 그런 취향이라면 연지석과 그렇게 티격태격할 리가 없었다. 연지석처럼 잘생긴 남자가 앞에 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건 정말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였다.“그렇지? 요즘 매체들은 자극적인 소문을 너무 많이 퍼뜨려.”최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거두었다. 그러더니 문득 박민정에게 물었다.“오늘 밤엔 안 돌아가겠네?”
“뭐?”유성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고 곧이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비웃었다.“그 여자, 가식 떨기는 끝내주더니. 진짜 정절을 지키는 여자인 줄 알았잖아. 그리고 유남준, 그렇게 대단하다면서? 어째서 자기 동생 하나 제대로 손보지도 못하는 거야?”유성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불쾌했다.최현아는 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는데 그가 무슨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그러나 이제 와서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여보, 당신이 예전부터 그 여자를 원했던 거, 난 다 알고 있어요. 내가 도와줄게요.”유성혁은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당신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당신밖에 없어.”최현아는 그가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모습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당신이 날 사랑하는 건 알지만 동시에 여전히 민정 씨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난 다른 여자들처럼 질투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그녀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긴 듯했다.유성혁은 원래부터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순간적으로 그의 흥미가 자극되었다.“당신 정말 최고야. 하지만 박민정은 너무 고고한 척하는 년이잖아. 절대 동의하지 않을걸? 그리고 유남준이 알면 난 팔다리가 부러질 거라고.”최현아는 그가 결국 겁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여보, 당신은 참 어리석어요. 민정 씨가 거절하는 건 당신이 어디 가서 이 사실을 떠벌릴까 봐 그런 거죠. 내가 잘 설득하면 오늘 밤엔 당신 것이 될 거예요.”“정말이야?” 유성혁의 눈빛이 반짝였다.“당연하죠. 그러니까 깨끗하게 씻고 기다리고 있어요.” 최현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유성혁은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좋아! 약속한 거다!”그는 들뜬 표정으로 손을 비비며 자리를 떠났다.최현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박민정은 유남준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마치 새롭게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남준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녀가 감사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한테 고맙다는 말 하지 마.”둘은 부부였으나 박민정은 늘 그에게 예의를 차렸다.이 말에 박민정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아, 미안해요, 깜빡했어요.”“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마.” 유남준이 덧붙이자 박민정은 말문이 막혔고 무슨 말을 해도 틀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알겠어요.”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그 모습을 본 유남준은 다시금 마음이 아려왔다. “가자, 좀 쉬어야지.”“네.”박민정은 그의 뒤를 따라 두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하자 유남준은 하인들을 모두 내보냈고 집 안에는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이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던 박민정은 소파에 앉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말했다. “맞다, 아이들은요?”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처리하던 유남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아이들은 본가에서 안전해. 게다가 오늘 가문의 여러 친척들도 모일 건데 아이들이 그 사람들과 친해지면 나중에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리를 비우는 게 실례가 되진 않을까요?”“아니.” 유남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어.”그의 말에는 어떠한 허세도 섞여 있지 않았고 박민정은 그의 능력을 믿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그녀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업무를 처리하던 유남준은 가끔씩 시선을 들어 그녀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목젖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예전에는 일할 때 누구도 그의 집중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지 박민정이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이었다.그가 얼마나 그녀를 바라보고
“아버지, 드세요. 이건 제가 직접 정성 들여 고운 탕이에요. 백세를 넘긴 한의학자의 비법을 배워 만든 거라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꽤 걸렸어요. 드시면 장수하실 거예요.”유석진이 아부하듯 말하자 유명훈의 눈이 반짝였다.“정말이냐?”“그럼요. 제가 아버지를 속이겠습니까? 제가 해외에서 돌아온 이유도 아버지를 잘 모시고 장수하시게 하려는 거죠.”유석진은 유남준의 믿음직스럽지 못한 아버지와 달리, 유명훈의 환심을 사는 데 능숙했다.그래서인지 유명훈은 늘 그쪽을 편애했다.“석진아, 우리 집에서는 네가 가장 효심이 깊구나.” 유명훈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물론 이 나이가 되면 누구나 늙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하지만 유명훈은 늙고 싶지 않았고 죽음은 더더욱 두려웠다. 그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병원에서 수혈을 받기까지 했다.“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동생과 아이들도 다 효심이 깊어요.” 유석진은 의미심장한 눈길을 유남준에게 보냈다. “그렇지, 남준아?”유남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말로 유명훈도 그의 성격을 아는 터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다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으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히 있어라.”그렇게 말했지만 모인 이들은 각자 복잡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유명훈은 문득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민정아.”“네, 할아버지.” 박민정이 공손하게 대답하자 유명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불렀다.이제 모두의 시선이 박민정에게로 향했다.“민정아, 넌 이제 우리 유씨 가문의 중요한 일원이야. 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냐?”“많이 나아졌어요.” 박민정은 조용히 대답했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완전히 회복되면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회사 일은 남준이에게 맡기고 말이다.”유명훈은 여자는 집에서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그가 유남준과 박민정의 결혼을 허락한 것도 당시 박민정의 가문이 유씨
박민정은 그에게 안긴 채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고 가슴 한편이 알 수 없는 먹먹함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가만히 손을 들어 유남준의 등을 두드렸다. “됐어요, 이제 괜찮아요. 자요.” 유남준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더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박민정은 저항하지 않고 그의 품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풀어냈다.이제는 그녀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발코니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생각에 잠겼다.새벽 여섯 시가 되자 유남준은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신에게 덮여 있는 담요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있었다.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가 돌아왔을 때 박민정이 곁에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녀는 지금 어디로 간 걸까?혹시 꿈을 꾼 걸까 싶어 그는 2층 방으로 올라가 욕실에서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다시 잠을 청했다.박민정은 그의 움직임을 들었지만 상태가 괜찮아 보이자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아침 여덟 시, 유남준은 평소처럼 정시에 일어났고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는 우아한 태도로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는데 박민정은 그의 맞은편에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다가 놀라고 말았다.어젯밤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 오늘은 마치 전혀 취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보였다.유남준은 그녀의 시선을 감지하고는 눈을 들어 그녀의 맑은 눈과 마주쳤다. “왜?”“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박민정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식사를 이어갔다.두 아이도 식탁 위의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결국 참지 못한 박윤우가 작은 목소리로 여름 박예찬에게 물었다. “형, 나 왜 집이 이상한 것 같지?”“조용히 하고 만두나 먹어.”“아, 응.”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가족들은 청명을 맞아 조상을 기리기 위해 본가로 향했다.차가 본가 대문 앞에 멈추자마자 고영란이 반갑게 달려 나왔다. “윤우야, 예찬아, 어서 할머니한테 오렴.”유남우도 그녀 옆에 서서 서슴없이 박민정을
유남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택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확인했는데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박민정은 다가가기가 너무 부끄러워 멀리서 그 여자 형체랑 똑같이 제작된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마음에 들어요? 저는 상관없긴 하거든요.”유남준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런 기괴한 물건에 그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박민정에게 물었다.“민정아,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그의 말에 박민정은 깜짝 놀랐다.“왜요?”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구매한 물건이었다.“오해하지 말아요. 사람마다 생리적 욕구가 있기 마련이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희는 부부잖아요. 그렇죠?”유남준은 그녀가 자기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역시나 박민정은 그가 왜 화 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의 뒤를 따라가며 다시 설명했다.“원래는 다른 여자를 찾아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저희는 현재 부부잖아요. 또 제가 기억을 잃기 전에는 서로 사랑했다고 해서 그렇게 처리하는 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유남준은 순간 머리가 아파서 소파에 털썩하고 앉았다.“알겠으니까 그만 말해.”‘날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지?’‘그저 성욕을 못 참아서 안달 난 짐승으로 생각하나?’박민정은 그제야 입을 꾹 닫았는데 순간 거실의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 것 같았다.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박민정이 그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다른 일 없으면 전 이만 자러 갈게요. 내일 옛 저택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러나 유남준은 여전히 토라진 말투로 답했다.“응. 마음대로 해.”그러나 박민정은 그가 화 났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다.유남준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더니 멍한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그냥 이대로 가는 거야?”그리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제우스 클럽.방성원과 유남준은 술을 마시며
그리고 침대에 던져지고 나서야 박민정은 이게 무슨 뜻인지 깨닫고 재빨리 이불을 몸에 둘렀다.“오지 말아요!”그러나 유남준의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은 채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민정아, 나도 남자야.”시간도 많이 흘렀고 같은 방을 쓰고 있지만 매일 그냥 잠만 자려고 하자니 그도 나름 괴로웠다.그리고 이 상태로 두 사람이 계속 지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병들 것 같았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밖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유남준은 단번에 그녀의 팔을 잡아끌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그녀는 순간 호흡이 가빠지고 또다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하여 다 포기한 채 가만히 누워 온전히 그의 손길을 느끼고 있을 무렵 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엄마.”박예찬과 박윤우가 학교에서 돌아왔는지 아래층에서 큰 소리로 박민정을 불렀다.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에 순식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진서연이랑 설인아, 그리고 민수아까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으나 두 아이도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박민정은 있는 힘껏 유남준을 밀쳐냈다.하여 오늘에는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멈춰야 했다.박민정이 황급히 방에서 나오니 두 아이가 마침 문 앞에 서 있었다.“엄마, 자고 있었어? 왜 얼굴이 빨개?”박윤우의 물음에 그녀의 얼굴은 더욱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게...”겨우 설명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유남준이 갑자기 방 안에서 나오더니 한껏 어두운 얼굴로 두 아이에게 물었다.“왜 벌써 왔어?”“추석이라 수업이 일찍 끝났어요.”박예찬은 뭔가 눈치챈 듯 무뚝뚝하게 답했다.그러나 박윤우는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두 사람을 보고 물었다.“엄마, 저 쓰레기 아빠랑 같이 잔 거야?”“아니.”박민정은 단번에 그의 말을 부정했다.“그저 찾을 물건이 있어서.”“무슨 물건인데?”호기심이 많은 아이의 질문 공세에 박민정은 한참 동안 생각해 보다가 겨우 답했다.“책.”“무슨 책? 나도 같이 찾아볼게.”“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