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박민정과 불과 1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멈춰 섰다.그녀의 눈동자는 약간 움츠러들었지만 얼굴색은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했다.여기에는 감시카메라도 있는데 백주대낮에 대놓고 자신을 해코지할 거라 생각지 않았다.눈앞에 보이는 예쁘고도 표정이 덤덤한 여자를 보며, 정수미는 만약 딸 때문이 아니었다면 박민정한테 아껴주고 싶은 감정이 조금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내 딸과 맞서겠다는 거야?”정수미가 서늘한 얼굴로 묻자 박민정은 사실대로 얘기했다.“전 유남우 씨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는 더더욱 아닐 거예요.”유남준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 그녀가 유남우의 마음을 받을 리 없었다.설령 유남준과 헤어지더라도 유남우의 품에 안길 가능성은 없었다. 그녀와 유남준 사이에 아이가 몇 명이나 있으니 말이다.“그 말 꼭 지키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는 기사한테 돌아가자고 지시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백미러에 비친 박민정의 얼굴을 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방금 본 박민정의 성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속으로 가늠하고 있었다.그 후 그녀가 고영란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얘기를 한 것인지, 그날 저녁이 되자 고영란은 윤소현을 집에 초대해 며칠 묵었다가 설을 같이 보내자고 했다.윤소현은 정수미의 수단에 탄복했다. 진주에서 철의 여자로 유명한 고영란도 정수미의 말 몇 마디에 바로 집에 오라는 말을 하니 말이다.윤소현은 들뜬 마음으로 정수미한테 전화했다.“엄마, 엄마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너무 고마워요.”정수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내가 이미 박민정한테 경고했어. 보아하니 이젠 유남우한테 딴 마음을 품지 못할 거야.”‘그냥 경고만 했다고?’윤소현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삐죽거렸다.“엄마 혹시 그 여자의 순진한 모습에 속은 거 아니에요? 제가 얘기했잖아요, 그 여자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요. 전에도 나한테 남우 씨랑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그러더니, 얼마 안 지나서 또 사적으로 연락해서 만나고 그랬
“네가 뭘 들었는데?” 아들에 관한 일이라면 고영란은 사소한 것도 빼먹지 않고 일일이 신경을 썼다.윤소현은 얼렁뚱땅 말을 얼버무리며 그녀의 궁금증을 한층 더 유발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헛소문일 거예요. 남우 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그녀가 이럴수록 고영란은 무슨 일인지 더욱 알고 싶어졌다. “우물쭈물 숨기지 말고 아줌마한테 말해봐.” 윤소현은 마지못한 척하며 천천히 얘기를 꺼냈다.“저도 들은 얘긴데, 형수님이 예전에 남우 씨를 좋아했다더라고요. 둘이 연애도 했었다고 하던데...” 이 말을 들은 고영란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워낙에 박민정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유남우한테도 찝쩍댔다니 더 화가 치밀었다.“걔 때문에 진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구먼.”고영란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차갑게 말을 내뱉자 윤소현은 얼른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화내지 마세요, 아줌마. 사실 난 남우 씨가 형수님과 연애했단 얘길 안 믿어요. 그냥 좀 걱정인 게...”“무슨 걱정?”“형수님이 지금 이대로 만족 안 하실까 봐...”윤소현의 눈에는 근심이 잔뜩 어려있었다.“원래는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 여기까지 나왔으니 저도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지난번에 형수님이 남우 씨를 따로 만나는 걸 봤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형수님 눈시울이 빨갛더라고요.”묵묵히 듣고 있던 고영란은 참을 수 없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집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소현아, 이 일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알겠지?”고영란은 목소리를 낮추며 신신당부했다.그러자 윤소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물론이죠.”...두원 별장. 박민정은 마음을 갈무리하고 유남준과 윤우와 함께 새해를 맞이할 장식을 꾸미며 은정숙의 영정사진을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두었다.“엄마, 이러면 우리같이 설 쇠는 셈이지, 그렇지?”은정숙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한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하였다. 한참 뒤 윤우가 다가왔다.“할머니는 하늘
박민정은 깨어나서 눈을 뜨니 유남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윤우는 없어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 들어찼다.일어나려고 하며 아주 가볍게 부스럭거렸는데도 유남준은 깨어나서 그녀를 다시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깼어?”“윤우는 어디 갔어요?” 그녀가 묻자 유남준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했다.“좀 비좁은 거 같아서 옆방 침대에 눕혔어.”‘2미터가 넘는 큰 침대가 비좁다고?’박민정은 일어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은 오히려 더 세게 끌어당겼고 그의 목울대도 살짝 울렁였다.“좀 더 자자.”얇은 잠옷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몸이 닿았다.“싫어요, 잠이 안 와요.” 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떼어 내려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큰 손바닥으로 꼭 감싸 쥐었다.“말 들어.” 그의 나지막한 저음의 목소리와 뜨거운 호흡이 귓속을 파고들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고개를 들어보니 창밖의 햇살이 그의 얼굴에 부서져 금가루를 뿌린 듯이 반짝반짝했다.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의 얇은 입술에 머물러졌고,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상황이 믿기 어려웠다. 잠깐 넋을 잃었을 때, 유남준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그의 손가락은 그녀의 손바닥을 가볍게 쓸며 동그라미를 그렸다.“민정아, 나 좀 불편해.”박민정은 멍하니 그를 보며 물었다.“어디가 불편해요?” 유남준은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하체로 향했다.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이런 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침대 협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다.박민정은 휴대전화를 가지러 몸을 일으키기 위해 유남준의 팔뚝을 깨물었다. 유남준은 한번 끙,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녀를 놓아주었다. 고영란한테서 온 전화인 걸 확인하고 박민정은 처음에 받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유남준과 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므로 생각 끝에 전화를 받았다.“내일이면 설인데, 남준이랑 같이 오늘 바로
윤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기 낳는데도 절차를 많이 거쳐야 하는 건가? 이 방면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윤우가 사색에 빠진 사이에 박민정은 이미 옷을 다 챙겨입고 얼굴을 붉힌 채로 방에서나왔다. “서 비서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서다희는 아무 핑계를 대며 대답했다.“대표님한테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박민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쑥스러운 얼굴로 윤우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유남준은 서다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는 일이 있다고 밖에 나갔다. 박민정은 어디로 가는 지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간 뒤, 서다희는 요 몇 달 동안 가로채 온 프로젝트에 대한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유남준은 다 듣고 나서 말했다.“요즘 수고 많았어. 이제 설인데 며칠 푹 쉬어.” 그 말을 들은 서다희는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유남준의 입에서 수고했다는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한 건가? “수고는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상사의 갑작스러운 관심에 몸 둘 바를 몰랐다.유남준은 그의 표정 변화를 알 수 없었다. 박민정과 매일 같이 생활하다 나니 그녀한테 서서히 물들어 주변 사람들한테도 그녀가 하는 것처럼 온화하게 대하게 되었다.“다른 일은 없어?”그가 물으니 서다희는 하나 생각난 것이 있어 보고를 드렸다.“김 이사님이랑 방성원 씨가 오늘 밤에 수호 클럽에서 대표님 보자고 하네요.”유남준은 대외적으로 아직 기억상실증에 걸렸으므로 김인우가 그를 만나려면 반드시 서다희를 통해야 했다.‘오늘 밤?’유남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안 가, 약속 있다고 해.” 내일은 섣달그믐날이라 박민정과 같이 집에서 오붓하게 지내기로 했다.서다희는 그가 안 갈 줄 알고 있었다. 이젠 일하는 것 외에 그는 박민정하고만 시간을 보냈다. 클럽이 아니라 밖에 산책하러 가도 혼자 가는 법이 없었다.“알겠어요.”...그날 밤, 수호클럽 맨 위층. 김인우와 방성원은 룸에서 다른 부잣집 도
조하랑은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들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김인우 씨, 할아버지께서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셨어요.”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자 사방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사람들은 의심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다가 점차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밥 먹으러 오라고?현장에 있던 부잣집 도련님들은 하나 둘 정신을 차리고 하나같이 웃음을 참았다.김 씨네 도련님이 지금 저 여자한테 집에 와서 밥 먹으라는 소리를 들은 거야?김인우는 안색이 하얗게 변해 그녀를 모른 척하려고 했다.조하랑은 두 번 말 하기 귀찮아 옆을 바라보았다.그러자 박예찬이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내일은 섣달 그믐날인데 내일도 늦게 온다면 영원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요.”그리고 그는 조하랑을 향해 말했다."엄마, 말 전했으니 이제 집에 가자.”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떠나기 전에 김인우의 곁에 있는 그 친구들을 노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은 가난한 집안이지만 한번도 김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적은 없어요. 오히려 김씨 가문에서 나를 시집오게 하려고 하는 거 거든요.”말을 마친 그녀는 박예찬을 데리고 떠났다.솔직히 말해서 그녀 또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에는 약간 부끄러웠다.사람들은 방금 봤던 여자가 그 조하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김인우가 싫어한다 싶더니. 누가 봐도 기가 엄청 세보이지 않는가.아이도 데리고 있었고."인우야, 저 사람들이 네... 약혼녀와 아들?"옆에서 방성원이 놀리듯 물었다.김인우은 방금 떠나간 두 사람을 떠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성원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나는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볼게.”김인우는 외투를 들고 황급히 나갔다.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 사람이 조하랑이야? 배짱도 두둑하네. 감히 인우 오빠에게 그렇게 말을 하다니.”"김씨 집안 장손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 모양이지.”"그런데 그 애,
조하랑은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민정아, 사실 생각해봤는데, 예전에는 사실 네가 사람을 잘못 알고 유남준을 유남우로 생각했잖아. 그래서 그가 널 사랑하지 않는 쓰레기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지.”"이렇게 보면 그는 너와 전혀 모르는 사이나 다름 없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보는게 맞겠지.”"딱 한 가지 나쁜 게 있다면 네 어머니와 동생이 잘못한 걸 네 탓으로 돌린 것 뿐인 것 같은데.”"결국엔 그냥 자존심이 너무 센 짠돌이 정도지, 쓰레기까지는 아닌 것 같아.”여기까지 생각한 조하랑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박민정도 대답했다."응, 알아.”그러나 조하랑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는 지금 기억상실 외에도 눈이 멀었잖아. 민정아, 그와 함께 있으면 넌 아주 힘들어 질 거야.”장님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게다가 상류사회에서 태어났으니 험한 일을 하려고 하지도 않겠지.이런 생각을 하자 조하랑은 다시 걱정이 되었다."민정아, 그 얼굴에 눈이 멀어서는 안돼. 그 사람보다는 연지석 씨가 나은 것 같은데.”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입장의 변화에도 박민정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게 모두 조하랑이 자신을 걱정해서라는 것을 알았다."왜 또 지석이 얘기야, 저번에 지석이가 나한테 말했어, 우리는 그저 친구라고. 나도 걔한테는 안 어울리고.”조하랑이 무슨 말을 더 하려 할 때, 도우미가 와서 밥을 먹으라고 전했다.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를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를 해 그가 알아서 물러서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람이 박민정과 두 아이를 방해하게 둬서는 안됐다.박민정도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돌아섰을 때, 그녀는 유남준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방금 자신이 한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유남준은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얇은 입술을 약간 벌렸다.”밥 먹으러 가자.”"그래요.""일부러 전화하는 걸 들은 건 아니야."유남준이 말하자 박민정이 약간 웃었
”하랑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할아버지는 그저 너라는 사람을 좋게 본거니까. 너와 인우 사이에 아이가 없어도 할아버지는 너를 손자며느리로 인정해."김훈이 말했다.조하랑은 여태껏 이렇게 누군가에게서 인정받은 적이 없었기에 감동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이러고 보니 사실 김씨 집안으로 시집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김인우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고부갈등도 없고, 유일한 할아버지께서는 그녀를 이렇게 잘 대해주시니."할아버지한테는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단다.”내친김에 조하랑은 계속 생각하고 있던 일을 말했다."할아버지, 내일 제 친구를 만나러 가도 될까요?”"물론이지. 하지만 예찬이는 남겨 놓고 가야 한다. 친척들이랑 만나기로 약속했거든. 다들 똑똑한 증손자 얼굴 보려고 지방에서 올라왔어.”"알겠어요."마침 조하랑도 유남준과 두 사람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이튿날.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박민정과 유남준은 정말로 유씨네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고영란은 원래 두 사람이 본가에 온 틈을 타서 박민정을 혼내려 했지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유남우는 아침을 먹고 윤소현과 고영란에게 일하러 가겠다고 인사했다.이를 본 윤소현이 말했다."오늘 설인데도 일을 해요?”"응, 요즘 회사 프로젝트 몇 개에 문제가 생겼어.”유남우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까만 눈동자에 짜증이 배어 있었다."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해줘요.”고영란의 앞이었기에 윤소현은 잘 보이려 했다."응."유준우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나섰다.고영란이 흐뭇하게 윤소현을 보며 말했다. "소현아, 너도 남우가 회사를 인수한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알지?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윤소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고 있어요.”"며칠 전 어머니께 호산 그룹과의 협업도 고려해 달라고 말씀드렸어요.”윤소현이 말하는 어머니는 바로 정수미였다.그 말을 들은 고영란은 윤소현이 더욱 좋아졌다.현재 유남우는 호산 그룹에서 불안정
조하랑은 차에서 내려 용기를 내어 유남준을 향해 걸어갔다."유남준 씨."유남준이 자리에 서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조하랑은 오는 길에 할 말을 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대뜸 이렇게 말했다."우리 민정이는 착하고 순수해요. 그 애가 최근 몇 달 동안 당신에게 그렇게 잘 대해준 이유는 당신이 기억을 잃고 눈이 멀었기 때문이지, 무슨 개똥같은 사랑 때문이 아니니까 오해마세요.”유남준은 약간 눈썹을 찡그렸다."그래서요?""민정이에게서 떠나세요, 귀찮게 굴지 말고요, 아시겠어요?”조하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용기를 내려 했다.유남준은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만약 제가 싫다고 하면요?”겨우 박민정에게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는데,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조하랑은 그 말에 멍해졌다. 기억을 잃은 후의 유남준은 여전히 상대하기 어려웠다."민정이가 당신이랑 함께 살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 앞이 안 보이잖아요. 자기 몸도 혼자서 돌볼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애와 그 애 아이까지 돌볼 수 있겠어요?”"설마 민정이더러 당신을 돌보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민정이 덕 볼 생각이라면 어림도 없어요!”"그리고 당신은 기억을 잃어서 당신이 민정에게 한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난 다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은 단지 민정이가 난청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싫어했어요. 근데 지금 당신은 앞이 안보이는데, 왜 그렇게 뻔뻔하게 민정이에게 붙어있죠? 자신이 싫지 않아요?”조하랑은 욕설에 서툴렀기에 겨우 긴 말을 마치고 얼굴이 빨개졌다.과거 유남준이었다면 진작 화를 냈을 텐데, 지금 그는 그저 복잡한 눈을 할 뿐이었다."당신이 걱정하는 그 모든 일은 제가 해결할 겁니다. 전 결코 누구 덕을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어떻게 해결할 거죠? 민정이는 당신이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던데요."조하랑의 말에 유남준은 잠시 멍해졌다. 그는 두 사람이 이렇게 사이가 좋을 줄은 몰랐다. 박민정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해준 모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