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유남준은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소리로 박민정의 위치를 대략 알 수 있었다.“화장실에 좀 데려다 줄 수 있어?”박민정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와 손을 뻗었다.“알겠어요.”그녀는 유남준을 부축해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녀는 화장실까지 데려다주고 화장실 위치를 알려준 후 바로 떠났다.한참 후 갑자기 화장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쿵!”박민정은 다급히 달려가서 문을 열어보니 유남준이 부주의로 세면대 위의 유리컵을 떨어뜨렸고 그는 허리를 굽혀 유리 조각을 주우려다가 손을 베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일어나세요. 손을 다쳤어요.”박민정은 황급히 그를 막으려 했다.그러나 유남준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고 어젯밤에 했던 물음을 다시 물었다.“나를 싫어하는 거야?”박민정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대답 없이 그의 손을 가볍게 뿌리쳤다.“간호사를 불러서 일단 먼저 지혈하도록 할게요.”10분 후, 간병인이 와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깨지기 쉽고 날카로운 물건들을 모두 교체했다.유남준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고 간호사가 그의 옆에서 손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다.어린 간호사는 때때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처가 있더라도 타고 한 고귀함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이었다.간호사는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박민정 씨, 이제 다 되었어요.”“감사합니다.”간호사가 떠난 후 박민정은 몸을 일으켜서 병실 문을 닫았다.어제 유남준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그녀는 미처 그의 상황을 묻지 못했다.비록 의사는 그가 뇌신경이 손상되어 기억을 잃었다고 했지만 박민정은 여전히 믿지 못했다.“유남준 씨,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나요?”그녀가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는 오히려 되물었다.“제 이름이 정말로 유남준이라 해요?”그러자 박민정은 말문이 막혔다.‘설마 자기 이름 마저 잊은 거야?’“네.”“어젯밤 그 여자는 제 어머니였어요?”유남준은 기억을 잃었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대화 중에서 주도권을 차지했다. 원래 박민
유남준은 박민정을 안고 있던 두 손을 놓았고 그의 얼굴은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박민정은 그가 기억을 잃었다고 연기했던 것이 자신한테 들켜서 원래대로 돌아온 줄 알았다.그래서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이혼 소송을 다시 제기하겠어요.”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가방을 들고 나갔다.밖에 나서자 고영란은 복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박민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우리 남준이가 지금 이렇게 됐는데, 아직도 이혼을 고집해?”박민정은 지금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고영란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우리 가정은 무너졌어요. 제 청력이 점점 나빠지고 중증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당신 아들이 저를 다친 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임신에 도움 되는 약을 한 봉지 한 봉지 줄 때는 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고영란은 할말이 없었지만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네 배 속에는 우리 유씨 집안의 아이가 있어. 이대로 가면 안 돼. 이혼하더라도 넌 아이를 우리에게 남겨줘야 해.”박민정은 어젯밤에 고영란에게 배 속의 아이가 유남준의 아이가 아니라고 말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박민정은 냉소하며 말했다.“어머님. 전 이미 몇 번이고 말했어요. 제가 임신한 아이는 유남준 씨의 아이가 아니에요. 못 믿으시겠으면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세요.”‘유남준에게 물어보라고?’고영란은 고개를 돌려 침대에 정신이 혼미한 아들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은 후 그는 자기 이름도 모르는데 박민정 배 속의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는 더더욱 알 리가 없었다.“민정아, 너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 난 네가 남준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줄 알았어. 넌 그리 훌륭하지는 않아도 착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 왜 이렇게 독한 사람이 되었어? 정말 구역질 나.”고영란은 홧김에 몇 마디하고는 문을 열고 유남준의 병실로 들어갔다.박민정은 퇴원 절차를 밟으러 갔다.병원을 나설 때 하얀 눈이 펑펑 쏟아졌
유남준이 교통사고로 인해 실명되었다는 사실은 얼마 숨기지 못하고 며칠 후 각종 매체에서 보도했다.호산 그룹, 즉 유남준이 소유하고 있던 회사의 주식이 대폭 떨어졌다.순간 주주들의 민심이 흉흉해졌다.유명훈은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나서서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조하랑은 박민정의 전셋집에 가서 티브이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말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하던 사람이 실명하다니. 사람 일은 역시 어떻게 될지 몰라. 호산 그룹은 누가 물려받을까?”박민정은 과일을 잘라서 그녀 앞에 놓았다.“하랑아, 내가 재소하자고 한 건 어떻게 됐어?”그러자 조하랑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민정아, 미안해.”“왜?”“며칠 전에 뉴스에 나온 너와 유남준 씨의 이혼 소송 기사를 아빠가 봐버렸어.”조하랑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아빠가 내가 변호사로 일하는 것을 알고 사람을 찾아서 내 변호사 자격증을 취소했어.”조하랑의 말을 듣고 박민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아니,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아빠는 나를 김씨 집안에 시집 보내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이 정도 수단은 아무것도 아니야.”조씨 집안은 돈이 많았지만 조하랑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몹시 가난했다. 그러니 지금 나이가 되면 돈이 없어서 예전처럼 힘든 삶을 사는 게 가장 두려웠다.그래서 그는 자기 딸을 진정한 돈이 많은 유명 가문에 시집보내서 딸을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친정집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박민정이 묻자 조하랑이 대답했다.“한 달에 70만 원 정도 월급을 주는 사무원 일자리를 구했어. 아껴 쓰면 충분해.”조하랑은 자신의 아버지한테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알려줘.”박민정이 말했다.그러자 조하랑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였다.“알았어. 이따가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 줄게...”조하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민정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그녀가 휴대전화를 들어보니 고영란이
박민정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서다희가 유남준과 무언가 말한 후 그는 박민정을 향해 걸어왔다.그는 박민정의 앞에 다가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민정 씨,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비난에 박민정은 멍해졌다.서다희는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다가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유 대표님은 민정 씨를 구하려고 이 지경이 됐는데 어떻게 기억을 잃은 대표님을 이용해서 이혼할 수 있어요?”기억을 잃었다고...박민정이 들어왔을 때 유남준과 서다희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다시 한번 그가 가짜로 기억을 잃은 척하는 줄 알았다.그녀는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이용이라니요? 유남준 씨가 기억을 잃기 전부터 저는 이혼을 하겠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서다희를 곁을 지나 유남준의 앞으로 왔다.“유남준 씨, 제가 왔어요.”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자 유남준의마음은 떨렸다.그는 몸을 일으키며 일부러 박민정 쪽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다희야.”그러자 서다희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제가 곁에 있습니다.”“이혼 창구로 가자.”유남준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의 그는 기억을 잃지 않을 때의 모습처럼 보였다.두 사람이 앞장서고 박민정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그들은 이혼 신고 창구 앞으로 왔다.서다희가 유남준의 곁에 서 있었고 직원은 유남준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그들이 제출한 자료를 둘러보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두 사람은 5년 전에 이혼 신고를 했다가 최근 이혼 소송을 했는데 법원에서 기각당했군요.”그러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지금은 이 사람도 이혼을 원합니다.”직원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계속 정보 내용을 확인하다가 유남준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최근에 유남준의 뉴스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기에 그는 이름을 보자마자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호산 그룹의 대표가 지금 자기 앞에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유 대표님이세요? 대
결국 이혼하지 못했다.솔직히 유남준뿐만 아니라 서다희도 놀랐다.늘 연약한 모습을 보이던 박민정이었지만 오늘은 성질이 사나운 여자로 변했다.그들은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들이 떠나자 심지어 차를 몰고 그들을 뒤따르던 사람도 있었다.오늘 인터넷에서 또 어떤 뉴스가 나올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앉아있던 박민정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그녀의 바로 옆에 앉은 유남준은 갈 데 없는 두 손을 자기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예전에 있었던 일은 미안해.”한참 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박민정은 그 말을 듣자 입술을 오므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을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말도 하지 않으니 유남준의 마음은 칼에 베인 듯했다.“내 기억 속에 너는 나를 많이 사랑했어, 나도...”널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오늘 가정법원에서 박민정의 말을 들으니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내가 예전에 민정이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구나...’박민정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요 몇 년 동안 그녀는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유남준의 덕을 보았다고 생각했다.지금 유남준이 실명하자 그녀가 이혼하는 건 배은망덕한 거라고 여겼다.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유남준의 청각은 유난히 예민했다. 그는 박민정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 위에 놓았다.“미안해.”그러자 박민정의 몸이 굳어졌다.유남준은 몇 년 동안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녀는 놀라서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유남준 씨, 왜 기억을 잃으신 거예요?”유남준은 또 목이 메어왔다.박민정은 자기 어깨에서 그의 손을 떼었다.“제 몸에 손 대지 마세요.”유남준은 손을 떼어 다시 자기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알았어.”그의 말에 박민정은 유남준이 정말 기억을 잃었다고 확신했다.기억도 잃었고 성격도 변한 것 같았다.사실 성격은
유남준은 다른 사람이 자기 별장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서다희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대로 사람을 보내 밖에 대기시켜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들어가서 돌볼 수 있게 했다.고영란도 호산 그룹 내에서 자리다툼이 심해졌기 때문에 그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유남준의 사촌 형인 유성혁은 이미 일부 주주들과 연합하여 주주총회를 열어서 유남준의 대표직을 해임하기로 했다.유명훈도 나이가 많았기에 대표를 하기에는 힘들었다.게다가 유명훈도 호산 그룹을 눈먼 사람에게 줄 수는 없었다. 고영란은 사방이 적이었다.이튿날.아침 9시, 또 하나의 특종 뉴스가 나왔다.[이혼 신고를 했는데 거절당한 실명한 유남준과 그의 아내]뉴스에는 한때 거물이었단 사람이 지금은 아내에게 버림받고 불쌍하다는 내용이었다.누군가는 짧은 동영상을 게시했다.[유남준은 장님이지 바보가 아니었다]바로 박민정이 했던 말이었다.동영상 아래에는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어머나. 유남준은 너무 불쌍해. 한때 그렇게 잘 나가던 게. 지금은 두 눈이 멀었다니.”“그래. 너무 안타까워. 이런 여자는 유남준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그나저나 이지원은 어디 있어? 지금 와서 첫사랑을 구해줘야지.”“오랫동안 이지원을 보지 못했어. 듣기로는 은퇴했다던데...”“설마 아직도 이지원과 유남준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예전에 이지원의 그 동영상을 잊었어?”인터넷 네티즌들은 별의별 댓글을 다 달았다.누군가가 전체 영상을 올리자 또 어떤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난 왜 박민정이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거지? 그녀가 한 말을 듣지 못했어? 유남준이 눈이 멀기 전부터 이혼하려고 했다잖아.”“그래. 며칠 전에 두 사람은 이혼 소송을 했잖아.”조하랑도 그런 댓글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박민정을 위해 특별히 글을 써서 올렸다.“박민정을 나무라는 사람들도 눈이 멀었어? 박씨 집안이 무너질 때 유남준은 단 한 번도 나서서 도와준 적이 없었어. 박민정과 이혼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이지원과 썸을 탔고.”
박민정도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삶을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이혼도 못하고 유남준은 기억을 잃자 박민정은 은정숙과 두 아이를 찾으러 해외로 가기로 했다.출발 하기 하루 전, 그녀는 연지석의 전화를 받았다.“민정아, 아주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어.”연지석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그러자 박민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어떻게 된 거야?”“의사 말로는 전부 노인병이래. 그리고 폐가 좀 안 좋대...”연지석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기껏해야 이번 설까지 버틸 수 있다 하셔...”설날까지 이제 겨우 두 달 남짓했다.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몸이 휘청거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지금 바로 거기로 갈게.”하지만 연지석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민정아, 아줌마가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나뭇잎이 언젠가는 땅위에 떨어지듯이 나이가 든 사람은 입으로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지만 머리에는 줄곧 고향 생각이 배어 있었다.박민정은 목이 메어왔다.“아줌마께 너무 미안해. 당장 가서 아줌마를 신림으로 모셔다드릴게.”“마침 최근에 프로젝트를 처리하러 국내로 가야 하는데, 내가 아줌마와 함께 돌아가도 돼.”연지석도 유남준의 일을 알았기에 말을 덧붙였다.“두 아이도 함께 따라가고 싶어 해.”은정숙이 돌아오면 박민정도 두 아이가 외국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유남준은 기억을 잃었고 눈까지 멀었으니 두 아이를 찾을 리가 없었다.“그럼 두 아이도 함께 데려와 줘.”“알았어.”...그날 밤, 박민정은 도저히 잠이 들 수가 없었다.은정숙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녀는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사실 은정숙은 한수민보다 더 엄마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향한 보살핌과 사랑은 모성애와 다를 바 없었다.새벽쯤에 박민정은 바로 일어나서 아줌마와 두 아이를 위해 세면도구도 준비하고 장도 봤다.쇼핑몰에서 옷과 신발도 샀고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점심에 박민정은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지난번에 외국
유남준은 말하면 말한 대로 행동했다. 가정법원을 떠난 후, 그는 다시 박민정을 찾지 않았다.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박민정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두원 별장은 한밤중에도 전등을 켜지 않았다.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집안의 유리 제품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그러자 바로 들어가려던 경호원이 물었다.“대표님, 괜찮으세요?”“꺼져!”유남준은 큰 소리로 차갑게 말했다.그러자 경호원은 어쩔 수 없이 바로 밖으로 나갔다.유남준은 식탁 뒤에 서 있었고 유리 조각에 베인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그는 마치 아픔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수도꼭지를 더듬어 열고 차가운 물에 상처가 난 손을 헹구고 있었다.요 며칠 그는 단지 물건을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몇 번 넘어지기도 했다.다행히 그는 집 안의 모든 위치를 기억해서 더 이상 잘못된 곳을 찾지 않았다.그는 피가 멈출 때까지 손을 헹구다가 수도꼭지를 닫고 주방을 떠났다.그리고 혼자 거실로 와서 소파에 앉았다.그의 남은 기억 속에는 박민정이 이곳에 앉아서 그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었다.집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유남준은 또 경호원이 다시 온 줄 알고 짜증을 내며 말했다.“꺼지라고!”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경호원이 아닌 고영란이었다.고영란은 집안이 이렇게 어두운 것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왜 불을 켜지 않은 거야?”그녀는 거실에서 앉아 있는 유남준을 보고서야 자신이 말을 잘못한 것을 깨달았다.눈이 먼 사람으로서 불을 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히터를 켜지 않았기에 실내는 몹시 추웠다. 그래서 고영란은 걸어가서 히터를 켜고 유남준 앞으로 왔다.“남준아, 네 몸도 이젠 거의 나았어. 엄마가 최근에 몇몇 집안의 아가씨들을 보았는데. 다 예쁘기도 하고 조건도 괜찮아. 게다가 다들 널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왔대. 내일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고영란이 말한 여자들은 전부 이제 겨우 스무 살이었다.모두 젊고 예뻤고 게다가 아이를 낳기에 신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영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