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이 뭐라 해명하기도 전에 통화는 그대로 끊기고 말았다.화가 치밀어 오른 이지원은 애써 손바닥을 꾹 눌렀다.유지훈 이 빌어먹을 놈이 집에 돌아가 고자질했나 보군.이윽고 곰곰이 생각해보던 이지원은 자신이 넘어진 것이 기필코 그 몇몇 아이들과 관계있으리라고 단정 지었다.애초에 유치원의 복도가 그렇게 미끄러울 리가 없는 데다가 왜 하필 그녀가 넘어지고 유지훈 그 빌어먹을 자식과 다른 아이가 물통을 들고 걸어온단 말인가.게다가 공교롭게도 물을 모두 그녀의 몸에 끼얹는다고?이지원은 자신이 어린애의 수단에 넘어갈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여 다음에 또다시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한창 씩씩대며 화를 내고 있는데 마침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지원아, 큰일 났어. 측에서 네 노래를 고소했어. 인터넷에서 지금 난리도 아니야.”“다 해결된 문제 아니에요?”“해결되긴 뭐가 해결돼. 너 절로 봐봐. 민 선생님 노래는 4년 전에 이미 발매된 곡인데 네 노래가 그분 곡이랑 99%나 비슷하대.”매니저는 급하다 못해 뜨거운 가마 속에 놓인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했다.“지금 민 선생님 측에서 널 표절로 고소한것도 모자라 네가 사권을 이용해서 상대 변호사를 하루 동안 가뒀다고 항의하고 있어. 게다가 우리 측 비서와 민 선생님 측 작업실 사이에 나눴던 대화도 전부 들통났다니까. 지금 사람들 전부 우리는 곡을 살 능력이 안 되니까 훔칠 수 밖에 없다고 조롱하고 있어.”매니저의 말에 이지원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일단 제가 한번 봐볼게요.”이지원은 애써 침착하게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켰지만, 핸드폰을 열자마자 자신의 표절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음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이지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트위터 계정과 가장 가까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결백한 사람은 결국 깨끗하기 마련이라는 게시물은 팬과 일반인의 댓글들로 도배를 당하고 말았다.[반전이다. 처음에 절대 표
박민정은 조하랑의 집에서 밥을 먹으며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그러다 시간도 늦어지니 차를 타고 두원 별장으로 돌아갔다.그녀는 박예찬이 괜한 생각을 할까 두려워 조하랑 더러 박윤우의 얘기와 자신이 현재 두원 별장에서 지내고 있단 얘기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사실 박예찬은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엄마를 배려하여 굳이 더 묻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사석에서 몰래 하랑 이모의 입을 열 생각이었다.두원 별장.5시에 이미 회사에서 돌아온 유남준은 거실의 소파에 묵묵히 앉아있었고 탁자 위에는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 박스가 놓여 있었다.“땅—”벽에 걸려있는 유럽식 벽시계의 시침이 10에 닿으며 시간을 알렸다.10시가 다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유남준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적이 없었다. 하여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이내 선물 박스가 유남준의 예쁘고 기다란 손 위에 올려지고 그는 한 번, 또 한 번 선물을 살피며 내용물이 여자의 마음에 쏙 들리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박스를 닫았다.또 반 시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유남준은 더욱 짜증이 났다.이윽고 유남준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선물을 잡아채고 직접 박민정을 잡아 오려 몸을 일으킨 순간, 입구에서부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유남준이 고개를 돌리자 연분홍빛을 띈 레드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집안으로 걸어들어오는 박민정과 마주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하고 한순간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때, 먼저 정신을 차린 박민정이 말을 건넸다.“아직도 안 주무셨어요?”잠을 자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밥도 먹지 않았다.유남준의 머릿속은 현재 뒤죽박죽 엉키고 설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어디 갔다가 이제 와?”“아, 친구 집에 밥 먹으러 갔어요.”박민정은 이내 슬리퍼로 갈아 신고 걸어오더니 그대로 유남준을 지나쳐 곧장 위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줄곧 사람을 붙여 그녀를
유남준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박민정이 직접 본인 입으로 보석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확실해?”유남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박민정은 현재 유남준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 자신이 했던 말은 필연코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전 누구의 선물이든 전부 받지만, 유독 당신 선물은 받고 싶지 않아요.”말을 마치고 박민정은 유남준을 밀어낸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박민정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남준은 그대로 선물 박스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밤새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감기 기운까지 더해지니 위가 또 살살 아파 나기 시작했다.유남준도 오늘따라 왜 그러는지 고객이 보내준 럭셔리 팔찌를 보노라니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 흉내를 낼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지만 전 화장하기 좋아합니다. 예쁘고 화려한 옷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금은보화 액세서리도 좋아합니다.”정말 사서 고생이군!유남준은 계속하여 싸늘한 얼굴을 하고는 화를 내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박민정은 이제 유남준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았고 항상 혼자 방에 들어가 씻고 휴식을 취했다.전에 의사가 박민정은 항상 평온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밤새지 말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만 병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그러나 어제 그녀의 귀에 또 문제가 생겼다.유남준은 소파에 30분 정도 더 앉아있다가 위층 박민정의 방에 인기척이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 여자는 이제 정말 그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방 안, 박민정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가놓았던 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쇠로 열리면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방안에 들어왔다.남자는 이불을 걷어내어 큰 손으로 박민정의 몸을 품속에 꽉 끌어안았다.박민정의 몸에서 나는 익숙하면서도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유남준의 몸살은 조금 나아진 듯 싶었다.하지만 이윽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박민정이 두 눈을 떠버렸고 어두컴컴한 방 안, 남자
유남준은 냉소를 피식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연지석도 널 그렇게 사랑하는 건 아니던데? 말해봐. 그 자식은 널 얼마나 오랫동안 버려둔 거야?”이번에야말로 유남준은 박민정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박민정이 다시 손을 들어 올리자 유남준이 그녀의 손목을 잽싸게 쥐어 잡았다.“왜? 정곡이라도 찔렸어?”박민정은 애초에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요 몇 년 동안 그녀와 연지석은 줄곧 친구처럼 지내왔다.“당신이 지금 이렇게 굶주려 있는 걸 보니 이지원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나 봐요?”싸울 줄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그러자 유남준은 속으로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난 너와 달라.”유남준은 애초에 단 한 번도 이지원을 건드린 적이 없다.“뭐가 다른데요? 결국 도긴개긴 아닙니까? 저보다 얼마나 더 잘났다고 그러세요? 전 당신이 일편단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당신도 결국 그저 그렇네요. 이지원은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나요?”유남준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박민정의 물음에 하나도 답하지 않았고 그저 계속하여 그녀를 자신의 품 아래에 단단히 가둬놓았다.그러자 박민정이 갑자기 그의 어깨를 힘껏 깨물었다.갑작스러운 고통에 유남준이 신음을 내며 숨을 들이마셨지만, 그는 여전히 박민정을 놓아주지 않았고 이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요 몇 년간, 그는 수없이 많은 꿈속에서 이러한 장면을 꿈꿨었다.그 자리에 얼어붙은 박민정은 지금 화를 낼 때가 아니라 기회라는 것을 깨닫자 곧바로 저항을 멈추고 순순히 그의 스킨쉽을 따랐다.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박민정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지만 그녀의 선명한 변화를 눈치챈 그는 무척 의아해했다.하여 유남준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너 지금 나한테 맞춰주고 있는 거야?”박민정의 동공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곧이어 유남준의 동작이 전부 멈췄고 그는 침대 옆 램프 전원을 눌렀다.박민정은 무의식 간에 자신의 몸을 애써 가렸다.그러자 유선
유남준은 긴 다리를 움직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민정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자, 그녀의 얼굴엔 여전히 눈물자국이 있었고 두 손은 주먹을 꽉 쥔 채 경계하듯 소파에 붙어서 잤다.실내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아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곧이어 유남준이 전화를 걸어 아침밥을 가져오라고 하려 할 때 누군가가 밖에서 현관문을 열었다.이지원이 손에 아침밥을 들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들어왔다.“오빠, 내가 아침에 먹을 거 좀 가져왔어요. 오늘 회사 창립기념일 아니에요? 있다가 우리 같이...”아직 참석하자는 말을 채 하지도 않았는데 이지원은 소파에서 자고 있는 박민정을 보았다.눈앞에 광경을 믿을 수 없는 이지원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박민정이 왜 여기서 자고 있단 말인가? 설마 두 사람 밤새 여기서...유남준은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이지원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너 어떻게 들어왔어?”지문인식이나 얼굴인식을 등록하지 않은 이상, 대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를 뚫고 조용히 들어올 수가 없다.이지원은 손에 든 아침 식사가 든 봉투를 꽉 쥐고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어머님이 보내셨어요. 앞으로 오빠를 잘 보살피라고 하셨거든요.”전에 고영란은 이지원이 유남준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끔 하려고 특별히 대원 별장 대문의 인식 시스템에 이지원의 정보를 입력했다.그런데 이지원은 오늘에서야 시간이 나서 올 수 있었다. 원래는 어제 민 선생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이지원의 시선이 천천히 박민정에게서 옮겨갔다.그녀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오빠,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나가서 말하자.”어젯밤 박민정은 잘 쉬지 못했는데 마침 잠을 자려고 보청기도 끼지 않아서 두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이지원은 유남준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마음속의 불만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민정 씨가 왜 오빠 집 소파에서 자고 있어요?”유남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내가 민정이한테 다시 들어오라고 했어.”그러자
“넌 이제 돌아가 봐. 오늘 밤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엔 내가 참석할 테니까.”유남준은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이지원은 들고 왔던 아침밥을 내려놓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박민정을 힐끗 보고 떠났다.유남준이 돌아서자 박민정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왠지 저도 모르게 마음에 찔렸다.“언제 깼어?”박민정이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조금 전에 이지원 씨가 남준 씨에게 결혼하자고 말했을 때요. 축하해요.”유남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고,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유남준은 검은 눈동자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할 말 있으면 지금 해도 돼.”만약 박민정이 그더러 이지원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 유남준은 바로 동의할 것이다.그런데 예상 밖에 박민정은 고개를 저으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두 분 축하드려요. 만약 이혼 절차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울 거예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윤우를 나에게 돌려줘요.”유남준의 가슴이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박민정이 이젠 자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가 누구와 함께 있든, 다른 여자랑 결혼을 하든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유남준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왜 불편한지 몰랐다.그는 헛기침을 여러 번 하고는 옆에 있는 이지원이 사 온 아침밥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네가 직접 시켜 먹어.”말을 마친 유남준은 박민정의 옆을 지나 서재로 걸어갔다.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유치해졌다고 생각했다. 설마 이지원이 가져온 음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직접 요리를 하고 밥을 다 먹은 후 유남준에게 나간다고 문자를 남겼다.유남준은 서재에서 박민정이 방금 했던 말을 후회한다고 말하기를 바랐지만, 결국 문자밖에 못 받았다.[나 회사 가요.]너무 짧은 한마디였다.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서재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박민정은 이미 떠났다.주방에 가보자 아무것도 없었다. 박민정은 그를 위
비서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주우면서 물었다.“지원 씨, 어떻게 됐어요?”“나더러 조하랑에게 사과하고 표절한 걸 공개적으로 인정하래.”비서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그걸 어떻게 인정해요? 만약 지원 씨가 표절한 걸 인정하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되잖아요?”이지원은 민 선생을 난감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녀는 민 선생이 정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받는 대신 국제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지금 이지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곡이 아니라 박민정의 일을 해결하고 유남준과 결혼하는 것이었다.“오늘 밤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에 잘 준비하고 갈 거야.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떠도는 표절 사건은 잠시 돈으로 막고 있어 봐.”이지원은 자신에게 있는 돈으로 오래 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단지 결혼만 순조롭게 할 수 있으면 괜찮았다.회사에서.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정은 조하랑의 전화를 받았다.“민정아, 오늘 올 거야?”오늘은 주말이라 조하랑은 박민정과 예찬이를 불러 야외에서 캠핑하고 싶었다.그러나 박민정은 거절했다.“유남준이 날 지켜보고 있어. 이미 윤우의 존재를 들켜버렸는데 예찬이까지 들키면 안 돼. 우리 나중에 보자.”조하랑은 그녀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래, 알겠어. 그럼 빨리 유남준 애 갖고 우리 에스토니아로 돌아가자.”“그러자.”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만졌다. 왠지 이번엔 유남준이 전보다 더 경계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 그의 아이를 가지는 건 조금 어려워 보였다...이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유리창을 통해 보자 서다희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서 비서, 어쩐 일이에요?”서다희가 걸어 들어오면서 말했다.“민정 씨, 유 대표님께서 사무실에 오라고 하셨습니다.”박민정은 오늘 유남준이 회사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유남준의 사무실에 가기 싫었지만, 윤우가 그의 손에 있으니 갈 수밖에 없었다.“네, 알겠어요.”
박민정을 유남준의 사무실 문 앞까지 데려다준 후에야 서다희는 떠났다.문이 닫혀 있지 않아서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유남준은 대표 의자에 앉아 집중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잘생긴 남자는 진지하게 일할 때 더욱 멋져 보인다. 박민정은 처음에 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에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유남준은 그녀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이리 와.”박민정이 다가가면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앞으로 아래층에서 일할 필요 없어.”유남준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너도 여기서 업무 봐.”박민정은 의아해했다.“왜 여기서 업무를 봐야 하죠?”“이유는 없어. 이건 회사의 결정이야.”회사의 결정이 아니라 그의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박민정은 유남준의 부하직원이니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알겠어요.”꽤 괜찮은 결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박민정은 어젯밤의 관계로 임신할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했다.“내려가서 노트북 가져올게요.”박민정이 말했다.그녀가 내려가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가 그녀의 개인물품들과 노트북을 사무실로 가져왔다. 특별히 그녀가 쓰던 테이블도 옮겨 왔다.유남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민정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물품들을 살펴봤다.“나 궁금한데, 그동안 회사에서 뭐 했어?”예전에 박민정은 가정주부였다. 유남준의 내조를 하는 것 외에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박민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알고 싶어요? 보여줄게요.”그녀는 유남준이 아직도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제 굳이 참을 리가 없었다.그러자 유남준은 관심을 보였다.“그래.”박민정은 유남준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면서 자신의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심심할 때 했던 일들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유남준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박민정의 노트북에 많은 프로젝트 계약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언제부터 이런 걸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