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람이 죽었다. 그녀의 죽음은 손대동마저 목숨을 잃게 했다. 여호신의 과감한 행동에 기타 동문 제자들을 놀라게 했다. 손대동까지 가차 없이 죽이다니 그는 여간 대단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인파가 점점 흩어지자 여호신은 임건우에게 예의상 몇 마디 건넨 후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저희 약신곡은 세간과 그 무엇도 다투지 않습니다. 저흰 엄격한 규제를 따라 동문 제자가 아닌 이상 안으로 들이지 못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가보죠.”“잠시만요!”임건우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또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옆에 있던 공손소희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선배, 사실 임건우 일행은 약재를 구하려고 우릴 찾아온 거예요.”“약재를 구하려고!”여호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희의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약재 정도는 구해드릴 수 있지요. 어떤 약재를 원하시나요?”“용혈등이요!”여호신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의심의 눈초리로 임건우를 바라보았다.“용혈등으로 뭘 하려는 건지?”“칠독환의 독을 해독하려고 합니다. 제 동생의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고요.”“죄송합니다만 약신곡에는 용혈등이 없습니다.”미심쩍은 임건우는 불안을 켜고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짓말이었다.이월은 가차 없이 그의 거짓말을 들춰냈다.“거짓말하고 계시네요. 제 눈으로 직접 용혈등을 봤는데요? 바로 이곳에서.”여호신은 이월을 힐끔 보았다. 그의 시선으로 봐도 이월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이 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의 기운은 수위가 높은 자만이 알아볼 수 있었다. 마의 수위라니, 대부분의 수위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기운이었다.“얼른 가십시오!”“비록 소희를 구해주었다고 하나 약신곡의 몇몇 제자들도 죽이셨으니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을 겁니다.”“만에 하나 다시 저희를 찾아오신다면 그땐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여호신은 무표정으로 말을 마친 후 이월을 째려보았다. 참지 않는 성격인 이월을 곧장 불같이 화를 냈다.“우리도 용혈등을 구할
이월의 호통에 임건우는 그만 손을 놓고 말았다. 이월은 다시 강에 빠졌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야, 이 멍청아, 빨리 날 좀 올려줘. 나 지금 힘이 없다고!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은 거야?”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마녀를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임건우는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구해주고 싶지만 또 네 몸을 봐야 하잖아. 네가 화날까 봐 무서운걸. 그러니 강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뭐라고? 난 다쳐서 헤엄칠 수 없다고! 빨리, 빨리 좀 구해줘. 웁...”이월은 또 강물을 들이켰다. 여호신의 공격이 딱 마침 그녀의 마력을 공제하는 탓에 오장육부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몇 번 물에서 허우적거리더니 이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눈앞은 캄캄했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임건우를 욕하고 있었다.‘임건우 이 새끼, 귀신이 돼서도 널 괴롭힐 거야!’그리고 그녀는 그만 기절하였다....얼마나 지났을까.이월은 천천히 눈을 떴다. 주위는 빛 한 점 없이 어두컴컴했고 그녀는 방바닥에 누워있었다.“나 죽은 건가?”“여긴 저승?”“나 진짜로 죽었어? 안돼! 임건우 이 죽일 놈, 날 이렇게 강에 내던지다니. 평생 저주할 거야! 평생 고자 돼서 와이프와 자식이 도망가게 될 거야!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하게 될 거야!”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바탕 욕하고 울었다. 이미 죽었는데 오기 같은건 이미 내던진 지 오래다.“넌 정말 악독하구나.”“그러니 남자 친구가 없지.”귓가에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건우, 그 자식이다!“나 안 죽었어?”이월은 자기 몸을 더듬더듬 만졌다. 그리고 덥석 가슴을 움켜잡았다.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복부에는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었다. 인제야 자신이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여호신의 공격은 그녀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강했다.그렇다는 건 임건우가 자신을 구했다는 소리, 하지만 이월은 아직도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때마침 화 풀 대상이 찾고 있었던 그녀는 혼자서 즐기는 임건우를 보자마자 눈이 돌아버렸다. 그녀는 나무 막대기를 잡고 곧장 임건우를 향해 돌진했다.쿵-퍽-나무 막대기가 가차 없이 임건우의 등을 후려쳤다. 하지만 임건우의 무명 공법이 자동으로 작동해 나무 막대기가 부서지면서 반쪽은 이월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으악-영식이 있는 임건우는 진작에 이월의 존재를 눈치챘었다. 그는 박장대소하였다.“이걸 보고 자업자득이라고 하던가? 그냥 가만히 있는 건 어때?”이월은 분을 못 이겨 나무 막대기를 던진 후 임건우의 등에 매달려 그의 목을 물었다.“X발.”“너 뭐야? 개라도 돼?”임건우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에게 물려버리고 말았다. 피가 목선을 타고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이미 여러 번 이월의 무례한 행동을 봐줬던 임건우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는 이월의 팔을 잡고 돌아선 후 그녀를 바닥에 제압시켰다.“헉!”“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놔?”임건우도 의도가 있던 건 아니다. 다만 갑자기 물려 무의식적으로 취한 행동이다. 이참에 제대로 혼쭐을 내주려는 임건우는 그녀를 풀어주지 않고 점점 자기 몸을 붙여갔다. 그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성인 남성이 이렇게 예쁜 여자를 깔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뭘 하고 싶은 걸까. 네가 보기엔 어때?”생각대로 당황한 이월이다. 하지만 그녀도 곧바로 표정을 감추었다. 그리고 몸을 감싸던 손을 들어 임건우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이거? 날 물속에서 구해주었는데 이 정도쯤은 일도 아니지.”임건우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단지 그녀를 놀라게 하려고 한 것뿐인데 말이다.“알았으면 됐어. 내가 없었더라면 넌 진작에 죽은 목숨이야.”이때, 이월은 갑자기 그의 입술을 덮쳤다. 달콤한 키스에 넘어가지 않을 정상적인 남자는 없다. 더군다나 임건우는 매우 혈기 왕성한 남자인 데다가 한동안 유가연과 신체접촉이 없다 보니 그만 본능에 충실하고 말았다. 몇 초의 정적이 흐른 후 그들은 뜨거운 키스
이월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말에 임건우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녀의 한마디 때문에 마음속으로 푸념만 늘어놓았다.‘자식이 생기기도 전에 고자가 되다니!’게다가 한평생 여자와 살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인생이라니! 이보다 더 처참한 인생이 있을까!아악-그는 짐승 울부짖음 같은 포효소리를 내면서 고통을 참은 채 다시 한번 그녀를 바닥에 밀어붙였다.하지만 눈 깜짝하지 않는 이월이다.“뭐 하는 거야? 이 정도로 되겠어? 기다릴 테니까 어디 한번 천천히 공격해 봐.”임건우는 세게 주먹을 날렸다. 이월이 누운 바닥 바로 옆에 굉음과 함께 큰 구덩이가 생겨났다. 만약 그 주먹이 이월에게 향했다면 그녀는 즉사했을 것이다.이월도 긴장했으나 위축되지 않고 도리어 더욱 강하게 임건우를 밀어붙였다. 천마금의 주인으로서 성격도 악마의 기운을 가진 그녀다.“왜? 내가 너무 허를 찔렀나? 그니까 왜 익사하기 직전까지 가서야 날 구했어? 게다가 황량한 벌판에서 날 강간이나 하고 말이야. 넌 고자가 돼도 싸!”“이거 놔!”“고자 주제에 여자를 눕혀서 뭐 하려고? 능력이 되면 나랑 자보던가. 하지만 넌 그럴 수 없잖아? 뭐, 잘 능력이 된다면 인정해 주지.”임건우는 철저히 분노에 휩싸였다. 쫙-임건우는 큰 힘으로 이월의 옷을 찢어버렸다.‘아니 이럴 수가!’임건우는 오늘 이 악마를 길들여야 한다. 그는 두 눈이 시뻘건 채 본능만 남은 한 마리 짐승이 되었다.두 시간 후, 시끄럽던 벌판도 고요를 되찾았다.이월은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짐승 같은 놈한테 당하다니!’다른 한편, 임건우는 이월과 전혀 다른 심정이었다.한 시간 전, 이성을 되찾은 임건우는 자신이 벌인 짐승 같은 짓에 당황하였다. 남자로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이성을 잃은 채 오직 이 여자만을 벌하겠노라는 본능만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가 후회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아래에서 울면서 잘못을 빌기를.하지
머리 위의 검은 구름이 여러 마리의 뱀이 뒤틀리듯 뒤섞여 있다.찌지직!공기 속에는 번개가 여전히 남아 있는지 찌릿찌릿한 소리를 냈다.구름 사이에 숨겨져 있는 번개가 번쩍이며 존재감을 나타냈다.“비가 오려나?”임건우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옆에 죽은 듯 누워있는 이월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그녀가 살아있는지 확인했다.임건우의 손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월의 기력이 다한 듯한 목소리가 전해왔다.“아직 안 죽었어!”진심으로 이월을 원망했던 임건우는 정말 그녀를 죽일 뻔했다.하지만 두 시간 가까이 마음속에 묵혔던 화를 풀어내니 더 이상 그녀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가장 중요한 건, 소중한 걸 잃지도 않았고 이월과 잤으니, 기분은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임건우는 한참이나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내 탓은 아니지. 당신이 원해서 한 거잖아.”이월은 충혈된 눈으로 임건우를 노려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한숨을 푹 쉬던 임건우는 하늘을 바라보며 화제를 바꾸었다.“비가 오려나 봐. 산 굴속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걸을 수 있겠어?”그의 말에 이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난 상관하지 마!”임건우는 입을 삐죽이다 강제로 이월을 안아들고 산 굴속으로 들어가려 했다.그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가 내리쳤다.쿠릉!귀가 터질듯한 우렛소리에 임건우와 이월은 깜짝 놀랐다.더욱 소름이 돋는 건, 옆의 나무에 떨어지지 않고 번개가 임건우의 머리에 떨어졌다는 것이다.그 모습을 목격한 이월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두 눈으로 직접 임건우가 벼락에 맞는 모습을 보았다.그렇게 큰 번개는 천벌과 다름이 없었다. 그걸 맞고도 살아남을 사람은 거의 없다.‘설마 죽었나?’이월은 지금 느끼는 기분을 뭐로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조금 전까지 임건우와 그런 일을 하고 겨우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임건우가 벼락에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녀는 임건우가 너무 빨리 천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벌을 받은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아야 하지
천의도법을 전승받았을 때, 임건우는 뇌겁이 있을 거란 걸 진작 알고 있었다.이건 수신자가 꼭 겪어야만 하는 길이다.신동급을 넘어 금단의 경지에 이르려는 사람은 꼭 한번 뇌겁을 겪게 된다. 이건 하늘이 정한 이치이자 수신자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뇌겁을 견뎌내지 못하면 그동안의 수련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뇌겁을 받고도 살아남게 된다면 뇌겁금광이 내려오게 된다. 그것은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수위에도 크나큰 도움을 준다.사실, 임건우는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도겁을 준비하려 했다. 도겁을 도울 방어형 법보를 찾아볼 생각이었다.하지만, 계획은 언제나 변화보다 빠를 수 없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월과 한번 잤다는 이유로 수위가 단계를 뛰어넘을 거란 건 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높아진 수위를 누르지 못하고 결국 뇌겁을 불러왔다.‘근데, 뭔가 이상한데?’“금단의 뇌겁은 아홉 번의 뇌겁이 있어야 하는데 왜 한 번뿐이지?”“커닝도 이런 커닝이 없잖아!”“설마... 혼돈 구슬의 힘인가?”임건우는 부영록이 전에 혼돈 구슬의 기능에 대해 말해 줬던 게 떠올랐다.혼돈 구슬은 천기를 막는 효과가 있다. 뇌겁도 천기의 일종이니 나머지 여덟 번의 뇌겁은 혼돈 구슬로 인해 모두 피해 간 것일지도 모른다.이월은 뇌겁에 대해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그녀는 임건우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임건우는 혼돈 구슬에 대해 이월에게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다.두 사람이 부부의 실이 있었다 해도 마녀 이월의 본성을 잘 알았다. 이월은 뇌겁이 줄어든 것에 대한 궁금함보다 임건우를 죽이겠다는 생각이 더 할 것이다.“어쩌면, 네가 마도자여서 내 뇌겁에 영향을 줬는지도 몰라.”그의 말을 듣고 이월은 미간을 찌푸렸다.마도자인 이월도 뇌겁이 있다. 마도자의 뇌겁은 보통 수신자보다 더 무섭다.임건우가 말한 대로라면 임건우의 뇌겁은 자기의 영향을 받았으니 더욱 거세야 하는 게 도리에 맞다.하지만, 달랑 한 번뿐인 뇌겁은 이월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먹을래?”임건우가 생선구이를 흔들며 이월에게 물었다.“그걸 말이라고 해? 배고파 죽겠어. 두 개 다 먹을 거야!”이월의 공력이 다 회복되어 순식간에 임건우 손에 들었던 생선을 빼앗아 갔다.“먹을 거면 더 굽던가!”말을 마치고 이월은 생선구이를 가지고 산 굴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임건우는 머리를 '탁' 치며 속으로 욕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늦은 밤, 임건우는 산굴의 앞쪽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뒤에는 이월이 당분간 쉴 공간이다.그는 이대로 잠을 자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기가 잠든 사이, 이월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경계해야 했다.새벽이 될 무렵, 이월이 임건우를 불렀다.임건우는 모닥불에 장작을 보태고 이월에게 물었다.“이 늦은 시간에 안 자고 날 왜 부르는 거지?”이월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잠이 오지 않아서. 어차피 너도 잠이 오지 않잖아. 어떻게 용혈등을 가져와야 할지 얘기나 해 보자고.”그녀의 말에 임건우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안 피곤해?”“그런 일에 피곤한 건 남자라는 거 몰라?”“아, 누워서 느끼기만 해서 피곤하지 않나 봐?”“퍽!”이월은 옆에 있던 돌을 집어 임건우에게 세게 내던졌다.그런 말을 하면 이월이 화를 낼 줄 알았던 건지, 임건우는 단번에 돌을 잡았다.“여호신은 원영고수야. 낮에 널 공격했을 때 정말 널 죽이려는 거였어. 만일 몸을 지키는 부적이 없었다면 죽었을 거야.”“그럼에도 넌 크게 상처를 입었고 내가 힘들게 널 죽음에서 다시 살려냈지.”임건우는 이월이 앉은 자리에서 10미터나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말했다.“그건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야. 여호신이 어떻게 원영고수가 된 거지?”이월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그 표정이 짜증으로 변하며 임건우에게 쏘아붙였다.“내가 큰 상처를 입었다는 걸 알면서도 양심 없이 조금도 봐주지 않았던 거야?”임건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건 네 마기에 영향을 받아서라니까! 만약 네가 날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이때, 임건우와 이월은 약신곡의 주변에서 지형을 탐사하고 있었다.약신곡 외곽의 진법을 파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진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월은 임건우 홀로 노력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옆에서 경계를 서며 임건우를 호위했다.하룻밤을 함께 한두 사람이지만 오히려 관계가 서먹해진 듯했다.사실, 임건우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제길을 외쳤다. 어떻게 하다 이 마녀와 자게 되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서로 이익을 얻었지만, 이 일은 마음속의 응어리로 남았다. 만일 유가연이 알게 된다면 집에 돌아가서 무릎 꿇고 빌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애초에 이 여자와 나오는 게 아니었어!’‘마정희가 알게 된다면 날 죽일지도 몰라!’이때, 두 사람은 항구에서 전해오는 소리를 들었다.“무슨 상황이지? 백화곡에서 왔다고?”“내가 어떻게 알아.”이월은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가서 확인해 봐.”임건우가 지시하는 듯한 말에 이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임건우와 서로 협력하는 사이로 이런 일은 자기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딴청 피우지 말고 계속 연구해 봐. 금방 다녀올게.”이 말을 뒤로하고 이월은 훌쩍 항구 쪽으로 사라졌다.남자의 널널한 옷을 입고 엉거주춤하는 이월의 모습을 보며 임건우는 피식 웃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을 살피러 갔던 이월이 돌아왔다.“항구 쪽에 배가 두 척 도착했어. 백여 명의 여자가 내려온 거 같아. 백화곡이라는 곳에서 왔다는데 약신곡과 단약제조를 시합하려나 봐.”임건우는 멈칫했다.“남자는 하나도 없고 여자만 왔다고?”“응.”“정말 이름대로 백화곡이네.”“흥, 거기에 가서 유일한 남자 제자가 되고 싶은 거야? 그러면서 밤마다 다른 여자와 놀려고?”임건우는 말마다 어제 일을 물고 늘어지는 이월이 조금 짜증이 났다.“넌 이만 가. 이제 네 도움 필요 없어. 내가 용혈등을 찾으면 바로 마한영에게 연락할게.”그 말에 이월은 화를 내며 물었다.“무슨 말이야? 내가 귀찮아진 거야?”임건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왜 붕이가 그렇게 놀란 반응을 보였을까?그 이유는 간단했다.백의설이라는 여자는 백리 가문에서 가장 잔혹하고 독살스러운 여인으로 악명 높았다.백의설의 손에 죽은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천성성에서만도 다섯 개 이상의 가문이 그녀에게 멸문지화를 당했다.그녀는 어린아이조차 남기지 않고 철저히 몰살시키는 잔혹함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천성성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 정도였다.“차라리 염라대왕을 건드려라, 독부인은 건드리지 마라!”이 독부인, 즉 독과부가 바로 백의설이었다.임건우는 계단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백의설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그 순간, 임건우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임건우는 백의설에게서 아버지 임우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마치 피로 연결된 것 같은 낯설지만 익숙한 감각이 임건우를 사로잡았다.동시에 백의설도 임건우를 응시하며 눈빛이 뜨거워졌다.그녀의 시선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선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듯한 애틋함을 담고 있었다.그 뜨거운 눈빛은 임건우의 뺨을 데울 만큼 강렬했다.하지만 취보재의 사람들은 이들 사이의 묘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대장은 백의설에게 급히 고개를 숙이며 상황을 보고했다.“아가씨, 이자가 취보재에서 행패를 부리다 여진 아가씨를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희 경비원까지 죽였습니다. 아가씨께서 위로 돌아가 주시면 이자를 반드시 잡아 처리하겠습니다.”퍽!백의설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그러자 공중에 떠오른 보이지 않는 손바닥이 대장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꺼져라.”백의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그 말에 모든 이들이 몸을 떨었다.이제 독과부가 분노해 진짜로 화를 내는구나 싶었던 것이다.뺨을 맞은 대장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급히 무릎을 꿇었다.“소인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내려주십시오, 아가씨!”주변의 구경꾼들도 숨을 죽였다.그들은 임건우와 임하나를 바라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취보
“가고 싶다고? 꿈 깨!”“이 여종부터 죽여라!”몇 명의 경비원들이 사나운 기세로 휠체어를 붙잡았다.그중 한 명이 힘껏 주먹을 휘둘러 붕이에게 내리쳤다.이 취보재의 남자 경비원들과 비교하면 붕이의 실력은 그야말로 미미했다.그런 공격 앞에서 붕이는 피할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단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아!”퍽!하얀빛이 번쩍이 붕이의 눈앞에서 머리가 하늘로 솟구쳤다.피가 붕이의 머리와 얼굴에 튀었다.임건우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견곤검을 잡았다.휠체어를 움직이지 않았지만, 휠체어는 저절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붕이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임건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붕이의 귀에 들렸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임건우가 강여진과 취보재의 경비원 한 명을 죽였다는 사실에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낀 건 두려움이었다.“이제 정말 끝났어!”“완전히 죽었어... 도망친다 한들, 백리 가문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이 남자, 어떻게 이렇게 충동적일 수 있지?”붕이는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백리 가문 사람들이 오면 도망칠 수 없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그런데 임건우는 취보재의 경비원들에게 포위당하고 있었다.붕이는 임건우를 끌고 도망칠 기회조차 없었다.주변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있었고, 모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몇몇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이 사람, 두 명이나 죽였는데도 이렇게 태연하네. 배경이 있을 거야.”“배경? 다리도 없는 남자, 어린아이까지 안고 있는데 배경이라니. 뒤에 궁녀나 시녀가 따라다닌다든가 그런 게 있을까? 그냥 머리가 핑 돌아서 날뛰는 바보 같은 녀석일 뿐이야.”“강여진은 여섯 번째 부인의 친조카라는 거 알아? 이거... 그냥 끝장이야.”사람들의 속삭임 속에서 임건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임건우는 아버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그것은 바로 위층에서 온 기운이
임건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눈앞의 여자는 이 장신구 가게의 점원임이 분명했다.손님으로 가게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다니?임건우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말했다.“너희 사장은 손님이 왕이라는 걸 안 가르치더냐? 네가 감히 손님한테 빈정거리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그 말에 붕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깜짝 놀랐다.붕이는 급히 임건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이 가게는 취보재, 천성성에서 백리 가문의 소유로 유명한 곳이었다.여기는 함부로 소란을 피울 곳이 아니었다.백리 가문은 가주가 단약을 구하러 갔다가 재산의 절반을 약신궁에 빼앗겼지만, 가주가 아직 살아 있었고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오히려 백리 가문은 쇠락하지 않고 더 번성해졌고 지금은 재력으로 천성성에서 으뜸가는 가문이었다.윤씨 가문과 비교해도 그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더구나 눈앞의 여자는 단순한 점원이 아니었다.그녀는 백리 가문과 먼 친척 관계에 있는 강여진이라는 여자였다.원래 강여진은 지금처럼 잘나가는 인물이 아니었다.과거에 붕이처럼 윤씨 가문의 하녀였고, 그것도 임시 하녀로 지위는 붕이보다 낮았다.어느 날, 강여진이 윤씨 가문에서 물건을 훔치다 붕이에게 들켰고, 붕이는 그녀를 심하게 꾸짖었다.이 일로 강여진은 붕이를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다.하지만 세상은 아이러니했다.강여진의 고모가 백리 가문의 여섯째 아들과 결혼하면서 그녀도 자연히 신분 상승을 하게 되었고, 천성성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얻게 되었다.그 후로 강여진은 붕이를 볼 때마다 온갖 방법으로 모욕하며 괴롭히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윤서희는 백리 가문과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붕이가 모욕을 당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그런 강여진이 지금 분노를 터뜨렸다.그녀는 임건우의 다리, 그것도 다친 다리를 걷어차며 손가락으로 임건우의 코앞을 겨누고 욕설을 퍼부었다.“웃기지 마! 너 같은 불구자가 감히 우리 백리 가문의 취보재에서 행패를 부려? 네가 개똥이라도 먹었냐?”그녀의 발길질로
임건우는 깜짝 놀랐다.‘이렇게 비쌀 수가?’임건우는 윤서희에게 그 대해장단을 줬던 걸 후회했다.‘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주지 않았을 텐데...’임건우는 탑을 한 번 바라봤다.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기혈단은 연금술 약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 속하는 것이었기에 그 약의 가치는 낮았다.그렇지만 그 약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바로, 수련하지 않은 사람도 복용할 수 있다는 점.그래서 많은 사람이 수련을 시작할 때 기혈단을 먹곤 했다.그때 윤문용과 윤서희가 임건우의 집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모두 검은색 밤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그리고 빠르게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혹시 소식 듣고 도망쳤나?”윤문용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임건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이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만약 임건우가 도망쳤다면 그 기회를 놓친 셈이 될 것이다.“그럴 리 없어요! 그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어요?”윤서희는 차분하게 답했다.비록 윤서희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사업가였고, 게다가 이미 얼굴에 상처를 입은 상태라 마음이 조금 왜곡되었다.윤서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업, 다른 건 다 부수적이었다.게다가 임건우는 그저 평범한 사람, 윤서희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보물은 아직 남아있어요!”“이건 붕이의 물건이에요. 남겨두었으니 분명 돌아올 거예요.”윤서희가 말했다.“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자. 반드시 돌아올 거야.”임건우는 딸을 안고 붕이와 함께 상업 거리에서 잠시 걸었다.시간이 이미 늦어져 딸은 하품을 연달아 하며 졸고 있었다.임건우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오자고 했다.그때 임건우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윙!심장이 잠시 쿵쾅거렸다.“뭐지?”“이 느낌... 익숙해!”“그건... 아버지의 기운이야!”임건우는 자신의 아버지, 임우진의 기운을 감지한 것을 깨달았다.이 사실에 그는 가슴이 뛰었다.그동안 임건우는 아버지가 실
“둘째야, 이번 일은 내가 가는 게 좋겠다.”윤중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동근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형님, 혹시 내가 보물을 독차지할까 봐 그러는 겁니까?”윤중위는 태연히 답했다.“그럴 리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 단지 내가 전에 그 집에 다녀온 적도 있고, 그 자를 직접 본 적도 있으니 처리하기가 더 수월할 것 같아서 그래.”이때 이희연이 나섰다.“동근아, 넌 성격이 급하고 덜렁대는 편이잖아. 이건 고인이 남긴 보물이라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야. 차라리 형님에게 맡기는 게 안전해. 넌 그냥 집에서 좋은 소식 기다리면 돼.”두 형제는 물론이고 여자인 이희연까지 가세해 의견이 오가며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였다.“그만!”“내가 아직 죽지 않았어! 이건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윤문용이 단호하게 말했다.“서희야, 오늘 밤이 되면 나와 함께 가서 그자를 데려오도록 해라.”윤서희는 잠시 망설이며 물었다.“할아버지... 설마 그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죠?”윤문용은 답했다.“그건 그가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에 달렸다.”한편, 윤씨 가문 사람들이 밤에 임건우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는 동안, 임건우는 붕이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딸 임하나를 안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임건우는 붕이가 휠체어를 밀게 해 집 밖으로 나왔다.처음으로 이 낯선 수련도시를 둘러보는 기회였다.임건우는 이곳을 구경하며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나 자신의 고향, 연호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짧은 시간 동안, 임건우는 붕이를 통해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그러던 중 붕이가 물었다.“도련님... 강북 풍화성에서 도망쳐 나온 난민은 아니죠?”임건우가 단약을 건네며 붕이를 구해낸 후, 붕이는 그를 도련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아무리 임건우가 고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대가문의 규율 속에 세뇌된 영향일 터였다.마치 아직도 악덕 봉건 사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비록 임건우가 자유를 줬지만, 붕이는 여전히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귀한 약초가 있을 수 있지?”“그럼 임건우가 엄청난 고귀한 연단사라는 말인가?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어린 고수 연단사가 어디 있을까?”윤서희는 임건우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너는 어떻게 이런 약초를 갖고 있지?”임건우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이 약초로 붕이의 매매 계약서를 사면 되겠지?”“너... 이 약초로 붕이를 사겠다고?”“어때? 부족해?”“...”부족할 리가 없지!이건 바로 대해장단!하나만 먹어도 수십 년의 장애를 풀 수 있는 약, 이걸로 붕이를 사면 충분히 넘칠 정도였다.윤서희는 붕이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붕이는 네 거다.”임건우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럼 이제 가라.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윤서희는 몇 마디 하려 했지만, 이미 손에 쥔 대해장단에 마음을 빼앗겨 있었다.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그녀는 즉시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야 했다.윤서희는 임건우를 한 번 깊게 바라보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떠났다.윤서희가 떠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붕이는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다.“당신... 정말 대해장단으로 나를 샀다고요?”“샀다기보단 자유롭게 해준 거죠.”임건우는 교훈을 주듯 말하며 정정했다.“공짜로 밥을 먹은 건 아니잖아요? 물론, 내가 몇 숟가락 못 먹고 몇 마리 파리가 날아왔지만... 자, 재료는 아직 남아 있어요? 남아 있다면 좀 더 만들어 줄 수 있겠어요?”붕이는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그리고는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임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윤서희가 방금 한 말이 임건우에게 하나의 경고처럼 다가왔다.천성성에서 강자가 존중받고 법은 중요하지 않다.윤씨 가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아하니 몇 개의 약초만으로 자신을 처치할 양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그러니 대해장단 같은 고급 약초를 꺼내면 그들의 욕심이 더 커질 것이다.“흥!”
“건우 씨,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당신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어요.”윤서희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잠시 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당신이 큰 회춘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 윤씨 가문에 알려졌어요. 아까도 보셨죠?”“제 삼촌은 워낙 말을 안 듣는 사람이에요. 간신히 설득해서 돌려보냈지만, 만약 그분이 정말로 당신을 공격한다면 당신은 이 생에서 모든 걸 잃게 될 겁니다. 당신 딸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임건우는 휠체어를 앞으로 몇 걸음 밀며 다가갔다.그리고 붕이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들었다.임건우는 임하나의 동그란 눈을 보며, 그 눈이 마치 엄마를 빼닮은 것 같아 묘한 충만감을 느꼈다.아이가 태어났을 때 임건우는 그녀에게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었다.“역린.”용에게는 건드리면 죽음을 부르는 역린이 있듯, 그의 딸은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윤씨 가문이 만약 임하나에게 손을 대려 한다면 그는 그 즉시 윤씨 가문을 뿌리째 멸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갓 한 달 된 아기를 바라보며 임건우는 가볍게 아이와 놀아주었다.보통이라면 신생아의 시력은 거의 발달하지 않아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일 터였다.하지만 이 아이는 자연여신의 신격을 물려받았기에 평범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임건우는 자신이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다는 책임감을 강렬히 느꼈다.“당신 삼촌께 그런 생각을 접으라고 확실히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후회하게 될 테니까요.”임건우는 차분히 말했다.윤서희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비록 그녀는 면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눈빛만으로도 그녀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윤동근럼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었다.비록 외모가 손상되었어도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는 여전히 자신이 세상을 내려다본다는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다시 말해 그녀는 임건우를 하찮은
윤동근은 큰 소리로 외쳤다.그 소리에 집 전체가 진동했고, 심지어 그 소리에 임건우의 딸, 임하나의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임건우는 화가 치밀어 올라 윤동근을 쏘아보며 말했다.“너, 당장 내 집에서 나가!”“뭐라고?”“세상에!”이 순간, 붕이, 그리고 윤서희도 모두 깜짝 놀랐다.윤동근에게 그렇게 말하다니?이건 정말 큰 일이다!쿵!윤동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 손으로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책상은 그대로 부서졌고, 붕이가 힘들게 만든 맛있는 요리도 모두 망가졌다.윤동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이 자식, 내가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다. 큰 회춘단의 출처를 말하고, 네가 가진 값진 것들 모두 내놔. 그렇지 않으면 이 손바닥 한 번에 네가 죽는 건 물론, 시체도 남지 않을 거다!”임건우는 윤동근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윤서희를 보며 말했다.“서희 씨, 나는 본래 당신한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는데 지금 상황은 조금 이해가 안 가는군요. 당신들이 내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 강도질이라도 하러 온 건가?”윤서희는 얼굴이 붉어졌다.윤동근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서 뭐? 너는 윤씨 가문 앞에서 무슨 존재라고? 너 같은 놈이 내 손에 죽은들 뭐가 문제겠어?”“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임건우는 윤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윤서희는 윤동근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내며 속삭였다.“삼촌, 큰 회춘단 문제는 할아버지께서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하면 오히려 일이 커질 수 있어요. 이러면 안 됩니다.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요.”윤동근은 그녀의 말을 듣고 비웃으며 대답했다.“그게 뭐 대수라고? 이 다리가 없는 장애인, 외지에서 온 쫄병,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 하나 데리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거라고? 너랑 할아버지가 너무 걱정이 많아. 내 말 들어, 그냥 처리해버리자. 간단하고 직설적으로 끝내는 거지.”윤동근은 고집을 꺾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요. 만약 그가 끝까지 버티
“금단기 고수!”임건우는 윤동근의 기운을 감지하며 그의 수련 경지를 단번에 알아챘다.하지만 왜 이 자는 마치 개미라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가?보통 상황이었다면 임건우는 이런 자들을 한 손으로 몇 명이고 때려눕힐 수 있었다.더 황당한 건 이 집은 이미 임건우 소유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멋대로 침입해 놓고선 이토록 당당하다는 것이다.옆에서 있던 붕이는 놀란 표정으로 급히 일어나더니 식사 중이던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말했다.“아가씨, 그리고... 도... 도련님, 어떻게 여길 오셨습니까?”윤동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 우리 윤씨 가문에서 떠나 이 다리 없는 폐인과 함께 살겠다고 했지? 좋아, 내가 오늘 너를 완전히 풀어주마.”그는 이어 임건우를 향해 말했다.“야, 나는 윤씨 가문의 도련님, 윤동근이다. 그런데 이 녀석, 네가 우리 집에 살면서 도련님을 보고도 앉아서 밥을 먹다니!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거야? 얼른 무릎 꿇고 인사드리며 네 죄를 고해라!”붕이는 급히 말했다.“도련님, 이분은... 이분은 다리가 없어서 무릎 꿇는 건 좀...”짝!윤동근은 갑자기 붕이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이미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금세 부어올랐고 코피까지 흘러내렸다.“이 년아, 네가 감히 어디서 말을 보태?”“옆에 가서 무릎 꿇어라!”붕이는 코와 입을 움켜쥐며 분함을 삼켰다.그러나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눈길을 윤서희에게로 향했다.자신의 주인인 윤서희가 한마디라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윤서희가 이런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그녀는 약간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삼촌, 굳이 사람을 때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요?”윤동근은 비웃으며 말했다.“뭐라고? 내가 이 가문의 도련님인데 네 하녀를 때리는 것조차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냐? 서희야, 네가 요즘 천단루를 경영한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마.”“그리고 너, 올해 스물네 살이지? 석 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