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곧 두 무리의 사람들만 남았다. 한쪽은 하씨 가문 사람들. 다른 한쪽은 하현, 당인준, 설유아 세 사람. 하씨 집안 사람들의 안색은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 세자 이 세 글자는 그들에게 있어서 당연히 마음을 짓누르는 마음의 병이었다!하지만 하씨 가문은 강남의 하늘이니 당연히 자부심이 있었다.하 세자면 또 어때서?3년 전에도 남원에서 몰아 냈으니 3년 후에도 당연히 가능하다. ……무대 아래 쪽 룸에서 분향하는 냄새가 피어났다. 하수진은 소복을 입고 안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하씨 가문의 할머니가 이때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오른 속으로 각양각색의 보석이 박힌 용머리 지팡이를 움켜쥐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 불효자가, 정말 왔어?”할머니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고, 주름진 얼굴에서 의미심장한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할머니, 그가 왔어요. 게다가 강남 군단의 제일 가는 전신 당인준이 그의 곁을 지키면서 그를 대장이라고 불렀어요!”하수진은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듯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허, 중앙아시아 전장에 갔다가 운 좋게 목숨을 건져 대장이라는 호칭을 얻었다고 자기가 정말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하 세자,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만약 이 늙은이가 하씨 가문을 오랫동안 돕지 않았더라면 저 애송이 녀석이 하씨 가문의 이름을 빌어 거들먹거릴 수 있었을까?”할머니는 냉담한 기색이었다. “가자, 수진아. 우리 같이 가서 이 불효자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인지 한번 보자……”“3년동안 못 봤더니 기대가 되네……”할머니는 원기가 왕성했다. “할머니 안심하셔도 돼요. 둘째 오빠가 이미 준비를 다 마쳐놨어요. 군단 쪽에서도 이미 다 배치를 해놨어요……”하수진이 입을 열었다. 할머니가 담담하게 말했다. “응. 민석이에게 전해. 3년 전에는 민석이가 마음이 약하고 모질지 못해서 그런 거니 나도 탓하지 않는다고……”“하지만 3
회의장 중앙. 그래서 하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반쯤 무릎을 꿇었다. 하민석처럼 세력이 있고 하태규처럼 강한 사람도 지금은 앞장서서 무릎을 꿇었고 동시에 약간 뒤쪽으로 기울여 경의를 표했다. 왜냐하면 지금 나타난 사람은 하씨 가문의 어르신이었기 때문이다. 듣기로 할머니는 한국 10대 가문과 견줄 만한 호족출신이라고 한다. 그녀가 하씨 집안의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을 때 하씨 가문은 강남의 일류 가문에 불과했었다. 그녀가 하씨 집안에 시집을 온 이 후에야 하씨 가문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불과 20년 만에 강남의 유일한 정상급 가문이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강남의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하씨 가문의 할머니 이일해야 말로 진정 하씨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다. 하씨 집안의 할아버지는 하현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몇 년 복을 누리지 못하셨다. 하씨 가문은 중 후반에 조타자가 몇 명 바뀌긴 했지만 진정한 대권은 결국 할머니가 쥐고 있었다. 하씨 가문의 역대 권력자들 중 유일하게 하현만이 감히 그녀를 거역했었다. “삐걱삐걱______”이때 이일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용머리 지팡이가 땅에 한 번씩 찍히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마치 불멸의 권위를 대표해서 속세로 걸어 들어오는 것과 같았다. 그녀가 높은 단 위에 올라 섰을 때, 뒤에서 유일하게 하수진이 홀로 썰렁하게 서 있었다.무대 위에서 반쯤 무릎을 꿇은 사람들 사이로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하현과 하현 옆에 군계일학처럼 당인준이 엄숙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현, 너 건방지게! 할머니께 감히 무릎을 꿇지 않다니!”하태규가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현, 네가 이미 우리 하씨 집안에 반역을 했다 해도 할머니께 인사를 안 하다니!”“너 아직도 앉아 있을 낯이 있는 거야? 그 자리에는 할머니만 앉으실 수 있어!”“너 안 꺼져!”“……”한 무리
하현은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하은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임마, 네 쌍둥이 형은 그래도 머리가 조금 있긴 한데 너는 아예 없구나.”“할머니 스타일은 내가 너보다 백 배는 더 잘 알아!”“설마 너희들 생각도 안 해본 거야?”“내가 배짱도 없이 오늘 여기에 발을 디딜 수 있었을까?”이 말을 듣자 하니 하현은 하 세자라 불리며 혼자 힘으로 당시 무기력 했던 하씨 집안을 3년 만에 강남의 하늘로 다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늙은이 이일해와 가장 많이 접촉했던 사람이었다. 다른 하씨 가문 사람들은 아마 1년에 한 번도 할머니를 만날 자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늙은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정말 그일지도 모른다. 하은수는 안색이 변하더니 잠시 후 차갑게 말했다. “하현, 지금 네가 가진 가장 큰 패는 바로 네 옆에 있는 당인준이지?”“너는 우리가 아무것도 준비를 안 했을 거 같아?”“고작 당인준이 우리 하씨 가문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장난하냐!”하현은 통제 불능이 된 하은수에게는 완전히 신경을 끄고 담담하게 하태규를 바라보며 웃을 듯 말 듯 하며 말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가장의 어르신, 어떻게 생각하세요?”“내가 오늘 하씨 가문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 같습니까?”“오늘 내가 다시 하씨 가문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이 순간 하태규의 안색이 처음으로 변했다. 만약 할머니가 나오기 전에 하현이 이렇게 날뛰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나왔다는 것은 하씨 가문이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현이 여전히 날뛰고 있다니. 그의 머리가 정상이 아니거나 아니면 그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장의 카드가 있거나. 하지만 하현은 하 세자라 불리는 데 생각이 짧을 리가 없다.어르신이 여기에 분명이 계시는데도 그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하씨 가문을 상대할 만한 충분한 저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하태규는 당인준에
“후회하지 않는 다면요?”하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시 하 세자가 된다는 것이 그에게는 한치의 유혹도 되지 않았다. “그럼 이 어르신이 너를…… 이 세상에 나온 걸 후회하게 해주지!”할머니의 목소리는 칼 같았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너를 내 친 손자로 취급한 적이 없어. 너는 내 눈에 그저 하나의 도구로 보일 뿐이야!”“너의 부모님은 태백산맥 골짜기로 들어간 이후로 깜깜 무소식이야. 너는 하씨 집안에 친척이 없어!”“내가 너를 선택해서 키워줬는데도 너는 순순히 말 잘 듣는 개 노릇 할 줄도 모르고……”“이 늙은이가 너를 하씨 집안의 권력자, 하 세자로 만들어 줬는데!”“그런데 너는 한다는 짓이?”“이 늙은이를 여러 번 거역하다니!”“지금 정말 너무 후회스럽다!”“개도 키워주면 감사할 줄을 알아. 근데 너는 감사할 줄도 모르고!”“내가 보기에 너는 하씨 성도 어울리지 않아!”하태규는 냉랭하게 말했다.“하현, 네가 하씨 가문을 무너뜨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둬!”“3년 전에도 할 수 없었고!”“3년 후에도 할 수 없어!”하현은 심호흡을 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이일해를 쳐다봤다. 만약 그녀가 자신에 대해 확실히 키운 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방금 그 몇 마디 말로 그는 할머니의 머리를 땅에 찧었을 것이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할머니의 눈에 그가 정말 단지 개 한 마리, 도구 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순순히 말을 잘 들으면 고기를 먹을 수 있고, 말을 안 들으면 고기가 되는 것이다.하지만 노인의 이 말은 그의 추측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현은 평온한 기색을 되찾았고, 그의 눈은 깊어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과 같았다. “할머니, 할머니와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떤 일들은 좀 터 놓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이일해는 냉담하게 말했다.“너 같은 풋내기가 무슨 자격으로 이 늙은이 앞에서 짖어 대는 거야?”하현은 담담하게
꼭두각시!?꼭두각시 인형!?하현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게 말했지만 하민석의 귀에는 마치 마른 땅에 천둥이 치는 것과 같았다. 이때 하민석은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곁눈질로 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하현, 이쯤 했으니 궤변은 그만 늘어 놔!”“할머니께서 당시에 너를 선택한 건 너의 영광이었잖아. 근데 네가 오히려 거듭 할머니를 거역하다니!”“그러니까 뒤탈이 생기는 거야!”“이 모든 건 네가 자초한 일이지 할머니를 탓할 수 없어!”“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릎 꿇고 사과하는 일이야!”“사과?”하현은 웃었다. “내가 왜 사과를 해야 돼?”“하민석, 너 정말 바보인 거야? 아니면 바보인 척을 하는 거야?”“이 지경이 됐는데도 너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이 늙은이가 정말 너를 좋게 생각했다면 너는 지금 하 세자가 되었어야 돼. 결코 하씨 대문호의 우두머리로 있을 수만은 없어!”“하씨 대문호를 만든 건 내 전철을 밟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던 걸 거야.”“그래서 그 쌍둥이랑 이 여자랑 싸우게 한 것뿐이야!”“너희들이 더 심하게 싸울수록 할머니의 권력과 지위는 더 확고해 질 테니까!”“내 말 맞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할머니가!”하현은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지만 눈매는 차갑기 그지 없었다. 이일해는 두 손으로 용머리 지팡이를 짚고 하현을 잠시 위아래로 훑어 본 후에야 차갑게 말했다.“3년 동안 못 본 사이 다른 재주는 안 늘었는데 이가 날카로워지고 말솜씨가 많이 늘었구나!”“너 같은 버려진 자식한테는 변박할 가치도 없어. 태규야, 나는 그를 보고 싶지가 않다.”하태규는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할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했습니다.”그런 뒤 하태규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이전의 하 세자를 길바닥으로 내 보내. 나는 그가 서 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아!”하태규의 명령에 따라 하씨 가문의 호위병들이 구석에서 튀어
곧 하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냉담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중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앞으로 나왔다. 변백범. 지금 변백범은 위엄이 있고 기풍이 있는 모습이다. 그는 깍듯이 하현 곁으로 빠르게 걸어가 당인준과 함께 왼편 오른편에서 하현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남원 길바닥의 새로운 인물이었기에 하씨 집안 사람들은 그를 매우 낯설게 여겼다. “경원이가 없어서 아쉽네……”이때 하태규는 살짝 이를 갈았다. 길바닥의 일이라면 하경원이 가장 잘 알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아직 혼수상태였다. 그러나 하민석이 한 발 앞서 나가 변백범을 위아래로 훑어 본 후 담담하게 말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신은 남원 길바닥에 새로 온 변백범?”변백범은 하현을 한번 쳐다보고 그가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변백범은 둘째 도련님을 만난 적이 있고, 둘째 도련님은 변백범을 아시고, 변백범은 운 좋게 살아 있네요……”하씨 집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이 변백범은 앞잡이 같았다. 보아하니 그에게 약간의 압력을 가하면 하현을 배신할 것 같았다. 하긴 길바닥의 새로운 인물일 뿐인데 감히 하씨 가문과 맞설 수 있을까?누가 알겠어? 변백범은 계속 웃으며 말했다.“잠시 후 둘째 도련님이 머리를 쥐어 뜯을 때, 저는 분명 평안해질 겁니다.” 태도는 굽실거리는 모양이었지만 말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너!”이 말이 나오자 하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건방지다!너무 건방지다!보잘것없는 길바닥의 새로운 사람일 뿐인데, 길바닥의 거물이라도 해도 또 어떤가?이런 인물은 보통 같았으면 하씨 집안의 엄지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눌러 죽일 수 있다!지금 그가 감히 하민석 앞에서 건방지게 굴다니, 그야말로 반역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안색이 변했지만 유독 하민석은 표정의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잠시 변백범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에야 비로소 마음에 들어 하는
“홍 어르신……”하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르신께서도 우리 하씨 집안 일에 개입하고 싶으세요?”“강남의 하늘인 하씨 집안일에 누가 감히 끼어들고 싶겠어?”홍인조는 담담하게 말했다.“아쉽지만 너는 지금 3년 전의 하 세자가 아니야.”“너한테 손을 대는 건 그 당시 하씨 어르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야.”“그때 하씨 어르신께 신세를 져서 하씨 가문을 대신해서 세 번이나 손을 써야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야……”홍인조의 말에 그 곳에 있던 하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홍인조, 길바닥의 왕이다!이 분은 강남 길바닥에서 정말 창시자급 인물이다!왜냐하면 많은 길바닥의 규칙들을 그가 세웠기 때문이다. 관청과 군단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들을 그가 모두 처리했다. 심지어 강남에서는 홍인조가 강남의 일인자라는 설도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홍인조라는 사람은 상당히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이름은 나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홍인조는 이곳에 서서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변백범과 사람들을 무력으로 위협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하 도련님, 오늘 저 사람만 해결하면 되는 겁니까?”홍인조는 담배 한 대를 꺼내 한 모금 피운 뒤에야 입을 열었다. “네.”하민석이 말했다. “죽여요? 살려요?”“마음대로 하세요. 그 사람만 없애면 돼요. 나머지는 어르신이 좋을 대로 하세요.”하민석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보기에 승산이 있어 보였다. 지금 강남 군단만이 손을 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하현을 구할 수 있겠는가?“좋아.”홍인조가 앞으로 나서며 하현을 보고 말했다.“하 세자, 옛정을 봐서 네가 스스로 끝내,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르신, 확실히 오늘 일에 개입을 하겠다는 건가요?”“오늘 이후에 남원 길바닥의 한 명의 인물이 없어질까 두렵지 않으세요?”“어
한 무리의 하씨 가문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며 쳐다보고 있다. 잠시 후 모두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쏠렸다.그가 지금 이 순간까지 이렇게 침착하다니, 설마 그 사람을 정말 그가 청한 건가?곧 그 0001번의 아우디 A6가 멈춰 섰다.운전자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왼쪽 뒤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서 원기왕성한 중년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는 약간 수척해서 보기에는 여느 노인과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누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왕을 선택했냐는 듯, 오직 자신만이 왕이라는 기세가 퍼져나갔다. “강남의 일인자, 이준태!”홍인조는 중얼중얼 이 사람의 이름을 내뱉으며 얼굴색이 변화무쌍해졌다. 그와 이준태, 한 사람은 관청의 왕이고 한 사람은 길바닥 왕이다. 두 사람에겐 묵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왕과 왕이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비록 서로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정식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두 사람이 이곳에서 만났다. 하씨 가문의 많은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고 이 차를 보았을 때 안색이 심하게 변했다. 침착했던 할머니도 지금 얼굴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일부 하씨 집안 사람들은 심지어 몸을 약간 떨기도 했다. 그가 왔다!지금 그의 곁에는 운전사 한 사람만이 따라다닐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걸어왔을 때 마치 천군만마처럼 보였다. 하태규, 하민석 등 사람들의 안색이 변화무쌍해졌고 눈가에는 계속 경련이 일어났다. 그들은 오늘 하현을 잡아먹으려 했다. 그런데 만에 하나 하준태가 그를 위해 왔다면?하씨 가문이 과연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사람은 강남의 일인자다!강남의 일인자!이 분은 듣기로 이후에 연경에 가서 부임할 기회가 있다고 한다!이런 사람은 하씨 가문은커녕 한국의 10대 최고 가문도 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이 분이 오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지금 이 순간, 하씨 가문의 적지 않은
”당신이 대답하지 않으면 난 일어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진홍헌은 이미 반쯤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진지한 표정, 애틋한 눈빛으로 사랑을 구하지 못하면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마치 설유아가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땅에 머리라도 박을 기세였다.“설유아, 어서 대답해! 뭐 하는 거야?”“맞아! 진홍헌이 저렇게까지 무릎 꿇었는데 뭘 망설이는 거야? 저러다 무릎이라도 까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무릎을 꿇었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다니!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야!”“만약 진홍헌이 그런 당신한테 화가 나서 마음이 상해버리면 어떻게 할 거야?”“사람이 왜 그래? 저렇게까지 하는데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이때 십여 명의 여자들이 모두 설유아를 호통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진홍헌 같은 부잣집 도련님한테 고백을 받다니!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그런데 그녀는 행복한 줄도 모르고 굴러들어 온 복을 발로 뻥 차려고 하다니?거절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세상 물정 모르는군!여자들의 말에 비춰 보자면 설유아는 승낙은 고사하고 당장 옷을 벗고 진홍헌에게 뛰어들어야 마땅할 것 같았다!여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설유아의 얼굴이 더욱더 창백해졌다.그녀는 많은 부잣집 사람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행태를 보아 왔다.그러나 진홍헌처럼 뻔뻔하고 무례한 사람은 처음이었다.동창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거리낌 없이 자신을 협박하다니!이로 인해 설유아는 진홍헌에 대한 인상이 더욱 나빠졌다.자신의 오빠가 미녀를 성공적으로 손에 넣기 위해서, 그리고 중천그룹에 대구 정 씨 가문이라는 큰 태산을 연결하기 위해서 진홍민은 비길 데 없이 열심히 열을 올리는 것이다.“대답해! 설유아.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빨리 대답하라고!”그녀는 주변에 있던 여자들에게 눈짓으로 설유아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라고 부추겼다.아마 옆에서 계속 이렇게 압박을 하면 설유아처럼 사회 경험이 없는 여자는 결국 응할 것이라고 믿
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한 걸음 내디뎠다.설유아는 진홍헌의 구애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협박까지 받은 것이다.이 시점에서 하현은 형부로서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러나 하현이 막 발을 내디뎠을 때 방금 설유아의 앞을 가로막았던 그 남자들이 하현의 앞길을 막아섰다.키가 1미터 90센티미터에 가까운 남자는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지금 진 도련님이 고백하는 거 못 들었어요?”“관계자 외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말을 하면서 남자는 하현을 밀어내며 어서 물러가라고 했다.하현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설유아는 내 동생인데 무슨 자격으로 당신들이 날 못 들어가게 하는 거죠?”“동생?”양복 차림의 남자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오빠든 아빠든 누가 와도 소용없어요!”“지금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요. 진 도련님이 미인을 품에 안기 전에는 그 누구도 못 들어갑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치켜뜨고 차갑게 말했다.“비켜!”“어쭈, 지금 화낸 거야?”“보아하니 당신은 설유아의 오빠가 아니라 설유아가 마음에 품은 사람인가 보군, 그렇지?”“내 여자가 남한테 구애받고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해?”양복 차림의 남자가 사납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아무 소용없어. 기분 나쁘면 벽에 머리라도 쥐어박아. 우리한테 와서 소란 피우지 말고!”중천그룹 경호팀장인 그는 키가 1미터 90센티미터나 되는 큰 키를 앞세워 자신만만하게 하현에게 맞섰다.어쨌든 오늘 진홍헌은 그에게 외부인을 식당에 들여보내지 말라는 중책을 맡겼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레스토랑에 들어오게 할 수 없었다.대화를 듣고 있던 몇몇 사내들도 히죽히죽거렸다.하현의 절박한 얼굴을 보고 그들은 하현이 설유아가 마음에 둔 사람인 줄 완전히 착각한 것이다.어쩌면 두 사람이 사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다.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한테 먹잇감으로 당하기 직전
진홍헌, 오늘 이런 이벤트를 해줘서 고마워.”설유아의 얼굴이 차가워졌다.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이런 이벤트를 하는 것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마치 그녀를 납치하는 것 같은 기분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생일 파티에 왔다가 뜬금없이 고백을 하는 진홍헌에게 그녀는 조금도 호감이 가지 않았다.“진홍헌, 이런 물건은 사랑하는 여자한테 선물해야 하는 거야.”설유아는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자칫하다 진홍헌에게 말꼬리를 잡혀 쓸데없는 기회를 주게 된다면 곤란하다.“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어.”“그래서 당신의 고백을 받아줄 수가 없어.”진홍헌은 조건도 탁월하고 인물도 아주 잘생겼지만 설유아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진홍헌의 여동생 진홍민은 순간 얼굴색이 확 변하며 입을 열었다.“설유아! 부끄러워서 이러는 거야? 부끄러워서 지금 우리 오빠를 거절하는 거냐고? 그러면 안 돼!”“오빠를 쫓아다니는 여자들이 금정에서 대구까지 쫙 깔렸어!”“당신이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당신 생에 다시는 이런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거야!”진홍헌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설유아, 부끄러워하지 마.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있다는 거야?”“있다고 해도 이런 남자는 나 하나밖에 없어. 당신과 어울릴 수 있는 남자는 나뿐이라구!”“그러니까 거절하지 말아줘!”설유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진홍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평범한 동창일 뿐이야.”“그리고 난 정말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어!”“무엇보다 오늘은 내 생일 파티잖아.”“내 생일 파티에 네가 이러는 건 좀 그렇지 않아?”진홍헌은 설유아의 말에 조금도 타협할 마음이 없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설유아, 바로 오늘이 당신 생일이기 때문에 내가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한 거야!”“왜냐하면 난 정말 진심으로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그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난 하늘
진홍헌은 설유아의 대학 동창이었다.예전에 설유아가 남원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이번에 설유아가 금정에 왔고 마침 생일 파티를 열게 되었다.초대를 받은 진홍헌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반강제적으로 자신이 군침을 흘리던 여자를 자신의 방으로 들여보낼 궁리를 했다.결국 진홍헌은 생일 파티의 화룡점정으로 낭만적인 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 것이었다.주위에서 환호가 터지자 진홍헌은 만면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내걸었다.그는 자신이 가진 부를 드러냈을 때 어떤 여자도 이런 낭만적인 이벤트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최고 10대 가문 출신이라는 말이 자자한 설유아도 절대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설유아, 우리가 동창으로 오랜 세월 지냈지만 오늘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진홍헌은 손에 장미를 들고 반드시 여자를 쟁취하겠다는 굳은 표정으로 설유아 앞으로 걸어갔다.“내가 줄곧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하늘은 내 뜻대로 되게 내버려두지 않았지. 내가 고백하려고 했을 때 넌 남원을 떠났어!”“다행히 실낱같은 인연으로 천리를 돌아 이렇게 금정에서 또 만나게 되었어.”여기까지 말하던 진홍헌은 잘생긴 얼굴에 그녀를 향한 열정 이외에도 숨겨 놓았던 욕정을 가득 드러내었다.물론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 표정을 보고 설유아에 대한 애틋한 애정으로 착각했다.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감탄해 마지않는 듯 환호를 질렀다.다들 눈앞의 장면을 보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이라고 생각했다.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설유아만이 진홍헌과 어울릴 만한 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원래 진홍헌에게 관심이 있었던 몇몇 여자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눈을 흘겼다.결국 요즘 아름다운 여성은 많지만 부유하고 젊은 여성은 많지 않다.일단 설유아가 진홍헌의 눈에 든 이상 그의 부에 기대어 신분 상승을 하려던 여자들에게는 기회가 줄어든 셈이 된다.이때 진홍헌의 옆에
하현은 왕인걸을 담담하게 쳐다보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게 다야?”왕인걸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순간 그는 이를 악물고 포르쉐 차 열쇠를 선물 상자 위에 함께 놓으며 말했다.“하현, 이 포르쉐 차는 어제 막 뽑은 거야.”“금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마 차가 없을 것 같아서.”“이 차 써! 사양하지 말고 써!”“그리고 이것은 내 전화번호야.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연락해. 전화 한 통이면 당장 달려갈게. 화장실 청소든, 길거리 청소든 부르는 대로 달려갈게!”왕인걸은 몇 가지 물건을 모두 하현의 손에 쥐여주고 갈 길 바쁜 피난민처럼 떠났다.하현은 손에 쥐어진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그는 원래는 시간을 체크해 보고 설유아의 생일 선물을 사러 가려고 했었다.그런데 왕인걸이 준 선물 상자를 열어본 후 눈이 번쩍 뜨였다.선물은 딱히 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아니 이것보다 딱 좋은 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어 하현은 포르쉐를 몰고 금정 쇼핑센터 아래층 레스토랑 정문 앞에 도착했다.이곳은 바로 설유아의 생일 파티가 있는 곳이었다.십여 분 전부터 설유아가 보낸 메시지를 볼 겨를도 없이 하현은 얼른 빠른 걸음으로 식당 입구로 향했다.설유아가 억울해할 모습을 생각하니 하현은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설유아는 처제로서 자신에게 잘해주었기 때문에 모처럼의 이런 생일 파티에는 늦지 말아야 한다.하현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재촉하는 동안 어느덧 식당 입구에 도착했다.이때 이미 식당 안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하현이 고개를 들어 보니 꽤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 꽃과 풍선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한 무리의 젊은 남녀가 자발적으로 한 줄로 서서 한 손에 빛나는 장미를 들고 서 있었다.제일 앞에는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무엇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모두 세련된 멋이 물씬 풍겼다.그리고 이 사람들 앞에서 조
왕인걸이 무릎을 꿇고 자기 뺨을 때리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자 사람들은 모두 숨이 턱턱 막히는 듯했고 얼굴이 점점 굳어져 왔다.이윽고 모두의 시선은 하현에게로 쏠렸다.하현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그들은 방금까지 하현을 허세나 부리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비아냥거렸으니 오늘 틀림없이 무슨 끝장이 날 것이다.목숨뿐만 아니라 가진 것 모두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왕인걸이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릴 줄은 몰랐다.왕인걸은 개처럼 하현 앞에 엎드려 있었다.보는 사람들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장면인가!예쁜 종업원은 이 상황이 무서워서 감히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그녀는 딱 봐도 별 볼 일 없는 하현을 왕인걸이 이토록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왕인걸이 방금 본 명함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러는 것인가?하현은 또 무슨 신분인가?어떤 사람이길래 왕인걸이 직접 무릎을 꿇는단 말인가?설은아는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형수’라는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지며 주위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이만하면 됐어. 어쨌든 그가 사과하잖아.”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멀었어!”“만약 그가 오늘 내가 아닌 평범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 사람한테 어떻게 대했을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식칼을 바닥에 내던지며 냉담하게 말했다.“왕 도련님, 직접 하시겠어? 아니면 내가 직접 손을 끊어줄까?”자신의 앞에 내던져진 식칼을 바라보던 왕인걸의 눈가에 심하게 경련이 일었다.그리고 나서 그는 고개를 들어 하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하현, 당신을 귀찮게 할 순 없지. 내가 직접 하면 돼!”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식칼을 들고 왼손을 세게 내리쳤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이렇게 끝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왕인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저렇게 젊은 하현이, 게다가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하현이 어떻게 간민효의 명함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왕인걸은 하현이 어딘가에서 명함을 주워서 허세를 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았다.그는 이를 갈며 어딘가로 전화 한 통을 걸었다.그러나 전화를 마친 후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간민효의 단 한 마디가 그를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하현과 간민효는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이 말에 왕인걸은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마지막 요행과 희망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그는 전화를 끊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풀썩’ 하고 무릎을 꿇었다.이를 본 사람들은 넋이 나가는 것 같았다!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왕인걸이 언제 누구한테 무릎을 꿇은 적이 있던가?누가 그를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하현,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내가 알아보지 못했어. 제발 넓은 아량으로 살 길을 열어줘.”“제발 부탁이야.”“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라고!”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스스로의 뺨을 몇 번이고 찰싹찰싹 때렸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하현이 만족하지 않으면 자신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하현, 제발 기회를 줘.”그는 하현이 만족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자신에게 닥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식당 안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멍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하현이 허세를 부리는 줄 알았는데 이것이 왕인걸에게 먹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명함 한 장을 던졌을 뿐인데 어떻게 왕인걸을 무릎 꿇게 할 수 있단 말인가?설은아의 예쁜 얼굴조차 의아한 표정으로 굳어졌다.하현이 아무렇게나 던진 명함이 왕인걸의 머리를 숙이게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