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우는 주변의 인물들이 하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선 간소민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무릎을 꿇을 줄은 몰랐다.이로 인해 김탁우는 정말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이해할 수가 없으니 더더욱 괴로웠다.그는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하지만 간소민은 미치기 일보 직전의 김탁우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김탁우는 한 발짝 앞으로 나와 간소민을 잡아당기려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온몸이 뭔가에 사로잡힌 듯 꼼짝도 하지 못하는 순간 희미한 살기가 그를 덮쳤기 때문에 하마터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릴 뻔했다.하현은 담담하게 장내를 한 번 쓱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또 누구 불복할 사람 있어?”“또 누가 노부인을 위해 나설 거야?”“나와 봐!”아무도 감히 나서는 이가 없었다.사람의 숫자로도 하현의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육사빈이 만신창이가 된 마당에 무력으로도 그에 비할 사람이 없었다.역량으로 따져도 그 기고만장한 사소민조차 무릎을 꿇었다.출신으로 보자면 김탁우가 좀 우위에 있다고 하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아무도 없다?!지금 김탁우도 하현에게 어깨를 꽉 잡힌 상태다.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적막이 사방을 에워쌌다.노부인은 더욱 절망적인 얼굴이었다.“아무도 나를 말릴 사람이 없나 보군.”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을 뻗어 김탁우의 얼굴을 두드렸다.“김탁우, 봤어?”“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는데 난 천억을 쓸 뻔했지 뭐야.”“그렇게 내가 직접 손을 쓰길 바랐던 거야?”“이제 만족해?”담담하게 웃은 뒤 하현은 돌아서서 손가락을 올리며 자신의 일행들에게 노부인과 양호남, 양신이를 데리고 가라고 지시했다.하현에게 있어 원한과 은혜는 분명했다.건드릴 필요가 없었으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한사코 얼굴을 들이밀며 때려 달라고
”하현!”30분 뒤 얼굴에 붕대를 감고 한 손에 깁스를 한 김탁우는 앞에 놓인 대리석 탁자를 걷어차 쓰러뜨렸다.그는 10대 최고 가문인 김 씨 가문 사람이다.어디를 가든 순풍에 돛을 단 듯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었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씻을 수 없는 창피를 당하다니!체면이 깎였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망가지고 손도 만신창이가 되었다!그는 방 안에서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고 광기 어린 분노에 휩싸였다.하현을 짓밟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몇몇 측근들은 그의 방구석에 서서 벌벌 떨고 있었다.모두들 몇 마디 충고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감히 그의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그의 방에 들어가려고 문 앞에 서 있던 원가령은 차마 문을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끝내 허둥지둥 떠났다.평소 온화하고 점잖은 김탁우라도 이럴 때 자칫하다간 그의 모든 분노를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원가령은 더 엮이기 전에 여기서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이미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하현을 밟을 수 없는 남자는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 쓸모가 없었다!“쓸모없는 놈!”“당신들은 다 쓸모없어!”“하 씨 그놈이 내 구역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도 못 막고 내 얼굴까지 이렇게 망쳐놨어!”“무엇보다 난 당신들한테 평소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었어!”“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 쓸모없는 것들이야!”김탁우는 핸드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봐! 이미 큰 형님이 메시지를 보냈어!”“이번 미국 시찰단 건이 취소되었어!”“이게 뭘 의미하는지 당신들 알아?”“항성과 도성에서 내 체면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고 내 집안마저 체면을 구겼다는 거야!”“이런 상태에서 미국에 가 봤자 당신들이 어떻게 손님들을 비호할 수 있겠어?”김탁우는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미친 사람처럼 포효했다.한편으로는 너무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이 일로 인해 신뢰를 엄청나게 잃었다.또 한편으로는
육사빈의 말에 김탁우의 몇몇 측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김탁우는 냉랭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도대체 정체가 뭐야?”육사빈은 태블릿 PC를 꺼내 들며 말했다.“하현은 데릴사위입니다.”“그의 아내는 10대 최고 가문 중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주인이 된 설은아입니다...”“하지만 확실한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이혼한 사이인 것 같습니다...”육사빈이 하현의 신분에 대해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김탁우가 말을 끊고 차가운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육사빈, 당신은 날 세 살짜리 꼬마로 생각하는 거야?”“지금 날 속이려는 거냐고? 내가 쓰레기 같은 놈한테 당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하수진과 간석준을 불러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간소민을 직접 무릎 꿇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구!”“그런 사람이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생각해? 어떻게 데릴사위가 될 수 있어?”김탁우는 평소에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풍기며 최고 가문 출신다운 고상한 기개가 흘렀는데 지금 무학의 성지에서 온 육사빈을 대할 때는 더더욱 예의 바른 태도를 보였었다.그러나 이제 그의 온화함은 완전히 사라졌다.그는 전에 겪어 본 적 없는 좌절을 맛봤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육사빈은 이미 폐인이 된 몸이었다.그래서 더 이상 대단한 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김탁우도 그녀의 체면을 봐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여자 하나 물어서 호의호식하는 실력이 대단합니다!”“그는 자기 아내 말고도 대구에 있을 때 10대 최고 가문 사람인 이슬기와도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더군요.”“항성과 도성에 있을 때는 항도 하 씨 가문 하수진과 남양국 양 씨 가문 양유훤과도 가까이 지냈다고 합니다.”“간단히 말해서 이놈은 최고 가문들의 인맥과 역량을 쌓았던 거죠!”육사빈은 자료를 보면서 또박또박 보고했다.“이 외에도 무성에 있을 때 영 씨 가문 공주 영지루와도 가까이 지냈다고 합니다.”“여자의 힘을 등에 업고 용문에 들어가 높은 자리에
육사빈의 말에 김탁우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자신이 오늘 크게 망신을 당한 것이 여자 덕이나 보고 사는 미친개한테 물린 거였다니!재수가 없어서 미친개한테 물린 것이었다.자신은 김 씨 가문 김탁우였다.양자라고 해도 신분은 여전히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높다.자신의 이런 신분으로 미친개 한 마리를 상대한다는 건 정말이지 망신스러운 일이다.다행히 스스로 적당히 하고 더 이상 사투를 벌이지 않았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미친개는 자신과 함께 싸우다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김탁우의 노여움이 한결 누그러들었다.하지만 그는 일어서서 커다란 창문으로 가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놈이 질투를 했든 분노에 휩싸였든 상관없어.”“하지만 그가 내 체면을 완전히 구겨 놓았으니 난 반드시 그놈을 죽여야겠어!”“그가 죽지 않으면 내가 가문에 돌아가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김탁우의 결연한 태도에 육사빈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김탁우, 걱정하지 마세요!”“이미 내 스승님께 말씀드렸습니다!”“내 스승님은 항상 저를 자기 자신처럼 여기셨습니다. 그는 제가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분노하셨어요!”“그는 이미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는 선배에게 어서 나서라고 하셨어요! 지금 그 선배는 곧 금정으로 올 거예요!”“당신 선배?!”김탁우는 눈꺼풀을 펄쩍이며 말을 이었다.“그 강호인들이 모두 일인자라고 치켜세우는 육성화?”김탁우는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서남 천문채는 금정에 외부 지사를 두고 있었다.금정은 서문 천문채가 외부에 두고 있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금정에서 가지고 있는 세력과 역량은 가히 무섭다고 할 수 있다.서남 천문채에서 나온 고수들은 항상 금정 귀족 가문들의 귀빈이었다.하지만 그들은 모두 평범한 제자들일 뿐이었다.김탁우는 서남 천문채의 육성화가 가히 막강한 실력을
”좋아! 아주 좋군!”“하현이 여자들 덕에 먹고 산다더니 인정! 인정!”“이 정도 인물이라면 나도 구미가 당기는데!”“오늘 밤 금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내가 금정에 좋은 의사들을 준비하고 몇몇 고수들한테 연락해서 당신을 치료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겠어.”“만약 회복되지 않는다면 당신한테 백억 줄게. 그걸로 당신은 남은 인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거야!”“아무튼 날 따르는 사람 중 그 누구도 피눈물을 흘리게 하진 말아야지!”육사빈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뭔가 알아차린 듯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말했다.“고맙습니다!”“어쨌든 이 설은아란 여자를 직접 만나봐야겠어.”“내가 이런 여자와 잠을 자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현 그놈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겠어?!”김탁우는 마른 입술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육사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이 일이 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솔직히 말해서 대구 정 씨 가문이 아홉 번째 주인을 귀하게 여긴다면 직접 그녀를 금정에 보내 번거로운 일을 처리하도록 하진 않았을 거예요!”“어쩌면 그녀가 기꺼이 당신의 거처로 오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그러면 당신의 복수가 깔끔하고 시원하게 해결될 거예요.”육사빈의 말에 김탁우는 흡족한 듯 입을 크게 벌리고 껄껄 웃으며 스스로의 전략에 만족하며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였다.바로 그때 코에 시퍼렇게 멍이 든 짧은 머리 남자가 깍듯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무성 서북 조 씨 가문 조한철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금정에 직접 한번 오시겠답니다...”...김탁우 측이 조한철의 전화를 받은 그 시각.빅토리아 항구에 정박 중인 또 다른 거대한 유람선에서는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갑판 위에서 최고급 광동 요리가 줄지어 배달되었다.하현은 닭 다리를 하나 뜯은 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는 양 씨 가문 노부인의 그릇에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자자, 노부인. 사양
”노부인 어쨌든 전 진심으로 한 끼 대접하고 싶었습니다.”“지금까지 저와 한 번도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지 않습니다.”“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어요. 어르신을 공경하는 제 마음을 곡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하현이 웃는 모습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게다가 옛날에는 추수가 끝나면 참수를 앞둔 죄인에게도 한 끼의 따뜻한 밥을 주었다고 하지 않습니까?”“정말 안 드실 겁니까?”“요리가 너무 화려해서 제가 82년산 마오타이를 하나 준비했습니다.”말을 하면서 하현은 마오타이 한 잔을 따라주었다.맑은 호박색을 띤 술은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하현이 최고의 대우를 해주며 자신에게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고 노부인은 쌀쌀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씨! 사람을 죽이려거든 그냥 죽이면 되지 왜 자꾸 쓸데없는 수작을 벌이려고 하는 거야?!”“네놈은 정말 개자식이야!”“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내가 못할 말이 뭐 있겠어?!”“내가 남해 칠절에게 이천억을 줬어! 그뿐만 아니라 네놈과 양제명을 죽여만 죽다면 양 씨 가문 재산의 절반을 떼어준다고 했어!”“그러나, 세상 일이란 모두 뜻대로 되는 법이 아니지.”“그러니 날 죽이려거든 얼른 죽여!”말을 마친 노부인은 죽음을 기다리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하현은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사실 노부인은 청부살인을 모의했으니 살 길이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제가 노부인을 죽이지 않더라도 어차피 양제명 어르신이 노부인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다만 그 일을 하기 전에 제대로 얘기를 나눠야 할 것이 있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노부인도 꽤나 똑똑하고 영민하신 분이죠.”“노부인도 아시다시피 양 씨 가문은 양제명이라는 전신만 있으면 천추를 누릴 만한 집안입니다.”“그런데 노부인은 주도적으로 나서서 양제명 어르신을 죽이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을 계승할 능력이 출중한 양유훤 같은 젊은 세대를 몰아냈어요.”“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황제 말기 시절에 서방 강대국들이 우리 극동지방에서 전설을 찾으러 다녔죠.”“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 말입니다.”“바로 불로장생하는 방법에 관한 전설입니다.”“기초 학문이 바뀌고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서구 강대국들이 세계의 90% 가까운 자원을 독점하던 시절이었습니다.”“죽지 않고 영원히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살아있는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었습니다!”“그래서 황제 말기 백 년의 시간 동안 혼란기를 겪었죠.”“그러나 백 년 동안 서방 강대국들은 결국 전설로 내려오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손에 넣지 못했습니다.”“그들의 억압에도 우리 대하는 불굴의 의지로 일어섰고 반만 년 역사를 영광스럽게 되살렸죠.”“서방 강대국들의 야망이 꺾인 겁니다.”“백 년 후, 즉 근대에 이르러 유라시아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전쟁은 황제 말기의 전쟁과 다른 것 같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었죠. 여전히 불로장생을 위한 싸움이 계속되었던 거예요.”“안타깝게도 이번에는 5대 강국이 더 빨리 패했죠.”“대하 총교관은 5대 강국을 쓰러뜨리고 결국 대하를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세워 놓았어요.”“그때 5대 강국의 야심은 다시 한번 꺾였어요.”“하지만 영원히 살고 싶은 욕심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그래서 대놓고 뺏을 수 없고 하니 사람들 몰래 은밀하게 접근하는 거죠.”“섬나라 사람의 도적 같은 못된 심보는 죽지 않았고 인도인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들엔 물불 가리지 않죠.”“노부인이 저지른 일이 그들과 아무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노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이봐, 젊은이. 도대체 네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만!”“못 알아듣겠다구요?”하현이 싱긋 웃으며 냉랭하게 말했다.“괜찮습니다. 그럼 화제를 바꿔 보죠.”“양제명 어르신이 독에 중독된 것은 어떤 고분을 찾아갔을 때였다고 들었습니다.”“일대의 전신이 직접 고분을 찾아갔다는 것은
”어디다 갖다 붙이는 거야?”노부인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하현,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함부로 그런 누명 뒤집어씌울 수 있을 것 같아?”“잘 들어! 난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일을 벌인 거야!”하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요. 당신한테 권력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당신이 바라는 것은 불로장생입니다.”“당신들의 조직은 바로 장생전입니다.”‘장생전’ 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노부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차라리 저와 거래를 하나 하시면 어떻겠습니까?”“노부인이 장생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알려 주신다면 제가 살 길은 열어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당신의 생사를 양제명 어르신께 넘기겠습니다.”“이 조건이 만족에 드는지 모르겠습니다.”“어쨌든 양제명 어르신은 옛정을 생각해서 노부인을 죽이지 않고 다른 살 길을 열어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노부인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현, 당신 너무 순진하군. 이런 치사한 수법으로 내 입에서 뭔가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흥! 절대 그럴 수 없지!”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장생전은 허황된 불로장생의 꿈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많은 해외 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대하를 겨냥했습니다.”“제가 그들의 음모를 좌절시키긴 했지만 아직 모자랍니다.”“장생전에 대해 알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먼저 찾아가 그들을 호되게 제압해야죠. 안 그러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니까요!”“하현, 당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전설의 그 총교관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고?”“장생전을 호되게 제압하겠다고? 흥!”노부인은 코웃음을 쳤다.“당신이 비록 약간의 수완과 능력이 있다고 해도 장생전을 함부로 상대할 수는 없어!”“장생전에 관한 소문을 어디서 들었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야.”“하지만 충고 하나 할 테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