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그리고 스스로 전화를 얼른 끊어버린 것이 노부인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었다.뭔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하현이 죽지 않으면 절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노부인은 지금 자신의 치밀한 계략에 스스로 매우 흡족해하고 있는 것이다.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계획을 세워두었다.이제 곧 퀸 다이아몬드호는 출항할 것이다.출항하고 나면 이제 그녀는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고래처럼 거친 바다를 헤칠 것이다.하현이 아무리 역량과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설마 미국에서 힘을 쓸 수 있겠는가?“할머니, 우리가 왜 이렇게 서둘러 떠나야 하죠? 이러면 우리 스스로가 제 발 저려서 도망가는 것 같잖아요!”“게다가 실패하더라도 하 씨 그놈이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어떻게 감히 페낭에서 우릴 죽일 수 있겠어요?”양신이가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페낭은 결국 우리 남양 땅인데 대하인이 얼마나 날뛸 수 있겠어요?!”양신이도 노부인의 판단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원래 양 씨 가문의 재산은 모두 그들 둘째집의 것이 될 예정이었다.그런데 이런 몇 가지 일 때문에 양 씨 가문 노부인이 간담이 서늘해져서 수중에 남은 현금 800억 중에 600억이나 써 가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유람선 티켓 세 장을 사다니!양신이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이것은 앞으로 그들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부귀한 삶은 이 순간부터 끝이라는 얘기였다.200억이 남았지만 그녀와 양호남의 생활 패턴으로 봤을 때 이 돈이 다 마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맞아요. 할머니. 우리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하 씨 그놈이 무슨 천왕 노자라도 돼요? 아무 이유 없이 우리한테 손을 쓸 수 있겠어요?”“우리가 페낭에 남아 아무리 초라한 신세가 된다고 해도
노부인의 말을 들은 양호남과 양신이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을 마주쳤다.아무래도 노부인의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노부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게다가 속담에 청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없다고 하지 않느냐?!”“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살아만 있다면 언제든 후일을 기약할 수가 있어!”“지금은 양유훤이 기세가 너무 등등해. 하현이라는 개자식과 많은 사람들이 양유훤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지!”“이런 성황에서는 우리가 양유훤을 이길 수 없어.”“하지만 목숨을 걸고 미국에서 와신상담한다면, 게다가 혹시나 미국에서 금융 거물들을 만날 기회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어! 두려울 게 뭐 있겠어?”“미국인은 우리 남양을 미국 땅으로 만들어 대하에 들어가는 교두보로 쓰려고 했었지.”“우리가 진심으로 귀화할 마음을 먹는다면 미국은 우릴 충분히 받아줄 거야.”“그렇게 되면 재기는 물론이고 당당하게 왕처럼 귀환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노부인이 당당하고 차분하게 그녀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늘어놓자 양호남과 양신이 두 사람은 어느새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면 함부로 자신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게다가 미국에서 잘만 처신하면 언제든 왕의 귀환을 할 수 있는 것이다!“웅웅웅!”그때 양호남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핸드폰을 꺼내서 잠시 통화를 했다.그러자 통화를 마친 그의 안색이 일순 변했다.“할머니, 역시 할머니의 예측이 맞았어요!”“하 씨 그놈이 양 씨 가문을 봉쇄하고 가문의 어른들과 정예들을 모두 그의 손아귀에 넣었어요!”“양 씨 가문은 이제 양유훤이 완전히 장악했어요!”“게다가 페낭 경찰서는 그들에게 협조하여 우리한테 죄명을 씌워서 모두 감옥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대요!”“지금 페낭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셋의 행방을 찾고 있어요!”“하 씨 그놈이 우릴 잡으려고 천억의 현상금을 내걸었다는군요!
”할머니,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하씨 놈이 이렇게 많은 돈을 썼으니 우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그놈이 사람들을 데리고 직접 우릴 쫓아올까요?”양호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갔어야 하는 건데.”“그랬다면 하현 그놈이 아무리 천군만마를 가졌다고 해도 비행기를 막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하현이 슈퍼맨도 아니고!”“쯧쯧, 어리석은 것! 이 어리석은 것을 어쩔꼬!”노부인은 한심스러운 듯 혀를 차며 양호남을 쳐다보았다.“비행기를 타는 게 적들에게 가장 쉽게 흔적을 남기는 거야. 심지어 하현 그놈은 우리의 행방을 너무도 쉽게 알아낼 수 있어!”“그러나 유람선은 달라.”“하현 그놈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우리가 어디서 내렸는지 알 수 있겠어?”“하물며, 지금도 난 우리가 최종적으로 어디서 내릴지 확실히 정하지 않았어.”“예를 들어, 우리가 제일 첫 번째 정박지인 섬나라에 내렸다고 치자고. 하현이 어떻게 이걸 예측할 수 있겠어?”노부인의 말을 듣고 양호남과 양신이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듣고 보니 그랬다.그들은 단순히 어떻게 도망갈까를 생각했지만 노부인은 앞으로 벌어질 그들의 미래까지 생각한 것이다.이것이 바로 시야의 차이였다!“그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어! 우리가 이렇게 많은 돈을 들인 이유!”노부인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초리를 가늘게 뽑았다.“퀸 다이아몬드 유람선은 원양그룹 소속이야!”“원양그룹은 대하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금정 김 씨 가문이 운영하는 회사야.”“금정 김 씨 가문의 명성은 너희들도 들어봤을 거야!”“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라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야!”“그런데 그들 소유의 유람선에 누가 감히 함부로 와서 날뛰겠어?”“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하 씨 그놈이 알았다고 해도 감히 우릴 귀찮게 할 수는 없어!”“우리를 잡기 위해 이 유람선에 발을 들인다는 건 금정 김
”아, 참. 내가 좀 알아봤는데.”“김 씨 가문은 셋째인 김탁우를 시험해 보기 위해 특별히 이 유람선을 맡겼어.”“이 외에도 손님들 중에는 금정 3대 규수라고 꼽히는 간 씨 가문 방계 간소민도 있대!”“간단히 말해 이 유람선이 큰 편은 아니지만 막강한 집안사람들이 탔다는 거야.”“하 씨 그놈이 대하에서 아무리 큰소리쳐도 금정 김 씨 가문이나 간 씨 가문이랑 붙으면 틀림없이 찍소리도 못할 거야!”노부인은 이미 모든 방면을 다 계산해 놓은 듯한 태세였다.그녀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양호남과 양신이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하의 10대 가문과 5대 문벌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잘 알고 있다!소위 남양 3대 가문은 대하 10대 가문, 5대 문벌 앞에선 감히 방귀도 못 뀔 정도다.양호남은 긴 한숨을 내뱉으며 분노와 답답함, 무력감을 떨쳐내려고 애썼다.이번 기회에 성공적으로 미국에 도착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발판 삼아 충분히 하현을 짓밟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것이 그가 마음속에 품은 마지막 희망이었다.바로 이 한 가닥의 희망이 그가 지금의 이 낭패를 꾹 참으며 도망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현재의 모든 상실을 참을 수 있게 만들어 준 힘이었다.“딩동!”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연미복을 입은 웨이터가 공손히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는 세 사람을 향해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뒤 미소를 가득 머금고 말했다.“손님, 오늘 점심때 우리 퀸 다이아몬드 유람선에서 성대한 약혼식이 있습니다!”“김 씨 가문 김탁우 님은 며칠 전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원 씨 가문 자제 원가령 님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우리 유람선에서 성대한 약혼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김탁우 님은 우리 유람선의 모든 손님들이 그의 약혼식에 참석하길 바라고 계십니다!”“모두 오셔서 두 분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랍니다.”원가령?!그녀의
그 시각.또 다른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에는 말끔한 옷차림의 아름다운 여자가 기다란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세월을 비껴간 그녀의 영롱한 몸매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도도한 기품에 철없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이 취했었는지 셀 수도 없다.식견이 풍부한 톱클래스, 금융계 거물들도 그녀의 매혹적인 분위기에 무릎을 꿇었다.희고 보드라운 그녀의 긴 다리에 은은한 햇살이 내리쬐자 상아 같은 광택이 유려하게 흐르며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듯했다.그녀는 손에 와인 잔을 흔들며 홀짝이다가 드레스를 입은 원가령을 힐끔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내 딸이 이렇게 빨리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될 줄 몰랐어!”“게다가 상대가 대하 10대 가문 자제라니!”“넌 정말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거야!”온 세상을 가진 듯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여자는 다름 아닌 원천신이었다.페낭에 있을 때보다 더 화사해진 그녀는 언제라도 절정을 향해 치달을 듯 물이 오른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그러고 보면 우리 사위가 정말 복이 많은 거야...”진하게 화장을 한 원가령은 눈썹을 아름답고 정교하게 다듬으며 나름 기품을 더하려 했으나 이전의 청아하고 세련됨은 없었다.그녀는 거울에 비친 낯선 자신을 보며 다소 얼떨떨한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김탁우를 만난 건 내 평생의 복이야!”“그래!”원천신의 얼굴이 갑자기 싸늘해졌다.“하현 그놈 때문에 우리가 그런 비참한 꼴을 당했지!”“원 씨 가문의 지분도 잃고 그나마 있던 자산이라도 가지고 서둘러 항성으로 탈출해야 했으니!”“네가 이 운명의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산천을 떠돌며 빌어먹고 살아야 했을지도 몰라!”“하현 이 개자식!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이고 싶어!”“하지만 이젠 됐어!”“우린 이제 대하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김 씨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거야!”“대하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라구!
”그날 페낭에서 감히 내 개가 되기를 거부하고 날 때린 거 똑똑히 되갚아 줄 거야!”“열 배 백 배 되돌려줄 거야!”“그놈은 내 개가 될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야!”페낭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에 대해 원가령은 조금도 후회하거나 슬프거나 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히려 요 며칠 그녀의 마음에 점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그녀는 지금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운명의 거물을 만났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지는 않았다.아직도 그녀의 마음속엔 원한과 울분이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하현, 하현! 계속 날 무시했었지! 어디 두고 봐! 당신이 절대 날뛰지 못하게 만들 거야!”“난 조금도 실의에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빛나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걸 똑똑히 알게 할 거야!”“당신은 후회하는 일만 남았어!”“꼭 기다려! 죽는 게 뭔지 보여줄 테니까!”원가령은 씩씩거리며 입을 앙다물었다.원천신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가령아, 오늘은 제멋대로 굴지 말고 내 말 꼭 잘 들어야 돼!”“약혼식만 끝나면 우리는 반쯤 김 씨 가문 사람이 되는 거야!”“금정 김 씨 가문 간판이 있으니 너와 내가 대하에 있는 한 하현 그놈도 우리한테 한껏 예의를 갖추어야 해!”말을 마치며 원천신은 일어서서 손에 든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시선을 멀리 던져 수평선 위에 놓았다.그녀는 하현이 그들 모녀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상상하며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엄마, 하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원천신은 가슴을 펴고 득의양앙한 표정을 지었다.“김탁우를 너무 과소평가하지도 마!”“금정 김 씨 가문은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야. 몇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야.”“중간에 대하 무맹 대표가 된 것과는 비교도 안 돼!”“게다가 소위 하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지위와 업적은 모두 대하 무맹이 그에게 준 거야.”“대하 무맹이 그를 폐위시킨다면 그는 단번에 나락으
”알았어! 엄마가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을게!”원천신은 원가령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자신의 딸은 아주 큰 인물이 되었는데 양호남 같은 소인배를 언급한다는 건 창피한 일이다!설령 양호남 때문에 그들 모녀가 창피를 당할 수는 있어도 김 씨 가문은 창피를 당해선 안 된다!”“엄마, 나 김탁우한테 가 볼게. 시간이 거의 다 됐어. 제발 좋은 날 분위기 망치지 말고 조심해!”원가령은 스스로 화제를 바꾸며 일어섰다.그녀가 문을 열자 입구에 시중을 드는 사람 몇 명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원가령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본 시중들은 다정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공작새처럼 콧대를 높이 세운 원가령은 김탁우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아우! 좋아! 정말 좋아!”원천신은 이 광경을 보며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자신의 딸이 훗날 김탁우의 노리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얻은 것에 비하면 잃은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어차피 원가령이 숫처녀도 아닌데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쓰겠는가?!헛웃음을 삼키며 원천신은 발렌시아가 검은 스타킹을 신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그녀는 한기를 느끼며 몸을 살짝 떨었는데 갑자기 곁눈에 뭔가 쓱 보였다.언제 나타났는지 수십 척의 유람선이 빅토리아 항에 가로놓여 있었다.유람선 위에는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 위에는 노란 금실로 된 장식된 궁전이 있었다.대하 용전!이 유람선들과 함께 거대한 유람선이 함께 나타났다.유람선은 번쩍이는 다양한 무기들이 잔뜩 실려 있는 것이 분명 특수하게 개조된 것 같았다.이 유람선들은 거대한 유람선의 안내로 퀸 다이아몬드를 빼곡히 에워싸며 살기를 뿜어냈다.커다란 중화기가 퀸 다이아몬드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산전수전 다 겪은 남양 원 씨 가문 둘째 아가씨 원천신의 눈에서 한 줄기 번쩍이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곧이어 그녀는 얼굴이 급변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최영하는 사람들 뒤에서 걸어 나와 담담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대하 경내에서 불법 총기 소지는 중죄입니다. 여기 일은 우리 용전 항도 지부에서 접수했어요!”이어 그녀는 긴 다리를 들어 올려 선두에 선 경호원을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리며 냉랭하게 말했다.“남양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어디 있어?”“어서 나오라고 해!”선두에 선 경호원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지금 뭐하고 있는지 알아?”“이 유람선이 누구 건지나 알아?”“이건 무단 침입이야!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알기나 해?”“퍽!”최영하는 이런 사람들과 쓸데없는 말을 섞기 싫어서 바닥에서 총 한 자루를 주워 경호원의 허벅지 위에 대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경호원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서 뒹굴거렸다.최영하가 다시 총을 들어 올리자 경호원은 이를 갈며 내뱉었다.“홀! 홀에 있어! 지금 약혼식에 가 있을 거야!”“당신들 함부로 행동하며 우릴 방해했다간 뼈도 못 추릴 줄 알아!”“퍽!”하구봉은 경호원을 발로 걷어차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꺼져!”하현은 경호원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하구봉 일행이 앞장서며 열어놓은 길을 지나며 냉담한 표정으로 걸어갔다....그 시각, 퀸 다이아몬드 홀에는 곳곳에 화려한 장식들로 넘쳐났다.수백 명의 정상급 인파가 모여들어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내로라하는 하객들이 모여 서로 자랑을 늘어놓았다.남자는 양복과 가죽 구두를, 여자는 금은보석을 인생의 훈장처럼 내걸어 놓고 한껏 콧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뒤에서 아무리 정신 나간 짓을 했더라도,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선 세상 가장 잘나가는 사람처럼 보이려 혈안이 되었다.이런 자리에선 남들을 놀라게 할 만한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귀빈 자리에서 양 씨 가문 노부인은 미소를 한껏 지으며 대하의 부유한 기업인들과 인사를 나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