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인의 말에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웃는 듯 마는 듯한 눈빛으로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양 씨 가문 어른들도 냉랭한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들은 노부인의 위세 아래 양유훤과 찌질한 남자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만약 양유훤과 하현이 아무 성과 없이 이대로 끝난다면 양유훤은 순순히 여수혁에게 시집가게 될 테니 그들에게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납품권을 해결하든지, 아니면 시집을 가든지 하라구요?”하현의 얼굴에 빈정거림이 더해졌고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떨어졌다.잠시 후 하현은 드디어 양 씨 가문 사람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오늘 아침에 양호남이 와서 양유훤을 난처하게 한 것은 스스로가 결정한 일이 아니라 노부인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저에게 3일간의 시간을 주세요. 그동안 제가 방법을 찾아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쨌든 그녀는 이대로 여수혁에게 시집을 갈 수는 없었다.“3일의 시간을 달라고?”양호남은 양유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우리 집안이 당면한 일이 매우 촉박하다는 건 알고 있지?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사흘 후면 무슨 사단이 나도 날 거야. 대응하기 늦어!”“당신이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치하고 말이야.”“할머니, 양유훤이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지금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아니면 지금 깨끗하게 시집가는 걸로 결론지으면 되구요. 늦으면 일만 더 커져요!”이쯤 되자 양호남은 매서운 눈빛으로 양유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양호남!”양유훤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항성과 도성에서 자신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벌써 상어 밥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기는 양 씨 가문이었다.“음, 그래. 호남이 말이 맞아. 우리가 구매한 상품들은 애초에 원가를 절약하기 위해 미리 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현이 그런 능력을 가졌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하현의 내막에 대해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어쨌거나 대하에서 온 관광객일 뿐이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페낭 무맹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는 페낭 무맹인 여수혁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그런데 저런 말을 하다니!정말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다.“당신이 어떻게 페낭 무맹을 상대할 건데? 하현,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양신이가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대하인이 이곳 페낭이 어떤 곳인지 알기나 해? 뭐? 당신이 해결하겠다고?”양호남 역시 하현을 노려보며 한껏 비웃었다.“만약 당신이 페낭 무맹을 상대할 수 있다면 난 양유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을 인정하겠어.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에 대해 사죄하겠다구!”“허허, 저 녀석 말주변 하나 좋군. 누굴 상대한다고?”“허풍 떠는 것 좀 봐! 사람들 좀 때렸다고 아주 꼴사납게 기고만장해졌군!”“원 씨 가문, 이 씨 가문 사람들도 감히 저런 말은 못 할 거야!”“그런데 대하 촌놈이 무슨 용기와 기백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야?!”“아이고, 정말 이상한 놈이야. 봤어? 아까부터 계속 우리 쳐다보고 있는 거?!”“우리처럼 예쁜 여자들을 본 적이 없는 거지!”“우리 같은 미인들이 저런 놈한테 엮이면 끝장이야!”주변에 있던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냉소를 흘리며 경멸하는 눈빛으로 일관했다.몇몇 가문 어른들은 경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함부로 지껄이며 허풍을 떨면 사람들이 높이 봐줄 거라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하현의 말에 양유훤조차도 어리둥절해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하현, 당신...”“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할 수 있어.”하현은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양유훤을 안심시키며 냉랭한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쳐다보았다.“솔직히 납품권 문제만 해결하면 이 일은 끝나는 거 아니야?”“게다가 당
”자, 그럼 그렇게 하죠!”“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얼른 진행합시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천천히 전화번호를 걸었다.“강한 척하기는? 전화를 걸어? 당신이 언제까지 그렇게 강한 척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전화한다고 뭐 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줄 아나? 황실의 황태자한테라도 전화하는 거야? 아니면 페낭 거물?”“요즘 대하가 아무리 기세가 좋다고 해도 대하놈이 아무 데나 큰소리 뻥뻥 칠 수 있는 줄 아나?”“전화 한 통으로 우리 양 씨 가문에 닥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내가 무릎이라고 꿇겠어!”하현이 무덤덤하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심드렁한 표정으로 비웃었다.아무도 하현이 이 일을 정말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묵묵히 전화번호를 누른 후 상대의 목소리가 나오길 가만히 기다렸다.“뚜뚜뚜!”통화연결음이 세 번 울리자 맞은편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나야. 하현.”하현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페낭 무맹 일인자 황천화는 화들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하현, 무슨 지시 사항이라도 있어?”하현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페낭 무맹이 양 씨 가문 납품권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아주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전화했어.”황천화는 하현의 말을 듣고 지체 없이 대답했다.“아, 알겠어!”황천화의 말을 들은 뒤 하현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이를 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잠시 멍해 있던 양호남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게 다야? 연기라고 해도 너무 진짜 같은 연기였어, 응?”양호남은 눈썹을 찡긋 올리면서 말했다.“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마치 당신이 페낭 무맹의 직속상관인 것처럼 말하는군! 흥!”“무슨 여동생한테 말하듯 툭 내뱉냐구!”다른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말을
집사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전화를 끊은 뒤 감정을 추스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노부인, 페낭 무맹에서 납품권을 다시 회복해 주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물건을 납품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리고 오후에는 물건을 검수하고 대금까지 지불한다고 합니다.”이 말에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탄성을 지었다.납품권이 회복되면 양 씨 가문은 이번 사업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액의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가문은 앞으로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뭐? 어떻게 갑자기 일이 해결된 거야?”“우리가 물건을 구매한 가격은 원가의 3분의 2였어. 만약 이번에 이 물건을 전량 다 팔게 된다면 우린 가문은 많은 돈을 벌게 될 거야!”“이 금액은 족히 가문 수익의 반년치를 뛰어넘는 거야!”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하현을 우러러보았다.막대한 이익을 거두게 되자 방금 전까지 표독스럽게 드러내었던 경멸과 경시의 눈빛이 한순간에 놀라움과 흥분으로 바뀌었다.노부인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땅바닥에 ‘쾅'하고 떨어뜨렸다.그녀의 표정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 만큼 복잡해 보였다.기쁘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한, 그야말로 난감한 표정이었다.모두가 하현을 보며 입술을 덜덜 떨었다.직접 보고 듣지 않았더라면 절대 믿지 않을 일이었다.“양호남, 더 할 말 있어?”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가운데 하현이 한 걸음 나서며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양 씨 가문을 대신해 페낭 무맹 납품권 문제를 해결했어.”“창고에 있던 재고까지 다 떨게 되었는데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겠어?”양호남과 양신이는 모두 보기 흉할 정도로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들은 원래 이 일을 빌미로 양유훤의 발을 밟아 평생 일어설 수 없도록 만들 심산이었다.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양유훤은 의아한 표정을 하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지. 오늘은 자네가 운이 좋아 어떻게 전화 한 통으로 일이 해결된 거야.”“정말로 운이 좋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어. 그러니 오늘은 자네와 양유훤에게 이 일에 대해서 더는 책임을 묻지 않겠어!”“그리고 양유훤은 지금처럼 큰집에서 일인자로 군림하면 돼!”“그러니 오늘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기로 해. 누구도 밖에 나가서 함부로 지껄여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내가 관청에 신고해서 당장 잡아가라고 할 테니 그렇게들 알아!”노부인은 처음에는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머리를 굴려 빠져나갈 궁리를 찾아냈다.오늘 아침 일찍 양호남은 집안 어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좀 해결할 수 있게 할머니를 설득하는 데 힘을 보태 달라고 말이다.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노부인은 어렴풋이 야망을 드러내었다.결국 일이 잘 해결되자 노부인은 이 모든 공로가 당연히 양호남에게 있다고 생각했다.양유훤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절박했을 때와 일이 해결되고 난 뒤의 노부인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그러나 노부인은 하현에게는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노부인의 시선은 오로지 양호남의 얼굴에 떨어져 줄곧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호남아, 이렇게 쉽게 일을 해결할 것을 왜 미리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이 할미를 괜히 걱정시키고 그래?!”양호남은 잠시 어리둥절할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눈을 껌뻑이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 여수혁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거예요. 결자해지죠!”“여영창 어르신이 화를 내시며 납품권을 끊겠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를 번복할 수 있는 건 여영창 어르신의 친아들밖에 없죠!”“여수혁이 이렇게 내 체면을 세워 줄 줄은 몰랐네요.”“좋아, 좋아. 잘했어!”노부인은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들을 낳으려면 너 같은 아들을 낳아야지, 암!”말을 마치며 노부인은 못마땅한 표
자신의 권위를 한껏 과시하고 여수혁과의 관계도 만천하에 보이기 위해 양호남은 통화 버튼과 함께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잠시 후 전화기 맞은편에서 싸늘하고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여수혁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방금 황천화가 양 씨 가문의 납품권을 재기하라는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비록 여수혁의 아버지가 페낭 무맹 부문주였지만 황천화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일인자였다.황천화가 페낭 무맹 맹주와 무슨 말을 했길래 페낭 무맹주가 납품권을 양 씨 가문에 유지하기로 했는지 여수혁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그래서 양호남의 전화를 받은 여수혁은 불쾌한 감정으로 터뜨린 것이다.하지만 양 씨 가문과 어떤 관계로 흐를지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화를 낼 수도 없었다.심드렁한 여수혁의 말투에 양호남은 오히려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수혁, 페낭 무맹이 우리 집안에 다시 납품권을 줄 거란 걸 난 이미 알고 있었어!”“당신이 이 일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고 얼마나 많은 힘을 썼는지 잘 알고 있어. 당신이 그렇게 힘을 썼기 때문에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가문한테서 노여움을 거두신 거야!”“나 양호남은 이제 양 씨 가문 노부인을 대표해서, 그리고 양 씨 가문을 대표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여수혁은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긴 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상황을 안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개의치 않고 양호남의 말을 받았다.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여수혁은 이내 자세를 고치고 말했다.“큰일도 아닌데 뭘. 사소한 일로 서로 얼굴 붉히면 양쪽 다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노부인께 안부나 잘 전해줘.”말을 마치며 여수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양호남은 전화기를 든 채 냉소를 흘리며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들었어? 못 들었어?”“이번 일은 여수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당신이 해결했다고?”“헛 참!”
”유훤아, 네가 자유롭게 연애하며 진정한 사랑을 추구한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어!”“하지만 넌 우리 가문의 후예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시에 가문의 흥망성쇠에도 책임을 져야 해!”“난 네가 이전에 한 일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겠어!”“그리고 네가 출가하더라도 양 씨 가문 큰집의 수장 자리는 여전히 너의 것이라는 걸 약속할 수 있어!”노부인은 매우 도량이 큰 사람처럼 말했다.“여수혁한테 시집만 간다면 집안에 큰일을 하나 이루는 것과 동시에 우리 가문에는 막강한 인척이 하나 더 생기는 거야!”“저런 소인배가 널 따라다니는데 설마 정말로 널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그저 우리 가문의 권세가 탐이 났을 뿐일 거야.”“가문의 어른으로서 내가 저 소인배에게 십억을 주마. 그 돈을 가지고 대하로 돌아가라고 해!”“그리고 이 일은 이것으로 정리하자꾸나!”“이견은 없겠지?!”양유훤의 안색이 싹 변했다.양호남은 냉소를 흘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양유훤, 들었어?”“노부인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잖아! 옛날 일은 물론이고 이런 남자를 데려온 것도 묻지 않으시겠다잖아!”“게다가 돈까지 줘서 이 남자를 내보내겠다고 하시고!”“넌 할머니가 이렇게 관대하게 해 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해.”“얼른 대답해. 버스 떠나고 손 흔들어 봐야 아무 소용없어!”“할머니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시다니 우린 네가 너무 부러울 지경이야!”양신이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보태었다.“맞아. 여수혁은 성격이 좀 비뚤어지고 여자를 난폭하게 다루는 면이 있지만.”“너한테만은 진심이잖아.”“네가 어떻게 그런 진실한 사랑을 거절할 수 있겠어?”“가족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승낙해야지!”양유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어떻게 이랬다저랬다 할 수가 있어요?”“분명히 하현이 전화를 걸어 이 일을 해결했잖아요!”“그런데 아무 증거도 없이 이 일이 여수혁의 공이라고 치켜세우다니! 그러시면 안 돼요!”
양유훤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수많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이 냉소를 연발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양호남은 더욱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양유훤, 볼 것도 없어. 아무도 저 쓸모없는 놈을 믿지 않아...”양신이도 냉소를 흘리며 거들었다.“너만 저런 사악한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어. 순진하긴!”염소 수염을 기른 집안의 어른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보탰다.“양유훤, 정신 차려. 아무리 낮이라지만 이렇게 허무맹랑한 꿈은 꾸지 않아.”하현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니, 양유훤의 편에 서는 사람조차 없었다.양유훤은 지금까지 자신이 집안을 위해 선의로 한 일이 모두 헛수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뒷걸음질쳤다.하현은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하며 나지막이 말했다.“괜찮아?”“어, 괜찮아.”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른 뒤 노부인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정말로 이 친손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거예요?”양유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내가 방금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노부인이 코웃음을 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화를 내었다.“이 일을 누가 해결했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어차피 누가 했든 저놈은 아닐 거야! 분명해!”“난 이미 너한테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어. 퇴로를 마련해 주기까지 했어!”“여수혁과 결혼하겠다고만 약속한다면 저놈에게는 십억을 주고 너는 계속 큰집의 수장이 되는 거야!”“예전에 쌓아 두었던 원한은 깨끗이 청산해!”말을 마치며 노부인은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어서 빨리 혼인계약서에 서명해!”“들었어? 못 들었어? 할머니가 자비를 베풀어 너희 연놈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라구!”앙호남이 거들고 나섰다.“혼인계약서에 서명하고 어서 여수혁에게 시집가! 그러면 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