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자신을 다그치자 김준걸은 잠자코 있다가 결국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하현, 당신 농담하는 거지?!”“황금궁과 당신 사이에 어떻게 충돌이 있을 수 있겠어?”“잘못 들은 거겠지. 하현, 오해하지 마.”“대표 여러분도 오해하지 마세요.”“오, 그래?”하현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황금궁 궁주 가문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오해하지 말라고 하는군요.”“내 생각엔 대표님들이 오해한 건 아닌 것 같은데?”“인도 사람들은 뭔가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같고 말이야.”“그런데 우리 대하의 김준걸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당신들이 뭘로 증명한다는 거지?”“자기 목숨을 걸고?”하현이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속에 가시가 숨어 있음을 눈치챈 김준걸은 안색이 절로 일그러졌다.그뿐만 아니라 조한철과 용천두의 낯빛마저 어둡게 만들었다.특히 브라흐마 파만의 얼굴에 가득했던 득의양양한 웃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브라흐마 파만은 하현을 노려보다가 잠시 후 억지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김준걸이 오해라고 하니 오해겠지!”“그렇다면 우리 쪽에서도 공명정대하게 경기를 하기 위해서 더 이상 몰아붙일 수 없지. 하현 당신도 더 이상 개의치 마.”김준걸이 코너에 몰린 이상 브라흐마 파만도 더 이상 밀어붙일 방법이 없었다.그렇다면 브라흐마 파만은 아무리 달갑지 않더라도 이쯤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다.하현이 이렇게까지 능수능란한 화술로 파국을 헤쳐나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설령 황금궁 사람들을 불러도 이렇게 된 이상 그들도 하현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결국 아무한테나 함부로 오명을 뒤집어씌울 수 없다는 걸 그들도 깨달았다.하현은 빙긋이 웃으며 그들을 비꼬았다.“그럼 과거의 나쁜 감정을 툴툴 털어 버려 준 인도인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겠는 걸! 나한테 손쓸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아니면 내가 링에 올라 당신들 누구 하나를 족치는 게 두렵다면 나한테 직접 말하든가.”“그것도
”양쪽 모두 무도의 고수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싸우게 하는 것은 피차 너무 낭비입니다.”“그래서 의논 끝에 당신들한테 20가지의 전통 무기를 줄 것입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싸우면 됩니다.”“경기를 할 때는 꼭 무기를 손에 들고 싸워야 합니다. 맨주먹으로는 안 됩니다.”“맨주먹으로 경기에 나설 시에는 바로 실격입니다.”“알아들었습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회자는 손을 흔들어 스태프들에게 선반을 들고나오라고 지시했다.날카로운 창부터 섬나라의 장도, 인도의 장검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하현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이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브라흐마 로샨도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무맹 대표들이 정한 규칙이라고?”“무기를 꼭 사용해야 한다고? 맨주먹으로 싸우면 실격이라고?”“이전에 하현이 맨주먹으로 상대를 날려버리는 걸 보고 일부러 하현의 실력에 제한을 두기 위해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거 아닐까?”“무맹 대표들이 그렇게 뻔뻔하진 않겠지?”“그런데 문제는 무맹 대표들이 제시한 조건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지.”관중들이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대하 쪽에서는 다들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선수들은 꼭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하현의 실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처음 두 경기에서 모두 맨주먹으로 상대를 날려버렸다.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그만큼 맨주먹으로 무술은 잘한다 할 수는 있지만 무기를 다룰 줄 모른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그리고 브라흐마 로샨은 분명히 무기를 잘 다룰 줄 안다.이럴 경우 하현의 입장에선 상당히 불리한 조건임이 분명했다.구양연과 천정국 일행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저절로 눈살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이런 조건이 생겼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러나 조한철과 조가흔은 남몰래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그들은 하현이 상석에 앉는 꼴을 절대 가만히 두
영지루는 고개를 돌려 조가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조가흔이 이 일에 손을 댄 것이 분명했다.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간단히 말해서 하현이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하현의 손발을 묶어버리려는 수작이었다.상황이 이렇게 되면 하현은 평소의 실력 중 기껏해야 70%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 꼴이 된다.하지만 하현은 화도 내지 않고 조가흔을 향해 무심한 듯 말했다.“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못하든 나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어.”“허허, 나도 그러길 바라. 하지만 만약 지게 되면 그 책임은 오로지 당신한테 있는 거야!”조가흔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이번에는 섬나라 장도를 들고 질질 끌면서 천천히 링 한가운데로 갔다.이 모습을 본 브라흐마 파만은 잔뜩 비아냥거리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가장 잘하는 그 맨주먹 기술도 못쓰게 되었고 당신이 익숙한 당도도 이제 못쓰게 되었어.”“그 정도면 당신의 전투력 중 70%밖에 안 남았다는 얘긴데.”“망신당하지 말고 어서 빨리 링 위에서 내려오는 게 어때?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브라흐마 파만, 당신 말이 맞아. 난 지금 확실히 70%의 전투력밖에 없어. 게다가 난 이 섬나라 장도는 잘 다룰 줄도 몰라.”말을 하면서 하현은 손에 들고 있던 섬나라 장도를 링 아래로 떨어뜨렸다.섬나라 장도가 쨍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하현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무기를 손에서 놓는다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닌가?“하현, 무기를 버린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아?”“이제 당신은 맨주먹도 쓰지 못하고 그냥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혹시라도 상대에게 주먹을 날린다면 바로 지는 거야!”“당신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야?”사회자의 ‘친절한' 설명에 대하 관중들은 잠시 넋이
조한철이 음흉한 눈빛으로 내뱉는 말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그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곳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조한철 당신일 줄은 몰랐군.”“조한철 당신 말이 맞아. 내가 이렇게까지 말한 건 당연히 뭔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야.”“심지어 내가 이겼다고까지 말할 수 있어!”하현의 말이 끝나자 조한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인도인들 모두가 비웃으며 몸을 꿈틀거렸다.브라흐마 파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한껏 비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당신 왜 이렇게 오만한 거야?”“무기도 내려놓았는데 이길 거라니? 어떻게 그걸 장담해?”“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야? 아니면 우리 인도인을 우습게 본 건가?”“우리 인도 3대 실력자 중 한 명인 브라흐마 로샨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우리 인도 실력자 중에 아무나 무대에 올라도 당신을 제압할 수 있어!”브라흐마 파만은 하현이 무술만 할 줄 알고 어떤 병기도 잘 다룰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무맹 대표들이 이런 제한을 만들었으니 분명 하현은 질 게 뻔했다!잘나가는 집안 규수들은 이 광경을 보고 얼굴 가득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하현을 얕잡아보았다.그녀들은 모두 하현이 너무 강한 척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들의 얼굴에 비아냥거림이 사라지기도 전에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번 싸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난 하현의 상대가 못 돼요.”브라흐마 로샨이 하현을 쳐다보고는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그래서 패배를 인정합니다!”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잠시 후 이게 무슨 김빠지는 소리인가 하며 정신을 다잡았다.인도 브라흐마 성녀가 패배를 인정해?!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그들은 이것이 꿈이기를 고대하며 어서 이 꿈에서 깨어나길 바랐다.어떤 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기 위
”저는 하현의 실력을 잘 압니다!”“내가 긴 장검을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총을 들고 있다고 할지라도 맨주먹인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이런 상태로 진다면 그건 더 큰 망신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자존심과 존엄마저 무너뜨리는 일입니다!”“차라리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는 게 낫습니다!”“제 기량은 하현보다 못합니다. 하현에게 졌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브라흐마 로샨은 인도인과 브라흐마 파만을 향해 몸을 약간 숙이고는 엄숙하게 말했다.“실망시켜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이 천한 것이! 이런 멍청한 년이 있나?!”브라흐마 파만은 마침내 폭발하듯 치밀어 오르는 화를 표출했다.그는 펄쩍펄쩍 뛰며 관중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노했다.“싸움을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어?”“하현은 지금 아무런 무기도 없어서 공격도 하지 못하는데! 지금 그를 밟아 버리는 건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거랑 다를 바 없잖아?”“브라흐마 로샨!”“함부로 패배를 인정하다니! 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준 거야?”“누가 당신한테 패배를 인정해도 된다는 권한을 줬냐고?”“잘 들어. 지금 당장 공격해! 당장 저놈을 눌러 버리고 승리를 가져와!”“이것은 국전이야! 국전!”“감히 함부로 일을 그르치려 한다면 내가 제일 먼저 너부터 죽여 버릴 거야!”“인도에 있는 당신 가족도 모두!”“당신 조상 18대까지 무덤을 모두 파헤쳐 뼈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지금 브라흐마 파만에게 인도 3대 요승의 기개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그는 그저 화가 난 들짐승처럼 브라흐마 로샨에게 달려가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뿐이었다.이번 경기는 국전의 명운뿐만 아니라 많은 이익이 걸린 싸움이었다!일단 지면 인도의 체면이 깎일 뿐만 아니라 극동에서의 인도 이익도 훼손되고 그 자신도 이 일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그래서 브라흐마 파만은 브라흐마 로샨이 패배를 인정하는 결말을 결코 받아들일
”저 년을 죽여! 외부의 적과 내통한 저 년을 죽여!”“퉤! 브라흐마 인도 성녀? 흥! 내가 보기엔 저 년은 바보 멍청이야!”“저 년을 때려죽여! 외부의 적과 내통하는 년은 때려죽여야 해!”많은 인도인들이 분개하여 모두 브라흐마 로샨을 포위해 공격하며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다만 인도인들의 행동에 많은 보안요원들이 얼른 몰려와 필사적으로 그들을 제압해 다행히 인도인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인도인들의 힘이 거세고 강했지만 보안요원들이 총을 들고 있자 그들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질서 유지를 책임지는 것이 용문 사람들의 책무였다.예전에는 그들을 막아설 핑계를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미 충분한 핑계가 생겼다.인도인이 난입하면 그들을 모두 죽여도 무방했다.“사회자, 그리고 무맹 대표 여러분, 인도 성녀 브라흐마 로샨이 패배를 인정하고 링을 떠났습니다.”“당신들은 이번 경기의 승패를 선언하지 않고 뭘 더 기다리십니까?”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 사회자를 힐끔 쳐다보았고 이때 각 무맹 대표들에게도 날카로운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승복을 하거나 링을 떠나면 지는 게 원칙입니다.”“물론 대표들이 지금이라도 원칙을 바꾸고 싶다면 말씀하셔도 됩니다.”하현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관중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어쨌든 브라흐마 로샨이 패배를 인정하고 링을 떠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지금 링에 있는 사람은 하현뿐이었다.그렇다면 이번 경기에서 이긴 사람은 하현이 틀림없었다.결국 이번 국전에서 승리하는 것은 대하였다.“사회자, 무맹 대표 여러분. 저는 이번 경기가 무효라고 생각합니다.”이때 브라흐마 파만이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 인도에게 페어플레이를 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지금 바로 인도 실력자를 출전시키겠습니다.”“하 씨 저놈이 이런 얄팍한 수를 써서 경기를 치르게 하는 건 우리 인도인으로서는 너무나 불공평한 일입니다. 여러 대표들을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이렇게 인도인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서른다섯 개 우승자들은 인도인에게 진 것을 뒤엎으려고 할 수도 있어요.”“우리도 선수를 바꿔서 다시 출전시킬 수 있다고요!”“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계속 그렇게 싸우다 보면 3년을 더 싸워도 다 못할 거예요!”“브라흐마 로샨은 인도 성녀로 알려져 있어요.”“그녀가 양심에 걸려서 상대보다 실력이 모자란다고 스스로의 패배를 인정했어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로 진 거예요!”“이것은 그녀의 선택이자 권리라구요!”“우리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게다가 정말 조사하려고 한다면 남선 일행을 이렇게 만든 사람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선후 순서도 모르면서 어떻게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영지루의 말투는 나긋나긋했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인도인의 포악함을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무맹 대표들이 함부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행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결국 영지루의 말에 틀림이 없었기 때문이다.조사를 하려면 남선 일행을 이렇게 만든 사람부터 조사해야 한다.하지만 이대로 양측이 가다가는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그들 모두가 성과도 없는 진흙탕 싸움을 계속할 뿐이었다.서로가 떠안아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사람들이 영지루의 말에 설득당하는 걸 보고 조가흔은 눈꺼풀을 펄쩍이며 벌떡 일어서 억지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브라흐마 로샨이 이런 식으로 패배를 인정한다면 인도인들은 절대 승복하지 않을 거예요!”“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인도인과 우리 대하가 사이의 감정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요.”“양국의 관계를 망쳐서는 안 됩니다. 우정이 먼저고 경기는 두 번째입니다.”그녀의 말을 듣고 조한철도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우리 대하가 인도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으니 이만한 일로 서로 얼굴을 붉혀서는 안 되죠.”“게다가 마지막 판에 치열하게 싸워 보지도 않고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게
영지루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하현이 이미 귀빈석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영지루, 더 이상 조 대표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없어.”“뭐?”영지루가 살짝 얼떨떨해하자 장내에 있던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의아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영지루는 지금 그를 돕고 있는데 그가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건가?하현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강대국이 아무리 떠들어 봐도 그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우방? 양보하는 거?”“농담도 그런 농담을 하고 그래!”“당신이 강하게 나올 때 이 사람들은 당신한테 우정을 말하고, 당신이 약할 때 그들은 당신한테 폭력을 행사할 거야!”“그것이 진정한 인정인 거지.”“예를 들어 말이야. 조 대표가 날 인정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이 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손을 번쩍 들어 조가흔의 얼굴을 후려쳤다.‘찰싹’ 하는 낭랑한 소리와 동시에 하현의 시선이 그녀의 주위를 향했다.“이제 여러분들이 조 대표에게 물어보세요. 승복하겠냐고?!”“아!”조가흔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의 얼굴에 시뻘건 손자국이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보기에 민망할 만큼 망가져 있었다.그녀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반격하려고 했지만 이러다간 하현에게 또 뺨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그녀는 하현의 적수가 못 된다.손을 쓴다면 더욱 비참한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다.조한철 일행은 이 광경을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조가흔이 뺨을 맞을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순간 조한철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심장이 마음대로 널뛰기를 하고 있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가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어 보려 했지만 대하 관중들의 눈에 하현을 향한 감탄의 눈빛이 감돌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