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자신을 다그치자 김준걸은 잠자코 있다가 결국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하현, 당신 농담하는 거지?!”“황금궁과 당신 사이에 어떻게 충돌이 있을 수 있겠어?”“잘못 들은 거겠지. 하현, 오해하지 마.”“대표 여러분도 오해하지 마세요.”“오, 그래?”하현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황금궁 궁주 가문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오해하지 말라고 하는군요.”“내 생각엔 대표님들이 오해한 건 아닌 것 같은데?”“인도 사람들은 뭔가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같고 말이야.”“그런데 우리 대하의 김준걸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당신들이 뭘로 증명한다는 거지?”“자기 목숨을 걸고?”하현이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속에 가시가 숨어 있음을 눈치챈 김준걸은 안색이 절로 일그러졌다.그뿐만 아니라 조한철과 용천두의 낯빛마저 어둡게 만들었다.특히 브라흐마 파만의 얼굴에 가득했던 득의양양한 웃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브라흐마 파만은 하현을 노려보다가 잠시 후 억지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김준걸이 오해라고 하니 오해겠지!”“그렇다면 우리 쪽에서도 공명정대하게 경기를 하기 위해서 더 이상 몰아붙일 수 없지. 하현 당신도 더 이상 개의치 마.”김준걸이 코너에 몰린 이상 브라흐마 파만도 더 이상 밀어붙일 방법이 없었다.그렇다면 브라흐마 파만은 아무리 달갑지 않더라도 이쯤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다.하현이 이렇게까지 능수능란한 화술로 파국을 헤쳐나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설령 황금궁 사람들을 불러도 이렇게 된 이상 그들도 하현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결국 아무한테나 함부로 오명을 뒤집어씌울 수 없다는 걸 그들도 깨달았다.하현은 빙긋이 웃으며 그들을 비꼬았다.“그럼 과거의 나쁜 감정을 툴툴 털어 버려 준 인도인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겠는 걸! 나한테 손쓸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아니면 내가 링에 올라 당신들 누구 하나를 족치는 게 두렵다면 나한테 직접 말하든가.”“그것도
”양쪽 모두 무도의 고수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싸우게 하는 것은 피차 너무 낭비입니다.”“그래서 의논 끝에 당신들한테 20가지의 전통 무기를 줄 것입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싸우면 됩니다.”“경기를 할 때는 꼭 무기를 손에 들고 싸워야 합니다. 맨주먹으로는 안 됩니다.”“맨주먹으로 경기에 나설 시에는 바로 실격입니다.”“알아들었습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회자는 손을 흔들어 스태프들에게 선반을 들고나오라고 지시했다.날카로운 창부터 섬나라의 장도, 인도의 장검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하현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이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브라흐마 로샨도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무맹 대표들이 정한 규칙이라고?”“무기를 꼭 사용해야 한다고? 맨주먹으로 싸우면 실격이라고?”“이전에 하현이 맨주먹으로 상대를 날려버리는 걸 보고 일부러 하현의 실력에 제한을 두기 위해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거 아닐까?”“무맹 대표들이 그렇게 뻔뻔하진 않겠지?”“그런데 문제는 무맹 대표들이 제시한 조건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지.”관중들이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대하 쪽에서는 다들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선수들은 꼭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하현의 실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처음 두 경기에서 모두 맨주먹으로 상대를 날려버렸다.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그만큼 맨주먹으로 무술은 잘한다 할 수는 있지만 무기를 다룰 줄 모른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그리고 브라흐마 로샨은 분명히 무기를 잘 다룰 줄 안다.이럴 경우 하현의 입장에선 상당히 불리한 조건임이 분명했다.구양연과 천정국 일행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저절로 눈살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이런 조건이 생겼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러나 조한철과 조가흔은 남몰래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그들은 하현이 상석에 앉는 꼴을 절대 가만히 두
영지루는 고개를 돌려 조가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조가흔이 이 일에 손을 댄 것이 분명했다.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간단히 말해서 하현이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하현의 손발을 묶어버리려는 수작이었다.상황이 이렇게 되면 하현은 평소의 실력 중 기껏해야 70%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 꼴이 된다.하지만 하현은 화도 내지 않고 조가흔을 향해 무심한 듯 말했다.“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무기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못하든 나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어.”“허허, 나도 그러길 바라. 하지만 만약 지게 되면 그 책임은 오로지 당신한테 있는 거야!”조가흔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이번에는 섬나라 장도를 들고 질질 끌면서 천천히 링 한가운데로 갔다.이 모습을 본 브라흐마 파만은 잔뜩 비아냥거리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가장 잘하는 그 맨주먹 기술도 못쓰게 되었고 당신이 익숙한 당도도 이제 못쓰게 되었어.”“그 정도면 당신의 전투력 중 70%밖에 안 남았다는 얘긴데.”“망신당하지 말고 어서 빨리 링 위에서 내려오는 게 어때?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브라흐마 파만, 당신 말이 맞아. 난 지금 확실히 70%의 전투력밖에 없어. 게다가 난 이 섬나라 장도는 잘 다룰 줄도 몰라.”말을 하면서 하현은 손에 들고 있던 섬나라 장도를 링 아래로 떨어뜨렸다.섬나라 장도가 쨍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하현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무기를 손에서 놓는다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닌가?“하현, 무기를 버린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아?”“이제 당신은 맨주먹도 쓰지 못하고 그냥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혹시라도 상대에게 주먹을 날린다면 바로 지는 거야!”“당신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야?”사회자의 ‘친절한' 설명에 대하 관중들은 잠시 넋이
조한철이 음흉한 눈빛으로 내뱉는 말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그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곳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조한철 당신일 줄은 몰랐군.”“조한철 당신 말이 맞아. 내가 이렇게까지 말한 건 당연히 뭔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야.”“심지어 내가 이겼다고까지 말할 수 있어!”하현의 말이 끝나자 조한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인도인들 모두가 비웃으며 몸을 꿈틀거렸다.브라흐마 파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한껏 비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당신 왜 이렇게 오만한 거야?”“무기도 내려놓았는데 이길 거라니? 어떻게 그걸 장담해?”“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야? 아니면 우리 인도인을 우습게 본 건가?”“우리 인도 3대 실력자 중 한 명인 브라흐마 로샨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우리 인도 실력자 중에 아무나 무대에 올라도 당신을 제압할 수 있어!”브라흐마 파만은 하현이 무술만 할 줄 알고 어떤 병기도 잘 다룰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무맹 대표들이 이런 제한을 만들었으니 분명 하현은 질 게 뻔했다!잘나가는 집안 규수들은 이 광경을 보고 얼굴 가득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하현을 얕잡아보았다.그녀들은 모두 하현이 너무 강한 척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들의 얼굴에 비아냥거림이 사라지기도 전에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번 싸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난 하현의 상대가 못 돼요.”브라흐마 로샨이 하현을 쳐다보고는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그래서 패배를 인정합니다!”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잠시 후 이게 무슨 김빠지는 소리인가 하며 정신을 다잡았다.인도 브라흐마 성녀가 패배를 인정해?!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그들은 이것이 꿈이기를 고대하며 어서 이 꿈에서 깨어나길 바랐다.어떤 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기 위
”저는 하현의 실력을 잘 압니다!”“내가 긴 장검을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총을 들고 있다고 할지라도 맨주먹인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이런 상태로 진다면 그건 더 큰 망신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자존심과 존엄마저 무너뜨리는 일입니다!”“차라리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는 게 낫습니다!”“제 기량은 하현보다 못합니다. 하현에게 졌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브라흐마 로샨은 인도인과 브라흐마 파만을 향해 몸을 약간 숙이고는 엄숙하게 말했다.“실망시켜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이 천한 것이! 이런 멍청한 년이 있나?!”브라흐마 파만은 마침내 폭발하듯 치밀어 오르는 화를 표출했다.그는 펄쩍펄쩍 뛰며 관중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노했다.“싸움을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어?”“하현은 지금 아무런 무기도 없어서 공격도 하지 못하는데! 지금 그를 밟아 버리는 건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거랑 다를 바 없잖아?”“브라흐마 로샨!”“함부로 패배를 인정하다니! 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준 거야?”“누가 당신한테 패배를 인정해도 된다는 권한을 줬냐고?”“잘 들어. 지금 당장 공격해! 당장 저놈을 눌러 버리고 승리를 가져와!”“이것은 국전이야! 국전!”“감히 함부로 일을 그르치려 한다면 내가 제일 먼저 너부터 죽여 버릴 거야!”“인도에 있는 당신 가족도 모두!”“당신 조상 18대까지 무덤을 모두 파헤쳐 뼈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지금 브라흐마 파만에게 인도 3대 요승의 기개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그는 그저 화가 난 들짐승처럼 브라흐마 로샨에게 달려가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뿐이었다.이번 경기는 국전의 명운뿐만 아니라 많은 이익이 걸린 싸움이었다!일단 지면 인도의 체면이 깎일 뿐만 아니라 극동에서의 인도 이익도 훼손되고 그 자신도 이 일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그래서 브라흐마 파만은 브라흐마 로샨이 패배를 인정하는 결말을 결코 받아들일
”저 년을 죽여! 외부의 적과 내통한 저 년을 죽여!”“퉤! 브라흐마 인도 성녀? 흥! 내가 보기엔 저 년은 바보 멍청이야!”“저 년을 때려죽여! 외부의 적과 내통하는 년은 때려죽여야 해!”많은 인도인들이 분개하여 모두 브라흐마 로샨을 포위해 공격하며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다만 인도인들의 행동에 많은 보안요원들이 얼른 몰려와 필사적으로 그들을 제압해 다행히 인도인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인도인들의 힘이 거세고 강했지만 보안요원들이 총을 들고 있자 그들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질서 유지를 책임지는 것이 용문 사람들의 책무였다.예전에는 그들을 막아설 핑계를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미 충분한 핑계가 생겼다.인도인이 난입하면 그들을 모두 죽여도 무방했다.“사회자, 그리고 무맹 대표 여러분, 인도 성녀 브라흐마 로샨이 패배를 인정하고 링을 떠났습니다.”“당신들은 이번 경기의 승패를 선언하지 않고 뭘 더 기다리십니까?”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 사회자를 힐끔 쳐다보았고 이때 각 무맹 대표들에게도 날카로운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승복을 하거나 링을 떠나면 지는 게 원칙입니다.”“물론 대표들이 지금이라도 원칙을 바꾸고 싶다면 말씀하셔도 됩니다.”하현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관중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어쨌든 브라흐마 로샨이 패배를 인정하고 링을 떠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지금 링에 있는 사람은 하현뿐이었다.그렇다면 이번 경기에서 이긴 사람은 하현이 틀림없었다.결국 이번 국전에서 승리하는 것은 대하였다.“사회자, 무맹 대표 여러분. 저는 이번 경기가 무효라고 생각합니다.”이때 브라흐마 파만이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 인도에게 페어플레이를 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지금 바로 인도 실력자를 출전시키겠습니다.”“하 씨 저놈이 이런 얄팍한 수를 써서 경기를 치르게 하는 건 우리 인도인으로서는 너무나 불공평한 일입니다. 여러 대표들을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이렇게 인도인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서른다섯 개 우승자들은 인도인에게 진 것을 뒤엎으려고 할 수도 있어요.”“우리도 선수를 바꿔서 다시 출전시킬 수 있다고요!”“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계속 그렇게 싸우다 보면 3년을 더 싸워도 다 못할 거예요!”“브라흐마 로샨은 인도 성녀로 알려져 있어요.”“그녀가 양심에 걸려서 상대보다 실력이 모자란다고 스스로의 패배를 인정했어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로 진 거예요!”“이것은 그녀의 선택이자 권리라구요!”“우리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게다가 정말 조사하려고 한다면 남선 일행을 이렇게 만든 사람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선후 순서도 모르면서 어떻게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영지루의 말투는 나긋나긋했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인도인의 포악함을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무맹 대표들이 함부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행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결국 영지루의 말에 틀림이 없었기 때문이다.조사를 하려면 남선 일행을 이렇게 만든 사람부터 조사해야 한다.하지만 이대로 양측이 가다가는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그들 모두가 성과도 없는 진흙탕 싸움을 계속할 뿐이었다.서로가 떠안아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사람들이 영지루의 말에 설득당하는 걸 보고 조가흔은 눈꺼풀을 펄쩍이며 벌떡 일어서 억지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브라흐마 로샨이 이런 식으로 패배를 인정한다면 인도인들은 절대 승복하지 않을 거예요!”“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인도인과 우리 대하가 사이의 감정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요.”“양국의 관계를 망쳐서는 안 됩니다. 우정이 먼저고 경기는 두 번째입니다.”그녀의 말을 듣고 조한철도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우리 대하가 인도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으니 이만한 일로 서로 얼굴을 붉혀서는 안 되죠.”“게다가 마지막 판에 치열하게 싸워 보지도 않고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게
영지루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하현이 이미 귀빈석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영지루, 더 이상 조 대표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없어.”“뭐?”영지루가 살짝 얼떨떨해하자 장내에 있던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의아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영지루는 지금 그를 돕고 있는데 그가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건가?하현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강대국이 아무리 떠들어 봐도 그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우방? 양보하는 거?”“농담도 그런 농담을 하고 그래!”“당신이 강하게 나올 때 이 사람들은 당신한테 우정을 말하고, 당신이 약할 때 그들은 당신한테 폭력을 행사할 거야!”“그것이 진정한 인정인 거지.”“예를 들어 말이야. 조 대표가 날 인정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이 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손을 번쩍 들어 조가흔의 얼굴을 후려쳤다.‘찰싹’ 하는 낭랑한 소리와 동시에 하현의 시선이 그녀의 주위를 향했다.“이제 여러분들이 조 대표에게 물어보세요. 승복하겠냐고?!”“아!”조가흔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의 얼굴에 시뻘건 손자국이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보기에 민망할 만큼 망가져 있었다.그녀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반격하려고 했지만 이러다간 하현에게 또 뺨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그녀는 하현의 적수가 못 된다.손을 쓴다면 더욱 비참한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다.조한철 일행은 이 광경을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조가흔이 뺨을 맞을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순간 조한철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심장이 마음대로 널뛰기를 하고 있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가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어 보려 했지만 대하 관중들의 눈에 하현을 향한 감탄의 눈빛이 감돌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
”확실히 이 외지인놈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하지만 실력이 있다고 해도 뭐?”“우리 황천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맞아! 하현이 부 사장 무릎을 꿇게 한 능력은 확실히 인정해. 하지만 그런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땅강아지가 운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그것도 한두 번이지!”“진짜 실력자를 만나면 아무 힘도 못 써!”“결국 실력 없는 자가 스스로 무능함에 분노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야!”“황천화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곧 알게 되겠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대하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페낭에서는 이신욱의 저력을 능가할 수 없다.“형님!”“황 선생!”“황 도련님!”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황천화에게 몰려들었고 선두에 선 이신욱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신욱,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까지 나서서 체면을 세워 줘야 할 일이 도대체 뭐냐구?”황천화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들먹거렸다.마치 세상에는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다는 듯.이신욱은 차가운 눈초리로 비아냥거리며 하현을 노려보았다.“감히 외지인 주제에 우리 페낭에 와서 허세를 부리고 사람을 때리다니!”“그래?”황천화는 실눈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신욱을 힐끔 쳐다보았다.그의 코는 푸르덩덩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이빨도 두어 개 비어 있었다.안색이 나쁜 건 말할 것도 없었다.비록 황천화는 이신욱을 그리 높이 보진 않았지만 이신욱은 일찌감치 황천화의 가능성을 보고 명절 때마다 그에서 그득한 선물을 보낸 덕분에 꽤 황천화 덕을 보고 있었다.그래서 황천화도 이신욱에 대해 슬슬 좋은 감정이 생겼다.그런데 지금 그런 후배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다.황천화의 안색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이신욱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