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못한다고 했어?”“누가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어?!”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내가 손을 쓰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사방에 우리를 쳐다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였어.”“만약 인도인들이 군중 속에 숨어서 함부로 움직이고 충동질하고 이간질시켰다면 아마 용문과 황금궁은 죽기 살기로 싸웠을 거야!”“둘째, 난 당신들한테 한 가지 깨달음을 주고 싶었어!”“강호는 때리고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 물정을 잘 파악해야 해!”“당신들이 보는 무협 드라마에서 고수들이 싸우기 전에 왜 이름을 묻고 통성명을 하는 줄 알아?”“그 이유는 간단해.”“만약 아무리 상대가 고약해도 그 뒷배가 대단하다면 이길 수 있어도 일단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그러니까 드라마 주인공들이 명문가에서 나오든가 아니면 은둔의 고수들인 거야.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그들을 칠 수 없지 않겠어?”“문밖을 나서자마자 모든 일을 다 주먹으로 해결할 수는 없잖아?”“그러면 너무 피곤하지 않겠지, 안 그래?”세 젊은이들은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하현을 바라보는 눈에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분명 하현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임이 틀림없다.다만 하현이 이렇게 설명했으니 그들도 더 이상 하현을 몰아붙이지는 않았다.하현이 어찌 이들의 미심쩍은 마음을 몰라봤겠는가?하지만 그도 마음이 복잡했고 피곤하기도 해서 얼른 이 녀석들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하현이 세 젊은이들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듣고 있을 때 무성에 있는 인도상회 산하 아샴 장원에는 십여 명의 인도인들이 모여 컴퓨터 영상을 보고 있었다.영상 속 내용은 남선 일행 세 명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었다.인도인들은 집중해서 열심히 보며 손에는 종이와 펜을 들고 끊임없이 필기를 했다.영상 뒤에는 황수군 일행이 소란을 피우고 뺨을 맞는 과정까지 있었다.그들은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만반
브라흐마 파만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위엄을 느끼게 해 주었다.그 자리에 있던 십여 명의 인도 실력자들은 순간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왜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지?”“당신들 자신이 없는 거야?”무겁게 깔리는 무미건조한 브라흐마 파만의 목소리에 장내는 순식간에 긴장에 휩싸였다.“전에 용문 도 대회 나갈 때는 이렇지 않았잖아?!”“모두들 대하에는 사람도 없고, 용문에는 제대로 된 적수가 없다며 우리 인도의 3대 실력자들이 손쓸 필요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 대하의 젊은 세대를 단숨에 휩쓸 수 있다고 했잖아?”“왜? 이젠 겁을 먹었나?”십여 명의 인도 실력자들은 서로 눈만 껌뻑이다가 잠시 후 일어나 머리를 떨구었다.“스승님, 제가 실력이 모자랐습니다!”브라흐마 파만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해?”“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어?”“내가 물었던 것은 승산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야?”“승산이 없습니다!”잔뜩 얼어붙은 인도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나 이번 싸움이 국전인 이상 제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더라도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총력전을 펼치겠습니다! 인도의 존엄함을 꼭 지키겠습니다!”“힘을 모아 싸우겠습니다!”다른 남자들도 고함을 질렀다.다소 오합지졸 같은 면모가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세는 그럭저럭 괜찮았다.“자, 좋아. 대하에 이런 말이 있지. 부끄러움을 아는 것도 용기라고.”“당신들의 실력과 저 3대 실력자들의 차이를 아는 것도 좋은 일이야.”“상대를 알아야 백전백승하는 법이거든!”“그것도 모르면 당신들은 출전 자격이 없는 거야!”브라흐마 파만이 다그치지 않고 감싸는 말을 하자 십여 명의 인도 실력자들의 얼굴에 자신감의 빛이 서서히 떠올랐다.다만 그들이 계속 떠들기 전에 어디선가 당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스승님, 제가 진작에 말씀드렸잖습니까?”“이놈들로는 우리 인도의 영광을 되찾
샤르마 카비가 말을 마치자 가장자리에 있던 다타 구쉬도 입을 열었다.“스승님, 영상을 보니 남선 일행은 이미 병왕급에 도달한 실력이었습니다.”“그냥 가까스로 병왕급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절정의 병왕일 가능성이 큽니다. 전신을 눈앞에 둔 정도의 실력이죠.”“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잘난 척하며 날고뛰지만 또래에 비해 월등히 뛰어날 뿐 기껏해야 초입 병왕급 실력입니다.”“이런 실력으로 남선 일행을 만났으니 전혀 승산이 없죠!”“남선을 비롯한 세 사람이 경험은 좀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경험을 절대적인 실력으로 보완할 때가 많습니다!”“그래서 이 세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지는 겁니다!”브라흐마 로샨도 옅은 미소를 띠며 냉랭하게 말했다.“스승님, 저 사람들이 남들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내보내서 망신까지 당해야 합니까?”“우리 위대한 인도인이 세계만방에 보여줘야 할 것은 우리의 강인함! 무적의 인도입니다!”“부끄러움을 안다면 용감하게 나서선 안 됩니다!”“그건 우리한테 하등의 쓸모가 없습니다!”브라흐마 파만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인도국의 가장 뛰어난 3대 실력자들을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야 천천히 말했다.“당신들의 능력은 내가 잘 알아. 또한 당신들의 실력도 내가 확신해. 어쨌든 당신들은 우리 인도 10대 고수들이 길러낸 자국의 보배들이지!”“그런데 당신들을 직접 출격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이번은 국전인 만큼 신중해야 해.”“만약 당신들이 진다면 우리 쪽엔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어.”“그래서 이놈들을 하나둘씩 내세워 남선 일행과 대결을 치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첫째는 그들의 허실을 엿볼 수 있고.”“둘째는 그들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거지.”“셋째는 강호의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적을 얕잡아보는 마음을 심어주는 거야. 방심하도록 말이지.”“이렇게 한 다음 실력도 있고 그들보다 체력도 비축한 당신들이 나선다면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어. 그다음은 당신들이 우리 인도인
”하지만 우리가 소환되었을 때 스승님이 말씀하셨죠!”“이번에 우리는 브라흐마 커크의 피맺힌 원수를 갚기 위해 왔다!”“설욕은 물론이고 감히 우리 인도인들을 모욕한 하현의 명예를 실추시켜라!”“그에게 역사적인 수치를 남겨라!”“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하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설마 이번에 그가 출전하지 않는 건 아니죠?”“제가 듣기로는 그가 7일 후에 무성에서 우리 모두에게 도전장을 내밀겠다고 큰소리쳤다던데요?”‘하현'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다타 구쉬와 브라흐마 로샨도 표정이 굳어졌다.어쨌든 하현이란 사람은 인도 3대 요승 중 하나인 브라흐마 커크를 무찌른 사람이기 때문이다.비록 인도에서는 하현이 비열하고 파렴치한 수단을 써서 승리를 거뒀다고 소문이 돌았지만 이 젊은 3대 실력자들에게 있어서는 하현이 이긴 건 이긴 것이다.그것만으로 하현의 실력을 설명해 주기 충분했다.그래서 남선 일행보다 하현을 더 중요한 인물로 꼽는 것이다.그러나 무슨 일인지 지금까지 브라흐마 파만은 하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하현? 그가 또 우리와 싸우려고 해?”브라흐마 파만의 얼굴에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이놈은 너무 제멋대로에 자신만만하기까지 해!”“그를 적으로 둔 사람은 우리뿐만 아니라 무성에도 많아.”“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밟고 싶어 해. 그가 상석으로 올라가는 건 더더욱 싫어하지!”“그래서 아마도 이미 누군가가 그를 밟으려고 준비하고 있을 거야!”“결국 그가 나서서 맞붙는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어.”“난 자신도 있고 충분한 승산도 가지고 있거든. 그놈을 무너뜨릴 자신이 있단 말이야.”브라흐마 파만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샤르마 카비 일행은 도대체 저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서로 의아한 눈빛을 주고받았다.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어쨌든 이것은 국전이다.“그러니 하현이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해. 심지어 그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도 돼. 고려할 필요
다음 며칠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하현 쪽에서는 설은아가 순조롭게 퇴원해서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하현은 원래 그녀를 데리러 가려고 발을 뗐지만 마찬가지로 몸이 회복된 최희정이 맞은편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최희정과 부딪히면 자신의 기분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하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조남헌에게 무성 상업계 안에서 무성황금회사의 사업들을 잘 돌봐 달라고 당부한 후 하현은 조용히 국술당에서 인도인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이 기간 동안 남선을 비롯한 세 명의 실력자들은 하현 앞에 자주 나타나 이것저것 물었다.하지만 그들의 눈에 하현은 그리 실력이 뛰어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인과의 일전은 반드시 그들 세 명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들이 오해한 것에 대해 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세 사람이 정말 인도인을 제압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결국 이것은 대하에서 특출한 인재가 나왔다는 것이고 아울러 대하의 미래도 밝다는 얘기였다.한동안 무성 전체는 폭풍전야처럼 조용했다.인도인과의 일전을 조용히 기다리며 심기일전하는 분위기였다.그 후로도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일곱째 날 아침, 하현이 눈을 떴을 때 진주희는 이미 그의 앞에 밥을 가져왔고 그 위에 잘 구운 햄과 계란 두 개를 부쳐 조심스럽게 상을 차렸다.“대표님, 우리 고향의 전통에 따르면 이 밥 한 그릇이 오늘 대표님에게 성공을 가져다줄 거예요!”진주희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오늘 인도인과의 일전에 대해 적잖이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하현은 껄껄 웃으며 진주희가 차린 음식을 후딱 먹어 치운 후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걱정하지 마. 그냥 인도인 몇 명 때려눕히는 것뿐이야. 어쩌면 내가 손을 쓸 필요도 없을지 몰라. 피끓는 젊은 청춘들이 다 제압해 버릴 거거든!”하현은 바로 차를 불러 남선을 비롯한 세 명을 데리고 무성 체육관으로 향했다.무성 체육관은 3층으
”하현 아닙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하현이 오른쪽에 있는 대하 선수 쉼터로 가려고 했을 때 브라흐마 파만이 마침 샤르마 카비 일행을 데리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브라흐마 파만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열정이 충만한 모습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내가 인도에서 오자마자 매일 당신의 이름을 몇 백번 들었습니다. 아주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라니까요!”“그런데 이렇게 오늘 처음 공식적으로 만났군요!”“역시 듣던 대로 젊고 유능해 보입니다. 대하의 대들보, 용문의 희망이라고 할 만하군요!”“다만 당신네 대하 말이 맞아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걸출한 인재는 늘 사람들의 주요 견제 대상이 되는 거죠.”“당신의 명성은 높지만 예로부터 명장은 명이 길지 않은 법이죠.”“아, 이런. 내가 당신 면전에서 내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군요! 하하!”“대하는 반만년 문명이고 예의지국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이런 말에 별로 개의치 않겠죠?”거침없이 내뱉는 브라흐마 파만의 얼굴에는 능청스러운 미소가 그득했다.샤르마 카비 일행도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하현에 대한 자료를 많이 보았지만 바로 앞에서 사람을 마주해 보니 별로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브라흐마 커크를 죽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아마 그들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을 봤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괜찮습니다.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개 입에서 상어가 나올 리 없잖습니까? 뭐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며칠 일찍 만났더라면 이렇게 수고롭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그렇죠?”“뭐,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스스로 능력이 있으니 아무려면 어떻습니까?”“공연할 큰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을 주지 않고서 어떻게 스스로가 광대임을 깨닫게 할 수 있겠습니까?”하현의 말속에 뼈가 있었다.며칠 전에 브라흐마 파만이 하현 앞에 모습을
”브라흐마 성녀님, 인도의 하고많은 실력자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가장 높이 여기는 사람도 당신입니다!”하현은 조금도 숨김없이 호감을 드러내었다.“듣자 하니 당신은 인도 무학에서 미모로도 실력으로도 단연 최고라도 하더군요!”“당신을 이렇게 만나다니 정말 행운입니다!”“내 명의로 된 국술당이라는 무도관이 체임점으로 수십 개의 지점을 두고 있습니다.”“혹시 브라흐마 성녀님이 총교관이 되는 데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아, 걱정하지 마세요.”“국술당 지분 3할과 연봉 이백억 드리겠습니다!”“그리고 장담하건대 인도인이 감히 이 일로 당신을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브라흐마 성녀가 고개만 끄덕여 준다면 우리에겐 큰 영광이겠습니다!”“앞으로 연봉은 계속 올라갈 것이고 심지어 나중에 국술당이 상장하게 되면 당신의 재산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하현은 정말로 브라흐마 로샨을 끌어들이려는 듯 진지하고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샤르마 카비와 다타 구쉬는 자신들도 모르게 브라흐마 로샨을 쳐다보았다.그녀가 하현의 손을 바로 뿌리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의 안색은 점점 더 굳어졌다.어찌 되었든 브라흐마 로샨은 인도 무학에서 가장 미인이었고 젊은 세대들 모두가 그녀를 흠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브라흐마 로샨이 하현의 손을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갑자기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브라흐마 로샨은 눈썹을 펄쩍이며 황급히 하현에게서 손을 빼내 멋쩍은 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당신이 이렇게 날 높게 평가해 주니 고맙습니다!”“하지만 내 능력으로는 당신들의 국술당에 몸담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하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브라흐마 로샨의 눈빛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하현은 연예인만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귀티 나는 자태와 용감한 기상이 말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었다.각자 자기 위치가 다르지만 브라흐마 로샨은 인도 젊은 세대 중 하현과
브라흐마 로샨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하현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브라흐마 로샨, 만약 대우가 충분하지 않다면 다시 얘기하면 됩니다!”“이백억이 모자라면 삼백억!”“삼백억이 모자라면 사백억!”“브라흐마 성녀가 내 체면을 세워 준다면 무성에 있는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브라흐마 로샨의 발걸음이 비틀거렸고 그녀는 도망치듯 서둘러 걸음을 떼었다.하현이 지금 내뱉은 말이 언젠가는 비난의 화살로 돌변해 그녀에게 돌아올 것임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하현이 일부러 이간질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도 젊은 실력자 두 사람은 하나같이 수상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던 것이다.한편 하현이 이렇게 브라흐마 로샨을 추켜세우는 것은 거꾸로 다른 인도인들을 한없이 비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들이 정말로 승리한다고 해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마도 브라흐마 로샨의 얘기일 것이 뻔했다.하현이 너무 비싸게 불렀다는 둥 자신이라면 이런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둥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그래서 다들 브라흐마 로샨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추측하느라 속이 뒤숭숭했다.“하현, 이 파렴치한 소인배!”브라흐마 파만은 결국 불같이 화를 내고 말았다.그는 하현의 몇 마디 때문에 철통같았던 인도 젊은 실력자들이 이미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지금 브라흐마 로샨은 어느새 고립되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하현이 제시한 연봉 때문에 브라흐마 파만도 이렇게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세상 물정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브라흐마 로샨은 더 말할 것도 없다.“브라흐마 파만, 당신 이러면 안 되죠!”“비록 각자 자기 입장이 다 있겠지만 무도에는 국경이 없어요.”“브라흐마 성녀를 칭찬하는 게 어때서요? 좋아하는 게 어때서요?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훗날 인도 무림의 지존이 될 운명인 그녀를 칭찬하지 않고 설마 당신 같은 요승을 추켜세우란 말인가요?”하현은 인도인쪽으로 다가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