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천 장로는 한숨을 크게 쉬며 안타까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용문의 실력자가 인도인보다 실력이 아직 많이 모자라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있으랴.천 장로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손엄명을 보고 잠시 눈살을 찌푸린 후 눈을 가늘게 뜨고 구양연을 바라보았다.“말해 보시오. 무성 지회의 그 하현이란 사람은 승산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도 대회에 올 때까지 그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무성의 다른 실력자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실력은 압도적이었습니다!”“그의 실력으로는 인도인을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기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하현, 하현...”천 장로는 하현의 이름을 되뇌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른 화들짝 놀랐다.“생각났어요! 예전에 이대성이 하현과 내기를 해서 지는 바람에 국술당을 그에게 빼았겼지 않았어요?”“맞아요! 바로 그 사람이에요!”구양연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말을 들은 수많은 장로들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이대성 같은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현의 능력을 입증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배짱도 두둑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경험도 풍부하다는 걸 보여주었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대성 같은 거물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일단 하현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세요.”손엄명은 심호흡을 하고 탁자를 두들겼다.곧 누군가가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그 안에는 하현이 무성에서 반쯤 공개한 자신의 자료들이 있었다.다만 하현이 용문대회에 지원할 때 의도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숨겼기 때문에 이 자료에서는 하현이 새로 부임한 집법당 당주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의도적으로 숨긴 자료이긴 해도 하현의 이력은 여전히 훌륭했다.“좋아, 아주 좋군!”손엄명은 자료를 몇 번 훑어본 뒤 말했다.“전에 무성 도 대회에서 무술 천재가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놈이었
손엄명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장로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이렇게 제멋대로 날뛰다니!눈에 뵈는 것이 없나?물불 안 가리고 도전장을 내밀었다?!고위층 인사들이 논의를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젊은 놈이 함부로 혼자서 인도인을 상대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고?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게 그 꼴인가?역시 실력에 자신 있다는 것인가?“쓸데없는 소리! 지금 뭐라고 했어? 하 씨 그 젊은이가 뭐 어쩌고 어째?”손엄명은 눈을 부라리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구양연 역시 눈꺼풀이 펄쩍거리며 놀랐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부문주님, 하현의 뜻이 분명합니다!”“하현 혼자서 전부를 상대하겠다고?”“장난하는 거야?!”손엄명은 책상을 탁 내리치며 말했다.“이 무슨 장난 같은 소리야!”“이건 국가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싸움이야!”“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대하를 겨냥한 싸움이라고!”“하 씨 그놈은 이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 소꿉장난하는 줄 알아?”“자기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자기가 했던 말을 감당이나 할 수 있겠어?”“개자식!”“이 미친놈!”손엄명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지금 눈앞에 하현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하현이 눈앞에 서 있었다면 벌써 뺨이 벌게지도록 때려죽였을 것이다!“부문주!”“이제 와서 어떻게 했던 말을 도로 집어넣겠습니까?”“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구양연이 벌떡 일어서더니 의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도 대회 우승자라면 누구나 인도인을 상대할 만합니다.”“우리 고위층 사람들이 겁을 먹고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나중에 나가서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당할 겁니다!”“천 장로, 내가 건의하건대 내외 팔당 세 명과 하현이 한 팀을 이뤄 싸우게 합시다!”“인도인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야죠!”“국가의 체면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선언합니다!”“인도인과
운무로 뒤덮인 산악 협곡에 용문 내삼당의 암사가 있었다.흰 치마를 입은 소녀가 마치 선녀처럼 하늘하늘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그녀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산속의 나무와 돌, 심지어 절벽에서조차도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가벼웠다.산속의 바람은 매우 강했지만 모든 바람은 그녀의 속도를 높일 뿐 조금도 그녀를 흔들어 놓지 못했다.벼랑 끝에 있는 푸른 연꽃을 따려고 살짝 고개를 쑥이던 그녀는 배낭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자 얼른 몸을 일으켰다.소녀는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맞은편에서 부드럽고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방금 용문 본부에서 소식이 왔어.”“그쪽에서는 네가 이번에 나가서 꼭 용문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고 벼르고 있어.”“명심해. 이번에 나가면 상대를 만나자마자 자비심은 버려. 절대 관대하게 대하지 마.”“지금 우리 용문의 상대는 인도인이야. 같이 수련하던 언니 오빠들이 아니라구.”차분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소녀는 가볍게 ‘네'하고 대답하며 예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지금 그녀의 발바닥이 나뭇가지에 살짝 닿는 것을 보았고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절벽 사이의 오래된 건물에 착지했다.가벼운 그녀의 몸놀림은 마치 물 위에 떠다니는 물방개처럼 자유롭고 날렵해 보였다.마치 하늘을 제 마음대로 거니는 사람 같았다.소녀는 사뿐사뿐 여유로운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전통 무도복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나왔다.그리고 작은 배낭을 메고 마치 옛날 옛적 고대 협객들처럼 천천히 산길을 내려갔다....대하의 동쪽 바다 어느 섬 위.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자랑하며 상반신을 벗어던진 한 소년이 바다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주먹은 밀려오는 파도 위에 찰싹찰싹 부딪혔다.파도가 그의 주먹에 부서졌다가 그의 뒤로 밀려나 하얀 거품을 만들었다.그러나 거센 파도조차도 두 발을 벌리고 적과 맞선 것처럼 당당히 서 있는 소년의 기세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확실히 기본
그 시각, 무성 국술당.차 한 잔을 기울이던 하현은 하마터면 마시던 차를 맞은편에 앉은 구양연의 얼굴에 뿜을 뻔했다.구양연은 용문 무성 지회 부지회장이다.그리고 천정국은 장로회 중 유일하게 인도인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천 장로님, 구양연 지회장님.”“두 분의 이런 제안은 저한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나 혼자서도 충분히 인도인을 제압할 수 있는데 뭐 하러 나머지 세 사람을 들러리로 만들겠습니까?”두 사람이 하현을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은 뒤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자 하현은 예의를 깍듯이 차리며 사양하지는 않았다.그의 눈앞에는 세 사람에 대한 자료가 놓여 있었다.세 사람의 나이와 신상 정보들을 보면서 하현은 의아한 듯 눈을 치켜세웠다.인도인을 상대하는 것은 그가 보기엔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손바닥 하나면 충분한 일이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는 이 세 청춘들을 데리고 인도인을 맞선다면 뜻밖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은 세 사람을 데리고 나가는 걸 거절한 것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 할 일이 많아서 어린 세 청춘들의 보모를 자처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하현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자료를 보면 이 젊은이들은 모두 젊은 세대들의 자존심이었다.하나같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졌고 그 안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는 사람들 같았다.이런 우물 안 영웅들은 여간 함께하기 쉽지 않다.하현은 그들의 시중을 들며 뒤치다꺼리를 자처할 마음이 없었다.“하현, 자네 이러면 안 돼!”구양연이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용문 쪽에서는 자네가 이번 싸움에서 이기든 지든 간에 자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거야. 단지 젊은 세대 실력자들을 몇 명 데리고 함께 가서 승률을 좀 높이라는 것뿐이야.”“전국의 용문에서 다 이렇게 생각해 주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어?”“자네가 거절하면 나와 천
구양연과 천정국이 이 정도로 설득하고 나오자 하현도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두 분이 걱정하시는 건 이해합니다만 문제는 제가 지금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마음이 정말 없다는 겁니다.”“하현, 우리는 자네를 뒤치다꺼리나 하라고 보내는 게 아니야.”구양연이 빙그레 웃었다.“그 젊은이들을 자네가 특별히 데려온 교관들이라 생각해.”“어쨌든 자네 명의로 국술당이 있으니 사업이 점점 번창하면 교관이 부족할 거야.”“이 세 젊은이들은 모두 무학의 실력자들이네. 그들이 있으면 자네 사업에도 훨씬 도움이 될 거야.”천정국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다만 앞으로 7일만 그들과 함께 싸워 줘.”“이 젊은이들도 아주 대단해. 천부적인 재능과 실력이 아주 출중해.”“하지만 딱 하나, 경험이 좀 부족해. 그래서 만약 인도인의 계략에 넘어간다면 곤란해져.”“그러니까 이번 일의 주축은 자네가 되는 건 확실해. 자네가 꼭 필요하다 싶으면 기용하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돼.”천정국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숨을 골랐다가 말을 이었다.“안타깝게도 이번에 우리가 소식을 너무 늦게 접했어.”“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인도인들을 막았을 텐데. 미리 막았더라면 이렇게 궁지에 몰린 채 실력자들을 모으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하현, 자네도 잘 알겠지만 이번 싸움은 나라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야. 만약 지면 우리 용문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자네도 마찬가지고.”천정국이 이렇게까지 말을 꺼내자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좋습니다. 그럼 7일 동안 내가 그들을 책임지고 이끌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아, 괜찮아.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게.”천정국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참, 이 세 젊은이는 전당의 천심낙, 암당의 남선, 그리고 외오당이 합작해서 키운 나정봉이야.”“그들의 자료를 잘 훑어봐. 그들이 무성에 도착하면 국술당으로 바로 가라고 할게.”“그리고
그날 밤, 하현은 모처럼 밤을 새우며 용문 내외 팔당에 있는 세 사람의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다 훑어보고 난 하현은 세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그도 오랜만에 누군가를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이런 일도 기회가 있어야 하고 인연이 따라줘야 한다.어쨌든 그는 이제 당도대 총교관도 아니며 이 세 사람은 자신의 병사도 아니기 때문이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하현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남궁나연이 놀란 얼굴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왜 그래?”하현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지금은 국술당 학생들에게 아침 수업을 가르칠 시간인데 왜 여기 온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대표님, 이 세 사람이 어제 구양연 부지회장이 말씀하신 그 실력자들인가요?”남궁나연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핸드폰을 꺼내 하현에게 CCTV 화면을 보여주었다.화면에는 스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세 남녀가 있었다.여자에게서는 신선 같은 기질이 느껴졌다.남자 중 한 명은 매우 수줍어하는 듯 보였지만 다른 한 명은 검은 표범처럼 매우 강건한 얼굴이었다.세 사람은 지금 동시에 국술당 앞마당으로 들어섰다.어젯밤에 이미 자료를 살펴보았기 때문에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여자는 남선, 용문 암당 사람이야.”“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이 남자는 천심낙, 용문 전당 사람이고.”“마지막으로 피부가 검은 친구는 나정봉이야. 용문 외오당이 연합해서 키워낸 사람이지.”“그런데 이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온 거야?”“날 찾아?”남궁나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대표님을 찾았다면 다행이게요.”“세 사람은 하나같이 무학적 소양과 실력이 뛰어납니다.”“국술당에 와서 우리 기수들이 기본기를 익히는 걸 보고 몸이 근질근질한지 앞장서서 학생들을 지도해 주었어요.”하현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지도했는데? 뭐 문제 생겼어?”“아, 아닙니다.”“지도도 잘하고 식견도 독특해요. 우리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진주희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세 사람을 뒤뜰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진주희가 사람들을 데리러 발걸음을 뗐을 때 도요타 엘파 한 대가 굉음을 내며 국술당 입구를 거의 박을 듯 사납게 달려와 멈춰 섰다.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화려한 옷을 입은 십여 명의 남녀가 위풍당당한 얼굴로 내렸다.경비원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밀치고 안으로 돌진했다.“선생님들!”얼굴이 까칠하고 사납게 생긴 서른 중반의 여자가 주위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 앞을 헤쳐 나가더니 남선과 상담을 하고 있던 여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이어 여자는 큰소리로 말했다.“방금 인터넷에서 소식 들었어요. 국술당에 대단한 선생님들이 오셨다면서요!”“재주를 타고난 천재가 오셨다는 소문 들었어요!”“더욱 대단한 건 무학의 비법을 전수하는 데 돈도 받지 않았다면서요!”“안 그래도 우리 세 살짜리 귀염둥이 아들에게 집에서 무술을 가르쳐 줄 교관 두 명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서 이렇게 달려왔어요. 교관님들을 우리 집으로 모시려구요!”“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귀염둥이 아들은 분명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 거예요!”“당신들이 우리 아들의 교관이 된 건 정말 행운인 거예요!”여기까지 말한 여자는 주머니에서 지폐 다발을 꺼내 탁하고 소리를 내며 탁자에 내려놓았다.“여기 이천만 원인데 등록금이라고 칩시다!”“우리 집안은 모두 도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에요.”“당신들이 돈을 안 받는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안 줄 수는 없죠!”남선은 눈살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 아주머니, 우린 교관이 아닙니다.”“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뿐이에요.”“혹시 질문이 있으시면 줄을 서서 문의해 주시겠어요?”“그리고 세 살배기 아이는 무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세 살배기는 무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구요?”얼굴이 까칠한 여인의
”부인! 부인!”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은 이 광경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집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까칠한 여자에게 달려와 인중을 꼬집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부인, 정신 차리십시오! 잘못되시면 안 됩니다!”“부인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이건 모두 당신 잘못이야!”“천한 년! 우리 부인이 당신한테 도련님을 가르치라고 하면 영광으로 알아야지!”“감히 거절해?!”“부인에게 무슨 변고라도 있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집사는 말을 마친 후 앞으로 나와 옥같이 예쁜 남선의 얼굴에 손바닥을 휘갈겼다.낭랑한 소리가 울렸다.눈앞에서 피를 토하는 여자의 모습에 놀란 남선은 자신이 무도 고수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우두커니 서서 뺨을 맞고 말았다.그러자 갑자기 남선도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다.전에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우려고 하면 한껏 몸을 낮추어 공손하게 제안했다.그녀는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을 처음 보았다.천심낙과 나정봉도 마찬가지였다.모두 실력이 출중한 무도 고수들이지만 인생 경험은 너무나 짧았다.남선이 얼굴을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그제야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따지려고 앞으로 나왔다.“아저씨, 이 아주머니가 피를 토한 것은 남선과는 무관한 일이에요. 좋은 마음으로 온 사람한테 누명을 씌우면 안 됩니다...”“촥촥!”집사는 다짜고짜 두 젊은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개자식!”“부인이 죽을 것처럼 피를 토하는데도 감히 또박또박 말대꾸를 해?”“죽고 싶어?”현장에 있던 학생들과 이 소식을 듣고 무술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모두 의분에 차서 집사와 까칠한 여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하지만 억지를 부리는 이들 모습에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무성에서 이렇게 함부로 날뛸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일단 이런 사람들을 건드리면 반평생은 아마 괴롭힘에 시달릴 것이다.천심낙과 나정봉 두 사람은 멍한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