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도 안 돼 오늘의 인기 검색어가 되었습니다.”“대하 각계에서 지금 난리가 났어요!”“인도인의 행실이 고약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분을 숨기고 사람들을 방심하게 만든 뒤 도 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하다니!”“상대의 정체도 모르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맞서 싸운 사람들이 아주 분노하고 있어요!”“물론 대하의 무학계는 아주 쓸모없는 집단이고 용문은 대하의 관문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칭하더니 아주 종이호랑이라는 비아냥도 있습니다!”“용문대회는 지금 대하의 치욕이 되었습니다!”“서른다섯 도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인도인 몇 명을 막지 못했습니다!”“용문의 일상 업무를 담당하는 부문주가 장로회와 긴급회의를 열어 이번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논의했다고 들었습니다.”“부문주?”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렇게 큰일이 났는데도 용문주가 나오지 않는 건 그가 정말로 위독하다는 뜻인가?”“용 씨 쪽에서는 반응 없어?”“없습니다.”진주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지금 용 씨 가문은 용천두가 전면에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그의 성격으로 봐서는 상황을 보고 천천히 뭔가를 꾀할 것이 분명합니다.”“용 씨 가문이 손을 쓰면 득이 된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한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심지어 용문주가 몸이 좋지 않다면 내외를 차단해 소식이 전해지지 않도록 했을 거고요.”“하현, 이제 용천두가 이 소식을 전한 것이 한편으로는 당신으로 하여금 이 큰 문제를 해결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됩니다!”“또 한편으로는 화를 초래해 누군가의 칼을 빌려 정적을 죽이는 거죠. 이 일로 당신과 인도인이 목숨을 걸고 죽도록 싸우게 만든 겁니다.”“용천두는 가만히 막후에서 지켜보다가 기회를 노리는 거죠.”“하현, 용천두 이 사람 정말 흉악한 놈이에요!”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가 손을 쓰지 않을수록, 음모를 꾸밀수록, 어제 보인 그의 행동은 모두 꾸며낸 것이라는 걸 의미해
진주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말한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건 당연히 잘 알아요.”“하지만 그거 생각해 보셨어요?”“그들이 손대지 않은 사람은 오직 당신만 남았어요.”“당신 혼자서 어떻게 다 감당하시려고요? 설마 그들과 일대일로 돌아가며 싸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죠?”“용문 내외 팔당, 서른여섯 지회에서 젊은 고수들을 임시로 보내온다고 하더라도.”“문제는 이거예요. 만약 진다면?”“그럼 누가 그 후폭풍을 책임지겠어요?”“인도인은 이번에 만반의 준비를 해서 왔어요. 천하무공이 인도에서 나온다는 오만방자한 말까지 하고 있는 걸 보니 그들이 이번에 얼마나 대단한 자신감으로 왔는지 알 수 있어요!”“우리 용문 고수의 약점을 잘 파악한 사람을 내보냈을 가능성이 커요.”“오죽하면 당신도 이번 용문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각 도 대회 챔피언에 도전했겠어요?”“이번에 인도인이 진다면 국제적으로 큰 망신거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심지어 그들 주변 지역에서 끌어온 고수들도 이번 일이 실패하면 우리 대하의 손아귀에 잡힌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고요.”“이 싸움은 인도인에게는 큰 도박이에요!”“그들은 그동안 잃었던 체면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극동지역 전체에서 대하의 명성과 지위를 땅에 떨어뜨리려는 심산이에요!”진주희는 매우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는 충분한 카드가 있는 게 분명해요.”“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줬다면 하현 당신도 막지 못했을 거예요!”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에야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인도인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해?”“내가 아무리 브라흐마 아부를 짓밟고 브라흐마 커크를 죽였다고 해도.”“그들이 날 아무리 미워하든 원망을 하든 그냥 고수들을 보내 날 죽이면 되잖아?”“그런데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지?”“하현, 그들이 왜 이랬는지 알고 있어.”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청인이 조용히 입을 열
사청인의 설명을 들으며 하현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청인은 역시 궁중 암투에 능한 사람이었다.이런 일에 대한 분석이 구구절절 일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식견까지도 가지도 있었다.사청인의 말을 들은 하현은 차 한 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천천히 음미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이번 국면은 겉으로 보이는 건 대하와 용문을 겨냥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겨냥한 거란 말이지?”“인도인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거고?”진주희는 사청인과 동시에 동시에 마주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참 재밌죠.”“인도인과 결판을 낼 생각도 없었는데 감히 제 발로 죽으러 찾아오다니요.”하현의 얼굴에 단호한 미소가 흘렀다.“그들이 이렇게 싸우고 싶어 안달이라면 기꺼이 싸워 주지!”“진주희, 나 대신 브라흐마 파만에게 말을 전해!”“7일 뒤 무성에서 나와 일대일로 싸우자고!”“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오겠지!”“한 명씩 덤비면 한 명씩 죽일 것이고 두 명씩 덤빈다면 한꺼번에 죽여버릴 거야!”...하현이 인도인과의 전쟁을 선포하던 그때, 성산 기슭에 있는 용문 본부에는 용문 고위층들이 모두 집합했다.“이 싸움에는 도저히 응할 수 없습니다.”“이번 싸움은 인도인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거라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이미 다 조사해 봤어요. 전에 인도인과 맞붙은 도 대회 경쟁자들은 모두 기도 쓰지 못하고 패했어요.”“우리 쪽에서 아직 나서지 않은 사람은 신임 집법당 당주와 이름이 같은 하현이라는 젊은이입니다!”“시험을 주관하는 구양연에게 몇 번이나 그에 대해 물었지만 구양연조차도 하현의 실력이 무적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했어요!”“게다가 그가 무적이라고 해도 혼자서 어떻게 기세등등한 인도인들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인도인들은 이번 싸움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가산을 다 털었어요.”“우리 용문에서 선출한 실력자가 다른 나라 실력자에게 무참히
”부문주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이때 엄숙한 기색이 역력한 한 장로가 일어나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비겁하게 현실을 도피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우리가 정말 이렇게 한다면 우리 용문은 대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조직을 통솔할 수 있겠습니까?”“우리 용문은 예로부터 외적과의 싸움에서 최일선에 섰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이 시점에서 우리가 물러서면 앞으로 어떻게 조국 선열에게 당당히 얼굴을 내밀겠습니까?”“구양연! 당신은 무성지회 부지회장에 불과합니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도전자가 무성지회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이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있었던 겁니다!”“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부문주의 판단을 문제 삼는 겁니까?”그때 장로 한 사람이 탁자를 세게 치며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었다.“그리고 말끝마다 비겁하네 현실을 도피하네 하는데 그러다 혹시라도 지면 어떻게 할 겁니까?”“그 일은 누가 책임질 거냐고요?”“당신이 책임질 겁니까?”“당신이 무슨 자격이 있다구요?”구양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만일 진다면 우리 용문은 비록 체면이 깎일 수도 있고 우리 용문대회가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겠죠.”“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초심을 거스르지는 않은 겁니다!”“적어도 우리 용문에는 어려움을 직시할 용기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거죠!”“지더라도 우리가 분발해서 다음에는 이기면 됩니다!”“그런데 우리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다면 인도의 사기가 치솟을 것은 물론이고 우리 대하 사람들은 하늘 아래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겁니다!”“여러분,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위험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었습니까?”“우리 대하는 위험에 싸워 세계 민족 속에서 우뚝 일어섰습니다.”“지금 우리는 강대한 대국이 되었고 반만년 역사와 드넓은 땅, 게다가 물자도 풍부하고 인재는 넘쳐납니다!”“이런 우리가 어떻게 상황을
”구양연 부지회장, 똑똑히 들어!”“지금 우리 용문이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싸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야! 단지 오늘 잠시 소나기를 피하는 것뿐이야!”“다음 용문대회에서 우리 실력자가 충분히 인도인을 제압할 수 있을 때 손을 써도 늦지 않아.”“주먹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머리로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대야.”“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절대 저버리지 않는다는 거야. 와신상담하다 보면 개구리도 뱀을 삼킬 수가 있는 거야!”“월나라의 구천이 혈기와 용기만 따졌다면 오나라를 물리치지 못했을 거야, 안 그래?”“당시 한신이 무너지는 굴욕조차 감당하지 못했다면 훗날의 승리가 어떻게 가능했겠어?”“그러니 지금 상황과 시류를 고려해 볼 때 이번에 우리는 조용히 이 도전을 피해야 한다고!”“지금 우리가 좀 억울하고 분하다고 그게 뭐 대수야?”“기껏해야 우리 같은 사람들 체면이나 살짝 구기는 거지 뭐. 석고대죄하라고 하면 나가서 사람들한테 하면 되지!”“하지만 싸움을 해서 정말로 진다면 우리는 목숨을 바쳐도 이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어.”구양연이 깊은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부문주님, 우리 모두 무학을 수련하는 사람들로서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싸우지 않고 피하는 것은 우리 장로들의 체면이 깎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기상을 꺾어 놓는 일입니다.”“그 후폭풍은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구양연의 말을 듣고 몇몇 장로들이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친 후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문주님, 구양연의 말이 틀린 건 아닌 듯싶습니다.”“젊은 세대들이 행동에 나서게 놔둔다면 그들이 패한 후에도 부끄러움을 절실히 깨닫고 다시 용감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이들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버럭 성을 냈다.“부끄러움을 깨달아야 다시 용감해질 수 있다고?!”“우리 용문 전체의 체면을 걸고 일부 소수 젊은 세대들에게 깨우침을 주자는 겁니까?”“그건 당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천 장로는 한숨을 크게 쉬며 안타까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용문의 실력자가 인도인보다 실력이 아직 많이 모자라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있으랴.천 장로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손엄명을 보고 잠시 눈살을 찌푸린 후 눈을 가늘게 뜨고 구양연을 바라보았다.“말해 보시오. 무성 지회의 그 하현이란 사람은 승산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도 대회에 올 때까지 그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무성의 다른 실력자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실력은 압도적이었습니다!”“그의 실력으로는 인도인을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기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하현, 하현...”천 장로는 하현의 이름을 되뇌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른 화들짝 놀랐다.“생각났어요! 예전에 이대성이 하현과 내기를 해서 지는 바람에 국술당을 그에게 빼았겼지 않았어요?”“맞아요! 바로 그 사람이에요!”구양연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말을 들은 수많은 장로들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이대성 같은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현의 능력을 입증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배짱도 두둑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경험도 풍부하다는 걸 보여주었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대성 같은 거물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일단 하현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세요.”손엄명은 심호흡을 하고 탁자를 두들겼다.곧 누군가가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그 안에는 하현이 무성에서 반쯤 공개한 자신의 자료들이 있었다.다만 하현이 용문대회에 지원할 때 의도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숨겼기 때문에 이 자료에서는 하현이 새로 부임한 집법당 당주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의도적으로 숨긴 자료이긴 해도 하현의 이력은 여전히 훌륭했다.“좋아, 아주 좋군!”손엄명은 자료를 몇 번 훑어본 뒤 말했다.“전에 무성 도 대회에서 무술 천재가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놈이었
손엄명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장로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이렇게 제멋대로 날뛰다니!눈에 뵈는 것이 없나?물불 안 가리고 도전장을 내밀었다?!고위층 인사들이 논의를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젊은 놈이 함부로 혼자서 인도인을 상대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고?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게 그 꼴인가?역시 실력에 자신 있다는 것인가?“쓸데없는 소리! 지금 뭐라고 했어? 하 씨 그 젊은이가 뭐 어쩌고 어째?”손엄명은 눈을 부라리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구양연 역시 눈꺼풀이 펄쩍거리며 놀랐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부문주님, 하현의 뜻이 분명합니다!”“하현 혼자서 전부를 상대하겠다고?”“장난하는 거야?!”손엄명은 책상을 탁 내리치며 말했다.“이 무슨 장난 같은 소리야!”“이건 국가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싸움이야!”“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대하를 겨냥한 싸움이라고!”“하 씨 그놈은 이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 소꿉장난하는 줄 알아?”“자기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자기가 했던 말을 감당이나 할 수 있겠어?”“개자식!”“이 미친놈!”손엄명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지금 눈앞에 하현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하현이 눈앞에 서 있었다면 벌써 뺨이 벌게지도록 때려죽였을 것이다!“부문주!”“이제 와서 어떻게 했던 말을 도로 집어넣겠습니까?”“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구양연이 벌떡 일어서더니 의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도 대회 우승자라면 누구나 인도인을 상대할 만합니다.”“우리 고위층 사람들이 겁을 먹고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나중에 나가서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당할 겁니다!”“천 장로, 내가 건의하건대 내외 팔당 세 명과 하현이 한 팀을 이뤄 싸우게 합시다!”“인도인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야죠!”“국가의 체면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선언합니다!”“인도인과
운무로 뒤덮인 산악 협곡에 용문 내삼당의 암사가 있었다.흰 치마를 입은 소녀가 마치 선녀처럼 하늘하늘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그녀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산속의 나무와 돌, 심지어 절벽에서조차도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가벼웠다.산속의 바람은 매우 강했지만 모든 바람은 그녀의 속도를 높일 뿐 조금도 그녀를 흔들어 놓지 못했다.벼랑 끝에 있는 푸른 연꽃을 따려고 살짝 고개를 쑥이던 그녀는 배낭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자 얼른 몸을 일으켰다.소녀는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맞은편에서 부드럽고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방금 용문 본부에서 소식이 왔어.”“그쪽에서는 네가 이번에 나가서 꼭 용문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고 벼르고 있어.”“명심해. 이번에 나가면 상대를 만나자마자 자비심은 버려. 절대 관대하게 대하지 마.”“지금 우리 용문의 상대는 인도인이야. 같이 수련하던 언니 오빠들이 아니라구.”차분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소녀는 가볍게 ‘네'하고 대답하며 예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지금 그녀의 발바닥이 나뭇가지에 살짝 닿는 것을 보았고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절벽 사이의 오래된 건물에 착지했다.가벼운 그녀의 몸놀림은 마치 물 위에 떠다니는 물방개처럼 자유롭고 날렵해 보였다.마치 하늘을 제 마음대로 거니는 사람 같았다.소녀는 사뿐사뿐 여유로운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전통 무도복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나왔다.그리고 작은 배낭을 메고 마치 옛날 옛적 고대 협객들처럼 천천히 산길을 내려갔다....대하의 동쪽 바다 어느 섬 위.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자랑하며 상반신을 벗어던진 한 소년이 바다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주먹은 밀려오는 파도 위에 찰싹찰싹 부딪혔다.파도가 그의 주먹에 부서졌다가 그의 뒤로 밀려나 하얀 거품을 만들었다.그러나 거센 파도조차도 두 발을 벌리고 적과 맞선 것처럼 당당히 서 있는 소년의 기세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확실히 기본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