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웃으며 말했다.“그런 뜻이 있든 없든 그건 나와 상관없어.”“하지만 나 하현은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아.”“무고한 자를 함부로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런 나쁜 방법으로 무학을 배우는 걸 바로잡아 다시 바르게 무예를 익힐 수 있도록 할 거야. 그렇게 해야만 십 년, 이십 년이 흘러도 뒤탈이 없어...”“사람을 죽이는 건 쉬우나 살리는 건 어려운 일이야.”“하지만 난 그래도 사람을 살리는 쪽을 택하겠어!”“그것이 나와 당신들의 차이점이야.”...무성 상맹의 무학당 체인점 사건은 걷잡을 수없이 커져갔다.이번에는 과거에 졸업한 일부 학생들이 무학당 체인점에서 사서 장기 복용하던 영양제를 구하지 못해 그만 혼수상태에 빠졌다.이들은 모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이때부터 사회적으로 여기저기서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무성 상맹은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잠시 무학당에 몸담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각 무학당의 교관과 직원들도 모두 무성 경찰서와 무맹의 합동 심사를 받게 되었다.결국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고 때문에 관청이 압력을 가하려고 해도 가할 수가 없었다.관청에서도 사실 용천오와 엮이는 일을 대놓고 하기는 좀 꺼려졌다.간단히 말해 이번 일로 용천오는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지난번보다 몇 배나 더 심각했다.이대로 간다면 가뜩이나 무성 신시가지 사건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무성 상맹이 단기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이러는 사이 하현의 국술당은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어 빠른 시일 내에 리모델링을 모두 마쳤다.남궁나연도 일찌감치 퇴원해서 다른 아홉 명의 교관들을 데리고 왔다.한편 하현은 여러 경로를 통해 무학당 체인점의 학생들이 의식을 잃은 것은 교습 매뉴얼에 문제가 있었고 그 때문에 학생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무술을 익혀서 결국 몸이 상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번에 일이 터지지 않았더라도 십수 년, 이십 년이
곧 많은 학생들과 가족들이 몰려들어 국술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하현은 이럴 것을 진작에 예상했다.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몰려온들 하현은 처음의 가격을 고수했다.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절대 장난을 치지 않았다.돈이 없는 사람들은 무성 상맹을 찾아가 돈을 요구했다.하현은 자신이 사람들을 살리는 수법을 남궁나연을 비롯한 열 명의 교관들에게 전수했다.그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어혈을 토한 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일부 언론 기자들은 누군가의 잘못된 무술 방법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에 놀라면서 회복되기 시작한 학생들을 끌고 가 테스트를 하며 취재에 열을 올렸다.취재를 하면 할수록 기자들은 하현의 치료법에 더욱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무지 살릴 방법이 없을 것 같던 학생들이 건강상의 모든 수치에서 정상을 보이자 기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곧 국술당과 하현의 이름은 무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전후 몇 가지 일을 겪으면서 무성 사람들은 국술당이 현재 무성에서 가장 좋은 무관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하현이 이끄는 국술당의 학생 모집에 정원 제한과 높은 학비라는 문턱이 없었더라면 아마 국술당의 문지방은 벌써 닳아 문드러졌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하현의 다음 기수 정원은 이미 열 배나 비싸게 팔렸다.심지어 각종 연줄을 이용해 하현을 찾아와 빨리 번호표를 받으려고 하는 일도 있었다.하현은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며 대범하게 넘기며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남궁나연에게 학생 모집에 관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다.그녀에게 일을 처리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기 때문이다....하현이 유명해지고 국술당의 명성이 무성 하늘에 울려 퍼졌을 때.용 씨 가문 저택에서 용천오는 뉴스를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개자식!”“하현! 이 개자식!”“누가 우리를 못살게 굴고 있나 했더니 또 이 개자식이었군!”용천오는 지금까지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낸 적
”마영아! 내가 진작부터 신신당부하지 않았어?!”“학생들의 세 끼 식사에 영양 첨가물 추가하고 운동을 마친 후에도 건강 기능 식품을 많이 먹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그래야 우리가 계속 무탈하게 돈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용천오는 눈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포효하며 길길이 날뛰었다.불량한 교습 매뉴얼과 이를 보충해 줄 영양 보조제가 서로 한 몸처럼 엮여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해야 학생들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용천오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자신의 이런 완벽한 계획에 어떻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단 말인가?“설마 영양 첨가제가 잘못되었나? 아냐, 아냐. 그건 절대 불가능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이건 우리의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공장 생산 라인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그런데 하 씨 그놈이 끼어들어 일을 망쳐놓고 이젠 사람을 구하는 구세주 노릇까지 하고 있다고? 우리는 이제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없게 만들어 놓고? 헛!”“분명 우릴 노리고 온 거야.”“이번 일은 학생들이 쓰러지고 혼수상태에 빠져서 일어난 일이야.”“하지만 우리 무학당에서 차려주는 아침 식사는 절대로 문제 될 게 없어!”“게다가 중독성 약물까지 넣어서 그 학생들은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몸살이 나게 되어 있어.”“건강식품도 마찬가지야.”“그런데 어떻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단 말이야?!”용천오는 안색이 급변했다가 결국 심호흡을 하며 겨우 숨을 가라앉혔다.“알았어. 우리 식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어!”“하현 그놈이 사람을 매수해서 아침 식사 재료를 바꾼 게 틀림없어!”“우리 학생들이 만약 아침을 먹지 않고 건강 기능 식품도 보충하지 않은 채 아침 일찍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면 자연히 의식을 잃게 돼!”“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 무학당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이 자식이 대체 어디서 알게 된 거지?
”용천오, 큰일 났습니다!”마영아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하던 순간이었다.이번에는 마하성이 약간 흥분된 얼굴빛으로 뛰어들어왔다.“뉴스! 뉴스를 보세요!”용천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TV를 켜고 뉴스채널로 돌렸다.그러자 순식간에 용천오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화면에는 마스크를 쓴 수백 명의 남자가 줄지어 나타났다.이들은 손에 회칼, 쇠파이프, 각목 등을 들고 학생들과 가족들을 기세등등한 얼굴로 위협하고 있었다.그리고 국술당에 불을 지르겠다고 큰소리쳤다.더욱 경악할 사실은 이 사람들이 모두 무성 상맹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그들은 흉악한 얼굴에 난폭한 눈동자로 입만 열면 우리 용천오, 우리 용천오하고 노래를 불렀다.사람들을 보면 우선은 발로 차고 손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었다.방금 인테리어를 마친 국술당의 내부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다만 이 사람들도 국술당을 완전히 초토화시키지는 않았다.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소란을 일으켜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키기 위함인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은 무법천지로 변했다!그들은 거칠 것 없이 마구 물건을 던지며 소리쳤다.학생들의 생명을 개미 목숨 다루듯 아랑곳하지 않았다.어찌할 바를 모르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남궁나연이 그들의 발길질에 피를 한 모금 뿜자 가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그들은 모두 나무 의자를 들고 마스크를 한 남자들을 향해 던졌고 동시에 무성 상맹의 파렴치한들은 얼른 물러가라고 외쳤다.많은 사람들은 평생 무성 상맹에서 운영하는 쇼핑몰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다짐했다.이 장면을 보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격앙되었다.무성 상맹은 모든 대중들을 상대로 대립하게 된 셈이었다.“개자식!”TV화면을 보고 용천오는 크게 노하며 손바닥을 휘둘러 애꿎은 마하성을 넘어뜨렸다.“아주 좋은 일 났군, 어?”“말해! 누가 사람들을 보낸 거야?”“너희들 머리에 총 맞았어? 국술당을 공격해? 하 씨 그놈을 건
”국술당의 당주 하현이 죽을 작정을 한 모양이군! 겁도 없이!”용천오가 피를 토하며 포효하던 바로 다음 날.무성 종합병원에서 양손에 붕대를 감은 용천진은 벽걸이 TV에 시선을 던졌다.그의 72명 여자 중 한 명인 사청인이 그의 다리를 세심하게 주무르고 있었다.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을 입은 덕에 잘록한 허리와 우뚝 선 가슴이 숨 막힐 듯한 곡선을 이루었다.시스루 옷 사이로 비치는 아찔한 살갗이 진찰을 하러 온 의사들의 눈길을 여지없이 끌어모았다.그러나 의사들은 사청인에게 힐끔힐끔 눈길을 주면서도 용천진을 볼 때는 벌벌 떨며 똑바로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 일은 100% 하현의 자작극이에요.”사청인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그 모습이 방금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웠다.“하현과 우리가 손을 잡은 관계로 용천오와 무성 상맹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어요.”“용천오는 그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지금쯤 아마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을 거예요.”“하현을 계속 자극하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멸망을 초래하는 길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거구요.”“그런데도 일이 벌어졌고 붙잡힌 사람도 고문을 당한 뒤 그들이 무성 상맹 출신임을 자백했어요!”“어이없을 정도로 한 방에 당한 거죠!”“처음부터 용천오가 시켜서 한 짓이라고 인정했으면 경찰서에서도 의심을 했을 거예요.”“하지만 고문을 당한 뒤에 자백을 했으니 경찰은 신빙성 있는 진술이라 믿을 거구요.”“간단히 말해 하현이 아주 마음을 먹고 용천오한테 덮어씌운 거죠!”“하현 그놈이 제대로 일을 할 때는 정말로 자비가 없다니까요. 상대의 허를 찌르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어요!”“이런 사람은 적이 아니라 영원한 친구로 두어야 해요.”“용천오는 머리가 나빠서 조한철을 뒤에서 부추기기만 하다가 하현한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어요!”말을 하는 동안 사청인은 입가에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하현이 준 수표는 그녀가 안전한 곳에
분명 하현과 진주희는 자선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한 마디도 누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듯했다.현장에 있던 모든 하객들도 당연히 그날의 일에 대해 입을 꾹 다물었다.현장의 일을 알 리 없는 모지민은 자신이 그토록 떠받드는 용천진이 그날 하현에게 미친 듯이 맞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그래서 지금 그녀는 하현을 아주 하찮은 존재로 말했다.“이렇게 하는 건 그가 대중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하찮은 인물이라는 걸 스스로 보여주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사장님의 명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구요!”“사장님이 어떻게 저런 소인배와 협력할 수 있을까 의아해할 거예요!”“그래서 말인데요. 사장님, 난 사장님이 그 하현이라는 사람과 손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사장님은 장남에 장손이니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을 거예요.”“용천오 따위 태생의 인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신분이에요!”“그러니 여론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구요!”“그렇지 않다가 만약 집안의 장로들에게 꾸지람이라도 들으면 정말 곤란해져요.”“그러니 사장님께서 지금이라도 나서서 하현 그놈의 파렴치한 행동을 막으셔야 해요.”“용천오와 무성 상맹을 직접 재정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장님의 명성에는 충분히 좋은 영향을 미칠 거예요!”“용천오 그놈이 은혜를 안다면 사장님이랑 싸울 생각을 접고 용천두를 칠지도 모르잖아요?!”“그게 사장님한테는 더 이득 아니에요?”모지민은 마치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그녀가 일부러 사청인과 상반된 주장을 하고 싶어서 저런 발언을 한다는 걸.“그만!”용천진은 얼굴이 검붉어지며 모지민을 향해 호통을 쳤다.“머리가 있다고 다 생각이 있는 줄 알아? 딴따라가 뭘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야?”“복잡하게 돌아가는 암투의 세계를 바보 같은 여자가 어떻게 이해한다는 거야?”“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면 그땐 정말 가만
모지민은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사장님, 무성 바닥에서 양날의 칼은 고사하고 양쪽에 총이 날아와도 어찌 사장님을 다치게 할 수 있겠어요?”“넌 몰라.”“하현이 마음만 먹으면 미친 사람처럼 돌진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뭔지도 몰라. 그따위 것 신경도 쓰지 않아.”“그를 곁에 두는 것은 시한폭탄, 그것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둔 거나 마찬가지야.”용천진은 모지민을 그저 가지고 노는 노리개처럼 취급하지는 않았는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래서 난 용천오를 해결한 후에 하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궁리하고 있는 거야...”용천진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감돌았다.하현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도 있었지만 지울 수 없는 사무친 원망도 있었다.그래서 하현을 대할 때 철저하게 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모지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사장님, 하현이 양날의 검이라고 하셨는데 만약 그 검이 매우 유용하다면 그를 이용해 용천오를 베고 용천두를 베어버리면 되잖아요?”“사장님이 상석에 오른 다음에 하현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말 한 마디면 해결되지 않을까요?”“내가 상석에 오른 다음에?”용천진이 냉소를 흘렸다.“용천오와 용천두가 모두 목이 베이는 날, 아마도 하현은 나한테 선수를 칠지도 몰라!”“왜냐하면 내가 오르려는 상석을 하현 그놈도 원하기 때문이지!”“뭐라구요?!”모지민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하현이 무슨 자격으로 용 씨 가문의 상석에 앉으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용 씨 가문이 아니라 용문이야.”용천진은 물 한 잔을 들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그놈이 용문 집법당의 새로운 당주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을 들었어.”“게다가 그는 지금 용문대회에 출마해 최종 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었어.”“일단 그가 모든 자리를 독차지하게 된다면 용문 집법당 당주의 신분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용문을 차지할 수 있지. 충분히 명분이 서는 얘기니까!”
모지민은 얼떨떨해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용천오는 지금 사장님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했겠는데요, 안 그런가요?”“용천두 쪽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하현이 벌이고 있는 일들의 배후에 사장님이 있을 거라고 오해하고 있을 거예요.”“이런 상황에서 용천두도 뭔가 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하 씨 성을 가진 그놈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장님이 손에 쥔 검 같지만.”“실제로는 오히려 스스로를 위해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거죠.”“용천오를 해결하는 기세를 빌려 사장님과 용천두도 함께 쓸어버리려는 거 아닐까요?”“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사장님의 도구인 양 판을 벌이면서 결국 본인은 산에 앉아서 범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꼴이 되는 거군요.”모지민이 분석한 것을 들은 용천진의 얼굴에는 냉엄한 빛이 떠올랐다.그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말했다.“하 씨 그놈이 물건은 물건이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스스로 판을 벌여 손을 쓰면서도 저 너머에 보이지 않는 수를 두어 전체 판을 휘감아버리려는 것이다.고수의 면모를 여지없이 풍기는 대목이었다.용천진은 하현의 수법에 혀를 내두르면서 눈가에 살의를 떠올렸다.하현이 꾸미고 있는 음흉한 계략이 그의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사장님, 그렇다면 하 씨 그놈은 정말 상종하지 못할 몹쓸 놈이에요!”“용천오가 무너지면 사장님도 덩달아 위험해질 수 있잖아요!”앞으로의 부귀영화와 관련된 일이라 모지민도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사장님은 이렇게 정직하고 좋은 사람인데 하 씨 그놈은 비열하고 파렴치한 소인배예요!”“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그는 결코 사장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놈이 음모를 꾸며 사장님을 공격할까 봐 그게 두려워요.”모지민은 자신의 남자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이 어두워졌다.“사장님, 우리 가능한 한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놈한테 당할 수 있어요!”“괜찮아. 방금 내가 말했잖아? 며칠 후에 하현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으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