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을 보고 이서국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남궁나연 일행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헤아릴 수 없이 마음이 혼란스러웠다.눈앞의 광경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교관으로서 그들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들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무성에서 숭상받던 무학의 교관들이 희망을 주기는커녕 실망만 안겨줬다는 여론이 생기면 그들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자 이서국은 급히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했다.한편으로는 남궁나연 일행에게 간단한 것이라도 좋으니 무학을 가르치라고 지시했다.그렇게라도 해야 상황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오늘 일어난 모든 일로 무성에서 엄청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바로 그때 경호원 같은 모습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재빨리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가운데 큰 길을 만들었다.사치품으로 치장한 옷차림에 얼굴이 창백하고 가끔 기침을 하는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남궁나연 교관님, 저는 김일영입니다. 과거에 당신이 국술당 수석 교관으로 있을 때 난 여러 번 방문해서 당신의 문하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무학의 성지인 황금궁에서 온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무학 교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무학에 대한 당신의 깊은 학식과 실력도 아주 칭송할 만했고요!”“그래서 오늘 당신이 여기서 천 원으로 무학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외지에서 돌아와 여기에 온 것입니다!”“내 사정을 아직 잘 모르실 텐데.”“우리 김 씨 가문은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과 인연이 깊습니다. 나도 젊었을 때는 황금궁의 무학을 수련한 적이 있어요.”“하지만 제대로 된 스승이 없었던 관계로 잘못된 수련을 하고 말았죠. 그래서 결국 사악한 교리에 빠지게 되었구요.”“그동안 밤마다 불길에 타오르는 흉측한 기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남궁나연 교관님이 제발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난 더 이상 이런 폐인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지금처럼 아무것도
남궁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녀는 지금 당장 한 시도 손을 뺄 수 없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다.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한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당신의 상황이 매우 특수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여력이 없습니다”“그러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어떤 이가 따져 물으려고 했지만 김일영이 손을 흔들며 제지했다.그때 십여 명의 경호원들이 지폐가 가득 든 여행 가방을 열었다.“제발 사정 좀 봐 주십시오!”체구가 우람한 경호원에다 거액이 든 돈 가방까지!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누구다 다 안다.남궁나연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김일영을 살짝 쳐다보고는 수락하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김일영이 남궁나연의 맞은편에 앉자 남궁나연은 두 손가락을 뻗어 김일영의 맥문 위에 나란히 얹으며 얼굴을 찌푸렸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당신은 원래 허약한 체질인데 황금궁에서도 기력 소모가 심한 권법을 무리하게 수련했군요. 그렇게 하면 당신의 체내에 장기간 기혈이 부족하게 됩니다...”“그래서 당신은 밤낮으로 머리가 아프고 밤마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되는 거죠.”“하지만 당신의 상황은 크게 어려운 경우는 아닙니다. 나한테 와서 천천히 조절하면 한 3년쯤이면 보통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지금은 어깨도 못 쓰고 손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나중엔 다 좋아질 거예요.”남궁나연의 말에 김일영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입을 열었다.“남궁나연 교관님, 당신 말대로라면 난 3년을 꼬박 몸조리해야 보통의 사람도 겨우 될 수 있다는 거군요. 절대로 고수는 될 수 없는 겁니까?”“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같은 사람이 무술을 배우지 않으면 절대 상석으로 올라갈 기회가 없습니다!”“그래서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로 내가 회복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이 없겠습니까?”“남궁나연 교관님이 도와주신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습니다!”“내 명의로 된 무성 핵심 지역 부동산
”여기 가부좌를 틀고 앉으세요. 변곡점을 돌파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남궁나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고 부하에게 방석을 가져오게 해서 김일영이 가부좌를 틀도록 옆에서 도와주게 했다.그리고 그녀는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손바닥을 들고 김일영의 정수리 대혈을 톡톡 건드렸다.그런 다음 그녀는 김일영의 관자놀이, 양중혈 등을 차례로 두드렸다...마침내 김일영의 단전을 꾹 눌렀다.그러자 눈에 띄게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몹시 기력이 상한 모습을 보였다.반면 김일영의 호흡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빛은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마지막으로 단전을 눌렀을 때 남궁나연은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김일영은 체내의 숨결을 느끼며 순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김일영의 호방한 웃음소리에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무성 사람들은 모두 무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런 그들조차도 입이 딱 벌어지는 광경이었다.“이럴 수가? 방금까지 김일영은 내일 죽을 사람처럼 기운이 없었는데 지금 기운이 넘쳐나는 사람처럼 혈색이 돌아왔어. 마치 무학의 고수 같아!”“완전히 멀쩡한 사람이 되었는데!”“남궁나연 교관이 정말로 김일영의 막힌 변곡점을 돌파해 주었다니!”“이런 교관 밑에서 배우면 우리도 나중에 고수가 될 수 있는 거 아니야?”남궁나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흠모가 가득 서려 있었다.당장이라도 그녀 앞에 달려가 무릎을 꿇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무성 사람들은 모두 최고의 고수가 되고 싶어 한다.지금 그들의 눈앞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미모도 출중한 데다 실력까지 겸비한 교관에게 무학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냉랭했던 남궁나연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나머지 아홉 명의 교관들의 표정도 다시 의기양양해졌다.이서국도 한숨을 돌리며 하현을 힐끗 쳐다보며 목을 베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이서국은 분명 하현에게
남궁나연은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켜 김일영의 맥을 짚었다.순간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몸속의 기운이 역행하고 있어. 역시 잘못된 방식으로 무학을 연마하다가 사도에 빠진 거야. 큰일이야...”“어서! 어서 빨리 황금궁으로 사람을 보내!”“궁주께 가서 손을 써 달라고 부탁해!”“무성에서 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궁주 말고는 없어!”남궁나연은 말을 마쳤다가 이서국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김 씨 가문 사람이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모두가 골치 아파질 거예요!”남궁나연이 황금궁 출신이라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김 씨 가문 사람을 죽인다면 그녀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문제는 그녀도 지금 많이 초췌해진 상태라 다른 사람을 구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다른 교관들도 얼른 그녀에게 다가와 온 힘을 다해 김일영의 몸을 누르며 발작이 진정되기를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사람이 죽는다고?”이서국도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만약 김일영이 여기서 죽는다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결국 김일영의 목숨은 이서국보다 천 배, 만 배나 귀한 것이다!순간 이서국은 옆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을 향해 소리쳤다.“빨리!”“빨리 차를 가져와!”“황금궁으로 가야겠어!”“개자식! 우리 도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때 김일영의 경호팀장이 핏대를 세우며 눈을 부라렸다.김일영은 평소 그들을 진심으로 친절하게 대했다.만약 김일영에게 일이 생긴다면 그들은 반드시 그 원흉을 찾아서 목숨으로 되갚아 줄 것이다!남궁나연 일행은 곤경에 빠진 것을 직감한 듯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무성 사람들이라면 김 씨 가문의 위세를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일단 김 씨 가문 사람이 그들의 손에 죽으면 그들은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것이 뻔했다.“비켜!”어수선한 현장에 몰려 있는 인파들을 밀쳐내고 누군가 김일영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별거 아닙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공짜로 당신을 구해 준 건 아니니까요. 십억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김일영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게 수표책을 꺼내 수표에 사인을 하고는 하현에게 건넸다.수표를 건넨 김일영은 동시에 명함도 꺼냈다.이로써 그는 하현을 높이 인정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하현은 거절하지 않고 수표를 받았고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선생님!”“당신은 정말 무학의 대가입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하현이 돈을 받은 것이 대가의 풍모답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사람을 구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이희광과 조남헌도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하현의 실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그들의 마음속엔 오늘 하현이 남궁나연 일행을 가볍게 제압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이제 사람들은 누가 고수인지 제대로 알았을 것이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김일영이 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거예요?”하현이 멀어지자 남궁나연이 입을 열었다.“내가 이미 반은 변곡점을 돌파해 놓았어. 그래서 하현이 쉽게 발작을 제압한 거야!”“왜 갑자기 발작한 거냐고? 그게 내 잘못이야? 난 잘못한 거 없어!”남궁나연은 지난 모든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남궁나연의 일행들도 모두 의아했다.남궁나연은 말로만 허풍을 떠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무학의 고수였다.어떻게 그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하현이 이렇게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하현은 발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춰 서며 말했다.“당신의 방법은 잘못된 게 없어.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지.”“김일영은 오랜 세월을 기력이 쇠약해진 채 지내왔어. 힘줄과 사지육신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자기 강한 기운이 몸을 훑고 지
학비가 오천만 원이라는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방금 이서국에게 사기를 친다며 욕을 퍼붓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용해졌다.오천만 원이라니!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1년 동안 모으지도 못하는 돈이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0이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의 액수였다.하현이 보여준 무학의 기술은 비범했지만 오천만 원은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던 이서국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오, 오천만 원! 이제 보니 국술당이 공짜로 옷과 밥을 제공하는 우리 국민무학당보다 더 파렴치하잖아?!”“입만 열면 오천만 원이야! 오천만 원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맞아요! 도둑이 따로 없어요!”“사람 한 명 구했다고 뭐 아주 천정부지로 몸값이 오를 줄 알았나 본데!”“예전에 국술당도 비싸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터무니없진 않았다구요!”“완전히 사기꾼 아니야!”“파렴치한 장사꾼 같으니라고!”하현의 문하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하현을 헐뜯으며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그들은 하현이 자신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현은 냉담한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은 내가 학비를 너무 터무니없이 받는다고 생각해?”“당신들한테 무학을 배울 기회를 안 주면서 학비만 받아챙기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맞아요!”사람들이 화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당신이 이러는 건 돈 없는 가난한 우리들을 무시하는 거라고요!”“돈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하고 말이죠!”“뭐? 돈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한다고?”“좋아! 그럼 조건을 한 가지 더 보태지!”“자신이 무학에 타고난 재능을 지녔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 있어?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돈 한 푼 내지 않아도 돼. 오히려 내가 월급을 주겠어!”결연하고 강인한 하현의 목소리에 장내는 파장 후 시골 장터처럼 고요해졌다.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많은 사람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이서국 일행은 고개를 떨구었다.공짜 무도복이며 식사며 돈만 잃고 이득은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잔치 뒤 어질러진 마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개업하자마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임을 직감한 국민무학당은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하자마자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맞고 말았다.하현은 조남헌에게 눈짓을 한 뒤 나머지 일 처리를 부탁했다.이서국 같은 소인배 일당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방금 사람을 구한 대가로 받은 수표까지 더해져 사람들은 더더욱 하현을 경외하게 되었다.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남궁나연 일행이 하현 앞으로 다가왔다.그들의 안색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어색하고 복잡하고 난감한 기분이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남궁나연이 먼저 입을 열며 아홉 명의 교관들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하현, 우리한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하현이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그들에게 시선을 던졌다.보아하니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사과하러 온 것 같았다.무술을 익힌 자에게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수련에 있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 그들 열 명을 모두 받아들였다.국술당의 인기는 다시 예전으로 회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 것이다.그래서 하현도 망설이지 않고 남궁나연 일행에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준 것이다.물론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하고 무엇을 가르칠지는 모두 하현이 결정할 일이다.이희광과 조남헌은 하현의 능력과 기개에 또 한 번 감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대찬 행동과 결연한 의지로 공작새처럼 도도했던 남궁나연 일행을 순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이튿날 아침 일찍 문을 연 국술당은 입구부터 벌써 사람들로 미어터졌다.은행 카드를 흔들며 어서 등록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이희광 일행은 모두 입이 귀에 걸렸다.어쨌거나 무사히 문을 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등록하러 온
”아!”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기세 한번 좋군요.”“하지만 여긴 무림의 강호도 아닌데 무맹 사람들이 어쩐 일이죠?”“비아냥대지 마!”중년 남자는 음흉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장검 위에 갖다 대었다.“무맹의 규율에 따라 모든 무관은 무맹의 제재를 받지!”“무학이라는 두 글자만 믿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야.”“어젯밤 우리는 당신네 국술당이 온갖 사기를 일삼으며 터무니없는 학비를 내걸고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당신들이 사기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 문맹 사람들이 철저히 조사할 거야!”“무맹 사람들은 먼저 벌하고 나중에 보고를 올려도 되는 특권이 있으니 막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그렇지 않다면 내가 당신을 좀 거칠게 다루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중년 남자는 여유로운 몸짓과 말투로 하현에게 말했다.무맹이라고 말할 때는 특히 거만한 자태가 극을 이루어 보기 흉할 지경이었다.그는 자신이 어떤 권세와 권위를 가졌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것 같았다.말을 마치며 그는 하현의 대답 따위는 원래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바로 손을 크게 흔들며 차갑게 말했다.“모두 내 명령을 잘 들어. 전부 샅샅이 조사해!”“조그마한 문제라도 있으면 이 국술당은 바로 폐쇄야!”“누가 감히 저항하거나 하면 손발을 부러뜨려도 좋아!”“모든 책임은 나 조삼석이 질 거야!”조삼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십 명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국술당 전체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이희광 일행은 발끈하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하현은 오히려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고 담담한 표정으로 조삼석 일행을 쳐다보았다.“조 씨? 서북 조 씨 사람이야?”하현은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며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어제 이서국 일행도 당신 사람들인 모양이지?”“어제 내 앞에서 체면을 구겼으니 오늘 구겨진 체면을 되찾으시겠다?”“이런 수법 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