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을 보고 이서국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남궁나연 일행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헤아릴 수 없이 마음이 혼란스러웠다.눈앞의 광경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교관으로서 그들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들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무성에서 숭상받던 무학의 교관들이 희망을 주기는커녕 실망만 안겨줬다는 여론이 생기면 그들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자 이서국은 급히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했다.한편으로는 남궁나연 일행에게 간단한 것이라도 좋으니 무학을 가르치라고 지시했다.그렇게라도 해야 상황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오늘 일어난 모든 일로 무성에서 엄청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바로 그때 경호원 같은 모습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재빨리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가운데 큰 길을 만들었다.사치품으로 치장한 옷차림에 얼굴이 창백하고 가끔 기침을 하는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남궁나연 교관님, 저는 김일영입니다. 과거에 당신이 국술당 수석 교관으로 있을 때 난 여러 번 방문해서 당신의 문하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무학의 성지인 황금궁에서 온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무학 교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무학에 대한 당신의 깊은 학식과 실력도 아주 칭송할 만했고요!”“그래서 오늘 당신이 여기서 천 원으로 무학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외지에서 돌아와 여기에 온 것입니다!”“내 사정을 아직 잘 모르실 텐데.”“우리 김 씨 가문은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과 인연이 깊습니다. 나도 젊었을 때는 황금궁의 무학을 수련한 적이 있어요.”“하지만 제대로 된 스승이 없었던 관계로 잘못된 수련을 하고 말았죠. 그래서 결국 사악한 교리에 빠지게 되었구요.”“그동안 밤마다 불길에 타오르는 흉측한 기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남궁나연 교관님이 제발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난 더 이상 이런 폐인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지금처럼 아무것도
남궁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녀는 지금 당장 한 시도 손을 뺄 수 없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다.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한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당신의 상황이 매우 특수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여력이 없습니다”“그러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어떤 이가 따져 물으려고 했지만 김일영이 손을 흔들며 제지했다.그때 십여 명의 경호원들이 지폐가 가득 든 여행 가방을 열었다.“제발 사정 좀 봐 주십시오!”체구가 우람한 경호원에다 거액이 든 돈 가방까지!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누구다 다 안다.남궁나연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김일영을 살짝 쳐다보고는 수락하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김일영이 남궁나연의 맞은편에 앉자 남궁나연은 두 손가락을 뻗어 김일영의 맥문 위에 나란히 얹으며 얼굴을 찌푸렸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당신은 원래 허약한 체질인데 황금궁에서도 기력 소모가 심한 권법을 무리하게 수련했군요. 그렇게 하면 당신의 체내에 장기간 기혈이 부족하게 됩니다...”“그래서 당신은 밤낮으로 머리가 아프고 밤마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되는 거죠.”“하지만 당신의 상황은 크게 어려운 경우는 아닙니다. 나한테 와서 천천히 조절하면 한 3년쯤이면 보통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지금은 어깨도 못 쓰고 손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나중엔 다 좋아질 거예요.”남궁나연의 말에 김일영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입을 열었다.“남궁나연 교관님, 당신 말대로라면 난 3년을 꼬박 몸조리해야 보통의 사람도 겨우 될 수 있다는 거군요. 절대로 고수는 될 수 없는 겁니까?”“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같은 사람이 무술을 배우지 않으면 절대 상석으로 올라갈 기회가 없습니다!”“그래서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로 내가 회복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이 없겠습니까?”“남궁나연 교관님이 도와주신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습니다!”“내 명의로 된 무성 핵심 지역 부동산
”여기 가부좌를 틀고 앉으세요. 변곡점을 돌파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남궁나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고 부하에게 방석을 가져오게 해서 김일영이 가부좌를 틀도록 옆에서 도와주게 했다.그리고 그녀는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손바닥을 들고 김일영의 정수리 대혈을 톡톡 건드렸다.그런 다음 그녀는 김일영의 관자놀이, 양중혈 등을 차례로 두드렸다...마침내 김일영의 단전을 꾹 눌렀다.그러자 눈에 띄게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몹시 기력이 상한 모습을 보였다.반면 김일영의 호흡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빛은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마지막으로 단전을 눌렀을 때 남궁나연은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김일영은 체내의 숨결을 느끼며 순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김일영의 호방한 웃음소리에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무성 사람들은 모두 무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런 그들조차도 입이 딱 벌어지는 광경이었다.“이럴 수가? 방금까지 김일영은 내일 죽을 사람처럼 기운이 없었는데 지금 기운이 넘쳐나는 사람처럼 혈색이 돌아왔어. 마치 무학의 고수 같아!”“완전히 멀쩡한 사람이 되었는데!”“남궁나연 교관이 정말로 김일영의 막힌 변곡점을 돌파해 주었다니!”“이런 교관 밑에서 배우면 우리도 나중에 고수가 될 수 있는 거 아니야?”남궁나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흠모가 가득 서려 있었다.당장이라도 그녀 앞에 달려가 무릎을 꿇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무성 사람들은 모두 최고의 고수가 되고 싶어 한다.지금 그들의 눈앞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미모도 출중한 데다 실력까지 겸비한 교관에게 무학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냉랭했던 남궁나연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나머지 아홉 명의 교관들의 표정도 다시 의기양양해졌다.이서국도 한숨을 돌리며 하현을 힐끗 쳐다보며 목을 베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이서국은 분명 하현에게
남궁나연은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켜 김일영의 맥을 짚었다.순간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몸속의 기운이 역행하고 있어. 역시 잘못된 방식으로 무학을 연마하다가 사도에 빠진 거야. 큰일이야...”“어서! 어서 빨리 황금궁으로 사람을 보내!”“궁주께 가서 손을 써 달라고 부탁해!”“무성에서 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궁주 말고는 없어!”남궁나연은 말을 마쳤다가 이서국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김 씨 가문 사람이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모두가 골치 아파질 거예요!”남궁나연이 황금궁 출신이라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김 씨 가문 사람을 죽인다면 그녀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문제는 그녀도 지금 많이 초췌해진 상태라 다른 사람을 구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다른 교관들도 얼른 그녀에게 다가와 온 힘을 다해 김일영의 몸을 누르며 발작이 진정되기를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사람이 죽는다고?”이서국도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만약 김일영이 여기서 죽는다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결국 김일영의 목숨은 이서국보다 천 배, 만 배나 귀한 것이다!순간 이서국은 옆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을 향해 소리쳤다.“빨리!”“빨리 차를 가져와!”“황금궁으로 가야겠어!”“개자식! 우리 도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때 김일영의 경호팀장이 핏대를 세우며 눈을 부라렸다.김일영은 평소 그들을 진심으로 친절하게 대했다.만약 김일영에게 일이 생긴다면 그들은 반드시 그 원흉을 찾아서 목숨으로 되갚아 줄 것이다!남궁나연 일행은 곤경에 빠진 것을 직감한 듯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무성 사람들이라면 김 씨 가문의 위세를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일단 김 씨 가문 사람이 그들의 손에 죽으면 그들은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것이 뻔했다.“비켜!”어수선한 현장에 몰려 있는 인파들을 밀쳐내고 누군가 김일영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별거 아닙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공짜로 당신을 구해 준 건 아니니까요. 십억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김일영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게 수표책을 꺼내 수표에 사인을 하고는 하현에게 건넸다.수표를 건넨 김일영은 동시에 명함도 꺼냈다.이로써 그는 하현을 높이 인정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하현은 거절하지 않고 수표를 받았고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선생님!”“당신은 정말 무학의 대가입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하현이 돈을 받은 것이 대가의 풍모답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사람을 구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이희광과 조남헌도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하현의 실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그들의 마음속엔 오늘 하현이 남궁나연 일행을 가볍게 제압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이제 사람들은 누가 고수인지 제대로 알았을 것이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김일영이 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거예요?”하현이 멀어지자 남궁나연이 입을 열었다.“내가 이미 반은 변곡점을 돌파해 놓았어. 그래서 하현이 쉽게 발작을 제압한 거야!”“왜 갑자기 발작한 거냐고? 그게 내 잘못이야? 난 잘못한 거 없어!”남궁나연은 지난 모든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남궁나연의 일행들도 모두 의아했다.남궁나연은 말로만 허풍을 떠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무학의 고수였다.어떻게 그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하현이 이렇게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하현은 발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춰 서며 말했다.“당신의 방법은 잘못된 게 없어.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지.”“김일영은 오랜 세월을 기력이 쇠약해진 채 지내왔어. 힘줄과 사지육신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자기 강한 기운이 몸을 훑고 지
학비가 오천만 원이라는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방금 이서국에게 사기를 친다며 욕을 퍼붓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용해졌다.오천만 원이라니!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1년 동안 모으지도 못하는 돈이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0이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의 액수였다.하현이 보여준 무학의 기술은 비범했지만 오천만 원은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던 이서국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오, 오천만 원! 이제 보니 국술당이 공짜로 옷과 밥을 제공하는 우리 국민무학당보다 더 파렴치하잖아?!”“입만 열면 오천만 원이야! 오천만 원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맞아요! 도둑이 따로 없어요!”“사람 한 명 구했다고 뭐 아주 천정부지로 몸값이 오를 줄 알았나 본데!”“예전에 국술당도 비싸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터무니없진 않았다구요!”“완전히 사기꾼 아니야!”“파렴치한 장사꾼 같으니라고!”하현의 문하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하현을 헐뜯으며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그들은 하현이 자신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현은 냉담한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은 내가 학비를 너무 터무니없이 받는다고 생각해?”“당신들한테 무학을 배울 기회를 안 주면서 학비만 받아챙기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맞아요!”사람들이 화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당신이 이러는 건 돈 없는 가난한 우리들을 무시하는 거라고요!”“돈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하고 말이죠!”“뭐? 돈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한다고?”“좋아! 그럼 조건을 한 가지 더 보태지!”“자신이 무학에 타고난 재능을 지녔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 있어?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돈 한 푼 내지 않아도 돼. 오히려 내가 월급을 주겠어!”결연하고 강인한 하현의 목소리에 장내는 파장 후 시골 장터처럼 고요해졌다.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많은 사람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이서국 일행은 고개를 떨구었다.공짜 무도복이며 식사며 돈만 잃고 이득은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잔치 뒤 어질러진 마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개업하자마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임을 직감한 국민무학당은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하자마자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맞고 말았다.하현은 조남헌에게 눈짓을 한 뒤 나머지 일 처리를 부탁했다.이서국 같은 소인배 일당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방금 사람을 구한 대가로 받은 수표까지 더해져 사람들은 더더욱 하현을 경외하게 되었다.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남궁나연 일행이 하현 앞으로 다가왔다.그들의 안색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어색하고 복잡하고 난감한 기분이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남궁나연이 먼저 입을 열며 아홉 명의 교관들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하현, 우리한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하현이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그들에게 시선을 던졌다.보아하니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사과하러 온 것 같았다.무술을 익힌 자에게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수련에 있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 그들 열 명을 모두 받아들였다.국술당의 인기는 다시 예전으로 회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 것이다.그래서 하현도 망설이지 않고 남궁나연 일행에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준 것이다.물론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하고 무엇을 가르칠지는 모두 하현이 결정할 일이다.이희광과 조남헌은 하현의 능력과 기개에 또 한 번 감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대찬 행동과 결연한 의지로 공작새처럼 도도했던 남궁나연 일행을 순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이튿날 아침 일찍 문을 연 국술당은 입구부터 벌써 사람들로 미어터졌다.은행 카드를 흔들며 어서 등록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이희광 일행은 모두 입이 귀에 걸렸다.어쨌거나 무사히 문을 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등록하러 온
”아!”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기세 한번 좋군요.”“하지만 여긴 무림의 강호도 아닌데 무맹 사람들이 어쩐 일이죠?”“비아냥대지 마!”중년 남자는 음흉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장검 위에 갖다 대었다.“무맹의 규율에 따라 모든 무관은 무맹의 제재를 받지!”“무학이라는 두 글자만 믿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야.”“어젯밤 우리는 당신네 국술당이 온갖 사기를 일삼으며 터무니없는 학비를 내걸고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당신들이 사기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 문맹 사람들이 철저히 조사할 거야!”“무맹 사람들은 먼저 벌하고 나중에 보고를 올려도 되는 특권이 있으니 막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그렇지 않다면 내가 당신을 좀 거칠게 다루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중년 남자는 여유로운 몸짓과 말투로 하현에게 말했다.무맹이라고 말할 때는 특히 거만한 자태가 극을 이루어 보기 흉할 지경이었다.그는 자신이 어떤 권세와 권위를 가졌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것 같았다.말을 마치며 그는 하현의 대답 따위는 원래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바로 손을 크게 흔들며 차갑게 말했다.“모두 내 명령을 잘 들어. 전부 샅샅이 조사해!”“조그마한 문제라도 있으면 이 국술당은 바로 폐쇄야!”“누가 감히 저항하거나 하면 손발을 부러뜨려도 좋아!”“모든 책임은 나 조삼석이 질 거야!”조삼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십 명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국술당 전체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이희광 일행은 발끈하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하현은 오히려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고 담담한 표정으로 조삼석 일행을 쳐다보았다.“조 씨? 서북 조 씨 사람이야?”하현은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며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어제 이서국 일행도 당신 사람들인 모양이지?”“어제 내 앞에서 체면을 구겼으니 오늘 구겨진 체면을 되찾으시겠다?”“이런 수법 좀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